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헌법재판소) 판사 9명 중
7명은 종부세(종합부동산세) 위헌 판결 찬성, 2명은 반대.
찬성한 7명은 종부세를 내고 있었고
반대한 2명은 면제거나 낼 필요가 없는 사람들.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 하기에도 껄끄러운 우연의 일치.
법을 제정하고 지키는 자들이
그 법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쓴다면
어느 누가 법을 무섭게 알며, 법을 존중할 줄 알며,
법 진행관들의 부단한 노력과 수고에 고개를 숙이며,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하다고 믿을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커다란 문제 중 하나는
교과서의 좌편향이 아니라
법이 한 쪽으로 편향되어 있는 것이고
법 집행 역시 (어느 쪽으로든) 비뚤어져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법을 조물조물거리는 조물주는
일반 서민이 아닌,
하늘보다 높고(天高) 땅보다 두터운(地厚) 권력을 가진
"그들"이다.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네 마네로 굳이 설전을 하지 않아도
개인이 모여 집단을 이루고 삶의 단위를 정하고 나면
그 단위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판단과 결정은
그 단위 안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평등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금수와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인간세상 역시 약육강식이란 말로 얼버무리며 합리화하지 말 것이다.
종부세가 위헌인 이유를 수십, 수백 개를 들이대도
그 이유 중에 헌재 영감님들이나 청와대 리만브러더스와 그의 형제들,
또 조중동, 핫나라당, 그 외 수 많은 기득권들.....이
손해볼 내용이 눈꼽만큼도 포함되지 않았다면
그 결정이 대한민국을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들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될 거라고 말하는 건 넌센스다.
애초에 "그들"의 관심은
자신의 호주머니에 두둑한 "용돈"이 더 생기거나
악착같이 모은 재산이 "허투루!" 지출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이고 역사고 정의고 나발이고
일단 제껴두고 보는 것이다.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기득권을 가진 이들이 아무리 설레발을 쳐도
법 집행관들의 법집행이
공정무사하고 편향되지 않고 사심이 깃들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커다란 이유가 생기는 셈이다.
문제는 세상이 뒤집어지지 않는 한
그럴 때가 오는 건 너무 요원하다는 것...이다.
"그들"이 그런 뻔한 짓을 저지르고 있을 때도
그보다 더한 추잡한 일을 도모하고 있을 때도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다"
"내가 지지하는 사람이니까 이해가 된다"
"여태 속았지만 이번만큼은 믿어주고 싶다"
"우리 쪽 사람은 무조건 지지한다"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패배주의에 젖고
그도 모자라 그들을 따라 세력에 편입하고 싶어하는
다수의 서민들이 있는 한
"그 때"가 오는 건 정말 요원하다는 것...이다.
2008년 11월 15일 토요일
2006년 4월 28일 금요일
[mov] 홀리데이 | Holiday | 假日
“有錢無罪 無錢有罪” 이 말 외에 다른 말을 덧붙이는 건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88년 10월 8일 12명의 죄수 탈옥. 그 속에 지강헌이 있었고 전국민에게 울분을 토해내듯 인질극을 벌였던 이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 후 18년의 세월이 흘렀다.
18년 세월 속에서 과연 무엇이 변했고 무엇이 변하지 않았을까. 87년 민주화 운동의 성과를 맛봤던 것도 어쩌면 전씨의 올림픽 개최 열망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한다면 착각일까. 유래없이 단기간 내에 민주화를 이뤄낸 한국인들. 그 행복한 성취감은 자주 정치인들이 자신은 민주화 세대라고 떠벌리며 이용되는 영광스러운 과거의 모습이 되고 말았다.
노회찬 의원이 설문조사를 한 결과에 의하면 여전히 대한민국 헌법은 만인에 불평등하다고 느끼고 있는 이가 73%에 다다른다고 한다. 법치국가,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해괴한 설문조사 결과라니… 법이 인민을 보호해주지 않고 권력자만을 보호해 준다니… 믿고 싶지 않을 뿐이다.
삼성이나 두산 그 외 많은 대기업들은 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아 자산을 불리고 영토를 넓혀가고 대추리 서민들 역시 제대로 법의 보호를 받아(?) 삶의 터전을 잃어버릴 처지에 있다. 법은 만민에게 평등하다고 말한 이 과연 누구인가. 법은 평등한 적용기준이 아니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만큼은.
작년 6월에야 보호감호법이 철폐되었다니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지만 여전히 돈으로 법을 사고 파는 일이 빈번한 시대를 살고 있는 건 아직 끝나지 않는 비극이다. 작은 법리해석을 두고도 정의를 위해 몇 년씩 자비를 들여 투쟁을 한(하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삼성비리를 털어내면 국내 경제가 휘청거릴까 내심 고민하고 있는 검찰도 있다. 한 개인의 권리와 삶은 별 것 아니지만 국익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권력가, 기업가는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 수 있는 감동까지 전달해주는 모양이다.
영화 <홀리데이>는 최민수의 오버연기와 억지스러운 허구를 삽입함으로 인해 싸구려 영화가 되어버렸다. 정작 지강헌(영화 속 지강혁)이 부르짖었던 “有錢無罪 無錢有罪” 이야기 하나만 보고 달려가고 몰아가는 바람에 좀 더 포괄적으로 다룰 수 있는 사회현상들을 놓치고 말았다.
다만, 이성재의 연기는 꽤 빛을 발한다. 너무나 화려한 몸 근육 때문에 시선을 종종 뺏기곤 했지만(몸 근육이 어울리는 영화 내용이었다면 좋았을 걸…) 살이 빠진 이성재의 얼굴 굴곡과 눈빛, 표정 등은 영화와 잘 어울린다. 그러고보면 이성재는 감독의 역량부족이나 영화선택의 실수로 간혹 빛을 잃곤 해서 그렇지 꽤 연기를 잘하는 배우다. 이성재를 제외한 나머지 조역 탈주범들은 연기를 너무 못한다. 특히 장세진과 파트너는 자꾸 영화와 겉도는 느낌이다. 브로커로 나온 배우도 오버센스다. 여현수는 영화 속에 깊이 뭍어나진 못하고 이얼의 연기 변신은 아주 충격적이었지만 감정이 너무 흘러넘친다. 이얼의 파트너로 나온 배우가 조역으로 적절한 선을 유지하지 않았나 싶다.
최민수는 왜 건달 똘마니를 데리고 다니는 것일까. 그냥 감독의 의도일까? 당시 경찰, 검찰은 깡패 두목이다..라는 식의? 최민수의 배역이 너무나도 허구적이기 때문에 영화의 몰입을 자꾸 방해한다. 최민수는 <나에게 오라>, <테러리스트>, <남자 이야기> 정도에서 적절한 배역과 연기를 보여주지만 그 이후의 행보는 너무 폼만 잡는 것 같다. 영화에도 많이 개입을 한다는 소식을 접해서인지 이번 영화에도 자신의 장광연설을 늘어놓고 감독을 홀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각본이 좀 더 좋았다면 어땠을까… 배우들의 부족한 부분이나 오버연기도 잘 덮어주지 않았을까? <실미도>, <공공의 적2> 시나리오 작가 김희재가 각본을 맡았다고 하는데 공교롭게도 난 이 두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가 마치 보호감호법 철폐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것처럼 마지막 자막을 올리는 것이 의아했다. 결과적으로 마지막 자막에 비해 영화는 이야기를 제대로 못한 격이 되지 않았나 싶다. CGV와 마찰로 “有錢無罪 無錢有罪”가 현실화되고 이슈화되긴 했지만…
적어도 영화 <홀리데이>는 당시 현실보다도 드라마적이지 못하다. 특히 당시 인질로 잡혀있었던 고모양이 마지막 생존자였던(현재도 수감중이던) 강모씨를 위해 제출한 탄원서 내용이라던가 이를 근거해 추측해 볼 수 있는 범인과 인질들 사이에 존재했을 스톡홀름 증후군과 리마 증후군 등은 오히려 더 극적이다. 이는 오히려 유오성이 주연했던 같은 내용의 TV단막극이 더 낫지 않았나 싶다.
예전에 정태춘, 박은옥의 <아! 대한민국> 앨범을 좋아했을 때, 정식 음반으로 나오지도 않았던 걸 공연현장에서 팔던 테잎을 사서 듣고 또 들어 테잎이 완전 맛이 갔을 때 읽었던 글 한토막이 생각이 난다.
“모든 가슴을 울리는 것들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현실을 이야기 하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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