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22일 목요일

왜 이러지? - 옮겨온 글

왜 이렇게 피곤한걸까?
밤새 잠을 자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닌 느낌이다.

밤새 뒤척이 느낌도 없는데 꿈을 꾼 기억도 없는데...

지난 밤은 아련히 기억도 나지 않는 몽상처럼 사라지고
아침은 늦게도 찾아왔다.


04|04|27 10:47:56


**  아침은 지금도 늦게 찾아온다. 아니, 내 예상보다 일찍 찾아와서 싫다.-_-;

한국으로 잠시 - 옮겨온 글

비행기 표를 겨우 예매했다.
아니, 겨우라는 말은 좀 그렇다.
30세 이상은 유학생증이 있어도 할인이 안된다고 해서
잠시 망설였을 뿐이다.
다행히 점장이 한국에서 파는 가격과 똑같이 해준다고 해서
그나마 할인 혜택을 좀 받을 수 있었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표는 의외로 한국보다 비싸다.

외국에 나갔다, 들어왔다 하는 사람들을 보면
무조건 돈이 많은 줄 아나보지? 젠장...

어쨌든...
중국인들이 5월 1일부터 일주일간 노동절 휴가를 즐기는 사이
난 한국에 가서 어머님도 뵙고 다른 인연들도 만나고 오게 되었다.

한국을 떠나온지 1년도 안되었으면서
한국을 잠시나마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설레는 느낌.

가기 전에 이것저것 정리할게 많은데
머리 속에 알수 없는 뭔가가 꽉 들어차 답답한 느낌이다.


04|04|29 00:40:03


** 때론 공항이 더 익숙한 느낌이 들어버린 지금. 물론 자금과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 지금이지만. :) 낑낑대며 살았던 날들 중 한토막.

... - 옮겨온 글

어머님을 뵙고 친구들을 만나고 교수님들을 뵙고 아는 인연들을 만나고 정신없는 3주간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장춘으로 돌아왔다.

반가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 기분 좋은 일임에 틀림없다.

다만 언제부터인가 내가 그 사람들에게 어떤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는 사실이 가끔은 부담스럽기도 하고 그런 기대가(스스로에 바라는) 나를 좀 힘들게 하는 걸 느낀다.

사람들끼리 관심이 없이 살게 되면 견딜 수 없지만
사람들끼리 관심이 너무 많이 있어도 힘겨운 일이 될 것 같다.

관심을 받고 싶고 외롭고 싶지 않은 건 정말 분명한 일이긴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에 대한 반발인건지 아니면 무의식을 지배하는 큰 덩어리인지 자꾸 아주 한적한 곳으로 가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들이 문득문득 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꼬리를 물고 따라오고
죽음을 생각할 때면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대한 애착이 연이어 따라오게 되어서 생각은 이리 흔들, 저리 흔들할 때가 있다.

잘 해야 잘 하는 것인데
잘 하지 못하면서 늘 잘 해야지 하는 다짐은 그런 격려를 받는 건 별로 즐거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또 살아야지...이곳으로 왔으니 또 살아야지...
그러다가 다시 그곳으로 가야지...


04|05|26 14:28:58

** 참 그러고 보면 중국에 있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고 살았던 것 같다. 생각의 양만큼 술도 엄청 마셔댔고. -_-a

공부하러 가는 동생을 보며...

언제부턴가는 동생이 나보다 더 나아보이고 대단해보이기 시작했다. 그 언제부턴가...라는 시기는 아무래도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이지 않았나 싶다. 누군가 나에게 '형만한 아우 없다'는 얘기를 할 적마다 난 꼭 그렇게 대답했다. '아니 내 동생은 형보다 나은 아우다'라고... 이건 겸손을 떨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 충분히 그래 보였고 사실 지금도 그렇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음에 불과하다.

동생이 사운드 방면에 소질이 있고 내 졸업작품 주제곡을 작곡도 해주었는데 전공은 컴퓨터 공학과라 난 늘 동생이 음악 쪽으로 전공을 바꾸어도 좋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많은 어른들과 주변 사람들은 그런 걸 반대했었다. 사실 컴퓨터 공학과를 나와 박사 과정을 밟고 나면 이러저런 명예와 부는 사운드 쪽보다 쉽게 상당부분 따라오는 건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그런 진로를 고민하는 동생을 볼 때마다 그런 얘기를 해주고 싶었지만 그저 '니가 결정할 사항이야'라고 말하고는 슬쩍 구렁이 담넘가듯 했었다.

그 리고 시간이 흘러 사운드 쪽으로 진로를 결정했을 때도 난 무덤덤하게 그러냐며 손을 내밀어 청했을 뿐이다. 그렇게 결정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유학을 가겠다고 결정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내 자신의 위치였다. 사실 동생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유학 가는 걸 도와주고 싶었지만 난 내 욕심대로 중국에 나와 공부를 하고 있으니 어머님 혼자 두 아들 유학비용을 대준다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만약 이런저런 이유로 동생이 만약 유학을 못가게 된다면 내가 중국에 있는 걸 포기하고서라도 동생을 보내주고 싶었다. 그건 아무래도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동생에 대한 미안함도 한 몫 했음직 싶지만 그것보다 차라리 될 놈을 밀어주자는 생각이 더 자리하고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다행이도 나도 아직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동생이 유학을 가게 되었다. 여전히 돈이 부족해 하고 싶은 공부 일정을 단축해 1년만을 계획하고 가지만 분명 1년 공부 마치고도 여기저기 능력 좋게 일을 해내며 호주에서 잘 생활할 것이라 생각은 든다. 만약 그게 되지 않으면 내가 한국으로 들어가야겠지. 그것 정말 싫은 일이긴 하지만 충분히 그럴 수는 있다.

나도 잘 되어야 동생을 돕고 식구들도 도울 수 있는데 난 자꾸 중국생활이 몸에 익어가고 입에 익어가면서도 변변찮은 결과물 하나 없다. 물론 8개월 지났는데 뭐가 있길 바래면 그게 도둑놈 심보 아니냐고 질책할 사람들도 줄을 섰겠지만 사실 돈을 벌고 싶다는 욕심은 이미 사적으로 유용하고 싶은 꿈과는 멀어진 지 오래다. 돈 벌어서 어쩌면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님 마지막 여생에 도움이라도 될까 하는 생각 뿐. 아버님께도 제대로 사는 모습 제대로 보여주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그러고보면 난 능력에 비해 너무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사실 동생의 성공에 내가 덕을 볼 생각은 눈꼽만치도 없다. 다만 동생이 성공해서 내가 못한 물질적인 효도, 정신적인 효도라도 좀 해줬으면 하고 책임전가하는 수준 정도의 바램은 있다.

동생 가는데 해준 건 없고 심적으로 기운을 팍팍 밀어준 것도 없이 그냥 형 된 입장으로 믿는다는 말만 한 건 아무리 생각해도 참 내가 못났다 싶다.

잘 살아서 식구들, 아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싶은데 그 잘 살자.는 캐치프레이즈는 이미 소시적부터 입에 달고 마음에 담고 살았던 말이라 이젠 변변찮은 내 모습에 적잖이 실망도 한다. 술 한잔 걸치고 뭔가 잘난 듯 떠들 때면 그런 생각도 다 사라지기도 하지만 꼭 그러고 나면 밀려드는 허탈함은 참 견디기 힘들다.

어쨌든 이제 새로운 시작을 하러 떠난 동생이 건강하게 잘 공부하고 돌아오길 아니, 돌아오지 않고 호주에 정착해도 무방하니 하고 싶은, 이루고 싶은 일들 잘 이루길 간절히, 간절히, 간절히 바랄 뿐이다.

나도 또 다시 일어서야지...남들과 비교해서 더디다고 느끼기보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턱없이 부족한 능력과 심지를 가지고 여태껏 용케도 버텨왔으니 한 걸음이라도 내딛어야지...

녀석~ 건강해야 한다.


04|06|11 22:38:00


** 결국 이런저런 이유(라지만 쩐의 문제)로 돌아와 열심히 살고 있는 동생. 잘 될 게다. 조금만 더 자신감으로 밀어붙이면 좋겠다. 3년 전 참 많은 생각을 하고 살았고 많은 일이 있었네. :)

아버지가 생각나서...

동생, 요녀석이 호주로 떠나며 홈페이지 대문에 쓴 글을 읽으며 한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고 눈물이 났다.

나도 중국에 와서 가끔씩 아버지가 생각나고 아버지 없는 빈자리가 참 크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었는데 결국 어떤 결정을 하거나 생활할 때 보면 난 심중에 아버지를 그다지 크게 두지 않았었다. 그런데 동생이 호주로 떠나며 홈페이지 대문에 누구에게 쓴 글인지 불분명하게 글을 남겼지만 난 본 즉시 알았다. 아버지께 잘 살겠다고 잘 다녀오겠다고 편지를 남긴 것이다. 아버지가 생각나서 눈물이 나기도 했지만 동생의 그 기특한 마음에 눈물이 나기도 하고 형으로써 참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늘 마음에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동생이 어쩌면 나보다 더 형으로써의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먼저 태어났다고 형이라 불리우고 늦게 태어났다고 동생이라 불리우는 것 세상의 모순인 것 같다. 심량이 얼마나 크고 얼마나 심지가 깊은가에 따라 형, 동생이 갈려야 하는 건 아닌 가 싶다.

아버지 가신지 벌써 5년이 다 되어간다. 가셨을 때는 모두 다 내 탓이라 생각하고 후회도 많이 하고 참회도 많이 했건만 한해 한해 지날 수록 그런 생각보다는 그저 내 앞가림 하기 바쁘고...당신 생각하는 때도 상당부분 내 감성에 치우친 바 많아서 참 죄송스러웠는데 이번에 동생이 또 참 나를 부끄럽게 하고 가네.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언젠가 꼭 하고 싶다는 마음은 가득한데 어떻게 풀어야 할지를 도데체 모르겠다. 아무리 나름대로 생각하고 살아도 역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나보다 앞서가고 더 깊은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을 반박조차도 못하겠다.

아버지... 잘 살아볼랍니다. 정말 당신 자식으로 태어나서 당신께 잘난 모습 보여드리지 못하고 보내드렸지만 잘 살랍니다. 상인이 홈페이지에 써있던 글 보셨겠지요? 잘 살랍니다.

잘 살랍니다.
나중에 잘 살다가 다시 뵐께요....


04|06|11 22:55:54

** 참 많은 변화가 있었네. 이 글, 참 부끄러운 글이지만, 나를 아는 사람은 아는 대로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대로 볼 수 있겠다 생각하니 낯 뜨거운 것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게 되는 뻔뻔함도 생기네. 사는 건... ....라 수없이 대답하고 반문해도 모르겠다. 정말.

벌써 7월이잖아? - 옮겨온 글

이런...덴장. 벌써 7월이네. 앞으로 2달 후면 내가 중국에 온 지 1년이 되가는 데. 난 아직도 뭐가 달라진 것 같지 않은 묘한 공허함에 휩싸여 있잖아. 왜 그러는걸까? 중국어가 유창하지 않아서 그런가? 아니면 조급증이 생겨서 그러는 걸까?

해야지...해야지...라고 말만하지 말고 몸 좀 움직여보란 말이지. 하긴 하고는 있어. 그게 좀 착착착 뇌 세포 안에 저장이 잘 안되고 공기 중에 뽈뽈~ 흩어지는 기분이라 그렇지.

그 래도 몸에 맞지 않게 술을 들이 붓는 어떤 날에는 가끔 토악질도 해대고 끄억끄억대는데 중국어 공부는 그런 날이 없으니 다행이기도 하다. 그래도 제대로 소화는 못시키는 지 아니면 제대로 먹질 않아서인지 속도 더부룩하고 때론 뇌고프고... 끄억~


04|07|01 17:58:44

** 04년도 7월에 쓴 글 하나도 역시 옮겨 옴. 중국가서 10개월 정도 지난 상황인데 지금은 술도 매일 마시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렸고 중국에는 무척이나 많이도 들락거렸고 이젠 중국어는 잠자다 깨도 불쑥 튀어나오는 정도(실력의 고하(高下)는 무시하고)가 되었으니 그 동안의 시간, 빠르게도 흘러갔지만 많은 변화도 있었음을... 알겠다.

그래도 그래...

맨날 먹는 술이 아니어서 그런지 가끔 먹는 술은 속은 멀쩡한데도 정신이 조금씩 혼미할 때가 있어. 그런다고 술이 취했다고 말하기엔 좀 어정쩡한 그런 상태.

오늘도 동생들과 술을 먹었어. 그런데 말야... 처음 술을 먹을 때와 술이 조금 들어갔을 때와 술을 좀 많이 먹었을 때와 말하게 되는 건 조금씩(때론 많이) 다른 것 같아.

뭐 랄까... 나이를 먹어간다는 걸 실감한다는 건 너무 상투적인 것 같고 나보다 젊은 애들에게 느끼는 부러움? 에이, 사실 그것도 아니다. 난 나이먹는 게 좋은 걸. 부러움이 아니라면 뭘까? 아직도 난 마음은 젊은 것 같은데...하긴 아직도 마음이 젊다는 건 아직도 철이 덜 들었다는 것일까?

내 옆에 없는 내 짝에 대한 막무가내인 그리움? 그리움이라고 말하기엔 크고 누군가 옆에 있어서 술 마실 때 술을 마시지 않을 때도 가끔 서로가 필요할 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해. 이건 부정할 수가 없군.

그 렇다면 이런 감정들이 바로 외로움이라고 말할 수 있나? 살아도 살아도 늘 혼자라는 건 견뎌낼 수 있지만 그 견뎌냄도 누군가와 내가 소통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받을 수 있지만 가끔 이렇게 술을 좀 먹고 오는 날엔 내 옆에 아무도 없다는 게 좀 버겁긴 해.

이런 날은 그냥 외롭다고 말할게.
나와 대화할 수 있는 아무도 없다는 것에 대한 쓸쓸함? 이 말도 그리 어울리진 않지만 적막함이 때론 좀 싫어. 때론 무척 좋은데 말야. 그냥 이렇게 사는 것도 어떤 날은 즐거운 데 어떤 날은 싫거든... 내가 좀 이상한가?

오늘은 누가 좀 옆에 있었으면 싶어...


04|06|27 02:20:09

** 지금이야 함께 있는 사람이 있으니 지금 상황에서 이런 글을 올리면 오해할 여지가 많지만 이건 엄연히 04년도 6월에 쓴 글이라는 것. 3년하고도 5개월이나 묵힌 글을 처음 끄적여봤던 다른 블로그에서 옮겨 옴. 그쪽은 아무래도 문을 닫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