2005년 12월 31일 토요일

새해 복 많이 짓고 받으세요!

送舊迎新

謹賀新年




시간은 늘 속절없지만
그 시간 속에서 마음의 키는 한웅큼 자라고
새로운 한 해를 치열하게 할 거름을 만든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던 올 한 해
어제가, 오늘이, 내일이 별 날이 아닌 걸 알지만
병술년(丙戌年) 새해엔 아쉬운 것도, 복잡한 번뇌도 다 놓아지길,
하고자 하는 일에 보다 명확한 지점이 보여지길,
표면보다 본질에 더 관심을 두는 한 해가 되길,
그리고 흔들림없는 걸음이 되길 희망한다.


병술년(丙戌年) 한 해엔
보다 더 복 많이 '짓고' '받길' 희망한다.

2005년 12월 26일 월요일

투 스트라이크, 쓰리 볼...

중국 친구 安颍(An Ying)이 보내 준, 함께 인사동에 갔을 때 찍은 사진.


이젠 실내야구장도 많이 사라져서
인사동에 있는 실내야구장은 문화유적같은 느낌이다.

야구장에 배트를 들고 서면
잘 치고 싶다는 욕심과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던 근육들의 마찰음 때문에
괜한 땀만 흘리는 듯 하지만
투입된 금액만큼 공들이 다 던져지고 난 후
배트를 제자리에 꽂아놓을 땐
시원한 바람이 분다.

언제나 9회 말 투 아웃, 주자 만루일 수 없고
또 투 스트라이크, 쓰리 볼일 수 없지만
타석에 선 만큼 공을 끝까지 봐야 하고
배트를 휘두를 때마다 자세를 고쳐 잡아야 한다.
그 안에 진지함, 즐거움, 경쾌함, 반전이 있다.
삶이 꼭 그러하다.

잘 치고 싶으면 늘 연습이 필요하다.
가끔씩 휘두르는 배트로는
아무리 느린 공도 맞혀주지 않으니까.

2005년 12월 25일 일요일

따스함, 가볍다.

손 안 가득 만져지는 햇살과 함께 아침을 맞이하고
덩어리 채 나를 눈부시게 하는 느린 낮을 보내는 게
아주 오랜만인 '오늘'
TV소음과 전화하는 소리, 아이들의 재잘거림은
오히려 현실에서 나를 멀리 격리시킨다.


아무리 가슴에 담고 눈시울을 붉히더라도
행동없는 삶 변두리엔 스러지는 사연들이 즐비하고
그저 지금 이 순간만은 햇살에 송두리 채 무너져
현실 위를 부유하는 영혼, 가볍다.


해가 지지 않을 것 같은 이 몽롱함은
사실 오래가지 않아야 좋을 것 같긴 하다.
그래도 여전히 매혹적으로 아름답지만.

2005년 12월 24일 토요일

메리 크리스마스~ :)

사실, 크리스마스나 기타 기념일, 명절 등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살기에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하는 것도 어색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래도 즐거운 인사는 즐거운 일이니... 기쁜 마음으로 '메리 크리스마스~ :)'


더구나 25일은 세째 조카 도연이의 '생일'이기도 하다. 누나네 집에 오면서 도연이 생일인지는 모르고 크리스마스 케잌이라도 사가려 전화를 했더니 도연이 생일이라 한다. 근처 빵집에서 고르고 골라 나름대로 괜찮은 케잌 하나 들고 들어오니 조카들이 난리가 났다.


'우아아아, 삼촌이다!!'
'삼촌, 이상해, 이상해'


검정 빵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그런 모습을 처음 본 애들에겐 내 모습은 이상하고 신기하기만 했을 게다. 신기하고 이상한 괴물 삼촌? 그래도 케잌을 들고 있는 난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애들은 내일까지 기다릴 수 없는지 케잌을 먹자고 난리가 났다. 주인공 도연이는 자신의 생일인 걸 아는지 모르는지 기분이 너무 좋아 감정 고조 상태였고 주연, 도연도 기분이 좋아 자진해서 도연이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뽀뽀해주며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가지고 올 거라고 얘기를 해준 후 아이들이 잠든 사이, 매형과 누나, 동생은 조카들 선물을 사러 나갔다.


크리스마스가 어쨌든 간에 잠시라도 기쁨을 공유할 수 있다면, 다른 이들에 대해 마음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이유가 되는 세계인의 축제가 아닌가 싶다.



솔로든, 듀엣이든, 트리플(?)이든...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내길~


MERRY~ X-Mas.!!!



아, 우리팬님 블로그를 통해 본 성탄절과 관련된 중국어 유머 하나.


听说过几天要生个蛋,真的吗?
那我得祝你的生蛋快乐!



해석을 하자면...
'듣자하니 며칠 후에 알(계란)을 낳는다던데 진짜야?
그렇다면 알(계란) 낳는 거 축하해야겠다!!!'


알을 낳는다는 발음과 성탄의 발음은 같다. :P

2005년 12월 20일 화요일

좋은 만남, 인연들...

오늘은 경기도지사가 '경기디지털컨텐츠진흥원'을 방문하는 바람에 진흥원 건물 이곳 저곳에 전경들과 경찰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한 쪽에서는 확성기를 통해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시위하는 내용이 흘러 나오는, 뭐랄까... 'Boss'가 뜨면 주변 환경이 순식간에 바뀌는 체험을 했다. 도지사가 수업 중간에 들어와 (전시행정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잠깐 수업을 참관한 후 강사와 학생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청하고는 무수히 많은 식솔(?)들을 데리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로 인해 오늘 하루 종일 진흥원 아카데미 직원들은 긴장 에너지가 흘러 넘쳤고 수업도 약간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그다지 내키지는 않았지만 카메라를 손에 쥐고 있었으니 열심히 촬영을 해댔고 진흥원에서도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도지사를 열심히 찍었건만 정말 애석하게도 경기도 행정이 바쁘셨던 탓인지 조는 모습이 꽤 촬영되어 버렸다. 물론 그 졸린 눈을 뜨려고 애쓰는 모습은 박수칠 만 했지만... 아!!! 이게 어릴 적 겪었던 참관수업이었네.-_-;;;


담당했던 촬영(계약서에 '촬영기사'라는 문구를 보고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었던...) 일도 내일이면 끝난다. 촬영이라는 게 쉬운 듯 어렵고 어렵지만 재밌는 일이라는 걸 느낀다. 기록촬영과 영화촬영, 애니메이션촬영은 다른 기법, 느낌이겠지. 어쨌든 카메라 두 대를 돌리며 힘든 점도 많았지만(가장 힘든 건 촬영하는 중엔 앉을 수 없었다는 것) 사람을 프레임에 담아내고 그 프레임을 통해 실제 느끼지 못하는 느낌까지 얻어낼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워크샵에 참여하신 임아론, 유진우, 오순한, 이문성 등 네 분의 강사님들의 강의 내용은 오히려 참석한 학생들보다 내게 더 많은 소득이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간의 소득을 짤막하게 말하자면...(더보기)

2005년 12월 16일 금요일

'허탈'한 소식

(한 번도 관련 내용을 포스팅하지 않은 내가 이 시점에서 글을 올린다는 게 참 뻘쭘하긴 하지만 '허탈'한 마음을 스스로 풀어보기 위한 자위 정도는 될 것 같다.)


오늘 일 마치고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데 선배한테 전화가 왔다. 조금 후에 식당에 올 거라는 얘기와 함께 한 말은 '엄청난 속보를 알려주겠다'였다. 그리고 그 내용은 모두가 알다시피 '황우석 박사 관련 내용'이었다.


사실, 얼마 전에 여러 블로거들의 글을 읽다가 '[PD수첩] 폐지 반대 릴레이'를 봤다. 며칠 간 급박하게 전개되었던 '황우석 박사 논란'을 며칠 간 정독을 하며 이해를 해왔던 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에 부족함이 많지만 최소한(?) [PD수첩] 폐지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을 포스팅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나마도 갑자기 일이 생겨 며칠 컴퓨터 앞에 앉을 수 없어서 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오늘 '급보'를 전해듣고 잠깐 멍하게 있었다. 사실 화가 나지도 않았고 '그럴 줄 알았다'거나 하는 식의 반응은 더더욱 없었다. 그동안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썼고 정작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많은 '공부'를 했던 탓인지 담담했다.


그럼에도 난 무척 '허탈'했다. 그건 황우석 박사측에 대한 허탈함이 아니었다. 그 많던 논란들 -'좌경세력'과 '보수세력'으로, '황빠'와 '황까'로, '종교화된 믿음'과 'PD수첩에 대한 믿음'으로, '일반인'과 '과학도'로 나뉘어진 그 많던 논란들이 달구어지기만 했지 정작 중요한 문제점들은 오늘 '속보' 한 방에 다 날아간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물론 여전히 꽤 괜찮은 블로거들의 글은 진심과 차분한 시각들을 담고 있고 의견들을 펼치고 있지만 사실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것은 분명하고 이 많던 논란들이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또' 묻힐 수(잊혀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 더욱 그러하지 않았나 싶다.


그간 '공부'는 나름대로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며 앵똘레랑스에 대한 단호함의 '똘레랑스'와 참 의미의 '중용'을 다시 곱씹어 보는 기회가 되었다. 참 재밌는 세상이다. 허허.




여전히 열심일 젊은 과학도들에겐 격려가 필요하겠고,
황우석 박사를 비롯한 팀들에겐 다독임이 필요하겠고,
많은 사람들에겐 황우석 박사의 진심어린 사과도 필요하겠고,
권력관계에 여전히 숨 죽이는 이들에겐 진실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겠고,
순식간에 황색 언론에 휘둘리는 누리꾼들에겐 동요하지 않을 진중함이 필요하겠고,
국익에 목숨 걸던 사람은 자신과 이건희가 같은 민족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하겠고,
여자의 난자를 계란 노른자 정도로 치부하는 이들에겐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겠고,
그 동안 5-10% 속에서 마음 고생이 심했을 누리꾼(블로거)들에겐 심심한 위로와 박수가 필요하겠고,
정신없던(난잡했던) 언론판은 스스로 정화필터를 착용해야겠고,(불가능하리라)
[PD수첩]은 폐지되지 않고 계속 좋은 방송을 해줬으면 좋겠다.


아! 이 뜨거운 열기로 '검찰이 삼성 가족이 아님'을 증명했으면 좋겠다.




혹시, 내일이 되면 '대반전'이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드는 밤이다.

2005년 12월 14일 수요일

아시아디지털콘텐츠마켓플레이스 2005에 대한...

내일부터 경기디지털컨텐츠진흥원에서 주최하는 행사 아시아디지털콘텐츠마켓플레이스 2005 중 워크샵 부분에서 촬영을 담당하기로 했다. 아는 PD 부탁으로 한다고 했지만 겸사겸사 워크샵이나 행사에 대해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겠다. 행사 담당자나 진흥원 몇 분은 전부터 아는 분들이라 편하긴 하다.


오늘 미리 와서 내일부터 할 일에 대해 상의하고 중국에서 온 사람들도 있으니 (이지선씨가 통역은 담당하고 있지만) 서로 얘기 나누는데 도움을 달라고 한다. 와서 사람들과 인사하고 중국 친구들과 통성명하고 저녁먹고 술 한잔 하고 여차저차해서 작업실에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 진흥원 내 숙소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중국 친구들은 상해에서 3D애니메이션 관련 일을 하고 있다 한다. 쓰촨성과 허난성 출신인 두 친구들은 젊은 나이에 비해 꽤 실력이 있는 듯 하다.


내일부터는 RG스튜디오의 임아론 감독과 미국에서 'ICE AGE' 캐릭터 애니메이터를 맡았고 속편을 준비 중인 이문성씨도 오셔서 워크샵을 한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대학 강의를 하고 계신 유진우 연극인도 동작표현연구에 관한 강좌를 맡았다. 워크샵 뿐만이 아니라 애니메이션 상영회도 하고 세미나도 개최하는데 세미나에는 일본의 곤조(GONZO)에서 감독과 제작자(PD)가 참석한다고 한다. 워크샵 촬영을 전담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파트는 참석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마지막 날 리셉션에서 모두 모여 교류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고 하니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 같다. (자세한 내용 보기)


간단한 인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갖게 된 술자리에서 진흥원 소속 몇 분과 애니메이션에 관한 몇 가지 고민들에 대해 얘기하게 되었는데 이 생각들을 묶어서 정리를 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2005년 12월 10일 토요일

친구의 결혼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 온 '아름솔' 계모임 친구들은 (나를 포함해서) 모두 16명이다. 10년 넘게 살아오면서 별별 일도 많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하나 둘씩 유부남이 되었다. 친구 부모님들도 모두 우리들을 알고 지내기 때문에 보다 각별한 관계들이랄까? 물론 이제 사는 곳은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지만 그래도 두 달에 한 번은 모임을 갖는다. 바빠지는 시간 속에, 먹고 살기 힘든 나날 속에 두 달에 한 번 모이는 것도 어렵긴 매한가지이지만 되도록 모이려고 애를 쓰며 산다.


이제 결혼을 한 친구들이 12명이고 내년에 결혼을 예약한 친구가 한 명이니 (나를 포함해서) 3명이 결혼을 하지 않은 셈이다. 오늘 친구 결혼식이 있었다. 신부는 회사 동료인데 친구 못지 않게 유머감각이 뛰어난 친구다. 결혼하는 친구 충훈이 때문에 중국까지 갈 결심을 하게 되었었다. 그리고 친구의 신부 역시 중국어를 잘 한다. 뭐, 굳이 중국어와 결부시키지 않더라도 충훈이를 포함한 친구들은 모두 내게 각별한 의미를 가진다.


신혼 여행은 대만이라 한다. 오래 전 대만에 배낭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어서 몇 가지 특색있던 곳에 대해 얘기를 나누며 꼭 들리라 조언해줬다. 결혼식 후에 참석한 친구들 대부분은 충훈의 새 집이 있는 수원으로 가서 거나하게 술자리를 가졌다. 날씨가 워낙에 추워서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즐거운 시간들.


어이 친구~, 잘 살고 행복한 생활 보내길 진심으로 바라네. :)
사진 중에 몇 장은 잘 인화해서 전해줌세.


축하해~!!!


결혼식 사진은 아직 정리를 하지 못했기에 며칠 후에 올릴 생각이다.

2005년 12월 9일 금요일

화산(和山)님 기일

오늘은 화산(和山)님 기일이다.
저녁에 제사가 있다고 하니 점심 먹고 출발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점점 가슴은 무뎌지고 있지만
당신의 영향력인 점점 강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런 날이라고 해서 꼭 더 많이 생각나거나 그리운 건 아니다.
당신에 대한 그리움은 '어느 날 문득' 찾아오는 경우가 많고
그런 날은 대개 부끄럽게도 내 자신의 삶이 버거울 때가 대부분이다.


결국 나는 여전히 당신의 부재(不在)마저도
내 에너지를 충당시키는데 활용하는 못난 놈인 것이다.


늘 죄송스러운 마음조차도 내겐 사치가 아닐까.


여전히 당신이 그립긴 하다.

전문직이 차별화 되는 이유

의과대학 진학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 겨울 필자를 아끼시던 한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 주셨다. "의사를 포함해 모든 전문직이 차별화되는 이유는 다음 세 가지 때문임을 기억하라. 먼저 전문직 별도의 행동윤리가 있고 이는 일반인에게 요구되는 윤리보다 더 엄정하다. 둘째 졸업 후 직업 훈련 과정은 평생 수행되는 것이니 배움의 끈을 놓지 말라. 마지막으로 이것이 가장 중요한데 '전문직이 전문직일 수 있는 이유는 자정 기능을 갖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출처 보기


이런저런 논란의 틈새에서 상황의 이해를 돕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마주친 글귀 하나. 난 의대생도 아니고(아주 어릴 적 꿈이긴 했지만) 과학도도 아니지만 위에서 말하는 모든 ‘전문직’이 차별화되는 이유에 대해 공감을 한다. 위의 ‘선생님’이란 분이 어떤 분인지도 모르겠고 ‘말’뿐인지 ‘행동’도 함께 수반되는 분인지 확인할 길 없지만 하신 말씀은 내게도 울림을 준다.

애니메이션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도 아니고 국가발전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직업도 아니겠지만 나름의 ‘차별화’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물론 요즘에는 플래시나 간단한 툴을 이용해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반인(비전문)’들도 많고 그들의 실력도 상당하지만 여전히 전문직임엔 틀림없는 것 같다.

그럴 경우 위에서 말하는 차별화를 적용해서 생각해 보면 적당한 기준들이 생길까? 간혹 애니메이션 ‘판’에서도 ‘카르텔’이 형성이 되어 아주 기본적인 ‘권리’들 조차도 무시당하기 일쑤고 여느 보수 집단보다도 더 ‘상하관계’가 중요시되곤 한다. 그게 이쪽 나름의 행동윤리 강령이라면 끔찍하다. 하지만 또 반대급부는 분명 존재하고 행동하고 있다. 종종 나도 이런저런 이유들로 인해 혼동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나름의 ‘윤리’의식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실 윤리도 윤리지만 내 마음을 잠시 머물게 했던 건 ‘배움의 끈을 놓지 말라’는 말이었다. 어릴 적 교육에서도 전인교육이네 뭐네 하며 들어왔던 끊임없는 공부에 대한 이야기는 세월이 지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일상성에 빠지게 되고 지금 내가 아는 것이 마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지속적인 노력보다는 여태 알아왔던 사실만으로도 가능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비단 대학원, 박사과정을 밟으며 공부를 하고 학위를 따는 것만이 배움의 길은 아닐 터. 내가 몸 담고 있는 이 업종에서 내게 주어지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위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 건 ‘선택’이 아니고 ‘필수’다. 과거 혈기 왕성했던 시절에 몸 담고 있었던 ‘집단’을 줄기차게 비판했던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그런데 그 때가 지나 지금의 내 모습은 스스로가 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내가 평생 가지고 갈 직업이 아니라면 모르거니와 혹 그렇다 할지라도 그만두는 순간까지는 명심해야겠다.

전문직이 가지고 있는 자정 기능은 믿긴 믿되 믿음만으로는 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여전히 내 성격이 ‘강성’이고 ‘옹고집’이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측면이기도 하겠지만 집단 내 변화가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해 내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10년 후에 가져올 좋은 결과가 1년 후에 올 수 있다면 더 좋지 않겠나? 이런 믿음으로 살다가 결국 10년을 꼬박 채우는 경우도 비일비재 하겠지만 여전히 중요한 건 ‘언제 누릴 수 있느냐’하는 것이다. 자정 기능이 없다면 전문직이 아니다. 전문직이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보통 집단이다. 개개인의 자정 기능과 순기능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런 개개인이 모여 형성한 집단에서 자정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건 문제가 심각해진다. 애니메이션 계를 포함해 상당수의 예술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직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지 않은 이야기를 귀동냥으로만 들어도 심각한 일들이 많다. 하지만 자신이 속해있지 않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것이고 소위 그들이 전문 집단이기 때문에 자정 기능을 믿는 것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오랫동안 반복해서 일어나는 일이 체질화되고 관습이 되어버린 경우도 많다. 다시 고민해 볼 일이다.

내가 몸 담고 있는 이 곳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는 (내 마음과 생각, 몸이 죽지 않았다면, 여전히 움직일 만 하다면) 스스로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게 모르고 행하지 않은 것보다 더 나쁘다.

2005년 12월 6일 화요일

짱개;짱깨;짱꼴라의 어원(?)

掌柜(장꾸이;Zhang gui)는 상점 주인, 사장이란 뜻의 중국어다. 물론 지금은 이 말을 쓰지 않는다. 老板(라오반;Lao ban;남자 사장), 老板娘(라오반냥;Lao ban niang;여자 사장)이란 말을 쓴다. 掌柜는 예전에 쓰던 말이었다. 전에 즐겨보던 '大染坊'이라는 중국 드라마에서 나오던 말이었는데 1930-40년대까지 쓰던 말인 듯 하다. 공산정권이 들어서고 나서부터는 老板이란 말이 쓰이지 않았을까 싶다.


1. 짱꼴라란, 장(葬)+골(骨)+人 로서,
'불결하고 더러운 썩은 뼈다귀 같은 인간'이란 뜻입니다.

-> 아마 이 말은 잘못된 말인 듯 하다. 말을 억지로 끼워맞춘 듯한.


2. 中國人(중국인)을 중국어로 읽으면 "쭝꿔런"으로 읽히는데
"쭝꿔런"이 발음이 변해서 "짱꼴라"가 되었다고 하네요.
덧붙여서, "짱개"라는 말은 '지배인'이라는 뜻의 '장궤(掌櫃 )'의
발음 zhanggui 가 변해서 된 것이라 합니다.

-> 그럴 법한 이야기지만 변화의 폭이 너무 크니...


3. 흔히 ‘짱꼴라’로 폄하해 부르는 ‘장궤’(掌櫃)란 뜻도 ‘돈 궤짝을 장악한 사람’이란 의미다. 곧 중국인이다.
-> 위와 같은 내용이 나오는데 이 어원은 맞는 듯.


생각해 보면 중국인들이 셈에 밝은 건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말이야 서로 win-win하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하지만 상황이 잘못되더라도 절대 자신이 손해보도록 '설정'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얄밉고 쉽게 정이 안가더라도 속내를 잘 알아보고 친해지기만 한다면 너무 깔끔하고 좋은 돈 관계, 인간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는 한국인보다 훨씬 더 '의리'를 중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젠 중국 친구들이 좀 있다 보니까 중국인을 폄하하는 말은 하지 않는다.(물론 전에도 그런 말을 했던 기억은 없다) 그런데 어원을 살펴보니 그다지 나쁜 뜻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 추가 : 알타이 호랑나비짱깨, 짱꼴라의 유래는? (좀 더 자세한 소개)

2005년 12월 4일 일요일

첫 눈, 初雪。

얼마 전 눈이 내렸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직접 본 것도 아니었고 눈이라고 할 만큼 내린 것도 아니었다 하니 첫 눈이라고 말하긴 그렇겠다.


오늘, 첫 눈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눈이 내렸다. 늦은 오후엔 시력이 좋아야만 보일 수 있을 정도로 눈이 내리더니 저녁이 되어서 눈다운 눈이 내렸다. 전남 지역을 포함해 몇 곳은 폭설주의보가 내려졌다니 첫 눈 치고는 강력하다.


첫 눈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 사실 첫 번째라고 하는 의미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까닭을 이해못하는 바 아니지만 - 특별한 감흥을 느끼진 못하고 있지만 어릴 적(?-지금보다 젊었을 때^^;)엔 첫 눈에 꽤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흥분(?)했었다. 첫 눈이 내리면 무조건 '어디어디'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정해두기도 했고. 그런 내 삶의 여정 속에 꽤 인상적인 기억이 하나 있긴 하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후에 맞이한 '첫 눈'이 내리던 날의 기억.(그냥 생각만 하련다.)


눈이 사람의 심리적인 작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모르겠지만 내 마음의 움직임이나 사람들의 반응들을 보면 참 신기하기만 하다. 언제부터 눈에 대한 반응들이 생겨났을까. 게다가 수 많은 자연 현상 중에서 눈이 갖는 의미는 보다 특별함이 담긴 듯 하다. 이런 의문(?)을 갖는 게 우습긴 하지만 암튼 그렇다.


예전보다 설레거나 감상에 젖지 않게 된 건 단순히 세월이 흐르며 감성이 무뎌진 탓이 아니다. 내 감성은 여전히 건재하게 작동을 하고 있다. 생각해보니 감상에 빠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조카들과 함께 살짝 쌓인 눈을 보는데 너무너무 즐거워하던 조카들을 보고 있노라니 말이다.


그저 이렇게 주절주절주절, 눈 때문인 것 같다. :)


중국어로 첫 눈은 초설; 初雪(Chu Xue)라고 한다. 우리 말이나 중국 말이나 똑같다.

2005년 11월 30일 수요일

삼각관계 - freestyle



출처 : 许诚的胡思乱想


오랜만에 듣는 음악이라 기분이 좋다.
몸을 흔드는 젊은 친구들 표정을 보니 기분이 좋다.
보통은 '어쩌다 마주친 그대'와 같은 음악에 저런 춤을 추지 않는데
오히려 느낌이 더 좋아 보인다.


소시적에 저렇게 관절을 꺾으며 춤을 배워보려 했던 때가 생각난다.ㅋ
이젠 관절 꺾다가 부러질까 걱정이다.-,.-

2005년 11월 28일 월요일

따라 해 보기;Pack Place - 좋은 하루 되세요~!!!

outsider님 블로그 포스팅 '광고판 생성기(generator)'을 보고 재밌어서 따라해봤다.


- 클릭하면 큰 그림


따라하기- http://atom.smasher.org/pack/

좋은 하루 되세요~!!! :)


* 한글, 일어, 중국어는 모두 FBI사이트로 이동한다고 함. 광고판이 dot로 되어 있으니 이해는 하겠는데 왜 FBI사이트로 이동하는 것이냣!!! 췟!-,.-

글과 말에 대한 스치는 단상.

어디선가 읽었다고 소개 한 문장 하나.


"너희 중 죄 없는 자, 내게 돌을 던지라"고 예수가 말했다지만, 그거 요즘 말로 바꾸면 "잔말말고 입 닥치샘" 아닌가요?



정말 세상도, 생각도 많이 바뀌긴 했다.


사실 저 위 글을 읽는 순간 나도 피식거리긴 했지만 다른 측면으로 생각을 해보게 된다. 우리가 접하고 있는 수 많은 지식, 금언, 명언들, 특히 선각자들(석가모니, 하나님, 예수, 소태산, 성모 마리아, 노자, 공자, 맹자, 강증산 등등;이상 무순위)이 말한 걸 모아놨다고 일컬어지는 소위 '경전'에 등장하는 명문장들에 대해 많은 이들(나를 포함)은 오해를 하기 쉽상이다. 왜냐하면 말과 생각이라는 건 그 때 당시의 사회상황, 역사적 지점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걸 지금 현대생활에서 풀어내려고 하면 늘 앞뒤가 안맞고 아전인수격으로 곡해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가령 '거짓말을 하지 말아라'라고 하는 말이 있다고 하자. 그 말을 신봉하고 따르는 사람들은 절대로 거짓말을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이런저런 이유와 변명을 들어가며 거짓말을 한다. 그렇다면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따르는 게 옳은가? 문제는 '거짓말을 하지 말아라'라는 말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 한 말이었는지가 중요하다. 그런 상황적 사실이 실종된 상태에서는 단지 '말(혹은 글)'일 뿐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 많은 이들이 선지자들의 한(쓴) 말(글)에 '토'를 달 때는 꼭 개인의 실명을 밝히고 '주석'을 달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원래의 뜻과 자신의 뜻이 다를 수도 있기 때문이고 나중에 보는 이들이 원문을 읽고 난 후 자신의 글을 읽기 원했으며 이를 통한 자연스러운 토론, 토의 과정을 거쳐 보다 완성된 입체적인 '말과 글'의 함의가 드러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몇몇 경전을 제외하고는 당사자 본인이 직접 구술하고 적은 내용도 아니다. 제자들이나 직접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말과 글을 한데 모아 편집한 것일 뿐이다. (노자 도덕경이 대표적인 예다.) 그렇다면 이런 경전들은 의미가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어떤 식으로든 시대와 역사의 흐름 속에서 다듬어지고 걸러진 내용들이기 때문에 중요한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글을 글로만 믿고, 말을 말 자체로만 믿어버릴 때 문제가 생긴다. 그 글과 말 사이의 행간에 숨겨져있는 참 뜻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누리꾼들의 살벌한 답글들이나 '우르르' 몰려다니며 설전을 벌이는 모습들에서 이런 폐해들을 느끼곤 한다.)


세상도 변하고 사고도 변하더라도 성현들의 말과 글이 담긴 참 뜻은 변하지 않는다.


변명같지만 내가 한 말과 글은 변할 것이다. 아직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내 모습은 말과 글을 토해내는 당시의 참 뜻은 그 글과 말에 오롯이 담겨있을 테지만 그 이후에 반복되는, 번복되는 말과 글에는 내가 살아가는 삶의 (나름대로) 치열함과 열정이 담겨지길, 보다 더 완성된 형태로 존재하도록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합법적인 무료 음악 서비스

블로그아고라에서 '합법적인 무료 음악 서비스 Q~'라는 포스트를 봤다. 호기심에 들어가 읽어봤는데 방식이 꽤 신선하다. 따라서 이것저것 해보는데 툴바를 설치하라고 뜬다. sp2를 쓰기 때문에 바로 설치가 되지는 않았는데 '툴바'라는 얘기에 살짝 망설이긴 했다. 그러다가 한 번 해보고 맘에 들지 않으면 '강력한 삭제 툴'로 지워야겠다고 맘을 먹고 설치를 했다. 설치 후 검색해 보고 Q~사이트에도 가서 음악을 검색해보니 이거 참 괜찮은 '물건'같다.


물론 여전히 어둠의 경로를 통해 많은 MP3를 다운 받아 각종 프로그램으로 듣는 게 보편화 되어있긴 하지만 저작권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방법임엔 틀림없어 보인다. 음악 저작권 문제가 대두되면서 많은 포털 사이트에서 음악 링크 거는 것 조차 금지를 시키고 유료로 음원을 사서 한정된 기간 내에 사용하게 했는데 Q~에서 서비스하는 방식은 이를 역이용하는 셈이 되었다.


이는 블로그라는 매체가 붐을 일으키면서 새롭게 모색된 방법인 듯 싶다. 방금 Q~ 툴바를 설치해서 음악을 들으면서 작성하는 포스트라 더 많은 얘기를 할 수는 없겠지만 첫 느낌은 꽤 신선하고 재밌다. 음악이 재생되는 동안에는 음원을 확보하고 있는 블로그를 닫으면 안된다. 약간 불편(?)하다고 느껴질 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이는 음원을 가지고 있는 블로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툴바가 조금 더 진화하면 툴바 내로 블로그에 대한 정보가 기록이 되고 익스플로어는 띄워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


누군가 적당한(?) 사용료를 지불한 음원에 대해 '거시기'한 방법으로 듣는 셈이긴 하지만 블로그는 서로 공유할 때 그 가치가 살아나는 법이고 음원에 대해 사용료를 지불한 블로거도 자신의 블로그를 돋보이도록 하기 위한 행위였을테고 이를 통해 자신의 블로거로 다른 블로거들을 초대하게 되는 일이 되니 일석이조가 아닌 듯 싶다. 다만, 공개하고 싶지 않은 블로거, 많이 알려지는 게 싫은 블로거에게는 역시 좋지 않은 서비스 형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암튼, 음악을 통해 랜덤한 세상을 보게 되는 방식이라... "Life is Random"란 모 회사의 카피가 생각난다. 꽤 인기를 얻게 될 방식이란 생각.


Q~에 대한 기사


Q~ 서비스에 대한 또다른 생각


Q~ 블로그

2005년 11월 24일 목요일

가정식 백반을 먹으며 생각에 잠기다.

작업실 앞 가정식 백반을 하는 식당이 있다. 가격은 3,000원. 다른 식당들은 보통 3,500원에서 4,000원을 하는데 반해 500원이 싸다. 이 식당은 원래 오리고기를 파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가정식 백반이라니 처음에 생각할 때는 장사가 어지간히 되지 않아 백반을 주 메뉴로 바꿨나 보다 생각했다. 음식 맛은 평범하다. 평범하다는 말은 짜거나 맵거나 독특한 맛이 없다는 뜻이다. 가정식 백반에 나름대로 충실한 맛이랄까.


오늘 혼자 식사를 하러 갔는데 마침 주인 아주머니 혼자 계셨다. 손님도 나 혼자다 보니 아주머니께서 이런저런 말을 건넨다. ‘서울 수도 이전’에 대한 헌법 판결이 오늘 나오는데 알고 있는지, 본인은 ‘수도 이전’에 반대한다는 등의 얘기들. 마침 TV에서 부산 재래시장에 관한 내용이 방송되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부산 출신인지 만면에 환한 얼굴로 TV프로그램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거들기 시작했다.


나는 건성으로 대답을 하며 식사하는데 열중했다. 평소라면 아주머니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실까 궁금해 질문도 하고 맞장구도 칠 법 했을 텐데 오늘은 그런 마음이 생기질 않았다. 아주머니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얘기를 이어가셨다. 대략의 얘기는 이렇다.


- 주변 식당 아주머니들이 자신을 미워한다. 이유는 식대가 500원 싸기 때문이다.
- 자신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 포기당 5,000원(인터넷 검색으로 알아보니 너무 비싼데 맞나?)하는 배추를 구입해서 김장을 하고 있다. 그런데 식대는 3,000원이다.
- 고추 가루도 직접 고향 어머님께 부탁을 해서 빻아 사용하다.
- 음식 맛도 맛이지만 재료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산다.
- 다른 식당에서 나오는 반찬을 볼 때 자신이 그 식당 주인이라면 부끄러울 것 같다.
- 사람들이랑 함께 좋은 걸 나눠 먹고 살아야 한다.



그런데 이야기 말미에 문득 아주머니께서 한 초등학교 학생의 급식비를 매달 후원하고 있다는 얘기를 꺼내셨다. 남편 분이 ‘자신의 코도 석자’면서 무슨 남을 돕느냐고 구박을 하지만 자신이 생각할 때는 남과 나누는 기쁨, 주는 기쁨이 너무 크다고 한다. 그래서 한 초등학생을 위해 매일매일 시장을 보고 남은 잔돈을 모아 매달 5만원을 아이 통장에 입금을 시켜주면 아이 통장에서 학교 급식비 통장으로 자동이체가 된다고 한다. 급식비는 4만원 가량이지만 만원 정도는 학교 신문을 봐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5만원을 매달 입금하고 있다 하신다.


덧붙여 ‘아프리카 이런 곳’에서 굶어 죽는 아이들이 많은데 자신이 힘은 없지만 매달 만원씩을 후원하고 있다고 하신다. 남을 위해 본격적으로 돕는 건 식당을 그만 두게 되면 할 생각이라 하신다.


어쨌든 아주머니께서 남을 위해 후원한다는 얘기를 듣고 있던 나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도 나 자신하나 제대로 건사하며 살고 있다고 자신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남을 위한 생각은 지금보다 더 풍요롭지 않았었나. 세월이 흐르면서 내 자신의 고민에 천착하게 되고 크고 작은 고민들이 많아지긴 하지만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적어지지 않았나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밖에서 식사를 할 기회가 생기면 되도록 이 식당으로 오겠다고 생각했다. 내년 1월 1일부터 500원 인상 조치를 할 생각이지만 물가 인상에 따른 부득이한 일일 뿐 재료가 나빠지거나 할 이유는 없다고 하신다. 음식에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기 때문이라 하시니 더욱 그렇다.


식사를 마쳐갈 무렵 마음 한 구석에 부끄러운 마음이 생긴다. 누구에게 부끄러운 건가. 내 삶이 과연 누구에게 부끄러워야 하고 누구에게 당당해야 하는 건가.


예전에 스승님과 나눈 대화가 생각났다. 스승님도 당시 몇 학생에게 후원을 해주고 있었다.


나 : 그런데 선생님은 왜 후원금을 매달 직접 만나서 전해주세요? 아니면 꼭 은행에 가서 입금을 하시죠? 바쁘신데 번거롭지 않으세요? 한꺼번에 후원금을 전달할 수도 있고 매달 자동이체로 빠져나가게 해놔도 되지 않아요?


스승 : 자동이체로 하거나 한꺼번에 후원금을 전달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 않겠니? 물론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내가 이렇게 작은 수고(?)를 들이는 이유는 한 ‘사람’을 후원하는 일은 ‘자동이체’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스스로에게 일깨우기 위함이란다. ‘사람’을 위하는 일은 쉽게 잊는 마음을 챙기고자 하는 노력일 수도 있겠지.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후원하는 아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대화’를 하기 위해서야.



보이지 않게 후원을 하는 사람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고 스승님이 후원을 하는 방식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행동’이며 그 행동이 담고 있는 ‘사랑’이다.


덧 :: 한가지 생각난 게 있는데 아주머니의 말에 의하면 서초구청에 연락을 해서 소년소녀가장을 돕겠다고 했더니 서초구에는 딱 2명 밖에 없고 '도움의 손길'이 넘쳐나니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왜 서초구청에서는 그런 사람들의 '후원'을 모두 받아들여 소년소녀가장 뿐만이 아니라 독거노인이나 기타 이웃들에게 나눠줄 생각을 못하는 것일까. 그리고 서초구가 최고로 잘 사는 곳이라 하더라도 그 후원을 받아들여 다른 구와 함께 연대하여 어려운 이들과 나누는 일을 왜 하지 않는 것일까.

[mov] 스윙 걸즈 | Swing girls

스윙 걸즈 | Swing Girls


감독 | 야구치 시노부
출연 | 우에노 주리, 히라오카 유타, 칸지야 시호리, 모토카리야 유이카, 다케나카 나오토, 시라이시 미호


보고 나서 행복한 마음이 가득 생기는 영화. 트럼펫이나 색소폰, 드럼 정도의 악기를 꼭 다뤄보고 싶다는 열망이 생기는 영화. 문득 예전에 ‘Shall we dance’를 보고 나서 스텝을 밟으며 춤을 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때가 생각난다. ‘Swing girls’는 Jazz, 아니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아, 그러고 보니 ‘Shall we dance’에 나왔던 아저씨 다케나카 나오토도 ‘Swing girls’에 나온다.


그럼, 프리 스타일로 한 번 해볼까? -_-;;;



이 아저씨는 일본 영화의 감초 역할로 자주 등장하는데 지겹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심약한 소시민의 삶을 잘 표현하면서도 유머와 따뜻함을 놓치지 않는 배우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다케나카 나오토는 알고 보니 영화와 드라마에서 배우로 출연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감독으로 데뷔해 국제적인 상도 받았던 만능 탤런트라 한다. 그러고 보니 ‘도쿄 맑음’이란 영화가 이 사람 작품인 게 뒤늦게 생각난다.)


상황설정이 무척 황당한 부분이나 이야기의 아귀가 잘 맞지 않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그런 면들이 영화를 더 생기있게 만들어 주는 게 아닌가 싶다. 보면서 유쾌하게 웃을 수 있었고 보는 내내 즐겁고 행복한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고등학교 남자아이들의 수중 발레 이야기를 담은 ‘워터 보이즈’도 야구치 시노부 감독의 작품이라고 한다. 두 영화가 닮은 꼴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귀가 함께 즐거운 ‘Swing girls’에 더 점수를 주고 싶다. 또 이 감독은 ‘매트릭스’ 촬영기법을 모방하는데 진짜 멧돼지가 아닌 게 빤히 들여다 보이는 엉성한 설정이 더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이런 기법은 MBC 코미디에서 조혜련을 위시한 몇몇 코미디언들이 시도한 바가 있었다. 어떤 이들은 최근 화제작 ‘웰컴투 동막골’의 멧돼지 씬이 이 영화를 따라 한 것이라는 얘기도 있던데 영화를 보지 않았으니 패스.


What a woderful world with 멧돼지



낙제생들로만 이루어진 여름 보충수업 반 아이들이 어떻게 음악을 쉽게 배우고 악기를 최단시간에 다룰 수 있게 되는지 신기하지만 그런 논리적 추리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영화는 유쾌하게 흘러간다. 그래서 야구부 주장이 던지는 말 “세상엔 두 가지 부류의 인간이 존재한다”의 두 가지 대답 “끝까지 해내는 인간과 포기하는 인간”, 그리고 “신나게 즐기며 사는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은 이 영화의 성격과도 맞닿아있다. 명품을 걸치는 게 먼저인 날라리 여고생들, 컴퓨터를 갖다 놓고도 설명서가 어렵다는 핑계로 배우지 않는 낙제생, 다룰 줄 아는 악기는 고작 ‘피리’ 밖에 없었던 아이들이지만 정말 신나는 게 무엇인지, 기쁨이 무엇인지 알고 난 후엔 포기하지 않는 인간으로 내달려 결국 꽤 멋진 공연을 이뤄낸다.


중고라도 좋아. Jazz에 빠졌어


선생님이 오셨어!!!



Jazz의 음을 건널목 신호등 알람 소리에서 찾아내는 것도 재밌다. 어쩌면 음악은 인류가 시작하면서부터 가장 오랫동안 함께 해온 문화의 산물일 테고 현대 생활 속에서도 음악은 삶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음악의 홍수 속에 살지만 정작 들을만한 음악은 적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조차도 남들과 함께 소통하지 못하면 외면 받는 각박한 현실이지만 그렇게 정직하게 음악은 늘 우리 주변에 있고 그걸 오롯이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다시 즐거운, 행복한, 좋은 소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Jazz의 박자는 이렇게..이렇게..



많은 취미와 다양한 재주를 가진 것도 복이겠지만 할 줄 아는 게 단지 ‘이 것’뿐인 것도 행복이다. 못하는 걸 하고 싶어하는 미지에 대한 앎, 배움의 욕망도 중요하지만 단지 할 줄 아는 ‘이 것’을 즐길 줄 아는 삶의 자세야 말로 중요한 에너지이며 원동력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소중하다.


우린 '소리'만 낼 수 있으면 돼



영화를 보고 나서도 계속 몇 번을 보고 싶고 듣고 싶은 영화 ‘Swing girls’는 그래서 따뜻하고 유쾌하다. 영화에 나오는 연주곡들은 배우들이 긴 트레이닝을 거쳐 직접 연주를 했다고 하니 이 영화의 진실성이 느껴진다. 게다가 ‘Swing girls’라는 콘서트도 했다고 하니 배우들도 정말 즐거운 영화, 콘서트, 음악생활이 아니었겠나 미루어 짐작해본다.


어쩐지 악기 다룰 때 손가락 움직임과 입, 가슴의 호흡 등을 유심히 봤는데 ‘싱크율’이 좋더라.


[mov]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 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 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

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



감독 | 가스 제닝스
출연 | 마틴 프리만(아서 덴트), 모스 데프(포드 프리펙트), 샘 록웰(자포드 비블브락스), 주이 드샤넬(트리시아 맥밀란/트릴리언), 존 말코비치(허마 카불라)


상당히 웃기다고 했는데 내겐 웃기는 부분이 적었던 영화. 일단 책을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의 유머 코드를 알지 못했던 것도 있겠고 영화에 나오는 유머들이 그다지 익숙하지 않아서 일 수도 있겠고 아니면 내가 수준이 낮은 것일 수도 있다.-_-;;(수준이 높다고 해야 맞을까? :P) 그래도 영화는 즐겁게 봤고 생각할 것들이 많아서 좋았다.


지구가 멸망하기 전 Pub에서 아서와 포드가 맥주 한 잔씩 할 때 포드의 재치(?)있는 말과 행동은 지구 멸망이 왠지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질 정도로 유쾌했다. 게다가 꼭 수건을 가지고 가야 한다니. 무슨 중요한 쓰임새가 있을 줄 알았다. 쓰임새가 없진 않지만 그래도…-_-; 미국의 한 회사가 개발했다는 ‘Earth dog tag’도 어쩌면 유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착한 외계인’을 만나야 하지만.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지구를 backup 해뒀다가 다시 복구해준다는 설정이었다. 그리고 그 복구 작업을 일일이 사람들(아니 외계인?)이 수작업으로 진행한다는 것도 신선했다. 하나님 창조설이나 다윈의 진화론을 깔끔하게 무시해도 될 만큼 매력적인 설정이었다고나 할까?


바다를 만드는 작업.-0-



또 한가지는 중간중간 내용 설명을 위해 사용되었던 애니메이션이다. 샤이놀라의 애니메이션은 마치 ‘Catch me, if you can’이나 ‘Monster inc.’의 오프닝 애니메이션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데 아마 칼라나 움직임에서 받은 느낌일 것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난 후에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내용은 역시 톡톡 튀는 발상과 허무개그로 즐거움을 선사한다.


Guide Book



감독이 어쩌면 우주의 진리를 꿰차고 있는 사람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삼십 칠만 분의 일초간 번뜩이며 떠올랐다가 사실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이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면서 내 자신을 비롯해서 사람들의 뇌에 담긴, 마음 속 깊이 담긴 데이터와 이미지들을 분석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코비치씨



배우들 연기가 좋다 나쁘다를 떠나 이 영화는 상황 설정이 더 중요한 포인트가 아닌가 싶다. 사실 배우들의 연기는 수다스러웠다는 것 외엔 그다지 인상에 남지 않았다. 등장 인물 중 가장 흥미로웠던 캐릭터는 ‘Marvin’이었는데 조울증에 걸린 ‘로봇’인데다 사색하기 좋아하고 염세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다. 이 캐릭터가 좀 더 많은 ‘꺼리’와 역할 담당을 하지 않은 게 좀 아쉬웠다. 존 말코비치는 정말 생각지도 못하는 영화에서 생각지도 못한 배역으로 가끔 마주치는 듯 하다. ‘존 말코비치 되기’를 경험해 본 사람은 나처럼 예상치 못한 등장은 없었을까?


만사가 귀찮아 보이는 Marvin



확장된 사고 방식으로 무엇에도 걸림 없는 마음의 크기로 유쾌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게 어떨까. 은하수를 여행하기 위해 히치 하이커가 되어 보는 것도 좋겠다. 물론 ‘가이드’를 꼭 읽어야겠고(그럴 필요가 없을지도.-_-;) 수건도 챙겨야겠지.


은하수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구라도 다 돌아봤으면 하는 바램.

2005년 11월 21일 월요일

호칭의 문제

김규항씨 블로그에서 ‘선생님과 사장님’ 이란 포스트를 봤다.


호칭 문제는 나도 몇 년 간 지속적으로 고민을 하던 문제라 전적으로 공감을 표한다. 사실 호칭에 대해 별 다른 고민 없이 살아온 세월이 더 많았기에 여전히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면 호칭 때문에 난감할 때가 여러 번 있었다. 결국 내가 선택한 방법은 연배가 비슷하거나 아래일 경우엔 ‘~씨’라 하고 연배가 좀 많을 경우엔 ‘선생님’이라 칭한다. 여기서 연배의 비슷함이나 많을 경우의 경계선이 모호하긴 하지만 나름대로 상황파악을 해가며 쓰는 호칭이기에 큰 무리는 없다.


직책을 붙여 부르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예를 들자면 ‘교수’다. 그런데 ‘교수’의 직책에 오르려면 시간강사->겸임강사->전임강사->조교수->부교수->정교수의 수순을 밟아야 하기에 엄밀히 말하면 내가 접해있는 ‘판’에서는 ‘교수’라 부를 사람들이 별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다고 ‘강사’라는 호칭을 붙이기에는 냉랭한 분위기가 형성이 되기 때문에 ‘선생님’으로 부르고 있다. 시간강사를 해본 경험이 있는 나는 학생들이 내게 ‘교수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색하고 불편해서 몇 번을 ‘강사’나 ‘선생’으로 불러달라고 해도 학생들은 ‘교수’라 부른다. 또 ‘교수’라 부르지 않으면 불쾌해하는 ‘선생’들도 꽤 있나 보더라. ‘박사’의 경우는 단지 ‘학위’의 이름을 뿐인데도 최상의 계급을 나타내는 호칭으로 불려지곤 한다. ‘아무개 석사’라고 하는 호칭은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박사’라는 직책이 있긴 하지만 ‘박사 학위’를 가진 이들 역시 ‘박사’로 불려지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건 곧 신분의 상승을 의미한다.


일본에 정통하신 한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일본은 한국처럼 직책을 부르는 경우는 별로 없고 ‘~씨’와 같은 호칭으로 부른다고 한다. 중국에 정통하진 않지만 내가 알고 있는 바에 의하면 중국에서도 남자의 일반 호칭은 미혼, 기혼 모두 ‘선생’이다. 여자는 미혼일 경우에 ‘시아오지에(小姐)’, 기혼일 경우에 ‘뉘스(女士)’가 된다. 직책을 붙여 부르는 경우는 서로 잘 알고 난 후지만 잘 알고 난 후에는 공식적인 자리 외에는 보통 바로 이름을 부르곤 한다. 어르신일 경우엔 성(姓) 앞에 라오(老)를 붙이기도 한다. 나이가 어릴 경우엔 역시 성 앞에 시아오(小)를 붙인다.(사실 중국의 호칭에도 ‘계급’이 존재한다.) 영어권 나라의 경우엔 Mr. Miss. Mrs를 붙이겠지.


아무리 한국 사회에 인도의 카스트와 같은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호칭을 보면 계급이 존재함을 확연히 알 수 있다. 그 계급은 ‘자본주의’에서 발생한 계급을 우선으로 다방면에 걸쳐 계급을 형성하며 호칭을 부르도록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사장님’이란 얘기를 많이 하게 되는데 나처럼 약간 나이가 들어 보이는 젊은이가 어디를 가더라도 장사하는 사람들은 나를 ‘사장님’으로 불러 세우길 마다하지 않는다. 난 사장님이란 말을 들을 때 꽤 불쾌하고 언짢다. 내가 언어로 해를 입은 것까지는 아니지만 그저 나를 ‘돈지갑’ 정도로 보는 것으로 판단이 되기 때문이다.


호칭 문제에서 조금 옆길로 새긴 하지만 그와 관련된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바로 ‘나이’다. 예전엔 내 나름의 기준으로 호칭을 하겠노라고 마음을 먹고서도 나보다 어린 사람이 내게 ‘~씨’라고 하면 쉽게 넘겨지지 않았었다. 나 역시 ‘나이’라는 계급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고 ‘형’이나 ‘형님’ 대접을 받으려는 ‘조폭 사회’의 생리를 답습하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직책으로 부르게 되는 호칭도 문제겠지만 ‘나이’가 가지게 되는 호칭으로 인한 보이지 않는 알력 다툼도 꽤 큰 문제가 되는 것 같다. 인간들 서로가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겸양의 자세보다는 줄을 세우고 등급을 매겨서 자신이 속한 계급 속에서 누리고 묻어가려는 심리가 많지 않나 싶다. 아무리 옳은 얘기를 하고 정당한 요구를 해도 일단 나이가 어리면 끗발이 서지 않는 사회다. 서로 ‘나이’로 제압하고 ‘직책’으로 제압하는 사회에서 평등한 대화가 오고 가길 바라는 건 어려운 일이다. 호칭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의미도 있겠지만 ‘인간’끼리 소통을 하려는 기본 틀이기도 하다.


‘형식은 본질을 규제한다’는 말이 있다. 무심코 사용하는 단어에 내 삶이 구속되고 매여갈 수 있음을 느낀다. 호칭에서 계급이 사라지게 되는 때가 참으로 계급이 사라지게 되는 날이다.

[mov] 연애의 목적

연애의 목적



감독 | 한재림
출연 | 박해일(유림), 강혜정(홍), 이대연(조선생), 박그리나(희정), 박준명(연호)


첫 도입부분부터 약 20여분 간은 불쾌한 느낌이 먼저였다. 유림은 왜 이렇게 도발을 하는 것일까. 홍은 왜 딱 부러지게 거절을 못하는 것일까. 20여분이 흐르고서야 둘이 서로 관심이 있었다는 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 이후로는 처음보다 불쾌한 마음이 조금씩 걷힌다.


왜 이렇게 불쾌한 느낌이 가득했을까. 무모하게 들이대는 남자의 용기가 부러워 질투가 났던 것일까? 그렇게 무모한 남자에게 은근슬쩍 밀고 당기며 받아주는 홍이 예뻐서 질투가 났던 것일까? 아니다. 어쩌면 내 과거 어떤 모습(들)이 떠올라 부끄러워 그랬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하지만 불쾌한 느낌은 여전히 무모한 저 남자가 한국 사회에서 통할 수 있다는 것에서, 그리고 영화처럼 괜찮은 사랑으로 관계로 발전하는 경우는 희박한데도 남성과 여성의 편가르기가 명확해 보인다는 데서 기인하는 것 같다. 만약 박해일이 아닌 비호감 남성이 그 따위 짓(?)을 했다면 엄청난 비난과 욕설에 시달렸을 텐데 유림이 아닌 박해일기에 그 아슬아슬한 경계를 잘 넘어선다. 물론 유림과 같은 남자는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남자가 ‘성’에 대해 가질 수 있는 판타지를 최대한 몰아가고 있고 실제 경험담이던 구전으로 떠도는 무용담이든 가리지 않고 성적 판타지, 남성 판타지를 여자라는 대상 위에 배설해낸다.


기습뽀뽀를 하고 택시를 잡지 못해 아주 난처한 상황-_-;;;



홍에게 유림이 초면에 반말을 하는 장면을 보면서 잠깐 다른 상상을 해봤다. 만약 홍이 남자였다면… 그랬다면? 유림은 반말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반말을 했다면 두 가지 상황을 생각할 수 있다. 유림이 ‘어깨’ 출신 정도 되는 캐릭터여서 아무도 유림에게 시비를 걸지 못하는 경우이거나 유림이 상대에게 두들겨 맞는 경우다. 한국에서 남자끼리 반말을 하는 경우는 자신보다 어리거나 동갑일 경우일 뿐이다. 그 외에는 특별한 상황이 된다. 하지만 여자에게는? 연상의 여인과 결혼을 해도 남자는 반말을 하고 여자는 존칭을 쓰기 일쑤다. 물론 사회가 많이 달라져서 그렇지 않은 부분이 점점 많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그렇다. 성적 계급이 존재한다는 얘기다.


만약 역할을 바꿔 홍이 먼저 유림에게 그런 성적 농담을 건네고 섹스를 탐하는 캐릭터로 시작되었다면? 영화는 남자, 여자 모두에게 외면을 받았을 것이다. 한국에서 그런 여자는 여전히 ‘천한’ 여자이기 때문에 양쪽 모두에게서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여자도 남자의 선제 공격에 의해 점점 문을 열고 ‘원래 섹스를 좋아한다’고 고백을 할 경우에는 달라진다. 이 역시 남자의 리드 없이는 여자의 성적 선제 공격은 어렵다는 뜻이다. 남자는 굴러먹으면 ‘영웅본색’이 되지만 여자는 굴러먹으면 ‘굴러먹는 여자’가 될 뿐이다. 나중에 홍이 유림을 성희롱, 강간범으로 몰아세우고 불면증을 해소했다는 건 어이없긴 하지만 유림이 대한민국 남성을 대표하는 것이었다면 그리고 홍이 대한민국 여성을 대표하는 것이었다면 어느 정도(아주 일부분)는 이해를 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대한민국 대표 남녀에 관한 사랑 얘기가 아니다. 사회 시스템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할 지 몰라도 영화니까 다시 만나 진짜 사랑을 하는 것으로 결말을 낼 수 있지 현실이었다면 장담할 수 없다.


저런 표정으로 바라보면 거절 못할...-_-;;;



유림이 홍의 녹음 테잎을 듣고 몰아세우는 장면에서는 화가 났다. 그렇게 하면 마음이 풀어질 여자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맥주 캔을 던지며 폭력을 행사할 듯 하며 위협을 한다거나(이미 집에 강제로 쳐들어온 불한당이다.) 자신의 주장만을 우겨대며 상대를 상처 주는 유림은 나쁜 놈이다. 그런데 홍은 오히려 그런 상황으로 인해 마음이 풀리고 유림을 받아들인다. 거…참.


유림이 무척 나쁘게 느껴졌던 scene



영화 중반 이후로는 둘의 사랑 이야기고 서로 밀고 당기는 애정관계가 형성이 되어 그다지 큰 불쾌함 없이 보긴 했지만 문득문득 튀어나오는 도발에 기분이 나빠질 듯 말 듯 보는 내내 내 자신이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둘의 사랑에 의해 6년간의 희정, 3년간의 연호가 이별을 선고 받은 것은 불쌍하긴 하지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반려자를 아웃시키는 건 아직까지 이 땅에서 용서가 되는 일이다. 하지만 여파가 영화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만약 나타났다면 영화는 심각한 영화가 되고 말았을 테니까. 결혼을 한 상태였다면 더욱 심각해지겠지.


하지만 난 이 영화에서 묘사되는 모든 것들에 반감을 느끼지 않는다. 불쾌했던 건 유림의 태도였고 도발이었을 뿐이다. 남녀가 자유롭게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는 것이 인생을 결정지을 만한 큰 일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결혼을 했더라도 이혼 역시 ‘쿨’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이 땅에서 태어나 교육받고 살아온 이로서 그게 쉽지 않다는 것 역시 인정한다. 이성은 움직여도 감성은 여전히 ‘쿨’하지 않은 것에 묶여 있는 경우를 종종 발견한다. 하지만 몇 년 전과 비교해보면 엄청나게 달라지긴 했다.


영화를 재미있게 보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마음은 그다지 즐겁지 못하다. 재미있는 요소 못지 않게 영화를 즐기지 못하게 하는 요소가 많았다. 생각이 많아졌다. 그래봤자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크게 달라지거나 변하진 않겠지. 영화에 내 모습이 보이는 부분도 있었고 내 모습과 완전 반대인 부분도 있다. 보기 나름이고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영화가 즐겁지 않은 이유는 많다. 내 경험이든 내가 들었던 남의 경험이든 들추어 보면 여전히 아픈 사람들이 존재하고 힘겨운 사람들이 존재한다. 영화를 영화로만 보지 못했던 건 영화의 내용이 현실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많은 일과 닮아있기 때문이고 현실은 영화와는 닮았지만 꽤 많이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이기적 ‘옳음’으로 ‘그릇됨’을 포장해 상대의 ‘옳음’을 무시하지 않았나 되돌아 본다.


문득, 얼마 전 웹상에서 ‘미니스커트’ 논란이 일었던 게 생각난다.


‘쿨’함과 ‘자유’로움이 나와 상대를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게 있을까.


그런데 도대체 연애의 목적은 뭘까?-_-a

[mov] 알츠하이머 케이스 | The Alzheimer Case

The Alzheimer Case



감독 | 에릭 반 루이
출연 | 얀 디클레어(안젤로 레다), 코엔 드 보브(에릭 빙케), 베르너 디 스매트(프레디), 조 드 메이어리(바론), 기어트 반 람펠베르그(톰)


네덜란드 영화는 처음 본 게 아닌가 싶다. 첫 인상은 꽤 깔끔했다. 이 영화는 알츠하이머 병에 시달리고 있는 은퇴를 앞둔 직업킬러에 대한 이야기. 노인이 주인공이다. 물론 젊은 형사가 나오긴 한다. 하지만 전체 이야기를 장악하고 있는 건 역시 안젤로 레다 역을 맡은 얀 디클레어. 액션을 할 수 있을까 싶을 때 액션을 보여주고 이야기를 어떻게 끌어갈까 싶을 때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끌어간다. 아마도 네덜란드에서 유명한 배우겠지.


킬러 할아버지



어릴 적 아버지에게 성 학대를 받은 주인공은 그 기억,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마침 살인 청부가 들어왔는데 대상은 열 몇 살 정도의 여자 아이. 청탁을 거절한 후 알게 된 내막은 자신의 어릴 적 상처와도 같은 아동 성 매매, 학대였다. 그래서 자신에게 청부살인을 부탁했던 자들을 경찰을 대신해 응징을 한다는 내용이다. 주인공이 알츠하이머 병에 시달려 기억력이 감퇴하자 자신의 팔에 해야 할 일들을 기록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메멘토와 닮았다. 다만, 이 영화에서 그 기록은 특별히 중요한 것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저 주인공이 어떤 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보조 설명 정도로만 그친다. 이러한 부분은 영화의 득이 될 수도 있고 실이 될 수도 있겠다. 알츠하이머라는 병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라면 기억력이 희미해지며 생기는 수 많은 복선과 갈등 구조가 나올 법 한데 이 영화의 주인공은 기억력이 감퇴되긴 하지만 심각한 정도까지 이르진 않는다. 그러니 모든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고 마무리까지 지어버리는 능력을 보여주게 된다. 물론 기억력 때문에 고생하는 장면(화면 편집 처리)들이 나오긴 하지만 개인적인 고뇌일 뿐 영화의 흐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딱 한 번. 부패한 남작(의원)을 죽이려 할 때 자신의 총 격발쇠(공이)를 빼놓고 조립을 해간 덕에 암살에 실패하는 설정 정도.


역시 이 영화 속에서도 정치인들은 부패의 상징이고 검찰관이나 경찰 상급자들은 이기적이며 이들 집단은 서로 닿아있다. 전 세계의 전반적인 상황이 그런 것일까. 왜 정치인들은 부패해야 하고 계급이나 신분이 상승될수록 일반 서민들과의 틈은 벌어지는 것일까. 제대로 된 정치인, 계급, 신분은 없는 것일까. 영화를 만들기 위한 설정일 뿐일까? 하긴 인간 자체가 이중성, 다중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니 그런 사람들이 끊임없이 양산되는 건 어쩔 도리가 없는 듯 하다.


영화 곳곳에 다른 영화와 닮아있는 점들이 보이긴 했지만 그 부분들이 영화의 전체 틀을 형성한다기 보다는 흐름상 양념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건 오히려 다행이다. 약간 프랑스 영화 같다는 느낌. 아마 프랑스와 네덜란드가 인접국가여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정갈한 느낌의 화면 분위기. 기복이 그리 크지 않는 영화의 흐름. 등장 인물들에 대한 나름의 설정. 딱 중간 정도의 영화랄까. 기대를 하며 보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하지만 완전한 실망을 주지도 않는.


치매 노인이 악을 응징하기 위해 불철주야 뛰어다니는 액션 드라마.


영화에서 비중이 크지 않은 한 여자 배우에게 시선을 뺏겼다. 내 과거 기억과 경험 속에서 아무런 연결 고리를 발견하지 못했는데 이 배우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뛴다(?)-_-; 거 참 이상하네.


바로 이 배우다 -

[mov] 강력3반 | Never To Lose

강력3반과 뺑소니 전담반



감독 | 손희창
출연 | 김민준(김홍주), 허준호(문봉수), 장항선(육철구), 남상미(이해령), 남문철(고형사)


허준호와 장항선의 캐릭터는 나름대로 괜찮았는데 김민준 캐릭터가 모든 걸 망쳐놨다. 영화를 보며 가장 불편했던 건 김민준이 대사를 치는 발음이다. 발음이 문제가 되다니, 게다가 발음이 불편하게 들리는 이가 주인공이라니. 최악이다. 비음 가득한 소리, 반 박자 늦게 따라가는 듯한 대사의 처리. 어눌하게 말하는 구리구리 양동근도 ‘와일드 카드’에서는 김민준처럼 대사를 하진 않았다. 남상미 캐릭터는 오버를 하긴 했지만 그냥 넘어갈 정도는 된다. 다만 남상미 캐릭터가 영화 어느 곳하고도 매끄럽게 붙어 움직이지 않아 보였다. 뺑소니 전담반 반장이 남상미에게 자동차 대조를 해보자며 수첩을 펼치게 하는 장면에서 반장과 남상미의 표정과 대사는 재밌었다. 보다가 ‘큭!’하고 웃어버렸으니까.




윤태영은 몸 자랑 종종 하려고 애를 쓰는 것 같아 보이고 악독하게 보이지 않았다. 범죄집단의 악독한 우두머리라기 보다 약간 변태스러운 농촌 총각 같은 느낌이 더 강했다. 악당이 이럴진대 대립구도가 나올 수 있었을까. 유해진 캐릭터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공공의 적’에서 칼에 대해 강의를 하던 모습 그대로다. 갑자기 예전 마누라와 자식 얘기를 듣고 감성적이 되어 180도 개과천선을 하는 게 어색한 모습은 조금 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지.


암튼 강력3반이 좌충우돌하며 범인을 잡아들이지 못해서 상급기관으로 수사권이 넘어갈 뻔 한다거나 하는 전형적인 포맷이 없는 게 오히려 아쉬웠다. 강력3반의 모든 형사들은 김민준을 위한 들러리로 묘사되어서 어리광 피우는 막내 때문에 고생 꽤나 하더라. 많은 장면들이 황당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황당한 씬은 극장에서 여자친구 때문에 잠복근무하는 대열을 이탈해 범인을 놓치는 씬. 여자친구 그렇게 사랑하는 것 같지도 않아 보이던데 꼭 그럴 때 오버를 하다니. (유해진이 너무 쉽게 범인을 넘겨주긴 하지만서도)




개인적으로는 허준호가 어깨에 힘 많이 빼고 캐릭터를 잡아갔다고 느껴져 좋았다. 강한 듯 나약한 이미지가 잘 어울렸다. 특히 집에서 자신이 잡아넣은 범인들이 무섭다고 말하는 장면은 꽤 좋았다고 생각한다. 건망증 때문에 죽게 되는 설정도 좋았는데 시간의 간격을 두고 본 ‘알츠하이머 케이스’라는 영화와 약간 비슷한 설정이기도 하다. 보통 그 정도 심각한 건망증이면 범인 잡겠다고 설쳐도 일단 치료부터 받게 하면서 재활시키기 않나? 억지로 사지로 몰아넣기 위한 감독의 무리수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총을 잃어버려 용의자가 권총 자살할 뻔한 일로 문책을 당할 때도 주인공은 얼씨구나 그 기회를 틈타 형사의 애환을 얘기하고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고 상관에게 협박 아닌 협박, 옹아리를 부리다니. 설마 대한민국 형사의 실재하는 모습을 묘사한 건 아니겠지(?).


형사들의 힘겨움도 느껴지지 않고 그저 형사라는 직업이 유희처럼 느껴지는 영화. 범인을 알아채는 초능력을 발휘하는 주인공이 있어서 SF같은 느낌마저 들더라. 그건 직감이 고도로 발달한 게 아니고, 형사의 감각이 무섭게 꿈틀대는 게 아니고 초능력이다. 초.능.력. ‘언브레이커블’의 브루스 윌리스도 아니고 말야.


아! 마지막 ‘화상고’와 ‘됐거든~’의 개그맨 깜짝 출연. 잠시 즐거웠다.


‘초능력을 가진 어리광 피우는 형사 공무원과 도자기 마약 밀매하는 변태 총각과의 대결’이라고 할 수 있을 듯.


...악평만 써놓긴 했지만 중간중간 재밌는 부분들도 있었다. 전체 맥락으로서가 아니라 가끔씩 튀어나오는 대사와 설정 때문에 살짝 울컥한 부분도 있었고...

2005년 11월 15일 화요일

중국학회 VS PISAF조직위

PISAF때 중국학회와 PISAF조직위와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는데 중국의 한 대학의 영화제 엔트리폼 접수 여부가 쟁점이었다. 중국쪽 엔트리폼은 나를 통해 조직위로 갔기 때문에 당연히 내가 그 쟁점의 한 가운데 있었다. 물론 난 정식 스탭이 아니었으므로 책임은 약할 수 밖에 없었지만... 엊그제 중국이란 교신했던 모든 메일함을 다 뒤져본 결과 그쪽에서 길길이 뛰던 한 대학의 엔트리폼은 내게 전달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사실 이 문제로 '손해배상' 청구 얘기까지 오갔다고 하는데 이유를 들어보면 황당하기만 하다. 조직위 영화제 팀장에게 메일을 보냈더니 반가워한다. 한 이틀 내로 메일함 캡춰하고 영화제 팀장 명예회복을 위한 내용(부탁받은...)으로 메일을 작성해서 중국쪽에 전달해야겠다. 메신저로 중국annie와 얘기를 했는데 괜찮다고 한다. 그래도 보내줘서 서로 확실한 일 마무리는 해야겠지.


그러니까 문제는 이랬다. 보낸 사람은 있는데 받은 사람이 없는... 그러면 그 엔트리폼은 어디로 갔을까.

메인보드, 또 말썽.

컴퓨터를 사용해 온 지 십 몇 년여 동안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단언한다. 메인보드가 문제가 되어 대여섯 번을 용산 A/S센터에 들락거리다니... 오늘은 짜증이 아니라 화가 났다. 가서 뭐라고 해 줄 심산으로 가는 중에 속으로 열심히 "대사"를 연습했다.


막상 가서는 얼굴 표정만 화가 난 표정(그것도 생각해보니 약했다.)이지 말은 뭐라고 못하겠더라. 정말 고객센터인지 .개.센터인지 다 뒤집어 놓고 수리 담당한 기사 혼쭐을 내줄 생각이었는데... 쩝~


앗. 보드에 있는 수은전지 3,000원 주고 새걸로 넣어뒀는데 깜박하고 다른 보드로 교환해 왔다.-_-;


지금은 특별한 문제는 없지만 문제를 품어안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언제 터질 지 모르는 시한 폭탄이랄까.=_=;


작업실에서 사람들이 오가며 계속 묻는다.
"아직도 문제가 있는거야?"


하긴 본체 열어두고 있었던 시간은 얼마 안 되었어도 계속 문제가 발생했었으니 그렇게 보일 밖에. 이젠 차분한 컴퓨터, 안정적인 컴퓨터를 쓰고 싶다아아아~~!


메인보드 이름은 GA-8IPE 1000 Pro2
제이씨현의 기가바이트 제품이다. 으~~~~~.....

2005년 11월 13일 일요일

1차 월동 준비

L모 마트에 가서 초겨울을 보낼 옷 몇 벌을 샀다.
옷을 구입하는 기준은 싸고 좋은 것. :-)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도 귀찮고(싫은 건가?)
마침 들른 매장에 무난한 게 몇 개 눈에 밟혀 샀다.


상품권이 하나 있었으니 효과적 쇼핑을 한 셈이 되었다.
옛 말에 "싼 게 비지떡"이라 하고
중국 말에도 "일 원 짜리로는 일 원 짜리 물건 밖에 못 산다"라는 말이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게 비싼 옷들은 부담스럽기만 하다.
몸에 걸치는 걸 함부로 입고 신고 그래서 그럴까. 암튼. :-|


몸에 걸치는 건 값이 싸더라도
마음과 영혼만큼은 값이 싸지지 않겠노라고... 생각. :)

2005년 11월 12일 토요일

중국 교수님들과 함께 한 며칠.

애초에 계획하지 않았던 일이었지만 무사히 그리고 나름대로 보람있게 일을 마쳤다. 중국에서 오신 창광시 감독님을 위시한 5명의 교수님들을 모시고 대학과 회사를 방문했던 일은 그 분들과 무척 친해지게 된 계기가 되었고 나도 나름대로 소득이 있었던 과정이었다.


원래 창광시 감독님이 오신다는 얘기를 PISAF 개막 며칠 전에 듣고 꼭 가서 뵙고 도와드릴 일이 있으면 도와야겠다 생각하긴 했지만 일이 이렇게 많아질 줄은 생각하지 못했었다. 길림예술대학 애니메이션과에서 한국에 올 때 만화애니메이션 관련 대학을 방문하고 게임관련 대학도 방문할 생각이었으나 여권발급 및 비자 문제가 복잡하게 꼬이면서 한국 측과 연락이 수월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창광시 감독님은 내 연락처를 겨우겨우 찾아내 연락을 취했지만 답신이 없었다고 한다. 그럴 수 밖에 명함에 있었던 사무실 번호야 이제 그만 둔 사무실 번호였고 이메일 주소는 한국에서는 접속이 힘들게 된 중국 이메일이었으니... 그런데 우연이던 필연이던 만나게 되니 얼마나 반가웠을까.


결국 내가 이리저리 수소문하고 매형 도움도 살짝 받아서 매일매일 대학, 회사 방문 일정을 잡아낼 수 있었다. 계원에 갔을 때는 용배샘에게 차를 빌려 다른 곳에 편하게 갈 수 있었고(샘~ 감사합니다.) 마지막 날엔 9인승 차를 렌트해서 북청주에 있는 주성대학도 다녀오고 늦은 밤 동대문 시장도 편하게 다녀올 수 있었다. 물론 다음 날 귀국하실 때 인천공항도 렌트카로... 아주 효율적인 사용~^^ (다녀온 곳들, (재)경기디지털콘텐츠진흥원, 레인버스, 세모로직, RG스튜디오, 계원조형예술대학, 건국대학, 세종대학, 한국예술종합학교, 주성대학)


내 중국어가 유창하지 않고 성조가 종종 틀려서 통역을 할 때 그 분들 귀가 쫑긋거리게 한 불편함은 있었지만 그래도 큰 무리없이 설명 다 해드리고 즐겁게 농담하고 웃고 즐기며 며칠을 보냈다. 간혹 내가 피곤한 기색이 보이면 창광시 감독님은 내게 두고두고 미안해했다. 그리고는 다른 교수님들을 채근해서 일정에 무리가 없도록 서두르시곤 했다.


열심히 도와드려서일까. 모두들 흡족한 결과를 얻어서 가게 된 듯 하다. 나중에 장춘에서 만날 기회를 보자 했다.


常光希,张憬源,锺泉,罗江林,栾林,矫强!
老师们!一路顺风!期待下次再聚一聚。

2005년 11월 7일 월요일

PISAF

PISAF란,
'Puchon International Student Animation Festival'
즉 '부천 국제 학생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이라는 뜻.


전국에 있은 애니메이션 관련 대학(원) 뿐만이 아니라 고등학교, 그리고 해외에 있는 학생들까지 참여할 수 있는 순수 아마추어 애니메이션 영화제. 그렇기 때문에 행사를 주관하고 진행하는 분들 중 대다수가 학교 교수님, 선생님들. 한국에서 순수 학생들만의 작품을 가지고 페스티벌을 하는 유일한 행사.


'사단법인 부천국제학생애니메이션페스티벌 조직위원회'에서 주최하고 '사단법인 한국만화애니메이션 학회'에서 주관하는 행사.


보통 부천시 복사골 문화센터 1층, 2층, 3층, 대강당에서 모든 행사들이 이루어진다.


|연혁
'05. 01. 13 PISAF2005 제1차 총회 개최
4대 조직위원장 선출(최돈일 경기대학교 교수)
4대 집행위원장 위촉(김일태 조선대학교 교수)
'05. 04. 05 PISAF2005 임시총회 개최
'05. 06. 04 PISAF2005 제5회 전국고교만화애니메이션대전 개최
'05. 06. 06 ~ 11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참관 및 페스티벌 교류 추진
'05. 07. 07 PISAF2005 1차 이사회 개최


'04. 01. 19 PISAF2004 제1차 이사회 (복사골문화센터)
'04. 02. 18 PISAF2004 제2차 이사회 (복사골문화센터)
'04. 04. 30 PISAF2004 제1차 대학자문위원회의 (복사골문화센터)
'04. 06. 04 PISAF2004 제1차 고교자문위원회의 (복사골문화센터)
'04. 06. 08 ~ 13 프랑스 안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참관 및 PISAF2004 홍보
'04. 07. 28 PISAF2004 3차 이사회 개최
'04' 09' 04 PISAF 총회 - 행사명 변경 - (사)부천국제학생애니메이션페스티벌
'04. 09. 04 제4회 전국고교애니메이션대전 개최
'04. 11. 05 ~ 9 PISAF2004 개최(제6회)


'03. 03. 27 PISAF2003 정기총회 및 이사회 (한국언론재단 무궁화실)
'03. 04. 06 PISAF2003 임시 이사회 (서울애니메이션센터)
'03. 05. 02 제1차 운영위원회의 (복사골문화센터)
'03. 05. 31 제2차 운영위원회의 (복사골문화센터)
'03. 06. 28 제3차 운영위원회의 (복사골문화센터)
'03. 07. 08 PISAF2003 이사회 (복사골문화센터)
'03. 08. 20 PISAF2003 고교분과위원회의 (복사골문화센터)
'03. 09. 06 PISAF2003 제3회 전국고교만화애니메이션대전 (부천대학)
'03. 09. 20 ~ 22 PISAF2003 영화제 경쟁부문 예심 (세종대학교)
'03. 10. 02 제4차 운영위원회 (복사골문화센터)
'03. 10. 28 PISAF2003 자원봉사단 발대식 (복사골문화센터)
'03. 11. 08 ~ 12 PISAF2003 행사 (제5회)


'02. 06. 03 ~ 08 프랑스 안시 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참관 및 PISAF2002 홍보
'02. 09. 28 PISAF2002 제2회 전국고교만화애니메이션대전 개최
'02. 10. 26 제2회 한솔교육캐릭터개발워크샵 개최
'02. 10. 29 공식 기자간담회
'02. 11. 04 부천주재 기자 간담회
'02. 11. 09~13 PISAF 2002 행사 (제4회)


'01. 02. 05 사단법인 PISAF조직위원회 사무국 상근체제 개시
'01. 06. 05 ~ 11 프랑스 안시 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참관 및 PISAF2001홍보
'01. 09. 08 PISAF 2001 제1회 전국고교만화애니메이션대전 창설
'01. 09. 22 PISAF 2001 운영위원회 설립
'01. 10. 26 PISAF 2001행사 기자회견
'01. 10. 27 PISAF 2001 고교분과위원회 설립
'01. 11. 10 ~ 14 PISAF 2001 행사 (제3회)


'00. 04. 08 사단법인 발기인대회 및 창립총회
(발기인 및 관계공무원 / 20명 참석 - 시청 제1상황실)
'00. 06. 01 문광부 법인 설립허가
'00. 06. 06 ~ 14 프랑스 안시 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행사 참관
'00. 07. 18 사단법인 부천국제대학애니메이션페스티벌조직위원회 법인등기 완료
'00. 09. 01 (사) PISAF 조직위 사무국 개소
'00. 09. 23 PISAF 홈페이지 개통
'00. 10. 07 전국 만화애니메이션관련 학과 학과장회의 소집
'00. 11. 28 사단법인 PISAF 2000 이사회
'00. 11. 22 ~ 24 애니메이션 영화제 공모마감
'00. 11. 25 애니메이션 영화제 공모전 예심
'00. 12. 01 전시대학선정 및 자원봉사요원 확정
'00. 12. 16 ~ 14 PISAF 2000행사 (제2회 )


'99. 01. 23 '99부천 국제대학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조직위원회 창립총회
(부천시청 제1상황실 - 기획안 검토)
'99. 03. 04 만화 산업육성 계획과 발전방안 공청회 개최
'99. 04. 10 ~ 15 PISAF '99 행사 (1회 행사 개최)
'99. 04. 24 PISAF 99 개최 결과 보고회


'98. 09. 28 「만화문화도시 부천」기획안 작성
'98. 10. 23 (사)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 및 교수협의회 제안서 제출
'98. 10. 31 PISAF 2001 제1회 전국고교만화애니메이션대전 창설
한국 대학애니메이션영화제 관계자 회의(개최합의)
'98. 11. 16 (사)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에서 「PAFFY조직위회(가칭)구성」,
영화제개최 후원건 접수


출처 | http://www.pisaf.or.kr

CAF

Chuncheon Anitown Festival
(춘천 애니타운 페스티벌)


춘천애니타운페스티벌은 어린이들에게 꿈을 주고, 애니메이션애호가들에게는 자리를 함께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며, 나아가서는 춘천시와 대한민국의 애니메이션 산업 발전을 위하여 1997년에 시작되어 매년 개최되고 있다. 그동안 춘천애니타운페스티벌은 성장을 거듭하여, 지난해에는 많은 외국인사들을 초청하였고, 이들 인사들의 참여로 춘천의 애니메이션산업에 직접적인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춘천애니타운페스티벌은 춘천의 애니메이션산업이 그동안의 하청구조에서 벗어나 창작기반을 완성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기획되었다. 사실 외국작품의 하청제작만으로는 한국의 애니메이션 산업이 발전할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창작에로의 몸짓을 시작하는 것이다.


국내외의 많은 애니메이션전문가를 초청하여 개최할 각종의 컨퍼런스에서는 애니메이션 전반에 대한 이해는 물론, 활발한 네트워킹을 통하여 우리나라가 애니메이션 산업에 있어서 진일보하여 세계시장의 중요한 핵심국가가 될 수 있도록 기반을 다지는데 최선을 다 할 것이다.


산업발전에 목적을 두는 이러한 행사들 외에도 춘천애니타운페스티벌은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각종의 부대행사와 영화제 등 다양한 볼거리 또한 제공한다.


출처 | http://www.caf21.org

SICAF

Seoul International Cartoon & Animation Festival
(서울 국제 만화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국내 만화, 애니메이션 산업의 발전을 돕는 목적으로 1995년 시작된 SICAF는 해를 더해가면서 국내는 물론 세계 각국 관계자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고속 성장을 계속해왔으며 해마다 50만 명을 넘는 관람객이 전시장을 찾는 등 모든 객관적 기준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아시아 최대의 만화 애니메이션 잔치로 그 위치를 굳혔다. 특히 서울시가 전폭적으로 지원을 하기 시작한 2003년 이후로는 산업의 발전이라는 특성화된 목적 이외에 한여름에 펼쳐지는 풍성한 볼거리의 시민축제로도 함께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 2006년 10주년이 되는 해.


'SICAF' 행사는 전시컨벤션, 애니메이션 영화제, SPP (SICAF Promotion Plan)의 세 가지 주요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새로운 볼거리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각국의 전문가들과 마케팅 관계자, 그리고 일반 관객을 맞이한다.


출처 | http://www.sicaf.or.kr

PISAF 참관기 - 개인적인 상념

사실,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을 하면서 먹고 산다는 건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꾸준히 애니메이션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보여주려는 노력은 페스티벌이나 전시회 등을 통해서 나타난다. SICAF나 PISAF, 그리고 CAF 등은 코 앞에 10주년을 두고 있는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이다. 각각 서울시, 부천시, 춘천시에서 돈을 받아 행사를 꾸려나가는데 이익을 창출하는 게 목적이라기 보다는 가진 예산으로 최대한 멋지고 잘 행사를 운영해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애니메이션을 알리는 창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각 시정부의 돈을 받아서 하는 것이니 그쪽 사람들 체면차리게 해주기도 하고 대접도 해주고 그러겠지.


가면 갈수록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은 그 빛을 바래가고 있는 것 같다. 여기저기 들리는 소문들, 내막들을 종합해봐도 예전만 같지 못하고 모두 침체기에 접어든 듯 보인다. SICAF는 올해 거의 실패라는 평가가 지배적이고 CAF의 경우는 행사를 하는지 하지 않는지 지역민이 아니라면 잘 모를 정도가 되었고 PISAF는 올해 직접 가서 보니 몇 년 전(내가 참여해봤던)과 비교해 너무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페스티벌인지 동네 전시회인지 모를 정도로 사람들 수도 적고 부스를 배치한 것도 그렇다.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다. 고생하는 스탭들이야 몇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학교 교수들이니 없는 시간 쪼개어 가며 행사를 준비했을테고 그 노력과 정성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국제 학생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이라는 명칭이 무색할 정도다.


PISAF 개막식 때 개막작 상영 전 꽤 많은 인사(?)들이 축사를 해줬는데 어찌나 많은 사람들이 축사를 하려고 안달을 했던지 난 졸려서 자버렸고 많은 사람들이 야유를 보낼 정도였다. 물론 다들 한 자리(?)씩 하고 있는 사람들이고 나름대로 애니메이션 판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기에 그럴 수 있겠다 싶다. 당연히 부천시장이나 정책 담당 국회의원이 없으면 애니메이션 판이나 PISAF정도는 문 닫을 처지 아니겠나.-_-; 아닌가? 암튼, 그렇게 개막식 때에도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꼈는데 행사는 완전히 뒷전인 것처럼 보였다.


계속 의문이 들면서 보기에 답답했던 것 한가지는 애니메이션 상영 전에 트레일러가 나오는데 보통 영화제에서 트레일러가 나오는 것과는 달리 세 편의 광고가 나오더라. 첫 번째는 경기도 홍보영상, 두 번째는 엠파스 광고, 세 번째는 농협 광고. 사실 이 광고들을 접하면서 난 당혹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게 왠 지랄인가 싶었다. 경기도에서 PISAF를 후원하니 광고 넣어줘야 한다고? 엠파스도 지원 좀 해줬나 보지? 농협도? 아무리 그래도 애니메이션 영화제에 TV나 케이블 방송에나 나올 광고들이 버젓이 상영이 되고 있고 그 광고를 봄으로 인해 난 본편을 보고 싶은 마음이 절반 이상씩이나 깍이고 말았다. 트레일러는 왜 있는 것인지 모르는 것일까. 정 그렇게 광고를 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면 최소한 간단한 애니메이션으로 광고영상을 만들어 틀던가. 경기도 홍보영상은 혹 '대권' 도전을 위한 정치 선전 영상물일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우수하고 좋은 애니메이션을 많이 준비하고도 그 애니메이션들 앞에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듯 붙어있는 광고들 때문에 '페스티벌'이 '동네잔치'로 끝나는 듯 해서 허탈하기만 하다.


그리고 왜 주말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올 것임도 불구하고 복사골 문화센터 안에 있는 커피 라운지나 휴게실 등은 문을 닫는 것일까. 애니메이션이 일찍 끝나서 밖에 나가 차 한잔 하며 기다리고 싶어도 앉을 공간도 없고 차 마실 곳도 없어서 슈퍼에서 음료수 사다가 한쪽 구석에서 깨작대며 기다렸다. 그것도 중국에서 오신 감독님들, 교수님들과 함께. 참 민망하기 짝이 없는 노릇. 내가 복사골 문화센터의 구조를 잘 몰라서이기도 하겠지만 있었더라도 안내판도 없으니 알 턱이 있나.


이제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을 즐길 수 있는 '페스티벌'은 사라질 참인가?

2005년 11월 4일 금요일

잔머리 굴리기 대장.-_-;

무압축 동영상으로 만들어 넘겨주면 그쪽에서 사운드 작업을 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일정이 변경되었다. 성우들이 녹음한 사운드 파일이 먼저 온 것이다. 거기에 맞춰 영상을 편집해 달란다. 음...이건 사운드 편집도 거저 먹겠다는 소리군. 방법이 있나. 해줘야지.


이럴 때는 Vegas 툴이 참 편리하다. 이렇게 저렇게 맞추면서 하다보니 오히려 낫다. 나중에 영상 리테이크 해달라는 소리가 좀 덜 나오겠다 싶다. 그런데 영상과 사운드 싱크를 맞추다 보니 장면이 부족한 부분도 있고 동화가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다. 이럴 때는 머리를 살짝 굴려주면(-_-;) 된다. 씬에 맞춰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기 보다 나중에 편집하면서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는 기괴한 상황. 전에도 그랬는데... 흠;;; 게다가 이미지 잘못된 부분이 꽤 되서 편집하랴 Photoshop으로 수정하랴 짜증이 스믈스믈 기어 오른다.


날밤 꼴딱 새고 12시 전에 완성. 꽤 괜찮은 결과다. USB 포트가 이상이 생겼으니 외장으로 담아내는 건 불가능하고 결국 시퀀스 파일로 !뽑아낸 다음 다시 다른 컴퓨터에서 렌더링을 거는 수 밖엔 없겠다. 빨리 하고 PISAF 가야하는데. 가기 전에 머리도 좀 깎아야 하는데... 서둘러야겠다.

2005년 11월 3일 목요일

으아아아악~!!!

몇 시간 동안 눈을 내리게 하고 타이밍을 잡고 PAN을 시키고 없는 원동화 요리조리 편집해서 만들어 놓고 느낌이 제대로 나오는지 몇 번의 Preview후에 '이제 됐다' 했더니 갑자기 프로그램 에러가 나면서 종료된다. 저장이 되었나 싶었는데 퍽이나...-_-;;;;;;;;;


이런 @#$@%$#%#%@#$@#$@ 같으니라구.=_=;;;


으으으으으~~~~~~~~.

2005년 11월 2일 수요일

젠장, 메인보드...짜증이다!

하나
메인보드를 두 번째 교환을 해오고 나서 USB가 아예 말을 듣지 않는다. 칩셋이며 드라이버며 있는 대로 다 깔고 제이씨현 담당자 말 듣고 SP2도 깔았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 짜증 가득이다. 보드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싶진 않지만 이젠 점점 보드를 다시 교체하러 가야하지 않겠나...고 생각이 든다. 아...정말 보드로 인한 번거로움이 극에 달한다.


< 보드는 'GA-8IPE1000 Pro2' 누구라도 USB 먹퉁현상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



PISAF하기 전까지 편집 하나 끝내야 한다. 비주얼이 어째 좀 '딴딴'하지 못하지만 편집만 하기에도 시간이 벅차다. 그리고 난 '편집'만 하기로 했다. 하지만 가능한 부분이라면 손을 좀 봐야지.



이번 PISAF때 중국에서 '창광시' 감독님이 오신다고 한다. 오... 아주아주 반가운 해후가 되겠다. 최대한 시간을 맞춰야겠다.



작업 하나를 하기로 했는데 음...상황의 추이를 다시 봐야겠지만 11월도 그렇게 훌쩍 지나가버릴 것인가. 후...


다섯
작업실 출입문을 번호 키로 바꿨다. 여러 명이 돈을 모아서 바꿨다. 열쇠 없어서 전화하고 밖에서 기다리는 일들은 이제 없을 듯 하다. 현관 유리문 열쇠들은 다 있나? 난 있으니 걱정 끝! 흠... 생각해보니 요즘 번호 키로 전환하는 집들이 꽤 되나보다. 하긴, 열쇠 가지고 다닐 번거로움 없고 열쇠 잊어버릴 일 없으니... 그런데 난 전에 누나네 집 열쇠 번호를 잊어서 전화로 물어봐야만 했다. 물건은 잊어버리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이놈의 기억은 종종 잊기 쉽상이니 그게 그거다. 현물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는 차이 말고는.

2005년 10월 28일 금요일

뮤직 다큐멘터리 '하루'

웹서핑을 하다가 뮤직 다큐멘터리 '하루'에 대한 포스팅을 보게 되었고 궁금증이 일어 p2p를 통해 구해서 봤다. 좋은 음악들이 BGM으로 깔리고 절제된 나래이션을 통해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는 다큐멘터리였다. 사람들의 삶을 과장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폄하하지도 않으면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는 이 다큐멘터리는 여느 다큐멘터리가 갖는 감성하고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뭐랄까. 좀 더 평범한, 그렇지만 따스한 느낌이랄까? 퀵서비스를 하는 조항대씨 모자에 대한 이야기가 내겐 아주 작은 반전(?)을 줘서 그런지 그 속에 등장하는 모두가 왠지 알게 모르게 인연을 맺고 있을 것만 같았다. 하긴, 아는 사람 몇 번만 거치면 다들 같은 소쿠리 안에 콩들 아니겠나.


복잡하게 고민을 하고 있는 즈음이라 '감동'은 그럭저럭. 계속 굳건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하루'가 '무엇'을 위해서인지(인터뷰 내용 말고) 궁금해졌다. 왜 '앞'만 보고 살아야 했는지도 궁금해졌고 '사람'이 궁금해졌다.


다큐멘터리가 큰 자극이 없이 평범하게 느껴졌던 탓일까? 오히려 그런 뒤에 자막으로 나오는 문장 몇 개는 여느 때보다도 더 가슴을 후비고 들어온다.


아주머니는 끝까지 비밀이라고 했다.
얼마나 벌었을까?


모자파는 할머니는
오늘 3만 5천원 어치를 팔았다.


잡화상 할아버지는
2만원 어치도 못 팔았다.


조항대씨 어머니는
1만 2천원을 벌었다.


세 가지 일을 하는 안옥희씨는
오늘 5만원을 벌었다.


서울의 어느 68평형 아파트는
지난 1년 사이 6억원이 올랐다.
하루에 약 164만원씩 오른 셈이다.


그리고는 배경 사운드 속에 뉴스 나래이션이 덧붙여진다. ".....우리나라의 전체 사유지의 절반 이상을 인구의 1%, 약 487,000여 명이 소유하고 있다고 조사결과..."


이 세상에 와서 남의 땅, 남의 집에서 더부살이만 하고 간다.


'하루'에 쓰인 곡들은?(클릭)

노란 가을



한 동안 눈에 띄지도 않더니
멀리 여행이라도 갔나 싶었다
근처를 맴돌다 얼굴 마주치면
손이라도 흔들어 인사라도 할 것을
아무런 말도 없이, 흔적도 없이

단풍이 노랗게 물들어 가을이겠거니
곧 겨울 향기 가득한 나무 사이로
바람 묻어 지나가고 나면
노란 첫 눈이 올 것 같다

노란 가을

2005720~


올 여름 7월 20일부터니까 방배동으로 온지도 꽤 되었다. 아직도 내가 중국에 있는 걸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어디에서 꼼지락 대는지 궁금한 사람도 있겠지.


4호선 이수역과 2호선 방배역에선 조금 멀고 7호선 내방역에선 가까운 작업실. 바로 근처에 마트도 있고 식당들도 있으니 먹는 걱정은 별로 되지 않는다. 작업실에 취사도구가 구비되어 있기도 하고.


바로 윗 층엔 '밝은 빛 태극권' 도장이 있는데 이 작업실로 오고 싶어했던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다만, 처음엔 개인적으로 조금씩 배우곤 하다가 지금은 어쩌다 한 번씩 배우곤 한다. 배운 건 꾸준히 연습하지만 그래도 아쉽다.


작업실엔 여러 팀들이 함께 쓰는 공간이라 초대할 수는 없지만 근처라도 지나가다가 내가 생각이 나면 연락해도 된다. :)


음, 그리고 요즘 연락처는 블로그 여기저기 뒤져보면 다 찾을 수 있지만 다시 한 번,


전화 | 공일공육이오공오일오사
메일 | k
******n@쥐메일닷컴 / s******n@한메일쩜넷 / k******n@엠팔닷컴

동물원에는 동물들이 있다.

솔직히 얘기하면 난 동물을 기르는 것에 대해 찬성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난 어렸을 적 개와 고양이를 모두 길러봤던 경험이 있다. 그런데 점차 자라면서 동물을 기르는 것에 생각이 달라졌다.


애완동물은 생존을 위해 가축으로, 신(神)에 대한 경외심에 제물을 바치기 위해 시작된 동물을 기르는 행위가 점차 변해간 것이라 한다. 한 편으로는 희귀한 동물을 소유하는 것으로 자신의 특별함을 나타내고자 하는 인간 본능에 의한 행위가 아닐까 생각이 되기도 한다. 어쨌든 이제는 개인의 취향에 대한 문제가 되었고 삶의 일부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정당성에 대해 논의를 하는 건 민감한 사안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특히 동물원은 그리 썩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게 단지 인간의 오감을 즐겁게 해주는 유희로써의 동물원이라면 더더욱 내키지 않는다. 이런저런 이유로 동물원에 갔다가 맥이 풀리고 자연과 멀어져 버린 동물들의 눈을 보고서 마음의 불편함을 느꼈다.


하지만 동물 자체를 보는 것은 언제나 신비한 경험이고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대상이긴 하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에서 만난...

2005년 10월 27일 목요일

[drama] 민공 | Migrant Workers | 民工

민공(民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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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부작 드라마, 민공(民工). 처음엔 약간 지루한 듯 했는데 갈수록 흥미진진(?)해진다. 중국에서 DVD를 사올 때 직원이 추천해 준 것이 유효한 셈이다. 중국에서 민공은 농촌과 같은 외지에서 도시로 흘러들어온 서민 노동자를 말한다.


(비슷할 수도 있겠지만) 중국의 농촌은 한국과는 비교도 안 될만큼 어려운 처지인 경우들이 많다. 그래서 번화한 읍, 시 단위로 나와 임시직,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상해나 북경 인구수는 민공을 포함한 외지에서 도시로 돈 벌러 온 가난한 서민들로 인해 정확한 집계가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한 때 중국에서 민공들의 후생복리나 안전사고, 임금 등에 대해 커다란 관심을 불러오기도 했었다. 하루벌어 하루 살지만 그 돈은 농촌에서 버는 돈과는 꽤 차이가 많다. 그래도 얼마 되지 않지만.


내가 있었던 장춘을 예로 들면 식당에서 홀 서빙을 보는 종업원의 평균 월급이 400원~600원 사이다. 1원(인민폐)을 150원으로 환산한다고 하더라도 6만원에서 9만원 사이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돈을 모으고 모아서 자수성가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농촌을 떠나는 사람들이 쉽게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건설현장의 민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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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는 이런 민공들의 삶, 민초들의 삶을 거의 사실대로 묘사하고 있다. 생활이 넉넉한(?) 사람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는 드라마처럼 생각되었는데 드라마 내용을 보니 그럴 법도 하다. 어쩌면 그런 이들에겐 사실감이 없는 내용이기도 하고 재미가 없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농촌인구가 중국 전체 인구 중 70여%(약 9억)를 차지 한다고 하니 드라마가 히트를 했음직 하다. 그리고 내용자체가 구구절절 고개를 끄덕일 만큼 닮은 꼴이겠구나 싶다. 내 중국 친구 중에도 그런 이들이 있다보니 드라마가 내겐 더욱 흡인력을 갖는 것 같기도 하다.


자식이 대학에 가길 원하는 부모와 거부하는 아들, 학교를 다니지 않고 기술을 배워 일하는 남자, 도시로 나가기만을 꿈꾸는 여자, 시골을 떠나 도시에서 살면서 도시 남자에게 버림받은 여자, 민공이 되기를 자처한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수 많은 도시 빈민 노동자들, 있는 자들. 이 모든 군상들이 얽히고 섥혀 희노애락을 만들어가는 드라마 '민공'은 사회주의 중국답게 교훈적인 내용이 꽤 있긴 하지만 그런대로 넘어갈 수 있는 인간에 대한 스케치다.


총 20부 중에서 이제 겨우 9부까지 봤는데 재밌다. 현실은 현실이고 드라마는 드라마라 생각하면 가슴 아프지 않고 재밌게 볼 수 있다. 틈틈이 보는 거라 언제 다 보게 될지는 모르겠다.


덧-
다 봤다.-0-
그런데 그다지 재미가 없다. 이유는? 이 드라마가 중국 서민들의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가정한다면 참 비극이 많은 나라구나 싶다. 드라마에서 여자의 무게는 한국에서보다 가볍게 그려지고 말 많고 문제만 일으키는 사람으로 묘사가 된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 중국에서 느낀 건 여자들의 지위가 상당히 높다는 것이었고 자기 주장을 하는 여성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농촌은 아직도 구시대의 습(習)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가? 가장 이해가 되지 않은 이는 22살의 농촌총각이다. 집안 망신시킨다고, 쪽 팔린다고 부인을 때려 쫓아내다니... 흠, 이런 녀석들이 아직 많은 건가?-_-;


중국 정부에서 민공들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류의 드라마는 분명 정부 시책으로 장기 방영이 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어쩌면 드라마가 감동을 주기보다는 비참한 결말을 유도하면서 수 많은 민공들에게 농촌을 떠나지 말라고 위협하는 것일까? 하지만 중국의 사회주의 역시 '돈'문제에 흔들리고 휘청거리고 있는데 민공 역시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내가 느끼기엔 중국 드라마가 한국 드라마보다 사실성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닐지도... 힘겨운 삶을 넘어서는 모든 이들에게 축배를...!


여전히 중국 드라마의 장기인 '쿨'한 느낌은 곳곳에 존재한다. 어리둥절하게 하는 점프 컷과 표나는 특수효과도 함께.-_-a


스크린 샷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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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 송환 | Repatriation | 送还

송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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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의 눈물과 여러 차례의 한숨, 그리고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생각 하나"


송환을 보고 난 감상이다. 생각해보면 난 간첩에 대해서 초등학교 웅변대회 말고는 별다른 기억이 없다. 간첩을 생포하고 사살하던 뉴스도 그저 그런가보다 했을 뿐 인상에 남아있는 부분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북정책이나 간첩사건, 조작사건 등으로 인해 부지불식 중에 내가 받은 영향은 꽤 된다고 생각한다. 그 영향은 장성해서 나름대로 '사실'을 알고 있는 지금 지워지지 않는 흉터로 남은 듯 하다. 나 혼자만의 흉터가 아닌, '모두'의 흉터.


간첩이 아닌 북한에 대해서는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나도 '북괴'란 말을 사용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고 김일성, 김정일, 그리고 북한주민을 뿔달린 괴물로 묘사하는 그림을 그린 적이 있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나이를 먹으며 떨쳐내려고 해도 쉽지 않은 부분이 많다. 아직도 어린 시절 "똘이장군"이나 "해돌이의 대모험"같은 '만화영화'에 열광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내 의지가 아니었음에도 강제적으로 뇌리에 각인되었던 간첩, 북한의 이미지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 한국 사회의 정체성은 나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한참 후에서야 차츰 거짓틀에 대해, 잘못 교육 받아온 것에 대해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여전히 회자되는 대북 사상, 관념들은 왜 그런 것일까. 그 시절을 피와 눈물로 살아온 어르신들 이외에 젊은 세대들을 옭죄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역사는, 기억은, 경험은 세습되고 유전이 되나보다. 거부하지 않는 한.


김동원 감독님은 한국독립영화의 대부로 알려져 있다. 사석에서 몇 번 뵌 적은 있지만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었다. 그 분의 모습은 옆 집 아저씨같은 넉넉한 인상과 목소리로 기억을 하는 것이 전부다. 그 분이 12년에 걸쳐 기록한 간첩의 이야기 '송환'은 그 분의 이미지에 비해 다루는 내용의 충격 내용으로 인해 더욱 아이러니한 느낌을 주는 것 같다. 더불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 생각들은 어떠한 말로도 표현을 할 수가 없다. 영화는 비극을 담고 있지만 비극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는 점에서 희망을 얘기하고 있음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나는 어떠한 신념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 그 신념을 위해 인생 모두를 버릴 수 있는지 영화를 보는 내내 반문하고 또 반문했다. 거듭되는 반복의 굴레, 윤회의 굴레를 벗어버리기엔 이놈의 경직된 사회는 너무도 견고하지만 끊임없는 두드림과 노력으로 차츰 완화되고 있긴 하다. 그저 난 반문 밖에는 할 수 없다. 스스로 묻고 있지만 스스로 답을 얻어내기란 요원해 보인다. 일단은 살아가는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아직도 난 '미전향'과 '비전향'이란 말이 주는 엄청난 간극의 뉘앙스를 쉽게 체화해내지 못하긴 하지만 영화는 내게 인생을 송두리째 묻고 있고 그로 인해 답답한 마음만 한가득이다.


죽음과 싸워 지켜낸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죽음을 이겨내고 자유를 찾고서 또다시 죽음을 마주하는 이들 삶의 가치는 무엇일까.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채우고 가슴은 먹먹하기만 하다.


12년의 기록이 지난 50여 년의 이야기를 모두 담아낼 수 없듯 50여 년의 상처는 시간이 얼마나 흘러야 아물 수 있을까.


이미지 출처 :: http://imgmovie.naver.com/mdi/mi/0382/C8253-00.jpg

2005년 10월 22일 토요일

미녀 삼총사

며칠 전 누이 집에 갔다가 재롱둥이들 카메라에 담아왔다.
한 녀석에게 헤어밴드처럼 꾸며주니 다른 녀석들도 달려들며


"나도! 나도! 나도!"


결국 세 녀석 모두 꾸미고 기념 사진.

미녀 삼총사


표정을 보면 각각의 캐릭터를 짐작할 수 있다.
이제 막내는 말을 제법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가장 귀여울 때는 울면서도 엄마가 알려주는 말을 또박또박 따라할 때다.
분명 제 의사전달을 도와준다고 알고 있고 말을 끝까지 따라한다.
중간에 다른 말을 시키려고 시도해도 절대 따라하지 않는다.-0-

2005년 10월 19일 수요일

주어진 길.

과거 어떤 기자가 당신의 영화와 장 뤽 고다르의 유사점에 대해 말했을 때, 당신이 "장 뤽 고다르가 누군데?"라고 답한 건 잘 알려진 일화다. 당신은 작가적 자의식이 전혀 없다고 말하곤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영화에서 정치적 메시지를 찾으려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고픈 말은?


고다르? 고다르가 누구지? (한참 생각하다 무릎을 탁 치며) 아! 고다르상!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이렇게 대답해주고 싶다. 만약 당신이 무엇인가를 특별히 구하려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그냥 흘려보내면서 주어진 길을 가다보면, 당초 찾고자 했던 그 무엇인가를 반드시 찾게 될 것이다. 난 그렇게 확신한다.


2005.10.25_#253 FILM 2.0에 소개된 <오페레타 너구리 저택>의 스즈키 세이준과 허지웅 기자와의 인터뷰 내용의 일부다.


의지와 신념들은 때론 이기적인 고집으로 고개를 돌린 후 맹목적 방향성을 가지고 나아가기도 한다. 전체 삶에 대한 믿음, 목적이 불명확할 바에야 작은 목표를 세워 하나하나 해결해 가는 것도 꽤 괜찮은 방법처럼 보인다. 하지만 종종 목적을 위한 목적 때문에 정작 내 자신에 대한 고민은 놓쳐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냥 흘려보내면 되는 것일까. 특별히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내게 주어진 길은 무엇인가. 난 그 길을 알고 있는가? 간혹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몸은 비대한데 알고 있는 사실은 갓 태어난 신생아처럼 아무 것도 없는 듯 느껴지곤 한다. 아니, 줄곧 그래왔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지금으로선 아무것도 모르겠다.


내가 찾고자 하는 것.

2005년 10월 18일 화요일

춘천역

몇 주 전이던가?
일이 있어 비오던 날 춘천에 갔는데 춘천역 앞 풍경이 촉촉하다.
춘천역은 너무도 작아서 시골같은 정겨움이 있다.
사람들의 발길도 뜸한 시간,
춘천이 예뻐보인다.


춘천역 앞

서울로 오던 기차 안에서

호주에서 온 블루맨s

인디애니페스티벌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오래전에(-_-;;) 폐막식 때 갔었는데 씨네코아 앞에서 호주에서 온 마임팀이 폐막식 전 공연을 하고 있었다. 개막식 때도 와서 공연을 했다고 하는데 보지 못했다.


호주에서 온 블루맨들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했던 블루맨들은 아카펠라 실력도 수준급이다. 몸매는 동네 아저씨같은 몸매지만 몸에 밴 매너들로 인해 구경하던 많은 이들이 즐거워했다.


밤 촬영은 조명이 있어도 이렇게나 흔들린다.-_-;
디카로 촬영한 동영상도 있는데 귀찮아서 못 올리겠다.-_-;;;


블루 아저씨들 언제 또 오려나??

부산 영화제 트레일러에 대한 평가, 그리고 단상

여기다가 영화제 트레일러는 단연 최악이다. 제발 쇼박스에서 이젠 손을 안댔으면 한다. 작년 CG로 떡친 반딧불몰이와 조금은 다르지만, 전혀 영화제의 의미가 뭔지 감잡을수 없는, 더욱더 민속문화제 같은 이미지를 굳히는데 일조했다. 누구의 얘기로는 어느 한 외국인 게스트는 "태국"의 문양이 아니냐고 조심스레 물어봤단다.


가끔 둘러보는 블로그에서 우연히 위와 같은 포스팅을 봤다. 전체 내용은 제10회 부산영화제에 대한 이야기인데 중간에 위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포스팅 제목은 "편향되게 얘기한다 - 부산 영화제 경험기 : 2005. 10. 8 ~ 10"이다.


초반PD를 했던 8회 트레일러는 그럭저럭(?) 괜찮은 반응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이번 10회 트레일러에 대한 피드백들은 참 아쉽다. 아쉽다는 감정은 평가가 좋게 나오지 않아 아픈 마음이 아니다. 나 스스로도 그다지 만족을 못하고 있기에 드는 일종의 반성같은 느낌이다. PD였네 TD였네, 총괄하신 감독님의 책임이네, 상황이 이러저러했네라고 궁시렁 대는 건 별 의미가 없다. 트레일러를 본 사람들의 솔직한, 따끔한 피드백을 받는 게 가장 중요하다. 게다가 칭찬이라고 해서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악평이라고 해서 거부하고 싶진 않다. 스스로 위안하고 다짐하는 건 만약 다음에 또다른 기회가 있다면 잘 해야지 하는 마음 뿐이다.


트레일러 훼손 때문에도 소란스러웠는데 훼손의 문제가 아닌 영상 그 자체로 평을 받으니 아프다.


위에 있는 글을 소개할까 말까 망설였다. 스스로 부끄러워 낯뜨겁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면교사로 삼고 가기로 마음을 돌렸다. 본 사람들마다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라며 넘어가기도 멋적다.


글이나 작업 등은 활자화되고 영상화되어 흔적이 남고 자료가 되기 때문에 좀 더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2005년 10월 15일 토요일

21세기의 빨갱이, 그리고 아프리카.

아침에 일어나 블로깅을 하던 중 거대한 아스피린님 블로그에서 포스트 하나를 접하게 되었고 소개한 대로 원문중앙일보 기사를 읽어보게 되었다.


그리고 아스피리님의 제목에 대한 적절한 지적과 원문의 내용을 곡해하고 왜곡하는 찌라시 기자들에 대한 일침, 네티즌들의 부화뇌동함에 따끔한 충고 글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하고 난 후 문득 다른 측면에 관심이 간다.


장시기 교수 글 읽기



일단, 원문을 다 읽어본 사람이라면 김일성을 찬양했네 마네 하는 이야기는 입에 담는 것 조차 코미디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장시기 교수가 제목을 좀 더 친절하게 적었다면 이런 해프닝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거나 '먹이를 찾아 네트의 기슭을 헤메고 다니는 하이에나'같은 언론들 사이에선 강정구 교수 사건에 이은 관련자 엮기 이벤트가 (언제나처럼) 진행되고 있는 중인가 보다.


강정구 교수 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