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에서 비행기로 대련을 거쳐 3시간 여만에 도착한 장춘. 공기가 일단 상해하고 확연히 다르다. 비행기장엔 쌓인 눈이 보이고 비행기에서 내리자 코가 시큼할 정도의 매서운 차가움. 옷을 단단히 입고 목도리에, 빵모자에 장갑까지 꼈으니 그나마 괜찮았지만 얼굴에 닿는 공기는 그야말로 얼음장같다.
택시를 타고 먼저 후배네 집으로 갔다. 인터넷으로 확인할 일도 있었고(집에 인터넷 끊었다.) 간만에 만났으니 지난 얘기라도 해야지. 오는 길에 택시는 빌빌빌 기어가듯 다니고 거리에 사람은 눈에 띄지 않는다. 다들 술집이나 노래방이나 집에 숨어서 이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겠지.
영하 22도, 내가 오기 전엔 영하 28도라고 그러던데 장춘의 겨울은 정말 춥다. 하지만 나도 여기에서 겨울을 지내봤기 때문에 그다지 놀라움이 생기지 않는다. 쉽게 적응하고 몸에 밴다. 이보다 더 추운 곳일지라도 사람이 어찌 살 수 없을까.
얼어붙은 장춘, 그런데 반갑다. 날씨는 아무리 추워도 반가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날씨에 관계없이 얼어붙지 않는다.
이제 짐정리도 하고 처리할 일들을 해야지.
한국에서 눈을 보지 못하다가 장춘에서 눈을 보니 겨울같다. :)
2004년 12월 27일 월요일
2004년 12월 26일 일요일
상해에 오다.
상해에 왔다. 8월에 온 후로 처음이니 4개월 만이다. 원래 장춘에만 들어가서 나머지 짐을 정리해 한국으로 완전 철수를 할 생각이었는데 상해에 볼 일이 생겨 겸사겸사 들어왔다.
중국어에 자신이 있는 건 아니지만 간단한 중국어에 주눅이 들 정도는 아니니 상해에 도착해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 도착한 오늘,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요 며칠 상해는 무척 추웠다고 하는데 한국의 겨울 날씨로 치면 좀 서늘한 냉기가 드는 정도랄까? 공기가 습하고 바람이 좀 불면 꽤 서늘하긴 하다. 낮에는 상해 온도가 영상 17도였다고 하는데 밤이 되니 온도가 꽤 많이 떨어진다. 듣자하니 지금 장춘은 영하 28도까지 내려갔다는데...이걸 무척 추운 날씨로 생각하다니...역시 상해는 상해다.
오자마자 아는 분들에게 전화를 하고 소식을 전했다. 주홍수, 조승현 감독님은 여전히 바쁘게 작업 준비와 진행을 하고 계시고 김호는 휴일인데도 집에서 번역 일을 애써 하고 있다. 창광시 감독님께 전화를 걸었더니 너무도 반갑게 맞아주신다. 내일 쑤조우로 갈 일이 있으시다 해서 저녁에 만났다. 오늘만큼은 내가 식사 대접을 하려 했는데 상해에 온 손님에게 그럴 수 없다며 감독님이 사신다.
앉아서 한국, 중국의 애니메이션 상황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지금 내가 소속되어 있는 회사의 방향에 대해서도 설명을 드렸다. 감독님의 부인 건강이 좋지 않아 요즘 옆에서 보살피고 함께 돌아다닌다는 얘기부터 29살의 하나 밖에 없는 딸의 근황까지 시시콜콜한 얘기부터 한,중 양국의 애니메이션 상황까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얘기 꽃을 피웠다.
언제 뵈어도 겸손하시고 유쾌하시고 표정이 따뜻하신 감독님을 뵙고 있노라니 내 마음도 한결 편해짐을 느낀다. 자기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을 하라는 말씀도 빼놓지 않으신다. 하지만 내가 능력이 되면 감독님을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이 난다. 기분 좋은 저녁 한 때.
감독님을 만나기 전에 시간이 좀 남아 근처 디비디 상점에 가서 몇 장의 디비디를 구입했다. 한장에 장춘보다 2원 비싼 8원. 내가 일본 애니메이션 쪽을 고르고 한국 영화는 거들떠도 안보니 직원이 내가 일본인인줄 알았다고 한다.-_-; 장춘 단골집에서 살 요량으로 몇 장만 구입했다. 저녁에 시간이 되면 일도 할 겸 디비디를 좀 봐야겠다.
오늘은 조승현 감독님 댁에서 하루 밤 신세지기로 했다. 그런데 고맙게도 김호도 내가 불편할까봐 동생인 자기 집에 와서 묵으라고 몇 번 전화를 준다. 고마운 녀석.
상해에서의 밤은 깊어가고 낯설지 않은 중국에서의 느낌이 묘한 느낌을 준다. 언어가 더 늘고 귀가 더 트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중국관련 일들이 더 많아져서 자주 왕래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내일은 장국강, 정대파 선생을 만나 일 처리를 하고 비행기표를 예매해 장춘으로 떠나야 한다. 아쉬운 상해에서의 짧은 시간.
아까 창광시 감독님과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들리던 "丁香花" 노래가 이상하리만치 내가 타국의 이방인이란 느낌을 부추기더니 마음이 고요하고 차분해진다. 그런데 난 이런 "이방인" 느낌이 참 좋다.
중국어에 자신이 있는 건 아니지만 간단한 중국어에 주눅이 들 정도는 아니니 상해에 도착해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 도착한 오늘,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요 며칠 상해는 무척 추웠다고 하는데 한국의 겨울 날씨로 치면 좀 서늘한 냉기가 드는 정도랄까? 공기가 습하고 바람이 좀 불면 꽤 서늘하긴 하다. 낮에는 상해 온도가 영상 17도였다고 하는데 밤이 되니 온도가 꽤 많이 떨어진다. 듣자하니 지금 장춘은 영하 28도까지 내려갔다는데...이걸 무척 추운 날씨로 생각하다니...역시 상해는 상해다.
오자마자 아는 분들에게 전화를 하고 소식을 전했다. 주홍수, 조승현 감독님은 여전히 바쁘게 작업 준비와 진행을 하고 계시고 김호는 휴일인데도 집에서 번역 일을 애써 하고 있다. 창광시 감독님께 전화를 걸었더니 너무도 반갑게 맞아주신다. 내일 쑤조우로 갈 일이 있으시다 해서 저녁에 만났다. 오늘만큼은 내가 식사 대접을 하려 했는데 상해에 온 손님에게 그럴 수 없다며 감독님이 사신다.
앉아서 한국, 중국의 애니메이션 상황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지금 내가 소속되어 있는 회사의 방향에 대해서도 설명을 드렸다. 감독님의 부인 건강이 좋지 않아 요즘 옆에서 보살피고 함께 돌아다닌다는 얘기부터 29살의 하나 밖에 없는 딸의 근황까지 시시콜콜한 얘기부터 한,중 양국의 애니메이션 상황까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얘기 꽃을 피웠다.
언제 뵈어도 겸손하시고 유쾌하시고 표정이 따뜻하신 감독님을 뵙고 있노라니 내 마음도 한결 편해짐을 느낀다. 자기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을 하라는 말씀도 빼놓지 않으신다. 하지만 내가 능력이 되면 감독님을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이 난다. 기분 좋은 저녁 한 때.
감독님을 만나기 전에 시간이 좀 남아 근처 디비디 상점에 가서 몇 장의 디비디를 구입했다. 한장에 장춘보다 2원 비싼 8원. 내가 일본 애니메이션 쪽을 고르고 한국 영화는 거들떠도 안보니 직원이 내가 일본인인줄 알았다고 한다.-_-; 장춘 단골집에서 살 요량으로 몇 장만 구입했다. 저녁에 시간이 되면 일도 할 겸 디비디를 좀 봐야겠다.
오늘은 조승현 감독님 댁에서 하루 밤 신세지기로 했다. 그런데 고맙게도 김호도 내가 불편할까봐 동생인 자기 집에 와서 묵으라고 몇 번 전화를 준다. 고마운 녀석.
상해에서의 밤은 깊어가고 낯설지 않은 중국에서의 느낌이 묘한 느낌을 준다. 언어가 더 늘고 귀가 더 트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중국관련 일들이 더 많아져서 자주 왕래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내일은 장국강, 정대파 선생을 만나 일 처리를 하고 비행기표를 예매해 장춘으로 떠나야 한다. 아쉬운 상해에서의 짧은 시간.
아까 창광시 감독님과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들리던 "丁香花" 노래가 이상하리만치 내가 타국의 이방인이란 느낌을 부추기더니 마음이 고요하고 차분해진다. 그런데 난 이런 "이방인" 느낌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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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22일 수요일
내 안의 '적'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고 내 일이었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말라.
그림자말고는 친구도 없고
병사로만 10만.
백성은 어린애, 노인까지 합쳐 2백만도 되지 않았다.
배운게 없다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깡그리 쓸어버렸다.
나를 극복하는 그 순간 나는 징기스칸이 되었다.
- 징기스칸 -
상대평가를 하며 자신을 위로하는 방법은 전형적이긴 하지만
꽤 나름대로 자신에게 용기를 주기도 하고 자부심을 갖게 한다.
어쨌든 "적"은 밖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있음에 동감한다.
"나"를 이기는 자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강한 자"가 아니겠는가.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들, 내가 살며 해결해야 할 것들에게 대한 고민이 지지부진하다면 언제나 그렇게 목 매달고 끌려가는 삶이 될 터. 하루에도 몇 번씩 스러질 마음 일으켜 세우는 게 어려워도 해야하겠지.
죽기밖에 더 하겠어?라는 말이 폼잡는 말이 아닐 때...
"나"를 극복하는 그 순간 나는 오롯한 "내"가 될 것이다.
2004년 12월 20일 월요일
주인공은 누구...
함부로 앉기도 어렵고
앉고 싶은 욕망도 가득하면
먼 발치에서나마 의자에 앉는 상상을 해보거나
조금씩 의자로 향해 다가서거나...
그러다 앉을 수 있을 때 앉기만 한다면
내 삶도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까?
언제나 의자는 비워둔 채인데 말야.
2004년 12월 18일 토요일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기본적인 정(情)이 흐르지 않는다면 관계는 어느새 멀어지고 말테지. 정을 주고 받는 관계를 만들기 위해 억지로 타협을 하거나 뇌물을 주고 받게 된다면 그건 본질을 훼손하는 법.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자연스럽게 서로 가까워질 수 있을까.
오늘 상사(?)에게 호된 꾸지람을 들으며 머리 속으로는 그 말의 잘잘못과 내 잘잘못을 순간적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누가 얼마만큼 잘하고 잘못하고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런 경계를 넘어서는 것. 어떻게 넘어서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어제 저녁부터 내 마음 속에 평소와는 다른 내가 고개를 기웃거리고 있었는데 그게 그러지 말아야지...하고 마음 먹는다고 해서 쉽게 사라지는 건 아니다. 원인결과를 끊임없이 반추하고 살펴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어떤 경우엔 실수를 수 백번하다가 한 번 잘해도 이해받는 경우가 있고 어떤 경우엔 수 백번 잘하다가도 한 번 잘못하는 경우로 인해 완전히 틀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 두 가지 경우는 어떻게 판단하고 이해해야하는 것일까. 아마 내 20살 때 아는 분에게 들었던 "일의 경중(輕重)", "일의 선후(先後)"에 대한 문제일게다. 그리고 중용에서 말하는 "시중(時中)"의 개념. 이게 완전히 내 것으로 체화되지 못한다면 난 언제나 "틀어지는" 편에 서게 될 것이다.
물론 이런 경우 모든 게 나로부터 인한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다. 상대방의 오해, 곡해 혹은 성격 때문에 내가 잘못 이해되고 무시되는 경우도 있을테니. 하지만 어쨌든 간에 그것 또한 내가 "보여지는" 것에 대한 부분이므로 나의 잘못도 있는 것이긴 할테다.
공정한 판단과 결정 후에 "어긋남의 강"을 건너간 후 다시 이야기해도 늦지는 않을 게다. 서둘러서 그 강에 빠지는 경우도 언제든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이니...
일을 완벽하게 해내지 못했던 내 일 처리 방식에 한 번 더 돌아보게 되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풀어가는 것이 서로에게 좋은지 다시 생각해 본다.
"연마(硏磨)"와 "취사(取捨)"하는 공부의 끈을 다시 조일 필요를 느낀다.
오늘 상사(?)에게 호된 꾸지람을 들으며 머리 속으로는 그 말의 잘잘못과 내 잘잘못을 순간적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누가 얼마만큼 잘하고 잘못하고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런 경계를 넘어서는 것. 어떻게 넘어서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어제 저녁부터 내 마음 속에 평소와는 다른 내가 고개를 기웃거리고 있었는데 그게 그러지 말아야지...하고 마음 먹는다고 해서 쉽게 사라지는 건 아니다. 원인결과를 끊임없이 반추하고 살펴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어떤 경우엔 실수를 수 백번하다가 한 번 잘해도 이해받는 경우가 있고 어떤 경우엔 수 백번 잘하다가도 한 번 잘못하는 경우로 인해 완전히 틀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 두 가지 경우는 어떻게 판단하고 이해해야하는 것일까. 아마 내 20살 때 아는 분에게 들었던 "일의 경중(輕重)", "일의 선후(先後)"에 대한 문제일게다. 그리고 중용에서 말하는 "시중(時中)"의 개념. 이게 완전히 내 것으로 체화되지 못한다면 난 언제나 "틀어지는" 편에 서게 될 것이다.
물론 이런 경우 모든 게 나로부터 인한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다. 상대방의 오해, 곡해 혹은 성격 때문에 내가 잘못 이해되고 무시되는 경우도 있을테니. 하지만 어쨌든 간에 그것 또한 내가 "보여지는" 것에 대한 부분이므로 나의 잘못도 있는 것이긴 할테다.
공정한 판단과 결정 후에 "어긋남의 강"을 건너간 후 다시 이야기해도 늦지는 않을 게다. 서둘러서 그 강에 빠지는 경우도 언제든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이니...
일을 완벽하게 해내지 못했던 내 일 처리 방식에 한 번 더 돌아보게 되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풀어가는 것이 서로에게 좋은지 다시 생각해 본다.
"연마(硏磨)"와 "취사(取捨)"하는 공부의 끈을 다시 조일 필요를 느낀다.
2004년 12월 11일 토요일
의미있게 한 걸음 떼는 방법
사무실 확보를 위해 계약을 하고 다시 한 번 사무실을 둘러보며 어떤 것들이 필요한 가를 생각해 본다. 작업 공간이 생긴다는 건 어느 작업자들에게건 약간의 설레임을 주지만 중국에서 갓 돌아온 나에게 안주(?)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는 것은 더욱 기분이 좋은 일이다.
앞으로 어떻게 사무실을 꾸려갈 것인가가 사실 더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어떤 일을 하던 간에 그 걱정은 뗄 수 없는 것 아닌가. 즐거운 마음으로 신나게 작업을 하다보면 이런 저런 일들이 하나 둘씩 해결이 되어가고 이루어지는 게 생길 것이란 믿음은 여전히 내게 유효하다.
물론, 지금 진행해야 할 일들이 바로 코 앞에 닥쳐 마음이 조급한데다가 사무실 정리도 해야하는 상황이 그다지 반가운 건 아니지만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으니 충분히 반길 자세는 되어있다.
일만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도 더 적응해가야 하고 내 스스로의 위치도 되도록 빨리 안정시켜야 한다. 여러가지 일은 한꺼번에 몰려든다는 게 여태 살아오면서 느낀 것 중 하나다. 그런 일들도 순서를 밟아 차근차근 해가다 보면 실타래 풀리듯 순소롭게 풀리는 것 또한 마찬가지. 이럴 때 일수록 단전에 힘을 놓지 않아야 하는데...여전히 수행이 부족한 자신에게 마인드 컨트롤을 해본다.
언제나 시작이듯, 이번에도 또 시작이다.
앞으로 어떻게 사무실을 꾸려갈 것인가가 사실 더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어떤 일을 하던 간에 그 걱정은 뗄 수 없는 것 아닌가. 즐거운 마음으로 신나게 작업을 하다보면 이런 저런 일들이 하나 둘씩 해결이 되어가고 이루어지는 게 생길 것이란 믿음은 여전히 내게 유효하다.
물론, 지금 진행해야 할 일들이 바로 코 앞에 닥쳐 마음이 조급한데다가 사무실 정리도 해야하는 상황이 그다지 반가운 건 아니지만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으니 충분히 반길 자세는 되어있다.
일만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도 더 적응해가야 하고 내 스스로의 위치도 되도록 빨리 안정시켜야 한다. 여러가지 일은 한꺼번에 몰려든다는 게 여태 살아오면서 느낀 것 중 하나다. 그런 일들도 순서를 밟아 차근차근 해가다 보면 실타래 풀리듯 순소롭게 풀리는 것 또한 마찬가지. 이럴 때 일수록 단전에 힘을 놓지 않아야 하는데...여전히 수행이 부족한 자신에게 마인드 컨트롤을 해본다.
언제나 시작이듯, 이번에도 또 시작이다.
2004년 12월 10일 금요일
음식과 종교인
미식가는 좋은 음식, 맛있는 음식, 멋있는 음식들을 찾아 다니고 그 맛을 즐기며 삶에 대해 알아가고 터득해간다. 하나의 취미일 수도 있고 하나의 직업일 수도 있고 그냥 삶일 수도 있다. 요리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도 잘 알지만 요리에 들어가는 재료, 요리의 역사(기원), 사람과의 관계성, 문화적 코드로서의 의미 등에 대해서도 잘 알 것이다.
어느 한 방면의 전문가는 그 일에 몰두할 때가 가장 아름답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한가지에 몰두하면서 산다는 게 그리 쉽지만도 않다. 그래서 스스로 채찍질도 하며 노력하고, 그렇게 해서 타인들에게 명예와 존경을 얻기 위해 애를 쓰기도 한다.
그런데 가끔 미식가도 아닌 종교인이(* 일반인들이나 종교인들이나 음식을 좋아하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해소를 위한 노력, 또는 취미생활, 맛있는 걸 먹고 싶어하는 요구에 대해서는 100% 인정한다.) 맛있는 집을 줄줄 꿰고 있거나 먹는 것에 너무 공을 많이 들이는 경우를 접하게 된다. 내 선입견임을 미리 인정하고 말을 하자면 종교인들의 그런 모습들이 그렇게 좋아보이지 않더라는 것이다.
수행을 하고, 마음을 닦아서 중생들에게, 범인(凡人)들에게 영성의 울림을 전해줘야 할 분들이 음식을 탐닉하며 겉도는 모습은 적어도 내게는 좋게 보이진 않더라.
밥 잘 먹고, 맛있고 몸에 좋은 거 많이 먹고 다니는 것도 건강을 챙기는 것이라는 건 인정한다. 정신건강도 챙겼으면 하는 거지. 정신건강도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거나 해서 건강해지고 행복해진다면 할 말 없군.-_-a
어느 한 방면의 전문가는 그 일에 몰두할 때가 가장 아름답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한가지에 몰두하면서 산다는 게 그리 쉽지만도 않다. 그래서 스스로 채찍질도 하며 노력하고, 그렇게 해서 타인들에게 명예와 존경을 얻기 위해 애를 쓰기도 한다.
그런데 가끔 미식가도 아닌 종교인이(* 일반인들이나 종교인들이나 음식을 좋아하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해소를 위한 노력, 또는 취미생활, 맛있는 걸 먹고 싶어하는 요구에 대해서는 100% 인정한다.) 맛있는 집을 줄줄 꿰고 있거나 먹는 것에 너무 공을 많이 들이는 경우를 접하게 된다. 내 선입견임을 미리 인정하고 말을 하자면 종교인들의 그런 모습들이 그렇게 좋아보이지 않더라는 것이다.
수행을 하고, 마음을 닦아서 중생들에게, 범인(凡人)들에게 영성의 울림을 전해줘야 할 분들이 음식을 탐닉하며 겉도는 모습은 적어도 내게는 좋게 보이진 않더라.
밥 잘 먹고, 맛있고 몸에 좋은 거 많이 먹고 다니는 것도 건강을 챙기는 것이라는 건 인정한다. 정신건강도 챙겼으면 하는 거지. 정신건강도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거나 해서 건강해지고 행복해진다면 할 말 없군.-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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