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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22일 목요일

벌써 두 달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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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에 온지도 이제 2달째 접어든다.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 일을 했는데 5-6년 전 정신없이 일했던 어느 해가 자주 겹쳐진다. 아직도 서툰 중국어로 강의하고 회의하고 소통하며 일하고 있는 나를 돌아보며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전보다 더 자주 생각하게 된다. 몇 번이고 중도에 그만두려고도 생각했지만 주변의 스승님과 동료들과의 대화를 통해 다시 마음을 추스리며 버텨왔던 세월의 흔적들을 지금 조금씩 다시 풀어놓고 있는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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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게 누군가는 '너무 겸손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지금도 학생들 앞에 서거나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면 '자신있음'보다 '자신없음'이 먼저 고개를 든다. 어쩌면 이런 긴장감이 나를 더 다잡게 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노력하지 않는 내가, 좀 더 공부하지 않는 내가 보일 때마다 부끄럽고 왜소하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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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잡부'라고 말할 만큼 이 판에서 안 해본 게 없지만 늘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그만그만한 정도에 머무른 능력을 생각해보면 참 용케도 버텨왔다 싶다.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어가면서 느끼는 건 '원리'를 아는 것 만큼 좋은 건 없다는 것. 프로그램을 다루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원리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정말 천지차이인 것 같다. 20대 초반에 열심히 '수행'하면서 느꼈던 그 감정이 조금씩 되살아나는 것 같기도 하다. '원리'를 향해 달려가던 젊은 날, 조금씩 알아가는 지금, 주변이 조용해지는 상황이 되면 어김없이 내 삶의 원리와 도리에 대해 화두를 품게 되는 건 고질병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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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으로 하루하루를 넘겨내고 있다. 때론 즐겁고, 때론 뿌듯하며, 때론 힘겨운 날들을.

2009년 6월 21일 일요일

삼라만상의 의지

왜 태어났는지 궁금했던 때가 있었고,
왜 살아야 하는지 궁금했던 때가 있었다.

물론 다른 수 많은 자문(自問)들, 문제들 역시
여전히 '진리(眞理)'의 발끝자락도 다가서지 못했지만
위 두 가지 문제는 어떻게 해도 풀리지가 않는다.
그래서 그냥 살아보기로 했다.

태어난 게 내 의지가 아닌
우주 삼라만상의 의지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나 죽어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로
내 의지가 개입될 여지는 무척 적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렇다면 내게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살아가며 고민하고 풀어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쉽지만은 않겠지만,
천상병 시인처럼 이 풍진 세상을 소풍처럼 생각할 수 있다면 좋겠다만,
아직 내 마음은 여전히 빈곤하고
사고의 한계는 넓게 장막을 치고 있는 것 같다.

뭐, 말은 거창하게 풀어놓은 듯 하지만 역시 빈약한 나의 삶이라...

20대 중반의 어느 날, 우주와 내가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었는데
수행이 부족한 탓인지 능력이 부족한 탓인지
그 느낌들을 다시 잡아내기가 어려워졌다.

이렇게 나이만 먹어가는 건 아닌지... 쩝...



- 벗에게 했던 이야기를 옮겨와 기록함(약간의 수정)

2009년 4월 5일 일요일

더 레슬러(The Wrestler), 그 어깨 너머로 들리던 환호와 야유

어릴 적 당시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에 김일을 비롯해 여권부, 그리고 신인으로 보였던 이왕표 등(그 외는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이 거대한 외국인들이 와서 '레슬링'을 했었고 어린 마음에 그들의 모습은 무척 충격적이었다. 어렸기 때문에 그들의 '레슬링'은 사실처럼 받아들였었다. 외국 레슬러가 팬츠에서 무기를 꺼내면 목청이 터지도록 '안돼'를 외쳤고 김일의 머리에서 피가 난 상태로 외국 레슬러를 박치기로 쓰러뜨릴 때면 함성을 질러댔었다. 특히 여권부의 꿀밤공격은 너무너무 통쾌했고 이왕표의 몸을 던지는 드롭킥은 표범처럼 재빨랐다.

흑백TV에서 보던 사람들이 현실로 걸어나와 육중한 몸을 움직이며, 선명한 피를 흘려가며 (쓰러질 때마다 큰 소리가 나던) 합판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링 안에서 링 밖에까지 들리도록 거친 숨을 몰아쉬며 '레슬링'하던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던 난 적어도 김일, 여권부, 이왕표라는 이름은 잊을 수 없게 되었다. 어릴 적 두 눈으로 본 시합만이 진정한 레슬링이라고, 트릭은 전혀 없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어린 나는 나이가 들며 접하게 된 미국의 레슬링에 대해선 '쇼'가 난무한 가짜라고 생각해 관심도 두지 않았었다.

후에 그들의 '쇼'는 생각 이상으로 정교하며 링 안에서의 레슬링은 오랜 훈련과 자기와의 싸움을 통해 실제로 몸을 부딪히고 합을 짜 최대한 화려한 '리얼한 쇼'를 연출하며 때론 목숨을 잃거나 불구가 되는 레슬러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들의 '쇼'를 다시 보게 되었고 그들의 삶에 경외심이 생기게 되었다. 게다가 링 밖의 생활도 그들만의 캐릭터로 살아가길 노력해 팬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다는 걸 알게 되고서 그들이야 말로 진정한 '프로페셔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레슬링'은 내게 있어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쉽게 잊혀지지 않는 기억의 한 조각, 흑백과 칼라가 오가는 뚜렷한 장면들을 남겨줬다. 그러니 '반칙왕'같은 영화에서 나오는 '타이거마스크'는 얼마나 많은 감정을 달고 오는 상징이 되었겠나. 그리고 얼마 전 내겐 '나인하프위크'의 섹시하고 '엔젤하트'의 퇴폐적인 이미지로 강하게 남아있던 미키 루크(Mickey Rourke)가 주연한 "The Wrestler"를 보게 되었다.


하지만 "The Wrestler"는 레슬러를 소재로 하긴 했지만 레슬러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한 '인간', 혹은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게다가 미키 루크의 굴곡많은 삶과 영화 속 랜디의 삶이 오버랩 되면서 이미 많이 알려진 것과 같이 영화 "The Wrestler"는 미키 루크의 '자전적' 영화로 비춰지기도 한다.

영화 속 랜디의 모든 비극은 스스로가 자초한 부분이 많다. 랜디의 과거가 자세하게 등장하진 않지만 딸 스테파니와 나누는 대화 속에서 그리고 그가 사랑하게 된 캐시디와 나누는 대화 속에서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특히 한 번도 딸을 찾아나서지 않은 레슬러 아버지는 자신의 꿈을 위한 인생을 산 후 더 이상 삶의 에너지를 쏟아낼 수 없을 때에야 겨우 딸을 찾아 고해성사를 한다. 딸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랜디의 착각이다. 사실 랜디가 스테파니에게 '고백'하면서 우는 장면을 보며 마음은 아프지만 냉정한 시선을 둘 수 있었던 이유는 다 큰 어른의 눈물만으로도 채워지지 않을 '아버지에게 버려졌다고 생각할 수 있는' 스테파니의 아픔이 함께 느껴져서다. 역시 마찬가지로 캐시디도 나름대로 노력은 하지만 고집스럽고 마초스러운 랜디는 캐시디를 제대로 이해할 리 만무한 것이다. 랜디에게 있어 가정과 사랑은 자신의 삶과 이상에 비하면 그닥 중요한 게 아닌 것이다.

가정(가족)을 지키는 것과 남자(마초)가 자신의 이상을 좇는 것은 완전히 다른 두 개의 경우다. 가정을 지키려면 자신의 이상을 낮추던가 일정부분 포기해야 하고 이상을 좇으려면 가족의 아픔 역시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랜디의 삶을 이해할 수 없다'가 아니라 랜디가 고독해하고 슬퍼하는 모습이 꿈을 잃은 한 남자의 그것이었기 때문에 보는 내내 가슴이 아팠고 내 자신의 삶을 반추해 보게 되었다. 그건 이상과 현실의 틈만큼 짊어져야 할 고통과 힘겨움이며 그로인한 갈등은 '타인'과의 갈등이 아니라 바로 '자신'과의 갈등인 것이다. 그 갈등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죽음에서도 외로움에서도 슬픔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링 위에서 저 멀리 링 아래로 몸을 날릴 수 있는 랜디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영화를 보며 랜디와 미키루크가 분리되지 않았던 건 미키루크의 삶 역시 영화 속 랜디와 비슷하다는 점도 있었겠지만 적어도 내겐 영화 속 랜디가 레슬러가 아닌 우리들의 삶과도 너무나 닮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랜디가 '미키루크'로 투영이 되던 '나'로 투영이 되던 혹은 내가 알고 있는 '누군가'로 투영이 되던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가 되더라는 것. 미워하지만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레슬러는 언제나 환호와 야유를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 자신이 흘린 땀의 양만큼 환호를 받지만 그와 비례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바로 야유를 받으며 링에서 내려와야만 한다. 삶이 그렇다. 결코 자신이 흘린 땀은 스스로를 배신하지도 않을 뿐더러 노력을 멈추는 순간 인생의 링에서 퇴출되는 것이다. 그 어느 순간순간이 아름답지 않고 위태롭지 않을 수가 있을까. 스스로 '파이팅'을 해도 어느 순간 한계를 체감했을 때 느껴지는 공허함과 절망은 늘 주변에 고개 숙여 잠복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상을 좇는다면, 그럴 용기가 남아있다면 링 위로, 아래로 몸을 날릴 각오정도는 하고 있어야 한다.

랜디와 함께 동료 레슬러들이 쇼를 구상하고 연습을 하며 서로의 몸을 때리고 부딪힘에 있어 최선을 다하면서도 서로 존중하고 존경하는 그들의 관계와 삶은 현실에서 보기 드물정도로 이상적이고 아름다웠다. 삶이 아무리 남루하더라도 저들의 삶과 같다면 살 맛 나겠다 싶었다.

영화는 랜디가 몸을 날리면서 끝났지만 우리의 삶은 몸을 날리는 순간부터 비로소 시작이다. 언제나 삶은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지금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부터 다시 현재와 과거를 지나 미래를 열수 있기 때문이다. 참다운 삶을 찾는다는 건 그렇다. '이제야 알겠다'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유효한 것이다.

2009년 3월 11일 수요일

자살(自殺)이란 이름의 타살(他殺)

연예인, 대학생, 고등학생, 중학생, 초등학생, 기업인, 가정주부, 샐러리맨, 노인 등 남녀노소, 직업불문하고 한국에서는 많은 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버린다. 대학 등록금 때문에, 학업 성적 때문에, 빚 때문에, 악플 때문에, 우울증 때문에, 생활고 때문에, 병원 치료비 때문에... 그리고 그들이 '자살(自殺)'했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죽을 용기로 살아야 한다'거나 '죽을 용기가 있었으면 살 용기도 있지 않느냐'며 안타까움을 호소하고 '망자'를 추모한다.

난 '자살'이란 행위에 대해 반대할 생각이 없다. 물론 찬성한다며 '자살'하려는 사람들을 부추기려는 생각은 더더욱 없다. 단지, 자신의 삶을 마감하려는 결단을 존중한다는 것이고 스스로를 파괴할 권리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궤변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스스로의 삶, 스스로의 신체에 대한 결정권은 자신에게 있다. 생명은 부모님이 주셨으나 탄생 이후 스스로의 삶이 서게 된 이후부터는 스스로 결정할 권리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자살'은 절대 불허할 뿐 아니라 자살로 위장된 '타살(他殺)'은 당사자의 책임인 '자살'로 내모는 경우가 많다.

내가 생각하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자살'은 '안락사'와 같은 경우를 말한다. 안락사가 아니더라도 스스로가 삶을 포기하겠다고 판단한 경우라면 그 결정은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어떤 무리의 사람들은 스스로 '고귀하게 죽을 권리'를 주장하는 것 조차도 좋지 않은 파급효과를 낳을 것이라며 극구 반대한다. 때로는 '신(神)'의 이름을 빌어서까지 막아선다. 스스로 삶을 정리할 권리는 막무가내로 무시되어도 좋은 것이 아니다. '죽을 수 있는 권리'가 어떤 이들의 개인적 성취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거부되어서는 안 된다.

자살로 위장한 '타살'이란 건, 우리가 접하는 대다수의 자살 소식이란 죽음의 끝으로 내몰려 벌어진 '타살'의 흔적이란 것이다. 위에 거론한 자살의 이유들 중에 이 사회가 조장하지 않은 게 하나라도 있을까.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살을 접하면 일단 자살을 선택한 사람을 안타까워하고 애도한다. 그리고 그 원인에 대해서 몇 마디 거들고는 나 몰라라 한다. 자살로 몰아가는 원인을 바꾸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은 커녕 지속적인 방치를 통해 '타살'을 하고 있음에도 '자살'이란 표현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면죄부를 얻게 된다.

자살을 선택한 이들의 선택(결정)을 존중해줘야 한다. 그리고 죽음의 원인을 사회에서 또는 공동으로 제공한 부분이 있다면 사회의 구성원들은 반드시 그 원인을 찾아내어 하나씩 해결해가야 한다. 스스로의 손에 책임을 쥐지 않는다면 대중은 사회의 '공업(公業)'으로 타살을 하게 되는 셈이다. 사실 이 사회는 원인해결보다는 더 나아가 죽음을 판매하고 죽음을 이용하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악용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에 대중은 무감할 뿐이고 쉽게 이용당하고 있다. 스스로가 '공공의 타살'의 일원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시선을 죽음의 뒷편으로 돌려야 한다.

스스로 결정한 죽음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존중할 수 있을 때 '안락사'던 '자살'이던 그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될 수 있으며 삶의 희망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sense datum] - ...두고 보도록 하자.

2009년 1월 18일 일요일

95%가 보수라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언젠가 앞으로 최소한 10년-20년 동안은 이 나라에서 살기가 참 퍽퍽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상위 5%가 지배하고 있는 사회구조 때문만은 아니다. 국민의 95%가 보수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물론 정확한 통계가 나오지도 않았고 근거를 댈 만한 것도 없다. 그냥, 주변을 살펴보면 그렇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그 보수가 과거처럼 정치적, 사상적으로 극명하게 표시가 나는 보수 또는 우파, 극우와 같아 보이진 않는다.

인간의 존엄, 삶의 가치, 평등, 자유 등등은 이젠 절판이 된 책에서나 나올 법한 가치없는 메아리가 되어버렸다. 대신 자본(돈)이 최고의 가치가 되고 그를 쟁취하기 위해 무한경쟁으로 내몰려진 상황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세상이 되었다. 그 세상의 가치를 부정하고 철지난 가치를 들먹이면 바로 감각없는 사람이 되고 무능력한 사람이 되고 마는 세상에서 소통하고 의견을 나누며 함께 어깨걸이를 한다는 건 허황된 꿈이 되고 말았다.

김규항의 '사람의 일이란'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던 건 알게 모르게 오랜동안 몸과 마음을 겪어왔던, 체험했던 지난 날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나라는 이미 그렇게 변해버렸다. 언제부턴가 급속도로 좌우의 균형도 잃어버렸고 상하의 격차는 심하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모두가 함께 '돈'과 '권력'에 올인을 하며 만들어놓은 사회구조에서는 개인발언이 쉽게 묻혀버리기 일쑤고 올바른 삶에 대해 이야기하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한다며 무시당하기 일쑤인 세상이 되었다. 더 자극적이지 않으면 타당한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

사실, 이보다 더 걱정스러운 일은 늘 거부하던 사회,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거품물고 비판하다가 점점 자신도 모르게 그 사회에 동화가 되어가는 것이다. 사회, 인간에 대한 문제의식은 단 몇 개월, 몇 년을 유지하면 선방한 셈이 되고 시간이 흘러 어느 것 하나 해결되지 않아도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라며 동화되어서는 결국 앞장서서 변한 세상의 선봉에 서 '돈'과 '권력'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의 대결이 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지금은 상식과 비상식의 대결이라고 한다. 상식을 부르짖는 사람들끼리도 '자본'과 '권력' 앞에서는 다시 '상식(현실)'과 '비상식(비현실)'로 나뉘어 대립한다. 상식은 시대에 따라 늘 바뀌기 마련이다. 그래서 상식과 비상식이라는 말로 대립한다고 해도 세상이 더 나아지게 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능력없는 자신을 탓하기도 하면서 고민 중이고 또 고민 중이다.

2008년 12월 29일 월요일

우리가 산유국이었다면...

우리가 산유국이었다면
세계최고의 유조선을 만들수 있었을까...
우리가 싸구려 제품이라는 서러움을 느끼지 못했다면
세계 최고의 TV를 만들 수 있었을까...
우리가 빨리빨리를 외치지 않았다면
최고의 디지털 강국이 되었을까...

모 광고에서 말하는 내용이다.
언뜻 들으면 우와~ 그렇지, 그렇고말고...라며 맞장구라도 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조금 삐딱한 시선으로 보면

우리가 정경유착을 제대로 감시했다면
세계최고라는 대기업 삼송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우리가 교육문제에 보다 더 거시안적인 안목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지금의 서울시 교육감이 선출될 수 있었을까.
우리가 보다 더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댈 수 있었다면
지금의 대통령이 당선될 수 있었을까.
우리가 삶을 보다 더 나은 가치관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면
삶이 지금과 같을 수 있었을까.
우리가 제대로 된 민주주의와
제대로 된 자본주의의 가치를 알고 사용할 줄 알았다면,
우리가 과거의 잘잘못을 제대로 가려내고
현재와 미래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의견을 나눌 수 있었다면...
자본에 떠밀리지 않고도,
정치에 신물이 나지 않고도,
서로를 무한경쟁의 대상으로 보며 눈 부릅뜨지 않아도
삶이 더 풍요롭고 신명나지 않았을까.

삶을 어떻게 어루만지고 어떻게 키워낼까에 대한 해답은 그다지 먼곳에 있지 않다.
늘 자신과 어깨를 더불어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면
그 다수의 사람들이 원하는, 가슴 깊은 곳에서 원하고 있는 삶의 모습은 대동소이하다.
지금은 그 모습을 주시하고 귀 기울여야 할 때다.

2008년 11월 17일 월요일

이별 전(前)

희상형님의 간암 말기(6개월) 선고 소식을 듣고
차마 본인에게 다시 물어볼 수가 없었다.
간암 말기라는 극단의 상황을 나조차도 감당할 수 없는데
형은 웃으며 때론 힘든 목소리로 내 안부를 묻는다.
성직(聖職)의 길을 그만두겠노라던 내 투정을
절대로 안된다고 막아서던 형의 간절한 바램을
무시한 결과일 거라는 죄의식이 생기고 있다.
바다의 항해사로, 지금은 인생의 항해사로 살던 그가
항해를 다 마치지 못한 채,
이루지 못한 많은 것을 뒤로 한 채
이렇게 쉽게 떠나려 한다는 사실을
형은 웃으며 말하고 있는데 나만 가슴이 아픈가 보다.
다시는 이렇게 전화도 할 수 없을텐데.
그 사람의 절망적인 현실에서 내가 도망치고 싶었다.
몇 마디 말로 그를 보내야 하는 내가 섬뜩하다.
살아야 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어떻게 살아도, 어떻게 이별해도
늘 부족하다.


1999. 어느 날.

관계-인연

수많은 사람들 속에 얽혀 있는
관계들은 묘한 놀라움을 선사한다.
혈연(血緣), 학연(學緣), 지연(地緣) 등
인연(人緣)들로 엮어진 끈끈한 관계들.
쉽게 떨쳐내거나 혹은 떨쳐낼 수 없는 관계들.
관계 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어제의 날샘으로 인해 몸이 힘들지만
마음은 차분해진다.
하지만 집에 들어갈 때
아버지의 차(車)가 있나 없나부터 살피는
나를 보니 순간 우습고 슬프다.

진로를 바꾸면서 냉랭해진
부자(父子)의 관계가
더 발전하기 위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믿을 뿐이다... 바랄 뿐이다.

그러나 점점 초췌해지고 늙어가는
아버지를 뵐 때마다
지극히 혼란스럽고 멍해진다.

당신과의 시선을 애써 피하려고 하는 난,
당신의 뜻을 거스르기 위함이 아닌데도
자꾸만 당신 뜻에서 멀어져가는 것 같아
움추러 들기만 한다.

관계 속에서 자립(自立)하여 성불(成佛)하리라.
나이를 먹어가며 느끼게 되는 체념이나 현실적 타협이
때론 장애가 되기도 하겠지만
나! 성불(成佛)하리라.

울고 웃고 고뇌하며 방황하는 삶 속에서 우뚝 서고 싶다.
자꾸만 약해져 가는 나를 채찍질하고 싶다.
그러나 부모님의 남은 여생이 너무 짧은 듯 느껴져
먹먹한 마음 뿐이다.


1998.12.27 메모

2008년 3월 24일 월요일

조화로운 삶 - 남자와 여자의 차이

어느 블로그가 소개해 놓은 글,

남자는
상황을 먼저 이해하면 마음이 풀린다.

여자는

먼저 마음이 풀려야만 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100% 동의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게다가 남자든 여자든 각각의 상황마다, 성격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근래의 내 모습을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음이 있다. 함께 살고 있는 사람과 간혹 다투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설명하거나 요구하는 부분은 대부분 "이러이러한 상황에서 저러저러하면 안된다."거나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하는 것이 더 좋은 것 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은 늘 "말 뜻은 이해하지만" 어떤 말로 인해, 어떤 태도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거나 "기분이 이러이러하다"는 걸 더 강조하곤 한다.

조물주가 인간을 만들어 냄에 있어 남자와 여자를 특별히 다르게 만든 이유가 궁금해지는 지점이다. 왜 "화성인간"과 "금성인간"의 간격만큼이나 다르게 사고하고 행동하게 만들었을까. 세상만물은 모두 음양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특히 자주 접하고 소통하는 "사람"이란 피조물은 어.렵.다.

하지만 분명 조화로운 삶은 가능한 부분이기 때문에 남자가 먼저 "여자의 마음을 헤아리거나" 여자가 먼저 "상황에 대한 수긍"을 하게 된다면 오히려 문제해결이 쉬워지거나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여전히 난 "상황"에 대한 "대처"가 우선이지만 "상황"에 대한 "마음"을 살피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되겠다...싶다.

2007년 11월 22일 목요일

공부하러 가는 동생을 보며...

언제부턴가는 동생이 나보다 더 나아보이고 대단해보이기 시작했다. 그 언제부턴가...라는 시기는 아무래도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이지 않았나 싶다. 누군가 나에게 '형만한 아우 없다'는 얘기를 할 적마다 난 꼭 그렇게 대답했다. '아니 내 동생은 형보다 나은 아우다'라고... 이건 겸손을 떨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 충분히 그래 보였고 사실 지금도 그렇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음에 불과하다.

동생이 사운드 방면에 소질이 있고 내 졸업작품 주제곡을 작곡도 해주었는데 전공은 컴퓨터 공학과라 난 늘 동생이 음악 쪽으로 전공을 바꾸어도 좋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많은 어른들과 주변 사람들은 그런 걸 반대했었다. 사실 컴퓨터 공학과를 나와 박사 과정을 밟고 나면 이러저런 명예와 부는 사운드 쪽보다 쉽게 상당부분 따라오는 건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그런 진로를 고민하는 동생을 볼 때마다 그런 얘기를 해주고 싶었지만 그저 '니가 결정할 사항이야'라고 말하고는 슬쩍 구렁이 담넘가듯 했었다.

그 리고 시간이 흘러 사운드 쪽으로 진로를 결정했을 때도 난 무덤덤하게 그러냐며 손을 내밀어 청했을 뿐이다. 그렇게 결정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유학을 가겠다고 결정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내 자신의 위치였다. 사실 동생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유학 가는 걸 도와주고 싶었지만 난 내 욕심대로 중국에 나와 공부를 하고 있으니 어머님 혼자 두 아들 유학비용을 대준다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만약 이런저런 이유로 동생이 만약 유학을 못가게 된다면 내가 중국에 있는 걸 포기하고서라도 동생을 보내주고 싶었다. 그건 아무래도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동생에 대한 미안함도 한 몫 했음직 싶지만 그것보다 차라리 될 놈을 밀어주자는 생각이 더 자리하고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다행이도 나도 아직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동생이 유학을 가게 되었다. 여전히 돈이 부족해 하고 싶은 공부 일정을 단축해 1년만을 계획하고 가지만 분명 1년 공부 마치고도 여기저기 능력 좋게 일을 해내며 호주에서 잘 생활할 것이라 생각은 든다. 만약 그게 되지 않으면 내가 한국으로 들어가야겠지. 그것 정말 싫은 일이긴 하지만 충분히 그럴 수는 있다.

나도 잘 되어야 동생을 돕고 식구들도 도울 수 있는데 난 자꾸 중국생활이 몸에 익어가고 입에 익어가면서도 변변찮은 결과물 하나 없다. 물론 8개월 지났는데 뭐가 있길 바래면 그게 도둑놈 심보 아니냐고 질책할 사람들도 줄을 섰겠지만 사실 돈을 벌고 싶다는 욕심은 이미 사적으로 유용하고 싶은 꿈과는 멀어진 지 오래다. 돈 벌어서 어쩌면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님 마지막 여생에 도움이라도 될까 하는 생각 뿐. 아버님께도 제대로 사는 모습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그러고보면 난 능력에 비해 너무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사실 동생의 성공에 내가 덕을 볼 생각은 눈꼽만치도 없다. 다만 동생이 성공해서 내가 못한 물질적인 효도, 정신적인 효도라도 좀 해줬으면 하고 책임전가하는 수준 정도의 바램은 있다.

동생 가는데 해준 건 없고 심적으로 기운을 팍팍 밀어준 것도 없이 그냥 형 된 입장으로 믿는다는 말만 한 건 아무리 생각해도 참 내가 못났다 싶다.

잘 살아서 식구들, 아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싶은데 그 잘 살자.는 캐치프레이즈는 이미 소시적부터 입에 달고 마음에 담고 살았던 말이라 이젠 변변찮은 내 모습에 적잖이 실망도 한다. 술 한잔 걸치고 뭔가 잘난 듯 떠들 때면 그런 생각도 다 사라지기도 하지만 꼭 그러고 나면 밀려드는 허탈함은 참 견디기 힘들다.

어쨌든 이제 새로운 시작을 하러 떠난 동생이 건강하게 잘 공부하고 돌아오길 아니, 돌아오지 않고 호주에 정착해도 무방하니 하고 싶은, 이루고 싶은 일들 잘 이루길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바랄 뿐이다.

나도 또 다시 일어서야지...남들과 비교해서 더디다고 느끼기보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턱없이 부족한 능력과 심지를 가지고 여태껏 용케도 버텨왔으니 한 걸음이라도 내딛어야지...

녀석~ 건강해야 한다.


04|06|11 22:38:00


** 결국 이런저런 이유(라지만 쩐의 문제)로 돌아와 열심히 살고 있는 동생. 잘 될 게다. 조금만 더 자신감으로 밀어붙이면 좋겠다. 3년 전 참 많은 생각을 하고 살았고 많은 일이 있었네. :)

2007년 9월 3일 월요일

왜 같이 살까? - 스캔들

가끔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짤막하게 보게 되는 tvN의 스캔들이란 프로그램이 있다. 처음 봤을 때는 한국에서도 저렇게 리얼한 방송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상태가 되었나 보다 했는데 알고보니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만든 재연 프로그램이더라. 재연배우들 연기에 물이 올랐다.-_-;

대부분이 남자건 여자건 불륜을 저지르게 되어 가정파탄이 나는 에피소드로 꾸며져 있는데 오늘도 역시 한 가정이 파탄나는 이야기가 방송되고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쌍이 이혼을 한다니 이 프로그램은 소재 고갈로 인해 프로그램이 중단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장수할 프로그램일지도.-_-;

그건 그렇고 사실을 기반해서 이야기를 짜내는 것이니 현실에서도 저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텐데 문득 저런 상황까지 다다른 부부에게 도대체 어떤 미련이 남아서 절대로 이혼을 못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는 것일까 싶다. 아이를 위해서? 사회의 눈초리가 따가워서? 만약 서로 불륜을 저지르고도 헤어지지 않고 살아간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왜 같이 살까. 함께 산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이고 함께 삶을 공유한다는 건 어떤 노력을 해야 가능해지는 것일까. 자신은 로맨스고 남은 불륜이라는 생각 때문에 자기 합리화가 되어서 살 수 있는 것일까. 무촌인 사람 둘이 만나 하나의 소공동체를 이루고 평생을 기약하며 살아간다는 결혼생활. 사실 그만큼 드라마틱한 일이 어디있을까 마는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말이 안되지만 말이 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부모님 세대에는 살아온 인생이 억울해서, 자식들을 위해서 이혼도 못하고 꾹꾹 참아내며 살아왔다고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고3을 둔 어머니는 참고 또 참다가 자녀가 대학입학을 함과 동시에 이혼을 하는 등 자녀에 대한 눈치도 최소한의 경우까지만을 염두에 두고 자신들의 뜻대로 갈라서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 그래, 어차피 몸도 마음도 다 떠난 사람과 같이 사는 게 진정 산다고 할 수 있겠나. 그런 상황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도 하고 배려도 하고 살아야겠지만 최후의 수단은 참고 견디며 삶을 소진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분리수속을 밟아내는 것이다. 그게 더 현명한 일일 것이다. 외국의 동화책 중에는 부모의 이혼을 돕는 어린 자녀들의 이야기를 다룬 것도 있다고 하더라. 합리적 가치관으로 보면 오히려 서로가 행복해질 수 있는 수순을 밟고 교육도 미리미리 시켜주는 게 좋겠다. 여진히 감성적 가치관이 지배하고 있는 곳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일 수도 있겠지만.

주절대다가 문득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무엇 때문에 함께 살고 무엇 때문에 헤어짐의 수속을 밟아야 하는지 인간사 세상만사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기로 가득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시급한 건 '나'라는 존재다.

2007년 6월 18일 월요일

어른이 된다는 것.

달걀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 해 주겠어. 오월의 구름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거기에 영화감독과 한 아이가 나와. 영화감독이 자신의 고향 마을에 갔다가 아이를 만나지. 그 아이는 달걀을 하나 주머니에 넣고 다녀. 숙모가 그 달걀을 삼십일동안 깨지지 않게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아이가 원하는 소리나는 시계를 사주기로 약속하지.그래서 아이는 그 달걀을 늘 주머니에 넣고 다녀. 어느날 감독이 묻지.

"그건 너무 힘들지 않니? 이 달걀을 버리고 30일이 지나서 다른 달걀로 바꿔서 보여주면 되지 않니?"

아이는 말해.

"그건 사기예요."

그리고 얼마후 감독은 아이에게 또 말하지.

"그럼 이렇게 하자. 학교갈때 달걀을 이 풀숲에 숨겨 놓는거야. 그리고 집에 돌아올때 가져오면 훨씬 더 안전하지."

그러자 아이는 그것도 사기라고 대답해.아이는 숙모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애를 쓰지. 그러던 어느날 하교길에 동네 아주머니가 아이를 불러. 아이에게 토마토 바구니를 주며 언덕위에 있는 집에 토마토를 갖다주라는 심부름을 시켜. 아이는 가기 싫다고 하지만 아주머니는 막무가네로 아이를 떠밀지. 아이는 무거운 토마토 바구니를 들고 낑낑대며 언덕을 올라. 그리고 언덕에 다다랐을때 바구니에서 토마토 하나가 떨어지지. 그걸 주우려고 허리를 굽히는데 그만 바구니의 토마토들이 우르르 떨어지지. 아이는 토마토를 건지려고 언덕 아래로 달리다가 그만 엎어지고 말어. 결국 주머니 속의 달걀은 깨지고 아이의 이마는 노여움으로 붉어지지.아이는 토마토 바구니를 언덕 아래로 내팽겨쳐 버려. 그리고 다음 장면은 아이가 닭장속에서 달걀을 훔쳐 울타리를 넘는거야.



"어른이 되는거지."

(마담홈에서 긁어옴. . .)
http://www.mrbgman.com/에서 봄



어른이 된다는 것은 융통성이 생기고 요령을 피울 줄 알게되며 사기(?)를 칠 줄 알고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는 것과 같은 걸까?(난 아직도 아이와 어른이 사이에서 헤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지금도 요령을 피우려는 마음이 생기면 먼저 심장이 두근거리는데 그 이유가 여전히 순수한 아이의 마음을 가져서라고 말하긴 힘들 것 같다. 다만, 어른의 신분으로 살면서 아이의 순수함을 지킨다는 게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것 쯤은 안다. 사실 내 자신 스스로가 알아가고 깨우쳐가며 제대로 나이를 먹는 경우보다 주변의 시선과 요구에 의해 부득이하게 나이를 먹어가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제대로 나이를 먹고 나이값을 하는 어른들이 적은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시계를 얻기 위해 달걀을 훔치려 울타리를 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세상의 어른들을 욕보이는 게 될 지 모르겠지만 욕을 얻어먹는지도 모르고 혹은 욕먹는 걸 자랑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다. 자신은 전혀 지켜내지 않으며 아이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훈계하는 정도의 언어 유희는 애교로 봐줄만 할 정도다. 하긴,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서 사기치지 않고 올곧은 마음을 지켜내며 불꽃처럼 인생을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쉽게 울타리를 넘고 어른이 되는 쪽을 선택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지도 모를 일이다. 스스로 마음이 허락되기만 한다면.    그러고 보면 사는 거 만만치 않다.

2007년 1월 22일 월요일

지난 날, 이랬노라고 알립니다.

오랜시간 포스팅도 하지 못하고 소식도 전하지 못하고 이래저래 답답하군요. 뭐, 특별한 일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인터넷을 예전처럼 자주 쓸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이래저래 머리 아프게 하는 일들도 있었지만 잘 지나갔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날들이었습니다. 천천히 정리해서 적어봐야겠습니다.

날씨는 때론 무척 추웠다가 때론 좀 풀렸다가 그러네요. 지금 장춘은 동계 아시안게임 준비로 무척 부산한 느낌입니다. 28일 정식 개막을 한다고 하니 시간이 되면 슬쩍 구경이라도 하고 싶네요. 장춘의 이번 겨울은 눈 구경하기 어렵네요. 장춘답지 않습니다.

몸이 좀 불었습니다. 맘 편히 잘 쉬고 잘 먹어서 그런지 다시 체중이 늘었습니다.-_-;;; 운동을 해야겠다고 다짐은 하지만 게으른 마음 탓에 그것도 쉽지 않습니다.=_=;;;

기르고 있던 수염은 어제 모조리 깍아버렸습니다. 특별한 심경변화가 있는 건 아니지만 상황이 좀 그랬습니다. 기회를 봐서 다시 슬쩍 길러봐야겠습니다.^^;

아무래도 조만간 한국 들어갈 채비를 해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재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는데 들어갈 확률이 높아져만 가는군요. 아직 이래저래 확정적인 결과들이 없으니 확정된 결과가 나타나면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전체적인 정서는 오르락 내리락하고 있습니다만 그다지 개의치 않습니다. 생각이 무척 많아지기만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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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8월 16일 수요일

코끼리와 개구리

Elephant on the door

최소한 내가 묻힐 곳 만이라도 안다면.
내가 숨을 놓는 건
다시 숨을 쉴 수 있는 믿음 때문이지만
종종 잊고, 또 잊고
결국에 돌아갈 때도 잊고.
돌아갈 곳 조차도 미궁처럼 헤메인다.
손을 내밀면 잡힐 것 같은 수수께끼
해답을 모르는 건 흥미진진함이 아니라
속 꽉 막힌, 답답함이다.


Frog on the tile

누추한 곳에 있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흐르는 물에 더러워진 몸을 씻어낼 수만 있다면
몸 뉘일 곳이 어디인들 대수일까.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웃음을 놓지 않는 건
지금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억지만은 아니다.

2006년 3월 26일 일요일

기본원리 발견하기.

몇 몇 선생님들은 상해에, 북경에 일이 있어 나중에 돌아오면 뵙기로 했다. 마침 다른 선생님과 연락이 되어서 만나게 되었는데 요즘 본인의 단편 작품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스토리보드릴과 간단한 이미지 컷을 봤는데 느낌이 참 좋다. 내용은 철학적으로 깊은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진 않지만 가벼우면서도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맘에 든다. 몇 군데 이야기만 좀 더 보강하면 꽤 괜찮은 작품이 되지 않을까 짐짓 생각해 본다. 작품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스토리보드릴에 대한 내 의견도 이야기를 하고 제작기법이나 방식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ceng선생님은 기꺼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신다. 그러다가 내가 그 작품에 함께 참여해 작업을 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오게 되어 나도 조심스럽게 가능하겠냐고 물었더니 너무도 반갑게 허락을 하면서 같이 한 번 해보자고 하신다. 있는 동안 내 작품에 대한 고민도 해야겠지만 ceng선생님과 이 작품도 한 번 해 봄직하다.

자리를 옮겨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계속하게 되었다. ceng선생님도 애니메이션에 대한 생각, 작품에 대한 생각이 남다른 면이 있다. 사실, 어느 나라 어느 애니메이터를 만나도 작품을 하는 사람들의 심성은 기본적으로는 비슷한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작품만 생각하고 경제적인 부분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생활이 어려워지고 그건 또다시 작품을 못하게 되는 악순환으로 연결될 우려가 없지 않지만 그래도 작품에 열정을 보이는 사람을 만나는 건 늘 즐겁다. 그리고 함께 분투를 다짐하게 되고 끈끈해지지 않나 싶다. 이것저것 정리하고 있는 내용들 함께 즐겁게 교류할 수 있을 것 같다.

작품이던 삶이던 대인관계든 기본적 원리는 비슷하지 싶다. 어떤 상황, 사물, 사람을 대할 때 갖는 마음가짐 또한 대동소이한 것 같다. 하지만 만약 전체 삶의 유사한 연결고리를 발견하지 못할 때는 힘겨워질 게 틀림없다. 모든 상황, 모든 것에 대해 각각의 마음과 에너지를 쏟아내야 할테니까.

한 인간의 한 에너지는 수 많은 각각의 일을 처리할 때 똑같은 크기와 성질로 나타나게 된다. 그 에너지의 흐름, 크기를 잘 조율할 수 있다면 참 좋지 않을까. 단 한 번의 삶, 영원한 삶 달리 보면 두 개의 삶이고 같이 보면 하나의 삶일텐데. 여전히 한 번의 삶이 가진 유한성에 두려워하고 조급해하진 않나 곰곰히 돌아보게 된다.

2006년 3월 23일 목요일

갑니다...

벌써 새벽이군요.
앞으로 대여섯 시간 정도 지나면 짐 챙겨 나섭니다.
오늘 아침 9시 40분 발 비행기로 장춘에 갑니다.
이번엔 가서 작업을 하려고 하기에
3년 전 갔을 때와는 상황이 다르군요.

그래봐야 전화며, 메일이며, 메신저며
연락이 닿을 방법은 많기 때문에
그저 담담하네요.

중국 전화는 86-136-5430-0313을 사용하려 합니다.
만약 번호가 바뀌거나 새로운 번호가 생기면
왼쪽 상단에 있는 뉴스티커나 포스팅을 통해 알려드릴 겁니다.

주변에서는 늘 떠도는 삶을 사는 저를
나무라기도 하고 부러워하기도 하네요.

암튼, 또 "새로운 시작을 합니다"라고 말해야 할 것 같군요.
아니, 어쩌면 매 걸음, 매 하루가 새로운 시작인 셈이죠.
가슴 설레거나 두근거리지는 않지만 암튼, 그렇습니다.

자... 그럼, 갑니다. :)

2006년 2월 9일 목요일

왜....?

그 당시에는 어떤 생각으로 취사 선택을 했던 것일까.
당대의 사람이 아니라면 심심상련할 수 없는 일일까?


스스로 곡해하고 왜곡하는 사실을 정말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이익에 맞게 사람은 변해가는 것일까.


어떤 일의 취사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무엇일까.
집단과 단체의 이익과 자신의 이익,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


할 수 있는 말과 할 수 없는 말의 간극은 얼마나 될까.
여러가지 방법 중에 가장 최선의 방법을 고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그런데, 암튼,
왜 사는 것일까?

2005년 9월 24일 토요일

시장 골목에 서서.

이수역 근처 시장 골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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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소음은 살아가기 위한 움직임에서 나는 소리.
오토바이, 트럭, 자가용들이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오며
엔진을 벌벌대는 것도 다 먹고 살자고 내는 허기진 소리들.
내 눈으로 본 불빛은 저렇게 번지지 않았었는데
아무래도 열심인 사람들은 아직 내가 똑바로 보질 못하고 있나보다.
싸우고 할퀴고 끌어안고 웃고 울며 살고 있지만
난 문득 그 사람들 틈에 서서 부질없다는 생각을
수 백번씩 고개를 흔들면서도 하고 있다.

2005년 5월 12일 목요일

우습다.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중엔 참 별 일도 많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다 보니 누가 옳은지 그른지도 모르겠다. 때론 내 자신이 애를 쓰며 지키고 살아가려 하는 것도 한 순간 부질없는 짓이 되고 마는 게 현실인데 뭘 그렇게 부여잡고 살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솔직한들, 아무리 성실한들 무슨 소용인가. 어차피 자신을 알아주는 이는 자신 밖에 없는 것을… 이런 푸념조차도 내 자신의 허세인 줄은 알고 있지만 남들의 이야기에 별로 귀 기울이고 싶지도 않다.

오랜만에 반가운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듣게 되고 삶의 충고와 충언, 그리고 소소한 작은 일들에 대해 얘기하게 되었다. 피식~ 웃음도 나고 다시 예전 감정이 올라오는 것도 느끼면서 아주 약간의 알코올로 꽤 많은 이야기 거리를 서로 나누고 또 나누었다. 사는 건 정말 우습다.

2005년 4월 1일 금요일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

종일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를 생각해 봤습니다
근데 손뼉을 칠만한 이유는 좀체
떠오르지 않았어요

소포를 부치고
빈 마음 한 줄 같이 동봉하고
돌아서 뜻모르게 뚝,
떨구어지던 누운물

저녁 무렵,
지는 해를 붙잡고 가슴 허허다가 끊어버린 손목
여러갈래 짓이겨져 쏟던 피 한 줄
손수건으로 꼭 꼭 묶어 흐르는 피를 접어 매고
그렇게도 막막히도 바라보던 세상

세상이 너무도 아름다워 나는 울었습니다.

여림 詩,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 전부

*뒷글: 시인 여림에 대하여......
본명, 여영진. 66년생. 서울예전 졸업. 2002년 서른여섯에 생을 반납하고 떠남. 그를 보낸 후 양수리 가까운 그이 집을 방문했을 때 노트북 속에서 북한강 안개를 잔뜩 머금은 100편이 넘는 보석들을 발견함. 이듬해 유고 시집 "새들이 안개속으로 걸어간다" 가 작가출판사에서 나옴.

살아야 한다는 근사한 이유는 내게도 좀체 떠오르지 않는다. 살아야 할 자질구레한 이유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생각을 하지만. 그런다고 손목을 바라보며 섬뜩한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근사하게 살아야 한다는 이유는 온데 간데 없고 오래 살아야 할 이유를 만들기 때문에. 서늘한 바람이 부는 시지만 고개 돌려 삶을 바라보게 한다.

2002년 한국을 벗어나 중국 땅을 밟았을 때 난 어떤 마음이었는지. 삶의 절망도 아니고 도피도 아니면서 뭔가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막막함이 있었나. 돌파구를 찾아 뚫고 나온들 내 눈에 비친 색깔들 조차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역시 세상 속에 나를 묻고 살아가는 수 밖엔.

"그렇게도 막막히도 바라보던 세상 그 세상이 너무도 아름다워 나는 울었습니다" 시인처럼은 아니지만 어렴풋이는 마음에 닿는 구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