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가는 좋은 음식, 맛있는 음식, 멋있는 음식들을 찾아 다니고 그 맛을 즐기며 삶에 대해 알아가고 터득해간다. 하나의 취미일 수도 있고 하나의 직업일 수도 있고 그냥 삶일 수도 있다. 요리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도 잘 알지만 요리에 들어가는 재료, 요리의 역사(기원), 사람과의 관계성, 문화적 코드로서의 의미 등에 대해서도 잘 알 것이다.
어느 한 방면의 전문가는 그 일에 몰두할 때가 가장 아름답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한가지에 몰두하면서 산다는 게 그리 쉽지만도 않다. 그래서 스스로 채찍질도 하며 노력하고, 그렇게 해서 타인들에게 명예와 존경을 얻기 위해 애를 쓰기도 한다.
그런데 가끔 미식가도 아닌 종교인이(* 일반인들이나 종교인들이나 음식을 좋아하는 것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해소를 위한 노력, 또는 취미생활, 맛있는 걸 먹고 싶어하는 요구에 대해서는 100% 인정한다.) 맛있는 집을 줄줄 꿰고 있거나 먹는 것에 너무 공을 많이 들이는 경우를 접하게 된다. 내 선입견임을 미리 인정하고 말을 하자면 종교인들의 그런 모습들이 그렇게 좋아보이지 않더라는 것이다.
수행을 하고, 마음을 닦아서 중생들에게, 범인(凡人)들에게 영성의 울림을 전해줘야 할 분들이 음식을 탐닉하며 겉도는 모습은 적어도 내게는 좋게 보이진 않더라.
밥 잘 먹고, 맛있고 몸에 좋은 거 많이 먹고 다니는 것도 건강을 챙기는 것이라는 건 인정한다. 정신건강도 챙겼으면 하는 거지. 정신건강도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거나 해서 건강해지고 행복해진다면 할 말 없군.-_-a
2004년 12월 10일 금요일
2004년 12월 9일 목요일
화산(和山)님.
미남이십니다. :)
화산 김석원 정사가 지난 9일 신동 자택에서 열반, 11일 오전 10시 중앙총부 반백년기념관에서 교회연합장으로 발인식을 거행했다. 세수 63세. 법랍 44년. 공부성적 정식법강항마위, 사업성적 정특등, 원성적 준특등이다.
左山종법사는 발인식에서 “화산 정사는 평소 성실하고 알뜰한 공심 덩어리로 남이 알거나 모르거나 50여 성상을 이 교단과 함께 하며, 가는 곳마다 창립의 주춧돌을 쌓은 거룩한 삶을 살았다”고 칭송하고 “오는 세상은 밝고 대통(大通)하리니 이 회상에 다시 돌아와 대종사님 교법 받들며 영생영겁을 함께 하자”고 법문했다.
화산 김석원 정사는 1937년 5월10일 경북 경산군 진양면 산화동에서 출생, 원기33년 5월15일 다산 김근수 종사를 연원으로 영산교당에서 입교했다. 원기41년 5월3일 하타원 정양진 대봉도의 추천으로 전무출신을 서원, 총부 산업부·만덕산훈련원·원광중고·하섬수양원·영모묘원·원광대학교 등에서 근무했다. 틈틈이 어려운 교당의 불단 조성과 건축공사, 시설 보수 등을 자상히 살펴준 공심이 있었다.
장지는 왕궁 영모묘원. 종재는 원기85년 1월 26일(수) 오전 11시 중앙총부 반백년기념관.
左山종법사는 발인식에서 “화산 정사는 평소 성실하고 알뜰한 공심 덩어리로 남이 알거나 모르거나 50여 성상을 이 교단과 함께 하며, 가는 곳마다 창립의 주춧돌을 쌓은 거룩한 삶을 살았다”고 칭송하고 “오는 세상은 밝고 대통(大通)하리니 이 회상에 다시 돌아와 대종사님 교법 받들며 영생영겁을 함께 하자”고 법문했다.
화산 김석원 정사는 1937년 5월10일 경북 경산군 진양면 산화동에서 출생, 원기33년 5월15일 다산 김근수 종사를 연원으로 영산교당에서 입교했다. 원기41년 5월3일 하타원 정양진 대봉도의 추천으로 전무출신을 서원, 총부 산업부·만덕산훈련원·원광중고·하섬수양원·영모묘원·원광대학교 등에서 근무했다. 틈틈이 어려운 교당의 불단 조성과 건축공사, 시설 보수 등을 자상히 살펴준 공심이 있었다.
장지는 왕궁 영모묘원. 종재는 원기85년 1월 26일(수) 오전 11시 중앙총부 반백년기념관.
벌써 5주기. 6년째다. 작년엔 중국에 있어서 참석을 못했지만... 세월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흘러만 가고 있다. 올해는 동생이 호주에 있으니 참석을 못하고... 형제들의 부산한 움직임과 활동영역의 확장은 있으되 당신만큼은 늘 그 자리, 그대로 계시는 듯 하다. 조카 딸 삼총사가 온 집안 어른들을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 넣고 애교가 하늘 땅 충만한데 못보시다니 참 아쉬우시겠다. "허허~ " 웃음 한 번으로 끝나실 사랑의 표현도 상상만으로 밖엔...
사실 위에 써있는 글은 너무 상투적이고 너무 형식적이긴 하다. 하긴, 몇 줄의 글로 누군가의 삶을 표현하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이겠는가. 그런데 더 아이러니하게도 난 당신의 삶 전부를 알지 못한다. 정말 아쉽고 죄송스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또 끙끙거리며 힘겹게 살고 있으면 한 번쯤 찾아오시겠지. 당신과의 인연이 참 고마울 뿐이다. 음...그런데 당신만큼 잘 생기지 못해서 많이 아쉽기는 하다.^^;;; 능력(재주)도 부족하고.-_-a
아시죠? 저 계속 애니메이션 관련 일 하고 있어요. :) 더 노력할께요.
이미 완전한 해탈천도가 되셨을 거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지만
오늘 다시 한 번 "완전한 해탈천도를 하시길" 마음 모읍니다.
2004년 12월 8일 수요일
11월 20일~22일의 기록
장춘에 잠시 들어가 규이+치우메이 결혼식에 참석하고는 한국에서 해야 할 일 때문에 또 허겁지겁 귀국하는 바람에 다시 장춘에 나가야 할 상황이지만 그래도 더 주어진 기회가 더 고맙게 느껴지기도 한다. 비행기 값이건 뭐건 일의 핑계건 뭐건 차분히 그네들과 인사라도 하고 와야겠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 공항까지 꼭 오겠다고 바득바득 우기는 요 네 녀석들과 12월 말에 꼭 오겠노라는 다짐을 하면서 기념으로 남긴 흔적들.
지금은 규이, 치우메이야 신혼살림에 행복한 날들이겠고, 옌뽀는 여전하겠고 옌궈는 일 구해서 장소를 옮겼다니 더욱 큰 발전이 있길 바랄 뿐이다.
규이, 치우메이 결혼식 사진을 꽤 찍었는데 올릴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루고 있는 게 마음에 걸리네. 기다려라. 친구야.
흠, 그나저나 장춘 공항도 곧 이전을 하게 되면 내가 머물던 동네까지 택시로 거의 100원이 훨씬 넘게 나온다고 그러는데 쩝~ 공항은 깨끗해지고 더 넓어지고 좋아져서 좋긴 하지만 너무 먼 것 아냐? 하긴, 서울에서 인천 공항 가는 것도 만만치 않긴 하다.
12월에 또 볼 날을 기다려라.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 규이, 치우메이, 옌궈, 옌뽀
한국으로 돌아올 때 공항까지 꼭 오겠다고 바득바득 우기는 요 네 녀석들과 12월 말에 꼭 오겠노라는 다짐을 하면서 기념으로 남긴 흔적들.
지금은 규이, 치우메이야 신혼살림에 행복한 날들이겠고, 옌뽀는 여전하겠고 옌궈는 일 구해서 장소를 옮겼다니 더욱 큰 발전이 있길 바랄 뿐이다.
규이, 치우메이 결혼식 사진을 꽤 찍었는데 올릴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루고 있는 게 마음에 걸리네. 기다려라. 친구야.
흠, 그나저나 장춘 공항도 곧 이전을 하게 되면 내가 머물던 동네까지 택시로 거의 100원이 훨씬 넘게 나온다고 그러는데 쩝~ 공항은 깨끗해지고 더 넓어지고 좋아져서 좋긴 하지만 너무 먼 것 아냐? 하긴, 서울에서 인천 공항 가는 것도 만만치 않긴 하다.
12월에 또 볼 날을 기다려라.
2004년 12월 7일 화요일
크리스마스도 아니면서...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어느 Bar에서
한달도 더 전에 어느 맥주 bar에 가서 찍은 폰카(VK-100M_32만화소)
비틀즈를 너무나 사랑하는 주인장 때문에 곳곳의 커다란 스피커에서는 비틀즈의 음악이 제 세상을 만난 듯이 쏟아지고 있다. 맥주 두 어 병에 취하지는 않았지만 음악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했던 느낌.
이상하게도 저런 줄조명만 보면 크리스마스가 떠오른다. 나도 광고효과에 이미 깊숙히 길들여지고 있나보다. 조명 바깥으로 흐느적거리며 지나가는 남녀를 보았었다. 저들에겐 언제나 축제인 것만 같은 밤.
비틀즈 음악이 듣고 싶으면 다시 이곳에 가야겠다.
2004년 12월 6일 월요일
몸뚱아리
다리의 근육통. 왜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다. 만약 이유가 있다면 오랜 시간 차를 타고 다녔다는 것 밖엔. 그것도 차를 내리고 한참을 걸을 때까지만 해도 몰랐는데 잠시 어디엔가 앉아있다가 일어나면서 그런다. 몸이 힘겨울 땐 자연스럽게 마음도 힘겨워 함을 느낀다. 그래서 잘 먹고 잘 산다는 것은 몸과 정신, 마음 모두가 잘 살아낸다는 것과 맥이 통하는 것 같다.
몸살기운까지 슬쩍 지나간다. 문득 왜 이런 증상이 늦게 나타나나 싶다. 한국에 온 이후로 내 생활패턴으로 살지 못한 것과 적응하고 따라가느라 긴장하면서 살았던 걸 생각하면 이제야 몸이 좀 풀리면서 아플 수도 있겠다 싶다.
밤새 끙끙대며 땀을 한 바가지나 흘리고 나서야 몸에서 빠져나가지 않고 있던 오한이 다 빠져나가고 개운해진다. 뜨거운 불덩어리가 자꾸만 안에서 빙빙 돌더니 이제야 다 수그러들고 잠잠해졌다. 그럼과 동시에 마음이 상당히 깊이 가라앉는다. 왜 그러지? 왜 그러는 것일까? 마음 한 귀퉁이에 쇠 추를 달아놓은 양 아래로 아래로 쳐진다.
이거 또 좋지 않은 버릇 나올려고 하는 모양이네.
............좀 지켜보자.
몸살기운까지 슬쩍 지나간다. 문득 왜 이런 증상이 늦게 나타나나 싶다. 한국에 온 이후로 내 생활패턴으로 살지 못한 것과 적응하고 따라가느라 긴장하면서 살았던 걸 생각하면 이제야 몸이 좀 풀리면서 아플 수도 있겠다 싶다.
밤새 끙끙대며 땀을 한 바가지나 흘리고 나서야 몸에서 빠져나가지 않고 있던 오한이 다 빠져나가고 개운해진다. 뜨거운 불덩어리가 자꾸만 안에서 빙빙 돌더니 이제야 다 수그러들고 잠잠해졌다. 그럼과 동시에 마음이 상당히 깊이 가라앉는다. 왜 그러지? 왜 그러는 것일까? 마음 한 귀퉁이에 쇠 추를 달아놓은 양 아래로 아래로 쳐진다.
이거 또 좋지 않은 버릇 나올려고 하는 모양이네.
............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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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3일 금요일
쑨난, 한국에서 보다.
孙楠 (쑨난; 손남)
孙楠(쑨난 - 한국어 : 손남), 오늘 TV에서 "Asia song Festival" 하는 걸 잠깐 보는데 쑨난이 나온다. 아~ 참 신기하다 싶었다. 이 가수는 중국에서 남자들에게 꽤 인기가 있기도 하고 여자들도 무척 좋아하는 가수다. 노래를 따라부르기 좀 어려워서 그렇지. 주옥같은 노래들을 쏟아내는 가수다.
이 가수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중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가수라는 건 안다. 참 아이러니 한 건 이 가수는 중국 음반시장에서 자생적으로 크지 못했다고 한다. 외국(유럽인가 영국인가...)에 나가서 한동안 음반차트 1위를 하면서 유명해져 중국으로 돌아와서 인기를 얻었다 한다. 이 얘기를 나에게 해주며 중국 친구가 어이없어 하는 표정 짓는 걸 봤다. 이런 일들이 가수들 뿐만이 아니라 영화 쪽에서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고 한다.
어찌되었든 중국에서 종종 보고 듣던 쑨난을 한국에 온지 1달이 지나서 한국 TV에서 보니 묘하고 반갑다. 이 친구, 한국어 연습 무척 많이 했나 보다. 한국어로 인사를 하고(물론 잊지 않기 위해 메모를 준비하긴 했지만...) 'I believe' 를 1절은 한국어로 부른다. 발음이 조금씩 틀리긴 하지만 노력하는 모습이 참 좋아 보인다. '감사합니다'라고 한국어로 말할 때는 왜 이렇게 내가 아는 중국 친구들과 발음이 비슷한 건지...:) 중국인들의 구강구조가 비슷하게 생겼나?
뭐, 어쨌든, 반갑다. 쑨난.
아~! 'i believe' 는 "엽기적인 그녀"가 중국에서 상영될 때 삽입되었던 주제곡. 쑨난이 중국어로 부른다.
아래는 孙楠(쑨난)의 대표곡이라 할 만한 拯救(구원)이라는 노래다.
拯救(구원) - 孙楠(쑨난)
词:梁芒
曲:周笛
灯火辉煌的街头
突然袭来了一阵寒流
遥远的温柔
解不了近愁
是否在随波逐流
夜深人静的时候
我就潜伏在你的伤口
梦是氢气球
向天外飞走飞走
总化作乌有
一个人在梦游
像奔跑的犀牛
不到最后不罢休
爱若需要厮守
恨更需要自由
爱与恨纠缠不休
我拿什么拯救
当爱覆水难收
谁能把谁保佑
心愿为谁等待
我拿什么拯救
情能见血封喉
谁能把谁保佑
能让爱永不朽
2004년 12월 2일 목요일
바퀴 교체!
아는 분의 부탁으로 오토바이 뒷 바퀴를 좀 더 두꺼운 걸로 교체해야 했다. 오토바이가 50cc인데 모양은 상당히 세련된, 아기자기한 느낌의 오토바이. 많은 사람들이 그걸 보면 이쁘다고 하고, 또 작아서 자전거같다는 얘기도 종종 한다.
근처 오토바이 센터에 가서 뒷 바퀴를 교체할 수 있냐고 하니 이리저리 본 후 가능하다고 한다. 다만, 두꺼운 걸로 교체할 경우 물받이(바퀴 덮개)는 필히 제거해야 한다고 한다. 만약 여의치 않아서 다시 원상복귀할 경우 수고비로 만원을 내라 한다. 교체 비용은 3만원 정도...
한참을 기다려서 뒤바퀴 교체를 하고 보니 이제야 오토바이 모양새가 좀 난다. 바퀴가 굵을수록 코너링을 할 때 안정감이 있다는데 타보니 정말이다. 차체 뒤가 무거우니 안정감도 있는 것 같고...
어떤 사람이던 한 분야에 종사하다 보면 전문가가 되는 건 확실하다. 다만, 지속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을 경우 아는 만큼에서만 머문다는 것도 단순한 진리다. 오늘 수고해 주신 사장님은 대충대충 슬렁슬렁 작업을 하는 것 같은데 금새 일이 끝나있다. 보니 일을 대부분 그런 느낌으로 처리한다. 힘을 적게 들이고도 최선의 결과를 내는 방법을 아는 것 같다.
오토바이 폼 새도 잘 나고 새 느낌으로 시승을 해보니 좋다. 다만 바퀴가 무거워져서 힘이 조금 달리는 듯 하다. 하지만 50cc인데 뭘~ :)
근처 오토바이 센터에 가서 뒷 바퀴를 교체할 수 있냐고 하니 이리저리 본 후 가능하다고 한다. 다만, 두꺼운 걸로 교체할 경우 물받이(바퀴 덮개)는 필히 제거해야 한다고 한다. 만약 여의치 않아서 다시 원상복귀할 경우 수고비로 만원을 내라 한다. 교체 비용은 3만원 정도...
한참을 기다려서 뒤바퀴 교체를 하고 보니 이제야 오토바이 모양새가 좀 난다. 바퀴가 굵을수록 코너링을 할 때 안정감이 있다는데 타보니 정말이다. 차체 뒤가 무거우니 안정감도 있는 것 같고...
어떤 사람이던 한 분야에 종사하다 보면 전문가가 되는 건 확실하다. 다만, 지속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을 경우 아는 만큼에서만 머문다는 것도 단순한 진리다. 오늘 수고해 주신 사장님은 대충대충 슬렁슬렁 작업을 하는 것 같은데 금새 일이 끝나있다. 보니 일을 대부분 그런 느낌으로 처리한다. 힘을 적게 들이고도 최선의 결과를 내는 방법을 아는 것 같다.
오토바이 폼 새도 잘 나고 새 느낌으로 시승을 해보니 좋다. 다만 바퀴가 무거워져서 힘이 조금 달리는 듯 하다. 하지만 50cc인데 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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