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월 7일 화요일

흔적


눈이 내린 곳엔 언제나 흔적이 남기 마련.
흔적없는 곳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그곳을 안다는 건 이미 누군가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증명.

하지만 어지럽건, 간결하던 흔적은 가끔
소통의 모습으로 나타나곤 한다.

2006년 2월 6일 월요일

잠시 아프다.

피곤함이 쌓이고 쌓였나보다.


전날 용정에서 다시 연길로 돌아와 용이를 만나려 했지만 친구들과의 약속 때문에 만나질 못했다. 기회를 틈타 전자상가에서 한글판 XP CD를 사서 영중 형 컴퓨터를 다시 세팅해 주었다. 속도가 아주 빨라지진 않았지만 전보다는 안정적으로 깔끔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컴퓨터 세팅을 하는 동안 영중 형과 형수, 나 셋이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주전부리를 좀 했다.


잘 못 먹은 것도 없었는데 추위에 떨지도 않았었는데, 저녁에 사우나 갔다 오는 사이 위장감기에 걸려버렸다. 피곤함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서 그랬나 보다. 설사에 몸살이 겹쳤다. 중국에는 이런 증상에 즉효인 약이 있어 병원에 가자는 것도 물리치고 약으로 치료할 생각을 하고 하루를 쉬며 보냈다. 하루종일 형수가 끓여주는 죽을 먹으며 약을 먹으며 몸을 추스렸더니 정상회복이 되었다.


계속 북경으로 가는 표가 구해지지 않아 영덕 형도 조바심이 나는 차에 몇 번 전화가 왔다. 만약 침대칸이 구해지지 않으면 일반 좌석표라도 끊어서 가자고 한다. 그런데 몸이 막 회복되는 터라 그다지 자신이 서질 않는다. 이젠 버스로도 못 가겠다. 눈도 내린 터지만 버스로 20여 시간을 타고 갈 자신이 없다. 결국 일단 하루 더 기다려 보기로 한다. 그 동안 몸을 더 추스린다. 두 형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게다가 영중 형 유치원 차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영중 형도 밖에서 한끼도 먹지 못하고 차 수리하는 곳에 가서 지켜보고 있었단다. 저녁에 겨우 들어와 나를 들여다 보는데 오히려 영중 형이 아플 것 같아 걱정이다. 워낙 조용조용한 성격이라 잘 티가 나지도 않는데. 그러고 보니 이렇게 쉬는 동안 용이를 만나기로 했던 약속도 그냥 무산되고 말았다. 앞으로 많은 기회가 있을 테니 미루기로 했다.


밖은 내린 눈으로 온통 하얗다. 하루는 아주 지루하게 지나가고 지루했던 시간만큼 휴식을 가졌던 탓인지 날이 저물수록 몸은 맑아져간다.


하루종일 켜 두었던 라디오는 신호가 제대로 잡혔다가 잡히지 않았다가를 반복하면서 그나마 적막한 방안에 소리를 가득 채워줬다. 간혹 중국어가 잘 들리지 않더라도 '소리' 자체만으로도 꽤 위안이 되는 경우가 있다. 중국어가 아닐지라도 마찬가지겠지.


그러면서 그 사람을 생각했다. 혼자만의 생각일지라도.

2006년 2월 3일 금요일

용정(롱징;龙井)에 오다.

1
어젠 리용과 그의 친구들과 함께 낮부터 밤까지 함께 얘기하고 먹고 마셨다. 그의 친구들은 모두 북경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애니메이션과 게임 쪽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같은(비슷한) 업종에 있는 사람을 만나다 보니 이래저래 많은 얘기를 하게 됐다. 좋은 인연이 되지 않겠나...


2
아침 일찍 일어나 영중 형의 일정에 함께 움직이다가 영덕 형이 있는 용정에 가려고 집을 나섰다.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는데 몇 몇 택시 기사들이 용정에 갈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 낮에 가면 10원/1인, 밤엔 15원/1인이라는 정보를 알고 간 터라 10원에 간단히 합의를 보고 택시에 앉아 다른 두 손님이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날씨는 무척 춥다. 달리는 택시도 바로바로 얼어버릴 것만 같다. 택시 기사가 자리에 앉으며 그냥 출발을 하려고 한다. 손님이 나 밖에 없는데 출발하려고 하니 살짝 다른 생각이 든다. 혹 용정에 도착해서 더 돈을 내라고 요구하진 않을까? 그래서 손님도 다 안왔는데 출발하는 거냐고 물으니 원래 손님 채워서 다니는 택시가 아니라고 말한다. 카이산에서 오는 길인데 어떤 일 때문에 부득이하게 오게 되었고 다시 돌아가자니 중간 톨게이트 요금은 내야 하고 해서 손님을 끌게 되었다고 한다. 톨게이트 요금은 10원이다. 나 혼자 가게 되었으니 톨게이트 비용만 벌어 빈손으로 돌아가는 셈이 됐다.


3
영덕 형과 형수는 여전히 그대로고 형수가 너무 반갑게 맞아준다. 꽤 오래 전에 봤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을 해주셔서 반갑고 고맙다. 딸 옥결이는 7살 때 만나고 처음 만나는 지라 나를 기억하고 있지 못하지만 아주 예쁘게 잘 자라고 있다. 내가 말을 거니 부끄러워하고 쑥스러워하긴 하지만 제 할 일 잘 챙겨서 하는 아주 건강한 소학교 3학년이다. 요즘 손풍금(아코디언)을 배우러 다닌다는데 언제 기회가 닿으면 옥결이가 연주하는 손풍금을 들어보고 싶다.


북경에 갈 기차표가 구해지지 않아 영덕 형과 난 걱정을 하고 있지만 뾰족한 방법은 없다. 운 좋게 표가 구해지길 바라는 수 밖에. 하루이틀 늦어지면서 일정도 하루이틀씩 뒤로 밀리겠지만 춘절이 중간에 끼는 바람에 부지런해도 특별한 방법은 없다.


갈 길은 아직 멀고 밖은 꽁꽁 얼어붙었다.


4
형이 윤동주가 다녔다는 대성중학교, 일송정이 있는 곳에 가봤냐고 묻는다. 물론 오늘 날씨가 무척 춥기 때문에 나가는 게 꺼려져 그리 적극적인 대화가 되지 않는다. 나 역시 (다행히) 4년 전에 왔을 때 가봤기 때문에 큰 흥미가 일지 않는다. 용정은 위에 말한 딱 그 두 곳을 제외하곤 가 볼만한 곳이 없다. 그래도 내일 날이 좀 풀리면 가볼까 싶다.


오늘 저녁은 집에서 후워구워(샤브샤브)를 먹기로 했다.


아, 영중 형이 건너온다고 전화가 왔다.

2006년 2월 1일 수요일

연길 도착, 그리고...

그러니까 1월 31일 저녁 9시 30분 기차를 타고 연길로 향했다. 연길은 조선족 연변 자치주에서 중심이 되는 도시다. 게다가 연길에는 같이 동문수학했던 조선족 형님 두 분(김영중, 김영덕)이 계시고 2-3년 전에 장춘에서 생활할 때 알았던 동생(이 용)이 한 명 있다. 형님들은 거의 10여 년, 혹은 몇 년씩 만나지 못했기에 이번 기회에 꼭 뵈려고 마음을 먹었다.


저녁 9시 30분에 정확히 장춘을 떠난 기차는 투먼(图们)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투먼에 도착하기 한 시간 전 즈음 연길에 도착할 것이다. 듣기로는 새벽 6시 즈음에 도착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기차 안에서 중국 애에게 물어봤을 때는 새벽 4시, 5시 즈음에 도착한다고 해서 약간 긴장을 했었다. 그 시간에 도착하면 여러 사람 불편할 게 틀림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중에 기차 승무원에게 재차 확인한 후 새벽 6시에 도착함을 확인한 후에야 근심을 덜긴 했다. 그러니까 장춘에서 연길까지는 총 8시간 반이 소요되는 셈이다.


장춘을 떠나기 전 저녁을 먹고 가자는 청을 다 뿌리친 이유는 기차 안에서 화장실을 가기 싫어서였다. 또 오랜만에 기차로 이동을 하는 지라 짐을 두고 화장실을 가는 것도 걱정이 되긴 했다. 아무것도 먹지 않았어도 배는 고프지 않았고 오히려 속 편하게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근 한 달간 장춘에 있었던 탓인지 장춘에 있던 동생들은 내가 연길로 가는 게 서운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다만 중국 친구들은 모두 설을 쇠러 고향에 가서 돌아오지 않은 터라 별 다른 이야기는 없었다. 어차피 중국에 와서 몇 군데를 돌아보기로 결심한 이상 더 이상 장춘에 지체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침대칸(중간 자리)에 누워 라디오를 듣는데 왠지 아쉬운 마음, 서운한 마음이 그들이 아닌 내 마음에 밀려드는 건 장춘이 내게 꽤 친숙한 도시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잠을 청하고 새벽 세시 즈음에 깨서 잠시 앉아있다가 새벽 6시까지 뒤척이며 잠에 들었다 깨었다 시간을 보냈다. 기차는 아주 정확히 새벽 6시에 연길에 도착했다. 잠에서 깨어있는 동안 많은 승무원들이 분주하게 일을 하는 걸 봤었다. 기차가 오랜 시간 달리면서 차창이며 바퀴가 꽁꽁 얼어붙어 그걸 깨내는 작업을 했던 것이다. 동북의 겨울은 난방이 되는 곳을 제외하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춥긴 한가보다. 특히나 새벽과 같은 시간엔 달리는 기차에도 성에가 끼고 얼음이 얼고 고드름이 열리니 말이다.


새콤한 새벽 냄새를 맡으며 출구를 나서니 수많은 택시 기사들이 손님을 기다렸다는 듯 호객행위를 한다. 이미 택시 가격은 물어봤기 때문에 별 의심없이 한 택시를 잡아탔다. 원래는 5원이면 되지만 설 연휴라 무조건 10원을 받는다고 했다. 연길은 연변 자치주에서는 큰 도시에 속하지만 그래도 장춘이나 북경, 상해에 비할 수 없이 작은 도시라 10원 택시 요금이라면 연길 시내 어디든 갈 수 있다고 한다. 택시 기사가 내가 말해준 곳을 가보지 못한 터라 단번에 찾진 못했지만 그 새벽 시간에 잠에서 깨어 나를 기다려준 영중 형님과의 통화 덕택에 금새 찾을 수 있었다.


영중 형님과 함께 아주 큰 찜질방에 가서 목욕도 하고 때도 밀고 발 맛사지도 받으며 피로를 깔끔히 풀었다. 그리고 이 용과 영덕형님과 재회를 하고 정말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연길의 저녁을 함께 보냈다. 여전히 난 이곳에 오면 형님들이나 동생에게 손님이고 이방인이다. 택시비 한 번 내지 못하고 신세만 졌다. 나중에 꼭 복수(?)를 하리 다짐하며 고마운 마음으로 접대를 받았다.


.......많은 시간이 지나고.......
.......늦은 시간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무수히 많은 별들이 쏟아지는 걸 보며 추위도 잠시 잊고 하늘만 한참 보고 있었다. 아- 좋다. 연길의 하늘은 맑고 맑아서 별들이 쪄들어(--;) 좋다. 정말 상쾌한 밤이다.


연길은 이번으로 세번째, 혹은 네번째(?) 오는 터지만 올 때마다 새롭다. 가난한 도시라서, 내가 가진 게 조금 더 있어서가 아니라 어쩌면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냄새 때문에, 착하게 가난한 사람들 때문에, 그보다 더 늘 나를 반겨주는 사람들 때문에 새롭고 또 새롭다. 그 만큼 하늘도 공기도 추위도 맑고 착하고 따뜻하다.


하지만 이곳 연길도 예전과 다르게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많은 사람들이 외지에서 들어온다. 언제나 사람들은 머물지 않고 이동한다. 특히나 (한국처럼) 자본주의가 팽배하면서도 늘 불안정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2006년 1월 27일 금요일

단상

1
설(춘절)이 다가오면서 장춘의 벗들도 모두 고향으로 돌아간다. 중국에서 설을 쇠게 되는 내게 걱정의 말과 훗날의 재회를 약속하며 고향으로 향한다. 여기저기서 터지는 폭죽에 깜짝깜짝 놀라면서 설이 가까워져 왔음을 실감하고 있다. 모두들 고향가는 길 편안하길.


2
TV에서 중국 춘절(설)에 대한 특집보도를 해주는데 엄청난 숫자의 서민들이 고향으로 가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모두 외주에서 대도시, 번화한 도시로 일을 하러 간 사람들인데 표를 구하지 못해서 혹은 회사에 일이 많아서라고 한다. 그 사람들은 한국으로 말하면 3D업종 종사자에 비정규직들이니 춘절이 되면서 이래저래 마음이 더욱 쓸쓸하지 않을까 싶다. 거리상으로만 생각해봐도 그들이 춘절을 보내기 위해 고향이 가는 건 거의 외국에 나가는 정도가 되지 않나 싶다. 동북 장춘에서 저 아래 광주 심천까지 가는데만 해도 기차로는 며칠, 비행기로는 5-6시간이 걸리니 말이다. 춘절에 이동인구는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게다가 입석이나 기타 가장 저렴한 좌석표를 구하더라도 기차를 타지 못하는 일이 빈번하다고 한다. 이 많은 인구에 기차 수는 턱 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좀 전 TV에서 본 영상에서는 승무원이 큰 소리로 기차의 모든 창문을 열테니 창문으로라도 탈 수 있는 사람은 타고 내릴 수 있는 사람은 내리라고 한다. 60-70세 되는 노인들도 차창을 넘어서 기차에 타지 않을 수 없다. 자칫하면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안전사고 및 수 많은 소매치기, 도둑들의 활개는 기쁜 날을 불행하게 만들기도 한다. 동북같은 경우는 눈이 많이 내려 기차가 움직이지 못할 때 기차에서 내린 후 걸어서 집으로 가기도 한단다. 어떤 경우엔 몇 시간 많게는 열 몇 시간을 꼬박 걸어야 도착한다고 하는데 그렇게라도 고향에 가는 사람들의 얼굴은 만면에 웃음이 가득하다. 부디 중국의 가난한 서민들 무사히 안전히 고향에 도착하길.


3
한국에서 어떤 일 때문에 전화가 왔는데 그 일이 확정이 되거나 결정이 되면 원래 계획보다 일찍 한국에 들어가야 할 듯 하다. 결정이 늦어지거나 안될 경우엔 원래 계획대로 만날 사람들을 좀 더 만나고 가야할 듯 하다.


4
한국에서 고향으로 향하는 가족들, 친지들, 친구들, 소중한 인연들 모두 무사히 안전히 집에 도착할 수 있길.


5
외국에서 설을 보내는 소중한 인연들, 친구들 모두 건강하고 즐겁게 지내길.

2006년 1월 19일 목요일

혼다 광고 - 폴리 사운드

광고에 등장하는 모든 사운드를 폴리 사운드로 처리한 멋진 광고 한 편.
outsider님 블로그에 올라온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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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애니메이션 졸업 작품을 만들 때도 사실감을 높이기 위해서 슬리퍼 끌리는 소리, 설겆이 하는 소리, 찌개끓는 소리 등을 직접 물건을 이용해 소리를 만들었다. 간혹 폴리 작업은 실제 영상과 관계없는 물건을 가지고 소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는데 사람의 입으로 사실감있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건 참 어려운 일이라 할 수 있다. 학교 후배 작품 중에, 혹은 외국 작품(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_-; 두 남자가 버려진 아기를 위해 이야기를 해주고 자장가까지 불러주는 내용인데...) 중에 사람의 목소리로만 모든 사운드 이펙트를 만들어낸 경우가 있는데 사실감이 느껴지는 건 물론이거니와 색다른 사운드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제작과정을 보면 사운드의 대부분을 직접 녹음을 하고 사람이 연기를 해서 소리를 만들어 내는 걸 알 수 있다. 비단 이 애니메이션 뿐만이 아니라 많은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폴리 작업은 아주 중요한 수단이 되곤 한다.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라는 일본영화를 보면 라디오 드라마에 얽힌 에피소드 끝에 노인 한 분이 나와 폴리를 직접 시연하는 명장면이 있다. 폭죽이 터지는 소리를 동전 하나와 노트 한 권으로 만들어 내는데 폴리 작업의 진수라고나 할까.


기계가 만들어 내는 소리가 아닌 사람의 입과 몸을 이용해 만들어 내는 소리는 인체가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과 신비함을 창조적 도전정신에 바탕해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더더욱 주의를 끌게 한다. 그런 면에서 혼다 광고의 사운드 이펙트는 광고 자체의 완성도와 더불어 멋진 발상이자 상당한 사운드적 충격과 쾌감을 선사한다.


폴리(Foley)는 "음향효과의 제작방식 중 하나 촬영중에 녹음된 대사음대에 플라스틱 물컵을 이용한 말발굽소리나 얇은 금속조각을 이용한 천둥소리 등등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인공적인 음향효과를 더빙하는 것"을 말하는 데 잭 폴리(Jack Foley)라는 사람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음향편집자는 배우가 실제로 움직이는 것처럼 녹음실에서 걷거나 뛰거나 하면서 소리를 만들어 내는 사람. 이러한 소리는 세트 현장에서 모두 녹음되는 것은 아니며 정확한 소리를 모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배우가 나오는 화면을 보면서 편집단계에서 동시녹음되기도 한다. 음향편집자가 만든 소리들은 대개 35mm 마그네틱 필름에 녹음된다.

긴 봄을 기다리는, 장춘에서.

1
이야기 중에 우연히 나온 얘기들. 전에도 생각해봤던 거지만 이런저런 상황 탓에 쉽게 해보지 못했던 것들인데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가 나오고 나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가능할지 어떨지 아무도 모르지만 한 번 해봄직 하다. 그 몇 개 중에 하나라도 잘 풀린다면 적극적으로 고민해 볼 만 하겠다.


2
쌓인 눈이 녹지 않고 계속 빙판을 만들어내곤 있지만 왠지 쌀쌀한 게 상큼한 느낌의 장춘이다. 겨울보다 긴 봄을 원하는 탓에 이름을 장춘이라 명명한 것일까. 장춘의 봄은 순간이지만 이름 탓에 포근하게 느껴지는 도시이기도 하다.


3
장춘에서 설을 보내고 다다음 날 바로 연변으로 가기로 잠정 결정했다. 설 전에 어디로 이동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에 가깝기 때문에(표를 구할 수 없다) 북경을 다녀올 계획은 설 이후에 가는 것으로 변경했다. 연변에 사시는 형님도 다시 북경으로 가신다니 함께 움직이면 더 좋겠다.


4
부유하고 있다는 느낌. 전에 느끼던 자유로움과는 좀 다른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