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은 게 아니라
너무나 사랑했던,
바보같이 순수한 남자였다.
긴 세월,
어머니 뿐만 아니라
가족들 모두에게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는
무심한 아버지라 생각해
아버지를 못마땅해 했던 내가
어느 날,
당신의 사랑을 이해하면서
당신의 사랑이 말 그대로
높고 큰 은혜라 느끼게 되었다.
스스로 '사랑한다' 말 한마디 인색했던 게
아버지에게서 사랑한다는 말
듣지 못했던 까닭이라 믿어왔다.
그러나 지금 난,
너무도 부족했던 사랑의 방법과
이해하지 못했던 사랑의 의미를
조금씩 터득해 가고 있다.
바다를 앞에 두고도
수영을 하지 못해 망설이던 게
깊은 물 탓이라며 원망했는데
부자 사이의 관계에서도
같은 변명으로 다가서지 못하고 있었다.
당신의 깊은 사랑을 마주하고도
나만의 변명과 이유를 들어가며
다가서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던 내가
아버지는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나 역시 당신에게
사랑받고 있는 존재였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1998.12. 어느 날
2008년 11월 17일 월요일
관계-인연
수많은 사람들 속에 얽혀 있는
관계들은 묘한 놀라움을 선사한다.
혈연(血緣), 학연(學緣), 지연(地緣) 등
인연(人緣)들로 엮어진 끈끈한 관계들.
쉽게 떨쳐내거나 혹은 떨쳐낼 수 없는 관계들.
관계 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어제의 날샘으로 인해 몸이 힘들지만
마음은 차분해진다.
하지만 집에 들어갈 때
아버지의 차(車)가 있나 없나부터 살피는
나를 보니 순간 우습고 슬프다.
진로를 바꾸면서 냉랭해진
부자(父子)의 관계가
더 발전하기 위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믿을 뿐이다... 바랄 뿐이다.
그러나 점점 초췌해지고 늙어가는
아버지를 뵐 때마다
지극히 혼란스럽고 멍해진다.
당신과의 시선을 애써 피하려고 하는 난,
당신의 뜻을 거스르기 위함이 아닌데도
자꾸만 당신 뜻에서 멀어져가는 것 같아
움추러 들기만 한다.
관계 속에서 자립(自立)하여 성불(成佛)하리라.
나이를 먹어가며 느끼게 되는 체념이나 현실적 타협이
때론 장애가 되기도 하겠지만
나! 성불(成佛)하리라.
울고 웃고 고뇌하며 방황하는 삶 속에서 우뚝 서고 싶다.
자꾸만 약해져 가는 나를 채찍질하고 싶다.
그러나 부모님의 남은 여생이 너무 짧은 듯 느껴져
먹먹한 마음 뿐이다.
1998.12.27 메모
관계들은 묘한 놀라움을 선사한다.
혈연(血緣), 학연(學緣), 지연(地緣) 등
인연(人緣)들로 엮어진 끈끈한 관계들.
쉽게 떨쳐내거나 혹은 떨쳐낼 수 없는 관계들.
관계 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어제의 날샘으로 인해 몸이 힘들지만
마음은 차분해진다.
하지만 집에 들어갈 때
아버지의 차(車)가 있나 없나부터 살피는
나를 보니 순간 우습고 슬프다.
진로를 바꾸면서 냉랭해진
부자(父子)의 관계가
더 발전하기 위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믿을 뿐이다... 바랄 뿐이다.
그러나 점점 초췌해지고 늙어가는
아버지를 뵐 때마다
지극히 혼란스럽고 멍해진다.
당신과의 시선을 애써 피하려고 하는 난,
당신의 뜻을 거스르기 위함이 아닌데도
자꾸만 당신 뜻에서 멀어져가는 것 같아
움추러 들기만 한다.
관계 속에서 자립(自立)하여 성불(成佛)하리라.
나이를 먹어가며 느끼게 되는 체념이나 현실적 타협이
때론 장애가 되기도 하겠지만
나! 성불(成佛)하리라.
울고 웃고 고뇌하며 방황하는 삶 속에서 우뚝 서고 싶다.
자꾸만 약해져 가는 나를 채찍질하고 싶다.
그러나 부모님의 남은 여생이 너무 짧은 듯 느껴져
먹먹한 마음 뿐이다.
1998.12.27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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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22일 목요일
아버지가 생각나서...
동생, 요녀석이 호주로 떠나며 홈페이지 대문에 쓴 글을 읽으며 한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고 눈물이 났다.
나도 중국에 와서 가끔씩 아버지가 생각나고 아버지 없는 빈자리가 참 크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었는데 결국 어떤 결정을 하거나 생활할 때 보면 난 심중에 아버지를 그다지 크게 두지 않았었다. 그런데 동생이 호주로 떠나며 홈페이지 대문에 누구에게 쓴 글인지 불분명하게 글을 남겼지만 난 본 즉시 알았다. 아버지께 잘 살겠다고 잘 다녀오겠다고 편지를 남긴 것이다. 아버지가 생각나서 눈물이 나기도 했지만 동생의 그 기특한 마음에 눈물이 나기도 하고 형으로써 참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늘 마음에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동생이 어쩌면 나보다 더 형으로써의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먼저 태어났다고 형이라 불리우고 늦게 태어났다고 동생이라 불리우는 것 세상의 모순인 것 같다. 심량이 얼마나 크고 얼마나 심지가 깊은가에 따라 형, 동생이 갈려야 하는 건 아닌 가 싶다.
아버지 가신지 벌써 5년이 다 되어간다. 가셨을 때는 모두 다 내 탓이라 생각하고 후회도 많이 하고 참회도 많이 했건만 한해 한해 지날 수록 그런 생각보다는 그저 내 앞가림 하기 바쁘고...당신 생각하는 때도 상당부분 내 감성에 치우친 바 많아서 참 죄송스러웠는데 이번에 동생이 또 참 나를 부끄럽게 하고 가네.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언젠가 꼭 하고 싶다는 마음은 가득한데 어떻게 풀어야 할지를 도데체 모르겠다. 아무리 나름대로 생각하고 살아도 역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나보다 앞서가고 더 깊은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을 반박조차도 못하겠다.
아버지... 잘 살아볼랍니다. 정말 당신 자식으로 태어나서 당신께 잘난 모습 보여드리지 못하고 보내드렸지만 잘 살랍니다. 상인이 홈페이지에 써있던 글 보셨겠지요? 잘 살랍니다.
잘 살랍니다.
나중에 잘 살다가 다시 뵐께요....
04|06|11 22:55:54
** 참 많은 변화가 있었네. 이 글, 참 부끄러운 글이지만, 나를 아는 사람은 아는 대로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대로 볼 수 있겠다 생각하니 낯 뜨거운 것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게 되는 뻔뻔함도 생기네. 사는 건... ....라 수없이 대답하고 반문해도 모르겠다. 정말.
나도 중국에 와서 가끔씩 아버지가 생각나고 아버지 없는 빈자리가 참 크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었는데 결국 어떤 결정을 하거나 생활할 때 보면 난 심중에 아버지를 그다지 크게 두지 않았었다. 그런데 동생이 호주로 떠나며 홈페이지 대문에 누구에게 쓴 글인지 불분명하게 글을 남겼지만 난 본 즉시 알았다. 아버지께 잘 살겠다고 잘 다녀오겠다고 편지를 남긴 것이다. 아버지가 생각나서 눈물이 나기도 했지만 동생의 그 기특한 마음에 눈물이 나기도 하고 형으로써 참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늘 마음에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동생이 어쩌면 나보다 더 형으로써의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먼저 태어났다고 형이라 불리우고 늦게 태어났다고 동생이라 불리우는 것 세상의 모순인 것 같다. 심량이 얼마나 크고 얼마나 심지가 깊은가에 따라 형, 동생이 갈려야 하는 건 아닌 가 싶다.
아버지 가신지 벌써 5년이 다 되어간다. 가셨을 때는 모두 다 내 탓이라 생각하고 후회도 많이 하고 참회도 많이 했건만 한해 한해 지날 수록 그런 생각보다는 그저 내 앞가림 하기 바쁘고...당신 생각하는 때도 상당부분 내 감성에 치우친 바 많아서 참 죄송스러웠는데 이번에 동생이 또 참 나를 부끄럽게 하고 가네.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언젠가 꼭 하고 싶다는 마음은 가득한데 어떻게 풀어야 할지를 도데체 모르겠다. 아무리 나름대로 생각하고 살아도 역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나보다 앞서가고 더 깊은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을 반박조차도 못하겠다.
아버지... 잘 살아볼랍니다. 정말 당신 자식으로 태어나서 당신께 잘난 모습 보여드리지 못하고 보내드렸지만 잘 살랍니다. 상인이 홈페이지에 써있던 글 보셨겠지요? 잘 살랍니다.
잘 살랍니다.
나중에 잘 살다가 다시 뵐께요....
04|06|11 22:55:54
** 참 많은 변화가 있었네. 이 글, 참 부끄러운 글이지만, 나를 아는 사람은 아는 대로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대로 볼 수 있겠다 생각하니 낯 뜨거운 것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게 되는 뻔뻔함도 생기네. 사는 건... ....라 수없이 대답하고 반문해도 모르겠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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