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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23일 금요일

외로움

아는 동생이 묻는다.

'오빠, 아직도 외로워요?'

'응? 언제 내가 외롭다고 했던가?'

'아니, 그렇게 보여요.'

'아... 음...'

사실 대화하는 내내 나도 내 표정이 좀 슬픈 듯 했는데
세심한 녀석은 기어이 묻고야 만다.

'사실, 다 외로운 것 아닌가?'

'..... 그런가요?'

뻔한 답변이지만 그 대답으론 녀석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렇다고 속을 다 드러내 보일 수는 없는데
내 눈은 상대방을 속이는데 익숙하지가 않다.
입은 웃고 있어도 눈에 머문 외로움은 쉽게 떨구어지지 않는다.

'언제 외로움을 느껴요?'

'그러게... 꼭 외롭다고 느낀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또 언제 만날지 모르는 상황이라 꼭 듣고 싶은 시선을 보낸다.
잠시 망설이다 이윽고 체념한 듯 입을 열었다.
아니, 사실 어쩌면 조금은 녀석과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같은 방향을 보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쉽지 않는 것 같아.
설령 결혼한 사이라 해도 닭살이 돋을 만큼 공명을 한다는 건 쉽지가 않잖아?
물론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상대가 세상에 존재할지 어떨지 모르겠어.
가령, 과거에 어떤 사람의 글을 읽고 흥분이 된다 하더라도 실제 그 사람과 함께
삶을 공유하고 같이 생활하다 보면 스스로의 환상과 이상이 무너지기도 하는 것처럼.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하기엔 버겁고 그걸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없다고 느껴지는 어떤 날,
가끔이긴 하지만 외롭다고 느껴져.'

'전에 그런 사람이 있었어요?'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역시 함께 삶을 공유하게 되면 또다시 원점이 될지도 모를 일이지.
겪어보지 않은 일을 가지고 말을 하긴 뭐하지만...'

조금은 공감하는 표정을 짓던 녀석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
그리고 마치 나비의 날개짓처럼 가볍게 하지만 의미있게 입을 열었다.

'...그 맘, 조금은 알 것 같아요...'

문득 녀석이 고맙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왈칵 외로움이 밀려왔다.
만약 술이라도 마셔서 취기가 오른 상태라면 눈물이 흘렀을지도 모르겠다.
취기에 그 분에게 전화했던 때처럼 소리내며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알 것 같다니, 내가 고맙다.'

어두워지만 창 밖과는 달리 녀석의 표정은 조금씩 밝아졌다.
난 계속 가슴 속을 누르는 상태가 되고 얼굴을 조금 발갛게 달아올랐다.

녀석이 고마웠고 내 자신이 힘겨워보였다.
이런 종류의 외로움과 고마움은 아주 가끔, 아무때나 찾아온다.
내일이면 표면 위로 증발해버릴 가벼운 무게 정도,
하지만 언제나 주변을 맴돌며 내 호흡기를 드나들 외로움 따위.

나를 위로하던 녀석을 눈을 바라보며 어깨를 토닥이다
다시 울컥하고 말았다.

언제부터 그랬던 것일까. 난.

2010년 2월 24일 수요일

희망을 품으며 희망을 경계한다.

'희망'처럼 상투적인 단어도 없지만 '희망'이란 말처럼 꿈을 꾸게 하는 단어도 많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희망을 자주 말하는 걸 경계한다. 희망없는 세상에서 희망은 너무나 쉽게 나오는 말이기 때문이다. 희망이란 말을 하면서 자신의 희망을 타인으로부터 취하려는 자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나와 너의 희망이 같아지려면 꽤 오랜시간을 대화하고 소통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가끔은 희망을 품는다. 조심스럽게, 급하지 않게 희망을 품는다. 그리고 너에게, 나에게 몇 번이고 묻는다. 희망이 무엇인지, 품어도 되는 희망인지. 급하게 품는 희망은 희망이 아니다. 경박하게 품는 희망 역시 희망이 아니다. 희망은 기다림이다. 흐르는 시간을 지켜봐야만 하고 그 시간 속에서 조금이라도 변해가려는 의지가 전보다 확고해져야 한다.

 

지금 당장 불만이라고 해서 희망을 품거나 희망이 금새 오지 않는다 해서 버리는 희망은 '희망'이 아니다. 어쩌면 여러 차례의 기회라고 생각되는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될 즈음, 어쩌면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할 즈음, 꺽인 허리를 펴고 기력없는 다리를 움직일 즈음 희망은 생겨나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희망을 품는 게 아니라 희망이 나를 품어 일으키는 지도 모르겠다.

 

 

무겁게 매달린 귤들이 모두 떨어져도 절대 먹지 않고 그대로 버린다는 지인(人)의 소위 '부자 귤나무'. 눈 앞에 싱그럽게 매달린 과실을 보면서도 먹지 않아야 하고, 바닥에 떨어져도 아까워하지 않고 버려야 하는 나름의 규칙은 기다림과 인내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모든 귤들이 떨어지고 버려진 후에 다시 열매 맺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2010년 2월 13일 토요일

서점이 사라진 세상의 무식한 대학생

그대 이름은 무식한 대학생 - 홍세화 via 일상다반사 by 후박나무

 

글을 읽다 몇 가지 기억이 떠올라 적는다.

 

내가 다니던 대학 앞에는 소위 '대학로'라는 게 있었다. 크지 않은 도시였기에 젊은 대학생들은 대학로 그곳에서 대부분의 일과를 보내곤 했다. 그러니까 내가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는 대학 근처에 가면 크고 작은 서점이 곳곳에 있었고 전통 주점과 당구장, (비디오를 볼 수 있는) 다방 그리고 비교적 촌티나는 상점들이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대학에 입학한 후에 시대가 급변했고 대학로 역시 빠른 속도로 변해갔다. 당구장은 PC방과의 경쟁에서 밀리며 가격을 점점 인하하더니 하나둘씩 문을 닫기 시작했고 속칭 비디오 다방(커피숍)은 최신 시설을 구비한 비디오방으로 변해갔다. 촌티나는 상점들은 인테리어에 상당히 공격적인 투자를 하며 자리를 잡아갔고 전통주점은 '인동초'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 사라졌다.

 

사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가끔 들렸던 서점이 점차 눈에 띄지 않더니 어느샌가 시험준비를 위한 서점을 제외하고는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었다.

 

즈음, 마지막까지 남아서 인문학 서적을 팔던 서점이 한 군데 있었는데 서점 주인아저씨(기억으로는 형님뻘)는 소아마비였다. 한쪽 다리가 유난히 가늘었던 데다가 까만 뿔테 안경을 쓰고 있어 기억이 선하다. 약간은 차갑지만 온화한 기운이 흐르던 주인아저씨는 어느 날 서점을 찾았던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서건 말건 관심없는 듯 책들을 차곡차곡 쌓아서 묶고 있었다.

 

주인아저씨에게 "어? 서점 이제 안 해요?"라고 물었다. 주인아저씨는 다른 날과는 다른 좀 더 엄숙하고 조금은 침통한 표정으로 "네"라고 짧게 답했다. "어.. 여기가 대학로에서 마지막 남은 서점인데... 이제 어디에서 책을 사야 하나..."라고 주인아저씨가 들릴 듯 말 듯 혼잣말을 했는데 그 때 난 씁쓸하게 가느다란 웃음을 짓던 주인아저씨의 모습을 보았다. 난 그 쓸쓸하고 슬픔이 막 쏟아져 나올 것 같은 주인아저씨의 표정과 분위기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그 서점이 마지막으로 문을 닫던 날 부터 대학로는 급속히 유흥가로 변해갔던 것 같다. 그리고 더 이상 대학 교정(캠퍼스)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기타치고 노래하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고 어느 누구도 무언가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고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 것 같다. 내 기억 속에서 소위 '지성의 대학로'는 어느 짧은 시간동안 '무식한 대학로'로 부끄러움 하나도 없이 완벽하게 얼굴을 바꿔버렸다.

 

그때의 난 (지금도 그렇지만) 철이 없었고 사리분별이 명확하다고 할 수 없었지만 '서점이 자취를 감췄다'는 현실에 대해서는 큰 충격을 받았었다. '대학로'에서 서점이 사라지다니 그 보다 더 큰 충격이 있을까. 서점이 사라진 후의 대학로는 돈을 쓰는 자와 돈을 버는 자 두 부류만 남아 서로 물고 뜯는 일만 가득해지게 되었다.

 

오색의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대학로의 밤거리는 나름대로 꽤 운치가 있다. 하지만 날이 밝고 아침이 되면 (좀 과장을 하자면) 정신 못차리는 술취한 대학생들과 그들의 틈에 어지럽게 방황하는 고등학생과 젊은이들이 넘쳐났다. 누가 대학로를 그렇게 변하게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세상이 그렇게 변해가니 각자 살길을 찾아, 적응하기 위해 몸부림을 쳤을 것이다.

 

그때가 아마도 '독재타도'와 '민주주의'를 외치던 구호가 (지금도 큰 이슈인) '등록금 인하'의 구호로 바뀔 즈음이 아니었나 싶다. 사상과 철학, 이념의 목적이 뚜렷했던 세대가 무언가를 손에 얻어 쥐게 된 후엔 누구도 그 이후에 대해 논의한 바가 없었고 마치 방향잃은 부표처럼 흥청거리진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들어온 '새내기'들은 '4.3 추모집회'를 하던 '5.18 추모집회'를 하던 이젠 철지난 이슈와 이념으로 치부하며 함께 어깨걸기를 꺼려했고 대신에 '돈'을 들여 몸치장을 하고 '돈'을 쓰며 몸에 알코올을 붓고 사랑을 나누고 젊음을 탕진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 방향잃은 부표, 386세대들은 지금 정치를, 경제를 쥐락펴락하고 있을 텐데 그들이 원하던 '독재타도'와 '민주주의'는 문열이만 하고서 모두 함께 '먹고 사는' 문제로 가열차게 걸음을 옮겨버렸다. 그리고 그 이후에 (여러가지 이유와 원인들이 있겠지만) 대학로에 서점은 사라지고 책은 잃지 않는 대학생만 넘쳐나게 되지 않았나 싶다.

 

홍세화씨가 말한 '무식한 대학생'이란 말은 옳다. 하지만 대학생만 무식한 게 아니다. (물론 나를 포함해) 수 많은 성인(成人)들이 무식하다. 역사적 사실을 줄줄 꿰고 있다고 해서,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해서, 수 많은 고전들을 읽었다고 해서 유식한 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성인들은 무식하다.

 

하지만 홍세화씨가 대학생을 지칭해 무식하다며 깨어나야 한다고 외치는 목소리엔 충분히 공감한다. 근래에 개인적으로 내린 작은 결론, 세상의 수 많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대학생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물론 난 꼭 학벌에 속하는 '대학생'만을 지칭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젊은이들 중 열에 아홉은 대학생이라고 해도 무방하니 꼭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다만, 홍세화씨의 외침에, 질문에 반응을 보일 대학생들이 많은가라고 반문해보면 개인적으론 무척 비관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일은 아니지만 쉽지 않은 일임은 분명하다. 이런 생각들을 종합해보면 역시 대학생이 변하면 세상이 변할 수 있다는 희망 한 줌은 있다는 것이다.

 

홍세화씨의 글을 읽으며 나의 '무식'을 비수로 찌르는 듯 해서 아프고 비참했다. 무식해지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나의 유식은 금새 밑천을 드러내기 마련이라 스스로가 무식하지 않다고 항변할 수도 없다. 그래서 빨리 유식해지지 못할 바에야 스스로의 무식함을 절절히 곱씹어보고자 기억의 편린들과 몇 가지 생각을 두서없이 기록한다. 적어도 스스로 유식하다며 '자존자대'하는 우(愚)는 범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나.

 

 

** 링크 걸린 글 내용 중 '그대가 입학한 대학과 학과는 그대가 선택한 게 아니다. 그대가 선택당한 것이다'라는 말을 곱씹게 된다. 다시 말해 '내가 소신지원해서 간 대학'이 사실은 '대학들의 (줄세우기로 인한) 비열한 선택의 결과'임을 인정한다면 이 나라 교육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기괴한 시스템을 바로 잡지 않는다면 대학생들이 '무식의 굴레'를 벗어던지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2010년 1월 20일 수요일

대한민국 검찰이 무서운 이유

PD수첩의 무죄선고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한바탕 소동을 치루고서도 꽤 시간이 흐른 지금, 당시 PD수첩에 대한 고소/고발, 음해로 시끄러웠던 기억보다 무죄에 대한 기억을 갖게 될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문제는 이것이다.

 

언론에 대한 검찰의 무작위 고소/고발 폐해에 대한 좋은 선례가 남겨졌고 언론의 기능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마련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재판까지 가는 상황에서 한쪽은 이득을 얻고 한쪽은 손해를 입는 법이다.

 

법은 좋은 편, 나쁜 편이 없다는 점에서 양날의 칼과 같다. 그래서 힘이 있건 없건, 권력의 편에 섰건 등을 졌건, 빽이 있건 없건 법 앞에서는 평등할 수 있다. 하지만 법의 칼을 이용함에 있어 '사견'이 끼어들거나 '집단의 카르텔'이 작용하면 양날의 칼은 한쪽만 날이 선 반쪽짜리 칼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법을 안다는 자들, 집행하는 자들이 이 법의 칼을 사용할 때는 더더욱 조심해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자신의 허물을 덮기 위한 용도로, 타인의 공적을 깍아내리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일반인들이라면 가능하지도 않은 일을 정부관계자와 검찰은 아무렇지도 않게 언론을, 시민단체를, 국민을 법으로 희롱하고 농락한다. 모든 일들이 사필귀정으로 끝을 맺으면 좋겠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법의 결과가 나오는 경우도 많고 혹여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후다. 타격은 입을 대로 다 입고 손해는 손해대로 다 입고 시간은 시간대로 흐르고 난 후다. 그렇게 일련의 소동들이 잠잠해지고 난 후 '해명'을 한다 해도 애초 사건이 벌어질 때와는 전혀 다르게 대다수의 매체들은 '몇 줄의 기사'로 보도할 뿐이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해명'은 존재하지도 않게 된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사건의 발단과 진행은 기억하되 결말은 기억하지 않는다. 그래서 수 많은 비리 정치인들이 4년이 지나고 나면 다시 국민의 손에 선출되곤 한다. 수 많은 비리 공직자들이 솜털보다 가벼운 징계를 먹고서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곤 한다.

 

대한민국에서 법과 가장 가까운,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자들은 과연 국민들과 함께 법 앞에 평등한지, 법 아래 고개를 숙이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들의 뜻대로 사실은 은폐되고 왜곡될 것이며 그들의 의도대로 세상을 다스리게 될 것이다. 기소요건조차 성립되지 않을 일들이 기소가 되고 상식으로도 판단될 문제들이 재판정에 서야 하는 건 그들의 법을 엄중히 다뤄서가 아니라 법을 제 입맛대로 다루려고 하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험한 자들은 '정부'도, '당'도, '재벌'도 아니다. 치외법권에서 살고 있는, 국민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제 맘대로 휘두르며 법을 업수이 여기는 '검찰'이다. 그들이 지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도 현재와 같이 언론을 대하고 국민들을 대했다면 그냥 '박쥐'와 같은 존재라며 헛웃음을 지었을 것이다. 아니, 일말의 희망을 품었을 수도 있다. 정권이 바뀌면 그 편에 설테니까. 하지만 그들의 행위는 소위 말하는 오른쪽, 수구의 편에 서서만 말하고 행동하고 기소하며 심판하려 든다. 변함없는 편향성, 그들은 변할 줄을 모른다. 무섭다.

 

PD수첩의 무죄 판결에 대해서 여전히 할 말이 많은 검찰이다. 하지만 그들의 반론을 읽어보면 그들이 대한민국 검찰인지 미국 검찰의 한국지사인지 궁금해질 수 밖에 없으며 그들의 억지는 또다시 법 위에 서서 물을 흐리려고 하는 수작으로 밖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대한민국 검찰이 부끄럽지만 무섭기도 하다.

 

양심있는 검찰들의 일대 반란, 혁명을 기대한다는 건 꿈일 뿐일까.

2010년 1월 16일 토요일

아이티의 비극

flickr ccl image

 

'아이티(Haiti)'의 비극. 지진 7.0의 강도(强度)도 문제지만 극빈국이었기 때문에 참사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아이티 국민들의 가족을 잃은 울부짖음과 집과 삶의 터전을 잃어 망연자실한 표정들은 가슴을 메어지게 한다. 그들의 아픔에 위로를 보낸다.

 

전에 MBC '세계와 나 W'에서 소개된 아이티는 아이들이 진흙쿠키를 먹으며 연명한다거나 정치가 불안정하다거나 벌목으로 황폐화되고 있는 나라였다. 그런 나라에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지진까지 발생했으니 사망자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건 뻔한 일이다. 국가시스템은 곧 무너져 내릴 것처럼 위태하고 사회 시스템 및 안전망은 존재하지 않은 상태에서 마주하게 되는 자연재해/재난은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다. 아이티는 왜 그런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아이티를 통치하는 자들의 어리석음도 있겠지만 그들의 상황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경제대국들이 더 문제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이익을 미끼삼아 빈국의 지도층을 구워삶아 매수하고 그들이 가진 노동력과 천연자원을 원하는 대로 부려쓰고 약탈하는 게 문제다. 내정불간섭이라는 원칙은 고수하지만 경제력으로 빈틈이 보이는 나라는 원하는 대로 조종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만약 대한민국이나 그에 반하는 경제능력을 가진 나라가 아이티와 같은 지진-자연재해를 마주했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아이티와 같은 처참한 상황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확산되고 심해지진 않을 것이다. 빈곤은 빈곤을 낳고 빈곤은 악순환을 거듭한다.

 

조속히 해결되기 어려운 아이티의 비극을 보며 문제의 원인을 다시 생각해 본다. 왜 아이티는 극빈의 나라가 되었는가. 그들의 노동력과 그들의 자원은 왜 정당한 가치로 환원되지 못하는가. 그들이 하루 10시간을 노동해서 손에 쥐는 돈과 우리가 하루 10시간을 노동해서 손에 쥐는 돈의 무게와 가치는 왜 엄청난 간극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

 

세상의 불균형과 빈곤의 확대는 경제력을 무기로, 자본을 흉기로 사용하는 나라들의 문제겠지만 그런 나라들의 국제깡패같은 행위를 조장하게 하는 건 나라의 정치인들과 그 지도자를 뽑은 그 나라 국민들의 책임도 있는 것이다. 먼 이웃나라 아이티, 먼 이웃나라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 그 외 강대국의 경제논리에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는 많은 나라의 국민들의 아픔을 함께 나눠야 하는 이유다.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는 않지만 아이티가 어서 고통에서 벗어나길, 아픈 상처가 조속히 치유되길 염원한다. 더불어 이번 사태가 진정되고 나면 아이티에 진흙쿠키가 사라졌으면, 그들의 노동이 정당한 가치로 환원되기를 바라본다.

2010년 1월 12일 화요일

개새끼

개는 먹을 걸 주면서 길들일 수 있다. 만약 말을 듣지 않으면 때리면 된다. 심하게 맞아 본 개는 때린 사람의 무서움을 기억한다. 먹을 것과 채찍을 병행하면 개들은 충분히 길들일 수 있다. 말을 잘 들으면 먹이를 던져주고 잘못하면 때린다. 아주 단순한 행위의 반복이지만 시간이 오래될 수록 주인의 명령에 복종하는 충성스러운 개가 된다.

내 맘에 들지 않으면 짖고 물어 뜯다가도 조금만 잘해주면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꼬리를 흔들어 대는 건 개들의 전매특허다. 경기(經氣)가 조금만 좋지 않으면 아우성을 보내고 내가 살고 있던 집 가격이 치솟으면 환호를 보낸다. 정작 변화가 필요한 곳, 정작 개선이 필요한 곳에는 눈도 돌리지 않는 건 왜일까. 잘못한 건 잘못한 것이고 개선해야 할 것은 개선해야 한다. 잘잘못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한다.

당장 눈 앞의 '내 이익'에만 쌍심지를 켜고 세상을 바라보는 이들은 정부가, 권력이 아주 좋아하는 조련 대상일 뿐이다. 가령 세종시 원안에 찬성을 하던 사람이 수정 안이 나오면 반대를 하다가 수정안이 자신이 유리한 쪽인 것 같으면 다시 찬성으로 돌아선다. 이 뿐인가. 좋아하는 정부, 지도자건 싫어하는 정부, 지도자건 잘하는 일이 있고 못하는 일이 있는 건 당연하다.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에 대한 살핌과 통찰없이 그들이 던져주는 먹이에 일희일비한다면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지조없는 이들의 양심엔 털이 수북하게 날 거다. '울다가 웃으면 똥구멍에 털이 난다'는 말은 진실이다.

개가 되느냐, 사람이 되느냐를 선택하는 건 약간의 불편함이 수반될 뿐 어려운 결정은 아니다.


와불(臥佛)이 일어나 활불(活佛)이 되셔야지.

"그래, 이젠 와불(臥佛)이 일어나 활불(活佛)이 되셔야지"

늘 긴장과 초조로 안절부절 못하는 건 나의 실천력, 취사력 태만 때문이다. 옳고 그름이 분명한 판단은 보류하고라도 나은 방향으로의 확고한 행동조차 여전히 타인의 시선 속에 갇혀 방황을 종식시키지 못하고 있다. 잠을 자고 있는 와불에게 일침을 가해 수염에 불 붙은 듯 바쁘게,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하지 않겠나.

십 수년 전 어느 날, 내게 던졌던 말. 

불성(佛性)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느님, 영성과도 같고 천주(天主)와도 같다. 누워있는 와불이 일어서 육근(六根)을 움직이면 활불이 된다. 종교, 철학, 예술, 교육, 사회운동, 정치 등 인간세상 모든 방면에서 그 참맛을 알기 전에는 누워있는 와불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활불이 된다는 건 자신이 행하는 모든 것들이 사회와 함께 어우러지고 부딪히며 신명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육근을 움직일 때마다 나와 너가 둘이 아니어야 한다. 나의 손짓, 발짓, 몸짓, 마음짓이 세상과 소통하며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한 깊은 잠에서 깨지 못하는, 피곤에 스러진 와불일 수 밖에 없다.

2010년 1월 11일 월요일

서문(序文)

서문(序文)

닫힌 가슴 열고 졸린 정신 깨워 나태한 육근 매질하여
범부의 산 정상에 오르고 보면 확연히 보인다.
미욱한 안개 걷히면 내 살던 동리, 손바닥마냥 훤히 보이듯
그렇게 마음의 파란만장이 더욱 확연히 보일 뿐이다.
깨어있기. 와불이든 입불(立佛)이든 깨어만 있으면
잦은 걸음 조급치 않고 큰 걸음 성기지 않으니 그게 바로 낙(樂)수용.
정상에 서서 보니 정상(頂上)이 어디고 평지(平地)가 어딘가.
이제라도 알았으면 시선 멀리 두고 가기만 함세.



십사,오년 전 어렴풋한 그 때.

2010년 1월 10일 일요일

봄을 사다.

매춘(買春)

쨍한 볕 아래 꼭꼭 숨겨둔 욕정이 고개를 치민다.
그러지 않으리, 몇 번을 다짐했는지 모른다.
무늬가 화려한 샛노란 나비에도 맥을 못추고
금새 자위를 시작해 발갛게 몸을 달군다. 욕정은.
솜털도 옆으로 뉘이지 못할 미풍에도 식어버릴 발정이
부끄러움도 모르고 흙내음에 취해 바지춤을 내린 건
숫제 해결할 수도 없는 욕망을 좀체 버리지 못해서다.
덜어낼 수도 없어 가슴 언저리에 바짝 매달린 젊음은
기억도 할 수 없이, 수 많은 봄하늘에 뿌려댄 욕정으로
딱딱하게 말라 밤꽃냄새도 나지 않게 되면
다신 그러지 않으리 다짐을 한다. 하지만.






95년 봄 즈음 남긴 몇 줄에 첨삭.

2010년 1월 9일 토요일

낙서

말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 그립다.
온 몸 가득 사람이 그리우면
그리워서 착해진다.
날 일으켜 달라 투정부리는 내가
꼭 애 같다.





기억도 없는 오래 전, 노트의 낙서.

2010년 1월 8일 금요일

소문

 

갑자기 '김연아 소문'이란 검색어가 보였다.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내 블로그에도 이 정도로 들어오는 걸 보면 많은 사람들이 검색을 하고 있다는 뜻일 거다.(내 블로그 글은 "김연아, 소문, 무료배송, 대마초, 서경석, 외국어, 미국, 종부세, 선진국, 후진국"인데 모두 낚인 거다.-_-;)

 

무슨 내용인지 기사를 봤더니 "일본의 압력에 의해 4대륙대회에 출전한다"는 요지의 내용이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25일 앞두고 컨디션 조절을 해야해서 불참을 원했는데 일본의 압력과 강요로 인해 출전한다...는 뭐 그런 내용이다.

 

기사를 읽으면서 김연아 선수는 인터넷을 자주 하는 것 같던데 이런 기사를 읽으면 어떤 마음이 생길지 궁금했다. 혹 이런 기사들이 김연아의 심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유명해지는 만큼 루머도 많아지고 유명세에 시달린다고는 하지만 대놓고 '소문'이라는 기사가 너무 많다.

 

'소문'의 진원지는 어디의 누구일까. 혹은 그 '소문'을 확대, 재생산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만약 그 소문이 단지 소문일 뿐이라면 소문에 대한 '주의'와 '경고'의 메시지도 함께 돌아다녀야 할텐데 '소문'은 '진실'이 되거나 진실이 아닌 소문은 그냥 연기처럼 사라질 뿐이다. 한 번 전파되기 시작한 '소문'은 사람들에 의해 키워지고 부풀려져서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거대한 괴물이 되곤 한다.

 

소문은 소문 자체로 전파되기도 하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는 속담처럼 진실을 품어안고 소문이 탄생되기도 한다. 이는 진실을 진실대로 말하지 못할 경우에 자주 일어난다. 마지막 하나는 진실을 감추기 위해 소문이 탄생되는 것이다. 추악한 진실을 감추기 위해 완전히 다른 내용의 소문을 퍼트리면서 진실을 감추는 것이다.

 

매체와 기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소문(이슈 또는 '~설')'를 만든다. 사람들은 '소문'을 쫓고 소문을 쫓는 사람들에 의해 때론 엉뚱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기도 하고 반드시 처벌되어야 할 범죄자들이 몸을 숨긴다. 소문 그 자체로 피해(또는 이득)를 보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가 계속 소문을 확대재생산하기 때문에 피해(이익)를 보는 것이다.

 

수 많은 검색어가 난무하고 실시간 검색어가 중요해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밀물처럼 몰려드는 정보들에 '부회뇌동(附和雷同)'해서는 안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완전한 사실로 증명되지 않은 정보들에 대해서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바라보는 여유도 필요할 것이다. 특히 기사들의 행간(行間)을 읽는 법을 키워야 한다. 행간에 보이지 않는 활자로 적힌 내용은 기사 전체를 다시 읽을 수 있는 묘미를 주기도 하고 '진실'을 전하는 '키(key)'가 된다.

 

죽도록 미워하면 닮아간다고 했던가. 찌라시 기자들, 양심없는 기자들이 써내는 기사와 사이비 언론들이 쏟아내는 정보에 날 선 비판을 하던 사람들이 스스로가 '기사'를 생산해 내는 위치를 갖게 되면서 그들과 닮아가는 꼴을 보게 된다. 일반인들이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정보'와 '소문'을 받아들이는 피동적 위치에서 '소문'과 '정보'를 능동적으로 생산해 내는 위치가 된 것이다. 자신의 손가락을 통해, 키보들 통해 써진 글들이 대중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때 느껴지는 쾌감이나 달콤함의 유혹은 떨쳐내기 힘들다. '기자윤리'를 강요하던 시대에서 '네티즌윤리'가 중요해진 시대로 바뀐 것이다.

 

누군가가 맛있는 뼈다귀를 던져주길 기다렸다가 눈 앞에 떨어진 뼈다귀를 향해 미친듯이 달려들어 물어뜯는 개가 되기 보다는 스스로의 입맛과 취향에 맞는, 스스로가 원하는 양질의 음식을 찾기 위해 'explore'하는 '사람'이 되는 게 더 낫다.

2009년 12월 21일 월요일

안분지족(安分知足)

安分知足


‘하나’에 만족하지 못하면
둘을 준다 한들 만족이 되겠습니까.

 

인간의 욕심에 악마적 속성은 없다 했는데
세상에 뒹굴며 하나에 만족하지 못하고

둘, 셋 원하는 욕심만 큰 삶이다 보니
너 죽이고 나 죽이는 판이 되었습니다.

 

자본주의의 윤택함과 無所有의 소박한 가치가

서로 충돌할 때는 자기성찰하는 이들조차
‘하나’도 버거운 짐이 되곤 하나 봅니다.

 

‘하나’도 너무 많아

반으로 쪼개 '너'에게 나누고 나면
반쪽은 다시 완전한 ‘하나’가 됩니다.

 

반쪽이 완전한 '하나'가 되는 이치,

'하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하나'를 놓아버리는 행위로 살아 낼 세상은

작은 가슴으로 품어 낸, 태산도 품을 큰 세계입니다.

 

 

 

 

** 안분지족[安分知足]: [명사] 편안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을 앎.

 

 

90년 중반을 넘어서며, 어느 날.

옹골지게

옹골지게

 

아는 만큼만 쓰고, 알아진 만큼만 쓰기.

사족은 달지 말고, 구차한 변명도 하지 않기.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매 순간 부족한 자신과 대면하면

아이쿠야! 멍충이 바보야!

남 탓말고 내 탓으로, 내 덕말고 네 덕으로.

온기있는 손으로 마음 어루만지기.

 

단전에 힘 주고, 숨 한 번 길게.

마음 속 '나'와 '너', '툭'하고 놓으니 
아는 게 요만큼이어도, 할 말이 두어 줄이어도

가슴은 하늘만큼, 맑고 맑다.

 

부끄럽지 않고 매이지 않게, 가슴에 품은 만큼만

아무런 사량계교없이 이쁘게, 옹골지게 삼세.

 

 

 

 

 

95년을 넘어서던 청춘의 어느 날.

2009년 12월 12일 토요일

경쟁은 필요없다.

우연히 TV채널을 돌리다 시선이 멈췄다. 호흡이 느려졌고 가슴이 뜨거워졌다. EBS의 지식채널e에서 화면에 뎐져지고 있던 글귀들 때문이었다. 다시보기를 찾아 2부작으로 된 '핀란드의 실험'을 봤다. 아주 평범하고 단순한 사실인데 그 평범하고 단순한 사실 앞에서 '울컥'했다. 아래는 프로그램에서 나왔던 텍스트의 일부를 옮겨 적은 내용이다.

교실에서의 경쟁은 필요없다. 협동이 살길이다.
교실에서의 협동을 위해 성적표에서 사라지는 등수
오늘은 못하지만 내일은 잘할 수도 있고
수학은 못하지만 언어는 잘할 수도 있는 건데
몇 번의 시험으로 우열을 매기는 것이
학생 개인에게나 사회 전체에게나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학교에서 경쟁만을 배우고 협동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이
사회의 미래를 책임진다면 과연 그 사회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요?

 

가정환경, 부모의 능력에 따라 달라지는 출발점
학교에 입학한 모든 아이들이 같은 출발선에 서지 못한다
그러니 공정한 경쟁이란 있을 수 없다.
학교에서의 경쟁을 금지하는 국가.(핀란드)
성적표는 있다. 하지만 등수는 없다.
등수 대신 각자의 수준에 맞게 설정한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지가 표시되는 성적표
경쟁 대상은 친구가 아니라 내 자신.

 

일제고사를 통해 더 못하는 아이, 더 못하는 학교가 받는 차별은 다름아닌
더 많이 책정되는 1.5배의 예산이었다.
그들에게 차별은 차이를 넓히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좁히는 도구였다.

 

경쟁은 경쟁을 낳아 결국 유치원생까지 경쟁의 소용돌이에 말려들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설득시켰다. 학교는 좋은 시민이 되기 위한 교양을 쌓는 과정이다. 그리고 경쟁은 좋은 시민이 된 다음의 일이다. -에르끼 아호, 핀란드 전 국가교육청장

 

via EBS 지식채널e 중

핀란드의 실험 제1부 탈출구
핀란드의 실험 제2부 더 많은 차별

 

대한민국의 교육이 문제라고 열을 낸다. 교육정책이 엉망이라고 한탄한다. 교육정책이, 교육관련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면 실컷 비난하고 욕을 하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한다. 그리고 잠시 담배 하나 피고 올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래도 제 자식은 잘 키우고 싶어 등 떠밀어 학원에 보낸다. 학원에 가지 못한 아이는 자살을 생각하기도 하고 다른 아이들과 다른 삶 때문에 힘겨워 한다. 자식을 학원에 보내지 못한 부모는 아이에게 평생의 미안함을 끌어안고 살아야 한다.

 

누구나 다 학원에 가고 누구나 다 경쟁을 하고 누구나 다 상대를 짓밟아야 하는 냉정한 경쟁사회에서 '교육문제'를 거론하고 '바른 교육'에 대해 고민하는 건 왠지 뒤쳐지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교육이 문제라고 열을 올리면서도 지금은 때가 아니라 생각하는 거다. 지금 뒤쳐지면 평생을 '루저'로 살아야 하고 인생 전체가 망가지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괜찮은 대안학교가 생기면 '경쟁적'으로 학교에 입학을 시켜야 하고 그 학교를 나온 학생이 대학도 잘 가더라, 공부도 알아서 잘 하더라는 소문이 삽시간에 번진다. 공교육을 강화하자고 입을 모아 외치고선 과외선생님을 집 안으로 모시고 따로 선생님을 찾아뵙고 입소문과 인터넷을 뒤져 가장 좋은 학원으로 아이를 떠민다. '교실에서의 경쟁은 필요없다. 협동이 살길이다.'는 말은 '이상적 답안'일 뿐 '현실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제 자신 혼자서 '이상적 답안'을 좇아 사는 건 무척 두렵고 힘겨운 삶이다. '이상적 답안'을 좇는 게 둘이어도, 열이어도, 백이어도 어차피 이 세상에선 소수일 뿐이다. 다수가 하자는 대로 살지 않으면 피곤만 가중될 뿐이다.

 

세상이 이렇기에 '학교는 좋은 시민이 되기 위한 교양을 쌓는 과정'이고 '경쟁은 좋은 시민이 된 다음의 일'이라 말하는 에르끼 아호의 말이 더 가슴을 울리는지 모르겠다. 내 어릴 적 '전인교육'에 대한 뜻을 배우고 '배움은 평생' 지속되어야 한다는 말을 배웠는데 그건 단지 교과서 안에만 있는 말일 뿐이고 현실에선 전혀 쓸모없는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우리는 교육을 통해, 학교를 통해 좋은 시민이 되었는가. 좋은 시민으로 살고자 하는 욕구는 존재하는가.

 

경쟁은 소수의 지배자가 세상을 다스리기 가장 손쉬운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그들의 노예로 만들게 하기 위해선 '경쟁'만큼 좋은 도구가 없다. 혹 경쟁을 통해 그들의 세상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한들 그것은 단지 그들 사회의 가장 하층계급이 되는 것일 뿐 그들이 정해놓은 룰을 벗어나 그들과 같은 레벨로 설 수는 없다.

 

경쟁을 거부하면 당장은 나의 삶이 힘겨워질 것이다. 남에게 짓밟히고 이리저리 채일 것이다. 실제로 그럴 수도 있고 그렇다고 착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경쟁을 거부한다고 해서 그런 일들이 실제로 벌어질 확률은 생각보다 적다. 오히려 그런 노력들이 세상을 바꾸는 발판이 될 수도 있다.

 

세상에 공정한 경쟁이란 존재할 수 없음에도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다고 부추기는 특권층과 사회 분위기. 평등이란 말 자체가 이미 성립될 수 없는 사회임에도 평등을 이루겠다고 주장하고 부추기는 사회. '아랫것'들이 머리 터지며 출혈경쟁을 하는 것이, 평등해질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 '윗분'들의 레벨로 상승할 수 있다고 맹신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깨닫지 못한다면 대한민국 교육의 미래에 대해 밤낮으로 이야기한들 공염불에 불과할 것이다.

 

** 지식채널e 동영상에 나온 내용 중 핀란드는 1985년 우열반을 폐지했다고 한다. 그 때부터 학교에 경쟁이 아닌 협력과 협동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나 싶은데 그 때부터 지금까지 대략 30년이 흘렀다. 어떤 정책이던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이 바뀌는 시간 대략 30년, 한 세대 정도의 시간. 그 시간이면 충분하다.

 

 

▣ 함께 읽기

비장(悲壯)한 수능(修能)현장을 보며...

via 규항넷

행복이란 무엇인가
학원을 없애자

2009년 12월 9일 수요일

사실대로 증언 할 내부고발자는 100명 중 단 26명 뿐.

어렸을 때 종종 듣던 이야기 중에 하나.

 

돈 많고 권세 있는 집안의 청년이 늘 수 많은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지만 유독 허름한 옷을 입은 친구와는 가까이 하려 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청년에게 말한다.

"저 많은 사람들 중에 진정한 친구가 있다고 생각하느냐"

청년은 대부분이 자신을 위하는 진정한 친구라고 대답한다. 아버지는 청년에게 제안한다.

"네가 친구들을 찾아가 살인을 했다고 하면서 숨겨달라고 해 보거라. 만약 숨겨주는 친구가 있다면 너의 진정한 친구라고 할 만하다."

아버지는 단 한 명도 청년을 숨겨줄 리 없다고 단언했고 청년은 콧웃음을 치며 그럴 리 없다고 부정했다. 결과는? 모든 친구들은 청년을 문전박대했다. 청년이 늘 허름하다고 무시했던 친구 한 명만이 그 친구에게 손을 내밀며 집안으로 들인다. 청년은 깨닫는다.

"아, 그 많던 친구들은 나의 돈과 권세만을 보고 가까워진 것이구나. 진정한 친구는 정말 어려움에 처한 나에게 손을 내민 이 친구 밖엔 없구나"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진정한 친구를 가려내는 법(?)' 정도가 되겠다. 물론 진정한 친구를 사귀는 법도 중요하고 자신의 화려한 겉모습만 보고 달려드는 불나방같은 이들을 가려내야 하는 것도 중요하다. 살인을 하고 왔더라도 나의 진정한 친구라면 숨겨줘야 한다. 만약 관아에 가서 고발을 한다면? 그건 친구도 뭣도 아닌 그냥 '개XX'다. 친구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좋을 때나 어려울 때 함께 해야 한다. 동고동락(同苦同樂)해야 한다. 좀 더 이야기를 확대해서 친구의 우정과 의리 따위를 신고와 고발로 바꿀 X은 그 바닥에서 매장당해야 한다.
 
진정한 친구, 동료라는 개념이 아주 친밀하게 발전함과 동시에 그 개념의 깊은 곳에 '가족'이란 단어를 함께 박아두고 사용하기 시작한다. 대한민국은 거대한 가족(한민족)이며 그 안에 수 많은 직장과 단체, 집단들은 소가족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 가족과 같은 혈연, 지연, 학연 등으로 촘촘히 얽혀있는 대한민국에선 내가 어렵다고 등 돌리는 X은,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신고와 고발'따위로 소금 뿌리는 X은 매장당해야 할 존재고 그냥 그 바닥에서 죽음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내부고발자(휘슬 블로어;whistle-blower) 혹은 공익제보자들의 행위는 다른 말로 배신행위며 배신은 곧 죽음이란 무시무시한 결과를 도출해낸다. 그 배신행위는 가족을, 친구를, 동료를, 후배를, 하늘같은 선배를, 윗 사람을 팔아먹는 행위에 다름없은 일이며 개인의 이익과 영달을 위해 조직에 등을 돌린 파렴치한 행위정도로 간주된다.  

한 실험에서 밝혀진, 대한민국에서 자신의 친구가 운전을 하던 중에 과속을 해서 사람을 치어 사망에 이르게 한 사실을 옆에서 지켜 본 사람이 변호사의 제안(-거짓을 진술하면 친구는 형량이 감해진다.)을 뿌리치고 사실대로 진술할 확률은 100명 중에 26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PD수첩 841회 내용 참고-Did the Pedestrian die? 폰스 트롬페나즈 교수의 '개인의 의리와 공익과의 딜레마 실험') 일본 67, 중국 48 보다도 낮은 수치다. 캐나다 96, 미국/스위스 94, 스웨덴 93 이었다. 즉 대한민국에서는 74명이 '사실대로 증언하지 않겠다'라는 것이다.
 
가족같은 회사, 형제같은 동료, 평생을 함께 해야 할 동반자라는 말처럼 공과 사가 뒤섞여 올바른 판단과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혹여 올바른 판단과 선택을 했다고 하더라도 행동으로까지 옮기는 데는 얼마나 힘이 들던가. 겨우겨우 행동을 취하고 나면 돌아오는 건 '배신자'라는 타이틀 뿐이다. 몸 담고 있던 사회로부터 격리조치 되고 아예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는 정도의 댓가가 뒤따른다. 스스로가 내부고발자(whistle-blower)가 되지 못한다면 적어도 내부고발자를 지지하고 지켜줄 수는 있지 않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부고발자를 지지하는 사람까지 묶여서 배신자가 되어버리고 마는 사회에서는 지지를 하거나 지켜주는 작은 행위조차도 어려울 뿐이다. 오히려 대다수는 고발을 당한 단체, 기업, 기관, 사람을 앞장서서 변호하고 이해해주려 노력하며 고발을 한 사람을 비난한다.
 
내부고발자가 법적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사회안전망이 가장 절실히 필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그들을 지켜보는 시선이라도 달라지면 좋겠다. 스스로 내부고발자가 될 자세를 갖추면 좋겠다는 것은 너무 큰 바람일 테니까.
 
공(公)을 사적으로 취하고 사(私)를 마치 공적 영역인 것처럼 착각하고 오도하는 사회에선 개인의 이익은 점점 멀어질 뿐이고 사회 전체의 발전도 이루어질 수가 없다. 길고 넓은 안목으로 보면 지금 개인의 의리보다는 공익을 위해 솔직해지는 것이 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이며 그로 인해 개인의 의리 역시 올바른 자리를 찾게 됨을 알아야 한다.
 
(종종 느끼는 거지만 대한민국은 내부고발자는 말할 것도 없고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는 행위조차도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만 하는 이상한 나라다.)


▣ 함께 읽기

2009년 12월 7일 월요일

몸과 마음의 습관

'3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습관이란 건 참 무섭다. 내 육근동작 움직임 대부분이 습관 속에서 나오는 것임엔 틀림없다. 

가령, 책상다리를 하고 앉을 때 왼발이 오른쪽 무릎 위에 올라오는 것,
걸음을 걸을 때 어깨를 약간 뒤로 제치듯 펴고 걷는 것,
얼굴 땀을 닦을 때 왼손이 먼저 올라오는 것,
소위 말하는 짝다리를 짚고 서 있을 때 오른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것,
윙크를 할 때 오른눈을 감는 것,
양치질을 할 때 오른손으로 하는 것,
핸드폰은 왼쪽 바지 주머니에 넣는 것,
열쇠는 오른쪽 주머니에 넣는 것,
썩소를 지을 때 오른쪽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 등등

사실 위에 열거한 몇 가지 습관들은 반대로 해도 아무 상관없다. 다만 조금 불편할 뿐이다. 불편하다는 건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지 괴로운 정도는 아니다. 어느 순간 내 행동양식은 습관이 들었고 그 습관에 맞춰 생활하다 보니 다른 식으로 행동하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게 된 것이다. 

내 마음과 사고(방식)은 어떤가. 습관이 들어 쉽게 고쳐지지 않는 부분은 없는가. 어떤 상황에 대한 편견은 없는가. ... 없을 수가 있나. 분명이 있다. 다만, 그 편견과 편향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반대편에 서서 생각했을 때 불편함은 있겠지만 그럴려고 노력은 해보았는가. 반대편에 서서 사고하고 생각하며 불편함을 감수하려고 했었는가를 반문한다. 

자신의 신체에 국한되는 몸의 습관과는 달리 마음과 사고의 습관은 반대로 했을 때 주변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거나 욕을 얻어먹을 수도 있다. 특히 자신의 전체 삶과 가치관에 큰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 하지만 분명 역지사지를 충분히 하고 반대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고민한 후에 자신의 '편견'과 '편향'을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마음과 사고의 습관은 반대에 서는 가상(假想)의 행위를 통해 발전하고 진화하며 폭을 넓혀간다.

쓰지 않았던 다른 쪽 몸, 신체를 어색하게 움직여보면서 내 마음과 사고 역시 나와 상대를 투영해 범위를 확장해 본다. 습관인 줄 모르면 고치려는 노력 역시 사막 위의 신기루마냥 공허하다. 뜬구름 잡는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습관을 습관이라고 명확히 알고 나면 그걸 고치려는 노력, 혹은 범위를 확장시키려는 노력 등은 그 자체로 재미도 있고 신이 난다.

습관은 앎에서 시작하되 망각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그 망각의 강에서 벗어나면 지금의 내 현재가 명확해진다. 변화는 두려움 없는 자의 몫이고 변화는 새로운 삶의 시작을 여는 문열이다. 몸에 배인 (좋지 않은) 것들을 털어내는 것만으로도 변화는 시작된다.

2009년 12월 4일 금요일

정태춘에 대한 기억, 고맙고 미안합니다.

출처: idomin.com


중학교 때 사촌 형님의 소개로 처음 듣게 된 정태춘의 노래. 그 뒤로 줄곧 그의 노래를 좋아했던 나는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모 대학에서 열린 행사에 정태춘이 온다고 해서 그를 보기 위해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도망쳐 나와 찾아갔다. 나를 제외하고 모두가 대학생이었던 그 공간에서 사람들은 정태춘을 환호했다. 나 역시 '떠나가는 배', '촛불', '시인의 마을', '애고, 도솔천아' 등등 서정적이며 감성 풍부한 그의 노래를 좋아했기에 자리를 잡고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난 TV에서 딱 한 번 밖에 보지 못했던, TV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도 없었던 특이한 가수 정태춘.(그의 아내 박은옥은 그보다도 더 유명했던 것 같았다.) 엄밀히 말하면 소위 대중적인 스타는 아니었지만 정말 많은 팬이 있었던 '노래하는 음유시인' 정태춘.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그 때의 정태춘을 잊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원형극장에 둘러 앉은 대학생들이 환호를 보내며 그의 노래 제목들을 외쳐댔다. (아마도) 고무신을 신고 통기타를 맨 수수한 옷차림의 정태춘은 '촛불'의 전주부분을 연주했다. 사람들은 더욱 환호했다. 정태춘은 갑자기 연주를 멈추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이런 노래도 있었지요"


사람들의 연호에 정태춘은 '떠나가는 배', '시인의 마을' 등의 전주부분을 연주했지만 모두 '이런 노래도 있었지요'라는 말과 함께 연주를 멈추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이제 이 노래들은 여러분의 테잎으로만 들으셔야겠습니다. 앞으로 이 노래들을 부르지 않을 겁니다. 이젠 전대협을 위해, 전교조를 위해 노래하겠습니다."


100% 정확하진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의 말은 그랬다. 그리고 그는 이어 '아! 대한민국'을 불렀다. 사람들은 그 노래에 맞춰 라이터를 꺼내 불을 켜 흔들며 열광했다. 난 '아! 대한민국'이란 노래에 완전히 정신을 잃을 정도가 되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사회에 대해서 별 관심도 없었지만 그 노래, 그 가사는 내 가슴을 크게 울렸고 심장이 터질 정도로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이어 부른 '그대, 행복한가' 등의 몇 곡의 노래 역시 내 정신과 마음을 심하게 흔들었다. 공연이 끝나고 사람들이 하나 둘씩 떠나갔음에도 난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다음 날부터 그의 노래가 담긴 테잎을 구하기 위해 수소문을 했지만 구할 수 없었다. '금지곡'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저 그날 밤 들었던 멜로디와 몇 마디의 가사만 입에서 중얼거리며 잊지 않으려 몸부림쳤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이 지나서야 테잎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는데 매일 수 십 번씩 반복해서 듣는 바람에 테잎이 늘어나기도 했다. 그러면 다시 테잎을 구해 다시 들었다. 정태춘이 부르던 노래의 가사는 그렇게 살아서 내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후에도 모든 앨범을 구입했고 모든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다.  


성격상 공연같은 걸 한 번도 다녀본 적이 없었던, 누군가를 보기 위해 시간 맞춰 찾아다닌 적이 없었던 나는 적어도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 정태춘이 온다고 하면 가슴 설레며 그를 기다렸고 그의 노래를 따라 불렀으며 그의 노래에 담긴 가사와 의미를 되새기려 애를 썼다. 그리고 새롭게 나온 앨범들을 꼬박꼬박 구입해서 애지중지하며 간직했고 반복해서 들었다. 누군가 내게 좋아하는 가수와 노래가 뭐냐 물으면 난 단 한 번도 망설이지 않고 '정태춘'이라 답했다. 중학교 때 처음 그의 노래를 들었던 순간부터 '서정적인 노래'를 부르지 않은 이후에도 난 가장 좋아하는 가수는 '정태춘'이라 말했다. 당시 내 또래 애들은 정태춘이 누구인지 전혀 몰랐기 때문에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내가 차츰 갖게 된 사회의식의 일부는 '정태춘(과 박은옥)'에게 빚진 부분이 있다.


언제부턴가 그에 대한 소식이 뜸해졌고 나 역시 개인적인 삶의 질곡 때문에 그에게 접근할 방법을 찾지 못하게 되면서 그의 공연이나 소식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챙기지 못했다. 그러다 김규항의 정태춘 인터뷰를 접하고 나서 마음이 심하게 아팠는데 청중, 대중으로서의 내가 그의 '힘들어함'에 부분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어제도 아는 교수님과 이야기하던 중에 정태춘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나왔는데 옆에서 우리 대화를 듣던 주점의 사장 아주머니가 몇 마디 거들게 되었다. 그런 상황을 지켜보자니 그를 기억하는 이들은 여전한데 그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로 인해 그가 다시 무대로 돌아오지 않는 걸, 다시 노래하지 않는 걸 슬퍼하는 사람이 갈수록 적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암튼, 정태춘과 박은옥이 다시 노래하지 않는다는 건 무조건 '우리'의 책임인 것 같다.


다시 그가 돌아와 노래를 불러주길 간절히 바라지만 여러 기사와 인터뷰 내용을 보니 쉽진 않을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래는 김규항의 정태춘 인터뷰 내용 중 일부다.


- 예술가는 상상력을 기반으로 행동하는 사람이라 정치인이나 사회운동가들보다 훨씬 더 급진적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진보적인 예술가들은 90년대 이후 사회운동가, 아니 정치인의 상상력을 뒤쫓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현실 정치에서 당선 가능성이라든가 현실적 실현 가능성도 중요합니다. 문제는 우리의 상상력의 최대치가 제도정당의 그것에 머문다는 건 우리가 현재 세상을 넘어서길 포기한다는 뜻이 되는 겁니다. 나는 그런 상상력의 빈곤이 답답했어요."


- 아내이자 오랜 동지인 박은옥 선생 보시기엔 어땠는지요?

(박)"너무 힘들어하니까 보는 나도 많이 힘들었어요. 이 사람이 반복해서 말했어요. 군부독재가 물러났지만 이젠 더 공고하고 사악한 자본의 독재가 들어서고 있다, 그런데 군부독재와 싸우던 사람들이 그런 변화에 대해선 외면하고 그 질서 속에 들어가 명랑한 얼굴로 개혁을 말하고 민주화를 말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고…."


(박)"남에게 공격적이진 않았지만 서운함이나 고립감 때문에 많이 힘들었죠. 이런 일이 있었어요. (경기 평택의 미군기지 확장 반대투쟁인) 대추리 싸움 하다가 논구덩이에서 플래카드에 목이 졸려 경찰에 연행돼 가지고 응급실로 실려 갔는데 거기 병원에 쫓아온 후배가 그랬대요. 형님은 아직도 이러고 사시냐고, 세상 좋아졌는데 이제 그만하시라고. 그랬는데 이 사람이 그러더래요.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왔다고? 그 세상이 왔는데 나만 모르고 있는 거라고?' 지금도 그 이야기만 생각하면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박은옥씨의 눈에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via http://gyuhang.net/1692

via http://media.daum.net/culture/view.html?cateid=1003&newsid=20091023145012007&p=hani




예나 지금이나 - 2009년 안에 1987년 있다. by 행복한 자유인


2009년 11월 30일 월요일

시스템과 개인

너무 혼란스러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도 불가(?)쪽 공부를 좀 했던 터라^^; (감히)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황대권 선생님이 말씀하신 내용도 충분히 옳은 말씀입니다. 제가 글을 썼던 것은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 속에 그저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생각하며 쓴 글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시스템이 먼저냐, 개인(인간)이 먼저냐... 저는 일단 개인(인간)에 무게를 두는 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다보면 하나의 문제에 봉착을 하더군요. 즉, 시스템(법, 제도를 포함한)은 분명 인간이 만들어 낸 것임에도 불구하고 만들어진 그 시스템은 나름의 생명력을 얻어버리게 됩니다. 자생적으로 성장하고 살아 숨 쉬게 된다는 것이지요.(물론 기득권층이 힘을 실어주거나 조작하는 경우가 많지만 말입니다.)

 

개인의 수양을 통해 내 안에 있는 분노와 잘못된 문제들을 해결하는 건 아주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곰곰히 주변을 둘러보면 한 개인이 잘 사는 것과 국가나 사회시스템이 그런 사람들을 보호해주는 것은 아주 별개로 움직이더란 말이죠. 평생을 착하게, 남에게 피해도 주지 않고, 오히려 남을 도우며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돌연 국가 간의 분쟁에 의해, 사회 권력자들의 이권다툼에 의해 적당한 댓가도 받지 못하고 아니, 오히려 피해를 받고 사는 인민(민중)이 너무 많다는 거지요. 개인의 수양은 수양대로 끊임없이 정진해 가야 하는 건 사실이고 중요한 일입니다만, 거대 시스템에 맞선 풀뿌리 인민들의 연대도 분명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가령 한 개인이 촛불시위에 참여하거나 농활이던 어떠한 운동이던 참여하는 건 개인이 분노를 표출하는 감정적 행동이 아니라 잘못된 사회시스템을 고쳐보기 위한 소중한 움직임이라 생각하는 거지요. 그저 희망없는 넋두리 한탄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나'를 비롯한 더 많은 인민(서민)들이 함께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황대권 선생님의 말씀이나 제가 적은 글이나(감히 비교해서 죄송합니다.)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언부언이지만 제가 6.25에 대해 적은 글은 이미 한국을 비롯한 세계 모든 국가의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이 20:80로 나뉘어져 있고 그건 자본에 힘입은 자본가들과 결탁한 소위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구분을 해버린 것이고 진작에 없어졌어야 했을 봉건계급사회가 여전히 다른 모습, 즉 자본계급사회로 변화해서 존재하고 있음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적은 글입니다. 특히나 전쟁이 발생한 이유에 대해서 알게 되면 (단순한 표현으로) 반미와 같은 움직임이 결코 감정에 의한 분풀이가 아닌 정확한 문제 해결을 위한 괜찮은 방편임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반미가 아니라 반자본주의, 반저질자본주의가 되겠고 집중편향되어있는 권력에 대한 항거(?), 개인이 잘 살기 위한 적정한 보장을 위한 투쟁이 되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via 한국전쟁... 가장 추악한 범죄 - 전쟁
http://cjh6520.egloos.com/2541469 글에 달았던 답글을 옮겨 와 몇 개 단어 수정하고 생략해서 보관함.

2009년 11월 17일 화요일

몸 보수-입 진보, 광장 진보-밀실 보수... 고리를 끊는 방법은...

...‘지못미’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곳을 쳐다보면서 경제적으로 짭짤한 곳에 뿌리내린 자들, 인터넷에선 진보, 술자리에선 중도, 직장 가면 보수가 되는 자들의 탄식이다.

...그래야 ‘몸은 보수-입은 진보’, ‘생산은 보수-소비는 진보’, ‘광장에서는 진보-밀실에서는 보수’로 분열된 정치적 분열증이 개선되지 않을까. 내가 보기에 지금 한국 사회에서 진정으로 심각한 정치적 문제는 지식인 몇몇이 보수로 전향한 것이 아니라 대다수 시민이 몸까지는 진보로 전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도 역사적 상처에서 비롯된 의심이 깊어서 정치적 주체로 나서는 데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리라.

남재일 교수의 말과 행동의 정치적 분열증을 넘어 중의 일부다.

글 내용의 어떤 부분에 대해선 생각이 조금 다르지만 전반적인 내용에 동의를 한다. 몇 번의 곡절과 앓이를 겪으며 민주사회로 진입했다는 대한민국은 그다지 균형이 잡히지 않은 상태라 할 수 있다. 언젠가는 대다수의 젊은이들이 진보적 성향을 가지고 있으리라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근 1-2년 새에 젊은이들 대다수가 보수적 성향이란 쪽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대다수가 보수란 생각까지 하는 참이다.

사회의 많은 부조리와 병폐들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하다보면 결국 '교육'에 초첨이 맞춰지곤 하는데 이렇게 되면 '원론적'인 이야기만 오갈 뿐이어서 참 대책이 없기도 하다. 이보다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결국 제대로 된 소리를 들어먹을 줄 아는 젊은이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수 밖에 없는데 사회적으로 유아기적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대한민국에서는 그들에게 먹힐 법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부모를 제외하곤 거의 없는 듯 하다. 그들의 '선생님들' 역시 그들을 사회에서 돈 잘 벌고 성공하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 고용된 존재일 뿐 그들에게 사고, 사유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엔 벅차고 나름의 교육철학을 가지고 있더라도 펼치기엔 너무 많은 '적'들이 존재한다.

그래도 역시 가장 빠른 방법은 젊은이들이 깨어나는 것이다. 그들이 의무교육기간을 마치는 순간부터 대학, 군대, 직장, 사회, 새로운 가정을 거치는 동안 세뇌당하지 않고 한 방향으로 매몰당하지 않으며 스스로의 관점과 소신을 가지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해야 한다. 그들에게 다가서는 방법과 그들과 소통하는 방법, 그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열린 사고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어렵지만 한 명씩 한 명씩 변화의 모터를 달아주어야 한다. 

몸 보수-입 진보, 광장 진보-밀실 보수... 지금 수 많은 공간, 상황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닌가. 상처를 상처로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 상처는 빠른 속도로 부패하고 결국엔 생명을 잠식한다. 사회의 많은 문제도 마찬가지다.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수 많은 문제들이 있다. 그 문제들은 결국 나의 미래와 내 자식의 미래까지 집어삼킬 것이다. 지금 그 고리를 잘라내지 않는다면 희망과 미래를 말할 기회조차 오지 않을 것이다. 

문제인지 문제가 아닌지 지금보다 더 신중한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문제를 마주하면 '문제다!'라고 소리쳐야 한다. 
옆 사람이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하면 '문제야'라고 알려줘야 한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자기 내부의 시선을 의식해야 한다.
그것이 집단 최면에서 깨어나는 방법이다.

루저(Loser)의 원래 뜻이 변한 건가?

los·er  [lúːzər] 
1. 실패자; 손실자, 분실자 a loser at marriage 결혼에 실패한 사람 You shall not be the loser by it. 그것 때문에 너에게 손해를 끼치지는 않겠다.
2. 진 편 (경기에서), 진 말 (경마에서); 패자 Losers are always in the wrong. 속담 이기면 충신, 지면 역적.
3. 영 [당구] HAZARD 3
4. (구어) 전과자(前科者) a two-time loser 전과 2범자
5. 전혀 쓸모가 없는 것[사람]

실패[失敗]
 [명사] 일을 잘못하여 뜻한 대로 되지 아니하거나 그르침.
실패하다 [동사] 1 찾아보기: 실패.  2 어떤 일에 원하던 결과를 얻지 못하거나 완성하지 못하다.

패배[敗北] [명사] 1 겨루어서 짐.
패배감[敗北感] [명사] 싸움이나 경쟁 따위에서 자신이 없어 무력해지는 느낌. 또는 싸움이나 경쟁 따위에서 진 뒤에 느끼는 절망감이나 치욕스러운 감정.
패배자[敗北者] [명사] 싸움에 진 사람.

출처: Daum 사전

'루저' 열풍은 나중에 알았는데 내막을 알고 난 후에도 별 관심은 없다. 그보단 왜 '루저;패배자 혹은 실패자'라는 말을 쓴 것일까. 실패는 하던 일이 잘못되어 그르치거나 완성되지 못할 때 쓰는 말이고 패배는 경쟁 따위에서 진 것을 말하는 것 아닌가. 아마 루저라는 말을 한 사람의 뜻은 키가 작은 사람은 (모종의) 경쟁에 조차 나갈 수 없는 상태가 안 된다...라는 생각에 루저라는 말을 쓴 것 같다. 하지만 '키 큰 사람 선발대회'도 아니고 '우수 신랑감 선발대회'도 아닌데 키를 가지고 루저라는 표현을 썼다. 시합 출전을 하기도 전에 패배자가 되었다고 하니 루저의 범주에 들어 간 사람들이 흥분할 만도 하겠다. 혹은 맨 아래처럼 전혀 쓸모가 없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말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이해는 되지 않는다. 노자의 '무용지용'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키가 작다는 이유가 전혀 쓸모가 없는 사람이 되는 조건이라니.

하지만 만약 그의 발언이 통용되는 사회라면 '실패'와 '패배'라는 게 경쟁과 겨룸을 통해, 혹은 자신의 노력을 통해 어떤 일을 진행한 것과는 별개로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버린 '운명적 사회'라는 뜻이 아닌가. 태어나면서부터 신체적, 교육적, 경제적 풍요를 누리는 사람은 바로 위너(Winner)가 되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바로 루저(Loser)가 되는 사회. 키가 작다는 이유만으로 취업의 기회를 놓치는 것이고 이성의 선택권 밖에 있다는 것이며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사람이 되는 사회. 이는 못생기면 서비스나 잘해야 하고(모 국가 대표가 한 말) 못생기면 반드시 성형해서 이뻐져야 하는 사회. 자신들이 만든 규칙 속에서 조건 충족이 되지 않으면 경기조차도 할 수 없도록 추방시키는 사회. 공정한 기회는 고물상에서 엿 바꿔 먹고 평등한 출발은 쓰레기통에 버려버린 사회. 이런 사회가 과연 살 만한가. 희망을 품고 뭔가 해볼 만한 사회인가. 보아하니 택도 없는 것 같고 그렇게 변하려면 수 많은 '인고'의 세월을 견뎌야만 할 듯 하다.

루저 발언을 한 사람이 사고하는 방법, 사유하는 방법 조차 많이 부족한 상태가 아닌가 싶은데 언제부턴가 사회 분위기가 한국어를 한국어대로 쓰지 못해도 별로 개의치 않게 된 건 말할 것도 없고 사고(思考)를 제대로 하지 못하더라도 외형과 조건만 좋으면 대체적으로 인정하고 떠받드는 분위기가 팽배해진 것 같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외형과 조건이 좋지 않으면 개무시하고 깔보는 분위기가 팽배해진 것이며 한국어를 제대로 쓰지 못해도 외국어 하나 잘 하면 최고로 대접받는 사회가 된 것이랄까. 그렇다보니 루저 발언에 거품을 물고 흥분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발언자를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 날 밖에.

발언자 역시 교육과 사회의 피해자일 터인데 루저 발언을 듣고 흥분하는 사람들은 발언자만을 붙잡고 '사냥'을 할 게 아니라 그런 발언을 만들어 낸 교육 시스템, 사회 시스템 그리고 언론과 대한민국 정부를 향해 비판을 하고 스스로의 모습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가 '마녀'가 되거나 '사냥꾼'이 되거나 밖에 할 수 없다. '마녀' 자체가 없는, '사냥'할 필요가 없는 사회가 더 낫지 않은가. 

사람은 '감정'만으로 이루어진 동물이 아니고 '이성'이란 것도 존재한다. 두 가지를 함께 써 먹어야 할 때다.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 루저(Loser)의 사전적 의미를 생각해보다 생각의 가지가 또 뻗어나갔다......-_-;

** 091118|01:00 일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