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월 29일 토요일

매듭을 묶으며...

PT를 준비하느라 날을 꼬박 샜다. 사실 미리미리 다 준비했었다면 이런 일도 없었겠지만 그 '미리미리' 준비한다는 것은 사실상 너무 어려운 일이다. 작업은 늘 현재 진행형의 상태로 매듭을 지어가고 그 현재 진행형이 PT던 어떤 발표에 시간이 가까워질 수록 담아내는 내용은 더 풍부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자료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작업은 언제나 그렇듯 시간에 쫓기기 마련이지 싶다.

어쨌든! 하나의 매듭은 지었다. 또 다른 진행이 남아있지만 이렇게 매듭을 묶어가면 위로 올라가는 발판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좀 더 원활한 진행에 활력이 생기기도 한다.

지나가버린 과정, 시간들에 대해서보다 앞으로 해결하며 나가야 할 일들이 눈에 더 밟히고 마음이 더 쓰이지만 이것이야 말로 무언가를 '해내고 있다'라는 것에 대한 반증이 아닐까. 보다 나은 일, 보다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은 욕구와 열망이 현재의 과정을 견지해갈 수 있는 힘이 되곤 한다. 이번 프로젝트가 끝나면 더 신나고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하고 생각하는 게 쉽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꼭 찾아내야지.

이틀 후 또 하나의 PT가 있다. 이것까지만 끝나면 본 궤도에 올라 좀 신명나게 작업을 해나가길 기대해본다. 애니메이션은 아이디어를 내고 꾸려서 기획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그 아이디어와 기획이 하나씩 형상화되는 과정도 재미있기 때문에 더욱 기대를 해본다. 물론 원하는 대로 진행이 되지 않을 때 기대만큼의 힘겨움은 감수해야겠지...

2005년 1월 27일 목요일

중국 친구 장창! 한국에 오다.

중국 장춘에 처음 갔을 때 알게 된 친구(동생이라고 해야 옳겠다) 장창(张畅)이 한국으로 유학을 왔다. 한국어를 배우고 다시 캐나다로 갈 예정이란다. 중국에서 알게 된 친구가 다시 한국에 와서 만나게 되니 느낌이 참 묘하다. 왠지 중국과 한국이란 국가적 거리가 무척 좁게 느껴진다. 마치 옆 집을 드나드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와서 문득문득 내뱉는 장창의 한국어가 나를 웃게 만든다. 내가 중국에 처음가서 어학을 배웠을 때도 아마 많은 중국 친구들은 웃었을 것이다. 그 웃음은 물론 비웃음은 아니다. 같이 있었던 짧은 시간에도 조금씩 한국어를 가르쳐 주기도 하고 많은 얘기를 나눴다.

나보고 나이는 많아 오빠의 위치라고는 하지만 오빠의 느낌은 없다면서 몸은 비록 늙었으나 마음은 어린 것 같다고 한다.-_-; 그러면서 혼날까 걱정하다니... 녀석~ 소심하긴... 지금 그를 좋아하는 어떤 중국 남자애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다. 주변에 우리가 하는 얘기를 알아듣는 사람이 없으니 얘기하는 건 무척 편하다. 조언도 해주고 한국에서 불편한 거 있으면 도와주겠다고도 얘기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말이지...

장창! 한국에 온 걸 환영한다. 부디 공부도 열심히 하고 좋은 친구들 많이 사귀고 행복한 기억으로 귀국하길 바란다.

2005년 1월 25일 화요일

인물과 사상의 종간...그리고 강준만.

난 첫 번째 대학시절 '녹색평론'이란 월간지를 정기구독해서 읽고 있었고 꽤 많은 것들을 배웠다. 지금은 하나도(는 아니겠지?) 실천하지 못하는 병든 이가 되었음을 스스로 비판해보지만 당시로서는 녹색평론을 읽으며 생활 속에서 실천하려고 노력도 했었고 실천의 움직임을 만들어 보기도 했었다. 당시에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에 대해서도 그리고 '스코트 니어링, 헬렌 니어링'이란 이들도 책 속에서 만나기 도 했었다. 물론 그 모든 걸 거의 혼자서 이끌어간 김종철이란 교수도 알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두 번째 대학시절 아는 교수님과 긴 대화를 하다가 '인물과 사상'이란 책을 알게 되었다. 사실, 난 신문을 봐도 정치면은 잘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책에 그리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사회문제나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정치면에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고 억지로 노력했던 나의 우매함은 무엇이었던가. 교수님이 그 책을 권하며 던진 한 마디는 '재미있다'였다. 사실 이 책을 접하기 전에 많은 사회과학 서적-공산당, 사회주의, 한국 근대사-들을 접한 적 있었으나 흥미를 좀체로 생겨나지 않았고 늘 머리 속이 복잡하기만 했던 기억이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다'라는 단순한 말 한 마디에 책을 빌려 읽기 시작했고 난 바로 정기구독을 해서 읽기 시작했다. 나중에 정기구독을 해서 읽을 마땅한 주소지가 없어지면서 간간히 사서 보기는 했지만 내겐 한 달 동안의 화두와 삶의 지침을 가르켜준 소중한 책이었다.(참 늦게도 발을 들여놓았다.)

이 책이 33권을 마지막으로 종간이 된다. 오늘 서점에 자료를 찾으러 갔다가 인물과 사상 33권을 보고 주문해서 읽어야지 생각하고 돌아와 블로그를 도는데 김규항씨 블로그에 인물과 사상과 강준만씨에 대한 언급이 있다. 그리고 많은 블로거들의 링크를 따라 읽어보니 인물과 사상의 종간 사실이 점점 내게 큰 아쉬움으로 밀려온다. 게다가 김규항씨의 글 말미에 "역사란 늘 ‘죽 쒀서 개주는’ 방식으로 전진하는 것이다."란 말이 허탈하면서도 마음으로 느껴진다.

강준만씨의 왕성한 집필과 시원한 필력, 활력있는 사회비판, 그리고 솔직담백한 생활, 자기고백들을 더이상 활자매체로 만나지 못한다는 것은 왠지 이 시대의 멋진 지식인 한 명을 잃는 느낌이다. 익산에 있을 때는 가까운 전주에 그 분이 있는 걸 모르고 살았고 서울에 와서는 전북대에서 도강이라도 하면서 그 분 수업을 듣고 싶은 욕심이 생겼었는데... 그런 상상조차도 이젠 사치가 되고 말았다.

인물과 사상의 종간이 금전적인 문제도 있는 것 같고 노무현 대선 이후에 강준만씨의 이런저런 심경변화 및 글쓰기와 사회현상의 판단에 대한 자기 반성과 더불어 절필 선언한 이후에 일어난 일이라 마음이 더더욱 씁쓸하기만 하다.

그 분에게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음을 오늘 다른 이들의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되었다. 내가 지금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 애증, 고민 모든 부분에 있어 강준만씨에게 빚이 있음을 시인한다. 그 빚을 강준만씨께 편지를 써서 표현할 용기는 없지만 다른 사회적 발걸음으로 조금씩 보답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강준만 선생님.
보림하시고 다시 나오실 땐
저도 더 큰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만나뵙도록 하겠습니다.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건강하시고 늘 행복하시길 염원합니다.

벌써 또 한 달...

벌써 또 한 달의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는 시점. 사무실 인터넷에 문제가 생겨 부득이 근처 PC방에 와서 데이터를 다운 받고 온 김에 이것저것 둘러도 보고... 그러면서도 마음은 늘 외줄타기를 하는 듯 하다. 사실, 일이 많아도 적어도 마음은 늘 그런 것 같다. 불안한 게 아니라 긴장이 되어 있다는 느낌이랄까? 긴장이 풀어져 있는 것보단 적당히 근육과 마음이 수축되어 있는 느낌은 꽤 즐길만 하다.

마치, 90분 풀타임으로 축구 경기를 하고 났을 때 다리에 온 몸에 근육이 끼리끼리 뭉쳐있을 때와 같은 느낌이랄까? 아니, 탁구 경기를 하기 전에 약간 상대방의 기운을 이리저리 재보느라 신경을 쓰는 듯한 느낌이랄까? 당구칠 때 어려운 공을 잘 치기 위해 손에 분을 바르고 초크칠을 하고 큐질을 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어쨌든, 한 무더기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만큼의 매듭이 지어지고 그 매듭을 밟고 조금 더 앞으로, 위로 나아갈 수 있는 건 틀림없다. 그 매듭은 나중에 아래로 추락하거나 내려올 때도 날 되돌아보게 하는 흔적이 되기도 한다.

매듭을 묶어야 할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마음도 조금씩 바빠진다. 심호흡 크~게 한 번!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시간도 조금~...

2005년 1월 24일 월요일

좋은 이별.


떠나는 자는 떠나는 대로 남는 자는 남는 대로
서로 아쉽고 조금은 힘겹지만
다시 만날 약속으로 기운을 차린다.
언제 지켜질지 아무도 모르지만 그 약속만으로,
서로의 마음 속에 작은 추억이 남는다는 것만으로도 좋다.
좋은 이별은 세월이 묵어갈 수록 향기가 진해진다.

추운 겨울에 따뜻한 햇살을 두고 오는 마음처럼
내 흔적을, 내 기억을, 내 추억을 공유했던
벗들을 두고 오는 마음은 쉽게 발 길을 떼지 못한다.

좋은 이별은 쌓이고 쌓여 다시 좋은 만남을 만들어내겠지.

2005년 1월 21일 금요일

사람과 사람들...

어제 알고 지내던(?-자주 만나지는 않았으니...현재 진행형은 옳지 않다.) sicaf 분들이 왔다. 와서 북적북적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술고픈 눈빛을 주고 받은 후 (극구 사양하던 사람도 결국 다 마시더라.-_-;)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와 얘기를 안주삼아 시간을 보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흐르는 기운이란 건 확실히 세월을 지내봐야 확연해지는 것 같다. 어색한 기운들이 사라지고 편한 기운이 느껴지는 건 어떤 이유에서일까.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건 어쩌면 그 자체로서 생명과 생명, 혹은 같은 개체끼리의 해후로 인해 유전인자나 호르몬이 반응하는 건 아닐까.

사람이던 동물이던 사물이던 자신의 손길이 닿고 때가 묻으면 마치 자신의 세계(우주) 안으로 흡수되는 것 같다. 만약 상대방도 그렇다면 우리들의 관계는 벤다이어그램의 교집합과 같은 상태에서 수많은 교집합 군을 만들어내며 살아가는 것 같다. 그 부분이 많아지고 가득차면 자신의 공간을 잃게 될까 두려움에 또 훌훌 털고 벗어던지고 떠나기도 하면서...

그리 오래 만나지 않은 사람들이면서도 편하게 얘기할 수 있다는 건 그네들이 가지고 있는 장점인 것 같다. 한참을 이런저런 소소한 얘기들을 하고 또 한참을 심각한(?) 얘기들을 하고는 지하철 시간 때문에 자리를 떴다. 어떤 때는 시간의 관계없이 삶의 스케줄에 얽매임 없이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는 건 어떨까.

하긴 내 자신이 깊지 않으면 얘기할 꺼리도 바닥을 보일테고 관계가 깊지 않으면 말 없음을 지루하게 느끼겠지. 그래도 편한 느낌을 가지고 사람을 만나는 건 무척 좋은 일이다. 얼마전 벗과 함께 오랜 시간을 있으며 적은 술과 많은 얘기를 나눌 때의 느낌처럼...

2005년 1월 15일 토요일

작용

손바닥에서 기운이 뜨겁게 흘러나옴을 느꼈다. 저절로 손이 공중으로 떠오를 것만 같은 그런 느낌. 기는 역시 마음의 작용을 따르나 보다. 어떤 식으로든 그 테두리에서 밖에 살 수 없음을 확인하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늘 버거운 화두다.

또 하나의 겨울.

장춘 집 앞


아이스크림이 녹지도 않아...


장춘의 겨울. 무척 추운데도 이상하게 정겹다. 서울하고 비교하면 촌스러운 동네임엔 틀림없지만 그 촌스러움이 좋다. 어쩐지 사람들도 좋을 것만 같은 느낌.(물론 모두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겨울은 그렇게 추위에 익어가고 또 봄을 기다리는 마음도 함께 익어간다.

2005년 1월 14일 금요일

얼어붙다.

저번 달 장춘에서 택시를 타고 이동을 하는데 창문이 모두 하얗게 얼어 붙었다. 손을 대면 쩍쩍 달라붙을 것만 같은 느낌. 이런 추위인데 자동차들은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핸들을 돌리는 기사는 힘이 들어 보이지만 차는 그래도 달린다.

얼다.

도시도 얼다.


엷은 햇살도 따뜻해...

얼어서 깨질 듯...


이 때를 생각하면 지금 한국의 겨울은 턱도 없는 추위 건만 망각은 현실에 순응하게 만든다. 시간이 지날 수록 추위가 느껴지니...

창문에 뽀드득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게 얼었다. 손대면 쩍~하고 갈라질 것 같은 느낌.

2005년 1월 12일 수요일

[근조] 김충식 교무의 완전한 해탈천도를 염원합니다.

▲ 원불교 김충식 교무


원불교 김충식 교무,
호주에서 '살신성인'

- 9일 물에 빠진 연수생 구하고 순직

지난 9일 호주 시드니 노스아보카 비치에서 현지시각 오후 2시 30분경 어학연수생을 인솔하던 원불교 김충식(31·시드니교당) 교무가 물에 빠진 한국인 연수생(초등학교 6학년 남학생)을 구하고 자신은 파도에 휩쓸려 빠져 나오지 못하고 익사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김충식 교무는 1시간 후 물에 빠져 숨진 채로 발견되었으며 파도에 휩쓸렸던 학생은 무사히 구조돼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번 연수는 원광대학교 어학원에서 주최하여 1월 2일부터 16일까지 원광대학교 어학원에서 모집한 초등학생 6명, 인솔교사 1인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되었으며 원불교 시드니 교당 김충식 교무는 현지에서 연수를 지원하던 중 이번 사고를 당했다.

김충식 교무는 전북 정읍 출신으로 원광대 원불교학과를 졸업하고 2001년 포항교당에서 초임근무를 마친 후 작년 시드니교당 청소년담당교무로 부임했다. 이후 장례는 원불교장으로 거행될 예정이며 유해는 화장 후 전북 익산의 원불교 영묘묘원에 안치될 예정이다.

생명존중에 대한 의미가 퇴색되는 요즘 지구 저편에서 의로운 죽음을 맞이한 한 성직자의 행위는 생명에 대한 참의미를 깨닫게 하는 작은 외침일 것이다.

원불교 생명·평화운동단체인 ㈔평화의 친구들은 호주 시드니 해변에서 물에 빠진 연수생을 구하고 참변을 당한 고 김충식 교무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김 교무에게 생명평화상을 추서하기로 했다.

오마이 뉴스 윤창원(bdyun) 기자

충식교무는 내가 원불교학과를 다닐 때 선배였고 후에는 동기였다. 나보다 나이는 한 살 어리지만 서로 "형님~"이라 부르며 생활했었고 늘 웃는 얼굴로 용맹정진하는 모습은 쉽게 흉내낼 수 없는 것이었다. 특히 좌선이나 염불 쪽 수행에 큰 소질이 있었던 교무였다. 졸업 하기 전에도 졸업 후에도 해외 쪽으로 시야와 행동 반경을 넓히며 스스로의 수행생활에 힘을 더하고 노력하다가 호주에 발령받아 가면서 잘 생활하고 있었다고 들었다. 그러다 엊그제 선배에게 충식교무의 열반소식을 접하고 잠시 멍했었다.

축구와 농구, 탁구를 참 잘했던, 운동을 좋아했던 이었고 아담한 체구에 잘생긴 얼굴, 끊임없이 매진하는 수도생활 때문에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인기와 사랑을 받았던 충식교무. 사실, 충식교무는 자신의 삶보다 남을 위한 삶에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려고 노력했던 사람이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충식교무는 그런 사람이다.

성직자의 첫걸음에 서서 웅대한 서원을 이뤄보기도 전에 명을 달리하다니 정말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이 없다. 그렇게도 이뤄보고 싶던 성직의 삶, 오롯이 주는 삶이 아직다 끝나지 않았으니 곧 다시 다른 인연으로 오겠지.

충식형님~ 편안히 잘 다녀오시오. 그대가 구하려 했던 아이는 무사하다니 애착, 탐착 다 놓아버리고 맘 편히 떠나시오. 졸업 후 한 번도 보지 못하고 간혹 소식만 들었었지만 다음 생엔 더 좋은 인연으로 만나봅시다.

그대의 완전한 해탈천도를 간절한 마음으로 염원합니다.

전화의 신성함

현대 생활의 실태 가운데 하나는 전화의 신성함에 대한 믿음이다. 사람들은 단지 전화의 명령에 복종하기 위해 열정적인 사랑을 중단하거나 격렬한 말다툼을 보류한다. 전화에 응답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사회 시스템 자체에 대한 공격으로서 무정부주의와 동일시된다.
<스퀴즐 플레이 189p>
이 글을 읽으면서 공감이 갔던 이유는 아마도 핸드폰이 내 생활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일테고 그 핸드폰으로 인해 가끔은 외로움이 더 강해지는 걸 느껴봤기 때문일 게다.

무정부주의에 대해 한 때 관심을 가져본 적은 있지만 난 무정부주의자는 아니다. 하지만 전화에 대한 신성함은 때로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핸드폰 전원을 꺼놓고 며칠씩 있어본 적이 없다. 가끔 반나절 정도의 시간을 보냈던 건 배터리가 없어서다. 늘 열어놓고 있으면서도 내가 전화에 묶여있음을 불편하게 느끼지 못했었고 되려 전화의 편리함에 고마움을 느꼈었다.

어느새 시스템은 내 주변에 빼곡히 들어차 있고 그 시스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이제는 그 시스템에 잘 적응하는 사람이어야겠다는 다짐마저 하고 만다.

반가운 사람, 그리운 사람과의 소통까지 거부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시스템의 횡포에 대해서는 최소한 거부를 하고 싶은 욕구가 인다.

하지만 이미 늦은 건 아닐까.
그러나 여전히 내 의지는 살아있음의 연속이다.

2005년 1월 11일 화요일

[mov] 내 형제자매 / Roots and Branches / 我的兄弟姐妹

내 형제자매 / Roots and Branches / 我的兄弟姐妹


감독:위종
주연 : 량용치, 지앙우, 시아위, 추이지엔


제목만 봐도 뻔한 내용임을 짐작할 수 있다. 형제자매들의 이야기. 역경과 고난을 헤쳐가는 이야기겠지. 보고 나니 역시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장춘에 있을 때 TV에서 방영을 해줬었는데 그 때는 마지막 장면만 봤던 기억이 난다. 아니, 중간중간 기억도 난다. 중국은 워낙에 재방송을 자주 해주니까. 언젠가 봤겠지.

마지막 결말은 지극히 상투적이어서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하고 량용치(양영기)의 발음도 중국식이 아니라 홍콩식이어서 조금 거슬리기도 했다. 하긴 설정은 미국에서 살다가 20년 만에 중국에 돌아온 것이었으니 괜찮긴 했지만...하지만 다른 배우들에게서 오랜만에 듣는 동북 사투리는(그리 심하진 않았지만) 내가 그곳에서 살았던 짧은 기간의 향수를 자아낸다.

이 영화의 미덕은 뭐니뭐니 해도 아역들의 공이 크다. 량용치가 꽤 유명한 배우이기 때문에 그가 주연처럼 여기저기에서 인터뷰를 했지만 주역은 당.연.히. 아역배우들이다.

오래 전에 본 '일곱개의 숟가락'이나 '해피 투게더'같은 드라마가 오버랩 되기도 했지만 중국에서 일어나는 과거형의 사건들은 흥미를 유발하기 충분했고 중국 상황을 조금이라도 아는(?) 내겐 더더욱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급작스러운 부모의 별세, 돌아가시기 전에 큰 형(오빠)에게 동생들을 부탁하는 장면 등은 뻔한 흐름이지만 아이들의 천진한 모습과 닭 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장면에서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 형제도 여2, 남2인 상황인지라 좀 더 느낌이 와 닿았다고나 할까? 이 아이들만큼 내 어린시절은 누이, 동생들과 살갑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공감이 남을만 하다.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원초적 질문을 던지지 않아도 영화에서 나오는 대사처럼 '형제자매는 처음에는 모르는 사이었지만 하늘에서 내리는 눈처럼 내리고 난 후에 얼음으로도 얼고 물로도 변하듯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지 않은가. 부모 역시 마찬가지고.

요즘 세상이 각박해져 형제자매가 있어도 남처럼 사는 경우도 많고 걸치적 거리는 존재가 되버리기도 하지만 때로 혹은 종종 서로에게 힘이 되는 존재가 되는 건 확실한 듯 하다. 간혹 친구가 가족같고 아는 인연이 더 가족같은 경우도 많이 생기는 이유는 세상살이가 복잡해지고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경우가 적어지기 때문일 게다. 아무러면 어떨까. 친형제자매든 나중에 맺은 의형제자매든 혹은 친구든 '가족'이란 느낌을 받을 수 있다면 다 내 인연 안에 속해 있는 '친가족'과 진배 없는 것을...

내 뿌리는 '현재'의 가족이기도 하겠지만 크게는 '영원'의 가족이겠다는 생각. '祖국'라고도 하고 '母국'이라고도 하듯 근본과 가지의 연결성을 살펴보지 않고서는 결코 내 '자신'을 모를 일이다. 그것이 이기적인 범위를 만들거나 보수적인 굴레를 형성하지 않는다면 참 나를 찾는 꽤 괜찮은 방법이 되지 않을까. 하긴, 아무리 그렇게 해도 내 존재의 근원에 대해서는 아직도 오리무중이긴 하다.

다시 한 번 아역배우들의 연기에 박수를 보낸다.

2005년 1월 10일 월요일

젊은 벗들과 함께...


우연히 파일을 정리하다 발견한 낯설면서도 낯익은 얼굴들
우연히 만나 애니메이션에 대해 얘기하고 웃으며
그 짧은 시간이 소중해 디지털 흔적으로 남겼건만
내 머리의 기억은 또 그저 바람이 불고 이제야 발견하고는 사뭇 애틋한 감정으로 바라본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인연들 하지만 이미 삶의 흔적이 된 사람들
어떤 계기으로 시작을 했던 또 다른 넓은 세계에서 만날 수 있게 되길

2005년 1월 9일 일요일

일 년 내내 선물 101가지

1. 미소
2. 어려울 때 손을 잡아준다.
3. 등을 두드려준다.
4. 〃고맙습니다〃라고 말한다.
5. 예고 없이 키스를 해준다.
6. 다정히 안아준다.
7. 〃오늘 멋있어 보이네요〃 라고 말해준다.
8. 안마를 해준다.
9. 우울할 땐 휘파람을 분다.
10. 옛 선생님께 감사 카드를 보낸다.
11. 기분이 언짢더라도 〃좋은 아침!〃이라고 말한다.
12. 갑자기 전화를 해 깜짝 놀라게 해준다.
13. 옛 친구에게 뜻밖의 편지를 보낸다.
14. 당번이 아니더라도 설거지를 해준다.
15. 당번이 아니더라도 쓰레기를 버려준다.
16. 남이 내게 거친 말을 하더라도 신경쓰지 않는다.
17. ´일 분간의 사랑 전화´를 걸어본다.
18. 아침 일찍 만나는 사람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나 농담을 들려준다.
19. 비서에게 커피를 타준다.
20. 일자리를 찾는 사람에게 구인 광고를 구해준다.
21. 신문 편집인에게 사기를 붇돋워주는 편지를 보낸다.
22. 할머니나 할아버지께 점심 대접을 한다.
23. 〃항상 생각하고 있어요〃라는 카드를 보낸다.
24. 주차장 직원에게 미소를 보낸다.
25. 청구서를 제 날짜에 처리한다.
26. 헌 옷을 가난한 사람에게 준다.
27. 좋은 소식은 남에게 전하고 흉은 전하지 않는다.
28. 칭찬을 해준다.
29. 감명 깊게 읽은 책을 빌려주고, 빨리 돌려달라고 조르지 않는다.
30. 친구가 빌려준 책을 돌려준다.
31.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 충고를 하는 대신 같이 해결하려고 애써준다.
32. 아이들과 술래잡기를 한다.
33. 집에서 과자를 만들어 직장에 가지고 간다.
34.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찾아간다.
35. 우습지 않은 농담도 웃어준다.
36. 아내에게 아름답다고 말해준다.
37. 침대로 아침 식사를 가져다 주고 설거지도 해준다.
38. 부모님을 위해 집안을 치운다.
39. 나의 장래 꿈에 대해 말해준다.
40. 아내나 남편과 자주 산보를 한다.
41. 자신감을 잃지 않는다.
42. 사춘기의 청소년들을 이해하려 자꾸만 자꾸만 노력한다.
43. 줄을 섰을 때 누군가를 앞에 끼워준다.
44. 일을 잘하고 있는 사람에게 〃굉장히 잘했네〃라고 말해준다.
45. 부탁은 공손히 한다.
46. 싫다고 말하고 싶을 때도 좋다고 말한다.
47. 설명은 참을성 있게 한다.
48. 진실을 말할 땐 친절하고 현명하게 한다.
〃이 말을 꼭해야할까?〃라고 반문해본다.
49. 슬퍼하는 사람을 위로해준다.
50. 기쁨을 널리 전한다.
51. 남이 모르게 친절을 베푼다.
52. 우산을 같이 쓴다.
53. 다른 사람의 차 창닦개 밑에 웃기는 카드를 남겨놓는다.
54. 사랑한다고 적은 쪽지를 냉장고에 붙여놓는다.
55. 직접 기른 꽃을 꺾어다 준다.
56. 사랑하는 사람과 일몰을 같이 본다.
57. 〃사랑해요〃라고 먼저 말하고 자주 말한다.
58. 기분이 저조해 있는 사람에게 웃기는 얘기를 들려준다.
59. 질투와 악의로부터 자유로워진다.
60. 어린이에게 잘하라고 용기를 북돋워준다.
61. 내 경험을 말해주고 희망을 갖도록 해준다.
62. 시간을 내서 〃해야지〃라고 말하도록 한다.
그러면 새로운 결정을 내릴 수가 있다.
63.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심각히 생각을 해본다.
64. 열심히 듣는다.
65.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기 전에 다시 한번 고려해본다.
66. 기분을 가볍게 갖는다.일의 긍정적인 면을 보려 노력한다.
67. 분통이 터질것 같으면 조용히 산보를 한다.
68. 친구가 되어준다.
69. 낙천적인 성격을 기른다.
70. 감사의 마음은 꼭 표현하도록 한다.
71. 감동적인 글을 남들에게 읽어준다.
72.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하는 일을 가치 있게 생각한다.
73. 길에 쓰레기가 떨어져 있으면 피해 가지 말고 주워서 버린다.
74. 진실한 마음을 갖도록 한다.
75. 자신만만하게 걷는다.
76.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정하게 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한다.
77. 사랑하는 사람을 꼭 껴안고 잔디 위에 누워 별을 바라보도록 한다.
78. 매일 한 사람에게서 아름다운 면을 찾도록 한다.
79. 예고 없이 어떤 사람을 데리고 외출한다.
80. 도움이 필요 없을 떄도 도움을 청해본다.
81. 도서실에선 조용히 한다.
82. 누가 길가에서 차바퀴를 바꾸고 있으면 가서 도와준다.
83. 잠자기 전 어린아이에게 동화를 들려주고,
아이에게도 당신에게 이야기를 하나 둘 들려달라고 부탁한다.
84. 비타민 C를 남들과 나눠 먹는다.
85. 집없는 사람에게 담요를 준다.
86. 누군가에게 시를 적어 보내준다.
87. 우체국 아저씨께 작은 선물을 준다.
88.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연의 아름다움과 경이에 대해 말해준다.
89. 남들의 실수를 용서해준다.
90. 자신의 실수도 용서한다.
91. 서커스에 간다.
92. 주차장에 차를 세울 때는 두 자리를 차지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93. 어떤 일을 다른 각도로 한번 생각해본다.
94. 오락을 할 때 상대편에게 져준다.
95. 오래된 원한은 잊어버린다.
96. 외로워 보이는 아이에게 말을 붙여본다.
97. 옛날에 들은 농담을 되새기며 다시 웃는다.
98.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에 간다.
99. 친구의 눈과 귀가 되어준다.
100. 연인이 좋아하는 포도주를 사준다.
101. 남을 비평하고 싶은 충동을 누른다.

쉬운 듯 어려운 듯... 언제나 하기 나름이겠지.
아마 일년 내내 선물 1010가지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 자신만 잘 조율하고, 마음을 다스린다면...

그리 쉽게 되겠냐마는 안될 것도 없지 않겠는가...라는 생각.

2005년 1월 8일 토요일

어머님, 생신...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다가 어제 매형과 누나의 전화를 받았다. 오늘이 어머님 생신-회갑.이라고... 물론 그 전부터 알고 있었고 마음으론 챙기고 있었지만 또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흘러 오늘이 오리라곤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어제 저녁에 해야 할 일을 좀 정리하고 오늘 아침 8시 30분 차로 익산에 내려왔다.

요즘은 회갑보다 칠순을 더 크게 생각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망망대해 떠도는 부표같은 난 오늘 마음이 그렇게 편치 않다. 죄송스러운 마음일 뿐.

교무님들과 큰 누나 식구들, 작은 누나, 큰 이모, 작은 이모, 사촌 형수, 동네 어르신 등 20여 분이 모여 조촐한 식사를 했다. 특별한 무엇도 없었지만 작은 누나의 제안으로 큰누나, 매형과 함께 '어버이 은혜'를 부르고 모두 함께 '생일 축하'곡을 불러드리며 마음으로, 진심으로 어머님 60번째 생신을 축하드렸다.

눈이 내린다. 한국에서 처음 보는 눈. 아버님을 뵈러갈까 생각했는데 이래저래 못가게 되었고 어머님도 일 때문에 저녁 늦게 집에 오셨다. 어쨌거나 식구들 다 모여 식사하고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좋은 일. 상인이만 참석못한게 아쉽지만 기회는 또 있겠지.

어머님, 생신 축하드립니다.
늘 부족한 아들의 삶, 믿고 지켜봐주셔서 고맙습니다.
더 건강하시고 늘 행복한 마음, 은혜로운 삶이시길 염원합니다.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버이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어려선 안고 업고 얼러 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사 그릇될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에 주름이 가득
땅 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 어버이의 정성은 그지없어라

사람의 마음속엔 온 가지 소원 어버이의 마음속엔 오직 한 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녀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하오리 어버이의 사랑은 지극하여라


2005년 1월 4일 화요일

아침부터...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되는 깨어있음. 반복적인 듯 하지만 늘 조금씩 다른 하루의 연속. 이 속에서 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어가는가. 세상을 살면서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건 사실인가? 하긴, 모든 걸 다 끌어안고 살아간다는 건 애초부터 무리겠지.

작업을 진행하고 부족한 수면은 사람들과 대화하며 날리기도 하고 침을 삼키며 눈을 부라리며 내 몸을 두드리는 잠을 쫓아버리기도 한다.

하루도 깊은 밤으로 마무리한다. 하루종일 북새통이었던 사무실 이곳저곳을 정리하며 내 흔적도 보고 다른 사람들의 흔적도 본다. 그리고 난 이곳에 새삼 머문다. 오랫만에 찾아오는 적막.

내 몸을 덥히는 온풍기 소리만, 내 탁한 정신을 맑게 해주려는 환풍기 소리만 작은 사무실 안에 가득가득하다.

잠에 들어야겠다.

2005년 1월 1일 토요일

새해 복 많이 짓고 받으세요~!!!

장춘에서 어제 막 들어와서 사무실에서 회의하고 가지고 들어온 짐을 좀 늦게까지 정리하고 한 해를 어떻게 보내는지도 모르게 또 새해를 어떻게 맞는지도 모르게 2005년은 성큼 와버렸다.

중국에 갔던지가 작년 9월이었으니 금새 1년 반 정도의 세월이 흘러버렸다. 정말 시간은 쏜살같다. 중국 생활이 어제부로 마무리되고 이젠 본격적(?)인 한국 생활의 시작이다.

바쁘니 인사드리러 다니지 못한다는 건 핑계인 걸 안다. 하지만 또 사실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단 여기에 넙죽 엎드려 새해 인사를 드려야겠다.


(_ _) "새해 복 많이 짓고 받으세요~!!!"



여기에 오시는 분들, 저를 아시는 분들 새해 어떠한 일에도 큰 상심없이 좌절없이 하고자 하는 일 끝까지 해내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성공은 성공대로 실패는 실패대로 삶의 질과 깊이를 갖게 하는 밑거름이 되길 바랍니다. 언제나 건강하고 숨 쉴 때마다 행복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