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또 한 달의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는 시점. 사무실 인터넷에 문제가 생겨 부득이 근처 PC방에 와서 데이터를 다운 받고 온 김에 이것저것 둘러도 보고... 그러면서도 마음은 늘 외줄타기를 하는 듯 하다. 사실, 일이 많아도 적어도 마음은 늘 그런 것 같다. 불안한 게 아니라 긴장이 되어 있다는 느낌이랄까? 긴장이 풀어져 있는 것보단 적당히 근육과 마음이 수축되어 있는 느낌은 꽤 즐길만 하다.
마치, 90분 풀타임으로 축구 경기를 하고 났을 때 다리에 온 몸에 근육이 끼리끼리 뭉쳐있을 때와 같은 느낌이랄까? 아니, 탁구 경기를 하기 전에 약간 상대방의 기운을 이리저리 재보느라 신경을 쓰는 듯한 느낌이랄까? 당구칠 때 어려운 공을 잘 치기 위해 손에 분을 바르고 초크칠을 하고 큐질을 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어쨌든, 한 무더기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만큼의 매듭이 지어지고 그 매듭을 밟고 조금 더 앞으로, 위로 나아갈 수 있는 건 틀림없다. 그 매듭은 나중에 아래로 추락하거나 내려올 때도 날 되돌아보게 하는 흔적이 되기도 한다.
매듭을 묶어야 할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마음도 조금씩 바빠진다. 심호흡 크~게 한 번!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시간도 조금~...
2005년 1월 25일 화요일
2005년 1월 24일 월요일
좋은 이별.
떠나는 자는 떠나는 대로 남는 자는 남는 대로
서로 아쉽고 조금은 힘겹지만
다시 만날 약속으로 기운을 차린다.
언제 지켜질지 아무도 모르지만 그 약속만으로,
서로의 마음 속에 작은 추억이 남는다는 것만으로도 좋다.
좋은 이별은 세월이 묵어갈 수록 향기가 진해진다.
추운 겨울에 따뜻한 햇살을 두고 오는 마음처럼
내 흔적을, 내 기억을, 내 추억을 공유했던
벗들을 두고 오는 마음은 쉽게 발 길을 떼지 못한다.
좋은 이별은 쌓이고 쌓여 다시 좋은 만남을 만들어내겠지.
2005년 1월 21일 금요일
사람과 사람들...
어제 알고 지내던(?-자주 만나지는 않았으니...현재 진행형은 옳지 않다.) sicaf 분들이 왔다. 와서 북적북적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술고픈 눈빛을 주고 받은 후 (극구 사양하던 사람도 결국 다 마시더라.-_-;)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와 얘기를 안주삼아 시간을 보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흐르는 기운이란 건 확실히 세월을 지내봐야 확연해지는 것 같다. 어색한 기운들이 사라지고 편한 기운이 느껴지는 건 어떤 이유에서일까.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건 어쩌면 그 자체로서 생명과 생명, 혹은 같은 개체끼리의 해후로 인해 유전인자나 호르몬이 반응하는 건 아닐까.
사람이던 동물이던 사물이던 자신의 손길이 닿고 때가 묻으면 마치 자신의 세계(우주) 안으로 흡수되는 것 같다. 만약 상대방도 그렇다면 우리들의 관계는 벤다이어그램의 교집합과 같은 상태에서 수많은 교집합 군을 만들어내며 살아가는 것 같다. 그 부분이 많아지고 가득차면 자신의 공간을 잃게 될까 두려움에 또 훌훌 털고 벗어던지고 떠나기도 하면서...
그리 오래 만나지 않은 사람들이면서도 편하게 얘기할 수 있다는 건 그네들이 가지고 있는 장점인 것 같다. 한참을 이런저런 소소한 얘기들을 하고 또 한참을 심각한(?) 얘기들을 하고는 지하철 시간 때문에 자리를 떴다. 어떤 때는 시간의 관계없이 삶의 스케줄에 얽매임 없이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는 건 어떨까.
하긴 내 자신이 깊지 않으면 얘기할 꺼리도 바닥을 보일테고 관계가 깊지 않으면 말 없음을 지루하게 느끼겠지. 그래도 편한 느낌을 가지고 사람을 만나는 건 무척 좋은 일이다. 얼마전 벗과 함께 오랜 시간을 있으며 적은 술과 많은 얘기를 나눌 때의 느낌처럼...
사람과 사람사이에 흐르는 기운이란 건 확실히 세월을 지내봐야 확연해지는 것 같다. 어색한 기운들이 사라지고 편한 기운이 느껴지는 건 어떤 이유에서일까.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건 어쩌면 그 자체로서 생명과 생명, 혹은 같은 개체끼리의 해후로 인해 유전인자나 호르몬이 반응하는 건 아닐까.
사람이던 동물이던 사물이던 자신의 손길이 닿고 때가 묻으면 마치 자신의 세계(우주) 안으로 흡수되는 것 같다. 만약 상대방도 그렇다면 우리들의 관계는 벤다이어그램의 교집합과 같은 상태에서 수많은 교집합 군을 만들어내며 살아가는 것 같다. 그 부분이 많아지고 가득차면 자신의 공간을 잃게 될까 두려움에 또 훌훌 털고 벗어던지고 떠나기도 하면서...
그리 오래 만나지 않은 사람들이면서도 편하게 얘기할 수 있다는 건 그네들이 가지고 있는 장점인 것 같다. 한참을 이런저런 소소한 얘기들을 하고 또 한참을 심각한(?) 얘기들을 하고는 지하철 시간 때문에 자리를 떴다. 어떤 때는 시간의 관계없이 삶의 스케줄에 얽매임 없이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는 건 어떨까.
하긴 내 자신이 깊지 않으면 얘기할 꺼리도 바닥을 보일테고 관계가 깊지 않으면 말 없음을 지루하게 느끼겠지. 그래도 편한 느낌을 가지고 사람을 만나는 건 무척 좋은 일이다. 얼마전 벗과 함께 오랜 시간을 있으며 적은 술과 많은 얘기를 나눌 때의 느낌처럼...
2005년 1월 15일 토요일
작용
손바닥에서 기운이 뜨겁게 흘러나옴을 느꼈다. 저절로 손이 공중으로 떠오를 것만 같은 그런 느낌. 기는 역시 마음의 작용을 따르나 보다. 어떤 식으로든 그 테두리에서 밖에 살 수 없음을 확인하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늘 버거운 화두다.
또 하나의 겨울.
장춘 집 앞
아이스크림이 녹지도 않아...
장춘의 겨울. 무척 추운데도 이상하게 정겹다. 서울하고 비교하면 촌스러운 동네임엔 틀림없지만 그 촌스러움이 좋다. 어쩐지 사람들도 좋을 것만 같은 느낌.(물론 모두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겨울은 그렇게 추위에 익어가고 또 봄을 기다리는 마음도 함께 익어간다.
2005년 1월 14일 금요일
얼어붙다.
저번 달 장춘에서 택시를 타고 이동을 하는데 창문이 모두 하얗게 얼어 붙었다. 손을 대면 쩍쩍 달라붙을 것만 같은 느낌. 이런 추위인데 자동차들은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핸들을 돌리는 기사는 힘이 들어 보이지만 차는 그래도 달린다.
이 때를 생각하면 지금 한국의 겨울은 턱도 없는 추위 건만 망각은 현실에 순응하게 만든다. 시간이 지날 수록 추위가 느껴지니...
창문에 뽀드득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게 얼었다. 손대면 쩍~하고 갈라질 것 같은 느낌.
얼다. | 도시도 얼다. |
엷은 햇살도 따뜻해... | 얼어서 깨질 듯... |
이 때를 생각하면 지금 한국의 겨울은 턱도 없는 추위 건만 망각은 현실에 순응하게 만든다. 시간이 지날 수록 추위가 느껴지니...
창문에 뽀드득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게 얼었다. 손대면 쩍~하고 갈라질 것 같은 느낌.
2005년 1월 12일 수요일
[근조] 김충식 교무의 완전한 해탈천도를 염원합니다.
▲ 원불교 김충식 교무
원불교 김충식 교무,
호주에서 '살신성인'
- 9일 물에 빠진 연수생 구하고 순직
지난 9일 호주 시드니 노스아보카 비치에서 현지시각 오후 2시 30분경 어학연수생을 인솔하던 원불교 김충식(31·시드니교당) 교무가 물에 빠진 한국인 연수생(초등학교 6학년 남학생)을 구하고 자신은 파도에 휩쓸려 빠져 나오지 못하고 익사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김충식 교무는 1시간 후 물에 빠져 숨진 채로 발견되었으며 파도에 휩쓸렸던 학생은 무사히 구조돼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번 연수는 원광대학교 어학원에서 주최하여 1월 2일부터 16일까지 원광대학교 어학원에서 모집한 초등학생 6명, 인솔교사 1인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되었으며 원불교 시드니 교당 김충식 교무는 현지에서 연수를 지원하던 중 이번 사고를 당했다.
김충식 교무는 전북 정읍 출신으로 원광대 원불교학과를 졸업하고 2001년 포항교당에서 초임근무를 마친 후 작년 시드니교당 청소년담당교무로 부임했다. 이후 장례는 원불교장으로 거행될 예정이며 유해는 화장 후 전북 익산의 원불교 영묘묘원에 안치될 예정이다.
생명존중에 대한 의미가 퇴색되는 요즘 지구 저편에서 의로운 죽음을 맞이한 한 성직자의 행위는 생명에 대한 참의미를 깨닫게 하는 작은 외침일 것이다.
원불교 생명·평화운동단체인 ㈔평화의 친구들은 호주 시드니 해변에서 물에 빠진 연수생을 구하고 참변을 당한 고 김충식 교무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김 교무에게 생명평화상을 추서하기로 했다.
오마이 뉴스 윤창원(bdyun) 기자
충식교무는 내가 원불교학과를 다닐 때 선배였고 후에는 동기였다. 나보다 나이는 한 살 어리지만 서로 "형님~"이라 부르며 생활했었고 늘 웃는 얼굴로 용맹정진하는 모습은 쉽게 흉내낼 수 없는 것이었다. 특히 좌선이나 염불 쪽 수행에 큰 소질이 있었던 교무였다. 졸업 하기 전에도 졸업 후에도 해외 쪽으로 시야와 행동 반경을 넓히며 스스로의 수행생활에 힘을 더하고 노력하다가 호주에 발령받아 가면서 잘 생활하고 있었다고 들었다. 그러다 엊그제 선배에게 충식교무의 열반소식을 접하고 잠시 멍했었다.
축구와 농구, 탁구를 참 잘했던, 운동을 좋아했던 이었고 아담한 체구에 잘생긴 얼굴, 끊임없이 매진하는 수도생활 때문에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인기와 사랑을 받았던 충식교무. 사실, 충식교무는 자신의 삶보다 남을 위한 삶에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려고 노력했던 사람이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충식교무는 그런 사람이다.
성직자의 첫걸음에 서서 웅대한 서원을 이뤄보기도 전에 명을 달리하다니 정말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이 없다. 그렇게도 이뤄보고 싶던 성직의 삶, 오롯이 주는 삶이 아직다 끝나지 않았으니 곧 다시 다른 인연으로 오겠지.
충식형님~ 편안히 잘 다녀오시오. 그대가 구하려 했던 아이는 무사하다니 애착, 탐착 다 놓아버리고 맘 편히 떠나시오. 졸업 후 한 번도 보지 못하고 간혹 소식만 들었었지만 다음 생엔 더 좋은 인연으로 만나봅시다.
그대의 완전한 해탈천도를 간절한 마음으로 염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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