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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7월 8일 금요일

해후

창광시 감독님과 김군 선생님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광동음식을 잘하는 자그마한 식당에서 오랜만의 재회를 했는데 여전한 미소와 친절을 보여주신다. 무척 바쁜 와중에도 멀리서 왔다고 한달음에 나와 주시니 고마울 따름이다. 식사비를 계산한다고 하니 창감독님이 젊은 사람들은 귀찮게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며 계산을 하신다. 어머님이 광동분이시라 이 식당으로 정했다며 광동음식 맛이 어릴 적 먹던 맛과 비슷하다 하신다. 김군 선생님은 여전히 겸손하게 조심조심 한국어와 중국어를 번갈아 쓰며 얘기를 하신다. 김군 선생님은 만약 자신이 한국에 들어가면 한국 사람들이 조선족이 한국어도 못한다고 욕할 거라며 부끄러워 하신다. 그런데 그 분은 연변에서 태어나지도 않았을 뿐더러 조선족 자치구에서 생활한 게 겨우 몇 년인데다 일 때문에 다닌 곳에서 조선족이나 한국인을 만날 기회가 전혀 없었다고 하신다. 단어량이 부족하지만 (특히 한국어에 외래어, 영어가 많아서...) 열심히 한국어로 말을 하려고 하는 모습에 오히려 내가 미안해하곤 한다. 편하게 말씀하시라고 해도 중국어로 말하는 게 내겐 그 분도 참 미안하신가 보다.

모두들 늦은 시간에도 일이 있었던 지라 오랜 얘기를 하지 못했지만 다시 한 번 더 만나자고 약속. 창광시 감독님은 참 예의바르시지만 격식을 중요시 하지 않고 늘 젊고 활기차게 생활하신다. 참 배우고 싶은 부분이다. 연세도 많으신데 늘 건강하시길...


* 돌아오는 길, 순박하게 생긴 아저씨가 색깔 떡(중국인들이 말할 때 그랬지만 아마 클레이같은 게 아니었을까...싶은데)으로 여러 인형, 새, 소녀 등을 턱턱 만들어낸다. 원하는 대로 손으로 빚어 만들어 주기 때문에 그렇게 정교하진 않지만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런데 그 인형이 겨우 3원. 흠... 그 아저씨를 동정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지만 여러 감정이 교차해간다. 저녁 내 비가 내리던데 내일도 나오시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