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 28일 토요일

겨울, 작업, 수영, 사진기, 그림

겨울 장춘에 겨울이 왔다. 아직 눈이 내리지는 않았지만 매일매일 눈이 올 것만 같은 하늘이 펼쳐진다. 사람들의 옷도 두툼해졌고 식사 때 뜨끈한 탕은 빠지지 않고 시키게 되었다. 한국에서 겨울 옷을 가져오지 않은 바람에 며칠 전 시내에 나가 옷 몇 가지를 준비했다. 저녁마다 시간 맞춰 나오는 온수가 그리워 되도록 시간에 늦지 않게 침실에 도착해 샤워를 한다. 저녁 해는 일찍 저물어 이젠 6시 정도만 되어도 깜깜해진다. 교내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부쩍 줄었지만 여름이나 가을보다 더욱 더 꼭 껴안고 다니며 연애하는 학생들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인라인을 타는 학생들은 위험하지만 바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있거나 손을 소매 안에 집어넣은 채로 저녁 바람을 즐기고 있다. 삼삼오오 퇴근하는 교직원들의 어깨 간격이 점점 좁아지고 있는 날들이다. 봄이 길다는 뜻의 장춘(长春)은 변함없이 겨울이 길고 그 긴 겨울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 아침에 작업실로 향할 때 기숙사 앞에 고여있는 물이 미처 마르지 못하고 얼어붙은 광경을 보게 될 때는 왠지 내 입에서도 뜨겁고 새하얀 입김이 나올 것만 같다. 가끔 낮게 내려앉은 하늘을 보며 언제쯤 눈이 내릴지 사뭇 기대를 하곤 한다. 한국의 몇 몇 지방은 추위가 밀려오는 중에 물난리를 겪었다고 하는데 그네들의 겪게 될 육체의 추위보다 마음의 추위가 더 쓰리게 느껴지는 날씨다. 요 며칠은 격동의 시간이 지나가고 고요함이 더욱 가득해지는 듯 하다. 마음도 함께 차분해지곤 한다.

작업 요즘 하는 작업 속도가 그다지 빠르지 않아 함께 작업하는 이의 입에서 걱정의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단순 노동이 많지만 그다지 단순하진 않기 때문에 작업지시를 내리거나 작업을 진행하는 이들 모두 시간에 쫓기고 있다. 모두들 기존에 하던 작업방식과 많이 다름을 몸소 체험하고 있기 때문에 버거워 하는 중이다. 며칠 고민해서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내야겠다. 작품 느낌들은 하나씩 잡혀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기본적인 작업과정이 더디게 진행되는 바람에 신바람이 덜 불고 있긴 하다. 조만간 나아지겠지. 아니, 나아지도록 해야지.

수영 어제 수영장에 다녀왔는데 이젠 50미터 정도는 평형으로 건널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제자리에서 멈춰 떠있진 못하지만 깊은 물이 그닥 무섭게 느껴지진 않는다. 그 동안 수영을 꽤 배우고 싶어했음에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는데 최근 몇 차례 연습을 통해 이만큼까지 발전했다니 스스로도 참 대견하다. 지금도 조금 방심하면 바로 물을 들이키곤 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엄청난 진전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뭐랄까. 꽤 적합한 운동을 찾아낸 느낌이랄까. 수영을 하고 나면 약간의 전신피로가 오긴 하지만 운동을 했으니 당연한 결과고 수영을 하면 할 수록 몸이 편안해지고 전신의 근육에 힘이 생기는 기분이다.  헬스나 무술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는 합리적인 운동이란 생각이 든다. 달리기는 무척 싫어하는 타입이라 더욱 더 수영이 좋아지고 있다. 조급한 성격 때문에 더욱 빨리빨리 배우고 싶어하는 마음이 생기곤 하지만 그럴 수록 마음도 다스려가면서 차근차근 한걸음씩 떼고 있다. 더욱 좋은 건 겨울 수영장의 물은 비교적 따뜻하다는 것이다. 수영 후에 잠시 들리게 되는 간이 증기탕도 편안함을 주고 가벼운 샤워 후에 맞는 새콤한 바깥 공기도 온 몸에 온 마음에 활기를 준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걸 수영을 하면서 더욱 더 느끼고 있는 중이다. 몸에 평형이 어긋난 느낌을 받는 날이면 물 속에서 손을 젓거나 발로 물을 차낼 때 몸이 바로 균형을 잃기 때문이다. 내 마음도 정신도 몸처럼 스스로를 속이지 않도록 제대로 살아낼 수 있도록 자주 챙겨야겠다.

사진기 몇 년간 잘 쓰던 사진기가 고장을 일으켜 수리를 하려 했더니 비용이 비싸다. 오히려 돈을 좀 더 보태 새 것을 사도 될 듯 해서 사진기를 알아봤는데 요놈의 욕심은 점점 커지더니 기어이 DSRL을 구입하기로 결정을 해버렸다. 가격을 알아보는 중인데 조만간 적절한 녀석을 들여올 것 같다. 그럼, 이곳에 다시 사진이 좀 더 늘어나겠지. 그리고 또 다른 기록들도 사진으로 남길 수 있게 되겠지. 좋은 기억, 추억들을 담아낼 수 있는 마음부터 준비해야겠다.

그림 틈틈이 크로키를 하는데 결과의 기복이 좀 있다. 그래도 느끼게 되는 건 마음을 비우고 몸을 따르고, 대상의 외형에 집착하지 않고 내면을 들여다보려고 애를 쓸수록 느낌 좋은 선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미술의 기본도 제대로 배우지 않았음에도 보이는 것을 그려낼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할 뿐이다. 하지만 쉼 없는 노력을 견지하도록 더욱 주의해야지. 그림은 노력과 시간이 만들어 내는 최종 결과물이다. 예전에 고흐의 습작과 걸작들의 창작 과정을 보며 느낀 감상이 그랬다.

2006년 10월 20일 금요일

나의 행위, 작업 그 모든 것의 이유.

아는 형님 홈페이지 자기 소개란에서 이런 글을 봤다.

글을 쓰는 순간 나에겐 세 가지 소망이 있다. 누군가가 내 글을 읽으면서 울거나, 웃거나, 감동을 받거나... 그렇게만 된다면... 그럴수만 있다면...

형님은 글을 참 맛깔나게 쓴다. 그의 소망이 담긴 글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난 형님의 글을 읽으면서 여러번 감동을 받거나 눈물을 찔끔거린 적이 있었다. 문득, 내가 만드는 작품, 내가 쓰는 글, 내가 하는 모든 행위들에 대해 생각을 해본다. 너무 '투쟁'적이진 않았는지, 너무 '비겁'하게 숨기고 있지 않았는지, 너무 '엄숙'하진 않았는지, 너무 '메마른' 감정이진 않았는지...타인을 들여다 볼 때, 그리고 자주 나를 들여다 볼 때 너무 닫힌 사고와 시선으로 대하지 않았는지 생각해본다.

따뜻한 시선은 따뜻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법이고 따뜻한 마음은 따뜻한 시선을 통해 사물을, 사람을, 세상을 바라볼 때만이 형성된다. 아픈 곳을 도려내고 들춰내도 상처를 치유할 수 있지만 아픈 곳을 어루만지면서도 충분히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어릴 적 배가 아프면 굳이 억지로 약을 먹이기 전에 어머니가 배를 쓰다듬으며 어린 아이를 어르고 달래 아픔을 멈추게 했던 것 처럼.

한 때 세상이 빨리 변화해서 보다 나은 삶을 살아내길 갈구한 적이 있었다. 물론 현재도 참세상이 오기 위해 시간 싸움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 전에 나를 살피고 주변을 살피며 하나하나 감동을 담아낼 수 있는 몸짓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더 크게 자리잡고 있다. 울면서도, 웃으면서도, 감동을 받으면서도 충분히 세상과 소통하고 사람과 소통하는 행위, 작업이 된다면 나 역시 더 바랄나위가 없겠다. 내 행위, 작업이 그런 일련의 소통을 위한 창구가 되면 참 좋겠다.

감았던 눈을 다시 뜨고, 닫았던 감정의 문을 다시 열게 되길. 스스로의 노력과 변화가 쉼 없이 계속되길. 그렇게 바라고 또 바랠 뿐이다.



 

2006년 10월 12일 목요일

실마리를 찾다.

선(line)처리에 대한 실마리가 조금씩 풀리고 있는 중이다. 몇 가지 방법들을 찾아냈고 이젠 그에 따라 최종 테스트를 거치면 충분히 아트웍을 맞춰갈 수 있을 듯 싶다. 단 한 장만의 테스트로는 움직임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아트웍의 느낌을 예측하기 어려울 수 있겠지만 일단 느낌상으로는 상당히 근접하고 있는 중이다. 시간도 촉박하고 앞으로 다른 일들로 인해 더욱 바빠질 것을 생각한다면 요 며칠 안에 한 컷 정도는 출력을 해서 최종 확인을 해야겠다.

작업실을 저녁 늦게까지 사용할 수 없는 점 때문에 작업효율이 쉽게 오르지 않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이도 역시 며칠 기다리면 적절한 대답을 받아낼 수 있을 것 같다.

근래 노트북에 달린 시디롬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근래에 구입한 DVD 대부분을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 가격문제 때문에 정품대신 중고 비정품을 달았더니 문제가 발생하는 모양이다. 외장을 사야할지 정품을 사야할지 고민 중이다. 작업에 필요한 자료는 끊임없이 봐야하고 이미 노트북에 쌓은 자료들도 가득한데 시디롬이 문제니 좀 난감하다.

그나저나 작업실에 인터넷은 설치를 안해 줄 것인가? 다른 곳에서 외장하드에 묻어 오는 병균들 때문에 컴퓨터들이 겔겔대고 있다. 아유...

중국인이 물었다.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한국의 반응은......?"

한 중국인 선생이 내가 한국인임을 알고는 중국어를 알아듣냐고 몇 번이나 묻는다. 조금은 웃기기도 하고 왜 이렇게 반복해서 묻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잠시 후 그가 불쑥 던진 말은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다는데 한국의 반응은 어떤가?"였다. 난 바로 "그럼, 중국의 반응은 어떤가?"라고 되물었다. 그 역시 쉽사리 대답을 하지 못했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핵 실험을 한 것이 이상한 일인가? 사실, 모두들 이미 추측한 사실이었음에도 설마설마하며 애써 부인하려고 했을 뿐 아닌가. 이런 상황이 왜 일어났는지 지난 과정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고 그저 현재 발생한 일에 대해서만 호들갑을 떠는 것은 좀 딱하지 않은가.

요즘 인터넷에 접속하는 시간이 별로 없어 자료를 찾거나 이메일만 확인하곤 했는데 최근 북한의 핵실험을 했다는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미디어들의 반응이야 특별히 읽어볼 것도 없이 충분히 짐작을 하겠다. 예전과 다른 점을 발견했다면 바로 누리꾼들의 반응이 냉철한 시각을 견지하고 있거나 여러 각도에서 상황을 파악하려는 노력들이 보인다는 점이었다.

올블로그에 올라온 추천글들 중 관련된 글을 보면 알 수 있듯 북한의 핵 보유나 핵 실험은 어느 날 갑자기 뗑깡을 부리는 행위가 아니라 여러 상황으로 빚어진 필연적인 결과라는 점에 모두 공감하고 있는 듯 했다. 미국의 북한에 대한 일방적인 태도, 중국의 북한에 대한 비협조적인 태도, 일본의 미국편향적인 정치자세 고수, 한국의 보수세력들의 편협한 사고 등으로 인해 북한이 핵 실험을 하면서 마지막 시위를 벌이는 셈인 것이다. 몇 나라에 의해 테러를 주도하고 있는 국가라고 규정지어져 버린 중동의 몇 몇 나라, 혹은 단체들은 북한의 핵 보유와 핵 실험에 대해 경외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전쟁이 바로 일어날 일은 없겠지만 지속적으로 북한의 목을 죄어 간다면 최후의 선택은 공생공영이 아닌 공사공멸이 될 것이다. 대부분의 전쟁이 경제적인 이득을 위해 혹은 개인, 소수, 소수집단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인민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발생했음을 상기해 볼 때 북한 지도체제가 북한의 인민을 고려한다는 발상은 억지스러울 수 있고 미국이 한국을 위해 북한과 타협에 나설 수 있다는 생각도 유치할 수 있다. 중국이야 동북아 공정도 그렇고 북한이 계륵과 같은 존재라 '형님 말 듣지 않는 동생'처럼 북한을 대할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해가기 위해 한국 정부가 먼저 발벗고 나서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내게 질문을 던졌던 중국인 선생이 내 역질문을 받고 약간 뻘쭘했는지 이런 말을 한다. "어렸을 때 한국전쟁은 남한이 먼저 쳐들어왔다고 배워서 그걸 기정사실로 인정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북한이 먼저 치고 내려갔다는 사실을 알고 당혹스러웠다" 난 이에 대해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사실 한국 전쟁에서 누가 먼저 전쟁을 시작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한국전쟁이 왜 일어났는지가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한국전쟁의 배후에 누가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는지가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핵'이라는 물건에 대해 현재까지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추악한 물건이라는 생각을 견지하고 있지만 달리 말하면 미국을 비롯해 개나 소나 다 하는 핵 실험, 그리고 다들 가지고 있는 핵을 한국이나 북한은 가질 수도 없고 가지고 있다해도 실험조차 할 수 없다는 건 도대체 누가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인가.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물 수 있다는 격언이 그저 말 뿐이 아님을 상황이 악화되고 나서야 인정할 셈인가. 인권을 부르짖고 세계 평화를 부르짖으면서도 한 편으로 온갖 모략과 협잡을 일삼는 뒷골목 깡패'형님'들의 위협에 계속 모르쇠로 수수방관할 셈인가. 단순하게 생각하더라도 우리의 삶, 내 삶이 어느 무능하고 파렴치한 인간들에 의해 어느 순간 멈춰버릴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너무 잔인하다.

2006년 10월 4일 수요일

선(line) 처리의 문제, 해결책이 없을까...

요즘 <날아라 병아리(가제)> 아트웍을 정하는데 꽤 고민을 했었다. 원래는 우관중(吴冠中)화가의 화풍에 영감을 받아 그대로 밀고 나가고 있었는데 중간에 Zeng 감독님의 잇다른 고민에 의해 다른 아트웍으로 시도를 몇 번 해봤었던 탓이다. 특히 며칠 전에는 Zeng 감독님이나 나나 마이클 두덕 드 위트의 <아버지와 딸>을 무척 좋아했기에 그 스타일을 참고하고 변형해 테스트를 해보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Zeng 감독님이 엊그제 밤에 급히 나를 찾기에 무슨 일인가 했더니 아무래도 우관중 스타일을 고수하는 게 좋겠다며 그 이유를 상세히 다시 설명해줬다. 사실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애초에 난 우관중 스타일로 가는 게 가장 맘에 들었고 그렇게 해야만 다른 분위기의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확신이 있었다. 다만 공동 감독이라고는 하지만 작품의 전반에 대해서는 이미 Zeng 감독님이 시작을 한 상태에서 내가 참여했기 때문에 그가 작품의 아트웍에 대해 계속 다른 의견을 냈던 것에는 별 이견을 내지 않았을 뿐이었다. 이는 나보다 그가 가진 작품에 대한 열정이 그만큼 강하다는 반증이기도 하겠다. 암튼, 다시 우관중의 그림들을 들여다보며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다. 뭔가 잡힐 듯 하면서도 쉽게 손아귀에 쥐어지지 않는 느낌들만 가득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현재 가장 큰 문제는 캐릭터 및 배경의 선(line) 처리의 문제인데 배경은 직접 중국화를 전공한 선생 한 분이 도와주기로 했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는 것으로 생각되지만(사실 약간 걱정이 되긴 한다.) 캐릭터들의 선 처리가 큰 골치거리다. 캐릭터가 한 두개도 아니고 게다가 모두 애니메이팅이 되는지라 그 많은 동화를 다시 일일히 붓으로 그려서 원하는 선을 따내는 건 끔찍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몇 개의 소프트웨어를 거쳐 자동적으로 선을 처리하는 방법인데 이게 그리 만만치가 않다. 그림이 좀 크거나 선을 처음부터 묘사를 잘 해낸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는데 '병아리' 안에 나오는 캐릭터들의 크기는 대체로 작은 편이고 현재 쓰고 있는 선도 모두 연필로 처리를 하고 있는 중이어서 깔끔한 선을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 스캔을 한 후에 선 정리하는 것이야 별 문제가 없지만 비트맵을 벡터로 바꾸고 선을 교체하는 과정에서 원하는 느낌이 나오지 않는다. 아~ 정말 머리에 쥐나고 있는 중이다. 오늘 하루 종일 선 처리에 대해 붙잡고 씨름했는데도 원하는 만큼 뽑아지지 않았다.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려 중이다.

뭐, 하루이틀 만에 쉽게 결과를 얻어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제작시간도 점점 촉박해지고 되도록이면 국경절 연휴기간이 끝나기 전에 선에 대한 확실한 방법론을 찾아내야 그 이후 작업이 수월해지기 때문에 조급한 건 사실이다. 게다가 현재 쓰고 있는 소프트웨어에 브러쉬를 추가해서 테스트를 하고 싶은데 브러쉬 만드는 법을 모르겠다. 이거 정말 골치 아프다. 왜 옛날 옛적에 이 감독님한테 제대로 배워두지 않았는지 조금은 후회하고 있는 중이다.

오늘 계속 소프트웨어를 만지작 거리고 책을 뒤적이면서 몇 가지 방법을 찾아내긴 했지만 썩 만족스럽지가 않아서 불만이 쌓이는 중이다. 그래도 일단 내일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선을 모조로 바꿔 테스트 정도는 해봐야겠다. Zeng 감독님의 웃고 있지만 다급해 보이는 표정에 심리적 압박감을 느끼는 중이다.

본격적으로 작업에 돌입한 후 장비도 좀 갖춰지고 작업환경도 훨씬 좋아졌으니 부지런히 머리와 손을 움직이는 일만 남았다. 잠자기 전에 다시 머리 좀 굴려봐야겠다.



- <날아라 병아리(가제)>의 중국어 제목은 <小鸡想飞>, 영문제목은 <Fly For...>다.

2006년 10월 3일 화요일

수영 초보자 - 퇴화하지 않기 위해 허우적거리다.

난 수영을 전혀 하지 못한다. 어릴 적 친구들과 계곡이나 바다에서 물장구를 치는 정도는 가능했다. 수영이 아닌 물장구. 언제부턴가 물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면서 더더욱 깊은 물이 있는 곳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 편이다. 특히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함께 산으로 놀러가 놀며 계곡에서 단숨에 짧은 거리를 마구잡이 수영으로 헤엄쳐 건너가다 친구 녀석이 장난을 치는 바람에 물에 가라앉았던 끔찍한 경험을 한 뒤론 더더욱 그렇다. 한국에서도 수영장엔 어릴 적 '공공풀장'이란 곳을 한 번 가보고 '실내 수영장' 두 어번 가번 게 전부인 기억이다. 그 몇 번의 방문에도 내 가슴을 넘어가는 수심이면 접근도 하지 않았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살도 찌고 몸매도 좋지 않아 더더욱 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수영이 신체의 균형을 잡아주고 전신운동에 대단히 매력적인 운동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생각을 하지 않고 지냈다.

중국에 온 후 주변에 수영을 좋아하는 선생님들이 많아 어떻게든 수영을 배워보려고 마음먹은 지도 꽤 되었다. 그러다 얼마 전 나이 지긋하신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수영장을 가게 되었다. 전부터 배워보려고 애를 썼지만 쉽게 기회를 잡기 어려웠기 때문에 너무도 반갑게 그들과 함께 동행하게 되었다. 수영복은 맘에 드는 게 없어 구입을 미루고 있었는데 선생님 한 분이 여벌이 있어 빌려주게 되었고 물안경은 수영장에 가서 바로 구입하게 되었다.

수영을 전혀 못하기 때문에 선생님들에게 이런저런 이론들을 배워가며 허우적대길 한 참. 나름 이론에는 잡다한 지식이 있는지라 잘 될까 기대했었지만 무척 어려웠다. 물에 들어가면 숨을 쉴 수 없다는 기초상식에 의거해 물 안으로 들어가면 숨을 참고 물 밖으로 나오면 숨을 뱉는 몰상식한 수영 방식으로 여러 차례 물을 먹었고 수심이 조금이라도 깊어지면 머리 속이 하얘지면서 온 몸의 근육이 굳어버리는 경험을 수 차례 하게 되었다.

특히, 내가 써왔던 근육들은 모두 헬스나 격투 관련 운동, 혹은 구기 운동을 할 때만 써왔기 때문에 몸의 긴장을 풀고 자연스럽게 동작을 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태극권을 좀 더 오래 수련했더라면 가능한 일이었을까? 선생님들은 (거의) 처음 하는 사람치고는 쉽게 잘 따라하고 빠르게 습득하고 있다고 칭찬을 해줬지만 그들의 칭찬은 그저 칭찬일 뿐 나는 여전히 물 안에서 허우적대고 물 먹으며 여전히 수심 깊은 곳을 두려워하는 초보자였을 뿐이었다. 한 삼개월 정도 수영장 다니며 연습하면 좀 더 깊은 곳에 가서도 충분히 수영할 수 있다는 그들의 말에 용기를 내긴 했지만 역시 첫 날은 첫 날이었다. 다만 물을 많이 먹어 포만감에 수영을 그만 두기까지, 두 시간여 놀다가 지쳐 그만 둘 때까지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다. 게다가 가을 햇살이 수영장으로 밀려 들어오면서 수영장 위 아래 반짝이는 햇살의 포근함과 아늑함, 아름다움이란... 오랜동안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사람도 별로 없었으니 금상첨화.

사람은 쓰지 않는 근육은 퇴화한다고 한다. 수영을 처음하는 사람은 그 다음날 근육통에 시달릴 수 있고 피로감에 휩싸인다고 한다. 쓰지 않던 근육을 썼기 때문이다. 근육 뿐만일까. 내 뇌세포도 감정도 쓰지 않으면 퇴화하는 법. 쓰지 않는 부분을 적은 시간이나마 움직여주면 보다 균형잡힌 인간이 될 수 있겠다. 세월이 흐르면서 익숙한 쪽으로만 몸과 마음, 정신을 움직가게 되고 그게 굳어지면서 '전형적'인 인간이 되어간다. 보다 폭 넓고 자유로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쓰지 않는 쪽, 꺼려했던 쪽으로도 움직이고 행동해야 함을 다시 기억해낸다.

수영을 어느새 배울 수 있을까 걱정부터 앞서긴 하지만 기회를 접하는 대로 부지런히 허우적대로 움직이면서 잠자고 있는 근육들, 생각들을 깨워내야겠다. 수영이 좀 익숙해지면 혼자서도 갈 수 있겠지. 현재로선 혼자 가는 건 아직 좀 그렇다.

내일 오전에 기회가 있다. :)



- 근래 가는 수영장에는 헬스클럽, 당구, 탁구, 마작, 레스토랑 등 다른 부대시설들이 있다. 전에 선생님들과 농담삼아 얘기했었는데 하루 코스를 제대로 잡아서 운동 겸 놀이를 즐기면 하루 정도 시간은 그냥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수영과 마작 빼고는 곧잘 하는 운동이 아니던가.

중국 국경절 연휴 기간, 근황...

중국의 또 하나의 큰 명절인 국경절(10월1일)이 지나갔다. 아니, 아직 진행 중이다. 중추절과 맞물려 있는 이 커다란 명절에 너도 나도 시내를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떠났고 그나마 별 관심없이 보내는 이들은 학교 안에서 각자의 일을 하며 조용히 보내고 있는 중이다.

원래는 이번 한가위(중추절) 때 한국에 들어갈 생각도 했었는데 한 번 발걸음에 깨질 여비에 대한 걱정도 좀 있었고 특히 비자 연장으로 인해 여권이 수속 중이라서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 다른 지역에도 갈 수 없게 되어서(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면 신분증은 필수, 미처 복사본도 마련해 두지 못했다.) 별 수 없이 장춘에 꼼짝없이 발이 묶이게 되었다.

일주일(혹은 그 이상) 정도 되는 휴가 기간이라 어떻게 알차게 보낼까 고민하는 동료 선생들을 보면서 여행가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일지 않음이 오히려 더 이상했다. 휴가기간을 이렇게 슬렁슬렁 보내는 것도 꽤 좋은 편이다. 다만, 현재 있는 숙소엔 TV가 없기 때문에 중국이 얼마나 떠들썩한지 전혀 알 수가 없다는 것. 그리고 한국의 소식도 근래 좀 바빴던 관계로 띄엄띄엄 소식을 접하다 보니 고립무원에 갖힌 나그네가 된 기분이다. 북적했던 학교가 국경절 연휴로 인해 한산해지고 나니 한적해서 좋긴 하다.

이번 국경절은 한가위와 맞물려 있어(사실, 중국 국경절 시즌엔 대부분 그렇다.) 시내 곳곳에서 월병을 사고 파는 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고 각 상점에는 특별 할인 행사를 하느라 연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편이다. 어제 Zeng선생과 함께 시내에 나갔을 때 둘이 돈을 거출해 낱개로 포장된 월병 50개를 산 후 나눠 가졌다. 1개에 4원씩이니 결코 싼 가격은 아니었지만 녹차와 말차로 속을 채운 월병 맛이 괜찮아 가격은 금새 잊게 되었다. 게다가 한꺼번에 많이 사니 약 30%정도 할인해 주더라. 만나는 선생들에게 두어 개씩 줄 요량으로 샀건만 한가위가 오기 전에는 모두들 밖으로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을테니 잠시 방에 보관해 두는 수 밖에.

한가위 특별 맞이 영화를 하나 싶어 극장에 가고 싶었지만 잠시 미뤄야겠다. 함께 보러 갈 친구를 찾으면 가야지. 장춘에 극장다운 극장이 없었는데 작년 말엔가 총칭루(충경로)에 완다국제영화관이 생겼다. 얼마 전 중국에 온 지 두번 째로 극장을 찾았는데 아는 친구의 소개로 가보게 되었다. 분위기는 한국의 멀티플렉스 극장과 비슷했다. 얼마나 기뻤는지... 처음에 갔던 극장은 극장이라고 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완다국제영화관은 음향시설이나 기타 부대 시설도 꽤 좋았기 때문에 앞으로 극장엔 종종 갈 수 있게 될 거라 기대하고 있다. 상영하는 영화 수가 적은 편이어서 아쉽긴 하지만.

며칠 더 남은 휴가 기간 나름 편하게 쉬며 일하며 보내야겠다. 연휴가 끝나고 나면 바빠질 일이 또 기다리고 있으니 재충전을 할 수 있도록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