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3월 31일 목요일

[ani] 애니메이션계의 활력 - RG 스튜디오.

본의(?) 아니게 다른 회사 홍보를 하는 것 같지만 아는 형님이 기사에 등장을 했기에 잘 되었으면 하는 염원을 담아 링크를 건다.

디자인 정글에 오랜만에 들어갔더니 이 양반이 기사(보기)에 떡-하니 등장을 한다. "일 낼 사람. 일 낼 스튜디오를 만나다." 라는 기사에 김광회PD의 인터뷰가 실렸는데 열심히 장편을 준비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물론 개인적으로 만났을 때도 꾸준한 성실함과 열정으로 일을 하는 걸 느낄 수 있었지만 작업 진행에 대해서는 꽤 말을 아끼는 편인지라 인터뷰 기사를 더욱 유심히 봤다. 열심히 하는 모습이 말의 행간에 뚝.뚝. 묻어난다.

"머그잔 여행" 데모를 중국에 갔을 때 아는 분들을 통해 소개를 했었는데 반응들이 좋다. 그리고 그 장편에 등장하는 빼꼼 캐릭터는 한국에서도 많은 이들의 환영을 받고 있으며, 단편으로 만들어진 작품들도 여러 영화제에서 좋은 성과를 거둬들였다. 어쩌면 소리없이 꾸준히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원래 빈수레가 요란한 법이라 하지 않았나. 몇 억 들었다느니, 기술력이 최고라느니 백날 떠들어 봤자 재밌고 퀄리티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겠나. 그런 면으로 봤을 때 작품의 질을 높이기 위해 말을 최대한 아낀 것에 대해서는 참으로 고무적이다.

그러고 보니 "I love picnic"이나 "I love sky"가 처음 만들어질 당시에 캐릭터 설정이나 만들어진 동영상을 노트북에 담아 와 맥주 한 잔 곁들이며 보여주던 광회 형의 초롱한 눈빛이 기억난다. 그 때가 벌써 2-3년 전 즈음이었나? 세월 참 빠르다. 그 이후에 "머그잔 여행"을 준비하며 데모를 보여주고 반응을 살피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공정의 70%가 완성되어 간다니 성실함에는 당할 무엇도 없다는 게 실감난다.

애니메이션을 하는 사람-감독, PD, 애니메이터 등-들의 가장 소박하면서 중요한 꿈 중에 하나는 제대로 된 작품 하나 만드는 것이고 한국의 척박한 애니메이션 토양에서는 그저 작품 하나가 완성되는 것만으로도 그 소박한 꿈을 이루는 것인데 광회 형은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잘 밟아가는 것 같아 내게 즐거운 자극도 되고 기분좋은 시샘도 하게 만든다.

부디 좋은 작품, 좋은 성과 나타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겠지.뭐. 열심히들 하니까. :)

광회 형! 소중한 작품 마무리 잘 하쇼. 그래서 보란 듯이 성공하쇼. :)
그나저나 일본에 가서 "작업"^^;은 안하시우? 후회하지 말고~

알지 스튜디오 가기 ☞

[mov. or ani.] - <빼꼼의 머그잔 여행>을 봐야 하는 이유..?
[mov. or ani.] - [ani] 한국의 PIXAR? <빼꼼> 방영 결정...!

약속 :: -331

며칠 지나지도 않았으면서 소식이 궁금해지는 건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겠지요. 어제와 오늘이 그리고 내일이 비슷한 삶의 진행이라 하더라도 소식이 궁금해지는 건 특별한 이유가 아닐 겁니다.

누군가에게 관심이 생기면 그렇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라고 하고 싶지만 누구나 다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하고 또 누구나 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기도 하는 걸 보면 이유 또한 수 백, 수 천가지가 존재할 거란 생각입니다.

마음을 허공처럼 비워도 허공에 남아 부유하고 있는 상대의 공기는 숨을 쉴 때 제 폐부까지 들이밀고 들어오니 아직은 완전히 비워내는 게 그다지 쉽지만은 않습니다. 다만, 노력할 뿐이죠. 비워내고 싶어 노력하는 게 아니라 상대의 편안함과 자유로움을 위해 노력하는 거죠. 또 그건 다시 제게 부메랑처럼 되돌아 와 함께 느낄 수 있는 여유로움과 행복일 수 있을 겁니다.

삶은 참 묘한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게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큰 일이 되고 때론 감당하기조차 어려운 큰 일들도 마음 툭- 돌리고 나면 피식- 웃음이 나는 솜털처럼 가벼운 일이 되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어디에 발을 붙이느냐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마음 먹기 달렸다"는 말은 그래서 진리이자, 소중함인 것 같아요.

브라인드가 걸쳐 있는 창으로 가로로 얇게 썰어진 아침 햇살이 밀려 드네요. 햇살을 눈에 담고 몇 안되는 추억을 만지작...만지작...하다 마음은 잠시 또 그 곳에 가 닿습니다.

행복한 하루 시작하세요.

...풀리지 않는 퍼즐.

어디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한 건지 곰곰히 생각해보면 첫 출발부터가 이상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완성해 가는 과정에는 왕도는 없지만 여럿이 함께 하는 작업임을 감안할 때 효율적인 최소한의 방법은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첫 출발부터가 꼬이기 시작한 건 나중에 풀어내기가 참 어려워진다.

지금은 이런저런 가슴을 치는 반성에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책임 소재의 귀속은 허영이고 사치다. 어떻게 해서든 이야기의 흐름을 정리하고 틀을 형성해야 한다. 그런데 머리 속이 엉킨 실타래같다.

하지만 그 엉킨 실타래도 시작점과 끝점이 분명 있을 터인데 그 시작과 끝점이 보이질 않는다. 지금으로서의 최선은 내용을 담는 그릇을 잘 만들어 가는 것 뿐.

이 일이 끝나고 나도 남은 일들은 또 한 무더기라는 생각이 자꾸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으니... 계단을 하나 밟고 올라서야 다음 계단을 밟을 디딤발을 생길텐데...

방법은 하나. 밀어부쳐 하는 수 밖에. 경험부족이든 나의 무능이든 지금 이 일을 해내지 못하면 합당한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현실과 이상의 차이는 늘 존재하겠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 온, 흘러 갈 일은 참으로 견디기 힘겹다.

2005년 3월 29일 화요일

예수 이야기로부터의 생각의 끈.

늘 무시되는 사실이지만, 예수는 단 한번도 ‘원죄’ 따위는 얘기한 적이 없다. 그는 오로지 ‘회개’를 촉구했다. 예수가 말한 회개란 종교적 결신(교회에 나가고 계명을 지키는)이 아니라 ‘삶의 완전한 전복’을 뜻한다. 나밖에 모르던 사람이 남을 섬기며 살게 되며, 신분이나 세속적 조건으로 사람을 구분하던 사람이 모든 인간을 똑같은 형제자매로 여기게 된다. 그런 극적 변화가 회개이며 그로 인한 삶이 바로 구원이다. 그리고 그 구원을 통해 “양과 사자가 함께 뛰노는” 하느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 예수는 그렇게 말했다.

하느님은 교회에 '안치'되어 있는 게 아니다. 하느님은 골방에도 시냇가에도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는 거리에도 슬픔과 비탄이 있는 어디에도 있다. 회개와 구원은 골방에서도 시냇가에서도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는 거리에서도 슬픔과 비탄이 있는 어디에서도 가능하다. 하느님을 볼모로 잡고 회개와 구원의 독점권을 주장하는 제도 교회는 오히려 회개와 구원이 어려워 보이는 유일한 공간이다.

- 김규항


'예수 이야기'처럼 블로그의 글들은 가끔 사고를 할 여유가 없는 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던져준다. 짧은 시간동안 훑고 지나갈 뿐이긴 해도 어떤 경우엔 여운이 길게 남는다.

'늘 무시되는 사실'이지만 종교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상적 관계 형성을 가로막고 있다. 서로를 분리하고 심지어는 자신조차도 성속(聖俗)을 분리해 살게 한다. 애초의 종교적 가치가 삶의 안식과 정신적 풍요를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그 안식과 풍요가 자신의 영성의 샘에서 샘솟는다기 보다 상대의 가치와 비교우위를 점거하며 생긴다는 것일테다.

(이 글을 믿는다면)기독교에 '원죄'가 없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원죄'는 기독교의 사상을 구축하는 기본 골조였다는 걸 상기해 본다면 참으로 새로울 뿐이다. '원죄'를 풀기 위한 '회개'가 아니고 '죄를 사함'을 위한 '회개'가 아니라면 참 아름다운 '회개'일 법하다. 자신의 사상의 틀을 깨고, 삶의 틀을 깨고, 행동의 틀을 깰 수 있는 것이라면 진정 구원을 받을 수 있겠다 싶다.

기독교를 비판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원불교 공부를 했던 사람으로서 종교를 공부했던 사람으로서 (여전히 비전문가지만) 종교에 대한 생각은 이미 새롭게 고쳐먹은지 오래기 때문이다. 다만, 위에 있는 글은 기독교, 비기독교를 떠나 내 삶 속에서 사유하고 사고하는 데 또 한단계의 계단을 준 것에 다름 아니다.

여전히 난 종교의식이 행해지는 공간에 대해 (종교에 대해) 나름대로 확고한 결단을 가진 후로는 거부감이 있지만 그 거부감은 그 곳에서 안식과 평화와 은혜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한 거부감은 아니다. 종교가 권력이 되지 않고 낮은 곳에 임하기만을 바랄 뿐이고 성직자가 권위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도 하나님을, 부처님을, 사은님을, 알라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잃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분도 서로를 만나지 않겠다고 선언을 하지도 않으셨거만 세상의 모든 곳에서 함께 차마시고 대화하며 어깨를 걸고 술 한 잔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인데 그 분들 보이지 않으니 계시지 않으니 점점 잊어가는 지도 모르겠다.

자유와 생명가치에 반하는 권위와 권력은 재미없다.

한 소쿠리 안에 콩

일은 끊임없이 눈 앞에, 내 앞에 놓여져 있고 그걸 처리해가는 과정과 방법은 늘 쉼 없는 연마를 통해 찾아간다. 내가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은 절대적 개념으로 보면 버거움이지만 상대적 개념으로 보면 내 자신의 무능이다.

자신이 무능하다는 생각은 견디기 힘들어 모든 걸 놓고 싶은 마음과 스스로에 대한 실망으로 인해 커지는 분발심, 투지와 같은 두 가지 양면을 포함하고 있다. 내게 경험부족이란 변명의 사유가 되지 않는다. 일이란 건 일 자체를 들여다 보면 순서와 방법이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게 보이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의두연마를 게을리 했다는 증거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스스로의 면피를 위해 경험부족의 이유를 늘어놓곤 한다. 하지만 내 자신은 충분히 알고 있다.

경험부족이 삶에서 생기는 경우엔 거의 불가항력적인 일들이 많다. 도저히 이해되지 않거나 추측이나 예측도 하지 못하는 경우들도 있을 수 있으니까. 그건 의두연마를 통해 해결되지 않는 경우들의 부분일테니까. 하지만 이것도 내가 살아온 삶을 직관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면 상당부분 유추가 가능하다. 다만, 결연한 의지가 없는 한 해결하거나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지속시키는 건 힘겨운 일이 되고 만다.

내 삶은 나를 중심으로 해서 돌긴 하지만 남의 삶, 그 우주의 범주와 생기는 교집합은 필연적으로 생기기 마련이고 교집합의 범위가 넓어진다는 것은 상대와 내가 하나의 범주로 묶이는 게 아니라 서로의 크기가 같이 넓어진다는 걸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건 또 교집합의 확장과 더불어 내 삶의 확장도 함께 진행되는 것이 된다. 무한공간의 자연우주의 폭을 향해 넓어질 수록 아집과 고집은 사라지게 되고 바라보는 시야는 넓어질 것이며 그건 또다른 자유를 내게 선사할 것이다.

그래봐야 "한 소쿠리 안에 콩"들일테지만 콩들이 가지고 있는 우주는 분명 차이가 있다. 하나의 콩으로 인해 소쿠리의 면적은 커질 수도 작아질 수도 있는 "관계"가 성립된다.

약속 :: -333

현재에 충실한 게 미래에도 충실할 거라는 담보가 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현재에 소통이 가능한 게 미래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다만, 가능성은 볼 수 있겠죠. 지금 즐거운 게 나중에 즐겁지 않은 일이 될 수도 있겠고 지금 즐겁지 않고 별 느낌이 없는 게 나중에 소중한 느낌으로 올 수 있는 경우도 있겠죠. 아니, 분명 있을 거예요. 삶이 늘 그렇잖아요.

중요한 것은 어떤 자세로, 어떤 생각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엮어야 하는가에요. 뭔가를 우기면 우길수록 포기해야 할 일도 많아질테고 포기하는 게 익숙치 않을 때는 힘든 경우가 올 테니까요. 또 우기지 않는다고 해서 힘든 상황이 오지 않는다는 보장도 하지 못하죠. 적당히가 아닌, 적절히 포기해야 할 때와 잡아야 할 때를 판단해야겠죠.

오늘은 운이 좋은 숫자가 세 번 겹치는 날일까요. 아니면 그것조차 미래에 불안한 내가 만들어 낸 미신같은 암시일까요. 사실, 슬럼프라는 것, 행운이라는 것은 주변 환경이나 어떤 계기로 조성된 것이라기 보다는 스스로의 노력과 마음 자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생각을 한다는 것, 고민을 한다는 것은 다름 아닌 지금 내가 적절한 판단과 적절한 결정을 내리고 있는지에 대한 되돌아 봄이죠. 미래에 대한 희망만으로 열정, 애정만으로 모든 게 해소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런데 해소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 문제가 풀리지 않을 거라는 지레짐작은 더더욱 불필요 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긴 스스로 상처받고 힘들어 할 상황을 만드는 걸 좋아할 사람이 있진 않겠죠. 다만, 그 힘겨운 상황이라는 게 뒤집어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닌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게 중요한 거죠.

이제 정말 완연한 봄이 찾아오나 보네요. 추운 겨울을 끙끙대며 보내며 봄 맞을 준비도 못했는데 갑작스러운 햇살의 기습이 자꾸 마음을 동동거리게 하네요. 언제 봄 마실이나 갈까요?

2005년 3월 27일 일요일

아..이런~

새벽에 자긴 했지만 이렇게 늦게 일어나기는 처음이다. 사실 중간에 몇 번 깨긴했지만 눈이 무거워 조금 더 바닥에 몸을 부빈다는 게 12시 다 되어서 일어나다니... 하루가 반절은 다 지나간 느낌이다.

날씨 하나는 쥑인다. 몸에, 마음에 슨 곰팡이들 다 말려내야겠다. 또 부지런히 시작하자. 시간을 장악하도록.

약속 :: -335

기대를 하던 하지 않던 애초의 생각이 완전히 달라지는 건 아니겠죠. 어쩌면 기대를 하지 않겠다는 건 스스로가 받을 충격을 완화시키려는 얄팍한 속셈이거나 혹은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나름대로의 배려겠죠. 그래도 대상에 대한 마음은 여전히 바뀌는 게 없어요.

바뀌는 게 있다면 그건 상대방을 향한 태도, 자세겠죠. 생각해보니 기대라는 게 욕심의 또다른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욕심은 집착을 낳고 집착은 이기적인 마음과 다름 없다는 생각. 그러니 기대를 하지 않겠다는 건 상대에 대한 마음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 바라는 걸 마음 깊숙히 체화시키는 과정은 아닐까 생각해 보네요.

삶 자체가 기대의 연속이죠. 삶 자체가 예측불허인 상황에서 기대를 한다는 건 욕심이건 아니건 삶이 좀 더 풍요로워지길 바라는 것 아닐까 싶어요. 그게 서로에게 받아들이기 힘겹게 진행되는 게 아니라 서로가 마음 편한 자유로움.의 지점에서 만나질 수 있게 하는 것. 약간의 기대건, 많은 기대건 다시 제게 씌워진 꺼풀을 하나 걷어내고 바라볼 수 있다면 좋겠네요.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건 다름 아닌 각자의 자유의지, 결연한 의지가 아닐까요. 자신을 구속하고 묶어두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던 환경과 상황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음을 아는 것. 늘 변한다는 사실 자체가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아는 것.

충실한 이해와 모든 세포가 행복에 꿈틀대는 곳에서 만나지기를 기대해봅니다. 작은 노력부터 시작해야죠.

2005년 3월 26일 토요일

약속 :: -336

기대가 조금이라도 남아있었던 게 잘못이었겠죠. 사실, 기대는 실망을 불러오는 근원같은 거죠. 기대도 없으면 실망도 없다는 말. 그런데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아니아니, 어쨌든 조금이라도 남아있던 기대도 일단은 접어두어야 할 것 같네요.

하나도 아무렇지 않다.는 아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것.도 꽤 괜찮네요. 마치 손에 물감을 쥐고 있다가 물 속에서 손을 편 듯한 느낌이 있네요. 이미 손에 물감이 배어 씻기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참 괜찮은 느낌.

2005년 3월 25일 금요일

빙고!!!

Ladys and gentleman
아싸 또 왔다 나 아싸 또 왔다 나 기분 좋아서 나
노래 한곡 하고 하나 둘 셋 넷

터질 것만 같은 행복한 기분으로 틀에 박힌 관념 다 버리고 이제 또
맨 주먹 정신 다시 또 시작하면 나 이루리라 다 나 바라는대로
지금 내가 있는 이 땅이 너무 좋아 이민따위 생각 한 적도 없었고요
금 같은 시간 아끼고 또 아끼며 나 비상하리라 나 바라는대로

산 속에도 저 바다 속에도 이렇게 행복할 순 없을거야 랄랄랄라
구름타고 세상을 날아도 지금처럼 좋을 수는 없을거야 울랄랄라
모든게 마음 먹기 달렸어 어떤게 행복한 삶인가요
사는게 힘이 들다 하지만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어 빙고

거룩한 인생 고귀한 삶을 살며 부끄럼 없는 투명한 마음으로
이내 삶이 끝날 그 마지막 순간에 나 웃어보리라 나 바라는대로

아싸 또 왔다 나 기분 좋아서 나 노래 한곡 하고 하나 둘 셋 넷

한치 앞도 모르는 또 앞만 보고 달리는
이 쉴새없는 인생은 언제나 젊을 수 없음을

알면서도 하루하루 지나가고 또 느끼면서 매일매일 미뤄가고
평소 해보고 싶은 가 보고 싶은 곳에 단 한번도 못 가는 이 청춘

산 속에도 저 바다속에도 이렇게 행복할 순 없을거야 랄랄랄라
구름타고 세상을 날아도 지금처럼 좋을 수는 없을거야 울랄랄라

모든게 마음 먹기 달렸어 어떤게 행복한 삶인가요
사는게 힘이 들다 하지만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어 빙고

피할 수 없다면 즐겨봐요 힘들다 불평하지만 말고
사는게 고생이라 하지만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어 빙고

거룩한 인생 고귀한 삶을 살며 북끄럼 없는 투명한 마음으로
이내 삶이 끝날 그 마지막 순간에 나 웃어보리라 나 바라는대로

아싸 또 왔다 나 기분 좋아서 나
노래 한곡 하고 하나 둘 셋 넷 아싸 빙고

거북이라는 그룹을 알게 된 건 "사계"를 통해서였다. 민중가요로만 불려졌던 사계를 힙합으로 부르는 그들이 신선하게 느껴졌고 나이도 좀 있어보이는 무게감도 있었다. 사계 원곡을 들으면 가녀린 여성 보컬의 목소리에다가 그다지 밝지 않은 가사 내용 때문에 아무 때나 부를 수 없게 되어 있었는데 거북이의 사계가 발표되고 나서는 노래방이던 콧노래던 누구나 다 흥얼거리는 노래가 되어버렸다.

인식의 전환이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어려운 길도 생각의 작은 차이가 쉬운 길로 만들어 내는 기적을 본다면 인식의 전환, 사고의 전환이란 언제 어디서 폭발력을 갖더라도 의미가 있다.

그런데 사계 이후로 거북이 노래를 한참 듣지 못했는데 한 두달 전이었나? 여기저기서 꽤 흥겨운 멜로디에 꽤 밝은 가사가 들려서 누가 부른 노래인가 찾아봤더니 거북이의 "빙고"였다. 뮤직비디오는 정말 눈뜨고 못봐줄만큼 재미없고 유치하게 만들어지긴 했지만 자기들끼리 신나게 놀고 부르며 핸디캠으로 후다닥 찍은 것 같은 뮤직비디오를 보고 있으면 그냥저냥 보고 넘길 수는 있다. 그런데 노래는 종종 내 마음을 전염시킨다.

가끔 기분이 그저그럴 때는 사랑타령만 하는 애잔한 멜로디를 들으며 침잠하는 것도 괜찮고 가사는 잘 안들려도 분위기를 가득 잡아주는 팝을 들어도 괜찮지만 뭔가 툭.툭. 털어버리고 싶을 때는 이 노래를 들어도 좋지 않나 싶다. 시종일관 헤어지고 만나고 울고 짜는 노래 가사가 팽배한 때에 그런 내용 없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겠노라고 노래하는 가사는 드물다. 중국에 있을 때도 중국 친구가 왜 한국 노래 가사는 늘 헤어지고 못잊고 아프고 슬프고 죽고 하는 가사 내용 뿐이었냐고 물으면 허허..하고 웃곤 했는데...

평생 행복하게만 살 수는 없어도 "행복하지 않을지도 몰라"하고 사는 것보다 "행복할거야. 행복해"라고 생각하고 사는 게 더 좋지 않겠나 싶다. 걱정은 잠시지만 자신의 의지는 평생이니까. 걱정은 늘 의지를 이겨내지 못하니까. 의지는 좋은 의미의 고집스러움일 수 있으니까. 괜히 망설이지는 말아야지.

"나 웃어보리라. 나 바라는 대로"

약속 :: -337

337! 337! 전자인간 337! 전.자.인.간.~ 3~3~7!!! -____-a

문득 오랜만에 어렸을 때 봤던 애니메이션 주제가가 떠올랐어요. 전자인간은 전기로만 움직이는 줄로 알았고 주인공들은 늘 아프지도 않고 힘도 세고 나쁜 악당들을 물리치는 존재로 알았죠. 그리고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구요.

그러다가 나이가 들면서 악당과 주인공의 차이점이 점점 사라지는 애니메이션도 접하게 되고 주인공의 고뇌와 아픔도 알게 되었죠. 어쩌면 애니메이션이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낸 게 아니라 사회가, 환경이 그런 분위기를 조장했을거라 생각해요.

지금 저는 전자인간도 아니고 마징가Z도 아니지만 때론 그 이들처럼 뭔가 완전무결한 존재, 혹은 고민을 해도 무한한 고민을 하는 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하죠. 사람의 그릇은, 역량은 타고 나는 게 아니라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게 분명하다고 믿고 있으면서도 어릴 적이나 지금이나 제가 가지고 있는 역량이나 힘에 대해서는 부분부분 과신할 때가 있죠.

사실, 그런 망상, 공상, 꿈, 이상들이 극대화 되는 게 언제냐면 내 마음의 파도가 잔잔해지고 내 머리 속의 소음이 잦아들 때 찾아오는 행복한 생각, '당신'을 믿게 되는 때 인 것 같아요. 판단이 생기고 분별이 생기면서 파생되어지는 많은 갈등과 번민은 고요함에 다 묻히게 되고 믿음에 묻히고 말죠.

뭐, 어쨌든 저는 나이도 잊고 제 현재도 잊고 사는 것 같긴 하지만 그게 철부지같은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내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는 것도 아니에요. 다만, 언제, 어느 때를 살아도 늘 성령이 충만한 상태로 에너지가 충만한 상태로 살고 싶은 의지의 한 단면이라 생각하죠.

'당신'과의 만남은 힘이 들고 지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요. 또 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나아지는 현실이 보이는 게 아니라 나아지지 않을 현실이 떠오르곤 하니 에너지를 낭비하는 게 되겠죠. 하긴, 그런 생각이 들지도 않아요. 무모한 게 아니라 제가 세월이 지나면서 달라지는 거겠죠. 가끔 어린 날의 치기가 올라오는 건 제 자신을 통제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감정에 치우쳐 실수하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당신'을 그리워하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다른 때, 다른 곳에 있지만 '당신'을 생각하는 느낌은 늘 현재에서 유효하고 그 유효함은 제 '미래'에 힘이 되죠.

제가 생각하는 '당신'은 누구고, '당신'이 생각하는 저는 누구일까요?

바람이 차졌어요. 계절이 변하면서 제 마음도 살짝 꿈틀대고 있구요. 봄의 에너지는 겨울이 품고 있던 에너지와 같을 테지만 발산의 폭은 강하지도 않으면서 깊은 맛이 있다는 생각이 종종 들어요.

봄맞이 준비 잘 하세요.
건강하고 행복하시구요.

2005년 3월 24일 목요일

약속 :: -338

약속을 지키는 것도 어기는 것도 참 어려운 것 같아요. 그렇죠? 그런데 약속은 지키는 게 더 어려운 것 같아요. 물론 저의 경우에는 어기는 것도 힘든 건 사실이죠. 약속을 못지키겠다는 엄살을 떠는 건 아니구요. 약속을 지키기 싫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랍니다.

울음을 뚝 그치면 맛있는 알사탕을 하나 준다는 말에 울음을 멈췄더니 알사탕을 주지 않을까 하고 불안해하는 속세에 물든 어린 아이의 마음같다고나 할까요? "울음을 그치면"이라고 하지 않았다고 "뚝!" 그쳐야 주는 것이었다고 하면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한, 그래서 오해하게 된 자신의 경솔함이 부끄러워지는 것이죠. 그런다고 울음을 그친 것을 후회해서 다시 울어야 하나요? 절대로! 그렇지 않죠.

열심히 해보죠.뭐. 사실 제가 어떤 모습이건 저의 좋은 점은 좋은 점이고 나쁜 점은 나쁜 점이죠. 그런 부분들은 계속 돌고 돌면서 바뀌기도 하고 지속되기도 하고 그렇게 보여지겠죠.

잘 될거라고 막연한 기대는 하지 말라고 하셨죠. 그 기대가 가져올 파장에 대해서는 누구도 책임질 수 없을테니 말이에요. 하지만 기대없이 삶을 사는 것 만큼 척박한 것도 없지 않겠어요? 나중에 닥쳐올 파동에 몸이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릴 것을 예상한다고 하더라도 척박한 삶보다는 훨씬 더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며 사는 것도 삶을 좀 더 길게 보면 잠깐일테고 그 삶도 또 생각해보면 그리 길지도 않으니 얼마 남지 않은 삶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보게요. 행복하게 사는 것만도 부족한 삶에서 힘겨움으로 시간을 보내는 건 억울할 것 같아요. 사실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뜻대로 되는 건 아니겠지만 해봐야죠. 그렇죠? :)

2005년 3월 23일 수요일

누굴까.

살아온 삶을 돌아봐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돌이켜 봐도 나는 무엇이 움직이고 있는 것일까. 나를 움직이는 주체는 나인가, 나 아닌 어떤 힘인가. 내가 나를 통제하지 못할 때도 있었고 내가 나를 완벽하게 통제할 때도 있었지만 그 어떤 상황에서나 내가 정말 나인지를 생각해보면 대답은 늘 아리송하다.

다만,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그 어떤 힘이 나를 움직이는 것이든 내가 내 스스로를 움직여 가는 것이든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후회가 없는 삶을 살도록 진행시키고 있다는 것. 내 선택에 늘 떳떳하고 망설임이 없도록 진행시키고 있다는 것.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누구냐.

약속 :: -339

미안해요. 고마워요.
미안해요. 고마워요.
미안해요. 고마워요.
미안해요. 고마워요.
미안해요. 고마워요.
미안해요. 고마워요.
미안해요. 고마워요.
미안해요. 고마워요.
미안해요. 고마워요.
미안해요. 고마워요.



사는 건 늘 그런가 봅니다.
미안한 일, 고마운 일들이 동시 진행형으로 붙어다니는...
기억해야죠. 마음에 새겨진 것들.

2005년 3월 21일 월요일

돈 벌기.

애니메이션을 해서 돈을 벌 수 있을까?라는 문제는 아마 수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품어 온 질문일 것이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기회를 잘 잡은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여전히 먹고 사는 문제를 벗어나지 못하며 힘들어 한다. IMF때 달러 가치의 상승으로 인해 OEM을 하던 사장들은 돈을 엄청나게 벌어 미국에 땅을 사고 집을 짓고 한국에서 한국 애니메이션의 기둥역할을 한다며 뻐기고 있다.

그와 반면에 실제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창작을 하는 이들은 여전히 돈줄이 막혀 힘들어 하고 있고 어떤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고자 무던히도 애를 쓰고 있다.

애니메이션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것일까? 애니메이션의 본질은 무엇일까? 한국적 상황에 맞지 않는 이상을 꿈꾸는 것도 우습지만 다른 나라와 다르게 창작을 하는 이들이나 순수하게 애니메이션이란 직업을 갖고 사는 이들이 어렵게 사는 상황도 우습긴 마찬가지다.

애니메이션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애니메이션을 규정짓는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애니메이션만 하면서 살아도 부족한 시간에 말도 안되는 상황을 맞서 싸워가는 건 버겁다. 하긴 그런다고 포기해서도 안되는 일. 누구나 다 일을 하는 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라면 애니메이션을 하는 것도 돈을 벌어 잘 살기 위한 수단임엔 틀림없다. 거기에 따라오는 부가적 산물들. 문화가치에 대한 부분, 사람들의 마음에 보다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부분들은 어쩌면 돈보다도 더 소중한 일이기에 힘들지만 해내는 지도 모르겠다.

돈을 벌어야겠다. 나를 위해 애니메이션을 하는 이들을 위해. 벌어서 즐거운 애니메이션, 즐거운 삶을 살기 위한 터를 만드는 데 쓰는 것은 중요한 이유다. 당당하게 꿀리지 않는 삶으로!

약속 :: -341

신은 당신에게 선물을 줄 때마다,
그 선물을 문제라는 포장지로 싸서 보낸다.
선물이 클수록 문제도 더욱 커지게 마련이다.
자연히 당신에게 평화, 즐거움, 행복을 안겨주려면
그 이상의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이제 당신은 달라져야 한다.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그 어려움 속에
감추어진 선물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선물이 없는 고난은 없다!

- 브라이언 트레이시의 <내 인생을 바꾼 스무살 여행>중에서 -

그렇겠죠? 선물없는 고난은 정말 없는 것 같아요. 사실 사는 게 모두 고난이겠죠. 그리고 그 고난은 어느 누구나 겪는 보편적인 것이자 특수성을 띄고 있구요. 그런데 그 안에 숨겨진 선물을 볼 수 없다면 고난에 체념하거나 포기할 수 있겠죠. 선물을 보지 못한다고 해도 그 고난을 이겨내겠다는 마음이 있다면 그 마음이 곧 선물인 셈이죠. 문제는 풀어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해결해야만 그 문제의 가치가 더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죠. 문제를 풀었을 때 다시 문제가 커지는 법은 없죠. 자신의 문제는 자신이 풀어야 하는 것이고 어느 누구도 도움을 줄 수 없지만 함께 고민하고 생각하는 건 가능할거라 생각해요. 힘내세요. 힘껏 힘내세요.

2005년 3월 20일 일요일

정리.

반나절 이상을 사무실 청소를 하고 작업한 데이터를 백업하며 보냈다. 아직도 한 군데로 다 모아놓지는 않았지만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된다. 청소도 해놓고 나니 깨끗해 보인다. 구석구석 아주 말끔하게 할 수는 없었지만 쌓인 먼지를 털고 오랜 작업 얼룩을 닦아내며 지난 시간들을 생각해 본다. 늘어난 작업 데이터 양만큼 사무실 곳곳에서는 먼지들이 출몰한다. 그렇지...사는 것도 그렇지... 쌓이는 연륜만큼 쌓이는 고집들, 흔적들. 언제나 쉽게 놓고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하던가, 언제 한 번 날 잡아 때라도 벗겨내는 작업을 정기적으로 해야지.

또 다시 일을 준비하고 챙겨야 한다. 늘어짐이 더 가지 않도록 하는 것도 좋은데 긴장이 너무 오래되어서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한 법. 이제 일의 호흡을 배울 때다. 단거리든, 장거리든 호흡 조절이 가장 중요한 것이니...

쓸고 닦고 정리하고 나니 개~운~하다. :)

약속 :: -342

마음도 몸도 전보다는 편해진 날,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는 건 밤새 기다린 따뜻한 햇볕을 마주하는 것과 비슷한 게 아닐까 합니다.

어제 밤새 피곤한 몸을 아무데나 누이고 나름대로 깊고 긴 잠을 잤습니다. 피곤이 쉽게 풀리지는 않겠지요. 그런다고 잠을 더 오래 청한다고 해서 피곤이 사라질리 만무합니다. 이럴 때는 일어나 몸을 움직이고 잠과 피곤을 털어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요. 이럴 때 햇살이 내가 머무는 공간에 가득 차도록 커튼을 열고 준비하는 것이야 말로 피곤을 이겨내는 좋은 방법 중에 하나입니다. 햇살은 쉬고 있는 세포들에게 에너지를 주는 영양제거든요.

이런 날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더더욱 좋은 일이지요. 뭐, 특별히 할 말을 하지 않아도 그 기운은 이따위 피곤쯤이야 다 날려버리지 않을까 싶은데...그렇지 않나요? 햇살도 말없이 내 어깨에, 머리에, 손 발에 내려앉아 잠시 머물고 가는데도 기분이 무척 좋아지던데요.

정말 오랜만에 가져보는 여유입니다.
기분이 좋아집니다.
미소도 마구 새어나옵니다.

감사합니다.

2005년 3월 19일 토요일

약속 :: -343

요즘은 글이고 말이고 모두 뒤엉켜서 잘 풀리지가 않는 느낌입니다. 뭐 언제 글 잘쓰고 말 잘하는 사람이었던 건 아니지만요. 특히 손으로 글씨를 써가며 글을 쓰는 건 더욱 헤매고 있습니다. Ctrl+Z를 쉽게 할 수 없는 이유도 한 몫 합니다.

그런데 사는 게 그런 거 아닐까요? Undo가 없는...

Digital 시대를 살며 여러 도구를 쉽게 쉽게 다루고 Undo마저도 쉬워지는 세상에서 삶 마저 쉽게 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아니, 쉽게 살려고 해도 쉬운 세상이 아니지요.

그래서 쉽지 않은 길을 쉽게 가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요령을 피우는 건 아니지요. 어려운 만큼 즐겁고 행복한 마음을 유지하려 한다는 뜻입니다. 그저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결과요? 그건 장담할 수는 없지요. 다만 예측할 뿐입니다.

수 많은 변수가 있는 삶의 상황도 마음을 비우고 꾸준함을 유지한다면 변수는 조금씩 줄어들테고 일상성에 빠지지 않는 부동수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오늘 낮 볕은 참 좋더군요. 그렇죠? 햇살 좋은 데 누워서 콧노래라도 흥얼거리고 싶은 날이었습니다.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여기는 나고야 중부 국제공항 대합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앞으로 한 시간여 후면 한국으로 간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무척 긴 느낌이다. 여러가지?를 처리하고 엑스포 현장을 돌아보며 조금은 지친 몸도 마음도 쉴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일본에 있었던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지만 즐거운 시간이었음에는 틀림없다. 물론 이 잠시동안의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 꽤 많은 시간동안 그리고 일본에 오기 하루 전과 같은 끔찍한? 상황을 겪어내긴 해야 했지만...

올 때 날씨는 꾸물꾸물 하더니 지금은 화창해서 어디론가 여행이라도 떠나고 싶다. 봄 볕은 그렇게 마음을 포근하게 하는 힘이 있다. 하지만 돌아가서 또 하나의 일을, 아니, 여러가지 일을 처리해야 한다. 또 시작이지만 전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다.

자~자~ 또 한 번 살아보자고~!!!

2005년 3월 17일 목요일

약속 :: -345

삼백사십오. 많을 수도 적을 수도 있는 숫자. 사실, 살다보면 숫자가 주는 삶의 영향은 참 크지 않나요? 그 숫자에 대해 초연해질 수 있다면 그게 바로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이고 중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때론 숫자들을 보면 시간의 더딘 흐름이 느껴지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어쩐지 마음에 조급함도 사라지고 오로지 한 생각만을 하는 때가 잦아지네요.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되었어요. 눈은 자꾸 감기며 잠을 부르지만 그럴 수는 없는 때입니다. 밖에는 부슬부슬 비도 내리고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조용히 할 일을 합니다. 마음에 누군가를 떠올리는 것도 제가 할 일입니다. 누군가를 위해 마음 모아 기도를 하는 일도...

비오는 밤에 커피 한 잔 어떻습니까?

2005년 3월 16일 수요일

고마움.

일이 거의 마무리 되어 간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면서 그간 함께 했던 이들에게 고마움이 생긴다. 참 어려운 길을 힘겨운 발걸음으로 지나왔다. 작업했던 이들, 얼마나 몸 고생, 마음 고생 했었는가. 고생한 만큼의 가치가 있을지 모르는 결과지만 그 가치는 각자가 확보해 가져갈 몫이다. 다만, 힘든 일 속에서 마음에 생채기나 생기지 않았길...그리고 몸도 상하지 않았길 바라는 마음 뿐이다.

그들의 공덕으로 내일 가게 되는 일본행도 잘 마무리 되어서 순조롭길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또 준비를 해야지. 그들의 공덕이 헛되지 않도록...

이 자리를 빌어 모두에게 다시 한 번 고마움의 인사를 전한다.

약속 :: -346

누군가 잠든 모습을 바라보면 많은 생각이 듭니다. 일에 지쳐 쓰러져 피곤해 하며 자는 모습, 입을 오물오물거리며 자는 모습, 몸을 뒤척이며 자는 모습, 꿈을 꾸는 듯한 표정으로 자는 모습, 아무런 미동도 없이 고요히 자는 모습.

하지만 이 많은 모습들 속에서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다면 그건 곤히 잘 때의 느낌, 표정이겠죠.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사람을 보면, 단잠을 곤히 자는 사람을 보면 왠지 작은 행복이 전해집니다. 사람이 자는 모습에서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 어불성설 같지만 때론 그런 느낌이 들면 계속 그 얼굴을 들여다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요.

깨어있을 때보다 표정이 덜한 얼굴을 보면서 그 사람의 미래를 들여다 보기도 하고 현재를 들여다 보기도 하고 과거를 보기도 합니다. 제가 본 것들이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중요한 건 아무런 사심없이 그 사람을 볼 수 있다는 거죠.

오늘 하루 기분 좋은 단잠에 들기 바랍니다.
그리고 잠에서 깨고 나면 기분 좋은 바람이 머리 속에 불기 바랍니다.

드디어...!

아직 일이 다 끝난 건 아니기에 기뻐할 일은 아니지만 조금 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생각만으론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던 일들이 조금씩 마무리가 되어가며 정리가 되어간다. 이 일이 끝나면 또 다른 일이 기다리고 있지만, 그래서 마음이 여전히 조급하지만 역시 바쁠 때일수록 마음 다잡는 건 필요하다. 바쁘다고 챙기지 못하는 게 이유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 이유는 그저 변명에 불과하다. 생노병사의 이치 하나 깨우치지 못하고 이런 일 하나 하면서도 바쁘다, 힘들다는 건 변명이다.

다만, 일이라는 건 개인의 힘으로, 단체의 힘으로 해낼 수 있는 한계는 분명 있는 것 같다.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고 하는 것도 만용이다. 일의 흐름과 일의 성격 그리고 일에 대한 직관이 있으면 어떤 일이든 순리대로 해갈 수 있다. 그 "순리대로"라는 게 쉽지 않은 걸 알지만 그 방법은 일하면서 터득할 수 있다. 일이 이번처럼 밀리지 않기 위해 화두를 품어봐야 겠다.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만 일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사실, 속으로는 앞으로 이런 일은 안해야지...라는 마음이 굴뚝같다. 물론 밥 한끼 먹는데도 숟가락과 젓가락, 밥그릇, 국그릇, 반찬그릇같은 도구가 필요하고 반찬을 준비하는 데도 시간이 걸리고 밥을 하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이 모든 도구와 재료를 갖추고도 그 한 끼의 밥이 맛있는지 없는지는 여전히 변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한 끼의 밥을 잘 먹기 위해 노력하고 준비하는 건 늘 할 수 있는 일이다. 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애니메이션만 만들며 살 수는 없는 일이겠지. 사람도 만나 흥정도 해야하고 밀고 당기며 속에도 없는 말을 해야하고 때론 화도 못내고 속으로 끌어 안아야 한다. 기획, 제작, 편집까지 모든 공정을 열심히 해내고도 마지막 작품은 아무 의미도 없을 수 있다. 그런 오차들을 끊임없이 줄여가고 노하우를 쌓아가는 일만이 평생 이 일을 할 수 있는 자산이 될 게다.

이제 남은 시간 마무리 하는데 총력을 다하고 이 일 마무리 됨과 동시에 다른 일도 또 마무리 해야지. 그렇게 일은 하나씩 마무리 되고 내 삶엔 나이테가 생긴다. 나이테가 진하게 생기는 건 그만큼 진통이 많았다는 뜻이고 그만큼 단단해진다는 뜻. 여전히 해야 할은 많고 가야할 길은 멀지만 "일하는 즐거움"만 놓치지 않기를 마음 살핀다.

2005년 3월 14일 월요일

봄 볕은 겨울 바람을 타고 왔다.

밖에 나가는 순간 뚝.뚝. 떨어지는 봄 기운에 마음이 주체를 할 수 없다. 모든 걸 다 놓고 싶다는 생각이 순간 일어나기도 하지만 사실, 그것보다는 내 몸의 세포가 꿈틀대는 움직이기에 그렇다.

여전히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기운이지만 낮에 떨어지는 봄 볕은 한 없는 나른함으로 가슴 울렁이는 현기증으로 행복함이 밀려온다.

이제 일도 마무리가 한창이다. 이젠 더 이상 미룰 시간도 재고해 볼 시간도 없이 순간의 판단이 늘 가장 옳은 선택이기를 바라면서 정리를 해가고 있다. 이 일이 끝나면 잠시 봄 볕의 노곤함을 느낄 자유를 확보해야 겠다.

문득, 아주 오래 전 너무 좋은 햇살을 온 몸으로 받으며 이런 날은 죽기에 참 좋은 날이다.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또 단지 누군가를 떠올리며 가슴이 최고로 벅차오를 수 있는 날이다.라고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우주의 한 귀퉁이에서 빛을 발하는 행성인 태양이 보내는 열기운에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오랜 교육과 미디어의 영향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최대한 비우고 또 비우고 느낀 감정임에는 틀림없다.

햇살은 지나갔고 또다시 눈을 뜬다.

약속 :: -348

날씨가 화창한 날엔 쏟아지는 햇살을 온 몸으로 받아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찰 때가 있습니다. 설령 지나가는 꿈처럼 느끼는 모든 감정이 사라질 수도 있는 법이겠지요. 꿈은 깨면 사라지는 걸 알지만 꿈을 꾸는 동안 만은 악몽이던 길몽이던 실제로 체험하는 느낌을 주지요. 평생 좋은 꿈만 꾸고 살았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 아주 어리석은 일이라는 걸 알지만 꿈에서 깨지 않기 위해 몸부림은 칠 수 있겠지요. 세상 그 어떤 일이 뜻하는 바대로 모두 이루어지겠습니까. 다만, 이루어지기 힘들어 보이는 일에 뛰어들어 사는 게 쉬운 일만 하며 사는 것보다는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딱 한 번인 삶이니까요. 이루어지지 않을 거란 걱정보다 이루어질 것이란 기대로 사는 게 훨씬 좋아보입니다.

TV에서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고백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군요. 코미디 배우라서, 연기가 어설퍼서 그렇지 언제나 마음 속에 있는 걸 꺼내 놓은 상황은 그것이 실제건 거짓이건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고백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마음 한 켠에서는 자신의 진솔한 마음이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겠지요.

매일 꿈에서 깹니다. 꿈에서 깨면서도 계속 잠이 오는 건 꿈을 꾸지 않고서는 살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달콤한 1분을 위해 힘겨운 10년을 허비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만 10년을 한결같이 살기 어렵다고 해서 시도조차 하지 않는 건 비겁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것이 만약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2005년 3월 13일 일요일

약속 :: -349

가끔은 대화를 나누거나 이야기를 나눌 때 어색한 느낌이 드는 건 두 가지가 있는 것 같아요. 서로 잘 모르는 사이일 때가 그렇죠. 서로 잘 모르니 얘기하는 내용도 딱딱한 얘기만 하고 형식에 얽매이는 것 말이에요. 또 하나는 서로 잘 아는 경우에도 그렇다는 거예요. 잘 아는데 왠지 마음에 대화의 내용이 별 것 없음에도 소통하고 있다는 행복감, 기분좋음에 어색함이 생기는 거지요. 그 어색함은 경직된 게 아니라 수줍음같은 거예요. 웃음이 스르르 배어나오는 그런 수줍음요.

사실, 사람들을 만나서 그런 느낌이 드는 경우가 종종 있지 않나요? 동성이든, 이성이든 편안 마음에 기분 좋은 웃음이 새어나오는 것 말이에요. 그건 얼굴을 대면하지 않아도 메일이나 편지, 메신저같은 도구로 대화를 나눌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이럴 때는 즉각적인 반응과 함께 조금씩 모아두었던 느낌도 함께 밀려오니 더더욱 그렇죠.

오늘, 기분좋은 웃음 웃어봅니다. 마음도 함께 따뜻해집니다.

2005년 3월 12일 토요일

약속 :: -350

어떤 말로도 표현은 힘들겠지요. 자신있다는 말은 부족한 스스로를 위안하는 것일테고 자신없다는 말은 혹여 있게 될 좋지 않은 변화에 자신이, 상대가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것일테죠.

살면서 확신을 갖는다는 건 그만큼 어떤 상황도 스스로 감내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닐까 싶어요. 그 의지가 꺽이는 순간 한 없는 나락으로 추락하기도 할테고 때론 꺽인 자리에서 새로운 의지가 돋아나기도 할테지만 어떤 것이든 삶을 잘 살아보기 위한 본능에서 비롯된 것 아니겠어요?

삶의 매 순간이 기회고 행복을 느낄 소중한 시간이지만 마음이 열려있지 못하고 스스로를 어떤 틀, 기준에 맞추는 순간 기회는 보이지 않고 소중한 시간도 금새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에요.

자신할 수는 없어요. 다만 노력하겠다는 자신은 할 수 있어요. 구질구질한 삶의 자락을 붙잡고 제 자신이 애써 태연한 척, 의연한 척 사는 건 싫거든요. 해보지도 않고 할 수 없다는 말을 하기 싫은 것처럼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고 지나가는 일은 하기 싫어요. 다만, 절대시간이 필요한 것이고 그 시간은 더 없이 즐겁고 행복한 것이며 더 없이 치열한 자기대면이겠죠.

오늘 거울 안에 저는 어제보다 조금 맑습니다.

햇살.

아침 햇살에 잠이 깼다. 어제 늦게까지 자료 정리를 하고 작업을 하다가 눈을 붙였는데 아침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내 잠을, 내 피곤을 가져간다. 오히려 상쾌한 느낌이 든다. 다만, 다시 시작된 아침에 시간의 경과를 새삼 느끼며 마음이 살짝 급해진다. 이제 며칠 안에 모든 일을 마무리 해야한다.

마무리가 잘 되면 함께 한 이들의 노력과 정성, 공덕때문이겠지만 잘못되면 진행을 잘못한 내 탓이 크다. 이번 일은 나에겐 타산지석이 될 테고 소중한 경험이 될 게다. 노력은 그 자체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안다. 하지만 함께 한 이들의 기운이 한데 응해져서 노력한 결과가 헛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내 실수, 나의 미숙함이 타인들에게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오늘 햇살은 왠지 경건하다. 급한 마음을 비우고 다시 또 바짝 진행의 힘을 가해야겠다. 한꺼번에 수 많은 일들이 생기면서 시간도 역시 그 일을 순차적으로 처리할 때와 같은 느낌처럼 오랜 시간이 흐른 것만 같다. 삶을 좀 더 길게 살았다.

차 한 잔 마시고 시작해야겠다.

2005년 3월 11일 금요일

일본에서 돌아옴.

갔던 일은 그럭저럭, 묘한 상황의 어울림으로 인해 쉽지 않은 걸음을 조금 쉽게 해서 돌아왔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란 서로 밀고 당기는 가운데 생기는 화학작용임을 알지만 이번 일은 그 화학작용이 그나마 숨 쉴 틈을 생기게 해주니 다행일 뿐이다.

점점 막바지로 향해가는 작업들에 다른 누수가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 그건 여전히 나를 포함한 모든 작업자들과의 호흡과 에너지 모음에 달려있다. 그건 천운이 아니라 노력.에 달린 일이다.

돌아오면서 또 한 가득 일을 가지고 왔다.

2005년 3월 10일 목요일

약속 :: -352

언젠가 말씀하셨죠. 자유로움이 좋다고...
그래서 망설임을 더 길게 가질 수도 없다고.

하지만 또 얘기했었죠. 긍정적 사고방식으로 전환을 하겠다고...
그 말에 전 냉철한 사고가 필요할 때라고 생각을 했구요.

아무리 냉철하고 아무리 긍정적이라고 하더라도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여전히 자유로움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방종도 아니고 방치도 아닌,
자.유.

많이는 아니지만 어느덧 시간도 훌쩍 지나버리고
다시 또 마음 챙겨 자신을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
쉽지 않은 길임을 알지만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막막한 어두움보다
약간의 빛이라도 보인다면 충분히 앞을 향해 갈 수 있겠지요.
그 빛에서 만날 지점은
어쩌면 지금보다도 더 큰 자유와 편안함이길 바래구요.

오늘은 비가 내려 조금 쌀쌀합니다.
부디 건강 조심하시고 늘 행복하시길 바라겠습니다.

2005년 3월 6일 일요일

우직함.

9일날 일본에 나가 시사를 하는 문제 때문에 예상되었던(?) 비상사태가 발생했다. 일을 하다보면 여기저기에서 말하는 게 서로 엇갈리고 달라지면서 서로의 희비가 교차하기도 하고 감정이 서로 엉켜 불만이 쌓이기도 하겠지만 일은 일. 거기에 휘둘리는 순간 내게 작품을 만드는 보람은 알량한 자존심으로 인해 별 것도 아니게 되고 만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가식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지만, 그래서 더욱 솔직한 삶을 살고 싶지만 이 사회에서 사람과 사람의 솔직함이란 나를 무상으로 상납하는 개념에 다름 아닐 수 있다. 이렇게 적고나니 참 어이없는 웃음이 나긴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아주 오래 전부터 내 나이 이상 살아온 사람들을 보면 종종 신기함을 느끼곤 했다. 어떻게 살아왔을까, 어떤 삶의 질곡이 있었을까, 어떤 삶의 목표로 저렇게들 살아왔을까...하는... 사람이 사람 그 자체의 가치만을 느끼며 공유하고 사는 것도 어려운데 수 많은 가치를 위해 자신의 안위를 위해 사는 건 더 어려운가 보다. 아니, 삶의 본질을 꿰뚫어 사는 게 어려우니까 보다 쉬운 걸 하다가 일들이 꼬이는지도 모르겠다. 그 꼬인 실타래를 풀기엔 때가 늦었거나 만성적 생활의 탄력으로 떠밀려 오고 있는지도 모르지. 내가 그렇게 느낄 때가 있어서 이런 생각이 닿는지도 모르겠다.

뭐, 쓸데없는 말 천 마디 보다 태산같은 움직임 한 번이 필요할 때다.

약속 :: -356

가끔 꿈인지 생시인지 비몽사몽간에 하루하루를 보내기도 하지만 중요한 건 꿈을 꾸는 것도 결국 내 의지의 표현이고 내 생각의 활동이라는 것.

얼마 전 삶을 사는 게 꿈을 꾸는 것 같다고 그 꿈에서 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이와 대화를 했다. 어쩌면 장자의 '나비의 꿈'을 빌어 쓰지 않더라도 사는 게 꿈같을 때가 있지 않나? 그 꿈이 내 오감을 통해 인식이 되건 되지 않건 결국 꿈을 꾸던 현실에 붙어 살 건 역시 자신의 의지다.

꿈이 헛된 몽상이 아니고 현실이 치졸한 삭막함만 아니라면 그 둘은 반드시 통한다고 믿고 있다.

열흘이 지나고 보이는 건 흔들리는 마음이 아니라 더 자세히 나를 들여다 보게 되는 마음이다. 역시 꾸준함이란 어렵지만 그렇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2005년 3월 5일 토요일

이런저런...흠;;;

1920 * 1080p, 60frame으로 해달라고? 거 참 웃기는 사람들일세. 개발단계에 있는 제품을 활용하기 위해 아무런 통보도 없이 format을 변경해 달라는 게 상식에 닿는 이야기냐고. 그냥 우기기만 해도 50% 먹고 들어가는 사람들이란 건 알지만 해도 너무한다. 뭐 일정이 delay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지만 그것 역시 상대가 자초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다

'을'은 '갑'에게 따지면 안된다는 사소하지만 큼직한 현실을 이해 못하는 바 아니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바 아니지만 상황의 정확한 판단은 불가피한 것. 그걸 슬기롭게 해결해가는 게 능력있는 사람이겠지만 능력을 평가받기 위해 능력 이외의 것들을 활용하는 건 그 이후에 상황을 다시 어려운 코너에 몰아 넣는 출발이 되기도 한다.

나는 '을'. 최선을 다해 오늘도 달린다. 달리다가 잠시 졸기도 하지만 졸면서도 달린다.-_-;;;

2005년 3월 3일 목요일

약속 :: -359

이제 겨우 며칠이 지났다. 그런데 머리 속, 마음 속 시간 개념은 꽤 흐른 것만 같다. 숨 쉬는 횟수가 많아져서 그런가? 숨을 참는 시간이 길어져서 그런가?

정말이지, 사람의 마음은 평생 여여(如如)하지 못한 건 사실인 것 같다. 평상심을 유지하는 게 어렵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것이지만 어렵다고 해서 평상심을 유지하는 노력을 게을리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마음을 바라보고 챙기는 것은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이득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돈이나 밥이 나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지루한 자기와의 싸움 이외엔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다.

가끔은 왜! 내가 이런 싸움을 해야 하는지... 다 툭~ 털어버리고 싶지만 그것 또한 회피하고 싶다는 자기 변명에 다름 아니다.

외부 환경에 좌지우지 되는 사람의 마음이 다시 역으로 외부 환경을 조율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 방법은 역시 마음을 조율하는 것 밖엔 없는 것 같다. 백날 입으로 떠들어 봐야 마음을 들여다 보고 냉철한 이성을 갖추는 건 실지로 해보지 않는 한, 부딪히며 깨지고 이겨내보지 않는 한 죽었다 깨어나도 해낼 수 없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그 싸움도 역시 즐거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떼어 놓길...

컴퓨터 맛 가다.

맛이 간 컴퓨터와 씨름하는 건 정말 고역이다. 공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인터넷엔 여러 정보가 떠돌지만 믿을 만한 걸 찾아내는 것도 안목이 없으니 힘들고...;;; 결국 아는 만큼 시도해보고 고쳐내야 하는데 시간이 급한 지금엔 더더욱 고역이다.

뭐가 문제일까? 고민한다고 해서 뾰족한 답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생각은 안 할 수가 없다. 궁굴리다 보면 답이나 나올까나?

아...싫다. -_-;;;; 쩝~

긴장의 끄트머리.

일주일 정도 후면 작업한 데이터를 들고 일본에 갈 참이다. 이제 일정체크를 한다는 건 무의미하다. 작업이 중간에 틀어지지만 않고 제대로 나오기만을 온 마음으로 바랠 뿐. 기도는 행동과 결합되어야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 그 기도는 절대자에 향한 기도가 아니라 어쩌면 스스로가 덤벙대지 않고 쫓기는 시간에 허투루 처리하지 않으며 급해지는 마음과는 반대로 차분해지기 위한 마음 다지기와 같은 것일 게다.

사실, 조금 멍-한 느낌이 남아있긴 하지만 지금은 그 어떤 이유도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현실엔 핑계란 있지 않다. 인정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만 있다. 핑계나 변명은 이 현실에서는 늘 언제나 보류인 채로 서랍에서 묵고 있다. 가끔 꺼내서 내밀고는 투정이라도 하고 싶다.

제대로 마칠 수 있을까.....;;

2005년 3월 2일 수요일

약속 :: -360

아주 미세한 느낌을 갖기란 살면서 쉬운 일이 아니다. 온 세포가 다 열려있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야만 가능한 일. 물론 아주 오래(?) 전 바람을 보고 소리를 들었던 때도 있었지만 그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내 망상 속에서 일어난 일인가 싶을 정도로 기억이 가물하다. 그 이후론 그만큼 작은 느낌까지 받아들이는 경우가 없었던 듯 싶다. 그렇지... 그런 경험 역시 내 머리의 기억회로가 작동되어야만 알아차리는 것이니 무의식적으로 느끼면서도 모르고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한다면 손가락을 타고 전해 들어오는 무언의 합의가 분명 느껴질 것이다. 느끼지 못한다면 진심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일 게다.

머리가 점점 차가워지면서는 내 감정을 의심하게 된다. 엄밀히 말하면 의심이 아니라 엔돌핀이 다 빠져나가고 심장박동이 잦아들면서 더 명확하게 보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면서도 마음이 여전하다면 그건 현실에 몸 붙이고 사는 동안엔 확실한 사실이 될 터다.

조금씩 보여가는 재미를 쉽게 놓치진 않는다.

...새로운 호흡

사무실에 전에 알던 동생과 함께 손님들이 다녀갔다. 계원 출신 예종 졸업생도 있고 예종 재학생도 있다. 다들 실력들이 좋은 사람들이다. 이구동성으로 하는 이야기는 "작품을 하고 싶다"다. 먹고 살기 위해, 입에 풀칠하고 살기 위해 부득불 학습지 일러스트를 하고 있다는 얘기며 이젠 보기만 해도 역겹다는 삐그덕 거리는 단순한 움직임의 플래시들... 직접 뛰어다니며 일을 만들고 진행하고 싶어도 그러려면 그림을 포기해야 하는 삶 터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며 악순환이 거듭되는 상황들...

문득 애니메이션을 시작한 이유를 스스로에게 묻고 싶어졌다. 그리고 첫 마음과 지금 마음은 어떤 차이가 있고 어떤 보람을 느끼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들과 대화하며 말이야 번듯하게 "애니메이션의 미래"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고 스스로 떠들고 있지만 현실은 내가 처음 애니메이션을 하던 때보다 더 나아진 건 없는 것 같다.

지금의 상황은 현실 조건이 나아진 게 없음과 동시에 애니메이션의 가치에 대해서 소홀한 점이나 혹은 알고 있음에도 문제점을 그대로 방치하거나 스스로의 의지를 현실 조건 탓으로 돌리는 문제점들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물론 열심히, 꾸준히 작업을 하고 작품을 만들며 애니메이션이 현실에 녹아들 수 있도록 노력하는 적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에겐 지금 적은 글들이 결례가 될 수 있음을 안다.

방법은 무엇일까. 아무리 세계 각지를 떠돌며 새로운 공기를 들이 마시며 숨을 쉬어도 공기의 새 맛을 분별하지 못하면 그냥 이 자리에서 숨을 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니, 혹 어쩌면 벗어날 방법도 없는, 육지의 끝머리 조차도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서 푸념만 늘어놓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보기에는 애니메이션은 여기저기에서 만들어 지고 있고 일상 속에서 아주 익숙하게 애니메이션을 접하고 있다. 그게 지금 내가 하는 일과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 것일까.

새롭게 숨을 쉬지 않으면 이미 탁해진 공기를 충분히 마시면서 면역이 생길 터. 노력은 "열심히!"도 중요하지만 보다 "빨리!" 현실을 이겨내거나 이상을 이루어내는 데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꾸준함은 우주가 생긴 이래 지금까지 유효한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자신의 자유의지와 무관하게 삶을 콘트롤 당하는 지금 사회에선 꾸준함이란 "시간"과의 싸움일 수 있다. 그 시간은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보다 나은 가치 실현를 위해 최대한 빨리 한 걸음 떼어놓는 것.

그럼, 난 "무언가"는 하고 있는 것인가? 숨은 새롭게 쉬고 있는가?

내 삶의 가치가 애니메이션 어느 지점엔가 있다면 그 가치는 도대체 뭐란 말이지?

2005년 3월 1일 화요일

약속 :: -361

겨우 며칠인데 그 며칠이 꽤 오랜 시간으로 느껴진다. 이런 느낌은 사실 가끔 느끼는 익숙함 같은 게 있다. 성급함이 진실의 눈을 가리고 편협한 시선이 진실의 마음을 덮는다. 가슴을 뜨겁게 달구는 것도 어렵지만(때론 무척 쉬울 때도 있지만...) 머리를 차갑게 식히는 것은 더 어려운 것 같다. 단, 차가운 이성이 뜨거운 감성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일 때는 더더욱 그러함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상심을 유지하는 일은 참 재밌다. 그 즐거움을 보다 더 오래 느끼고 싶다. 줄타기를 하는 듯이 슬쩍슬쩍 좌우로 위아래로 움직이는 마음을 바로 보는 건 한 편으로 꽤 많은 용기가 필요하지만 보기 시작하면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감히 단언하건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