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월 27일 금요일

단상

1
설(춘절)이 다가오면서 장춘의 벗들도 모두 고향으로 돌아간다. 중국에서 설을 쇠게 되는 내게 걱정의 말과 훗날의 재회를 약속하며 고향으로 향한다. 여기저기서 터지는 폭죽에 깜짝깜짝 놀라면서 설이 가까워져 왔음을 실감하고 있다. 모두들 고향가는 길 편안하길.


2
TV에서 중국 춘절(설)에 대한 특집보도를 해주는데 엄청난 숫자의 서민들이 고향으로 가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모두 외주에서 대도시, 번화한 도시로 일을 하러 간 사람들인데 표를 구하지 못해서 혹은 회사에 일이 많아서라고 한다. 그 사람들은 한국으로 말하면 3D업종 종사자에 비정규직들이니 춘절이 되면서 이래저래 마음이 더욱 쓸쓸하지 않을까 싶다. 거리상으로만 생각해봐도 그들이 춘절을 보내기 위해 고향이 가는 건 거의 외국에 나가는 정도가 되지 않나 싶다. 동북 장춘에서 저 아래 광주 심천까지 가는데만 해도 기차로는 며칠, 비행기로는 5-6시간이 걸리니 말이다. 춘절에 이동인구는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게다가 입석이나 기타 가장 저렴한 좌석표를 구하더라도 기차를 타지 못하는 일이 빈번하다고 한다. 이 많은 인구에 기차 수는 턱 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좀 전 TV에서 본 영상에서는 승무원이 큰 소리로 기차의 모든 창문을 열테니 창문으로라도 탈 수 있는 사람은 타고 내릴 수 있는 사람은 내리라고 한다. 60-70세 되는 노인들도 차창을 넘어서 기차에 타지 않을 수 없다. 자칫하면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안전사고 및 수 많은 소매치기, 도둑들의 활개는 기쁜 날을 불행하게 만들기도 한다. 동북같은 경우는 눈이 많이 내려 기차가 움직이지 못할 때 기차에서 내린 후 걸어서 집으로 가기도 한단다. 어떤 경우엔 몇 시간 많게는 열 몇 시간을 꼬박 걸어야 도착한다고 하는데 그렇게라도 고향에 가는 사람들의 얼굴은 만면에 웃음이 가득하다. 부디 중국의 가난한 서민들 무사히 안전히 고향에 도착하길.


3
한국에서 어떤 일 때문에 전화가 왔는데 그 일이 확정이 되거나 결정이 되면 원래 계획보다 일찍 한국에 들어가야 할 듯 하다. 결정이 늦어지거나 안될 경우엔 원래 계획대로 만날 사람들을 좀 더 만나고 가야할 듯 하다.


4
한국에서 고향으로 향하는 가족들, 친지들, 친구들, 소중한 인연들 모두 무사히 안전히 집에 도착할 수 있길.


5
외국에서 설을 보내는 소중한 인연들, 친구들 모두 건강하고 즐겁게 지내길.

2006년 1월 19일 목요일

혼다 광고 - 폴리 사운드

광고에 등장하는 모든 사운드를 폴리 사운드로 처리한 멋진 광고 한 편.
outsider님 블로그에 올라온 포스팅.


관련 광고 보러 가기
Watch를 누르면 광고를 볼 수 있다.



전에 애니메이션 졸업 작품을 만들 때도 사실감을 높이기 위해서 슬리퍼 끌리는 소리, 설겆이 하는 소리, 찌개끓는 소리 등을 직접 물건을 이용해 소리를 만들었다. 간혹 폴리 작업은 실제 영상과 관계없는 물건을 가지고 소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는데 사람의 입으로 사실감있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건 참 어려운 일이라 할 수 있다. 학교 후배 작품 중에, 혹은 외국 작품(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_-; 두 남자가 버려진 아기를 위해 이야기를 해주고 자장가까지 불러주는 내용인데...) 중에 사람의 목소리로만 모든 사운드 이펙트를 만들어낸 경우가 있는데 사실감이 느껴지는 건 물론이거니와 색다른 사운드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제작과정을 보면 사운드의 대부분을 직접 녹음을 하고 사람이 연기를 해서 소리를 만들어 내는 걸 알 수 있다. 비단 이 애니메이션 뿐만이 아니라 많은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폴리 작업은 아주 중요한 수단이 되곤 한다.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라는 일본영화를 보면 라디오 드라마에 얽힌 에피소드 끝에 노인 한 분이 나와 폴리를 직접 시연하는 명장면이 있다. 폭죽이 터지는 소리를 동전 하나와 노트 한 권으로 만들어 내는데 폴리 작업의 진수라고나 할까.


기계가 만들어 내는 소리가 아닌 사람의 입과 몸을 이용해 만들어 내는 소리는 인체가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과 신비함을 창조적 도전정신에 바탕해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더더욱 주의를 끌게 한다. 그런 면에서 혼다 광고의 사운드 이펙트는 광고 자체의 완성도와 더불어 멋진 발상이자 상당한 사운드적 충격과 쾌감을 선사한다.


폴리(Foley)는 "음향효과의 제작방식 중 하나 촬영중에 녹음된 대사음대에 플라스틱 물컵을 이용한 말발굽소리나 얇은 금속조각을 이용한 천둥소리 등등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인공적인 음향효과를 더빙하는 것"을 말하는 데 잭 폴리(Jack Foley)라는 사람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음향편집자는 배우가 실제로 움직이는 것처럼 녹음실에서 걷거나 뛰거나 하면서 소리를 만들어 내는 사람. 이러한 소리는 세트 현장에서 모두 녹음되는 것은 아니며 정확한 소리를 모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배우가 나오는 화면을 보면서 편집단계에서 동시녹음되기도 한다. 음향편집자가 만든 소리들은 대개 35mm 마그네틱 필름에 녹음된다.

긴 봄을 기다리는, 장춘에서.

1
이야기 중에 우연히 나온 얘기들. 전에도 생각해봤던 거지만 이런저런 상황 탓에 쉽게 해보지 못했던 것들인데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가 나오고 나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가능할지 어떨지 아무도 모르지만 한 번 해봄직 하다. 그 몇 개 중에 하나라도 잘 풀린다면 적극적으로 고민해 볼 만 하겠다.


2
쌓인 눈이 녹지 않고 계속 빙판을 만들어내곤 있지만 왠지 쌀쌀한 게 상큼한 느낌의 장춘이다. 겨울보다 긴 봄을 원하는 탓에 이름을 장춘이라 명명한 것일까. 장춘의 봄은 순간이지만 이름 탓에 포근하게 느껴지는 도시이기도 하다.


3
장춘에서 설을 보내고 다다음 날 바로 연변으로 가기로 잠정 결정했다. 설 전에 어디로 이동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에 가깝기 때문에(표를 구할 수 없다) 북경을 다녀올 계획은 설 이후에 가는 것으로 변경했다. 연변에 사시는 형님도 다시 북경으로 가신다니 함께 움직이면 더 좋겠다.


4
부유하고 있다는 느낌. 전에 느끼던 자유로움과는 좀 다른 느낌.

2006년 1월 17일 화요일

체류기간 연장

국경을 넘은 후 30일 밖에 체류하지 못하는 비자문제 때문에 몇 가지 수고로운 일을 처리해야 했다. 여권이나 비자 자체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비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비자는 F비자. 그런데 비지니스 비자라 그런지 국경을 넘는 횟수는 제한이 없지만 일단 넘고 난 후에는 30일만 체류할 수 있게 되어있다.


먼저 내가 머물고 있는 곳 근처 파출소에 가서 외국인 등록을 해야 한다. 그런데 아는 후배들은 모두 외국인 등록조차 안하고 살고 있기 때문에 내 일을 도와주기엔 무리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호텔에 묵는다면 상관이 없겠지만 난 지금 그런 상황도 아니기 때문에 필히 장춘에 호적을 가지고 있는 친구를 찾아야 했다. 전에 결혼식도 참여한 적이 있고 친하게 지내는 쿠이이와 치우메이가 일을 도와주기로 했다.


또 한가지 문제는 외국인 등록을 하더라도 다시 30일 정도 체류기간을 연장해야 할 경우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 하고 그에 따른 담보(소개서 등)가 설정되어야 한다. 이 문제는 길림동화학원 선생님들에게 부탁을 해 처리를 하기로 했다. 내가 학교에서 한 달 동안 강의를 하는 걸로 설정을 하고(물론 강의는 하지 않는다) 이사장의 직인이 찍힌 소개서를 받기로 했다. 이사장은 나와 일면식이 있는 사람이지만 학교에서 한 번도 외국인을 위해 소개서를 쓴 적이 없다면서 조금 난처해 했다.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만약 내가 (그럴리야 없겠지만) 어떤 문제에 봉착하면 학교에서 일정부분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선생님들은 전혀 걱정하지 말라고, 아무 문제 없다고 장담한 반면 정작 실권자인 이사장의 태도에 살짝 당혹스러웠을 뿐이었다. 어쨌든 소개서는 받았다.


오늘 아침 일찍부터 친구 집 근처 파출소로 갔다. 친구들는 나를 위해 그들 둘의 신분증, 호적 등을 파출소에 제출하고 확인시켜야 했고 난 그들 집에 머물고 있다는(사실 후배 집에 머물고 있다.) 문건을 작성했다. 그 동안 파출소에는 아침부터 싸움을 해서 끌려온 젊은 친구와 택시기사(피해자)가 조사를 받고 있었고 사업하는 한국인들을 위한 거류증 발급을 위해 온 중국인과 기타 소소한 일들로 찾은 중국인들로 인해 파출소는 북적이고 있었다.


내 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경찰관은 아주 온화한 분위기와 말투였으나 어딘가 이상해서 친구에게 물으니 본인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분명 좋은 경찰같지는 않다고 한다. 내 눈에도 그렇게 보인다. 친구들의 신분이나 직업이 중국에서는 그래도 꽤 좋은 편에 속한지라 그들의 정황을 파악한 경찰은 친구에게 너무도 친절하게 대하고 어떤 높은 사람의 이름과 연락방법에 대해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어디나 이런 종류의 사람은 있겠지만 알려진 바와 같이 중국은 좀 심한 편이긴 하다. 하지만 이런 사람을 알고 있으면 또 나중에 도움을 받을 일도 있겠지. 악순환의 연속인 셈이다.


등록표 두 장을 작성해 한 장은 파출소에 한 장은 공안국에 제출해야 했다. 파출소를 나오는데 한 경찰이 택시기사를 때린 젊은 친구에게 핸드폰을 건네면서 뭐라뭐라 한다. 젊은 친구는 조사를 받던 방에서 다른 방으로 들어가 몰래 전화통화를 한다. 친구는 분명 젊은 친구가 아는 사람들 중에 경찰과 친분이 있는 사람이 있어 경찰에게 바로 전화를 했을 테고 그 친구는 통화 후 약간의 벌금만 물거나 훗날 거한 대접을 하겠노라는 약속을 하면 바로 집으로 돌아갈 거라고 말한다. 분명 그럴 것 같다. 힘 없고 죄 없는 택시기사는 얼굴에 상처를 남길 것이고 추운 겨울에 찢어진 상처를 어루만지며 집으로 돌아가 쉬다가 다시 일터로 나갈 것이다. 그에게는 아무런 죄도 없어보이지만 왠지 더 경찰에게 위축되어 보였다. 또 어느 날은 그 택시기사도 좋은 관계(꽌시)를 맺게 되면 다른 위치를 갖게 되겠지.


다시 친구와 공안국으로 갔다. 서류 처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약 3일 후 여권 및 거류증 등을 찾으러 가면 된다. 비로소 한 달 정도 더 중국에 있을 수 있게 되었다.



* 서류 작성 때문에 사진이 필요해 사진관에 갔는데 촬영실에서 사진사가 나올 때 슬쩍 보이는 한 젊은 여자의 상반신. 마치 옷을 벗고 있었던 듯. 사진관 분위기도 좀 묘해서 호기심에 물어왔다. "안에서는 무슨 촬영을 하느냐", "젊은 여성들이 젊을 때 기념으로 자신의 사진을 남기고 싶어해서 찍는 사진이다." 속으로 생각하길 아마 세미누드를 찍나 보다 싶었다. "그럼, 예술사진이네?^^". "뭐, 그런 셈이지" 중국도 여전히 변화하는 중이다.

* 내 증명사진은 중국애들 스타일로 뒤에 빨간 배경 천을 대고 찍었다. 현상수배범같은 느낌이지만 느낌이 색다르긴 하다. 배경 천은 사진사 조수가 내 뒤에 서서 들고 있었다. 허.참.

2006년 1월 15일 일요일

오랫만의 긴 대화.

길림동화학원에 있는 조선족 선생님과 어제 새벽 3시까지 얘기를 나눴다. 애니메이션 계에 오랫동안 몸 담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족이나 한국사람들과 접촉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선생님은 내게 물어볼 게 꽤 많은 듯 했다. 일반적인 생활습관이나 경제상황부터 애니메이션에 이르기까지 여러 질문을 하고 난 아는만큼 답변을 해드렸다.


3년 전에 처음 알게 되었지만 이번처럼 이야기를 오래 하기는 처음이다. 물론 이것도 내가 그 분에게 컴퓨터 소프트웨어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하면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전에는 컴퓨터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던 선생님은 내가 한국에서 보편화 되어있는 소프트웨어에 대해 몇 가지 설명을 해주고 다루는 법을 알려주니 많은 생각이 든다면서 꼭 배워야 겠다고 말한다. 세계적으로 애니메이션을 하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툴은 대동소이하지만 중국에서는 조금 특별한 양상을 보이는 것 같다.


중국 애니메이션 계가 모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대체적으로 3D에 치중하고 2D는 OEM 외엔 별로 투자를 하지 않는 듯 보인다. 그렇기 때문인지 한국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일반 소프트웨어도 이곳에서는 특별히 관심을 가진 몇몇 사람들만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북경과 상해같은 대도시와 장춘은 다른 양상을 보일 게 틀림없다. 그 많은 얘기가 오가면서 나도 좀 더 중국의 어떤 부분에 대해 좀 더 이해를 하게 되었다.


가끔 선생님이 하는 한국말(조선말)이 중국어를 그대로 직역을 하는 식이어서 잘 알아듣지 못할 때도 있지만 그럴 때는 중국어로 소통을 한다. 참 색다른 소통의 방법인 듯 싶다.


선생님은 대화를 끝내고 나서 계속 새로운 영감이 떠오른다고 좋아하시니 앞으로 하는 교학이나 작업들이 순조롭게 잘 풀렸으면 좋겠다.

2006년 1월 13일 금요일

오해와 진심

말(言)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 있고
나도 상처를 받을 수 있다.


또한
상대방에게 위안과 행복을 줄 수 있고
나도 위안과 행복을 받을 수 있다.


내용은 옳지만
말하는 방법이 썩 좋지 않다.
내용은 그저그렇지만
방법만으론 별 문제없이 지나갈 수 있다.


사람들과 맞춰 사는 방법이 있고
굳건히 자신의 신념을 고수하는 방법이 있다.
두 가지 모두 함께 병행이 가능하지만
분명 둘 중 하나는 점점 약해질 수 있다.


오해는 진심으로 풀 수 있지만
진심은 쉽게 오해를 받을 수 있다.
지금은 틀리지만 나중엔 옳다고 느낄 수 있다.
지금 옳아도 계속 틀릴 수도 있다.


한 발을 떼면 넘어지지 않게 다른 한 발을 떼어야 한다.

예민하지만 게으른 족속들




위 글을 읽고 난 후 얼마나 마음이 찔렸는지 모르겠다. 내가 꽤 실력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앞서가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게으름을 피우는데 일가견이 있는 것 같고 보는 것만 고수인 것 같아 속내를 들킨 듯 얼굴이 화끈거렸다.


물론 남들의 탄성을 자아낼 정도는 아니었지만 작은 일들에 대해 미리 예측 해 맞추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빼어난 나만의 촉수가 있거나 혜안이 있었다는 뜻은 아니다. 어쩌면 몸을 움직여 이뤄내는 경우보다 입으로, 말로만 살아온 것은 아닌가 돌이켜 보게 된다.


그건 어쩌면 내가 언제부턴가 남들과 함께 잘 어울리지 못하는 습성과도 관계가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고집이 세다고 비난을 받기도 하고 잘난척 한다고 뒷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여전히 내 스스로의 생각과 행동에 큰 부끄러움은 없다고 믿는다. 다만, 이러한 내 태도, 자세가 결코 작품을 만들거나 생활의 질을 높이는데 직접적 영향을 주진 않았다는 것이다. 생각이 가슴까지 닿질 않고 가슴이 몸을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몸으로 움직여 뭐든지 이뤄내고 만들어 내는 게 중요함을 다시 또 반성한다.


멀리서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고 있는 친구의 글을 읽고 솔직히 감동했다. 어쩌면 그렇게 사는 사람은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었을지 모를 일이지만 게으른 내겐 위 글과 더불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아니, 이젠 많은 생각도 필요없겠다. 움직여야지. 조금만, 조금만 더 움직여야겠다.


삶은 어쨌건 단 한 번이다.

눈 쌓인 장춘, 한 PC방에서...

아는 한 동생은 한국으로 돌아갔고 다른 한 동생 남자친구도 한국으로 갔다. 장춘에 내가 아는 한국아이 중에 컴퓨터를 가지고 있었던 단 두 명이 모두 떠났다. 이들의 컴퓨터를 쓰려고 노트북을 챙겨오지 않은 불찰은 이제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 되었다. PC방에 가서 인터넷을 하면 그만이겠지만 그것도 그다지 편치는 않다.


장춘에 온 지 벌써 일주일이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가 버렸다. 그 동안 잘 알고 지내던 길림동화학원 교수님들 몇 분과 번갈아 만났고 오랜만에 중국 친구들도 만났다. 체류기간 연장에 대한 부분만 해결되고 나면 맘 편히 계획 세워 움직일 수 있을 것 같다.


어제는 밤 늦게 12시 다 되어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소복하게 눈이 쌓인 장춘 거리를 가로 질러 PC방에 왔다. 아주 한적한 오후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조금 전 한국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본 YTN뉴스에서 황우석 박사 이야기와 김정일 중국방문 행방 묘연에 관한 뉴스를 본 터지만 그다지 마음이 동하지도 않는다. 그저 한 작은 도시에 있는, 한글을 입력할 수 있는 PC방에 와 있는 것 외엔 특별히 다른 감상은 침범하질 않는다.


한국 핸드폰을 로밍해서 오긴 했지만 내게 연락을 할 사람은 중국 전화로 연락을 하면 더 좋겠다.


전화번호는 86-13654300313 이다.

2006년 1월 3일 화요일

중국, 장춘 도착.

9시 40분 비행기, 11시 즈음 장춘 도착.
장춘 공항이 완전히 새롭고 멋지게 변했다.
롱지아(龙嘉)란 이름으로 거듭났다.
시내에서는 꽤 멀어서 길림시와 장춘시 중간 즈음이 되는 듯 싶다.
전에는 택시타고 시내에 진입했는데
이제는 공항버스를 타고 시내에 들어온 후 택시를 탄다.


생각보다 덜 춥다.


장춘에서 일단 반가운 얼굴들 만나고
얘기 나누고 사는 얘기 좀 하고 그래야지.
다행히 길림동화학원은 방학을 1월 중순 즈음에나 한다고 한다.
교수님 몇 분 뵈야겠다.


장춘시 핸드폰 sim카드 사러 나가야겠다.


오랜만에 오는 장춘이지만 여전히 반갑고 낯설지 않다.
말이 좀 꼬여서 탈이지만.-_-;

2006년 1월 2일 월요일

복과 풍요


낡고 허름한 곳이라 차별을 두지 마시고
싸구려 등을 걸었다 업수이 여기지 마시고
이 불빛 따라 당신의 마르지 않는 복과 풍요를 나눠주시길.
몇 숟갈 안되는 갓 지은 밥, 기꺼이 나눠드릴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