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17일 화요일

몸 보수-입 진보, 광장 진보-밀실 보수... 고리를 끊는 방법은...

...‘지못미’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곳을 쳐다보면서 경제적으로 짭짤한 곳에 뿌리내린 자들, 인터넷에선 진보, 술자리에선 중도, 직장 가면 보수가 되는 자들의 탄식이다.

...그래야 ‘몸은 보수-입은 진보’, ‘생산은 보수-소비는 진보’, ‘광장에서는 진보-밀실에서는 보수’로 분열된 정치적 분열증이 개선되지 않을까. 내가 보기에 지금 한국 사회에서 진정으로 심각한 정치적 문제는 지식인 몇몇이 보수로 전향한 것이 아니라 대다수 시민이 몸까지는 진보로 전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도 역사적 상처에서 비롯된 의심이 깊어서 정치적 주체로 나서는 데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리라.

남재일 교수의 말과 행동의 정치적 분열증을 넘어 중의 일부다.

글 내용의 어떤 부분에 대해선 생각이 조금 다르지만 전반적인 내용에 동의를 한다. 몇 번의 곡절과 앓이를 겪으며 민주사회로 진입했다는 대한민국은 그다지 균형이 잡히지 않은 상태라 할 수 있다. 언젠가는 대다수의 젊은이들이 진보적 성향을 가지고 있으리라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근 1-2년 새에 젊은이들 대다수가 보수적 성향이란 쪽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대다수가 보수란 생각까지 하는 참이다.

사회의 많은 부조리와 병폐들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하다보면 결국 '교육'에 초첨이 맞춰지곤 하는데 이렇게 되면 '원론적'인 이야기만 오갈 뿐이어서 참 대책이 없기도 하다. 이보다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결국 제대로 된 소리를 들어먹을 줄 아는 젊은이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수 밖에 없는데 사회적으로 유아기적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대한민국에서는 그들에게 먹힐 법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부모를 제외하곤 거의 없는 듯 하다. 그들의 '선생님들' 역시 그들을 사회에서 돈 잘 벌고 성공하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 고용된 존재일 뿐 그들에게 사고, 사유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엔 벅차고 나름의 교육철학을 가지고 있더라도 펼치기엔 너무 많은 '적'들이 존재한다.

그래도 역시 가장 빠른 방법은 젊은이들이 깨어나는 것이다. 그들이 의무교육기간을 마치는 순간부터 대학, 군대, 직장, 사회, 새로운 가정을 거치는 동안 세뇌당하지 않고 한 방향으로 매몰당하지 않으며 스스로의 관점과 소신을 가지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해야 한다. 그들에게 다가서는 방법과 그들과 소통하는 방법, 그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열린 사고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어렵지만 한 명씩 한 명씩 변화의 모터를 달아주어야 한다. 

몸 보수-입 진보, 광장 진보-밀실 보수... 지금 수 많은 공간, 상황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닌가. 상처를 상처로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 상처는 빠른 속도로 부패하고 결국엔 생명을 잠식한다. 사회의 많은 문제도 마찬가지다.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수 많은 문제들이 있다. 그 문제들은 결국 나의 미래와 내 자식의 미래까지 집어삼킬 것이다. 지금 그 고리를 잘라내지 않는다면 희망과 미래를 말할 기회조차 오지 않을 것이다. 

문제인지 문제가 아닌지 지금보다 더 신중한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문제를 마주하면 '문제다!'라고 소리쳐야 한다. 
옆 사람이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하면 '문제야'라고 알려줘야 한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자기 내부의 시선을 의식해야 한다.
그것이 집단 최면에서 깨어나는 방법이다.

피겨 문외한이 본 김연아의 특징, 그리고 예찬


김연아의 특징은...

1. 피겨 선수가 아니라 피겨 예술가다.
과거에 유명하다는 피겨 선수들의 경기 중계를 본 적도 있다. 그들의 느낌과 김연아의 느낌이 다른 건 딱 하나다. 과거(김연아를 제외한 현재의 선수 포함)의 선수들은 시합을 하고 경기를 한다. 하지만 김연아는 예술을 하고 있다. 피겨 경기를 보면서 선수의 몸짓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음악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드러내는지를 느끼게 된 건 김연아가 처음이다. 이건 무척 신비한 경험인데 지난 시절 봤던 피겨 경기들은 대부분 점프를 잘하면 잘한다고 생각했고 스핀을 잘하면 잘한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던 것에 반해 김연아의 경기 대부분은 저 선수가 어떤 감정을 표현하고 있고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하는지가 보인다는 것이다. 점프나 스핀, 기타 기술들은 모두 연기의 한 부분일 뿐이라고 느껴지게 한다. (과장하면) 빙상 위의 발레리나와 같다고 할까. 스포츠 선수가 아닌 예술가. 김연아는 스포츠 선수로 출발해서 예술가의 경지로 달려가고 있고 이미 어느 정도 성취를 이뤘다고 생각한다.

2. 계속 성장한다.
솔직히 유명한 스포츠 스타들을 보면 갈수록 한껏 정점에 오른 후에는 갈수록 원숙해지는 느낌인데 김연아는 그냥 계속 성장한다. 몸은 계속 유연해지고 표정은 갈수록 풍부해지고 감정은 화산처럼 폭발한다.

3. 연기를 위한 점프를 한다.
위와 중복되는 이야기지만 김연아와 다른 선수를 비교해보면 다른 선수들은 점프를 위해 연기를 (대충) 한다. 점프를 잘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기는 경직되기 마련이고 점프에 대한 긴장감이 증폭되서 실수가 잦다. 하지만 김연아는 전체 연기를 위해 점프를 할 뿐이다. 물론 김연아 역시 점프에 부담이 없진 않겠지만 전체 안무를 위해 점프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착지 후에 연기로 연결되는 게 자연스럽고 전반적으로 일체감을 느끼게 한다.

4. 냉정하다. 무심하다(?)
소위 '쿨'하다는 것인데, 자신의 감정에 대해 별 숨김이 없고 실수에 개의치 않으며 성취에 대해 당당히 이야기한다. 이건 젊은 층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태도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젊은 층들은 결코 '쿨'하지 않다. '쿨'하다고 불려지는 이들은 이기적일 뿐이고 무관심할 뿐이다. 선택도 빠르고 포기도 빠르다. 김연아의 행동양식은 그런 류의 것이 아니다. 발랄한 소녀가 대인배의 품을 가지고 있다랄까.

김연아는 이 외에도 많은 특징, 장점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단점도 있고 부족한 점도 많을 것이다. 위 내용은 김연아를 '신성화'하는 게 아니라 피겨 문외한이 피겨를 보며 짜릿한 감동을 느꼈기 때문에 그 감정이 신기해서 생각해 본 일부분일 뿐이다. 김연아가 한국인이라서 혹은 미디어에서 자주 등장했기 때문에 그런 감정을 느낀 것이 아니다. 피겨 스포츠를 즐겨보는 것도 아니고 '애국'을 들먹이며 단지 한국인이란 이유로 쌍수를 들고 응원을 하는 건 몸서리치며 경멸하는데...어찌...(해설이 긴 것도 병인양 하여...)

아무리 생각해 봐도 김연아는 괴물이다.

루저(Loser)의 원래 뜻이 변한 건가?

los·er  [lúːzər] 
1. 실패자; 손실자, 분실자 a loser at marriage 결혼에 실패한 사람 You shall not be the loser by it. 그것 때문에 너에게 손해를 끼치지는 않겠다.
2. 진 편 (경기에서), 진 말 (경마에서); 패자 Losers are always in the wrong. 속담 이기면 충신, 지면 역적.
3. 영 [당구] HAZARD 3
4. (구어) 전과자(前科者) a two-time loser 전과 2범자
5. 전혀 쓸모가 없는 것[사람]

실패[失敗]
 [명사] 일을 잘못하여 뜻한 대로 되지 아니하거나 그르침.
실패하다 [동사] 1 찾아보기: 실패.  2 어떤 일에 원하던 결과를 얻지 못하거나 완성하지 못하다.

패배[敗北] [명사] 1 겨루어서 짐.
패배감[敗北感] [명사] 싸움이나 경쟁 따위에서 자신이 없어 무력해지는 느낌. 또는 싸움이나 경쟁 따위에서 진 뒤에 느끼는 절망감이나 치욕스러운 감정.
패배자[敗北者] [명사] 싸움에 진 사람.

출처: Daum 사전

'루저' 열풍은 나중에 알았는데 내막을 알고 난 후에도 별 관심은 없다. 그보단 왜 '루저;패배자 혹은 실패자'라는 말을 쓴 것일까. 실패는 하던 일이 잘못되어 그르치거나 완성되지 못할 때 쓰는 말이고 패배는 경쟁 따위에서 진 것을 말하는 것 아닌가. 아마 루저라는 말을 한 사람의 뜻은 키가 작은 사람은 (모종의) 경쟁에 조차 나갈 수 없는 상태가 안 된다...라는 생각에 루저라는 말을 쓴 것 같다. 하지만 '키 큰 사람 선발대회'도 아니고 '우수 신랑감 선발대회'도 아닌데 키를 가지고 루저라는 표현을 썼다. 시합 출전을 하기도 전에 패배자가 되었다고 하니 루저의 범주에 들어 간 사람들이 흥분할 만도 하겠다. 혹은 맨 아래처럼 전혀 쓸모가 없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말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이해는 되지 않는다. 노자의 '무용지용'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키가 작다는 이유가 전혀 쓸모가 없는 사람이 되는 조건이라니.

하지만 만약 그의 발언이 통용되는 사회라면 '실패'와 '패배'라는 게 경쟁과 겨룸을 통해, 혹은 자신의 노력을 통해 어떤 일을 진행한 것과는 별개로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버린 '운명적 사회'라는 뜻이 아닌가. 태어나면서부터 신체적, 교육적, 경제적 풍요를 누리는 사람은 바로 위너(Winner)가 되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바로 루저(Loser)가 되는 사회. 키가 작다는 이유만으로 취업의 기회를 놓치는 것이고 이성의 선택권 밖에 있다는 것이며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사람이 되는 사회. 이는 못생기면 서비스나 잘해야 하고(모 국가 대표가 한 말) 못생기면 반드시 성형해서 이뻐져야 하는 사회. 자신들이 만든 규칙 속에서 조건 충족이 되지 않으면 경기조차도 할 수 없도록 추방시키는 사회. 공정한 기회는 고물상에서 엿 바꿔 먹고 평등한 출발은 쓰레기통에 버려버린 사회. 이런 사회가 과연 살 만한가. 희망을 품고 뭔가 해볼 만한 사회인가. 보아하니 택도 없는 것 같고 그렇게 변하려면 수 많은 '인고'의 세월을 견뎌야만 할 듯 하다.

루저 발언을 한 사람이 사고하는 방법, 사유하는 방법 조차 많이 부족한 상태가 아닌가 싶은데 언제부턴가 사회 분위기가 한국어를 한국어대로 쓰지 못해도 별로 개의치 않게 된 건 말할 것도 없고 사고(思考)를 제대로 하지 못하더라도 외형과 조건만 좋으면 대체적으로 인정하고 떠받드는 분위기가 팽배해진 것 같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외형과 조건이 좋지 않으면 개무시하고 깔보는 분위기가 팽배해진 것이며 한국어를 제대로 쓰지 못해도 외국어 하나 잘 하면 최고로 대접받는 사회가 된 것이랄까. 그렇다보니 루저 발언에 거품을 물고 흥분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발언자를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 날 밖에.

발언자 역시 교육과 사회의 피해자일 터인데 루저 발언을 듣고 흥분하는 사람들은 발언자만을 붙잡고 '사냥'을 할 게 아니라 그런 발언을 만들어 낸 교육 시스템, 사회 시스템 그리고 언론과 대한민국 정부를 향해 비판을 하고 스스로의 모습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가 '마녀'가 되거나 '사냥꾼'이 되거나 밖에 할 수 없다. '마녀' 자체가 없는, '사냥'할 필요가 없는 사회가 더 낫지 않은가. 

사람은 '감정'만으로 이루어진 동물이 아니고 '이성'이란 것도 존재한다. 두 가지를 함께 써 먹어야 할 때다.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 루저(Loser)의 사전적 의미를 생각해보다 생각의 가지가 또 뻗어나갔다......-_-;

** 091118|01:00 일부 수정

2009년 10월 8일 목요일

091008 - 9시 뉴스 관전평 (효성|4대강|K-9 자주포|정운찬)

이 글은 자유인님의 2009년 10월 8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부패에 대한 비난에도 잘 견디는 사람들.

“People who are really corrupt can live with it, but Roh was a crusader who could not deal with the fact that he had done something wrong,” said Michael Breen, author of The Koreans. “Criminals live with their criminality – he was an honest man.”
출처: http://www.timesonline.co.uk/tol/news/world/asia/article6350518.ece

'한국인들'(The Koreans)의 저자인 마이클 브린은 "진짜로 부패한 사람은 부패에 대한 비난에도 잘 견뎌낸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던 개혁가였다"며 "범죄자들은 범죄와 함께 살아가지만 그는 결국 정직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 영국 The Times ,23일자 기사 中 -


예전에 적어뒀던 타임즈의 기사 한토막. 노무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사람들의 수 많은 비난, 혹독한 비난에도 꿋꿋하게 버텨내는 이 땅의 정치/ 경제/교육/문화계의 사람들에게 대한 이야기다. 내가 하는 행위의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꿋꿋하게 살아가려면 그 어떤 비난과 비판에도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내가 하는 행위에 대해 늘 고개를 돌려 살피고 앞을 향해 발전적이려면 비난과 비판에 귀를 귀울여야 한다. 때론 흔들리고 때론 쓰러지기도 하겠지만 중요한 건 한 걸음씩 진보하고 옳은 방향으로 변해가는 모습이다.

삶의 모든 행위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잘못을 시정하고 개선하려는 사람은 비난과 비판에 아파하기 보다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경청한다. 하지만 스스로가 이미 부패하고 타락했다면 사람들의 비난과 비판은 패배자의 아우성일 뿐이며 현실과 맞지 않는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뿐이다. 귀를 닫는 게 더 편한 사회, 귀 기울이면 피곤해지는 사회는 '진짜로 부패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게 아니라 '그들을 쉽게 용서해주는 사람들', '알고도 쉽게 잊는 사람들'이 만들었음을 알아야 한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 많아지면 세상은 반드시 변한다.

만약 노무현이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면, 우리는...

노무현 서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계속 머릿속에 떠돌던 화두.

노무현이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면,

게다가 연임이 가능한 상황이었다면,

사람들은 다시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을까?

2년 전 노무현과 2MB가 붙었다면

사람들은 다시 노무현을 선택했을까?



이미 2년이 흐른 시간 속에서 새정부의 면면을 알게 되고 실망하고 분노하고 있는 상태라면 어느 누구라도 "다시 노무현을 선택하겠노라"고 말할 것이다. 질문은 현재 수 많은 상황을 겪고 난 후 던지는 게 아니다. 2MB와 새정부가 이럴 줄 몰랐던 상태, 예측만 가능했던 상태, 2년 전 그 때로 돌아가 던지는 질문이다. 한가지 더, 7년 전 김대중과 노무현이 경선에 나왔다면 사람들은 누구를 선택했을까. 그들 중 한 명? 아니면 그들을 제외한 한 명?

역사를 통해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자각해야 하는가. 김대중과 노무현은 '최선'이었을까, 아니면 '차선'이었을까. 대한민국 국민들이 바라는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 대한민국 국민들이 원하는 삶은 어떤 삶일까. 진보정당은 힘이 없으니 거들떠 보지도 않는 것일까. 정치인과 정치는 내 삶에 별로 중요하지 않고 신자유주의건 무한경쟁의 시대건 내가 원하는 걸 실현시켜 줄 수 있는 사람, 단체만 있으면 만족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무엇을 향해 사는 것일까.
우리는 무엇을 위해 투표를 하고 정치인을 선택하는 것일까.
우리가 원하는 삶은, 원하는 세상은 과연 무엇인 걸까.

2009년 10월 7일 수요일

부정부패, 비리 수사에 대한 작은 바람.

작은 바람이 있다면 한국에서 벌어지는 수 많은 비리와 부패 사건들 수사가 '끝장수사'가 되는 걸 보고 싶다.

보통 검찰이나 경찰 혹은 감시기관에 적발된 경우 비리/부패의 일부분일 경우가 많기 때문에 '수사를 확대'한다거나 '전방위 수사'를 약속하곤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국민적 관심도 시들해지고 자신과 직접적 관계가 없는 이상 그 사건은 쉽게 잊곤 한다. 그러면 수사는 소위 피래미들만 처리하고 유야무야 종결처리 되고 만다.

상처가 났을 때 치료를 하지 않으면 상처는 곪기 시작하고 점점 상처 부위가 넓어진다.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바로 상처가 난 부위를 치료하기도 하지만 손댈 수 없을 만큼 심각할 경우에는 상처 부위부터 차근차근 병세를 잡아가며 상처의 뿌리를 뽑게 된다. 국가, 사회도 마찬가지다. 넓어진 상처부위를 발견하면 상처를 치료하겠다고 덤비기 마련인데 진통제 몇 알 먹고 통증이 멈추더라도 치료를 늦추면 안된다. 완치되지 않은 상처부위는 반드시 재발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매일 접하게 되는 뉴스와 보도/고발 프로그램을 보며 한국 내 각종 상처와 병들이 조금씩 치료되는 경우도 보게 되지만 대체적으로 근본적인 치료는 하지 못하고(않고) 있다. 경/검찰이 '수사확대'를 약속하고 '성역없는 수사'를 선언해도 그게 그저 '쇼(Show)'에 불과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건 그간의 과정, 역사들 때문일 것이다.

한가지 더, 상처를 치료해감과 동시에 건강한 몸 만들기도 시작해야 한다. 기초를 튼튼히 다지면서 건강한 몸을 갖게 되면 가끔 생기는 상처와 병들은 그닥 걱정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