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 30일 토요일

좋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대화를 할 때,
어느 정도 솔직한 얘기가 보증되어 진행될 수 있다는 사실은
참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다.

내가 보여지는 모습이 그 자체로 부끄럽지 않을 때,
아니, 혹 부끄러운 모습일지라 하더라도
상대방이 잘 받아들여 줄 때는 편안한 대화를 할 수 있게 된다.
상대방이 잘 받아들여 줄 수 있다는 건
최소한 내가 상대를 속이지 않고 있다는 뜻이며
그 출발은 내가 내 자신을 속이지 않으려 애를 쓰고 있음이다.

그러기에 대화를 할 때에는 나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상대를 속이지 않는가?"라고 묻기 보단
"내 자신을 속이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는가?"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의아니게 혹은 고의로라도
모든 이야기를 꺼내 놓을 수는 없다.
그건 내가 버텨내야할 최소한의 자존심이기도 하겠지만
내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부메랑에 다치기 싫어서 일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살면서 가능하면 그런 막연한 두려움이나 걱정은 사라지길 바란다.

또, 일과 삶은 때론 다른 가면을 쓰고 살 수도 있는 것이니
외형적인 이중성을 가지더라도 너무 스스로 자책하지 말자.
알맹이만 변하지 않도록 하자.

반가운 사람과 즐거운 얘기를 나누는 일은 기분이 좋다. :)

2004년 10월 28일 목요일

머리를 굴려?

아이디어 회의를 하는데 머리가 잘 굴러가지 않는다.
굴러가지 않는 머리는 다시 쓰지 않으면 아예 굳을 참이다.
그러다가도 문득문득 머리가 돌아가 좋은 생각이 나면 기분은 좋은데
뭔가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머리를 굴려야 하는 것일까.
마음을 굴려야 하는 것일까.

생각에 정서가 빠진 상태라면 늘 공허함을 느끼는 수 밖에 없다.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가.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요즘 들어 화두는 무엇을 말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다.
이건 내가 허전함을 느끼는 것과는 상반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무엇을 말할 것인가가 늘 고민되어지고 나에게서 나오기는 하지만
그걸 어떻게 풀어가는 가에 따라 전달하는 느낌은 많이 다를 수 있겠다.

고민되지 않은 생각은 고민되지 않는 이야기 결말로 치닫고
그 이야기는 다시 나에게 일상성.이라는 경직됨으로 공격해 온다.

털어놓고 또 털어놔도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즐겁게 할란다.
즐겁게라는 강박은 없이.

2004년 10월 24일 일요일

[mov] 아는 여자 / Someone Special / 认识的女人

아는 여자 / Someone Special / 认识的女人


감독 : 장진
출연 : 정재영(동치성), 이나영(한이연), 오승현, 장진, 임하룡


사실, 그렇게 기대한 영화는 아니었다. 특히나 장진 감독의 영화는 극장에서 보기엔 좀 아깝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드는 스케일(?)로 아기자기하게 꾸려나가는 영화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엄청난 감동을 받길 원한 것보단 작은 웃음과 싱그러운 유머를 보는 것이라면 충분히 만족할 만 했다.

설정이나 이야기 흐름이 조금 억지스러운 면이 있는 영화이긴 했지만 하고 싶은 말, 보여주고 싶은 장면을 다 보여주며 얘기를 풀어가는 장진 감독의 뚝심에 박수를 보낸다.

그냥 오래 전부터 알아오던 사람, 속칭 아는 사람이라고 말하게 되는 건 관계가 그렇게 깊지 않다는 것의 반증임과 동시에 심중에 두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간혹 나는 친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나를 '아는 사람' 정도로 치부해 소개할 때는 화가 나거나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겠지. 그런데 나의 경우엔 별로 그런 상황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모르게 나를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을까? 퍽이나~

만약 이나영같은 사람이 '아는 사람'이었다면 나도 그 사람을 부담없이 사랑했을 것 같다. 얼마나 쿨하면서 감성 넘치는 캐릭터란 말인가. 물론 TV 미니시리즈 '네 멋대로 해라'에서 나온 캐릭터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변주였겠지만 이나영표 사랑, 애정표현은 거부감없이 담백하고 깔끔하게 다가온다. 난 마지막 장면에서 정재영이 사랑고백을 위해 목소리가 하이톤으로 바뀌며 '이름'이며 '취미'며 80년대에나 유행했을 법한 멘트를 날리는 장면이 사랑스럽다. 닭살 돋을 만큼 어색하지만 그 만큼 사랑의 첫 시작은 풋풋한 것. 난 그 둘이 그런 식의 사랑을 되도록 오랫동안 해가길 바랬다.

사랑이 무엇이냐는 질문으로 시작된 짐짓 철학적인 주제의식은 생각보다 가볍고 쉽게 결론으로 마무리 지어졌지만 별 아쉬움은 없다. 감독도 딱히 좋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으리라. 그리고 다른 식으로 말을 해봐야 이 영화만큼 효과적이지도 않았겠지. 적정한 타협은 때로 피차 적당한 즐거움을 가져온다. 적당한 건 적당한 것이지 그 이상은 아니기 때문에 아쉽다.

영화 속에서 가끔 만나는 임하룡은 반갑다. 그리고 그의 자연스러운 연기도 반갑다. 난 코미디언일 때의 임하룡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연기하는 그의 모습은 참 좋아보인다.

회화

일산에서 회의가 있었다. 함께 브레인 스토밍도 하고 앞으로 진행될 애니메이션의 전체적인 컨셉을 잡아내는 일.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기법이나 연출보다 컨셉 잡는 일이 더 어려운 것 같다. 특히나 전시장에서 상영될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이런저런 제약이 뒤따르기도 하지만...우리는 그걸 일단 다 백지화 시키고 이야기를 진전시키기로 했다.

서로 주고 받는 이야기는 서로에게 피드백이 되고 말과 말이, 문장과 문장이 얽히고 섥히면서 새로운 말과 문장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건 나 혼자서는 절대로 끄집어 내오지 못할 지난 날의 경험과 앎들을 비교적 쉽게 꺼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란 건 참 신기하다. 스스로 해내지 못하는 부분이 두 사람, 세 사람과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해결되는 경우가 있으니... 물론 시너지 작용의 극대화는 그런 외형적인 부분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내 생각을 숨김없이 말하며 밀고 당기는 양보와 이해의 미덕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나른한 일산의 어느 동산에 올라, 강렬하고 따가운, 하지만 너무도 기분이 좋은 햇살 아래서 마음 편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오후. 작은 행복이 느껴지는 날.

2004년 10월 19일 화요일

한국입국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일이 좀 생겨서 말이죠. 물론 나쁜 일은 아닙니다. :)

좀 바빠질 것 같습니다.
포스팅을 자주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시간 나는대로 한국에서의 생활을 기록해야겠죠.

한국에서 즐거운 생활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

반가운 얼굴들, 시간 되면 봤으면 좋겠네요.

그럼. 이만 보고 끝!

한국 내 연락처

핸드폰 : 010-****-5154


한국에 있을 때만 사용할 전화입니다.

국제 로밍은 하지 않습니다.

중국 핸드폰도 있거니와 로밍은 너무 비싸요.-_-;;;;


한국에 들어와서 바로 핸드폰 신규 가입했습니다.
그런데 가격들이 다 많많치 않네요.
가장 싼 걸 구입했는데도 정말...헉~!입니다.

잘 활용하도록 해야겠죠? :)

2004년 10월 17일 일요일

[mov] 둘째 동생 / Drifters / 二弟

둘째 동생 / Drifters / 二弟


감독 : 왕 시아오쏴이
출연 : 두완 롱(둘째 동생), 수 앤(여자친구), 자오 이웨이(큰 형), 탕 양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의 작품 중에 하나가 <북경 자전거>다. <북경 자전거>를 본 사람들은 공감하겠지만(특히 북경에 가본 사람이라면) 상당히 사실적인 영화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찍는 것 같은 느낌. 그게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다. <둘째 동생>도 역시 사실적인 느낌을 담아내는데, 그다지 많은 정보를 전달하지 않고서도 충분히 영화 내용에 공감할 수 있다. 중국인의 “아메리카 드림”이랄까? 아니면 “가난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몸부림”이랄까. 아무래도 후자가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밀수선을 타고 가다가 해안 경비대에 걸려 잡혀 되돌아오거나 죽거나. 하지만 많은 이들은 수 차례 배를 갈아타고 가는 긴 여정에 동참한다. 밀입국을 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딱히 어떤 희망도 없는 그들의 고향, 작은 시골에서는 밀입국 말고는 더 좋은 방법은 없나보다.

물질적 풍요가 정신적 풍요를 가져다 주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물질적 풍요는 일정 수준의 정신적 풍요를 담보한다는 것이다. 충만한 정신세계를 누리고 있는 사람도 금전적인 부분이 해결되지 않으면 현실생활은 정말 힘들지 않은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급속하게 뒤섞이고 있는 중국에서는 이런 문제들이 더욱 큰 화두로 다가올 법 하다. 한국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겠지. 어차피 사람 사는 곳에 발생되는 문제는 대부분 비슷하니까.

물질에 얽매이지 않는 삶은 그 물질을 소유해보고나 해야 할 소리는 아닐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유하고 있지 못한 사람이 무소유를 말하면 스님들이나 하는 소리가 되고 일반인들이 그런 얘기를 하면 현실감각이 없다고 비난을 받기 쉽상이다. 참 어려운 문제.

영화를 보고 난 후 느낀 감상 또 하나, 평탄한 인생은 결코 없다는 것. 본인 스스로 만들어 내는 일들도 무척 많지만 인연들에 얽혀서 많은 일들이 우연, 필연으로 발생한다. 그러다가 때론 자기가 어디를 향해 가는지도 모르게 되고 결국 자신이 원하지 않는 길로 들어서기도 한다. 그랬거나 어쨌거나 결국 사람은 희망과 목적이 있지 않은가. 방황도 하고 좌절도 하지만 잘 추스리고 일어서면 다시 궤도에 오를 수 있고 다시 정상적인 삶을 살 수도 있다고 믿는다.

이 영화를 보면서 다시 생각이 났는데, 중국 영화를 보면 영웅들이 나오는 홍콩 느와르 풍의 영화 말고도 상당히 많은 영화에서 표현되는 중국인은 죽음에 대해 상당히 초연하다. 어떤 이유에서일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이 영화에서만 더더욱 두드러지겠지만 한 나라의 영화는 그 나라 사람들의 삶과 정서의 반영이지 않는가. 이 영화에서도 목숨을 거는 일이 위험하다는 걸, 두렵다는 걸 알지만 대면하는 모습은 처절하도록 초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