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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24일 수요일

희망을 품으며 희망을 경계한다.

'희망'처럼 상투적인 단어도 없지만 '희망'이란 말처럼 꿈을 꾸게 하는 단어도 많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희망을 자주 말하는 걸 경계한다. 희망없는 세상에서 희망은 너무나 쉽게 나오는 말이기 때문이다. 희망이란 말을 하면서 자신의 희망을 타인으로부터 취하려는 자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나와 너의 희망이 같아지려면 꽤 오랜시간을 대화하고 소통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가끔은 희망을 품는다. 조심스럽게, 급하지 않게 희망을 품는다. 그리고 너에게, 나에게 몇 번이고 묻는다. 희망이 무엇인지, 품어도 되는 희망인지. 급하게 품는 희망은 희망이 아니다. 경박하게 품는 희망 역시 희망이 아니다. 희망은 기다림이다. 흐르는 시간을 지켜봐야만 하고 그 시간 속에서 조금이라도 변해가려는 의지가 전보다 확고해져야 한다.

 

지금 당장 불만이라고 해서 희망을 품거나 희망이 금새 오지 않는다 해서 버리는 희망은 '희망'이 아니다. 어쩌면 여러 차례의 기회라고 생각되는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될 즈음, 어쩌면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할 즈음, 꺽인 허리를 펴고 기력없는 다리를 움직일 즈음 희망은 생겨나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희망을 품는 게 아니라 희망이 나를 품어 일으키는 지도 모르겠다.

 

 

무겁게 매달린 귤들이 모두 떨어져도 절대 먹지 않고 그대로 버린다는 지인(知人)의 소위 '부자 귤나무'. 눈 앞에 싱그럽게 매달린 과실을 보면서도 먹지 않아야 하고, 바닥에 떨어져도 아까워하지 않고 버려야 하는 나름의 규칙은 기다림과 인내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모든 귤들이 떨어지고 버려진 후에 다시 열매 맺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2009년 3월 3일 화요일

잊혀진 김용철 변호사, 잊혀지지 않는 삼성



많은 이들은 유명하거나(그것도 세계적으로 알려졌다면 더더욱), 힘 있거나, 다수에 속하는 사람(집단)이 하는 얘기는 별 의심없이 받아들인다. 그들이 주장하는 게 다소 억지라 할지라도 또는 그들의 행실에 구린내가 풍기더라도 그들의 영향력을 생각하면서 그들이 가진 유명세에 기대어 대부분 받아들이거나 어떻게든 받아들여주려고 알아서들 노력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유명해지거나 힘을 갖게 되거나 공적인 자리에 얼굴을 자주 들이밀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알아서 떠받들어 준다. 크고 작은 비리, 불법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회에 미칠 파장까지 계산기를 두드려가며 계산해 주고 변호해 주고 보호해 준다.

반면에 소수자, 힘없는 자, 알려지지 않은 자가 하는 이야기는 왠지 꺼림직하고 믿음이 안 가고 논리만 풍성해서 머리만 아플 뿐이다. 확실한 증거를 보여줘도, 직접 겪은 일이라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사람들은 별로 믿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들을 동조하는 순간 자신도 유명하지 않고 힘없는 자들과 도매급으로 함께 취급될까 두려워서인지 애써 외면하고 싶어한다. 제아무리 완벽한 논리와 명백한 증거를 들이댄들 유명하지도 않은데다 소수자고 힘도 없는 자라면 오리려 그에게 상황논리로 역공을 취하고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으며 다시는 힘있고 유명한 자에게 대들지 말라고 훈계한다.

물론 예를 들기 위해 '유명 vs. 무명', '힘있음 vs. 힘없음' 등으로 이야기한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너그러이 바라보면 그다지 과장된 내용도 아니다.


김용철 변호사가 양심선언을 한지도 1년이 훌쩍 넘었다. 삼성은 무혐의 처리를 받았지만 목숨을 걸고 양심을 좇아 삼성의 비리를 고발한 김용철 변호사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거나, 키워준 은혜를 배신한 사람쯤으로 기억되거나 또는 받아먹을 거 다 받아먹고 또 무언가를 원하는 파렴치한 정도로 기억되는 게 전부인 것 같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삼성은 대한민국의 동량이고 대한민국의 원동력이며 대한민국의 미래다.

김용철 변호사는 언론의 주목을 받은지 몇 개월 후에 그가 예측한대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으며 그런 후에 (용감하게도!)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그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희망없는 대한민국에서 분투하는 외로운 사람의 쳐진 어깨를 보는듯해서 마음이 편치가 않다. 물론 '삼성재판' 이외에도 이땅에서는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이 끊임없이 일어났기 때문에 '삼성'에만 집중할 수 없었던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잊혀질 줄이야. 법원에서 '무혐의 판결'을 내리는 순간 삼성은 아무런 죄가 없는, 아무런 혐의가 없는 깨끗한 기업으로 거듭나고 김용철 변호사는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렸다. 검찰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건 '음모론'을 이야기하는 것 정도로 치부되고 삼성에 대해 비판의 화살을 거두지 않는 건 '대한민국이 망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치환되고 있으니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은 너무 순진한 발상이었거나 너무 이른 발언이지 않았나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다.

언제쯤 변화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며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될까. 한 사람의 양심선언(또는 폭로)만으로도 대기업의 비리, 정치인과 정당의 부정부패가 철저히 조사받고 처벌받을 수 있게 될까. 이젠 후안무치한 일도 양지에서 드러내놓고 하는 세상이 되어버렸으니 그런 희망을 품는 것 자체가 무의해져버린 것일까. 박노자씨의 말마따나 지금 현 상황에서의 변화라는 건 기껏해야 '보수'에서 '또다른 보수'로의 자리바꿈 정도니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진보가 힘을 더 갖지 않는 한, 의식이 좀 더 깨어나지 않는 한은 말이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마련되는 건 대부분 '한 개인'으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지만 변화의 완성을 위해서는 그 '개인'을 지지하고 힘을 함께 해주는 '수 많은 개인'들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20090612 추가 :
[한겨레21 인터뷰 링크] “있는 놈, 잘난 놈에게는 법도 굴복한다는 것”
[VS] 빵장수로 변신한 김용철 전 삼성 법무팀장 “대법원의 에버랜드 무죄판결은 주류사회 견고함 보여준 선고”

2008년 4월 10일 목요일

속내를 드러낸 대한민국

민노당의 얻어낸 결과는 분명 의미있는 선전이었겠지만 내겐 만족스럽진 못하다. 진보신당 역시 아무런 결과도 얻어내지 못했다. 물론 희망을 보는 건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이로써 대한민국의 대다수는 보수적 정치성향과 신자유주의 경제성향을 가지고 있음이 명확해졌다. 현실의 비루함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상식적인 수준과 수순으로 개선하기 보다는 자신이 바라는 저 높은 이상향으로 편입되기 위해 노력했다. 가능성은 적지만 부동산 값이 오르길 기다리듯, 투자한 종목이 대박의 신화를 일궈내주길 염워하듯 투표를 했다. 국민성공의 시대가 열려 모두가 성공할수 있을 거라는 최면에 걸린줄 알았는데 최면이 아니라 확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보신당과 민노당이 말하는 희망이 유효함에 동의하지만 되려 상실감과 슬픔은 쓰나미로 밀려온다.




♨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듣다가 부득이하게 투표를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투표일에도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그들 대부분은 서민들이었고 현장 노동자들이었다. 자신의 하루의 벌이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한가로이 투표하러 가겠다고 객기를 부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투표권 행사가 중요함을 알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생각해 본다. 투표확인증과 같은 정체불명의 찌라시를 만들어 세금 낭비하지 말고 투표기간을 2일-3일로 늘려주거나 투표시간 역시 24시간제로 운영하거나 인터넷 혹은 모바일로 투표할 수 있도록 하는 여러가지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투표를 못하게 하는 직장에겐 국민의 권리행사를 막고 있음을 이유로 강제적 유도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젊은이들, 노동자들, 서민들이 좀 더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투표율이 낮다고 걱정만 하고 있어서는 안된다. 국민에게 투표권이라는 소중한 권리를 갖게 하고도 제대로 사용할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이건 정부의 직무유기거나 모종의 음모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