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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26일 화요일

한 목사의 막말 그리고 종교의 참과 거짓.

장경동 목사의 막말이 논란이 되고 있다. 불교가 들어간 나라는 다 못산다거나 스님들이 빨리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등의 막말을 한 것이다. 또 "내가 경동교(장경동교)를 만들면 안 되듯이 석가모니도 불교를 만들면 안되는 것이었다"라고 발언했다는데 자신을 석가모니와 동급으로 올려놓고 판단하는 억지스러움도 함께 보여줬다.

대한민국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다. 아니, 대한민국의 헌법을 이야기 하기 전에 모든 종교는 배타적이어서는 안된다. 기독교사 공부를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은 예수의 말씀 중에 혹은 하나님의 가르침 중에 자신과 다른 무리들을 배척하고 무시하라고 한 적이 없음을 알 것이다. 혹여 있더라도 그건 상황논리에  따른 것이고 무지한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한 방편이었던 것 뿐이지 예수는 원수도 사랑하고 자신의 왼쪽 뺨도 내어주라며 무한한 포용과 사랑을 가르쳤을 뿐이다. 작금의 기독교, 소수(혹은 좀 더 많은)의 목사들은 그 가르침을 배반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하나님의, 예수의 대리자라고 혹세무민하고 있다. 장경동 목사가 딱 그렇다.

가끔 케이블 TV를 보다보면 정규 채널보다도 많은 기독교 채널을 보게 되는데 장경동 목사와 최일도 목사(다일공동체 목사)가 종종 나온다. 둘의 신앙간증을 비교해보며 들으면 누가 가짜고 누가 진짜인지 알 수 있다. 진짜 목사는 신도(청중)을 배려하며 설교를 한다. 그리고 한 면만을 강조하지 않고 다양한 면을 보여주고 열린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 자신의 신앙체험을 통한 설교를 주로 한다. 진짜 목사들은 끊임없이 공부하고 신앙하며 간증하기 때문에 신도(청중)들의 마음을 울리게 하는 힘이 있다. 가짜 목사들은 흥미와 재미위주로 설교를 하고 예수의 말씀 역시 부분부분 잘라서 자신의 입맛에 맞게 편집해서 이야기한다. 자신의 신앙체험은 갈수록 빈약해지기 때문에 세치의 혀만을 가지고 간증을 한다. 신도(청중)가 누구냐에 대해 고려하지 않으며 자신은 예수의 가르침을 전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면서도 결국 신도(청중)들에게는 자신을 믿고 따르라고 강요한다.

사실, 세상에 나쁜 진리는 없다. 나쁜 시스템과 나쁜 전달자만 있을 뿐이다. 기독교, 불교, 천주교, 이슬람교, 증산교, 원불교 등등 수 많은 종교의 가르침은 결코 나쁘지 않다. 종교 서적(경전)을 제대로 읽어보고 자신의 앎과 삶으로 조금이나마 반추해보기만 하더라도 알 수 있다.

모든 종교의 교조들은 스스로 종교(宗敎)를 만들지 않았다. 시대의 부름에 따라, 자신들의 깨달음과 신념에 따라 상황을 개선하고 참된 진리를 알려주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다. 그 교조들을 따르던 제자들이 그들의 말씀과 행동을 채록하고 모아서 경전을 만들고 교조들을 존경하던 자들이 모여 집단(종교)을 만든 것이다. 교조들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기 위해. 하지만 종교라는 껍데기, 허울이 생기면서 교조들이 말했던 진리는 자취를 감추게 되고 제자(전달자)들에 의해 왜곡되거나 재해석되기 시작하면서 자신들이 만든 종교 속에서 진리를 억지춘향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이들이 만들어내고 전파하고 있는 진리와 가르침은 참이 아니다. 그래서 종교를 믿는 신앙자들은 반드시 "종교적 진리"와 "진리적 종교"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내 앞에 있는 목사, 스님, 교무, 스승님들을 계속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한다. 그 의심은 그 사람에 대한 의심이 아니다. 그들이 말하는 바가 경전에 나와 있는 바와 같은지를 의심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 스스로가 신앙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더 넓은 마음과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장경동 목사 앞에서 설교를 들었던 수 많은 신앙인들은 스스로의 앎이 참인지 허상인지 질문하고 또 질문해야 한다. 맹목적인 받아들임이 곧 신앙이라 말하는 자들은 100% 가짜다.

맹목적 믿음과 찬양은 낭떨어지로 질주하는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와 같다.


[record my mind] - 종교의 기본을 생각하다.

추가 - 新장경동이라 부르짖는 자...

2008년 3월 25일 화요일

종교의 기본을 생각하다.

예전에 느낌표!에서 얼굴을 비췄던 장 모 목사를 TV에서 자주 마주치게 된다. 기독교 채널을 고정시청하는 건 아닌데 TV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보면 거의 매일 TV에 출연해 설교를 하는 것 같다. 언제가는 설교하는 말폼새가 재밌어서 지켜본 적이 있었는데 나이 지긋하신 분들을 대상으로 걸죽한 입담을 자랑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다. 가끔 예로 드는 내용들이 내가 듣기엔 불편할 정도로 수위를 오락가락했지만 어르신들이 듣기엔 그냥 넘어갈 수도 있겠다 싶었고 인신공격성 발언 비슷한 내용들 역시 듣기에 따라서는 귀여운 애교쯤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장 목사의 설교를 오랫동안 듣는 건 너무 힘들었다. 어쨌든 그는 재담가임엔 틀림없어 보였다.

오늘, 아침에 TV에서 다시 그를 마주쳤다. 공교롭게도 "거부(巨富)" 야곱에 대한 이야기와 2mb의 근면성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요즘 화제가 되고 있었던 고.소.영, 강.부.자. 내각들이 떠올랐고 새벽형 인간이라고 나팔을 불어대며 몇몇 언론들이 소개하던 2mb의 일상이 떠올랐다. 거부에 대해 설명할 때 단팥죽 장사에 대한 약간 비아냥 섞인 말투와 웃음이 있은 후 자신의 잘못을 느꼈던지 그 분들을 비하하려는 게 아니라며 해명했지만 "거부(巨富)"에 대한 "거부(拒否)"감을 희석시키려 애를 쓰는 모습이 보였다. 게다가 2mb의 새벽형 인간형, 부지런함을 '극찬'한 후 그걸 힘들어하거나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정신차리라며 호통치고 그 분을 위해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힘을 모아 협조하면 좋겠다고 호소하며 야곱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아멘"이 족히 3-4번은 등장했다. 내가 민감한 건가? 장 목사가 혹세무민을 하는 것인가?

어느 한 편에만 서서 오랫동안 사고하고 행동하다보면 건너편의 입장은 잘 들리지도,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를 반성하고 회개하며 수양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한 인간을 찬양하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어느 집단, 어느 개인의 행위를 찬양하더라도 그와 대척점에 서있는 이들도 함께 둘러보고 살펴야 하는 게 종교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애초 종교가 불안을 종식시키기 위해 절대자를 "달래기" 위한 원시형태로부터 시작했다면 최소한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불완전함과 그로 인한 불안감을 위로하고 달래주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게 종교인의 도리일 것이다. 게다가 하나님, 부처님 그 누구도 자신이 말하고 행한 바를 종교로서 가둬놓은 바 없기도 하지만 제자들로 인해 그 분들의 말씀과 행동을 종지로 하는 종교가 만들어졌다면 그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하나님 행세를 하고 부처님 행세를 하는 건 안될 말이다. 그저 그 분들의 말씀과 행동을 자신이 따라 행하고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면 될 뿐이다. 종교에 귀의하는 이들 역시 "종교적 사실"과 "사실적 종교"의 차이를 잘 받아들여야 한다. 분명 오늘 내가 받은 느낌은 아주 일부분일 수도 있고 종교인의 도리를 못하는 이들 역시 아주 극소수일 수도 있을 것이다.(그렇게 믿고 싶다.)

대부분의 종교는 기본적으로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난한 자, 병든 자, 핍박받는 자들을 위해 시작되었고 각 종교의 교조들은 그들을 위해 삶을 버리셨다. 그 기본을 저버리는 순간 종교는 없다.


[record my mind] - 한 목사의 막말 그리고 종교의 참과 거짓.
[record my mind] - 종교적 신앙과 진리적 신앙
[sense datum] - 그(GOD)는 당신과 돈 중에 어느 쪽을 더 사랑하나.
[record my mind] - 음식과 종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