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2월 28일 월요일

일상의 편린(片鱗)

1 봄 볕이 목을 간지럽힌다. 봄이 왔나 싶다. 바람은 끝내 달아나지 않고 내 품을 감아 돌지만 소리도 없이 어깨에 내려앉은 햇살은 쉽게 자리를 잡고 꿈쩍도 하지 않는다.

갑자기 알 수 없는 웃음이 픽~ 새나온다. 마치 한 번도 이런 따뜻한 봄볕은 느껴보지 못한 것 같은 어색함도 느껴진다. 중국에서의 1년도 꽤 오랜 시절 같기만 하고 한국에 들어온지 넉 달이라는 시간도 꽤 오랜 시간처럼 느껴진다.

2 부지런히 뛰어다니고 정신없이 일처리를 해나가도 눈에 보이는 건 없는 것 같아 불안한 생각도 들긴 하지만 꾸준함이 무기라는 감독님의 말씀이 내 마음을 치고 간다. 그 꾸준함은 누구나 쉽게 얻을 수도 있고 누구나 쉽게 얻지 못하는 것일 수 있음에 다시 마음이 챙겨진다. 하지만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처리하는 건 오랜동안 습관들지 않았던 것에 비하면 너무 급작스럽다. 급작스러움이 그다지 부담스럽고 버겁지 않은 것에 고마울 따름이다.

3 각자 앉았던 자리는 다들 집에 돌아가면서 온기마저도 가지고 돌아갔나 보다. 온풍기 온도를 올려놓고 잠시 숨을 골라본다. 돌아볼 건 많지만 돌아볼 게 없는 것보다 좋다. 지치기 않기를... 스스로에게 주문이라도...

약속 :: -362

어떤 심경일까. 어떤 마음일까. 나는 여전히 나를 지켜보고 있는데 어떤 때는 아주 살짝 긴장이 되기도 한다. 여전히 웃는 얼굴을 마주하는 건 기분이 좋은 일이다. 웃음으로 모든 게 상쇄되는 것 같은 느낌.

'현실'과 '이상'은 늘 거리가 멀다고 하지만 난 늘 '이상'은 '현실'을 딛고 서 있으며 '현실'은 '이상'에 맥이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 둘 중에 하나만 없어도 즐거운 삶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하는 게 '최고'의 '이상'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알 수 있는 건 온통 흔들리는 순간의 치기어린 감정이 아니라 편안함으로 다져지는 '기쁨'이라는 것이다. 영원히 지속되는 게 있을까마는 그 '영원'은 이미 존재하는 게 아니라 존재함으로 이미 다가와 있다는 것이다.

마음이 시리게 편안하다.

2005년 2월 27일 일요일

약속 :: -363

지나다니는 사람들, 사람들 속에 나. 내 속에 그림자. 그림자는 움직이며 길어지고 짧아진다. 그림자가 그리워 그림자의 주인을 보면 늘 같은 모습. 아니, 더디지만 즐겁게 발견하게 되는 새로운 모습.

목적이 있어 기다리는 건 목적없이 기다리는 것보다 충분히 행복하다. 아니,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내 스스로를 돌아보고 챙겨보고 면밀히 살펴보는 것이 맞겠지.

오늘 사무실에 오신 그림 그리시는 선생님께서 누군가가 자신의 그림을 보며 아주 조금의 감동이라도 느끼면 그림 그릴 에너지가 솟고 그림 그리는 맛이 생긴다.는 말에 동의한다.

내 자신의 용기백배한 치기보다 상대방의 긍정적인 대답 한 마디는 내게 충분한 가치가 있다.

PT끝!

PT가 끝이 나고 이젠 모든 작업의 마무리를 위해 매진해야 한다. PT가 끝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상당한 부담을 덜어내긴 했지만 그보다도 더더욱 중요한 건 작업의 좋은 마무리다. 작품이 잘 나오기만을 바래지만 그건 역시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과의 호흡과 노력의 결과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것. 열심!히 하는 수 밖엔 도리가 없다. 하지만 이런 작업의 과정이 지나고 나면 다음 내딛는 걸음은 보다 가벼울 수 있겠다.

시간이 문제다.

어제는 정말 앉아 있으면 눈꺼풀이 저절로 감겨서 밀린 잠을 청했다. 자고 일어났는데도 조금 지나니 또 졸음이 몰려와 또 잤다. 간만에 잠은 꽤 많이 잤다. 잠 털고 다시 시작.

2005년 2월 26일 토요일

약속 :: -364

하루가 지나서 마음에 변화가 생기면 크게 두 가지 경우일테지. 아주 간사한 녀석이거나 인생을 다잡아 무척 중요한 심경의 변화가 생겼거나. 어쨌든 오늘은 어제보다 더 좋은 느낌. 마음은 더욱 편해진 느낌.

타인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내 삶에 대해서도 이렇게 편한 마음이 들기는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언젠가 느껴본 듯한 그런...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삶 그 자체에서 느꼈었던 편안함. 언제였었을까? 이런 느낌이 낯설지 않은 걸 보면...

어쨌든 고맙고 반가운 일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PT 체조.

달밤에 PT체조를 한다. 거듭되는 PT 속에서 조금은 지치기도 하지만 PT가 끝나고 나면 큰 숨 쉴 수 있음에 다행이다. 게다가 PT를 한 번씩 하고 나면 배우는 것도 한웅큼씩이다. 물론 배워놓고 나중에 또 PT할 때 잊어먹고 실수하면 도로아미타불이겠지만... 게다가 뭐, 아직 엄청나게 중요한 PT를 해보진 않았다.-_-a

어쩌면 중요한 PT라는 건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해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내 생각을 설명하고 의견을 제시하고 결정을 내리는 모든 상황이 생생약동 숨쉬는 PT가 아닐까?

아침 8시에 잡혀있는 PT시간을 맞추기 위해 온 몸에 긴장이 돋는다. 7시 전에 출발을 해야 미리 준비를 할 수 있겠다. 영상 테스트도 아직 못해봤는데...어서 준비해야지...

2005년 2월 25일 금요일

약속 :: -365

약속을 했다. 가슴은 뜨겁게 유지하되 머리는 차갑게 유지하기로. 그래서 때가 되는 날 다른 모습으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겠다니 얼마나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인가. 내 자신에 대해 불안한 부분은 생각치 않기로 한다.

즐겁고 행복한 삶을 위한, 서로에게도 즐겁고 행복한 기다림이길 바랄 뿐이다. 사람은 언제나 늘 바뀌고 하루에도 12번씩 바뀌면서도 스스로 그걸 감지하지 못하며 사는 경우도 비일비재지만 그 12번의 생각을 면밀히 검토하다보면 삶은 보다 나은 답을 던져줄 수 있을 것 같다.

....냉철한 생각으로 뜨거운 가슴을 들여다보자.

2005년 2월 23일 수요일

선후본말

어떤 상황에서든지 도피하지 말 것. 성난 파도처럼 밀려오는 현실을 온통 받아내거나 그 현실에 쓰러지거나 둘 중 하나. 무모한 짓이라 생각되지만 어쩌면 그 방법 밖에 없는 지도 모른다. 내가 거절할 상황이 아니라면 도피는 또다른 한 무더기의 감당 못할 현실을 불러오게 되기 때문이다.

난 아직까지 19살에서 20살로 들어서던 즈음에 들었던 말을 잊지 못한다. 그럼에도 실천도 제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지만... 무슨 말인고 하니, "일은 선후에 따라 처리하되 그 경중을 우선한다."라는 말. 내가 먼저 해야할 일과 나중에 해야할 일이 있지만 그 일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중요한 일과 가벼운 일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당시에는(또는 지금도) 일의 선후와 경중을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더라. 하지만 살면서 조금씩 일을 하다보면 그 (아슬아슬한) 경계선이 보일 때도 있다. 어쩌면 경험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겠지.

똑같은 일을 수백 번 반복하더라도 그 일의 취사 방법은 수천, 수만가지로 나뉘어질 수 있다. 그건 그 일이 상황에 따라 선후경중으로 나뉘어지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때론 정말 내 인생에 중요한 일임에도 눈 앞에 놓여있는 일 때문에 행동하지 못하고 붙잡지 못하는 일도 있지만 그것 또한 '지금'이 없으면 그 중요한 일을 할 수 없게 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라고 변명해 본다.

노력은 때가 되어서 하는 게 아니라 수시로 하는 것.
모든 공부 역시 때가 되어서 하는 게 아니라 수시로 하는 것.
지금이 공부할 때.

短信

1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작업에 마지막 힘을 해야할 때. 그런데도 어쩐지 머리 속이 더 복잡해지거나 혹은 알 수 없는 믿음같은 게 생긴다. 두 가지 상반된 느낌. 묘하다.

2 영화배우 이은주가 자살했다. 주홍글씨를 보면서 마지막 결말이 참 묘하다 싶었는데 이은주의 자살 소식에 영화의 후반 트렁크 씬이 꼬리를 잡고 떠오른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드라마 KAIST때 보고 참 괜찮은 배우라 생각했는데, 이제 연기가 날로 좋아지는 걸 보고 있었는데 아쉽다.

2005년 2월 22일 화요일

그의 사진.


박동식.
형을 만난 것은 내 나이 스물 넷에 한국을 떠나 꼬박 열 몇 시간을 비행기로 날아 도착한 <인도>에서 한 달 후 즈음 한국으로 돌아오긴 전 머물렀던 <캘커타>에서 였다. 처음 발을 디딘 외국이라는 낯선 곳. 그것도 배낭여행에 가장 마지막 코스라고 불리던 인도. 온 몸이 삐쭉삐쭉 긴장이 서고 늘 마음을 다잡으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것도 잠시. 일주일 후부터는 이방인으로 누릴 모든 혜택을 다 누리는 것 같은 자유로움을 느끼면서 대륙을 횡단했었다.

그 여행의 막바지 한국으로 돌아오기 며칠 전 캘커타에서 동식 형을 만났다. 반바지에 신발을 구겨 신고 작은 배낭을 메고 러닝 셔츠같은 옷을 입고 수동 사진기를 손에 든 모습이었다. 발 뒤꿈치는 물집이 잡혀 다 터져있는...어쩌면 정말 배낭여행을 가장한 우리보다 노련한 경험이 묻어보였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여행 중에 단 한 번도 한국인을 만나지 못했던 터였고 캘커타에 도착해서 만난 첫 번째 한국인이었다는 사실에 반가워하며 기뻐했었다.

내가 가고 싶어하는 곳과 형이 가고 싶어했던 곳이 일치했기 때문에 난 일행과 헤어지고 형과 함께 몇 군데를 돌아다녔다. 많은 얘기를 했고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형이 찍은 사진을 볼 때는 감동 자체였다. 기능도 별로 없는 작은 수동 카메라에 담긴 사람들의 모습은 삶을 그대로 간직한 모습. 얼굴. 표정이었다. 어떤 사진은 가슴에서 울컥하는 슬픔이 밀려오고 어떤 사진은 한 없는 자유로움에 눈을 감게 되기도 했다.

인도의 금주령을 피해 배낭 여행자에겐 가장 물가가 비싼 항목으로 꼽히는 맥주를 먹기 위해 자리를 옮겨가며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인도에서의 건배를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하며 폭우가 쏟아진 캘커타의 골목을 무릎이 잠겨가며 걷고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인도에서 동식 형과의 만남은 그렇게 딱 1박 2일이었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고 동식 형은 다른 곳으로 떠나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 편지를 주고 받았고 전화를 하며 지금까지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 벌써 10년 시간인가? 96년 그 해 인도에서 돌아온 형은 "마지막 여행"이라는 책을 출판했고 황송하게도 내 이름이 몇 번 등장한다. 그리고 또 한 권의 책 "제주도"도 발간했고 월간 PAPER 등 많은 곳에서 형의 글고 사진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형의 글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고 특히 사진은 사람의 깊이를 담아내는 진심이 있다. 스스로 사진 찍는 법을 배우지 않았다고 하지만 어쩌면 인생을 배워가고 살아가고 견뎌내면 그런 힘을 얻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를 완성해가는 방식으로 형의 글과 사진은 참 애정깊다. 사람을 어루만지는 힘이 있다. 관계를 어루만지는 따스함이 있다.

그런 형이 이번에 사진 전시를 한단다. 전시를 하는 속마음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바빠서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형의 홈페이지에 가보니 사진도 판매 한다하고 사인도 해준다 한다. 가격이 참 착하다고 한다. 형이 칭찬한 함께 전시하는 화덕현이란 분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다. 이들의 눈에 비친 세상이 궁금해진다.

새삼스럽게 문득 인도가 가고 싶어진다.
인도 언저리에 있는 티벳도.

....말 없어도...

하루종일 밖을 바라보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줄 알았지만 그건 내가 늘 내 안으로 바라보는 시간을 갖고 싶어하는 열정의 반대급부였기 때문에 견딜 수 있었나 보다. 밖에 나가 차가운 바람도 살갗으로 느껴보고 사람들의 수다스러움도 귓볼에 느껴보고 포장길이긴 하지만 발바닥에 느껴지는 지구의 둥그러움도 느껴보는 그런 삶은 역시 사람으로 태어나 숨 쉬며 살고 있는 한 꼭 필요한 일임을 생각한다.

자유롭게 산다는 게 과연 어떤 것일까. 모든 일을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건 아닐테고 참 자유는 과연 어떤 것일까. 아무리 그리워해도 해소되지 않을 것만 같은 화두가 때론 어떤 날엔 일시에 해소되는 상쾌함을 느낀다. 삶이 푸석하다가고 어떤 날엔 그 사람 웃음만 봐도 편안해지고 꼬질한 삶인 것 같아 어깨에 힘이 빠져도 때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음 한 번으로 삶이 말끔해지는 것 같다.

어쩌면 살아간다는 게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마음이 한 없이 겸손해진다.


* 블로그 포스팅이 100개가 되었다. 시간은 꽤 흐른 것 같은데 수치로 된 결과를 보면 참 많이 챙기고 살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그대로 보이는 것이 좋다.

2005년 2월 20일 일요일

직시.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다면 남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 남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싶다면 내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때론 서로 얽혀 혼돈스러운 상황에서 내가, 남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살 때가 많지만 그럴 때일수록 침잠하는 게 아니라 나를 직시하고 바라보면 나도 보이고 남도 보인다.

내가 보이지 않아 헤맬 때가 가장 힘들다. 역시 남이 보이지 않아 헤맬 때도 힘들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관계는 다 얽혀 있는 그물망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만큼 왔는데 앞으로 얼만큼 가야할까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이만큼 오면서도 뜬구름 잡 듯 마음 둥둥 떠다니는 게 고민스럽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내가 땅에 발 붙이고 안정적으로 서있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부지런히 허우적대야지.

생각해보면 허우적 댈 때는 심히 염려스러워도 허우적 거림에 힘이 빠지면 좀 더 편한 손 짓, 발 짓을 해댈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늘 극단적 양 쪽을 체험하는 편이긴 해도 아직까진 그런대로(중용의 의미를 나름대로 느끼고서부터) 잘 견뎌오고 있다.

뭐, 아직도 숨 쉬고 있으니까.

2005년 2월 19일 토요일

PT 연기.

모든 PT가 일시에 연기되었다. 밀려오는 조각시간의 자유로움을 느껴본다. 그렇다고 해서 PT를 하지 않는 건 아니기 때문에 다시 마음의 채비를 해야 한다. 그래도 마음은 좀 편해졌다.

PT를 위해 작품을 제작하는 게 아니면서도 통과해야 하는 의례적인 일들이 가끔 작품 제작의 흐름을 방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 저것 다 고려하고 살면 되는 일은 또 무엇이겠나. 일단 간다.

다시 차근차근 짚어봐야 할 일들이 많다. 머리 속에 바람이 불길 기다리고 있다.

평범한 사람.

"'평범한 사람’이란 학벌이나 재산, 혹은 사회적 지위 따위가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주체적인 가치관을 갖지 못한 사람’이다." 라고 시작되는 김규항의 글에 동감이다.

주체적인 가치관을 갖지 못하면서 지배계급에 지배를 받는 이들. 그러면서도 스스로는 지배계급에 대해 저항하고 있다고 말하는 이들. 하지만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다. 어쩌면 나도 평범한 이들 중 하나일 수도 있다. 혹은 아닐 수도 있다.

다만 '평범한 사람'이고자 했던, 그리고 '평범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들을 떠올릴 때 김규항의 글처럼 단정적이지만은 않다.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지배계급의 폭압에 몸이던 마음이던 상처를 입은 이들이 할 수 있는 건 드러내지 않고 살아가는 것 밖엔 없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혹은 그런 사람들과 더불어 살면서 '주체적 가치관을 갖지 못하고' 스스로를 '평범'의 굴레 안에 안주시키며 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진실을 영원히 알지 못할 거라는 것과 인생의 목적을 외형적 가치에 두고 살 것이라는 김규항의 얘기는 한 편 섬뜩한 느낌을 주지만 꽤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나는 여기에서 말하는 평범한 사람이길 거부한다. 부단한 노력이 필요할테고 어쩌면 일부분의 내 삶의 습관들을 과감히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체적 가치관'을 통해 '보편적 가치관'을 획득하지 못하는 것만큼 우울한 일도 없을 것 같다.

2005년 2월 18일 금요일

현재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에 대한 오류.

며칠 전, 사무실에 앉아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쫓아다닐 때 한 생각이 머문다.

난 전의 내 모습보다 현재의 내 모습이 보다 발전되어 왔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아주 조금씩이라도 눈에 띄지 않을만큼이라도 변해오며 발전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날은 내가 변해오고 발전했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라는 곳에 생각이 닿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내가 발전해 왔다라거나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라는 생각은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어린 시절 철모르는 실수가 더 순수하고 솔직한 행위였을 것이라는 등의 생각들... 내게 있어 도대체 나아진다는 게 어떤 부분에서 적용가능한 이야기일까. 그런다고 예전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거나 하는 뜬구름 잡는 얘기는 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지금 내가 생각하는, 느끼는 것들이 사실일까 하는 것에 대한 의문. 어쩌면 관습과 굴레에, 사회의 규범과 주위 환경에 내가 맞춰가고 있으면서 내가 사는 게 나아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쉽게 정리되지 않은 화두지만 이렇게라도 꺼내놓지 않으면 화두가 잡히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 마음의 나이는 지금 몇 해나 지나왔을까?

2005년 2월 8일 화요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1월 1일은 양력, 음력 두 번 있으니
복 두 번 많이많이 받으세요. :)

새해를 시작하는 마음이야 누군들 새롭지 않겠습니까만
새해가 아니더라도 새로운 마음은 쉽게 가져지지 않지요.
그래서 올 한해는 지금 마음 먹은 새로운 각오와 계획들이
매일매일 반복되고 매일매일 새로워지길 기대합니다.

고향에 내려가지 못해 식구들께 미안하지만
일 잘해보겠다고 티 내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해야할 일에 과부하가 걸려 진행하는 게 부담스러워
내려가지 않은 것이니 조금은 이기적일 수도 있겠네요.
그래도 지금 진행하는 일들이 끝나면
좀 더 편한 마음으로 내려갔다 올 수 있겠어요.
아버지 계신 데도 다녀 와 봐야죠.

지금 뭔가를 정리해 내려가야 하는데
자꾸 정리가 안되네요.
차분히 마음을 돌이켜 봐야 할까봐요.

어쨌든, 모두들 설 잘 쇠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국내에서 국외에서 제가 아는 모든 분들 행복하시고
혹 제가 모르는 인연이라도 제 마음이 닿는 곳, 인연까지라면
모두들 새로운 날들이 되시길 염원합니다.

새해 복~ 많~ 이 받으세요. (_ _)

2005년 2월 5일 토요일

누구지?


너는 누구지?
아무리 물어도 대답이 없다.
누군지 설명해 낼 재간도 없다.
때때로 변하는 모습 모두 나다.
고집스럽게 변하지 않는 모습도 나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나는 아니다.
그러면서 거울에 비친 나를 보며
다시 묻는다.

너는 누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