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 30일 토요일

퇴출.

"짤렸다"는 말이 가장 편하게 전달할 수 있는 말인 것 같다.

어떠한 이유도 어떠한 변명도 필요없는 이 때, 짤렸다는 말은 모든 걸 쉽게 설명하고 표현할 수 있는 것 같다.

짧지만 긴, 길지만 짧은 시간 애써 노력한 시간에 대한 후회는 조금도 남아있지 않다. 내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던 시간이었으니까. 사라진 기회는 다시 또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

기대는 그 만큼의 실망을 만들어 냄을 잘 알고 있지만 기대도 실망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순인 걸까? 잘잘못에 대한 부분은 객관적 사실로 존재할 테고 그건 이 삶이 끝나기 전에든, 끝난 후에든 제대로 알아질 날이 올 거라 생각한다. 물론 그 동안 또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겠다. 최선은 내게 있어 마지막 보루인 셈이니까.

2005년 4월 29일 금요일

컴백 홈.

긴 여정을 마치고 어제 밤 9시 30분에 도착.
도착 후에 짐 찾고 사무실로 오고 나니 11시가 훌쩍 넘다.
오랜만에 누나 집에 와서 취침.
몇 개월 만에 방 바닥에 누워 봄.
너무너무 이쁜 조카님들과의 재회.
늦은 시간에 먹는 라면. 다 살로 가겠지만...-_-;

다시 시작해야 할 일들.

2005년 4월 27일 수요일

약속 :: -303

쉽게 벗어버릴 수 없는 굴레, 쉽게 벗어버릴 수 있는 굴레. 그 사이에는 아무런 경계가 없지요. 할 수 있다 없다의 문제는 때론 어렵게, 때론 어렵게 결정이 나기도 하지요. 늘 웃고 살아도 늘 마음 편하게 살아도 그리 길지 않은 시간, 큰 호흡으로 한 번 숨을 쉬면 한달음에 끝까지 달려갈 수도 있는 시간. 당신의 마음에 큰 평온이 찾아오길 염원합니다.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시간과 그 시간 안에 잦아든 많은 상념들. 이젠 편히 놓고 환한 미소 가득하길 염원합니다. 어려운 일도 쉽게 생각하면 쉽고 쉬운 일도 어렵게 생각하면 어려워지는 알 듯 말 듯한 삶의 공식을 잘 풀어내길 진심으로 염원합니다. 혼자서 함께 풀어가고 엮어가기를...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마음에서부터, 보이지도 않을 만큼 큰 마음에서부터 크고 작은 기쁨과 행복이 찾아지길 염원합니다.

건강하세요. 그리고 꼭 행복하세요.

상해 도착.

북경에서 상해로 도착. 오는데 비행기가 1시간 연착되는 바람에 상해에 늦게 도착했다. 연착된 이유는 16-7세 되는 아이가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는데 부모님이 비행기표를 끊어 함께 집으로 가려고 하는 도중 티켓팅하는 곳과 비행기 사이에서 아이가 사라진 것이다. 비행기까지 탔었다고 하는데 이륙을 할 때 보니 보이지 않는다. 그 아이가 가진 짐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그 짐에 혹여라도 위험물이라도 들었을지 모르는 일인지라 모든 승객들이 각자의 짐을 가지고 내리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내려서 한참을 있다가 경찰과 직원들이 비행기 안을 샅샅이 검사한 후 겨우 출발할 수 있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항의와 상황에 대한 어이없음에 대해 농담으로 말하는 소리가 가득했는데 나도 이런 경우는 처음 겪는지라 좀 황당하기도 하고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무사히 도착!!!

상해미술영화제작소 근처 예전에 묵었던 선조우따시아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상해 하늘이 흐리다. 바람은 상쾌하군.

2005년 4월 26일 화요일

혀가 꼬이고 생각은 막히고...

뭐...통역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이겠냐마는 오늘은 세 번째 미팅 중에 갑자기 중국어로 말하는 게 막막해지기도 하고 통역도 잘 안되는 걸 느낀다. 공부를 게을리 했던 게야...음..그렇지..;;; 겨우겨우 이야기를 끝내고 잠시 숨을 돌리며 편한 얘기를 하는 중에는 다시 입이 좀 움직이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오늘 몇 가지 소득이 있긴 했네. 그걸 어떻게 잘 엮어가는 지가 문제인 거지. 사실 기회나 상황들은 늘 내 주변에서 맴맴 도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일단 생각을 좀 쉬게 하고 에너지를 충전 좀 해야겠다.

세번 째 미팅이 끝나고 난 후 북해공원 옆에 있는 주점 거리를 갔는데 상해에 있는 신천지와 비슷한 느낌이다. 좀 덜 세련된 느낌이긴 하지만 많은 중국 사람들, 많은 외국 사람들이 여기 저기 한데 섞여 술을 마시며 야경을 즐기고 있다. 그 곳에 끼어 간단하게 목을 축이며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눴다. 오랜만에? 가져보는 여유로움이랄까?

늦은 저녁 일본 신칸센 열차 사고 소식을 접했다. 일본에서 중국으로 온지 벌써 3일째 되어가는데 좀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사고를 당한 사람과 그 가족들을 생각하면 참 안됐다...싶다. 45년 만의 대형 열차 사고라고 하는데 사상자가 더 늘어나지 않길 바랜다.

오늘 베이징은 참 건조하고 덥다. 밤도 역시...

2005년 4월 25일 월요일

...그렇군.

베이징은

황사가 별로 없다.
엘란트라(車)가 많아졌다.
사람은 여전히 많다.
자동차도 여전히 많다.
한국보다 덥다.(왜 덥지? 서울보다 위쪽인데...)
길거리에서 파는 간식거리는 여전하다.
역시 물건을 살 때는 흥정이 재밌는 곳이다.
외국인이 많다.

내겐 아직 낯선? 동네다.

2005년 4월 24일 일요일

약속 :: -305

사람과 사람을 묶어주는 것은 뭘까요? 바라는 것과 현실이 다른 걸 알고 그게 좋지 않음을 알면서도 그게 일치가 되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요? 작은 행복과 큰 행복이라는 기준이 있긴 할까요? 기분좋은 만남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렇게 사는 건 괜찮은가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또 무엇이 있을까요?...............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에 기대어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해봅니다.

장소 이동...

오후 1시 즈음해서 베이징에 도착했다. 도쿄에서 한 4시간 정도 걸리는 것 같다. 도쿄에서는 호텔이더라도 인터넷이 안돼 참 답답했었는데 이번엔 무슨 일이 있어도 인터넷이 되는 곳을 찾아야 한다고 부탁해서 결국 조금 허름(?까지는 아니어도)하지만 인터넷이 되는 곳에 묵게 되었다.

일행 중에 베이징에 처음 오는 분도 계시고 해서 짐을 풀고 왕푸징에 나가 구경도 좀 하고 리우리창을 둘러본 후 우다코우에 가서 한식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내일부터는 또 빡빡한 일정이 있어 조금 일찍 숙소로 돌아와 내일부터 해야할 일에 대해 상의를 했다.

이상하게 중국에 오면 편한 느낌을 받는데 생각해보면 이 나라 말을 할 줄 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닌가 싶다. 물론 일본도 그다지 불편한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중국은 어쨌든 참 편하다. 요즘 중국어 공부를 게을리 해서 잘 안들리기도 하고 말도 버벅대고 있는 중이긴 하지만 그래도 겨우 해내고 있긴 하다. 다른 나라 말을 구사할 줄 안다는 것은 때론 참 편리한 것 같다.

나리타에서 베이징으로 올 때 입국장에서 한 젊은 중국 청년이 자신의 장모님이 일어를 하지 못한다며 베이징에 내릴 때까지 부탁을 한다. 이 아주머니는 아주 시골분 같긴 한데 딸을 잘 교육시키고 일본까지 유학시킨 후 출산한 딸과 손자를 돌보려고 멀리 일본까지 왔던 것이다. 장모님을 아주 성실하게 챙기는 사위나 사위를 아들처럼 생각하는 장모님이나 또 이국타향까지 와서 딸과 손자를 돌보는 어머니의 마음이나 이래저래 참 곱다. 베이징까지 무사히 모셔다? 드렸더니 언제든 자신의 집근처나 일본에 오면 들리라며 전화번호를 달라 하신다. 한사코 만류하고 마중나온 친척과 함께 들어가시게 했다.

또 오는 중에 비행기 안에서는 나보다 2살 많은 일본남자와 결혼한 중국여인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왔는데 새로운 지식도 얻게 되고 새로운 삶도 얘기 듣게 되었다. 서로가 아무런 가식없이(속으론 어떨지 몰라도) 편하게 묻고 대답하는 그런 대화는 즐겁다.

말이 이곳저곳 정신없는 망아지 마냥 정신없이 튄다. 자야지...-_-

2005년 4월 21일 목요일

약속 :: -309

시간이 많이 흐르진 않았어도 꽤 빨리 흘러갔네요. 알아가고 이해하는 게 사람 사이에서 무척 중요한 일임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쉽지 않은 일이죠. 대화는 해도 각자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환경들이 다를 테니까요. 그래서 어쩌면 더 흥미진진할 수도 있겠고 어떤 경우엔 피곤할 수도 있겠고...그렇겠죠. 그래도 꽤 괜찮은 일인 것 같아요.

시공간을 다르게 살면서도 하나로 묶이는 인식의 띠가 있다면 혹은 마음의 범주에 교집합이 생긴다면 많이 수월하기도 하겠죠. 자신의 마음을 확장시키는 것은, 사고를 확장시키는 것은 비단 자신의 꿈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교집합의 범위를 늘려가는 작업이기도 하죠. 교집합이 늘어날 수록 각각의 범주는 더 커지기도 하구요. 그게 성장이나 발전이 아닐까 싶네요. 교집합이 없는 독자적인 범주는 이기심이나 고집으로 나타나기도 할테니까요.

그러고 보면 모두가 꼭 밀접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고 해도 우주의 모든 존재들은 서로의 교집합을 소통 매개로 해서 조금씩은 다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의 비약도 해봅니다. 그게 사는 것인가 싶기도 하구요.

...마음을 통해 뇌를 움직이고 뇌가 신경줄기를 따라 손가락을 움직여 타이핑을 하게 되고 키보드는 전기적 충격을 보내서 컴퓨터에 글을 쓰게 하고 그 글을 유무선을 통해 그대가 읽을 수 있는 글로 전환이 되니 한 마음 움직여 수 천, 수 만가지로 상대와 소통할 수 있다는 게 새삼 신기합니다.


황사가 심하다고 하네요. 건강 유념하세요.

여긴 Nagoya...

엑스포 일로 나고야에 왔다. 이로써 세번째 방문이다. 그래서인지 나고야가 낯설지 않다.-_-; 주변 지형지물을 보고도 길을 잃지 않을 것 같다. 물론 활동 반경은 좁지만...

작은 호텔이라 그런지 인터넷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피씨방을 찾아왔다. 이곳엔 중국애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갑자기 타국땅에서 동향인을 만난 느낌.-_-; 이것저것 물어보고 인터넷도 잘 쓰고 있다. 일본어도 좀 하면 좋겠다는 바램도 생긴다. 지금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와따시와 니홍고 와까리마셍", "조또마떼 구다사이", "쓰미마셍", "아리가또 고자이마시다" 등의 필수용어.-_-; 글자는 읽기가 너무 어렵지만 듣는 건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겁없는 자신감.-_-;;; 하나도 들리지 않지만!!!

엑스포장에서 코지 야마무라 감독관을 찾았다. 전시되어 있는 건 애니메이션 기초에 관련된 전시품과 그의 원화, 그림들... 그런데 때깔이 좀 다르다. 그리고 그림도 좋다. 멋도 모르고 사진을 찍다가 그곳에서만 사진을 찍으면 안된다고 제지를 당했다. 물론 몇 장 건지긴 했지만...-_-v 자유로운 선, 감각적인 그림들을 보니 턱도 없는 그림 실력을 가지고 있는 내가 애니메이션 만들고 싶다는 초심이 살아난다.

다른 전시관들은 그냥저냥... 원래 기업관 전시영상이나 전시물들이 좋다고 그러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 줄서는 것도 시간이 안되고 해서 보진 못했다. 살짝 아쉽지만 방법은 없지.

내일은 도쿄로 아침 일찍 이동해야 한다....끙차~

* 이 곳 피씨방은 첫 한시간은 300엔인데 음료수는 얼마든지 무료다. 좋다. 옆 사람들을 보니 만화책도 공짜인 듯 싶다. 읽을 수 없음이 아쉬운 때. 뭐..하긴 피곤하기도 하다. 어여 가서 자야지.

tip? tip!

3개월 이후 아기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면 울다가도 그친다고 한다. 울 때 울음소리를 녹음해 두었다가 아이가 울면 들려줘보자. 신기하게도 아이는 울음을 그친다. 친숙한 목소리에 집중을 더 하게 되고 아이들은 자신의 목소리에 반응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다른 아이의 우는 소리를 녹음해 들려주면 반응조차 없고 계속 울어버리지만 자신의 우는 소리에는 신기하게도 울음을 그친다. 아이를 키우며 힘들어하는 친구 녀석들, 혹은 갓난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이 방법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아이를 달래고 어르느라 진을 빼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친구녀석에게 알려줬더니 진공청소기 소리를 들어도 울음을 그친다고 한다. 아이를 멋지게 키우고 있다.-_-;

2005년 4월 18일 월요일

새벽에 있었던 일.

새벽에 렌더링을 걸어놓고 잠시 눈을 붙였는데 약간 소슬한 바람이 부는 것 같은 느낌에다가 무척이나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잠에서 깼다. 비바람이 유리창을 깨트릴 기세로 불어 닥치는 데다가 천둥, 번개가 요란하다. 새벽잠도 달아나고 어리둥절하고 슬쩍 무서운 기분도 들었는데 새벽에 대화할 사람 있어 비오는 얘기를 한참 하다가 보니 비바람이 흔적도 없이 가고 없다.

잠에서 깬 김에 마저 작업 몰아서 하고 겨우겨우 몇 개를 끝냈다. 할 일이 또 있어 마음은 그리 편치는 않다. 새벽에 얘기하던 이도 잠 자러 들어가고 함께 작업하던 이도 쇼파에 몸 붙여 잠을 청하고 고요한 새벽에 비냄새 물씬 나는 아침을 상쾌하게 맞이하고 있었다.

아침이 되어도 새벽처럼, 마치 저녁처럼 하늘은 구름을 거둘 줄 모른다.

2005년 4월 16일 토요일

살 빠지는 그림.

정말일까? 살빠지는 그림


하루에 3번 보면 0.34키로가 빠진답니다~
식욕감퇴시키고, 정신을 온화하게 해서,
위와 장의 운동이 활발해 지는 그림이랍니다.
출처 : http://blog.naver.com/comsnake/80011638209

정말일까? 하루에 3번 이상 봐도 되는 걸까?
그림을 보면서 살이 빠진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_-a

약속 :: -315

주말이네요. 토요일에 창으로 스며드는 햇살은 평일보단 좀 더 괜찮은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햇살에 얼굴을 부비며 늦게까지 잠을 뒤쳑여도 좋을 듯한 느낌. 바람도 없이 고요한 날, 무슨 일을 시작하기 전 아주 편안한 느낌을 가져봅니다.

언제 차분히 차를 마시며 얘기 없어도 편하게 마주 앉아보고 싶네요.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상처받지 않는 법.

이 바보야!
라는 말을 들었을 때 화를 내면 인정하는 셈이된다.
천재가 바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웃고넘어가지 아니한가.
부자가 거지라는 말을 들었을 때 피식하고 웃고넘어가지 아니한가.

바보가 아니라면 단 일퍼센트도 인정하지마라.
좋은 방법 중의 하나는 무시하는 것이다.

무시하기 위해서는 호쾌하게 웃으며 감싸버리는 것이다.
발끈하고 답변해봐야 이미 인정한것이다. 발끈하는 순간 걸려들었기 때문에.

예의란 피차 마음 약한 것들끼리 과도히 조심하는 따위가 아니다.

내마음이 허락하지 않는 한 나는 상처받지 않는다.

http://blog.empas.com/ahaspert/7146275

'내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 한 나는 상처받지 않는다' 멋진 말이다. 주체적 삶을 사는 것. 자유로운 영혼을 갖는 것. 남들 말에 휘둘리지 않는 것. 사실 이런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신이 꽤 많은 경험치가 있어야 하고 꽤 괜찮은 실력이 있어야 한다. 아무 것도 없으면서 피식~ 웃고 넘어가는 건 무시가 아니라 일종의 자조다. 혹은 패배감이다. 실력을 갖춘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차피 살아가는 인생, 그조차도 없으면 어떻게 산단 말인가. 마음의 여의보주를 마음대로 부려 쓰기 위해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아는 데도 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2005년 4월 14일 목요일

약속 :: -317

바람이 차네요. 봄이면서도 가을을 느끼고 있어요. 시간은 그리 오래지도 않았는데 바람은, 목련 잎은 왜 그리 가을 같은지... 그런데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봄은 여전히 제 마음에 있음을 압니다.

차가운 날씨에 건강 조심하세요.

짜증 낼까? 말까?

마무리 작업을 눈 앞에 두고 최종 렌더링이 걸리지 않는다. 하드 디스크도 넉넉하게 비워뒀는데 렌더링 걸리는 중에 계속 컴퓨터가 종료된다. 이런~ 왜 이러지? 아무리 이유를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 없다. 계속 컴퓨터 키보드, 마우스만 만지작 만지작...

짜증을 내고 싶은 마음도 없는데 짜증을 내버릴까? 그럼...컴퓨터가 내 심정을 좀 이해해줄까? 이것만 마무리 되면 바로 다음 일을 들어갈텐데...

생각보다(예상하고 있긴 했지만) 리테이크 작업은 금방 끝났다. 물방울 이미지 하나 뽑아내는데 시간이 꽤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한 셈. 같이 일해준 민철씨에게 감사를 보낸다. 이제 렌더링만 걸리면 사운드 작업 리테이크에 돌입할 텐데...

해야할 일은 아직도 여전한데 컴퓨터가 말을 듣지 않으니....쩝~

컴퓨터를 놔두고 밖에 나갔더니 목련 잎이 떨어져 거무죽죽한 색을 띄고 있는데 마치 가을같다. 바람도 가을같다. 햇살도 가을같다.

2005년 4월 13일 수요일

약속 :: -318

바빠도 할 건 해야죠. 정신없어도 챙길 건 챙겨봐야죠. 처음엔 쉽지 않아도 나중엔 밥 먹을 때 숟가락질을 하듯 의식하지 않고도 편안하게 챙겨지고 해낼 수 있을 거에요. 서로를 위하는 마음, 챙기는 마음,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도 마치 습관같아서 처음엔 어색하고 몸과 마음이 따라주진 않지만 하다보면, 처음에 조금만 노력하다 보면 나중엔 익숙한 삶이 되곤 하죠.

물론 익숙함을 좋아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익숙함 속에는 타성에 젖은 마음도 있고 일상성에 빠져 감정없는 경우도 생기니까요. 다만, 그 익숙하고 편안함을 즐기고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정말 소중한 것 아닐까 싶네요.

요즘엔 바빠서 이런저런 마음들 챙기고 사시는 지 모르겠네요. 어쨌든 마음은 잡으면 있어지고 놓으면 사라지는 것이니 생각날 때마다 챙겨며 살고 계시겠죠. 좋은 날, 좋은 마음 유지하세요. 바람이 웃으면 바람 따라 온 몸을 펴서 활짝 웃어 보세요.

창 밖 대나무, 바람에 흔들리면서 당신 웃음도 슬쩍 비쳐갑니다.

투쟁

<이론에 강한 자는 현실과 투쟁하고 현실에 강한 자는 이론과 투쟁한다. 가장 불행한 자는 투쟁하지 않는 자다.>

서핑 중에 눈에 띈 글 귀. 투쟁이란 단어에 그리 애정을 갖진 못하지만 부대끼며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이론에 강하지도 현실에 강하지도 못한 자신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투쟁해서 얻어내지 못하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투쟁하지 않을 수도 없으니 이래저래 난감하다. 이론과 현실이 함께 버무려 있는 속에서 이론과 현실을 잘 기워내는 건 중요한 게 참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현실없는 이론은 공허한 관념일 뿐이고 이론없는 현실은 위태한 모래성같을 테니까. 어떤 일을 하더라도 뼈대를 세우고 살을 붙여가며 때론 살을 붙이며 부족한 부분에 뼈대를 세우며 진행해야 하는 것.

이번에 정신없이 몇 개월을 보낸 경험은 앞으로 좋은 시금석이 될 법 하다. 잊지 않는다면, 내 마음에 잘 정리해 놓는다면. 옳은 이야기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지만 옳은 이야기를 옳은 현실로 구현하는 건 쉽지 않다. 현실을 위협하는 활동가가 되는 건 마치 활불(活佛)이 되는 것과 같다. 오늘만 현실이 아니고 과거도 현실이고 미래도 현실이다. 그 현실을 밟아가는 과정을 지긋이 다져가는 게 필요하다.

2005년 4월 12일 화요일

질투 / 사후돈공

1 질투
신전에서는 가르쳐 주지 않는 비밀을 하나 알려 줄게.
신들은 인간들을 질투해.
신들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들을 질투하지.
왜냐면 신들은 마지막 순간이란 게 없거든..
이 세상 모든 것들보다 인간들이 더 고귀한 존재인 이유가 죽기 때문이지.
넌 지금이 가장 사랑스러워.
지금 이 순간은 다신 돌아오지 않아.

- 아킬레스 -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를 질투하고 가지지 못한 자는 가진 자를 질투한다. 질투는 상대적으로 판단해서 생기는 감정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이다. 하지만 신이 인간을 질투하는 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건 번뇌와 고민이 그만큼 쌓여간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죽음에 대해 아직 완전한 해결을 보지 못한 나로써는 신의 질투는 이기적인 것으로 느껴지긴 하지만...

2 事後頓空
일이 끝나면 마음을 허공처럼 비워야 함을 알면서도 쉬이 되지 않는 건 인간이라 그런가? 태어나면서부터 끊임없이 사유하게 된 것에 대한 반대 급부가 번뇌일까. 내 육근동작 하나하나 결합하고 분해되면서 생기는 잔여물들에 대해 되도록 허공처럼 비워내야지.

2005년 4월 11일 월요일

약속 :: -320

환한 웃음을 볼 때도 마음이 아련합니다. 무표정한 얼굴을 볼 때도 마음이 아련합니다. 아무런 말이 없을 때는 제가 침묵 속에 가둬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마음에 자유와 평온을, 냉정을 잃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시간은 정말 오래 지난 것만 같은데 벌써 봄도 밀려왔는데 부는 바람에 문득 그대. 보고 싶습니다.

오늘 하루 행복하세요. 바람이 좋네요.

2005년 4월 9일 토요일

후두둑.

후.두.둑. 비가 오는 소리에 잠이 깬 건 아니었다.

늘 품에서 멀어지지 않은 휴대폰의 진동에 잠을 깼다.

약간 목이 잠긴 소리로 통화를 간단히 끊고 나서

귓 가에 후.두.둑. 빗소리가 맺힌다.

주말에 비가 온다는 걸 느끼는 건 아주 오랜만인 듯 하다.

가벼운 샤워가 흐린 주말에 왠지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여기저기 비 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숨을 살짝 쉬며 음미하고 있다.

창 유리를 때리는 비나 나무를 흔들리게 하는 비바람이나

또 공간을 작게 맴도는 익숙하면서 뻔한 음악들이 오늘을 시작하게 한다.

해야 할 일들을 머리 속에 그려보면서 커피 한 잔.

...두고 보도록 하자.

전인권
"내 몸 내가 망치겠다는 데..니네들이 왜 간섭이야!"

프랑수아즈 사강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내 자신을 철저히 파괴시킬 권리가 있다."

데이비드 소로우
"나는 누구에게 강요받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숨을 쉬고 내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보도록 하자."


블로깅을 하다가 보게 된 누군가의 사이트(지금 기억나지 않는다)에서 자살과 관련해 함께 적어놓은 글이다. 현대 사회에서 자살이나 혹은 자신의 의지대로 사는 게 너무 힘들다는 것. 물론 자살(따위)에 찬성하는 건 절대 아니다. 다만 자신의 의지대로 산다는 것이 어려운 일은 틀림없다. 그런 의미에서 위 세 사람의 말은 곱씹어 볼 만 하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그 이후에 본인이 느끼는 삶의 비애나 고통과는 무관하게) 부모님이 내게 준 세상에 둘도 없는 선물이지만 그 이후의 삶은 맺어 온 인연관계 속에서 그다지 자유롭지 못함을 안다.

하지만 내 삶을 내 의지대로 사는 게 아집이고 독선적인 것이라면 남에게 어떤 삶의 방식과 규율을 강요(강제)하는 건 파쇼가 아닌가. 내 삶을 내가 통제하건 말건 내 의지대로 산다는 건 전체적 삶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의미있다. 이건 전체적인 행복지수를 위해 자신의 자유를 버리지 않겠다는 것이지 남을 해하거나 남의 삶에 영향을 주는 삶을 살겠다는 뜻은 아니다. 나름대로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것이고 나름대로 삶의 방향성을 설정해 나아가는 것이다.

부모 자식 간에는 어떠한 말로도 넘지 못할 큰 사랑과 인연 관계가 존재하겠지만 이 또한 인정하되 넘어서야 할 은혜이자 벽인 것이다.

2005년 4월 6일 수요일

남은 일.

정말 '죽어라' 했는데도 일이 생각했던 시간대로 끝나지 않았을 때 애초 예측을 잘못한 걸 반성하기도 전에 힘이 부친다. 그런데 어쨌든 간에 1차 가편집 본이 나왔다. 다시 러닝타임을 줄이는 최종 편집을 해야 한다. 시간을 줄이는 편집이 더 까다롭고 어렵다. 뭐...얼마나 대단한 작업을 하겠느냐만 그렇다는 거지.-_-a

함께 작업했던 두 분은 나를 향해 '휘파람'을 부르며 떠나갔다. 약오르지만 어쩔 수 없다. 할 건 해야 하니까. 그래도 며칠동안 잠도 못자고 렌더 걸면서 편집하면서 꾸벅꾸벅 졸던 모습은 미안하고 고맙다.

사무실 앞 목련은 소리도 없이 피었다가 소리도 없이 질 기색이다. 봄 날을 본격적으로 느껴보지도 못했는데 말이지...

2005년 4월 5일 화요일

그림자.

힘은 언제나 바람에 실려 다닌다는 건 깨닫지 못하셨구만...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그림자일 뿐이다.
-『아라한 장풍 대작전』중에서

내가 상대에게, 타인에게 힘을 과시하는 건 내 자신의 초라하고 부족한 부분을 감추기 위할 때가 많다. 그 힘이 물리적인 형태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폭력이 아닌 건 아니다. 내 자신을 숨기기 위해 폭력을 휘두른다? 글쎄...

'욕심'이라는 건 결국 부족한 자신의 무언가를 채우기 위한 마음의 형태 아닌가. 그리고 자신이 얻고자 했던 '힘'은 언제나 떠도는 것이다. 순환할 뿐 영원한 건 없다. 영원한 건 '순환한다는 사실'과 '변한다는 사실'이다. 그 속에서 일관성을 유지하는 건 외적인 형태도 중요하겠지만 내적인 유지가 더욱 중요하다.

빛이 있어 그림자가 생기는 건 존재하는 형상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그림자라는 말은 꽤 의미가 깊다. 내가 표현하고 드러내는 말, 행동은 내 마음의 그림자고 내 생각의 부산물일 뿐이다. 그림자를 보며 실체라고 믿는 건 심각한 오류다.

지금 나의 모습은 '본래 나'의 그림자다. 그림자와 실체가 하나가 되면 그건 빛도, 어둠도 없는 '완전한 비움'이 됨과 동시에 '완전한 채워짐'이 된다. 불쑥불쑥 나타나는 자유의 모습도 방종과 구분이 되어 하는 이유로 '참'이자 '거짓'일 수 있다.

약속 :: -326

꼭 봄 날을 기다려 왔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지금 봄 햇살을 보며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반응이겠죠. 쇼파에 앉아 있으면 등 뒤로 밀려드는 햇살에 겨워 몸이 스러지려고 하죠.

흐르는 시간 속에 나를 두면...꼭 기다려 왔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좋은 경우들이 있죠.

2005년 4월 4일 월요일

약속 :: -327

매일 그렇다면 거짓말이란 건 '건너 마을 바보 삼룡이'도 다 아는 것. 그건 문득 '당신'이 보고 싶다는 것 일 겁니다. 하도 마음을 누르고 쳐내고 비우고 차갑게 해 놓은 후라 '보고 싶음'도 여러 가지 이유와 판단과 생각들이 허용해 준 최소한의 '교집합'입니다만, 오히려 맹목적인, 말도 안되는 이유들로 인해 달콤하지도 않은 거짓 장광설을 늘어놓는 것보다는 훨씬 바람직하게 느껴지긴 합니다.

바램이 이루어지고 난 후에도 '현실의 벽'은 어떻게 하냐구요? 다행인 건 그 '벽' 때문에 지레 질리거나 고민스럽진 않네요. 다만, '당신'을 통해 보았던 또 다른 삶의 형태의 '이쁨'이 환상이 아니었길, 또는 개인적 욕심에서 비롯된 왜곡된 판단이 아니었길 바랄 뿐입니다.

사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장단점들은 받아들이는 자의 판단에 의해, 혹은 소유자의 선택에 따라 상당히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죠. 소유자와 수용자의 협의와 공유를 통해 새로운 에너지의 형태를 띄기도 하구요. 태어나면서 주어진 선택권이 없었듯이 살면서 어떤 상황에 대해 미리 포기하거나 안될 거라는 생각을 하는 건 이미 세상의 풍파에 많이 흔들려 봤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늘 초발심을 잃지 않는 게 참 중요한 거죠. 그렇게 살아보려 합니다.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말이예요.

제 판단이 옳고 그름은 저 혼자만의 결정으로 이루어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렇다고 수 많은 사람들에 의해 흔들릴 것도 아닌 거죠. 판단 옳고 그름을 함께 수용하고 그것에 따른 오류를 수정해야 할 상대방과 함께 용단을 내리는 것이겠죠. 지금으로선 '그렇지 않을까...'하고 조심스레 생각을 들춰보고 있는 거죠.

2005년 4월 3일 일요일

'위협'의 의미

...사회주의적 기획의 결핍을 인정하는 일과, 현재성을 뛰어넘는 진리는 없다는 믿음은 늘 공존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후자에 좀더 방점을 둔다. 아무 것도 위협하지 않는 현자보다는 시시한 것 하나라도 위협하는 활동가가 백배 낫다고 생각한다. 위협하지 않는 건 의미 없는 것이다.
- 김규항

위협한다는 것. 내 생각 하나하나가, 내 세포 움직임 하나하나가, 내 육근 동작의 모든 것이 세상의 안일함과 일상성을 위협하는 것. 그게 비로소 활동이 되고 에너지로 충만해질 때 이 삶에 툭 던저져 치열하게 살다가 가는 작은 의미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 것도 위협하지 않는 현자'는 남들의 모든 말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초월하지 않았으면서 세상을 초탈한 듯 사는 흉내를 내는 것일 테지. 지금 주어진 삶, 시간 속에서 불안한 현재 진행형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고민하며 조금이라도 나아지려는 발버둥이라도 있어야 삶의 틀도 확장되고 매일 갖게 되는 범주를 뛰어넘는 일들이 생길 테지. 작은 것일지라도 위협한다는 게 얼마나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하는지는 두 말하면 잔소리다.

현재를 보지 않고 미래를 보는 자는 몽상가에 다름 아니고 미래를 기획하지 않고 현재만을 보는 자는 일상성에 아무런 의심을 품고 살지 않는 자에 다름 아니다. 지금을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은 지금 당장 확보하기 힘들겠지만 기획과 활동, 노력이 수반되면 가능하다. 지금을 뛰어넘겠다는 나름의 꿈은 삶이 내게 주어진 의미와 삶의 마무리를 위한 고민과 상호 관계를 갖지 않을 경우 공허해질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위협하지 않는 건 의미 없다는 말 이전에 삶의 존재 이유에 대해 고민을 한다는 건 너무 공허한 되돌이표가 될까? 어쨌든, 조금씩 해결해가고 부딪혀 가며 '시시한 것 하나'에도 위협을 하고 싶은 마음이 꿈틀대긴 한다.

2005년 4월 2일 토요일

밥벌이의 활용 방법

가장 아름다운 헌신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바로 자신의 밥벌이로 하는 헌신입니다.
가장 용감한 도전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바로 자신의 밥벌이를 걸고 하는 도전입니다.
- blog 탐방 중에...

밥벌이로 헌신하고 밥벌이를 걸고 도전하는 것. 쉬운 일이 아닐 터. 다 걸고 하는 도박보다는 다 걸고 하는 도전이 더 어려워 보인다. 반면 후회는 적을 것 같다. 내가 하고 있는 일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건 과연 무엇일까. 부끄럽지만 생각조차 나지 않아 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챙기는 일이 먼저겠다. 아직 프로가 아니면서 프로리그에 뛰어든 느낌. 내 사고의 틀이 충분히 깨지는 일이 급선무다. 내게 오래 앉았던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일은 쉬우나 한 자리에서 계속 즐거움을 쏟아내는 건 지루하거나 어렵다고 느껴질 때가 있으니...

약속 :: -329

슬쩍 눈 감고 지나가도 될 날인데 눈 감으면 떠오르는 모습. 때론 허상인지 실상인지 구분조차도 되지 않으면서도 한 이미지만은 간혹 선명하게. 느낌은 회상의 선율을 타고 피부까지 직접 느껴지고. 보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볼 수 있는 것일까. 편안한 마음으로.

이제 내가 죽을만큼 외롭다는 걸 아는 자는 없다.

 내가 죽을만큼 외롭다는 걸 아는 자는 없다.

그대의 전화번호를 지우고 짐을 챙긴다.
밖으로 통하는 문은 잠겼다 더 이상
좁은 내 속을 들키지 않을 것이다.

한잔 해야지
나처럼 보이는 게 전부인 사람들과
정치를 말하고 역사를 말하고 비난하면서
점점 길어지는 밤을 보내야지

한 재산 만들 능력은 없어도
식구들 밥은 굶지 않으니 
뒤에서 손가락질 받지 않고
변변치 않은 자존심 상할 일도 없다.

남들 앞에서 울지만 않는다면
나이 값하면서 늙어간다 칭찬받고
단 둘이 만나자는 사람은 없어도
따돌림 당하는 일도 없겠지

멀 더 바래

그저 가끔 울적해지고
먼 산 보면서 혼잣말이나 할 테지

이제 내가 죽을만큼 아프다는 걸 아는 자는 없다.

전윤호 詩 "절교" 전문 

*시인 전윤호, 64년생. 동국대 졸업. 91년 등단. 역사와 철학에 많은 연구를 한 재능있는 시인. 인접 예술에도 빼어난 조예를 갖고 있고 하체가 부실한(?) 시인들을 위해 시인. 축구팀을 만들어 연락책을 맡아 동분서주하고 있는 마당발. 시인들의 장례식장에서 운구를 도맡아 하는 마당쇠. 시집으로 "순수의 시대" "이제 아내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 가 있음.


내가 그렇다면, 남도 그렇다는 걸 알아야 한다. 아니, 세상 모든 '남'이 그렇다는 걸 알지 못해도 내 마음에 두어지는 사람(들)이 그렇다는 건 알아야 한다. 세상과 그대와 '절교'를 하기에는 내 욕심이 참 많다. 내 욕심은 이미 세상과 그대에게 발을 담근 상태다. 하지만 치졸한 욕심은 거부하고 살아온 지 오래다. 나의 '욕심'이라 표현되는 마음의 일단은 '함께'라는 삶의 소중함으로부터 파생되어져 나온 것이지 내 것으로의 '소유'의 개념은 아니다. 물론 어떻든지 간에 어떤 모든 욕심은 '이별'을 해야 하겠지. 그럴싸한 멋진 소유의 상위 개념은 '무소유'일 수 있으니까.

하고 싶은 말 그 이상도 이하도 없는 시의 행간. 담백하면서 짙은 향이 느껴지는 시인의 고백이 있다.

2005년 4월 1일 금요일

약속 :: -330

결과가 어떻게 될지, 진행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겠지요. 그런데 지금부터 안 될 거라는 생각이나 무조건 잘 될 거라는 생각은 갖지 않는 게 좋지 않겠어요? 다만, 주어진 환경과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래도 나은 삶 아니겠어요? 기대가 부풀어지지 않도록 힘을 빼고 하기 힘든 일이라는 한 숨을 들 숨으로 돌려 세울 때 현재의 삶에 의미있는 방점을 찍는 일은 시작되는 거라 생각하죠.

사람에 대한 환상? 기대? 그런 건 없어요. 어쩌면 지난 시절 다 깨져버렸는지도 모르고 사람에 환상과 기대는 직접 맨얼굴, 맨마음으로 만나기 전에는 갖지 않는 게 좋죠. 그런데 말이죠. 살다보면 사람과 사람이 만났을 때 환상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대를 품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어떤 상황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기대. 상대방에 대한 능력을 과대 평가하거나 아전인수격으로 내가 생각하고 싶은 방향대로 몰아가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면 어떤 상황이든 '어떤 가능성'이 있겠구나 싶은. 그건 환상과 기대의 차원이 아니라 단지 '가능성'이겠죠. 그런데 그런 가능성은 어느 누구에게나 다 있지 않나요? 또 어느 누구에게나 있는 그 가능성은 본인조차도 모르는 경우도 많지 않나요? 뭐,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경우도 있을 수는 있겠죠.

잘 살고 싶다는 거죠. 그 가능성의 출발은.

만나고 또 만나도 사람들 사이에서 부유하는 정체성이지만 그래도 알고 싶고 만나고 싶은 건 저 또한 사람이어서 그런 거겠죠. 박노해 시인은 '사람만이 희망이다'라고 절절히 노래했지만 그 희망은 스스로 발견할 때 더욱 가치가 있는 법일 테고 서로가 그 희망을 볼 수 있다면 더더욱 좋은 일이겠죠.

그냥 제 생각일 뿐인 거예요. 아직도 치기 어린 느낌이 가시지 않은 부분도 있고 아직도 부족한 생각 투성일테지만 그저 제 생각일 뿐인 거죠. 생각의 공유는 먼저 열어두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나름의 상처도 받은 적이 있지만 이젠 상처받지 않을 수 있고 많이 편해졌죠. 여전히 공유를 할 수 있다고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살아가면서 점점 제 생각을 강요하거나 우기는 짓 따위는 하지 않게 되네요. 물론 꼭 포기하고 싶지 않은 일들도 분명 있지요. 그 느낌조차도 또 전하고 다르니까요. 물론 이건 생각을 잘 못 진행시키면 보편적 보수성에 함몰되는 경우가 생길테지만 늘 나를 바라보는 노력을 게으르게만 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자유를,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거겠죠.

공부를 더 해야겠어요. 마음이든, 몸이든, 지식이든, 기술이든, 글이든, 생각이든 공부를 더 해야겠어요. 부족한 걸 채워가면 채워갈 수록 채워갈 그릇이 예전에 보지 못했던 크기로 느껴지곤 하니까요.

해야죠.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

종일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를 생각해 봤습니다
근데 손뼉을 칠만한 이유는 좀체
떠오르지 않았어요

소포를 부치고
빈 마음 한 줄 같이 동봉하고
돌아서 뜻모르게 뚝,
떨구어지던 누운물

저녁 무렵,
지는 해를 붙잡고 가슴 허허다가 끊어버린 손목
여러갈래 짓이겨져 쏟던 피 한 줄
손수건으로 꼭 꼭 묶어 흐르는 피를 접어 매고
그렇게도 막막히도 바라보던 세상

세상이 너무도 아름다워 나는 울었습니다.

여림 詩,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 전부

*뒷글: 시인 여림에 대하여......
본명, 여영진. 66년생. 서울예전 졸업. 2002년 서른여섯에 생을 반납하고 떠남. 그를 보낸 후 양수리 가까운 그이 집을 방문했을 때 노트북 속에서 북한강 안개를 잔뜩 머금은 100편이 넘는 보석들을 발견함. 이듬해 유고 시집 "새들이 안개속으로 걸어간다" 가 작가출판사에서 나옴.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는 내게도 좀체 떠오르지 않는다. 살아야 할 자질구레한 이유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생각을 하지만. 그런다고 손목을 바라보며 섬뜩한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근사하게 살아야 한다는 이유는 온데 간데 없고 오래 살아야 할 이유를 만들기 때문에. 서늘한 바람이 부는 시지만 고개 돌려 삶을 바라보게 한다.

2002년 한국을 벗어나 중국 땅을 밟았을 때 난 어떤 마음이었는지. 삶의 절망도 아니고 도피도 아니면서 뭔가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막막함이 있었나. 돌파구를 찾아 뚫고 나온들 내 눈에 비친 색깔들 조차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역시 세상 속에 나를 묻고 살아가는 수 밖엔.

"그렇게도 막막히도 바라보던 세상 그 세상이 너무도 아름다워 나는 울었습니다" 시인처럼은 아니지만 어렴풋이는 마음에 닿는 구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