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23일 금요일

외로움

아는 동생이 묻는다.

'오빠, 아직도 외로워요?'

'응? 언제 내가 외롭다고 했던가?'

'아니, 그렇게 보여요.'

'아... 음...'

사실 대화하는 내내 나도 내 표정이 좀 슬픈 듯 했는데
세심한 녀석은 기어이 묻고야 만다.

'사실, 다 외로운 것 아닌가?'

'..... 그런가요?'

뻔한 답변이지만 그 대답으론 녀석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렇다고 속을 다 드러내 보일 수는 없는데
내 눈은 상대방을 속이는데 익숙하지가 않다.
입은 웃고 있어도 눈에 머문 외로움은 쉽게 떨구어지지 않는다.

'언제 외로움을 느껴요?'

'그러게... 꼭 외롭다고 느낀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또 언제 만날지 모르는 상황이라 꼭 듣고 싶은 시선을 보낸다.
잠시 망설이다 이윽고 체념한 듯 입을 열었다.
아니, 사실 어쩌면 조금은 녀석과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같은 방향을 보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쉽지 않는 것 같아.
설령 결혼한 사이라 해도 닭살이 돋을 만큼 공명을 한다는 건 쉽지가 않잖아?
물론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상대가 세상에 존재할지 어떨지 모르겠어.
가령, 과거에 어떤 사람의 글을 읽고 흥분이 된다 하더라도 실제 그 사람과 함께
삶을 공유하고 같이 생활하다 보면 스스로의 환상과 이상이 무너지기도 하는 것처럼.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하기엔 버겁고 그걸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없다고 느껴지는 어떤 날,
가끔이긴 하지만 외롭다고 느껴져.'

'전에 그런 사람이 있었어요?'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역시 함께 삶을 공유하게 되면 또다시 원점이 될지도 모를 일이지.
겪어보지 않은 일을 가지고 말을 하긴 뭐하지만...'

조금은 공감하는 표정을 짓던 녀석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
그리고 마치 나비의 날개짓처럼 가볍게 하지만 의미있게 입을 열었다.

'...그 맘, 조금은 알 것 같아요...'

문득 녀석이 고맙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왈칵 외로움이 밀려왔다.
만약 술이라도 마셔서 취기가 오른 상태라면 눈물이 흘렀을지도 모르겠다.
취기에 그 분에게 전화했던 때처럼 소리내며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알 것 같다니, 내가 고맙다.'

어두워지만 창 밖과는 달리 녀석의 표정은 조금씩 밝아졌다.
난 계속 가슴 속을 누르는 상태가 되고 얼굴을 조금 발갛게 달아올랐다.

녀석이 고마웠고 내 자신이 힘겨워보였다.
이런 종류의 외로움과 고마움은 아주 가끔, 아무때나 찾아온다.
내일이면 표면 위로 증발해버릴 가벼운 무게 정도,
하지만 언제나 주변을 맴돌며 내 호흡기를 드나들 외로움 따위.

나를 위로하던 녀석을 눈을 바라보며 어깨를 토닥이다
다시 울컥하고 말았다.

언제부터 그랬던 것일까. 난.

2010년 4월 22일 목요일

벌써 두 달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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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에 온지도 이제 2달째 접어든다.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 일을 했는데 5-6년 전 정신없이 일했던 어느 해가 자주 겹쳐진다. 아직도 서툰 중국어로 강의하고 회의하고 소통하며 일하고 있는 나를 돌아보며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전보다 더 자주 생각하게 된다. 몇 번이고 중도에 그만두려고도 생각했지만 주변의 스승님과 동료들과의 대화를 통해 다시 마음을 추스리며 버텨왔던 세월의 흔적들을 지금 조금씩 다시 풀어놓고 있는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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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게 누군가는 '너무 겸손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지금도 학생들 앞에 서거나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면 '자신있음'보다 '자신없음'이 먼저 고개를 든다. 어쩌면 이런 긴장감이 나를 더 다잡게 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노력하지 않는 내가, 좀 더 공부하지 않는 내가 보일 때마다 부끄럽고 왜소하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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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잡부'라고 말할 만큼 이 판에서 안 해본 게 없지만 늘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그만그만한 정도에 머무른 능력을 생각해보면 참 용케도 버텨왔다 싶다.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어가면서 느끼는 건 '원리'를 아는 것 만큼 좋은 건 없다는 것. 프로그램을 다루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원리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정말 천지차이인 것 같다. 20대 초반에 열심히 '수행'하면서 느꼈던 그 감정이 조금씩 되살아나는 것 같기도 하다. '원리'를 향해 달려가던 젊은 날, 조금씩 알아가는 지금, 주변이 조용해지는 상황이 되면 어김없이 내 삶의 원리와 도리에 대해 화두를 품게 되는 건 고질병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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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으로 하루하루를 넘겨내고 있다. 때론 즐겁고, 때론 뿌듯하며, 때론 힘겨운 날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