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읽다 한 군데서 시선이 멈춰졌고 생각을 좀 해봤어. 바로 이 부분. "지구 반대편 한 쪽에선 굶어죽어가고 있는데, 그 사람들의 아픔을 온 몸으로 느끼는 사람이라면..." 이런 예를 들면 이게 쉽게 전달이 안되는 경우도 많더라구. 비교를 통해 스스로의 존재와 문제를 증명하고 해결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불가에서도 '네가 있느니 내가 있고 내가 있으니 네가 있다'고 한 말 처럼) 체득하는 게 쉽진 않지.(나 역시도.)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봤어. 가령, 먹는 문제를 비롯한 의식주에 관한 모든 문제들이 역시 남들과 비교를 하기 때문에 점점 과도한 형태로 변질되는 건 아닌가 하고. 다시 말해, 문제의 발단과 해결은 역시 일단 '나'로부터란 거지. 굳이 '남'을 끌어오지 않더라도 내가 먹는 게, 입는 게, 사는 게 오롯한 나 한 개인의 육체와 정신만을 두고 볼 때 적정한 선을 지키고 있는지. 굳이 미식(美食)을 하는 것 만이 고급생활이라고 생각하고 비싼 물건을 걸쳐야 내 품위가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생각하는 것. 물론 네가 말한 것에 반대하는 뜻에서 말하는 건 아니니 오해하지 마렴. 그저, 너처럼 전체를 관망할 수 없는 사람들에겐 건강한 삶, 소박하지만 품위있고 알찬 삶을 살도록 이야기 해준다면 그들이 소비하는 것도 차츰 정상적인-본디 자리를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럴 경우 그들이 의식하진 못하더라도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삶을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뭐, 그렇게 생각을 해본거야.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를 마시는 게 꼭 미국 뉴요커 생활을 흉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고 반박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 그들이 말하는 스타벅스는 커피 한 잔에 문화를 향유할 수 있고 자유로운 개인시간을 사용할 수 있고 오래 앉아 있어도 아무도 터치하지 않는다는 편안함을 이야기 해. 뭐, 거기에 대고 스타벅스를 가는 걸 제국주의 커피 마신다며 무작정 비난할 수는 없잖아? 그렇다면 그들은 규모는 작지만 분위기도 좋고 2-3시간 정도 앉아서 책을 읽어도 되는 커피숍은 왜 가지 않는 것일까. 도서관 같은 곳은 왜 가지 않는 것일까. 사실 피치못한 이유가 있어 스타벅스를 가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스스로의 마음 한 구석에 어떤 '묘(妙)한 마음'이 들어서 있기 때문인 건 아닐까. 도대체 그 '묘한 마음'은 어디에서부터 온 것일까. '나'를 잃어버린 상태에서는 중심을 잃게 되고 판단이 흐려지며 고집스러워지게 마련이고 종종 '남'을 따라하게 마련이지. 그 '남'은 늘 나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들이야. 결코 나보다 처지가 낮은 사람들을 따라하진 않으려는 게 보편적 '(거짓)나'라고 볼 수 있겠지. 나보다 위에 있다는 것, 나보다 낮은 곳에 있다는 걸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게 하는 '나'는 어떤 '나'일가. 음...그걸 찾아내야겠다.
2006/08/14 불매운동과 관련한 이야기 중에서.(이모티콘 삭제 및 글 내용 등 약간의 수정, 첨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