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12일 수요일

서호(西湖)



2002년에 처음 가본 항주 서호(杭州西湖), 그 이후 2004-5년 즈음에 한 두 번 더 가봤을까. 다시 갔을 때는 서호를 제대로 본 기억도 없는 것 같다. 여전히 내 머릿속에는 2002년에 처음 본 안개 가득한, 비가 내려 촉촉히 젖은 운치있던 서호만이 기억날 뿐이다.

그리고 2010년 항주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 갔다가 없는 시간 쪼개서 저녁에 잠깐 가 본 서호는 그야말로 신천지였다. 낮의 모습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밤의 서호는 많은 사람들이 산책하기 위해 휴식을 위해 몰려드는 관광명소가 되어버렸다. 예전의 운치있는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즐비한 명품점과 찻집, 커피숍, 술집들이 즐비했다.

이번에 본 서호 물론 아름다웠다. 도로 정비도 잘 되어있었고 씨티사이클 제도이나 조경 등 전체 설계가 참 괜찮았다. 다만, 내 기억 속의 서호와는 너무 큰 변화였기 때문에 그저 신음에 가까운 감탄만 뱉어낼 수 밖에 없었다. 평생 다시는 안개 자욱한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서호를 볼 수 없다는 게 아쉽다.

아름다운 야경 속에서 기억을 더듬으며 운치있는 서호를 거닐던 모습을 떠올리는 것조차 어려움을 느낀다. 그러면서 한 편으론 지금의 서호 근처에서 휴식을 취하며 자연과 문명을 향유하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린다.

2010년 5월 9일 일요일

중국 애니메이션 일대종사 터웨이(特伟)

4월 28일에 개막했던 제6회 항주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第六届杭州动漫展:CICAF)에 다녀왔다. 이번에 준비하는 행사(제1회우한중한일대학생디지털아트비엔날레)를 홍보차 간 건데 한 번도 CICAF에 참여해 본 적이 없어 나름 기대가 됐다.

CICAF 첫 인상은 무척 규모가 크다. 정말 화려하게 준비했다라는 인상이 강했다. 특히 이번엔 특별초청인사로 아바타 아트디렉터 등과 쿵푸팬더 감독 등이 방문을 하는 등 '돈 많이 들였다'라는 느낌이 많았다. 그 외 초청인사들도 대부분 국제적으로 명망이 있는 저명인사들인지라 이번 행사는 그야말로 '별들의 잔치'가 아닌가 싶을 정도 였다. 그들과 관련된 행사는 입장료만 500원-1000원(인민폐)에 육박하는지라 가서 볼 엄두도 나지 않았지만(솔직히 별로 듣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일단 겉으로 보고 들은 규모만으로는 정말 중국다운 스케일이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행사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느낀 감상은 그야말로 '실망'이었다. 보안 검색대는 사소한 물병하나도 지니지 못하도록 엄격한 듯 보였지만 간혹 행사장 근처에서 담배를 피거나 물을 마시는 사람들이 보였고 경비를 맡은 이들의 보안의식은 느껴지지 않았다. 매표소에는 사람들이 편하게 글을 적거나 명함을 집어넣은 곳조차 없이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어 내외국인 전문가들은 불편함을 느껴야만 했다. 행사장에는 지하, 1층, 2층으로 구분이 되어있었는데 만화, 애니메이션을 위한 페스티벌이라기 보다는 크고 작은 상점들이 가득한 장터가 된 느낌이 강했다. 앙시나 히로시마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서울의 SICAF, 부천의 PISAF를 다녀본 나로서는 실망할 수 밖에 없는 풍경이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정작 하고 싶은 말은 '터웨이(特伟)' 감독에 대한 것이다. CICAF에서는 이번에 터웨이 감독 회고전을 준비했다. 터웨이 감독은 국제시사만화가로 시작했지만 후에 '피리부는 목동(牧笛)', '산수정(山水情)', '올챙이 엄마를 찾아(小蝌蚪找妈妈)', '오만한 장군(骄傲的将军)' 등 중국 애니메이션 초창기에 한국의 신동헌 감독, 일본의 데즈카 오사무 감독과 같이 중국 애니메이션의 부흥기를 주도했던 중요한 인물이다. 특히 그가 만들어 낸 '수묵 애니메이션'은 현재 그 누구도 다시 재현할 수 없을 만큼 기술적, 예술적 성취도가 높은 작품으로 당시 중국의 애니메이션 창작에 대한 열정과 기술력을 세계에 알린 중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초대 대표로 있었던 '상해미술영화제작소(애니메이션 스튜디오)'는 중국 애니메이션의 심장이라 불릴만큼 상징적이었고 당대에 만들어 냈던 수 많은 단편 애니메이션들은 캐나다의 NFBC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현재 '상해미술영화제작소'는 여의주 잃은 용이 되었고 여의봉없는 손오공이 되어버렸지만 여전히 그 위엄은 간직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를 따랐던 수 많은 애니메이션 감독들은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창작 애니메이션을 만들며 부흥기를 이어갔지만 애석하게도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그들의 모든 재능과 미래를 앗아갔고 중국의 애니메이션은 맥을 끊기고 말았다. 다시 애니메이션에 집중하려했을 때는 이미 중국의 대부분 애니메이션 회사들은 하청업체로 전락한 상태였다. 그러다 다시 조금씩 창작 애니메이션에 대한 희망을 일으키며 전국 곳곳에 애니메이션 관련 대학들이 생겨났고 애니메이션 회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 CCTV 등이 앞장서서 애니메이션의 부흥을 외치고 있는 중이다.

이렇듯 중국 애니메이션 역사에서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위대했던 터웨이 감독은 작년에 95세의 일기로 타계했다. 이를 계기로 CICAF에서 터웨이 회고전을 준비했는데 회고전 장소를 가보고는 질색을 하고 말았다. 지하 전시실 외진 구석에 별다른 영상물도 없이 사진과 작품 이미지만 잔뜩 붙여놓고 '중국 애니메이션 일대종사 터웨이'라고 써놓은 것이다. 문득 가슴이 아팠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위대한 감독이 자본과 정부의 '애니메이션 놀음 잔치'에 찬밥 신세가 되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팠다.(CICAF는 항주시에서 적극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는 애니메이션 관련 행사다)

중국은 현재 전국 곳곳에서 애니메이션의 부흥을 부르짖으며 애니메이션 육성기지를 건설하는 등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는데 그저 허장성세에 불과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터웨이 감독이 푸대접을 받고 있는데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을 집중하고 산업을 육성한다는 게 오히려 괴이하게 여겨졌다.

그러다 문득 한국의 신동헌 감독이 생각났다. 한국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풍운아 홍길동'을 만들고 7개월 후에 다시 '호피와 차돌바위'를 만들었던 신동헌 감독. 애니메이션 회사들의 횡포에 견디지 못하고 애니메이션 계를 떠났던 위대한 애니메이션 감독. 일전에 모 방송국에서 방영한 신동헌 감독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그가 만든 '풍운아 홍길동' 원본 필름을 찾으로 '데즈카 프로덕션'을 방문했던 장면이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초라한 노신사 신동헌이 방문했던 데즈카 프로덕션은 데즈카 오사무 감독의 작품들로 너무도 멋지게 장식이 되어있었고 그의 명맥을 훌륭하게 이어가고 있었다. 반면 신동헌 감독은 자신의 필름을 고국이 아닌 이국타향에서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아프게 했다.

한국과 중국의 모습은 다른가. 홍길동 기념사업회도 있고 홍길동 복원프로젝트도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신동헌 감독은 중국의 터웨이 감독의 모습과 겹쳐있다. 한국의 애니메이션 정책, 산업, 교육 역시 중국의 그것과 겹쳐있다. 애니메이션을 하는 사람으로서 그들에 대한 푸대접은 서글프기만 하다.

중국 항주에서 터웨이 감독의 초라한 회고전을 보며 터웨이 감독과 신동헌 감독을 위해 뭔가 조촐하게라도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능하다면.

2010년 4월 23일 금요일

외로움

아는 동생이 묻는다.

'오빠, 아직도 외로워요?'

'응? 언제 내가 외롭다고 했던가?'

'아니, 그렇게 보여요.'

'아... 음...'

사실 대화하는 내내 나도 내 표정이 좀 슬픈 듯 했는데
세심한 녀석은 기어이 묻고야 만다.

'사실, 다 외로운 것 아닌가?'

'..... 그런가요?'

뻔한 답변이지만 그 대답으론 녀석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렇다고 속을 다 드러내 보일 수는 없는데
내 눈은 상대방을 속이는데 익숙하지가 않다.
입은 웃고 있어도 눈에 머문 외로움은 쉽게 떨구어지지 않는다.

'언제 외로움을 느껴요?'

'그러게... 꼭 외롭다고 느낀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또 언제 만날지 모르는 상황이라 꼭 듣고 싶은 시선을 보낸다.
잠시 망설이다 이윽고 체념한 듯 입을 열었다.
아니, 사실 어쩌면 조금은 녀석과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같은 방향을 보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쉽지 않는 것 같아.
설령 결혼한 사이라 해도 닭살이 돋을 만큼 공명을 한다는 건 쉽지가 않잖아?
물론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상대가 세상에 존재할지 어떨지 모르겠어.
가령, 과거에 어떤 사람의 글을 읽고 흥분이 된다 하더라도 실제 그 사람과 함께
삶을 공유하고 같이 생활하다 보면 스스로의 환상과 이상이 무너지기도 하는 것처럼.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하기엔 버겁고 그걸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없다고 느껴지는 어떤 날,
가끔이긴 하지만 외롭다고 느껴져.'

'전에 그런 사람이 있었어요?'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역시 함께 삶을 공유하게 되면 또다시 원점이 될지도 모를 일이지.
겪어보지 않은 일을 가지고 말을 하긴 뭐하지만...'

조금은 공감하는 표정을 짓던 녀석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
그리고 마치 나비의 날개짓처럼 가볍게 하지만 의미있게 입을 열었다.

'...그 맘, 조금은 알 것 같아요...'

문득 녀석이 고맙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왈칵 외로움이 밀려왔다.
만약 술이라도 마셔서 취기가 오른 상태라면 눈물이 흘렀을지도 모르겠다.
취기에 그 분에게 전화했던 때처럼 소리내며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알 것 같다니, 내가 고맙다.'

어두워지만 창 밖과는 달리 녀석의 표정은 조금씩 밝아졌다.
난 계속 가슴 속을 누르는 상태가 되고 얼굴을 조금 발갛게 달아올랐다.

녀석이 고마웠고 내 자신이 힘겨워보였다.
이런 종류의 외로움과 고마움은 아주 가끔, 아무때나 찾아온다.
내일이면 표면 위로 증발해버릴 가벼운 무게 정도,
하지만 언제나 주변을 맴돌며 내 호흡기를 드나들 외로움 따위.

나를 위로하던 녀석을 눈을 바라보며 어깨를 토닥이다
다시 울컥하고 말았다.

언제부터 그랬던 것일까. 난.

2010년 4월 22일 목요일

벌써 두 달이 지났다.

-
우한에 온지도 이제 2달째 접어든다.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 일을 했는데 5-6년 전 정신없이 일했던 어느 해가 자주 겹쳐진다. 아직도 서툰 중국어로 강의하고 회의하고 소통하며 일하고 있는 나를 돌아보며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전보다 더 자주 생각하게 된다. 몇 번이고 중도에 그만두려고도 생각했지만 주변의 스승님과 동료들과의 대화를 통해 다시 마음을 추스리며 버텨왔던 세월의 흔적들을 지금 조금씩 다시 풀어놓고 있는 듯 싶다.

-
늘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게 누군가는 '너무 겸손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지금도 학생들 앞에 서거나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면 '자신있음'보다 '자신없음'이 먼저 고개를 든다. 어쩌면 이런 긴장감이 나를 더 다잡게 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노력하지 않는 내가, 좀 더 공부하지 않는 내가 보일 때마다 부끄럽고 왜소하게만 느껴진다.

-
스스로를 '잡부'라고 말할 만큼 이 판에서 안 해본 게 없지만 늘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그만그만한 정도에 머무른 능력을 생각해보면 참 용케도 버텨왔다 싶다.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어가면서 느끼는 건 '원리'를 아는 것 만큼 좋은 건 없다는 것. 프로그램을 다루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원리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정말 천지차이인 것 같다. 20대 초반에 열심히 '수행'하면서 느꼈던 그 감정이 조금씩 되살아나는 것 같기도 하다. '원리'를 향해 달려가던 젊은 날, 조금씩 알아가는 지금, 주변이 조용해지는 상황이 되면 어김없이 내 삶의 원리와 도리에 대해 화두를 품게 되는 건 고질병인 듯 싶다.

-
몇 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으로 하루하루를 넘겨내고 있다. 때론 즐겁고, 때론 뿌듯하며, 때론 힘겨운 날들을.

2010년 2월 24일 수요일

희망을 품으며 희망을 경계한다.

'희망'처럼 상투적인 단어도 없지만 '희망'이란 말처럼 꿈을 꾸게 하는 단어도 많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희망을 자주 말하는 걸 경계한다. 희망없는 세상에서 희망은 너무나 쉽게 나오는 말이기 때문이다. 희망이란 말을 하면서 자신의 희망을 타인으로부터 취하려는 자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나와 너의 희망이 같아지려면 꽤 오랜시간을 대화하고 소통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가끔은 희망을 품는다. 조심스럽게, 급하지 않게 희망을 품는다. 그리고 너에게, 나에게 몇 번이고 묻는다. 희망이 무엇인지, 품어도 되는 희망인지. 급하게 품는 희망은 희망이 아니다. 경박하게 품는 희망 역시 희망이 아니다. 희망은 기다림이다. 흐르는 시간을 지켜봐야만 하고 그 시간 속에서 조금이라도 변해가려는 의지가 전보다 확고해져야 한다.

 

지금 당장 불만이라고 해서 희망을 품거나 희망이 금새 오지 않는다 해서 버리는 희망은 '희망'이 아니다. 어쩌면 여러 차례의 기회라고 생각되는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될 즈음, 어쩌면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할 즈음, 꺽인 허리를 펴고 기력없는 다리를 움직일 즈음 희망은 생겨나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희망을 품는 게 아니라 희망이 나를 품어 일으키는 지도 모르겠다.

 

 

무겁게 매달린 귤들이 모두 떨어져도 절대 먹지 않고 그대로 버린다는 지인(人)의 소위 '부자 귤나무'. 눈 앞에 싱그럽게 매달린 과실을 보면서도 먹지 않아야 하고, 바닥에 떨어져도 아까워하지 않고 버려야 하는 나름의 규칙은 기다림과 인내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모든 귤들이 떨어지고 버려진 후에 다시 열매 맺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2010년 2월 22일 월요일

호수

 

마음의 크기와 같다면,

품어 안을 수 있는 넓이와 같다면,

큰 일렁임 없이 고요할 수만 있다면,

오랜 세월을 여여하게 지켜낼 수만 있다면,

세상을 그대로 투영해 낼 수 있다면,

하늘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저 묵묵히 흘러갈 수만 있다면,

주변을 촉촉하게 적실 수만 있다면,

깊은 색깔을 가질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2010년 2월 20일 토요일

새해엔 달콤하시라고 증지위가 권합니다.

 

홍콩영화의 감초, 증지위를 잘 아시지요? '첨밀밀'에서 미키마우스를 문신했던, 쓸쓸하고 비극적 최후를 맞았던 그 배우 맞습니다. 증지위가 나오지 않는 영화가 없을 정도로 참 많이도 등장하죠. 일설에 의하면 증지위가 연예인들이 자주 가는 미용실에서 일하고 있던 유덕화를 발굴해 낸 장본이라고도 합니다. 영화에서만 보던 증지위를 춘절(chūn jié;춘 지에-한국의 '설')에 마트에 갔더니 이렇게 활짝 웃으며 사탕을 권하고 있네요. 사실 한국의 연예인들의 상품광고에서 보는 거랑 별 다를 바가 없는데도 괜히 기분이 다르게 느껴집니다.^^

 

왼쪽에 노란 글씨로 크게 적혀져 있는 글은 新年糖(xīn nián táng;신 니옌 탕-새해 캔디?)이고 오른쪽 분홍 글씨로 적힌 글은 酥心糖(sū xīn táng;쑤 신 탕-브랜드 이름인 듯 합니다.)이네요.

 

새해엔 달콤한 사탕을 먹으면 좀 더 행복해지려나요?^^

새해 복 많이 짓고 받으시고 그리고! 달콤해지세요. :)

 

한 가지 더,

 

중국에서는 새해가 되면 집 안에 전구가 들어있는 복(福)자가 적혀진 빨간 종이 등을 밤새 걸어두기도 하구요. 현관문에는 春联(chūn lián;춘 리옌) 또는 对联(duì lián;뚜이 리옌)이라고 하는 종이를 좌우로 붙이고 가운데는 뒤집어진 복(福)자를 붙여두고 위에는 역시 복이 들어오기를 기원하는 글을 붙여두는데요. 이건 춘 리롄 혹은 뚜이 리옌은 한국에서 현관이나 문기둥에 '입춘대길', '만사형통'과 같은 글을 써서 붙여두는 것과 같은 겁니다.

 

그리고 위 사진과 같이 집 안 내부 곳곳에 그 해에 맞는 띠 동물로 된 그림들을 걸어둡니다. 올해는 호랑이 해인 만큼 집 안 곳곳에 호랑이들이 넘쳐나죠. 사진 속 호랑이는 분홍색을 띠고 있는 걸 보니 여자 호랑이네요. 그림은 모두 남/여성 한쌍으로 되어있습니다. 호랑이가 들고 있는 글자는 恭喜发财(gōng xǐ fā cái;꽁 씨 파 차이-돈 많이 버세요)이라고 적혀있네요.

 

중국에서 춘절에 서로서로 '꽁씨파차이'라고 말하면서 덕담을 건넵니다.

 

집집마다 다르겠지만 춘절에 걸어 둔 그림들은 일년 내내 두었다가 새로운 해가 되면 내리고 다른 그림으로 교체해 걸곤 합니다.

 

중국의 춘절은 한국의 설보다 훨씬 더 북적거리는 것 같습니다. 하긴, 1년 동안 잘 모아둔 돈을 춘절에 다 쓴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중국의 경제 역시 춘절에 크게 들썩거리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춘절에 쉬는 날이 한국의 두 배 정도 되는 게 가장 부럽습니다.-_-a

 

2010년 2월 13일 토요일

명절

 

매번 명절이 되면 물건은 넘치고 넘치는 상품 속에 사람들이 넘실댄다.

평생을 써도 다 쓰지 못할 것 같이 쌓인 상품처럼 인간의 욕심은 끝닿는 곳 없고

욕심사이에서 방황하다 지쳐 눈을 감으면 욕심처럼 허망한 것도 없다.

저 수 많은 자본의 토악질 속에서 허우적대다 끝내 숨을 거두는 인간의 삶이

당장은 즐겁고 행복하지만 잠시 호흡을 멈춰 먼 발걸음을 두고 바라보면

내 몸에 휘감기고 내 마음에 들어앉은 현대의 삶이 꼭 어울리는 옷만이 아니었음을 알 때도 있다.

중국의 경품추첨의 규모는?

 

중국은 면적도 넓고 사람도 많다고 하잖아요?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사진 한 장 소개합니다. 중국에 장춘에 있는 欧亚;Ou Ya-오야 마트에 갔을 때 찍은 사진인데 春节;Chun Jie-춘지에(설)를 맞이하여 경품추첨행사를 한다는 플랭카드입니다. 위에서 두 번째 줄에 5000이라고 숫자가 보이시죠? 그 줄에 있는 글의 내용을 보면 추첨을 통해 5000명에게 茅台;Mao Tai-마오타이 술을 증정한다고 하네요. 세 번째 줄은 IMAX 3D영화 티켓 10000장과 생활용품 50만 개를 선물로 준비했다고 하네요. 물론 복권방식 등의 추첨을 통해서 주는 것이겠죠.

 

규모가 엄청나죠? 물건을 산 영수증 대로 기회가 주어진다니 매일매일 가서 쇼핑을 하면 그만큼 확률도 높아져서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상품을 받아가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만약 상품이 1인당 1개씩이라면 51만 5천 명(515,000)에게 줄 상품을 준비했다는 것이죠. 장춘시 인구는 대략 300만 명에 육박한다고 하니 장춘시 인구의 6분의 1에게 줄 상품을 준비했다는 거네요. 놀랍지 않나요?

 

물론 행사를 진행하는 欧亚;Ou Ya-오야 마트의 규모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하니 그럴만도 하겠다 싶지만 한국과 규모를 비교해보니 정말 놀랍기만 합니다. 사실 저런 내용을 보면 놀랍기도 하면서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기도 합니다.^^

 

플랭카드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 服饰类/钟表珠宝类/化妆品类/床品类/超市类/电器类/儿童商场

    5000瓶茅台酒滚动大抽奖发卷、投卷地点,

    10000张IMAX 3D影票 50万件适用礼品刮大奖活动地点、

    已迁至2F儿童世界旁

 

★ 5000瓶茅台酒滚动大抽奖现场、领奖地点

    已迁至-1F大西洋厅

 

------------------------------------------------------

 

경품추천이란 말은 抽奖 [chōu jiǎng]이라고 하며 한글음독은 [초우 지앙]입니다.

중국술 마오타이주는 茅台酒 [máo tái jiǔ]라고 하며 한글음독은 [마오 타이 지우]입니다.

설이란 뜻의 춘절은 春节 [chūn jié]라고 하며 한글음독은 [춘 지에]입니다.

 

춘절에 서로 하는 인사말은 "过年好"입니다. 过年 [guò nián;꾸어 니엔]은 설을 쇠다. 새해를 맞다라는 뜻이고 好 [hǎo;하오]는 좋다는 뜻이니 "새해 잘 보내세요", "명절 잘 보내세요"라는 뜻이 되겠죠. 그러니 설을 맞이해서 이렇게 인사하면 됩니다.

 

"꾸어 니엔 하오;过年好" :)

서점이 사라진 세상의 무식한 대학생

그대 이름은 무식한 대학생 - 홍세화 via 일상다반사 by 후박나무

 

글을 읽다 몇 가지 기억이 떠올라 적는다.

 

내가 다니던 대학 앞에는 소위 '대학로'라는 게 있었다. 크지 않은 도시였기에 젊은 대학생들은 대학로 그곳에서 대부분의 일과를 보내곤 했다. 그러니까 내가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는 대학 근처에 가면 크고 작은 서점이 곳곳에 있었고 전통 주점과 당구장, (비디오를 볼 수 있는) 다방 그리고 비교적 촌티나는 상점들이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대학에 입학한 후에 시대가 급변했고 대학로 역시 빠른 속도로 변해갔다. 당구장은 PC방과의 경쟁에서 밀리며 가격을 점점 인하하더니 하나둘씩 문을 닫기 시작했고 속칭 비디오 다방(커피숍)은 최신 시설을 구비한 비디오방으로 변해갔다. 촌티나는 상점들은 인테리어에 상당히 공격적인 투자를 하며 자리를 잡아갔고 전통주점은 '인동초'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 사라졌다.

 

사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가끔 들렸던 서점이 점차 눈에 띄지 않더니 어느샌가 시험준비를 위한 서점을 제외하고는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었다.

 

즈음, 마지막까지 남아서 인문학 서적을 팔던 서점이 한 군데 있었는데 서점 주인아저씨(기억으로는 형님뻘)는 소아마비였다. 한쪽 다리가 유난히 가늘었던 데다가 까만 뿔테 안경을 쓰고 있어 기억이 선하다. 약간은 차갑지만 온화한 기운이 흐르던 주인아저씨는 어느 날 서점을 찾았던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서건 말건 관심없는 듯 책들을 차곡차곡 쌓아서 묶고 있었다.

 

주인아저씨에게 "어? 서점 이제 안 해요?"라고 물었다. 주인아저씨는 다른 날과는 다른 좀 더 엄숙하고 조금은 침통한 표정으로 "네"라고 짧게 답했다. "어.. 여기가 대학로에서 마지막 남은 서점인데... 이제 어디에서 책을 사야 하나..."라고 주인아저씨가 들릴 듯 말 듯 혼잣말을 했는데 그 때 난 씁쓸하게 가느다란 웃음을 짓던 주인아저씨의 모습을 보았다. 난 그 쓸쓸하고 슬픔이 막 쏟아져 나올 것 같은 주인아저씨의 표정과 분위기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그 서점이 마지막으로 문을 닫던 날 부터 대학로는 급속히 유흥가로 변해갔던 것 같다. 그리고 더 이상 대학 교정(캠퍼스)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기타치고 노래하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고 어느 누구도 무언가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고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 것 같다. 내 기억 속에서 소위 '지성의 대학로'는 어느 짧은 시간동안 '무식한 대학로'로 부끄러움 하나도 없이 완벽하게 얼굴을 바꿔버렸다.

 

그때의 난 (지금도 그렇지만) 철이 없었고 사리분별이 명확하다고 할 수 없었지만 '서점이 자취를 감췄다'는 현실에 대해서는 큰 충격을 받았었다. '대학로'에서 서점이 사라지다니 그 보다 더 큰 충격이 있을까. 서점이 사라진 후의 대학로는 돈을 쓰는 자와 돈을 버는 자 두 부류만 남아 서로 물고 뜯는 일만 가득해지게 되었다.

 

오색의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대학로의 밤거리는 나름대로 꽤 운치가 있다. 하지만 날이 밝고 아침이 되면 (좀 과장을 하자면) 정신 못차리는 술취한 대학생들과 그들의 틈에 어지럽게 방황하는 고등학생과 젊은이들이 넘쳐났다. 누가 대학로를 그렇게 변하게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세상이 그렇게 변해가니 각자 살길을 찾아, 적응하기 위해 몸부림을 쳤을 것이다.

 

그때가 아마도 '독재타도'와 '민주주의'를 외치던 구호가 (지금도 큰 이슈인) '등록금 인하'의 구호로 바뀔 즈음이 아니었나 싶다. 사상과 철학, 이념의 목적이 뚜렷했던 세대가 무언가를 손에 얻어 쥐게 된 후엔 누구도 그 이후에 대해 논의한 바가 없었고 마치 방향잃은 부표처럼 흥청거리진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들어온 '새내기'들은 '4.3 추모집회'를 하던 '5.18 추모집회'를 하던 이젠 철지난 이슈와 이념으로 치부하며 함께 어깨걸기를 꺼려했고 대신에 '돈'을 들여 몸치장을 하고 '돈'을 쓰며 몸에 알코올을 붓고 사랑을 나누고 젊음을 탕진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 방향잃은 부표, 386세대들은 지금 정치를, 경제를 쥐락펴락하고 있을 텐데 그들이 원하던 '독재타도'와 '민주주의'는 문열이만 하고서 모두 함께 '먹고 사는' 문제로 가열차게 걸음을 옮겨버렸다. 그리고 그 이후에 (여러가지 이유와 원인들이 있겠지만) 대학로에 서점은 사라지고 책은 잃지 않는 대학생만 넘쳐나게 되지 않았나 싶다.

 

홍세화씨가 말한 '무식한 대학생'이란 말은 옳다. 하지만 대학생만 무식한 게 아니다. (물론 나를 포함해) 수 많은 성인(成人)들이 무식하다. 역사적 사실을 줄줄 꿰고 있다고 해서,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해서, 수 많은 고전들을 읽었다고 해서 유식한 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성인들은 무식하다.

 

하지만 홍세화씨가 대학생을 지칭해 무식하다며 깨어나야 한다고 외치는 목소리엔 충분히 공감한다. 근래에 개인적으로 내린 작은 결론, 세상의 수 많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대학생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물론 난 꼭 학벌에 속하는 '대학생'만을 지칭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젊은이들 중 열에 아홉은 대학생이라고 해도 무방하니 꼭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다만, 홍세화씨의 외침에, 질문에 반응을 보일 대학생들이 많은가라고 반문해보면 개인적으론 무척 비관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일은 아니지만 쉽지 않은 일임은 분명하다. 이런 생각들을 종합해보면 역시 대학생이 변하면 세상이 변할 수 있다는 희망 한 줌은 있다는 것이다.

 

홍세화씨의 글을 읽으며 나의 '무식'을 비수로 찌르는 듯 해서 아프고 비참했다. 무식해지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나의 유식은 금새 밑천을 드러내기 마련이라 스스로가 무식하지 않다고 항변할 수도 없다. 그래서 빨리 유식해지지 못할 바에야 스스로의 무식함을 절절히 곱씹어보고자 기억의 편린들과 몇 가지 생각을 두서없이 기록한다. 적어도 스스로 유식하다며 '자존자대'하는 우(愚)는 범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나.

 

 

** 링크 걸린 글 내용 중 '그대가 입학한 대학과 학과는 그대가 선택한 게 아니다. 그대가 선택당한 것이다'라는 말을 곱씹게 된다. 다시 말해 '내가 소신지원해서 간 대학'이 사실은 '대학들의 (줄세우기로 인한) 비열한 선택의 결과'임을 인정한다면 이 나라 교육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기괴한 시스템을 바로 잡지 않는다면 대학생들이 '무식의 굴레'를 벗어던지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2010년 2월 7일 일요일

250(二百五)은 멍텅구리, 바보, 천치!

오늘 우연히 식사를 마치고 금액을 지불하기 전에 미리 계산을 해봤는데 250원(二百五;Er Bai Wu)이 나왔거든요. 함께 식사를 한 분들은 웃으며 금액이 참 묘하다고 하는데 무슨 말인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 거리고 있었지요. 설명을 들어보니 250원은 '얼바이우'라고 발음이 되는데 이게 소위 '욕'이라고 하네요. 식사를 했는데 음식 값이 그렇게 나오면 기분이 썩 좋을리는 없겠지요.

 

암튼 푸우웬(服务员;Fu Wu Yuan-종업원)을 불러 영수증을 주고 계산을 해달라고 했지요. 아니나 다를까, 종업원이 계산을 마친 후 우리 쪽으로 걸어오는데 살짝 웃고 있더라구요. 종업원이 우리 테이블로 와서 웃으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음식값은 249원(二百四十九块钱;Er Bai Si Shi Jiu Kuai Qian)입니다"

 

우린 모두 웃음을 터트렸지요. 종업원도 함께 웃고 말았구요. 만약 종업원이 '얼바이우(250원)'라고 말한다면 손님들에게 '욕'을 하는 셈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영수증을 보니 음식값은 250원이 맞는데 -1원 할인이 되었다고 표시가 되었네요.^^

 

250원, '얼바이우(二百五;er bai wu)'는 멍텅구리, 바보, 천치라는 뜻(중국어 사전:naver/daum)이랍니다. 중국에서는 '바보, 신중하게 말하지 않는 사람, 일을 대충하는 사람, 웃음거리가 되는 일을 벌이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라고 하네요. 그냥 숫자인 것 같은데 '얼바이우'라고 말하면 '욕'과 같은 말이라 해서 꺼린다고 합니다. 심한 욕은 아니지만 듣기에 따라서는 심한 욕이 될 수 있겠지요? 중국에서는 '욕'이라고 하니 어디 가서 '얼바이우'라는 말은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래서 물건 값을 흥정할 때도 절충가격이 250원이라 해도 250원을 서로 말하다 보면 '욕'을 주고 받는 셈이 되니 249원이나 251원으로 가격 흥정을 한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싸움이 날지도 모르니 조심해야겠네요.

 

250이란 숫자를 부득이하게 말할 경우에는

1. 二百五-'얼바이우'라고 하지 않고 两百五;Liang Bai Wu-'량바이우'라고 하거나

2. 二五零;Er Wu Ling-'얼우링'이라고 한답니다.

 

250이란 숫자, 즉 '얼바이우'가 왜 멍텅구리, 바보, 천치와 같은 뜻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그 중에 몇 가지만 소개해 볼까 합니다.

 

전국시대에 苏秦(Su Qin)이란 달변가(설득에 능한 사람)가 있었다고 합니다. 6국(六国) 모두에게 신망이 두터운 상당한 실력가며 위풍당당했지만 많은 원수를 만들게 되었다지요. 결국 후에 제나라에서 살해됩니다. 그런데 제나라 왕이 苏秦의 복수를 하겠다며 나섭니다. 제나라 왕은 苏秦의 살해범이 바로 잡히지 않자 꾀를 한가지 냅니다. 苏秦의 시체에서 머리를 베어 성문에 걸어둔 후 방을 붙이는데 내용이 이렇습니다. "苏秦은 내부의 첩자였다. 그를 살해한 자에게 황금 천냥을 하사할 테니 와서 받아가라". 방을 붙인 후 苏秦을 살해했다는 네 사람이 등장합니다. 제나라 왕은 거짓말한 자는 가만두지 않겠다며 엄포를 놓지만 네 사람 모두 자기가 苏秦을 살해했다며 확고한 태도를 보입니다. 결국 제나라 왕이 네 사람에게 묻습니다. "상으로 내릴 황금 천냥을 너희 네 사람이 어떻게 나눌 것인고?" 네 사람은 한 목소리로 대답했답니다. "한 사람당 250냥(얼바이우)씩 나눌겁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제나라 왕은 크게 노하여 소리칩니다. "여봐라, 이 네 '얼바이우(250)'들을 당장 끌고 나가 참수하거라". 

또 하나의 이야기는 민간에 전해오는 이야기라는데요. 옛날에 수재 한 명이 있었답니다. 과거에 급제하여 이름을 날리고자 식음을 전폐해가며 공부에 매진했는데 단 한 번도 급제를 하지 못합니다. 결국 시간이 흘러 노년에 이르러서야 공명과 명리에 마음을 모두 접게 됩니다. 그제서야 마침 아들 둘을 얻게 되는데 수재가 일생의 성패(成败)에 대해서 생각해보니 감개가 무량하더랍니다. 그래서 아들 하나는 성사(成事), 다른 하나는 패사(败事)라고 이름을 지었답니다. 이후 수재는 집에서 아들들을 열심히 가르칩니다. 어느 날 수재는 큰 아이에게 300번, 작은 아이에게 200번 글쓰기를 시키고 아내에게 밖에 나갔다 올테니 두 아들이 글쓰는 걸 봐달라 당부하고 길을 나섭니다.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두 아들의 공부는 어땠는지 물어보니 아내가 대답하길, "쓰기는 썼는데 성사(成事)는 부족하고 패사(败事)는 넘칩니다. 둘 다 모두 250번씩 썼습니다."

다른 한가지는 중국 고대인들은 은(银子)을 량(两)의 단위로 구분했는데요. 보통 5백냥(五百两)이 정수였다고 하네요. 당시에는 종이에 잘 싸서 두었는데 500냥의 은을 잘 싸둔 종이 한 봉지를 '一封(Yi Feng-이펑)'이라고 했다네요. 그러니 250냥 은(银子)은 '一封(Yi Feng-이펑)'의 절반, '半封(Ban Feng-빤펑)'이 되겠지요? 그런데 이 '빤펑'이란 발음이 반쯤 미치다는 '半疯(Ban Feng)'과 발음이 같습니다. 그래서 후세인들이 실성하고 미친사람을 일컬어 '빤펑', 즉 250냥 은-'얼바이우'라고 불렀다네요.

현대에 와서는 (저도 참 좋아하는) 중국의 유명한 가수 伍佰(Wu Bai-우바이)의 노래를 배워도 잘 따라 부르지 못하면 잘해봐야 절반의 伍佰(우바이), 즉 半个伍佰라고 해서 '얼바이우(250)'라고도 한다네요.

 

혹시 중국에 가실 일이 있다면 '얼바이우(250)'는 말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

 

 

** 중국어로 금액을 말할 때는 십단위로 끝날 경우 맨 뒤 '0'은 발음하지 않습니다. 250은 원래대로 말한다면 '二百五十;Er Bai Wu Shi-얼바이우'라고 말해야 하지만 '0'은 발음하지 않기 때문에 '얼바이우'까지만 말합니다. 하지만 뒤에 돈의 단위가 붙으면 모두 말해야 하죠. 250원은 '二百五十;Er Bai Wu Shi Yuan-얼바이우스' 또는 '二百五十块钱;Er Bai Wu Shi Kuai Qian-얼바이우스콰이치앤'

 

그럼, 130과 130원, 270과 270원은 어떻게 발음하면 될까요?

2010년 2월 5일 금요일

Bobby Mcferrin의 유쾌한 실험-Pentatonic Scale

BOBBY MCFERRIN FUCKS WITH YOUR MIND

 

위 링크는  Bobby Mcferrin의  Pentatonic Scale에 대한 놀라운 영상이다.(Youtube로 보기)

 

처음 영상을 보고 나서 어떤 전율 혹은 깨달음 같은 게 마음 깊숙히 느껴졌다. 가슴이 뛰고 흥분되는 짜릿한 느낌.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나 그와 관련있는 사람들이라면 별 것 아닌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수 많은 생각과 고민, 한 편으로는 해답을 주는 영상이었다.

 

Pentatonic Scale은 오음계라고 하는데 온음(도레미솔라;궁상각치우)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영상에서 Bobby Mcferrin은 관중들에게 단 2개의 음만 일러준다. 그가 자리를 옮길 때마다 그에 맞는 소리를 내게 한 것인데 신기하게도(놀랍게도) 2개의 음을 지정한 자리를 벗어나 자리 이동을 하면 관중들은 정확히 그 자리에 맞는 음을 낸다.

 

동생은 음계라는 게 수학적으로 아주 정교한 것이고 과학적이라고 이런저런 설명을 해줬지만 솔직히 제대로 이해는 되지 않았다. 다만, Bobby Mcferrin의 유쾌한 실험은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특히 애니메이션에 관련해 어떤 생각이 순간 떠올랐는데 (거친 생각이지만) 말하자면 이렇다. 애니메이터가 원화/동화를 그린다고 할 때 사실 우리가 늘상 보고 느끼는 대로 표현하기 보다는 주입된 정보와 정해진 패턴에 의해 그림을 그린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영상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2개의 음만을 정해줬지만 나머지 음을 정확히 낼 수 있는 원리처럼 첫 원화와 움직임에 대한 감정만을 정해준다면 스스로의 감각을 통해,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보고 접했던 동작들을 자연스럽게 표현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조금 다른 측면으로 생각해 본다면 '음'이란 게 어릴 적부터 알게 모르게(학습/비학습) 접하고 익혀온 것이기 때문에 어떤 기준점만 형성해주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의식/무의식을 통해 표현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 1+1=2라는 공식을 자연스럽게 인식하고 있는 것과 같이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우리가 일정부분 세뇌를 당했다고 생각한다면 스스로가 인위적으로 거부하지 않는 한 공식과 시스템 대로 따라가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하나, Bobby Mcferrin의 실험 혹은 재현을 다른 방식으로 이용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이들의 학습이나 성인들의 교육에 응용한다면 기준점을 정한 후에 발산되는 폭들에 대해 무의식을 꺼낼 수도 있을 듯 하고 습관적으로 행해지는 행위들에 대한 되돌아봄(성찰)도 가능할 것 같다.

 

물론 '음악'이라는, '음'이라는 특수한 매개/매체만이 할 수 있는 일종의 실험일 수도 있겠지만 Bobby Mcferrin이 전해준 울림은 비교적 중요한 '화두'로 남는다. 영상을 다시 볼 때마다 짜릿함이 느껴지는 걸 보면 확실히 그렇다. 특히 그의 자리바꿈에 의해 관중들이 내는 소리에 맞춰 Bobby Mcferrin의 허밍이 어우러지며 즉흥 잼 아카펠라가 이루어지는 대목에서는 더욱 그렇다. 다른 사람들은 재밌어하며 박장대소를 하지만 그들에게 조용히 하라는 Bobby Mcferrin의 진지한 손짓과 몸짓, 표정은 Pentatonic Scale에 대한 일종의 실험이 단순한 것이 아님을 시사해주는 듯 하다.

 

 

모두가 정직했으면 좋겠다. 나만 빼고...?

참으로 이상한 기사를 봤다.

 

이건희 "모두가 정직했으면 좋겠다"

 

 

...................

...................

...................

 

 

하.하.하.

 

 

그럴 수도 있겠다. 스스로는 정직하게 살아왔다고 믿을 수도 있겠다. 법이란 건 '자신만의 올곧은 길'을 방해하는 장애물일 뿐 자신의 정직을 부정하는 시스템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사람들은 모두 '양심'이 있다고, 아니, 양심이 있어야 사람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MB의 '우리집 가훈은 정직'이란 말 이후에 다시금 등장하는 '정직'이란 말에서 비애를 느낀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GH의 허튼소리에 토악질을 하거나 삿대질을 하며 욕지거리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은 금새 잊을 것이고 '삼성의 일방통행'과 '삼성의 신화'를 오래토록 기억하고 찬양할 것이다. 삼성맨이 되는 것, GH신화를 이루도록 자신과 자신의 자녀를 독려하고 부추기는 것이 인생의 가장 원대한 꿈이며 애국애족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들 역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정직'만큼 삶의 이정표가 되는 좌우명은 없었다고 자부할 것이다.

 

슬프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럴 수는 없기 때문이다.

 

GH일가가 법의 철퇴를 맞아 정신을 차리는 것과 대한민국의 삼성의 흥망성쇄와 궤를 같이 하는 건 분명히 다른 일이다. 급변하는 대한민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제정신을 챙겨 살아남는다는 게 쉽지 않은 일임은 알지만 적어도 '정직'과 '양심'에 대해서 한국어를 쓰는 모든 이들이 공유하는 뜻이 제대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 너무나 많은 '옳음'과 '그름'의 혼재 속에서 정말 정신차려야 한다.

 

그런데....

그냥, 한 번 태어난 인생인데 막 살아서 나 잘먹고 잘 살면 되지...라고 생각해도 되는 것일까. 내게 권력과 돈이 삼성만큼 있으면 지 맘대로 살아도 되지...라고 생각해도 되는 것일까. 가치관 따위 개에게나 던져주고 마음 내키는 대로 한 번 해볼 수 있는 만큼 저지르며 살아도 되는 걸까.  

 

'정직'과 '양심'의 사전적 의미를 보니 GH나 MB의 가치판단 기준 내에서는 그들도 충분히 정직하고 양심있는 사람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가치혼란이 생긴다. 퉷!

 

 

정직[正直]
[명사] 마음에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바르고 곧음.

 

양심[良心]
[명사]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

2010년 1월 20일 수요일

대한민국 검찰이 무서운 이유

PD수첩의 무죄선고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한바탕 소동을 치루고서도 꽤 시간이 흐른 지금, 당시 PD수첩에 대한 고소/고발, 음해로 시끄러웠던 기억보다 무죄에 대한 기억을 갖게 될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문제는 이것이다.

 

언론에 대한 검찰의 무작위 고소/고발 폐해에 대한 좋은 선례가 남겨졌고 언론의 기능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마련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재판까지 가는 상황에서 한쪽은 이득을 얻고 한쪽은 손해를 입는 법이다.

 

법은 좋은 편, 나쁜 편이 없다는 점에서 양날의 칼과 같다. 그래서 힘이 있건 없건, 권력의 편에 섰건 등을 졌건, 빽이 있건 없건 법 앞에서는 평등할 수 있다. 하지만 법의 칼을 이용함에 있어 '사견'이 끼어들거나 '집단의 카르텔'이 작용하면 양날의 칼은 한쪽만 날이 선 반쪽짜리 칼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법을 안다는 자들, 집행하는 자들이 이 법의 칼을 사용할 때는 더더욱 조심해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자신의 허물을 덮기 위한 용도로, 타인의 공적을 깍아내리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일반인들이라면 가능하지도 않은 일을 정부관계자와 검찰은 아무렇지도 않게 언론을, 시민단체를, 국민을 법으로 희롱하고 농락한다. 모든 일들이 사필귀정으로 끝을 맺으면 좋겠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법의 결과가 나오는 경우도 많고 혹여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후다. 타격은 입을 대로 다 입고 손해는 손해대로 다 입고 시간은 시간대로 흐르고 난 후다. 그렇게 일련의 소동들이 잠잠해지고 난 후 '해명'을 한다 해도 애초 사건이 벌어질 때와는 전혀 다르게 대다수의 매체들은 '몇 줄의 기사'로 보도할 뿐이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해명'은 존재하지도 않게 된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사건의 발단과 진행은 기억하되 결말은 기억하지 않는다. 그래서 수 많은 비리 정치인들이 4년이 지나고 나면 다시 국민의 손에 선출되곤 한다. 수 많은 비리 공직자들이 솜털보다 가벼운 징계를 먹고서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곤 한다.

 

대한민국에서 법과 가장 가까운,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자들은 과연 국민들과 함께 법 앞에 평등한지, 법 아래 고개를 숙이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들의 뜻대로 사실은 은폐되고 왜곡될 것이며 그들의 의도대로 세상을 다스리게 될 것이다. 기소요건조차 성립되지 않을 일들이 기소가 되고 상식으로도 판단될 문제들이 재판정에 서야 하는 건 그들의 법을 엄중히 다뤄서가 아니라 법을 제 입맛대로 다루려고 하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험한 자들은 '정부'도, '당'도, '재벌'도 아니다. 치외법권에서 살고 있는, 국민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제 맘대로 휘두르며 법을 업수이 여기는 '검찰'이다. 그들이 지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도 현재와 같이 언론을 대하고 국민들을 대했다면 그냥 '박쥐'와 같은 존재라며 헛웃음을 지었을 것이다. 아니, 일말의 희망을 품었을 수도 있다. 정권이 바뀌면 그 편에 설테니까. 하지만 그들의 행위는 소위 말하는 오른쪽, 수구의 편에 서서만 말하고 행동하고 기소하며 심판하려 든다. 변함없는 편향성, 그들은 변할 줄을 모른다. 무섭다.

 

PD수첩의 무죄 판결에 대해서 여전히 할 말이 많은 검찰이다. 하지만 그들의 반론을 읽어보면 그들이 대한민국 검찰인지 미국 검찰의 한국지사인지 궁금해질 수 밖에 없으며 그들의 억지는 또다시 법 위에 서서 물을 흐리려고 하는 수작으로 밖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대한민국 검찰이 부끄럽지만 무섭기도 하다.

 

양심있는 검찰들의 일대 반란, 혁명을 기대한다는 건 꿈일 뿐일까.

이혁재 폭행사건이 심각한 이유

개인적으로 연예인의 사생활에 대해 과도한 관심을 갖고 사사건건 발언을 하는 세태에 대해 관심도 없을 뿐더러 어떤 면에서는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물론 연예인은 청소년들이 매체를 통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접하고 싶은 대상이란 점에서 타인의 귀감이 되어야 한다고 말을 한다면 '일부분' 수긍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연예인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 선택, 행동 등에 대해 '마녀사냥'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

 

연예인의 일거수 일투족에 대중들이 일희일비하는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건만 '이혁재 폭행사건'에 대해서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이유는 딱 한가지다. 이혁재가 '조폭을 대동'했다는 것이다. 단순한 폭행사건이라고 볼 수가 없다. 만약 술에 취해 종업원을 때리거나 했다면 이혁재의 주사가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별 관심도 없다. 그런데 '조폭'과 함께 찾아가 폭행을 했다면 이건 무척 심각한 일이다.

 

조폭은 그야말로 사회에 기생하는 존재다. 그들은 불로소득으로 연명하고 사람을 폭행하고 협박하고 때론 살인까지 저지르며 살아간다. 일반인들에게 그들은 영화나 개그의 소재가 아니라 끔찍하고 두려운 존재일 뿐이다. 조폭관련 영화가 양산되고 조폭관련 개그가 쏟아져 나오니 사람들은 조폭이 단지 추상적인 존재 또는 현실과 괴리된 존재로 인식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결코 그렇지 않다. 조폭은 절대 일반인과 함께 존재해서는 안될 부류다. 어느 나라에나 이런 존재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들이 일반인의 세계로 넘어오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사채로 인해, 건설-유흥업소 사업권 다툼때문에, 신도시-뉴타운 재개발 현장에서, 철거민 주거지 철거현장에서, 도박현장에서, 그들과 잘못된 결혼생활이 진행되는 가정 내에서 조폭들에게 맞고 죽임을 당하며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조폭'이란 존재가 그저 웃음으로 넘길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 그래서 개그 프로그램에 조폭 소재로 웃기려는 사람들이 달갑지 않다. 조폭을 비판하거나 조롱하는 역할도 하지 못한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에서 조폭은 버젓이 일반인들 사이에서 기생하며 일반인들의 피와 땀을 빨아먹고 사는 흡혈인간들이지만 그들을 다루고 대하는 방식은 미화(美化)일색인 경우가 많다. 연예인과 조폭이 오늘의 일 뿐만은 아닌 걸로 알고 있지만 절대로 일반인의 세계로 넘어와서는 안된다. 이번 사태의 경중을 제대로 생각해 본다면 이혁재는 본인의 취사를 분명히 해야 한다.

 

이혁재 뿐만이 아니다. 개그맨 김준호도 TV에서 걸핏하면 아는 '조폭 형님'을 거들먹 거리며 개그 소재로 삼고 있다. 많은 연예인들이 밤무대에서 활동하는 걸 생각하면 조폭과 형님동생 하는 연예인이 적지 않을 것이다. 기획사 사장 중에도 꽤 될 거고 매니저 중에도 꽤 될 것이다. 대한민국 운동선수-특히 과거 운동선수가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해 본다면 잘 나가는 K모씨 역시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스스로 잘 컨트롤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현실이 그렇다며 변명하는 것조차 안 된다. 만약 관계를 청산하지 못하거나 청산할 수 없다면 스스로가 '연예인'의 굴레를 벗는 게 가장 좋지 않을까.

 

그 어떤 이유와 변명을 하더라도 조폭을 대동한 이혁재 폭행사건은 심각하고 우려스럽다.

2010년 1월 16일 토요일

아이티의 비극

flickr ccl image

 

'아이티(Haiti)'의 비극. 지진 7.0의 강도(强度)도 문제지만 극빈국이었기 때문에 참사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아이티 국민들의 가족을 잃은 울부짖음과 집과 삶의 터전을 잃어 망연자실한 표정들은 가슴을 메어지게 한다. 그들의 아픔에 위로를 보낸다.

 

전에 MBC '세계와 나 W'에서 소개된 아이티는 아이들이 진흙쿠키를 먹으며 연명한다거나 정치가 불안정하다거나 벌목으로 황폐화되고 있는 나라였다. 그런 나라에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지진까지 발생했으니 사망자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건 뻔한 일이다. 국가시스템은 곧 무너져 내릴 것처럼 위태하고 사회 시스템 및 안전망은 존재하지 않은 상태에서 마주하게 되는 자연재해/재난은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다. 아이티는 왜 그런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아이티를 통치하는 자들의 어리석음도 있겠지만 그들의 상황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경제대국들이 더 문제다.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이익을 미끼삼아 빈국의 지도층을 구워삶아 매수하고 그들이 가진 노동력과 천연자원을 원하는 대로 부려쓰고 약탈하는 게 문제다. 내정불간섭이라는 원칙은 고수하지만 경제력으로 빈틈이 보이는 나라는 원하는 대로 조종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만약 대한민국이나 그에 반하는 경제능력을 가진 나라가 아이티와 같은 지진-자연재해를 마주했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아이티와 같은 처참한 상황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확산되고 심해지진 않을 것이다. 빈곤은 빈곤을 낳고 빈곤은 악순환을 거듭한다.

 

조속히 해결되기 어려운 아이티의 비극을 보며 문제의 원인을 다시 생각해 본다. 왜 아이티는 극빈의 나라가 되었는가. 그들의 노동력과 그들의 자원은 왜 정당한 가치로 환원되지 못하는가. 그들이 하루 10시간을 노동해서 손에 쥐는 돈과 우리가 하루 10시간을 노동해서 손에 쥐는 돈의 무게와 가치는 왜 엄청난 간극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

 

세상의 불균형과 빈곤의 확대는 경제력을 무기로, 자본을 흉기로 사용하는 나라들의 문제겠지만 그런 나라들의 국제깡패같은 행위를 조장하게 하는 건 나라의 정치인들과 그 지도자를 뽑은 그 나라 국민들의 책임도 있는 것이다. 먼 이웃나라 아이티, 먼 이웃나라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 그 외 강대국의 경제논리에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는 많은 나라의 국민들의 아픔을 함께 나눠야 하는 이유다.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는 않지만 아이티가 어서 고통에서 벗어나길, 아픈 상처가 조속히 치유되길 염원한다. 더불어 이번 사태가 진정되고 나면 아이티에 진흙쿠키가 사라졌으면, 그들의 노동이 정당한 가치로 환원되기를 바라본다.

2010년 1월 15일 금요일

셀마의 단백질 커피 DVD 출시!

 
<셀마의 단백질 커피>가 드디어 DVD로 출시되었습니다. 김운기(원티드), 연상호(사랑은 단백질), 장형윤(무림일검의 사생활) 세 감독의 중편 애니메이션을 묶어 옴니버스로 극장 개봉을 했었는데 Special Features(메이킹 및 스토리보드, 원동화 테스트 등) 및 감독 코멘터리를 추가하여 DVD로 출시했습니다. 제가 참여한 작품은 <사랑은 단백질>입니다.
 
교보문고Yes24에서 구매 가능하군요.

 

제품 소개 및 내용 보기


 
부가영상 중에 이스트에그(본편)은 자막이 올라갈 때 오른쪽 하단에 커피잔 모양같은 게 잠깐 나타나는 데 그걸 선택하면 원동화 테스트를 볼 수 있습니다. 너무 빠른 시간에 흘러가니 찾아낼 수나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래도 찾아서 보는 재미가 있으니까요. Special Features에 들어있는 인터뷰가 썩 맘에 들게 녹화된 게 아니라서 아쉽지만 이미 다 지나간 일이니 좋은 경험과 추억으로 남겨야겠지요.

2008년에 공개된 작품이니 벌써 2년이나 지났군요. 개봉 후 약 1년 반 정도가 지나서 DVD가 나왔습니다. 시간 정말 빠릅니다.

 

2010년 1월 14일 목요일

판타지 드라마 히어로

'히어로'가 막을 내렸다. 현 시대와 맞물려 여러 생각을 하게 하는 드라마였다. 너무 노골적이어서 좀 낯 뜨거운 점도 있었지만 오히려 통쾌한 점도 있었고 정공법으로 밀고 나갔다. 상징적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의 은유와 직설적 화법들이 가득 찬 드라마였지만 가슴 뜨거워지는 몇 몇 장면들과 말하고자 한 바를 놓치지 않고 말하는 착한 드라마였다.

히어로가 판타지 드라마라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최종회 마지막 자막 때문이었다. 마지막 용덕일보로 사용되던 집이 보여지다가 용덕일보 간판이 사라지면서 자막이 떴다.

"용덕일보를 찾습니다"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는 언론, 기자, 정의를 가진 용덕일보. 그 자막 때문에 여태까지 드라마를 통해 봤던 내용들이 일장춘몽처럼 느껴졌고 문득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히어로가 판타지로 느껴지는 슬픈 현실.

물론 정의로운 지방의 작은 신문사도 있을 것이고 주류 언론들 속에 진정한 기자정신을 실천하고 있는 기자들도 있을 것이다. 꾸준히 계란으로 바위를 치고 있는 소수의 참언론 종사자들이 있지만 그 힘이 너무 미약해서 보이지 않는 것 뿐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용덕일보가 더더욱 판타지처럼 느껴지는게 아닌가 싶다.

히어로의 마지막 자막이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진정한 언론을 찾습니다"거나 "진정한 언론 만들기에 동참합시다" 정도가 아닐까. '양심'이 명(命)하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참언론, 진짜기자. 대한민국의 민주화가 되건 되지 않건 사회, 국가라는 시스템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필요한 존재들이다.


아바타 기술력은 2000억 원?

9시 뉴스를 보다가 헛웃음을 지었다. '아바타'가 흥행몰이를 하고 있으니 대한민국도 미국 CG기술의 90%까지 따라잡을 수 있도록 정부가 2000억 원을 지원한단다.(문화체육관광부(장관 유인촌)는 CG산업 육성에 2013년까지 총 2천억 원을 투입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저 얘기가 왜 안나오나 싶었다.

문득 '쥬라기 공원'이 흥행을 하고 있을 때 흘러나오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쥬라기 공원'의 흥행수익이 자동차 몇 십만대, 몇 백만대 수출효과와 맞먹는다느니 '쥬라기 공원'같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정부가 손을 걷어부치고 달려들었다는 이야기들.

영화 뿐만이 아니다.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였다. 꿈에 부푼 장미빛 미래들을 거론하며 헐리우드에 버금가는 영화와 애니메이션 제작만이 미래의 희망인 것처럼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눈 먼 돈들은 쏟아졌고 누군가는 그 돈으로 몇 년을 넉넉히 먹고 살았고 누군가는 돈 냄새도 맡지 못하고 제작 현장을 떠나갔다. 그러는 사이 국민들이 낸 세금은 그 누구도 모르게 여기저기에서 소모되었고 허공에 뜬 채 사라졌다.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영화/애니메이션은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으로만 생각한다. 정말 2000억 원만 투자하면 몇 년 사이에 미국 CG기술의 90%를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인가. 가까운 일본과 중국은 2000억 원을 투자 못해서 CG기술이 헐리우드만 못한가.

한국의 기술력이 많이 발전했다는 건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애니메이션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방법이 글러먹었다. 90년대 초반부터 20여 년 동안 지원방식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그냥 돈을 가져다가 쏟아 붓는 거다. 누구 좋으라고?

2000억 원이 아니라 2조 원을 들이 부어도 지금과 같은 투자/양성 방식이라면 희망을 품기 어렵다. 시간이 약이고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라는 것은 이 나라 위정자들에겐 공염불에 불과한 이야기일 뿐이다.

2010년 1월 12일 화요일

개새끼

개는 먹을 걸 주면서 길들일 수 있다. 만약 말을 듣지 않으면 때리면 된다. 심하게 맞아 본 개는 때린 사람의 무서움을 기억한다. 먹을 것과 채찍을 병행하면 개들은 충분히 길들일 수 있다. 말을 잘 들으면 먹이를 던져주고 잘못하면 때린다. 아주 단순한 행위의 반복이지만 시간이 오래될 수록 주인의 명령에 복종하는 충성스러운 개가 된다.

내 맘에 들지 않으면 짖고 물어 뜯다가도 조금만 잘해주면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꼬리를 흔들어 대는 건 개들의 전매특허다. 경기(經氣)가 조금만 좋지 않으면 아우성을 보내고 내가 살고 있던 집 가격이 치솟으면 환호를 보낸다. 정작 변화가 필요한 곳, 정작 개선이 필요한 곳에는 눈도 돌리지 않는 건 왜일까. 잘못한 건 잘못한 것이고 개선해야 할 것은 개선해야 한다. 잘잘못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한다.

당장 눈 앞의 '내 이익'에만 쌍심지를 켜고 세상을 바라보는 이들은 정부가, 권력이 아주 좋아하는 조련 대상일 뿐이다. 가령 세종시 원안에 찬성을 하던 사람이 수정 안이 나오면 반대를 하다가 수정안이 자신이 유리한 쪽인 것 같으면 다시 찬성으로 돌아선다. 이 뿐인가. 좋아하는 정부, 지도자건 싫어하는 정부, 지도자건 잘하는 일이 있고 못하는 일이 있는 건 당연하다.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에 대한 살핌과 통찰없이 그들이 던져주는 먹이에 일희일비한다면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지조없는 이들의 양심엔 털이 수북하게 날 거다. '울다가 웃으면 똥구멍에 털이 난다'는 말은 진실이다.

개가 되느냐, 사람이 되느냐를 선택하는 건 약간의 불편함이 수반될 뿐 어려운 결정은 아니다.


와불(臥佛)이 일어나 활불(活佛)이 되셔야지.

"그래, 이젠 와불(臥佛)이 일어나 활불(活佛)이 되셔야지"

늘 긴장과 초조로 안절부절 못하는 건 나의 실천력, 취사력 태만 때문이다. 옳고 그름이 분명한 판단은 보류하고라도 나은 방향으로의 확고한 행동조차 여전히 타인의 시선 속에 갇혀 방황을 종식시키지 못하고 있다. 잠을 자고 있는 와불에게 일침을 가해 수염에 불 붙은 듯 바쁘게,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하지 않겠나.

십 수년 전 어느 날, 내게 던졌던 말. 

불성(佛性)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느님, 영성과도 같고 천주(天主)와도 같다. 누워있는 와불이 일어서 육근(六根)을 움직이면 활불이 된다. 종교, 철학, 예술, 교육, 사회운동, 정치 등 인간세상 모든 방면에서 그 참맛을 알기 전에는 누워있는 와불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활불이 된다는 건 자신이 행하는 모든 것들이 사회와 함께 어우러지고 부딪히며 신명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육근을 움직일 때마다 나와 너가 둘이 아니어야 한다. 나의 손짓, 발짓, 몸짓, 마음짓이 세상과 소통하며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한 깊은 잠에서 깨지 못하는, 피곤에 스러진 와불일 수 밖에 없다.

2010년 1월 11일 월요일

서문(序文)

서문(序文)

닫힌 가슴 열고 졸린 정신 깨워 나태한 육근 매질하여
범부의 산 정상에 오르고 보면 확연히 보인다.
미욱한 안개 걷히면 내 살던 동리, 손바닥마냥 훤히 보이듯
그렇게 마음의 파란만장이 더욱 확연히 보일 뿐이다.
깨어있기. 와불이든 입불(立佛)이든 깨어만 있으면
잦은 걸음 조급치 않고 큰 걸음 성기지 않으니 그게 바로 낙(樂)수용.
정상에 서서 보니 정상(頂上)이 어디고 평지(平地)가 어딘가.
이제라도 알았으면 시선 멀리 두고 가기만 함세.



십사,오년 전 어렴풋한 그 때.

2010년 1월 10일 일요일

봄을 사다.

매춘(買春)

쨍한 볕 아래 꼭꼭 숨겨둔 욕정이 고개를 치민다.
그러지 않으리, 몇 번을 다짐했는지 모른다.
무늬가 화려한 샛노란 나비에도 맥을 못추고
금새 자위를 시작해 발갛게 몸을 달군다. 욕정은.
솜털도 옆으로 뉘이지 못할 미풍에도 식어버릴 발정이
부끄러움도 모르고 흙내음에 취해 바지춤을 내린 건
숫제 해결할 수도 없는 욕망을 좀체 버리지 못해서다.
덜어낼 수도 없어 가슴 언저리에 바짝 매달린 젊음은
기억도 할 수 없이, 수 많은 봄하늘에 뿌려댄 욕정으로
딱딱하게 말라 밤꽃냄새도 나지 않게 되면
다신 그러지 않으리 다짐을 한다. 하지만.






95년 봄 즈음 남긴 몇 줄에 첨삭.

2010년 1월 9일 토요일

낙서

말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 그립다.
온 몸 가득 사람이 그리우면
그리워서 착해진다.
날 일으켜 달라 투정부리는 내가
꼭 애 같다.





기억도 없는 오래 전, 노트의 낙서.

2010년 1월 8일 금요일

소문

 

갑자기 '김연아 소문'이란 검색어가 보였다.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내 블로그에도 이 정도로 들어오는 걸 보면 많은 사람들이 검색을 하고 있다는 뜻일 거다.(내 블로그 글은 "김연아, 소문, 무료배송, 대마초, 서경석, 외국어, 미국, 종부세, 선진국, 후진국"인데 모두 낚인 거다.-_-;)

 

무슨 내용인지 기사를 봤더니 "일본의 압력에 의해 4대륙대회에 출전한다"는 요지의 내용이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25일 앞두고 컨디션 조절을 해야해서 불참을 원했는데 일본의 압력과 강요로 인해 출전한다...는 뭐 그런 내용이다.

 

기사를 읽으면서 김연아 선수는 인터넷을 자주 하는 것 같던데 이런 기사를 읽으면 어떤 마음이 생길지 궁금했다. 혹 이런 기사들이 김연아의 심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유명해지는 만큼 루머도 많아지고 유명세에 시달린다고는 하지만 대놓고 '소문'이라는 기사가 너무 많다.

 

'소문'의 진원지는 어디의 누구일까. 혹은 그 '소문'을 확대, 재생산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만약 그 소문이 단지 소문일 뿐이라면 소문에 대한 '주의'와 '경고'의 메시지도 함께 돌아다녀야 할텐데 '소문'은 '진실'이 되거나 진실이 아닌 소문은 그냥 연기처럼 사라질 뿐이다. 한 번 전파되기 시작한 '소문'은 사람들에 의해 키워지고 부풀려져서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거대한 괴물이 되곤 한다.

 

소문은 소문 자체로 전파되기도 하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는 속담처럼 진실을 품어안고 소문이 탄생되기도 한다. 이는 진실을 진실대로 말하지 못할 경우에 자주 일어난다. 마지막 하나는 진실을 감추기 위해 소문이 탄생되는 것이다. 추악한 진실을 감추기 위해 완전히 다른 내용의 소문을 퍼트리면서 진실을 감추는 것이다.

 

매체와 기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소문(이슈 또는 '~설')'를 만든다. 사람들은 '소문'을 쫓고 소문을 쫓는 사람들에 의해 때론 엉뚱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기도 하고 반드시 처벌되어야 할 범죄자들이 몸을 숨긴다. 소문 그 자체로 피해(또는 이득)를 보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가 계속 소문을 확대재생산하기 때문에 피해(이익)를 보는 것이다.

 

수 많은 검색어가 난무하고 실시간 검색어가 중요해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밀물처럼 몰려드는 정보들에 '부회뇌동(附和雷同)'해서는 안되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완전한 사실로 증명되지 않은 정보들에 대해서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바라보는 여유도 필요할 것이다. 특히 기사들의 행간(行間)을 읽는 법을 키워야 한다. 행간에 보이지 않는 활자로 적힌 내용은 기사 전체를 다시 읽을 수 있는 묘미를 주기도 하고 '진실'을 전하는 '키(key)'가 된다.

 

죽도록 미워하면 닮아간다고 했던가. 찌라시 기자들, 양심없는 기자들이 써내는 기사와 사이비 언론들이 쏟아내는 정보에 날 선 비판을 하던 사람들이 스스로가 '기사'를 생산해 내는 위치를 갖게 되면서 그들과 닮아가는 꼴을 보게 된다. 일반인들이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정보'와 '소문'을 받아들이는 피동적 위치에서 '소문'과 '정보'를 능동적으로 생산해 내는 위치가 된 것이다. 자신의 손가락을 통해, 키보들 통해 써진 글들이 대중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때 느껴지는 쾌감이나 달콤함의 유혹은 떨쳐내기 힘들다. '기자윤리'를 강요하던 시대에서 '네티즌윤리'가 중요해진 시대로 바뀐 것이다.

 

누군가가 맛있는 뼈다귀를 던져주길 기다렸다가 눈 앞에 떨어진 뼈다귀를 향해 미친듯이 달려들어 물어뜯는 개가 되기 보다는 스스로의 입맛과 취향에 맞는, 스스로가 원하는 양질의 음식을 찾기 위해 'explore'하는 '사람'이 되는 게 더 낫다.

2010년 1월 7일 목요일

사진 현상소의 이해 안되는 상술

당장 사용해야 할 여권사진이 필요했다. 

예전에 포토프린터로 출력해놓은 게 있어 찾아봤는데 
이리저리 온통 뒤져보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다시 프린트를 하면 되는데 마침 프린터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허~. 

문득 **마트 출입구 쪽에 현상소가 있는 걸 떠올렸다. 
컴퓨터를 뒤져 예전에 여권사진을 포토샵으로 편집해 8장으로 만들어 놓은 파일을 찾아냈다. 
(뭐, 자료정리야 잘 해두는 편이니 찾는 건 몇 번의 마우스 클릭이면 끝...-_-a)

usb 메모리카드에 고이 담아 **마트 현상소로 갔다. 
매대 앞에는 터치스크린으로 된 세 대 정도의 셀프현상 기기가 놓여있었다. 

장당 250원! 

오호라! 이렇게 싼 걸... 괜히 사진 찾는다고 난리법석을 피웠네.
기계가 메모리카드를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아 엉거주춤 서성이니 주인이 다가온다.

"뭐, 도와드릴까요?"

"네, usb인식을 잘 못하는 것 같네요"

주인 아주머니가 톡, 톡, 톡 몇 번 건드리니 바로 인식을 한다. 역시.

"어떤 사진을 출력하시려구요?"

"아, 네, 바로 그거... *****.jpg로 된 거요..."

하지만 아주머니가 사진 미리보기를 보더니 약간 상기된 목소리로 말한다.

"이 사진은 안되거든요. 증명사진은 장당 250원이 아니구요. 증명사진 8장으로 묶여져 있으면 현상비가 7400원입니다."

"네?.... 아니...왜... 어떻게...그런... 허....이런...."

"요즘은 개인적으로 편집을 해오는 사람들이 많은데 증명사진을 이렇게 250원 내고 뽑아가고 그러면 저희 장사하는데 지장이 많거든요. 그래서 직접 사진을 촬영하고 현상을 하던 편집해 온 사진을 현상하던 같은 가격으로 출력을 해드리고 있습니다"

"아...네... 음...."

출력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가격이 너무 비싸 그냥 돌아서고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뭘 골똘히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다시 집으로 발길을 돌려 오던 중에 집 앞에도 자그마한 현상소가 있음을 생각해냈다.

"저기, 사진 출력 좀 하려구요"

주인 아저씨가 나와 usb를 건네받고 사진을 확인하더니

"무조건 장당 3000원입니다. 요즘은 일반인들도 포토샵들을 잘해서 편집을 어쩌고 저쩌고.."

"아, 알겠습니다. 출력해주시죠"

"손님은 그래도 한 번에 이해를 해주시네요. 어떤 분들은 화를 내시기도 하고 기분 나빠하시거든요...어쩌고 저쩌고.."

"네, 빨리 출력해주세요"

먼저 갔던 **마트 현상소보다는 쌌지만 3000원도 그다지 적당한 가격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먼저 갔던 곳에서 가격을 들어서 그런지 '비교가격'이 무척 싼 느낌도 있었고 3000원이면 집에서 프린터 다시 연결하며 씨름하고 이런저런 복잡한 일들을 하는 비용과 대충 맞을 것 같아 출력을 하기로 결정했다.

몇 가지 생각이 든다.

1. 증명사진(여권, 명함판, 반명함판 등등)을 촬영해서 출력하는 비용의 원가는 얼마일까.(사진관마다 가격차이가 큰 편이다)

2. 터치스크린 달린 (컴퓨터 모양의) 기계로 출력하는 건 장당 250원인데 기준은 뭘까. (두 군데 밖에 가격을 보지 않았으니 평균가격은 아닐 듯)

3. 증명사진을 출력하는 것과 일반사진을 출력하는 비용을 굳이 따로 받아야 하는 사진관의 명확한 이유는 뭘까.

예전에는 개인이 사진기를 보유한 경우가 드물었다. 그러니 사진관에 가서 '설정된 사진'도 찍고 증명사진도 반드시 사진관에 가야만 찍을 수 있었다. 그 때는 사진기를 보유한 것이 '특수한 경우'에 속했고 소위 말하는 '전문가'였다. 신혼여행지나 관광지에서 사진기를 목에 걸고 자신이 찍은 사진을 들고 다니며 대신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봤었다. 비싸긴 했지만 여행자의 손에는 사진기가 없었으니 그들의 사진기를 빌어 '기념'을 남기는 것에 그다지 인색하지 않았다.

시대가 달라졌다. 한 집 안에 최소 1대 이상의 사진기가 있고 요즘 젊은이들은 '포토샵'은 기본이며 포토프린트 기능이 있는 프린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꽤 있을 것이다. 게다가 사진 역시 아날로그 필름 방식이 아닌 디지털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사진관에서도 여러가지 비용문제의 고려로 인해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한다. 시대가 이렇게 변했으니 사진관에 와서 출력을 하는 사람들이 예전보단 적을 것이다. 그래서 앨범, 사진달력, 사진 블라인드 등 여러 제품을 제작하며 수입에 보태고 있는 것이다.

사진관 혹은 현상소는 어떻게 해서 시대의 흐름에 맞게 대처해야 할까. 오히려 포토 프린트로는 따라갈 수 없는 품질 또는 크기의 사진 출력을 해서 누구나 사진을 출력하고 싶게 해도 될 것이고 디지털 카메라 사용은 할 줄 알되 사진 출력 등을 잘 못하는 혹은 하지 않는 잠재된 고객들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하면 될 것이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그런데 증명사진 출력이 자신들의 수입에 지장을 준다며 장당 250원씩 하는 걸 적게는 10배에서 30배의 금액을 지불하라고 하다니 참 이해가 안된다. 차라리 증명사진 한 개당 250원씩 받는다면 사진 크기가 작으므로 4X6사이즈에 8장 정도 들어가니 250X8,  2000원 정도 받으면 될 것 아닌가.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면 700-800원 정도면 가능하지만 밖에서 먹으면 3-4,000원 하는 이유는 그들이 대신 물을 끓이고 라면을 풀어 넣고 반찬과 함께 내오기 때문이다. 게다가 설겆이까지 해주기 때문에 암묵적으로 적정가격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그런데 "우리도 장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증명사진은 10배, 30배를 받아야 한다"라고 하니...

사실, 기분이 나쁘다기 보다 그들의 설명과 상술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