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은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며 휴식을 취하곤 하는데 오늘은 어느 곳으로 채널을 돌려도 계속 이명박 당선자의 얼굴 뿐이다. 그의 웃음과 그 주변의 환호성들은 기분을 불쾌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내가 아주 어리숙했을 무렵(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이 되었을 때 그 다음날 천지개벽이라도 일어날 줄 알았다. 하지만 세상은 너무도 고요했고 일상에 변화는 없었다. 그렇게 10여년이 지났다. 그리고 오늘, 말도 안되는 논리와 말도 안되는 자격을 가지고 등장한 한 대선 후보가 투표한 국민의 50% 가까이 되는 지지를 받으며 덜컥 대통령직에 당선이 되어버렸다. 내일 곧 대한민국이 붕괴되고 망할 것 같은 느낌이겠지만 이명박을 원하지 않았던 개개인의 속은 타들어가고 공허한 마음은 좀 오래 후유증을 가질지언정 세상은 10여년 전 그때와 변함없이 고요할테고 일상에 큰 변화는 없을 것 같다. 조금 지나보면 조금씩 피부로, 생활로 느껴지는 변화가 있긴 하겠지만 내일 당장은 어제와 다름없이 해가 뜰 것이다.
견딜 수 없는 건 비상식적, 비정상적인 선택을 한 사람들의 환호와 그에 달라붙는 수 많은 매체, 군중들의 환한 모습을 본다는 것일테다. 한국에서 진보세력이 제대로 등장이나 한 적이 있었던가. 한국에서 이념의 대결이라고 할 만한 적이 있었던가. 그러고 보면 이 답답한 가슴은 그걸 모르고 살아왔던 자신의 무지함, 무력함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거나 알고 있었음에도 별다른 몸부림없이 살았던 것에 대한 댓가일지도 모르겠다.
이젠 호흡도 좀 길게 가고 시선도 좀 더 멀리 맞추고 의연하게 가슴도 좀 펴야 병치레없이 살 수 있을테다. 이 비참한 결과를 진보세력으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 이들의 탓으로 돌려도 큰 상관은 없겠지만 그보다는 스스로가 좀 더 날 선 비판과 비평의 심지를 가지고 성찰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자꾸 자기합리화로 '쿨한 척'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