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2월 27일 일요일

PT끝!

PT가 끝이 나고 이젠 모든 작업의 마무리를 위해 매진해야 한다. PT가 끝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상당한 부담을 덜어내긴 했지만 그보다도 더더욱 중요한 건 작업의 좋은 마무리다. 작품이 잘 나오기만을 바래지만 그건 역시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과의 호흡과 노력의 결과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것. 열심!히 하는 수 밖엔 도리가 없다. 하지만 이런 작업의 과정이 지나고 나면 다음 내딛는 걸음은 보다 가벼울 수 있겠다.

시간이 문제다.

어제는 정말 앉아 있으면 눈꺼풀이 저절로 감겨서 밀린 잠을 청했다. 자고 일어났는데도 조금 지나니 또 졸음이 몰려와 또 잤다. 간만에 잠은 꽤 많이 잤다. 잠 털고 다시 시작.

2005년 2월 26일 토요일

약속 :: -364

하루가 지나서 마음에 변화가 생기면 크게 두 가지 경우일테지. 아주 간사한 녀석이거나 인생을 다잡아 무척 중요한 심경의 변화가 생겼거나. 어쨌든 오늘은 어제보다 더 좋은 느낌. 마음은 더욱 편해진 느낌.

타인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내 삶에 대해서도 이렇게 편한 마음이 들기는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언젠가 느껴본 듯한 그런...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삶 그 자체에서 느꼈었던 편안함. 언제였었을까? 이런 느낌이 낯설지 않은 걸 보면...

어쨌든 고맙고 반가운 일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PT 체조.

달밤에 PT체조를 한다. 거듭되는 PT 속에서 조금은 지치기도 하지만 PT가 끝나고 나면 큰 숨 쉴 수 있음에 다행이다. 게다가 PT를 한 번씩 하고 나면 배우는 것도 한웅큼씩이다. 물론 배워놓고 나중에 또 PT할 때 잊어먹고 실수하면 도로아미타불이겠지만... 게다가 뭐, 아직 엄청나게 중요한 PT를 해보진 않았다.-_-a

어쩌면 중요한 PT라는 건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해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내 생각을 설명하고 의견을 제시하고 결정을 내리는 모든 상황이 생생약동 숨쉬는 PT가 아닐까?

아침 8시에 잡혀있는 PT시간을 맞추기 위해 온 몸에 긴장이 돋는다. 7시 전에 출발을 해야 미리 준비를 할 수 있겠다. 영상 테스트도 아직 못해봤는데...어서 준비해야지...

2005년 2월 25일 금요일

약속 :: -365

약속을 했다. 가슴은 뜨겁게 유지하되 머리는 차갑게 유지하기로. 그래서 때가 되는 날 다른 모습으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겠다니 얼마나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인가. 내 자신에 대해 불안한 부분은 생각치 않기로 한다.

즐겁고 행복한 삶을 위한, 서로에게도 즐겁고 행복한 기다림이길 바랄 뿐이다. 사람은 언제나 늘 바뀌고 하루에도 12번씩 바뀌면서도 스스로 그걸 감지하지 못하며 사는 경우도 비일비재지만 그 12번의 생각을 면밀히 검토하다보면 삶은 보다 나은 답을 던져줄 수 있을 것 같다.

....냉철한 생각으로 뜨거운 가슴을 들여다보자.

2005년 2월 23일 수요일

선후본말

어떤 상황에서든지 도피하지 말 것. 성난 파도처럼 밀려오는 현실을 온통 받아내거나 그 현실에 쓰러지거나 둘 중 하나. 무모한 짓이라 생각되지만 어쩌면 그 방법 밖에 없는 지도 모른다. 내가 거절할 상황이 아니라면 도피는 또다른 한 무더기의 감당 못할 현실을 불러오게 되기 때문이다.

난 아직까지 19살에서 20살로 들어서던 즈음에 들었던 말을 잊지 못한다. 그럼에도 실천도 제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지만... 무슨 말인고 하니, "일은 선후에 따라 처리하되 그 경중을 우선한다."라는 말. 내가 먼저 해야할 일과 나중에 해야할 일이 있지만 그 일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중요한 일과 가벼운 일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당시에는(또는 지금도) 일의 선후와 경중을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더라. 하지만 살면서 조금씩 일을 하다보면 그 (아슬아슬한) 경계선이 보일 때도 있다. 어쩌면 경험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겠지.

똑같은 일을 수백 번 반복하더라도 그 일의 취사 방법은 수천, 수만가지로 나뉘어질 수 있다. 그건 그 일이 상황에 따라 선후경중으로 나뉘어지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때론 정말 내 인생에 중요한 일임에도 눈 앞에 놓여있는 일 때문에 행동하지 못하고 붙잡지 못하는 일도 있지만 그것 또한 '지금'이 없으면 그 중요한 일을 할 수 없게 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라고 변명해 본다.

노력은 때가 되어서 하는 게 아니라 수시로 하는 것.
모든 공부 역시 때가 되어서 하는 게 아니라 수시로 하는 것.
지금이 공부할 때.

短信

1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작업에 마지막 힘을 해야할 때. 그런데도 어쩐지 머리 속이 더 복잡해지거나 혹은 알 수 없는 믿음같은 게 생긴다. 두 가지 상반된 느낌. 묘하다.

2 영화배우 이은주가 자살했다. 주홍글씨를 보면서 마지막 결말이 참 묘하다 싶었는데 이은주의 자살 소식에 영화의 후반 트렁크 씬이 꼬리를 잡고 떠오른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드라마 KAIST때 보고 참 괜찮은 배우라 생각했는데, 이제 연기가 날로 좋아지는 걸 보고 있었는데 아쉽다.

2005년 2월 22일 화요일

그의 사진.


박동식.
형을 만난 것은 내 나이 스물 넷에 한국을 떠나 꼬박 열 몇 시간을 비행기로 날아 도착한 <인도>에서 한 달 후 즈음 한국으로 돌아오긴 전 머물렀던 <캘커타>에서 였다. 처음 발을 디딘 외국이라는 낯선 곳. 그것도 배낭여행에 가장 마지막 코스라고 불리던 인도. 온 몸이 삐쭉삐쭉 긴장이 서고 늘 마음을 다잡으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것도 잠시. 일주일 후부터는 이방인으로 누릴 모든 혜택을 다 누리는 것 같은 자유로움을 느끼면서 대륙을 횡단했었다.

그 여행의 막바지 한국으로 돌아오기 며칠 전 캘커타에서 동식 형을 만났다. 반바지에 신발을 구겨 신고 작은 배낭을 메고 러닝 셔츠같은 옷을 입고 수동 사진기를 손에 든 모습이었다. 발 뒤꿈치는 물집이 잡혀 다 터져있는...어쩌면 정말 배낭여행을 가장한 우리보다 노련한 경험이 묻어보였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여행 중에 단 한 번도 한국인을 만나지 못했던 터였고 캘커타에 도착해서 만난 첫 번째 한국인이었다는 사실에 반가워하며 기뻐했었다.

내가 가고 싶어하는 곳과 형이 가고 싶어했던 곳이 일치했기 때문에 난 일행과 헤어지고 형과 함께 몇 군데를 돌아다녔다. 많은 얘기를 했고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형이 찍은 사진을 볼 때는 감동 자체였다. 기능도 별로 없는 작은 수동 카메라에 담긴 사람들의 모습은 삶을 그대로 간직한 모습. 얼굴. 표정이었다. 어떤 사진은 가슴에서 울컥하는 슬픔이 밀려오고 어떤 사진은 한 없는 자유로움에 눈을 감게 되기도 했다.

인도의 금주령을 피해 배낭 여행자에겐 가장 물가가 비싼 항목으로 꼽히는 맥주를 먹기 위해 자리를 옮겨가며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인도에서의 건배를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하며 폭우가 쏟아진 캘커타의 골목을 무릎이 잠겨가며 걷고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인도에서 동식 형과의 만남은 그렇게 딱 1박 2일이었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고 동식 형은 다른 곳으로 떠나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 편지를 주고 받았고 전화를 하며 지금까지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 벌써 10년 시간인가? 96년 그 해 인도에서 돌아온 형은 "마지막 여행"이라는 책을 출판했고 황송하게도 내 이름이 몇 번 등장한다. 그리고 또 한 권의 책 "제주도"도 발간했고 월간 PAPER 등 많은 곳에서 형의 글고 사진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형의 글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고 특히 사진은 사람의 깊이를 담아내는 진심이 있다. 스스로 사진 찍는 법을 배우지 않았다고 하지만 어쩌면 인생을 배워가고 살아가고 견뎌내면 그런 힘을 얻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를 완성해가는 방식으로 형의 글과 사진은 참 애정깊다. 사람을 어루만지는 힘이 있다. 관계를 어루만지는 따스함이 있다.

그런 형이 이번에 사진 전시를 한단다. 전시를 하는 속마음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바빠서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형의 홈페이지에 가보니 사진도 판매 한다하고 사인도 해준다 한다. 가격이 참 착하다고 한다. 형이 칭찬한 함께 전시하는 화덕현이란 분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다. 이들의 눈에 비친 세상이 궁금해진다.

새삼스럽게 문득 인도가 가고 싶어진다.
인도 언저리에 있는 티벳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