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 30일 토요일

꽝꽝 얼어붙은 겨울 속 장춘-02


깊고 넓은 장춘의 남호공원이 꽝.꽝. 얼어붙었다. 마치 육지의 아스팔트와 같은 느낌. 그 위로 하루가 저물어가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한가롭다. 여름엔 조그만 모터가 달린 배를 타고도 한 시간 남짓 걸려야 한바퀴 돌 수 있을 정도로 큰 호수가 겨울과 마주하고 속까지 꽝.꽝. 얼어붙었다. 봄까지 언 가슴 녹이지 않을 태세다.

꽝꽝 얼어붙은 겨울 속 장춘-01


장춘의 겨울은 하얼빈이나 그 위 북단에 위치한 도시들보단 춥지 않다고 하지만 아이스크림을 냉장고도 없이 밖에 내놓고도 팔 수 있는 정도의 날씨는 된다. 몇 몇 공원에서는 (하얼빈과 비교할 수 없지만) 얼음조각전을 하기도 할 정도니 추위로 말하면 나름 손에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한국에서 친구 부부가 놀러와 겸사겸사 남호공원(南湖公园)에 갔는데 그 넓디넓은 호수가 완전 꽝.꽝 얼어붙었다. 한쪽에서는 어떤 이가 자신의 차를 몰고 호수로 내려와 얼어붙은 호수 빙판 위에서 카레이싱 연습을 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은 스케이팅을 즐기고 또는 연을 날리고, 호수를 가로질로 건너편으로 간다. 호수가 얼어붙는지도 모르고 있었던 물고기는 얼음 속에 갇혀 옴짝달싹 하지 못한 채 냉동생선이 되어버렸다.

호수 위로 떨어지는 오후 햇살이 더욱 빛나는, 투명하고 두터운 얼음 아래로 한 없이 펼쳐지는 기포가 가득한 남호공원에서 하루는 장춘에 대한 새로운 느낌을 갖게 한다.

2006년 12월 16일 토요일

급히 ... 돌아갑니다.

잠시 왔다가 급히 갑니다. 와서 포스팅 한 번 못하고 일 보고, 사람 만나고, 돌아다니다가 일주일이 훌떡 지나갔습니다. 비자만 연장해서 바로 들어가는 꼴이 되었습니다. 원래는 한 보름정도 있을까 했는데 학교 일이 좀 급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에 있는 동안 많은 격려와 관심, 응원을 보내주신 여러 인연들에게 머리 깊게 숙여 감사드립니다. 점점 사는 게 쉬운 일이 아님을 느끼고는 있지만 그건 세상에 타협하는 방법을 배워간다는 뜻이 아니고 다시 마음 새롭게 추스려 일어서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일깨워주는 작은 변화입니다. 보다 더 크고 보다 더 속 깊게 처신하고 움직이며 걸어가야겠습니다. 앞으로 또 어떻게 변하게 될 삶일지 모르겠지만 꽤 살만한 세상이지 않나 싶습니다. 해야 할 일이 무척 많다는 느낌입니다. ...그래도 차근차근.

중국 들어가서 다시 포스팅 시작하겠습니다. 좀 더 즐거운 느낌으로 마주하길 바라겠습니다. :)

2006년 12월 8일 금요일

잠시 귀국.

비자발급 문제로 일단 한국에 도착. 잠시 익산에 내려갔다가 다시 일산으로 서울로 일보러 사람보러 다녀야 할 듯. 중국쪽 일이 하도 급하다고 난리니 한국에서 오래 있을 수도 없겠다. 후다닥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서둘러야지. 일단, 여기까지! :) (예전 전화번호 그대로 사용하니 연락주시길)

2006년 11월 30일 목요일

근황만...잠깐...

이용배 선생님이 워크샵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신 후, 계속 바쁜 나날의 연속이었다. 날은 점점 추워지고 새로 산 카메라로 이곳저곳, 이 사람 저 사람 많이 찍긴 했는데 시간이 없어 올리지도 못하고 있다. 12월 8일 즈음 한국에 들어가서 비자연장 수속을 밟아야 해서 몇 가지 서류도 준비해야 하는데 이조차 쉽지가 않다. 들어가기 전까지 별 무리없이 준비가 되기만을 바라고 있을 뿐이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단편 작업은 진도가 더디게 나가고 있음에도 이 외에 다른 일을 준비하느라 많이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으니 조금 답답하다. 게다가 학생들 작품 중에 후반작업 관련, 제작방식 관련해서 문의가 들어와서 이래저래 상대해주고 나면 역시 부족한 시간 쪼개서 작업을 하는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에 가서도 급히 서류 갖춰서 준비해야 하는데 마음만 계속 급해진다. 이럴 수록 단전에 기운 모아 하는 걸 잘 안다. 動中靜, 靜中動.

일단 오늘은 이만큼. 또 시간 좀 넉넉해지면 요즘의 생각들을 풀어 정리해야지.

2006년 11월 8일 수요일

요 며칠 이렇게 살았다.

끼 식사 때 준비된 요리는 수는 적지만 지역답게 엄청난 으로 상에 올라 절반 이상을 남기기 반이고 이미 로 뚝 떨어진 기은 다시 올라갈 줄 모르고 내일이면 영하 10도까지는 떨어진다며 북은 매섭게 볼을 에이고 동시에 진행하고 준비하는 들이 겹겹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도 마음의 심을 놓지 않으려고 바둥거리고 있고 새로 산 메라는 생각보다 다루기 민한 듯 해 머리를 썩이고 있지만 찍혀 나오는 감들은 맘에 드는 중이고 역시 진은 장비보다 눈과 음임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고 루에도 몇 번씩 울리는 전와 문자 메시지로 인해 내 머리와 마음은 한도 쉴 날이 없지만 피한 건 아니고 시간이 없어 수장에 가지 못하는 게 지만 방법이 고... 요 며 이렇게 살다. 

스톱모션 워크샵을 진행하며... 주절주절.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워크샵은 나름대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학생들 대부분은 이 방면에 경험이 전무해 보였고 스톱모션 관련 애니메이션을 접한 경험도 부족해 보였다. 그래서일까 워크샵을 진행하는 내내 모두들 많은 관심을 보이며 흥미로워하는 중이다. 학교 자체에서도 2D나 컴퓨터 3D 위주로 진행하는 학과과정이 대부분이라 스톱모션이나 기타 실험적인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는 장소, 설비 등은 무척 부족한 상태다. 선생님께서 한국에서 직접 가져온 '런치박스'나 몇 개의 아마추어 몇 덩어리의 플레티신(클레이의 애니메이션의 재료) 정도가 그 문제를 나름 해결해 줄 것으로 생각은 되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인 것만은 사실이다. 직접 만들어보고 움직여 보며 직접 체득하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할 워크샵에서 장비의 부족이나 협소한 장소 등은 워크샵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가라앉히는 요소가 된다. 워크샵 기간이 짧다는 이유도 함께 작용을 하기 때문에 주로 픽실레이션이나 오브제 애니메이션 위주로 진행이 될 예정이다.

기본적인 이론부터 비교적 상세한 내용까지, 그리고 다양한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스톱모션이란 무엇인지 이해하며 접근해 가는 과정은 사실 내 입장에서도 새롭게 공부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흥미로웠다. 미처 보지 못한 몇 개의 작품도 내 시선을 사로 잡는다. 반 고흐의 침실이라 알려진 유명한 그림 한 폭을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재현해 낸 작품 "Bed Room"이나 색종이를 잘게 오려서 창문을 통해 들어온 빛으로 표현한 "빛의 여행"이라는 작품 등이 그랬다. 2003년도에 만들어졌다는 러시아 애니메이션 "어부와 물고기'라는 작품은 그 안에서 펼쳐지는 독특한 형식, 특히 이야기의 진행 방식이 다른 작품과는 달리 작품 안의 4명의 캐릭터가 세트를 움직여 가며 장면전환을 시도한다거나 바다의 표현 등을 간단한 천으로 일렁이게 하여 표현하면서 유랑극단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 특이한 작품이었다.

작품을 보면서 느낀 거지만 여러 해 전 애니메이션을 처음 시작하며 보석같은 단편들을 보고 감동받고 작품 제작의 열의를 불태웠던 때가 그리워졌다. 왜 지금은 자꾸 애니메이션을 몇 가지의 단순한 방향만으로 설정해 만들려고 하는지 실험정신이 많이 퇴색되어버린 지금의 내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선생님과 식사를 하거나 휴식을 취하면서 종종 나누는 대화 속에서 그런 나를 질책하고 새롭게 마음을 가져보려고 하는 자신이 자꾸 투영되어 튀어나오는 중이다. 현재 준비하는 작품부터 제대로 끝내야겠지만 새롭게 느끼게 된 초발심을 잘 간직해 가야겠다. 애니메이션을 산업으로 봐도 좋고, 예술로 봐도 좋지만 어쨌든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일 뿐이다. Frame by Frame의 작업 과정 속에서 나와 대면할 용기도 필요하고 프레임 사이의 간극 안에서 땀의 결실을 일궈내는 과정도 필요하다. 그리고 그 연속된 프레임을 통해 자신과 타인과 열린 소통, 대화를 할 수 있다면 내겐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외의 것들은 어떻게든 충분히 일궈낼 수 있을 것이다.

통역을 하기 때문에 강의 내용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전달해야 하는 부담은 있지만 더욱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하고 이러면서 중국어도 꽤 늘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강의 내용을 선생님의 설명없이도 나름 보충할 수 있기 때문에 편한 점은 있다. 역시 말을 더욱 많이 해야하는 피곤함은 있겠지만... 이제 겨우 이틀했는데 피곤하긴 하다. 다만 내일부터는 실습 위주의 시간들이 많기 때문에 조금은 덜 하겠지...라고 기대만 해본다. 

2006년 11월 6일 월요일

바쁜(?) 일정의 시작

하나 얼마 전부터 계속 연락을 취해오긴 했는데, 오늘부터 계원조형예술대학 이용배 선생님이 길림예술학원동화학원에 오셔서 '스톱모션' 워크샵을 하기로 됐다. 공항에 가서 선생님을 마중하고 호텔로, 식당으로 옮기면서 내 바쁜 일정도 함께 시작되었다. 선생님은 오늘부터 15일 동안 학생들과(몇몇의 교수들과) 함께 워크샵을 진행하게 된다. 그 보름동안의 통역은 오로지 내 몫이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단편 애니메이션의 일정도 빠듯한데 일이 겹치게 되어서 함께 공동감독을 맡고 있는 중국 선생님도 걱정이 상당하고 나도 이래저래 신경이 곤두선 상태다. 암튼, 워크샵 진행을 성공적으로 마치는 게 발 등에 떨어진 불이라서 이쪽으로 먼저 신경을 써야 하긴 할테다. 다행이 매일 진행하는 시간이 오후부터 시작되는 일정이라 오전에는 작업실에 건너가서 작업 진행상황을 체크하거나 얼마간의 작업을 진행할 수 있을 듯 해서 다행이다.

선생님은 얼마 전 장춘국제애니메이션교육포럼에도 오셨었기 때문에 장춘이 그다지 낯설지는 않겠지만 당시에는 일정이 너무 빠듯해 시내를 돌아 볼 틈도 없었다. 이번 기회는 비교적 편안한 상태로 진행할 수 있는 여건이라 오전과 저녁 일정은 그나마 여유가 있을 것 같다. 전에 오셨을 때도 너무 정신없이 바빠서 제대로 된 이야기도 못했는데 이번에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이것저것 여쭙고 배워야겠다. 오늘은 내가 작업하고 있는 곳에 모시고 가서 구경도 하고 함게 작업하고 있는 감독님과 간단한 대화도 나누고 준비 중인 단편 스토리보드 릴도 보여드렸다. 작업 진행상황도 보여드렸는데 나름 흥미가 있으신 것 같아 한편으로 안심이 된다. 아래 사진은 현재 작업 진행 중인 스튜디오에서 찍은 사진이다. 뒤로 보이는 게 간단히 만든 "날아라 병아리(大)" 포스터와 상해에서 주홍수 감독님이 진행 중인 "도야지 봉" 포스터다. 오후 햇살 분위기가 괜찮네...

정이강 감독님(좌)과 이용배 선생님(우)

정리궈 이사장과 창광시 감독님이 저녁에 이용배 선생님을 모시고 함께 식사를 했는데 간만에 고량주(마오타이 술보다 더 고급인 쉐이징팡)도 마시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다들 다시 재회를 하게 되어서 그런지 반가움에, 익숙함에 분위기가 좋았다. 내일부터 워크샵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더 긴 시간 대화를 하기 어려웠지만 앞으로 시간이 많으니 많은 교류와 토론들이 오고 갈 것이라 생각된다.

그동안 벼르고 별렀던 DSRL을 구입했다. 한국보다 조금은 싼 가격이라 마음이 편하긴 하지만 여전히 고가의 장비를 구입한다는 건 여러모로 부담스러운 점이 많다. 암튼 구입을 했으니 잘 활용해야지. 덕분에 다시 아날로그 사진기를 대하듯 공부할 게 많이 생긴 것 같다. 바쁜 시기에 구입하게 되어서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진을 찍으며 공부하는 것이 더 나을 듯 하니 별 걱정은 되지 않는다. 욕심은 늘 무럭무럭 자라는 법, 그 욕심을 잘 다스리고 좋게 활용하면 독이 되기 보다 약이 되는 부분이 많은 걸 안다. 욕심을 다스릴 만한 힘이 아직 많이 부족함을 느끼긴 하지만 때론 그 힘을 역이용해서 상황을 만들어 내는 법도 필요한 것이겠지.

장춘은 이미 영하로 떨어진 기온 탓에 공기가 차다. 아침 저녁으로 옷깃을 여미지 않으면 목을 타고 바람이 들어와 한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어제는 잠시 첫 눈이 내리고 오늘도 살짝 눈 발이 휘날렸다. 장춘의 지독한 겨울이 막 시작되었다. 하지만 역시 아무렇지 않게 보낼 수 있는 여유는 지난 몇 차례 동북의 겨울을 보낸 내 몸의 세포들 안에 숨 쉬고 있다. 와라! 겨울. 신나게 맞이해 줄테니!

2006년 10월 28일 토요일

겨울, 작업, 수영, 사진기, 그림

겨울 장춘에 겨울이 왔다. 아직 눈이 내리지는 않았지만 매일매일 눈이 올 것만 같은 하늘이 펼쳐진다. 사람들의 옷도 두툼해졌고 식사 때 뜨끈한 탕은 빠지지 않고 시키게 되었다. 한국에서 겨울 옷을 가져오지 않은 바람에 며칠 전 시내에 나가 옷 몇 가지를 준비했다. 저녁마다 시간 맞춰 나오는 온수가 그리워 되도록 시간에 늦지 않게 침실에 도착해 샤워를 한다. 저녁 해는 일찍 저물어 이젠 6시 정도만 되어도 깜깜해진다. 교내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부쩍 줄었지만 여름이나 가을보다 더욱 더 꼭 껴안고 다니며 연애하는 학생들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인라인을 타는 학생들은 위험하지만 바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있거나 손을 소매 안에 집어넣은 채로 저녁 바람을 즐기고 있다. 삼삼오오 퇴근하는 교직원들의 어깨 간격이 점점 좁아지고 있는 날들이다. 봄이 길다는 뜻의 장춘(长春)은 변함없이 겨울이 길고 그 긴 겨울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 아침에 작업실로 향할 때 기숙사 앞에 고여있는 물이 미처 마르지 못하고 얼어붙은 광경을 보게 될 때는 왠지 내 입에서도 뜨겁고 새하얀 입김이 나올 것만 같다. 가끔 낮게 내려앉은 하늘을 보며 언제쯤 눈이 내릴지 사뭇 기대를 하곤 한다. 한국의 몇 몇 지방은 추위가 밀려오는 중에 물난리를 겪었다고 하는데 그네들의 겪게 될 육체의 추위보다 마음의 추위가 더 쓰리게 느껴지는 날씨다. 요 며칠은 격동의 시간이 지나가고 고요함이 더욱 가득해지는 듯 하다. 마음도 함께 차분해지곤 한다.

작업 요즘 하는 작업 속도가 그다지 빠르지 않아 함께 작업하는 이의 입에서 걱정의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단순 노동이 많지만 그다지 단순하진 않기 때문에 작업지시를 내리거나 작업을 진행하는 이들 모두 시간에 쫓기고 있다. 모두들 기존에 하던 작업방식과 많이 다름을 몸소 체험하고 있기 때문에 버거워 하는 중이다. 며칠 고민해서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내야겠다. 작품 느낌들은 하나씩 잡혀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기본적인 작업과정이 더디게 진행되는 바람에 신바람이 덜 불고 있긴 하다. 조만간 나아지겠지. 아니, 나아지도록 해야지.

수영 어제 수영장에 다녀왔는데 이젠 50미터 정도는 평형으로 건널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제자리에서 멈춰 떠있진 못하지만 깊은 물이 그닥 무섭게 느껴지진 않는다. 그 동안 수영을 꽤 배우고 싶어했음에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는데 최근 몇 차례 연습을 통해 이만큼까지 발전했다니 스스로도 참 대견하다. 지금도 조금 방심하면 바로 물을 들이키곤 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엄청난 진전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뭐랄까. 꽤 적합한 운동을 찾아낸 느낌이랄까. 수영을 하고 나면 약간의 전신피로가 오긴 하지만 운동을 했으니 당연한 결과고 수영을 하면 할 수록 몸이 편안해지고 전신의 근육에 힘이 생기는 기분이다.  헬스나 무술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는 합리적인 운동이란 생각이 든다. 달리기는 무척 싫어하는 타입이라 더욱 더 수영이 좋아지고 있다. 조급한 성격 때문에 더욱 빨리빨리 배우고 싶어하는 마음이 생기곤 하지만 그럴 수록 마음도 다스려가면서 차근차근 한걸음씩 떼고 있다. 더욱 좋은 건 겨울 수영장의 물은 비교적 따뜻하다는 것이다. 수영 후에 잠시 들리게 되는 간이 증기탕도 편안함을 주고 가벼운 샤워 후에 맞는 새콤한 바깥 공기도 온 몸에 온 마음에 활기를 준다.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걸 수영을 하면서 더욱 더 느끼고 있는 중이다. 몸에 평형이 어긋난 느낌을 받는 날이면 물 속에서 손을 젓거나 발로 물을 차낼 때 몸이 바로 균형을 잃기 때문이다. 내 마음도 정신도 몸처럼 스스로를 속이지 않도록 제대로 살아낼 수 있도록 자주 챙겨야겠다.

사진기 몇 년간 잘 쓰던 사진기가 고장을 일으켜 수리를 하려 했더니 비용이 비싸다. 오히려 돈을 좀 더 보태 새 것을 사도 될 듯 해서 사진기를 알아봤는데 요놈의 욕심은 점점 커지더니 기어이 DSRL을 구입하기로 결정을 해버렸다. 가격을 알아보는 중인데 조만간 적절한 녀석을 들여올 것 같다. 그럼, 이곳에 다시 사진이 좀 더 늘어나겠지. 그리고 또 다른 기록들도 사진으로 남길 수 있게 되겠지. 좋은 기억, 추억들을 담아낼 수 있는 마음부터 준비해야겠다.

그림 틈틈이 크로키를 하는데 결과의 기복이 좀 있다. 그래도 느끼게 되는 건 마음을 비우고 몸을 따르고, 대상의 외형에 집착하지 않고 내면을 들여다보려고 애를 쓸수록 느낌 좋은 선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미술의 기본도 제대로 배우지 않았음에도 보이는 것을 그려낼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할 뿐이다. 하지만 쉼 없는 노력을 견지하도록 더욱 주의해야지. 그림은 노력과 시간이 만들어 내는 최종 결과물이다. 예전에 고흐의 습작과 걸작들의 창작 과정을 보며 느낀 감상이 그랬다.

2006년 10월 20일 금요일

나의 행위, 작업 그 모든 것의 이유.

아는 형님 홈페이지 자기 소개란에서 이런 글을 봤다.

글을 쓰는 순간 나에겐 세 가지 소망이 있다. 누군가가 내 글을 읽으면서 울거나, 웃거나, 감동을 받거나... 그렇게만 된다면... 그럴수만 있다면...

형님은 글을 참 맛깔나게 쓴다. 그의 소망이 담긴 글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난 형님의 글을 읽으면서 여러번 감동을 받거나 눈물을 찔끔거린 적이 있었다. 문득, 내가 만드는 작품, 내가 쓰는 글, 내가 하는 모든 행위들에 대해 생각을 해본다. 너무 '투쟁'적이진 않았는지, 너무 '비겁'하게 숨기고 있지 않았는지, 너무 '엄숙'하진 않았는지, 너무 '메마른' 감정이진 않았는지...타인을 들여다 볼 때, 그리고 자주 나를 들여다 볼 때 너무 닫힌 사고와 시선으로 대하지 않았는지 생각해본다.

따뜻한 시선은 따뜻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법이고 따뜻한 마음은 따뜻한 시선을 통해 사물을, 사람을, 세상을 바라볼 때만이 형성된다. 아픈 곳을 도려내고 들춰내도 상처를 치유할 수 있지만 아픈 곳을 어루만지면서도 충분히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어릴 적 배가 아프면 굳이 억지로 약을 먹이기 전에 어머니가 배를 쓰다듬으며 어린 아이를 어르고 달래 아픔을 멈추게 했던 것 처럼.

한 때 세상이 빨리 변화해서 보다 나은 삶을 살아내길 갈구한 적이 있었다. 물론 현재도 참세상이 오기 위해 시간 싸움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 전에 나를 살피고 주변을 살피며 하나하나 감동을 담아낼 수 있는 몸짓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더 크게 자리잡고 있다. 울면서도, 웃으면서도, 감동을 받으면서도 충분히 세상과 소통하고 사람과 소통하는 행위, 작업이 된다면 나 역시 더 바랄나위가 없겠다. 내 행위, 작업이 그런 일련의 소통을 위한 창구가 되면 참 좋겠다.

감았던 눈을 다시 뜨고, 닫았던 감정의 문을 다시 열게 되길. 스스로의 노력과 변화가 쉼 없이 계속되길. 그렇게 바라고 또 바랠 뿐이다.



 

2006년 10월 12일 목요일

실마리를 찾다.

선(line)처리에 대한 실마리가 조금씩 풀리고 있는 중이다. 몇 가지 방법들을 찾아냈고 이젠 그에 따라 최종 테스트를 거치면 충분히 아트웍을 맞춰갈 수 있을 듯 싶다. 단 한 장만의 테스트로는 움직임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아트웍의 느낌을 예측하기 어려울 수 있겠지만 일단 느낌상으로는 상당히 근접하고 있는 중이다. 시간도 촉박하고 앞으로 다른 일들로 인해 더욱 바빠질 것을 생각한다면 요 며칠 안에 한 컷 정도는 출력을 해서 최종 확인을 해야겠다.

작업실을 저녁 늦게까지 사용할 수 없는 점 때문에 작업효율이 쉽게 오르지 않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이도 역시 며칠 기다리면 적절한 대답을 받아낼 수 있을 것 같다.

근래 노트북에 달린 시디롬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근래에 구입한 DVD 대부분을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 가격문제 때문에 정품대신 중고 비정품을 달았더니 문제가 발생하는 모양이다. 외장을 사야할지 정품을 사야할지 고민 중이다. 작업에 필요한 자료는 끊임없이 봐야하고 이미 노트북에 쌓은 자료들도 가득한데 시디롬이 문제니 좀 난감하다.

그나저나 작업실에 인터넷은 설치를 안해 줄 것인가? 다른 곳에서 외장하드에 묻어 오는 병균들 때문에 컴퓨터들이 겔겔대고 있다. 아유...

중국인이 물었다.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한국의 반응은......?"

한 중국인 선생이 내가 한국인임을 알고는 중국어를 알아듣냐고 몇 번이나 묻는다. 조금은 웃기기도 하고 왜 이렇게 반복해서 묻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잠시 후 그가 불쑥 던진 말은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다는데 한국의 반응은 어떤가?"였다. 난 바로 "그럼, 중국의 반응은 어떤가?"라고 되물었다. 그 역시 쉽사리 대답을 하지 못했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핵 실험을 한 것이 이상한 일인가? 사실, 모두들 이미 추측한 사실이었음에도 설마설마하며 애써 부인하려고 했을 뿐 아닌가. 이런 상황이 왜 일어났는지 지난 과정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고 그저 현재 발생한 일에 대해서만 호들갑을 떠는 것은 좀 딱하지 않은가.

요즘 인터넷에 접속하는 시간이 별로 없어 자료를 찾거나 이메일만 확인하곤 했는데 최근 북한의 핵실험을 했다는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미디어들의 반응이야 특별히 읽어볼 것도 없이 충분히 짐작을 하겠다. 예전과 다른 점을 발견했다면 바로 누리꾼들의 반응이 냉철한 시각을 견지하고 있거나 여러 각도에서 상황을 파악하려는 노력들이 보인다는 점이었다.

올블로그에 올라온 추천글들 중 관련된 글을 보면 알 수 있듯 북한의 핵 보유나 핵 실험은 어느 날 갑자기 뗑깡을 부리는 행위가 아니라 여러 상황으로 빚어진 필연적인 결과라는 점에 모두 공감하고 있는 듯 했다. 미국의 북한에 대한 일방적인 태도, 중국의 북한에 대한 비협조적인 태도, 일본의 미국편향적인 정치자세 고수, 한국의 보수세력들의 편협한 사고 등으로 인해 북한이 핵 실험을 하면서 마지막 시위를 벌이는 셈인 것이다. 몇 나라에 의해 테러를 주도하고 있는 국가라고 규정지어져 버린 중동의 몇 몇 나라, 혹은 단체들은 북한의 핵 보유와 핵 실험에 대해 경외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전쟁이 바로 일어날 일은 없겠지만 지속적으로 북한의 목을 죄어 간다면 최후의 선택은 공생공영이 아닌 공사공멸이 될 것이다. 대부분의 전쟁이 경제적인 이득을 위해 혹은 개인, 소수, 소수집단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인민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발생했음을 상기해 볼 때 북한 지도체제가 북한의 인민을 고려한다는 발상은 억지스러울 수 있고 미국이 한국을 위해 북한과 타협에 나설 수 있다는 생각도 유치할 수 있다. 중국이야 동북아 공정도 그렇고 북한이 계륵과 같은 존재라 '형님 말 듣지 않는 동생'처럼 북한을 대할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해가기 위해 한국 정부가 먼저 발벗고 나서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내게 질문을 던졌던 중국인 선생이 내 역질문을 받고 약간 뻘쭘했는지 이런 말을 한다. "어렸을 때 한국전쟁은 남한이 먼저 쳐들어왔다고 배워서 그걸 기정사실로 인정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북한이 먼저 치고 내려갔다는 사실을 알고 당혹스러웠다" 난 이에 대해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사실 한국 전쟁에서 누가 먼저 전쟁을 시작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한국전쟁이 왜 일어났는지가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한국전쟁의 배후에 누가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는지가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핵'이라는 물건에 대해 현재까지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추악한 물건이라는 생각을 견지하고 있지만 달리 말하면 미국을 비롯해 개나 소나 다 하는 핵 실험, 그리고 다들 가지고 있는 핵을 한국이나 북한은 가질 수도 없고 가지고 있다해도 실험조차 할 수 없다는 건 도대체 누가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인가.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물 수 있다는 격언이 그저 말 뿐이 아님을 상황이 악화되고 나서야 인정할 셈인가. 인권을 부르짖고 세계 평화를 부르짖으면서도 한 편으로 온갖 모략과 협잡을 일삼는 뒷골목 깡패'형님'들의 위협에 계속 모르쇠로 수수방관할 셈인가. 단순하게 생각하더라도 우리의 삶, 내 삶이 어느 무능하고 파렴치한 인간들에 의해 어느 순간 멈춰버릴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너무 잔인하다.

2006년 10월 4일 수요일

선(line) 처리의 문제, 해결책이 없을까...

요즘 <날아라 병아리(가제)> 아트웍을 정하는데 꽤 고민을 했었다. 원래는 우관중(吴冠中)화가의 화풍에 영감을 받아 그대로 밀고 나가고 있었는데 중간에 Zeng 감독님의 잇다른 고민에 의해 다른 아트웍으로 시도를 몇 번 해봤었던 탓이다. 특히 며칠 전에는 Zeng 감독님이나 나나 마이클 두덕 드 위트의 <아버지와 딸>을 무척 좋아했기에 그 스타일을 참고하고 변형해 테스트를 해보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Zeng 감독님이 엊그제 밤에 급히 나를 찾기에 무슨 일인가 했더니 아무래도 우관중 스타일을 고수하는 게 좋겠다며 그 이유를 상세히 다시 설명해줬다. 사실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애초에 난 우관중 스타일로 가는 게 가장 맘에 들었고 그렇게 해야만 다른 분위기의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확신이 있었다. 다만 공동 감독이라고는 하지만 작품의 전반에 대해서는 이미 Zeng 감독님이 시작을 한 상태에서 내가 참여했기 때문에 그가 작품의 아트웍에 대해 계속 다른 의견을 냈던 것에는 별 이견을 내지 않았을 뿐이었다. 이는 나보다 그가 가진 작품에 대한 열정이 그만큼 강하다는 반증이기도 하겠다. 암튼, 다시 우관중의 그림들을 들여다보며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다. 뭔가 잡힐 듯 하면서도 쉽게 손아귀에 쥐어지지 않는 느낌들만 가득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현재 가장 큰 문제는 캐릭터 및 배경의 선(line) 처리의 문제인데 배경은 직접 중국화를 전공한 선생 한 분이 도와주기로 했기 때문에 별 문제는 없는 것으로 생각되지만(사실 약간 걱정이 되긴 한다.) 캐릭터들의 선 처리가 큰 골치거리다. 캐릭터가 한 두개도 아니고 게다가 모두 애니메이팅이 되는지라 그 많은 동화를 다시 일일히 붓으로 그려서 원하는 선을 따내는 건 끔찍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몇 개의 소프트웨어를 거쳐 자동적으로 선을 처리하는 방법인데 이게 그리 만만치가 않다. 그림이 좀 크거나 선을 처음부터 묘사를 잘 해낸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는데 '병아리' 안에 나오는 캐릭터들의 크기는 대체로 작은 편이고 현재 쓰고 있는 선도 모두 연필로 처리를 하고 있는 중이어서 깔끔한 선을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 스캔을 한 후에 선 정리하는 것이야 별 문제가 없지만 비트맵을 벡터로 바꾸고 선을 교체하는 과정에서 원하는 느낌이 나오지 않는다. 아~ 정말 머리에 쥐나고 있는 중이다. 오늘 하루 종일 선 처리에 대해 붙잡고 씨름했는데도 원하는 만큼 뽑아지지 않았다.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려 중이다.

뭐, 하루이틀 만에 쉽게 결과를 얻어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제작시간도 점점 촉박해지고 되도록이면 국경절 연휴기간이 끝나기 전에 선에 대한 확실한 방법론을 찾아내야 그 이후 작업이 수월해지기 때문에 조급한 건 사실이다. 게다가 현재 쓰고 있는 소프트웨어에 브러쉬를 추가해서 테스트를 하고 싶은데 브러쉬 만드는 법을 모르겠다. 이거 정말 골치 아프다. 왜 옛날 옛적에 이 감독님한테 제대로 배워두지 않았는지 조금은 후회하고 있는 중이다.

오늘 계속 소프트웨어를 만지작 거리고 책을 뒤적이면서 몇 가지 방법을 찾아내긴 했지만 썩 만족스럽지가 않아서 불만이 쌓이는 중이다. 그래도 일단 내일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선을 모조로 바꿔 테스트 정도는 해봐야겠다. Zeng 감독님의 웃고 있지만 다급해 보이는 표정에 심리적 압박감을 느끼는 중이다.

본격적으로 작업에 돌입한 후 장비도 좀 갖춰지고 작업환경도 훨씬 좋아졌으니 부지런히 머리와 손을 움직이는 일만 남았다. 잠자기 전에 다시 머리 좀 굴려봐야겠다.



- <날아라 병아리(가제)>의 중국어 제목은 <小鸡想飞>, 영문제목은 <Fly For...>다.

2006년 10월 3일 화요일

수영 초보자 - 퇴화하지 않기 위해 허우적거리다.

난 수영을 전혀 하지 못한다. 어릴 적 친구들과 계곡이나 바다에서 물장구를 치는 정도는 가능했다. 수영이 아닌 물장구. 언제부턴가 물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면서 더더욱 깊은 물이 있는 곳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 편이다. 특히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함께 산으로 놀러가 놀며 계곡에서 단숨에 짧은 거리를 마구잡이 수영으로 헤엄쳐 건너가다 친구 녀석이 장난을 치는 바람에 물에 가라앉았던 끔찍한 경험을 한 뒤론 더더욱 그렇다. 한국에서도 수영장엔 어릴 적 '공공풀장'이란 곳을 한 번 가보고 '실내 수영장' 두 어번 가번 게 전부인 기억이다. 그 몇 번의 방문에도 내 가슴을 넘어가는 수심이면 접근도 하지 않았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살도 찌고 몸매도 좋지 않아 더더욱 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수영이 신체의 균형을 잡아주고 전신운동에 대단히 매력적인 운동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생각을 하지 않고 지냈다.

중국에 온 후 주변에 수영을 좋아하는 선생님들이 많아 어떻게든 수영을 배워보려고 마음먹은 지도 꽤 되었다. 그러다 얼마 전 나이 지긋하신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수영장을 가게 되었다. 전부터 배워보려고 애를 썼지만 쉽게 기회를 잡기 어려웠기 때문에 너무도 반갑게 그들과 함께 동행하게 되었다. 수영복은 맘에 드는 게 없어 구입을 미루고 있었는데 선생님 한 분이 여벌이 있어 빌려주게 되었고 물안경은 수영장에 가서 바로 구입하게 되었다.

수영을 전혀 못하기 때문에 선생님들에게 이런저런 이론들을 배워가며 허우적대길 한 참. 나름 이론에는 잡다한 지식이 있는지라 잘 될까 기대했었지만 무척 어려웠다. 물에 들어가면 숨을 쉴 수 없다는 기초상식에 의거해 물 안으로 들어가면 숨을 참고 물 밖으로 나오면 숨을 뱉는 몰상식한 수영 방식으로 여러 차례 물을 먹었고 수심이 조금이라도 깊어지면 머리 속이 하얘지면서 온 몸의 근육이 굳어버리는 경험을 수 차례 하게 되었다.

특히, 내가 써왔던 근육들은 모두 헬스나 격투 관련 운동, 혹은 구기 운동을 할 때만 써왔기 때문에 몸의 긴장을 풀고 자연스럽게 동작을 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태극권을 좀 더 오래 수련했더라면 가능한 일이었을까? 선생님들은 (거의) 처음 하는 사람치고는 쉽게 잘 따라하고 빠르게 습득하고 있다고 칭찬을 해줬지만 그들의 칭찬은 그저 칭찬일 뿐 나는 여전히 물 안에서 허우적대고 물 먹으며 여전히 수심 깊은 곳을 두려워하는 초보자였을 뿐이었다. 한 삼개월 정도 수영장 다니며 연습하면 좀 더 깊은 곳에 가서도 충분히 수영할 수 있다는 그들의 말에 용기를 내긴 했지만 역시 첫 날은 첫 날이었다. 다만 물을 많이 먹어 포만감에 수영을 그만 두기까지, 두 시간여 놀다가 지쳐 그만 둘 때까지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다. 게다가 가을 햇살이 수영장으로 밀려 들어오면서 수영장 위 아래 반짝이는 햇살의 포근함과 아늑함, 아름다움이란... 오랜동안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사람도 별로 없었으니 금상첨화.

사람은 쓰지 않는 근육은 퇴화한다고 한다. 수영을 처음하는 사람은 그 다음날 근육통에 시달릴 수 있고 피로감에 휩싸인다고 한다. 쓰지 않던 근육을 썼기 때문이다. 근육 뿐만일까. 내 뇌세포도 감정도 쓰지 않으면 퇴화하는 법. 쓰지 않는 부분을 적은 시간이나마 움직여주면 보다 균형잡힌 인간이 될 수 있겠다. 세월이 흐르면서 익숙한 쪽으로만 몸과 마음, 정신을 움직가게 되고 그게 굳어지면서 '전형적'인 인간이 되어간다. 보다 폭 넓고 자유로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쓰지 않는 쪽, 꺼려했던 쪽으로도 움직이고 행동해야 함을 다시 기억해낸다.

수영을 어느새 배울 수 있을까 걱정부터 앞서긴 하지만 기회를 접하는 대로 부지런히 허우적대로 움직이면서 잠자고 있는 근육들, 생각들을 깨워내야겠다. 수영이 좀 익숙해지면 혼자서도 갈 수 있겠지. 현재로선 혼자 가는 건 아직 좀 그렇다.

내일 오전에 기회가 있다. :)



- 근래 가는 수영장에는 헬스클럽, 당구, 탁구, 마작, 레스토랑 등 다른 부대시설들이 있다. 전에 선생님들과 농담삼아 얘기했었는데 하루 코스를 제대로 잡아서 운동 겸 놀이를 즐기면 하루 정도 시간은 그냥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수영과 마작 빼고는 곧잘 하는 운동이 아니던가.

중국 국경절 연휴 기간, 근황...

중국의 또 하나의 큰 명절인 국경절(10월1일)이 지나갔다. 아니, 아직 진행 중이다. 중추절과 맞물려 있는 이 커다란 명절에 너도 나도 시내를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떠났고 그나마 별 관심없이 보내는 이들은 학교 안에서 각자의 일을 하며 조용히 보내고 있는 중이다.

원래는 이번 한가위(중추절) 때 한국에 들어갈 생각도 했었는데 한 번 발걸음에 깨질 여비에 대한 걱정도 좀 있었고 특히 비자 연장으로 인해 여권이 수속 중이라서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 다른 지역에도 갈 수 없게 되어서(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면 신분증은 필수, 미처 복사본도 마련해 두지 못했다.) 별 수 없이 장춘에 꼼짝없이 발이 묶이게 되었다.

일주일(혹은 그 이상) 정도 되는 휴가 기간이라 어떻게 알차게 보낼까 고민하는 동료 선생들을 보면서 여행가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일지 않음이 오히려 더 이상했다. 휴가기간을 이렇게 슬렁슬렁 보내는 것도 꽤 좋은 편이다. 다만, 현재 있는 숙소엔 TV가 없기 때문에 중국이 얼마나 떠들썩한지 전혀 알 수가 없다는 것. 그리고 한국의 소식도 근래 좀 바빴던 관계로 띄엄띄엄 소식을 접하다 보니 고립무원에 갖힌 나그네가 된 기분이다. 북적했던 학교가 국경절 연휴로 인해 한산해지고 나니 한적해서 좋긴 하다.

이번 국경절은 한가위와 맞물려 있어(사실, 중국 국경절 시즌엔 대부분 그렇다.) 시내 곳곳에서 월병을 사고 파는 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고 각 상점에는 특별 할인 행사를 하느라 연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편이다. 어제 Zeng선생과 함께 시내에 나갔을 때 둘이 돈을 거출해 낱개로 포장된 월병 50개를 산 후 나눠 가졌다. 1개에 4원씩이니 결코 싼 가격은 아니었지만 녹차와 말차로 속을 채운 월병 맛이 괜찮아 가격은 금새 잊게 되었다. 게다가 한꺼번에 많이 사니 약 30%정도 할인해 주더라. 만나는 선생들에게 두어 개씩 줄 요량으로 샀건만 한가위가 오기 전에는 모두들 밖으로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을테니 잠시 방에 보관해 두는 수 밖에.

한가위 특별 맞이 영화를 하나 싶어 극장에 가고 싶었지만 잠시 미뤄야겠다. 함께 보러 갈 친구를 찾으면 가야지. 장춘에 극장다운 극장이 없었는데 작년 말엔가 총칭루(충경로)에 완다국제영화관이 생겼다. 얼마 전 중국에 온 지 두번 째로 극장을 찾았는데 아는 친구의 소개로 가보게 되었다. 분위기는 한국의 멀티플렉스 극장과 비슷했다. 얼마나 기뻤는지... 처음에 갔던 극장은 극장이라고 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완다국제영화관은 음향시설이나 기타 부대 시설도 꽤 좋았기 때문에 앞으로 극장엔 종종 갈 수 있게 될 거라 기대하고 있다. 상영하는 영화 수가 적은 편이어서 아쉽긴 하지만.

며칠 더 남은 휴가 기간 나름 편하게 쉬며 일하며 보내야겠다. 연휴가 끝나고 나면 바빠질 일이 또 기다리고 있으니 재충전을 할 수 있도록 해야지.

2006년 9월 27일 수요일

후다닥 지나가버린 날들...

장춘국제애니메이션포럼 기간동안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한국에서 오신 교수, 감독, 전문가들을 모시고 일정 조정이며 통역을 하느라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원래 포럼조직위 위원으로 시작한 게 아니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포럼이 시작한 후에는 더더욱 다른 일들까지 맡아 관리하고 처리하느라 진땀을 뺐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좋은 경험이 되고 많은 중국 선생들과 알게 된 걸 생각하면 그나마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처음부터 일에 투입되지 않아서 발생했던 문제들과 행사 진행의 미비함으로 인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꽤 힘든 시간이었다. 준비기간과 행사 기간을 합해 그렇게 몇 주가 훌쩍 지나가 버렸다.

다섯 분의 강연에 줄곧 통역을 맡고(강연 통역은 정말 어렵다.-_-;) 저녁 만찬 장소나 기타 장소에서도 한국 귀빈들과 대화를 나누려는 학교 이사장 및 길림성, 학교 간부들의 요청에 통역은 쉴 새가 없었으니 말을 두배, 세배 더 하게 될 수 밖에 없었고 하루 일정이 끝난 후 새벽까지도 다음날 일정을 위해 소회의를 하거나 상의를 하거나 한국분들을 모시는 일까지 하다보니 행사 막바지에 이르러 그만 감기가 들고 말았다. 한국에서라면 혹 덜 피로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중국(외국)사람들과 함께 일을 한다는 것은 내게 언어 방면과 사고 방식의 차이로 인해 몇 배나 더 신경을 써야하는 것이었고 그만큼 쉽게 피로를 느끼는 일이었던 것이다. 물론 언어는 여전히 부족함 투성이지만 나름 대견하긴 하다.-_-v

행사 기간동안 사진도 좀 찍고 한국에서 오신 분들 중에 오랫동안 뵙지 못한 분들이 계셔서 저녁에 편하게 술이라도 한 잔 하며 얘기를 나누려던 생각은 그저 생각만으로 그쳐야 했고 오신 분들과 제대로 얘기도 나누지 못한 채 작별을 해야했다. 특히 아쉬웠던 것은 기타 국가-캐나다, 미국, 유럽, 체코 등등에서 온 교수, 감독, 전문가들의 강연을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포럼이 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영어를 좀 해보려고 노력 중이었는데 그들의 강연을 듣거나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는 전혀 만들 수 없었다.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행사는 끝나버리고 몸 추스리고 감기도 다 나았는데 막바로 단편 작업에 돌입을 하게 되었다. 작업은 언제 시작하더라도 늘 즐거운 마음이 먼저 앞선다. 다만 오랫동안(?) 작업을 하지 못했던 이유로 조금 부담스럽긴 하지만 이 정도의 부담은 오히려 약간의 긴장감을 동반하기에 느낌이 좋다.

저녁 늦게까지 작업할 공간이 생겨서 더 좋다. 틈틈이 공부도 해야겠다고 불끈!

2006년 9월 24일 일요일

요 며칠 블로그 접속 불가...

애니메이션교육포럼을 마친 후 몇 가지 마무리 작업까지 끝낸 후 맘 편히 블로그를 접속하려는데 계속 '페이지를 찾을 수 없다'는 문구만 뜬다. 중문블로그는 잘 접속이 되는데 왜 안되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리)가 없다. 결국 동생에게 부탁해 원인을 조사해달라고 의뢰를 했는데 서버를 담당하고 있는 측에서 연락이 왔다. 역시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용어들로 가득한 내용으로.

무슨 index.php가 없다고 설명을 해대는데 난 아무리 읽어봐도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역시 동생에게 패스~. 동생의 엄청난 삽질 끝에 정상복구가 될 수 있었다. 서버 담당하는 측에서 몇 차례 연락이 오긴 했는데 여전히 내겐 난해한 용어와 이해 불가능한 용어들로 가득한 내용들 뿐이었다. 블로그 접속이 되지 않아 부득이하게 포스팅을 하지 못하게 된 건 고사하고 블로그를 찾아와 주신 분들이 '페이지 열 수 없음' 메시지를 보고 발길을 돌렸을 걸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미안합니다."

문득 tistory로 옮길까...라는 생각이 강렬하게 드는 날이었다.

행사 관련 후기는 좀 더 마음이 한가할 때 정리해서 올려야지.

2006년 9월 15일 금요일

근황, 포럼준비 및 작업 시작을 생각하며...

제2회길림국제애니메이션교육포럼이 16일 정식 개막한다. 최근 좀 바빴던 이유가 이 행사를 돕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원래는 다른 일로 정신없어야 했을 텐데 행사가 겹치는 바람에 일단 포럼에 투입되게 되었다. 간단한 번역만 도와주는 일이었는데 점점 책임져야 할 일들이 불어나더니 급기야는 어느 정도 선까지는 함께 일하는 친구들을 지휘하게 되었다. (중국어 번역도 버거운 녀석이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지휘를 하게 되다니...) 물론 젊은 친구들이었으니 오빠, 형처럼 따르는 부분도 많이 작용했을 듯 하다. 물론 한국인끼리 느끼는 감정과는 사뭇 다른 것이겠지만.

저녁 늦게 퇴근하는 일이 잦아지다가 새벽까지 일을 하는 시간이 생겨나고 어제는 날을 꼬박 새며 문서를 정리하며 행사 준비를 했다. 처음부터 행사 준비에 참석한 게 아니라서 큰 도움은 되지 못했겠지만 가장 바쁜 시기에 나름 할 만큼 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학교(길림예술학원동화학원)의 수 많은 인원들은 나보다 더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을 테고 함께 조직위원회를 이끌어가던 Fu선생도, 그 아래 Tong, Zhang, Bao,Yu, He, Bai..등도 할만큼 열심히 했다. 내겐 여러 크고 작은 문제들이 불거지는 일이 없었기에(외국인이니까) 나름 심적으론 부담이 적었다. 암튼, 조직위원회, 그리고 준비하며 열심히 한 이들에게 격려의 박수. 짝.짝.짝.

여전히 중국어 성조는 들쑥날쑥 흔들리고 단어들은 생각이 잘 나지 않지만 들어주려고 애를 쓰고 이해해주는 친구들 덕에 즐거운 '노동'을 하지 않았나 싶다.

몇 가지 일들에 대한 감각감상은 포럼이 끝난 후에나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일이 끝나면 장비 세팅 문제도 해결해야 하고, 본격적으로 단편 애니메이션 작업에 돌입하게 된다. 그 기다리고 기다리던 작업실이 학교 안에 마련이 되었고 그럭저럭(보다는 더 나은) 괜찮은 컴퓨터 설비로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시작이 15일 오늘인데. 난 오늘부터 귀빈 마중부터 행사 시작, 마무리까지 일을 해야하니 다음 주 부터나 Zeng선생과 함께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애니메이션 작업을 꽤 오랫동안 하지 않은 듯한 느낌때문에 살짝 걱정스럽긴 하지만 이런 긴장감이 때론 좋다. 작업 시작하면서 또 공부하듯 열심히 배워봐야겠다. 작업이 진행되면 작업일지를 틈틈히 써볼 생각인데 나태함에 굴복하지만 않으면...가능할테지.-_-a

바빠지니 한가할 때보다는 유유자적한 시간이 적어지긴 했지만 기분은 꽤 상큼하다. 忙中閒.

그리고... 靜中動,  動中靜.

2006년 9월 7일 목요일

조삼모사 중국판 - 중국에 대한 오해와 몇 가지 생각

중국어를 조금 안다는 이유로 어제 한 포털사이트를 통해 '조삼모사 중국판'이라는 기사가 시선을 끌었다. 중국인들은 어떻게 그걸 표현했을까 하는 호기심 때문이다. 기사의 요지는 한국에서 한참 유행했던 '조삼모사' 만화를 중국에서 실사판으로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물론 기사 후반부에 가서는 중국에 살고 있는 한 교민의 말을 빌어 '조선족이나 한국유학생이 중국의 베끼기 문화, 짝퉁문화를 조롱하기 위해 만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그런데 이 기사의 리플들을 보니 가관이다. 사실 보통 리플들을 잘 읽지 않는 편인데 '조삼모사 중국판'에 써있는 중국어가 좀 이상하다고 느껴져서 혹시 누군가는 그 부분을 지적하지 않았을까 하는 호기심 때문에 보게 되었다. 예상대로 몇 명 정도가 '중국어 어법이 틀리고 문장이 어색한 걸 보면 분명 한국 유학생의 소행'이라는 정도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말은 그저 한 줄의 의견에 지나지 않을 뿐이었다. 대부분은 중국의 짝퉁 문화, 베끼기 문화에 대해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떼로 욕을 해대고 있는 행태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다 얼마 전부터 중국인들과 대화하면서, 혼자 생각하면서 생긴 궁금증이 다시 일었다.

한국인의 중국에 대한 인식은 일본이나 미국, 다른 나라에 비해 공정한 사고방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정말 대다수 누리꾼들이 중국에 와서 사기를 당하고 그들의 행태에 치를 떨었던 경험들을 가지고 있어서일까? 한국이 일본과 미국문화를 비판없이 수용하고 베끼기에 열중일 때는 그저 선진 문화를 배우기 위한 습작일 뿐이었던 것이어서 괜찮았던 것일까? 가만 보면 미국과 일본, 중국에 대한 누리꾼들의 반응은 좀 차이가 있다. 미국과 일본에 대해서도 무작정 깍아내리고 비판하는 행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인정할 건 인정하자는 이야기도 꽤 많았던 것 같다. 간혹 어떤 방면이든 그들을 추월했을 때의 보이는 우월감은 실로 대단한 정도고. 즉, 한국인은 그들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한 편으로 많은 열등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런데 중국에 대한 태도는 이와 정 반대다. 중국은 앞으로 영원히 한국을 추월하지 못할거라고 생각하고(믿고) 있고 그들의 베끼기 문화 등은 '짱깨'들이니까 한다는 식이다. 오히려 그들이 한국보다 나은 점을 보이면 거짓말이라고 우기거나 더 많은 나쁜 점을 들추면서 무조건 깔보고 무시하고 욕하기 바쁘다.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들의 우월함을 증명하고 싶겠지만 보기에 참 추하다.  

한국인들 사이에 중국인들은 더럽고 시끄럽다고 하는 인식은 이미 널리 퍼진지 오래다. 공교롭게도 최근 중국에 한국인 수가 많아지면서 오히려 중국인들은 한국인들이 시끄럽다고 생각하고 있다. 술자리에서나 기타 공공장소에서도 적지 않은 '개념을 잃은' 한국인들이 시끄럽게 굴고 소란을 피우는 경우가 많아서 일게다. 아니, 그보다 먼저 그들의 귀엔 한국어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외계어처럼 들리기 때문일게다. 그런데 사실 한국인들도 술마실 때나 여럿이 모여 이야기를 나눌 때는 목소리가 상당히 큰 편고 시끄럽다. 더럽다는 문제는 중국의 역사적인 상황이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데 이유가 있다고 난 생각한다.(설명 생략) 시끄럽다는 인식은 상대적인 개념의 문제고 더럽다는 문제는 분명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가 존재하는 부분임에도 그저 한 나라의 인민들을 규정하는데 확고부동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중국인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가 얼굴이 화끈거렸던 적이 있었는데 한국에서 한국인들이 중국 유학생들에게 모멸감을 주고 인신공격을 한다는 이야기들 때문이었다. 국가 간 경제지표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고 외국에 가서 유학을 하는 건 집안 경제사정이 좋건 좋지 않건 간에 각 개인의 염원으로 이루어진 일인데 중국에서 온 유학생들은 일본, 미국, 유럽 유학생들에 비해 인격적으로 인간적으로 차별대우를 받는다고 했다. 모든 한국인들이 그렇지 않다고 설명하는 내게 그는 모든 한국인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그런다고 회답했다. 솔직히 부정할 수가 없었다. 내 친구들 중에도 내가 중국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농반 진반 나를 '짱깨'라고 약올리는 경우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나를 가련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었으니까. 개인이 가진 꿈과 생각은 이런 편견 앞에 아무것도 아닌게 되고 만다. 그저 어떤 나라에 사는지에 따라 바로 신분이 나뉘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혹은 살아갈 동남아시아 인민들이나 중국인, 제3세계에서 온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처하게 될 상황은 불을 보듯 뻔하지 않은가. 아무리 겉으로 예의를 갖춰 대한다고 한들 저 뿌리깊게 박힌 국가별, 자본(경제)별 계급주의가 솎아지지 않는 한 쉽게 해결될 문제로 생각되지 않는다.

남을 무작정 깎아내리면 나의 위상이 올라간다고 믿기 때문인걸까? 남에게 함부로 할 수 있는 건 내가 그만큼 자격을 갖추고 있기 때문인걸까? 많은 경우 국가를 대표해 개인끼리 만나는 경우는 드물다. 개인의 국적은 쉽게(함부로) 바꿀 수 없긴 하지만(한국에서는 돈만 있으면 뭐든 하긴 하더라만) 개인과 개인이 만날 때는 인간대 인간으로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가가 부자면 나도 부자인건가? 한국의 기업이 부자면 나도 덩달아 부자가 되는 것일까? 한 인간의 인격은 국가 때문에, 경제상황 때문에 무시하거나 조롱받을 수 없는 존엄한 것이다. 역지사지가 되지 않으면 그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될 일이다.

정당한 이유가 있는 비판은 비판의 과정과 결과 모두 대부분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지만 감정적인 비판, 편견에 의한 비판은 그저 욕설에 지나지 않을 뿐이고 타인은 물론 자신의 인격마저도 상처를 받게 되는 법이다. 당연히 그 속에 진실은 가려지게 될 뿐이고. 뭐, 이래도 저래도 상관없다면 어쩔 도리가 없다. 그저, 그렇게 사느라고 애를 쓰는 게 보기 딱할 뿐이다. 국가를 등에 지고 애국을 목에 걸고 눈에 쌍심지 켜고 발악하는 게 멋져 보인다면 어쩔 수 없지.

겸사겸사 문제가 된 기사에 대해 얘기하자면 일단 기자라는 사람이 그 안에 써있는 중국어를 해석해 올릴 정도면 충분히 그 문장들이 중국 사람이 쓰지 않은 거라고 의심해 볼만 한 일임에도 그냥 넘어갔고 낚시를 위한 떡밥으로 썼다. 아님, 애초 그 이미지를 올린 누리꾼이 낚시질을 했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아래는 기사에 소개되었던 몇 개의 이미지 중 하나다.

내용은 "오늘부터 중국어를 배우도록 하자" "중국어, 머리아파, 어려워!" "그러면 광동어를 배우던가" "CCTV를 통해서 공부하겠습니다." 뭐, 이런 내용이다. 그런데 조삼모사의 문맥을 대충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무슨 내용인지 이해를 하는 거지, 중국인들이 본다면 틀린 문맥들 때문에 일단 버벅댈 것 같다. 내 생각에 중국인들이 만들었다면 중국어 자체를 귀찮고 배우기 싫은 것으로 묘사했을 것 같지 않은데... 오히려 내용이 "자! 광동어를 배우도록 하겠다." "싫어! 어려워, 힘들어" "그럼, 한국어를 배우던지" "광동(홍콩)영화 열심히 보겠습니다."라고 했다면 어떨까? 중국인이 썼다고 믿을 법 하지 않나? 게다가 틀린 문장, 어법들이라니... 나처럼 중국어 초짜들도 보면 이상한 걸 느끼는데 중국어 전공자들이 보면 어땠을까. 기자는 중국어 못해도 되지만 최소한 주변의 인맥을 활용해서 정확한지 아닌지 확인 정도는 가능하지 않았을까? 흠;;; 암튼... 그리고 만의 하나라도 그들이 조삼모사를 흉내내서 만들었다고 한들, 이게 중국 짝퉁, 베끼기 문화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인터넷에서 모방과 창조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는 걸 한국 누리꾼들은 자신들만의 문화라고 착각하고 있단 건가? 만약 한국인이 조작해서 중국인이 만든 것처럼 하고 누리꾼들을 낚은 것이라면 그 한국인, 스스로 반성하고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뭐, 내겐 중국인이 만들었든 한국인이 조작했든 별 관심이 없다. 그저 중국어 문장이나 읽으며 공부하는 셈 치는 거지. 그런데 많은 누리꾼들은 '조삼모사'라는 성어가 정말 한국말인 줄 알고 있는 걸까? 설마...?

조삼모사(朝三暮四) : 춘추전국시대에 송나라의 저공(狙公)이란 사람이 원숭이를 많이 기르고 있었는데 먹이가 부족하게 되자 저공은 원숭이들에게 말하기를 "앞으로 너희들에게 주는 도토리를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로 제한하겠다"고 말하자 원숭이들은 화를 내며 아침에 3개를 먹고는 배가 고파 못견딘다고 하였다. 그러자 저공은 "그렇다면 아침에 4개를 주고 저녁에 3개를 주겠다"고 하자 그들은 좋아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열자(列子)》 〈황제편〉에 나오는 이야기로 결국 조3모4나 조4모3(朝四暮三)이나 똑같은 숫자인 점에서 똑똑한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을 속임수로 넘기는 데 비유하게 되었다.

2006년 9월 4일 월요일

성룡은 친구들 생일 선물로 무엇을 줄까?

우연히 성룡의 블로그를 둘러보다 "가장 좋은 생일 선물"이란 글을 읽게 되었다.

며칠 전 몇 친구가 생일을 맞이해 생일모임에 초청을 했다. 한 친구는 비교적 젊은 친구였고, 집안 경제사정이 꽤 좋은 편이었다. 그는 줄곧 내게 무슨 선물을 줄 것이냐고 물었다. 내가 말하길 "5천원(한화로 약62만원) 줄게." 그는 무척 기뻐했다. 나는 그가 웃음이 그치길 기다린 후 바로 이어 말했다. "그런데 내가 이미 네 대신 5천원을 성룡자선기금회로 기부했어. 게다가 이미 너를 대신해 수 많은 가난한 학생들이 공부를 할 수 있게 도와줬어. 하하! 농담이라고 생각하지마, 정말이야. 며칠 후에 너한테 영수증(증명서)을 보내줄게. 내가 정말 네 명의로 5천원을 기부했음을 증명해 줄거야"
그리고 두 명의 친구 생일모임. 한 명은 60세, 한 명은 70세였다. 전에 매니저Willie가 무슨 선물을 사야할지 물었을 때  난 아무것도 사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내가 인색해서가 아니다. 내 생각엔 그들은 부족한 게 없는 사람들이었다. 난 정말 그들에게 어떤 선물을 해줘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유일하게 생각된 것은 바로 선물 살 돈을 자선활동에 기부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생일모임에서 돌아온 후, 난 바로 Willie에게 말했다. "내 결정이 정확해" 내가 본 탁자 위에 모든 선물은 금장식품, 넥타이, 양말 등과 같은 거였다. 난 그것들이 그 노인들에게 필요하지 않은 걸 알고 있다. 그 선물들은 모두 그저 방안 한 구석에 쳐박힐 것이라고 믿는다. 얼마나 낭비인가! 생일을 맞이한 사람들이 선물을 받는 것은 한 순간 기쁠 뿐이다. 하지만 집에 돌아가면 모든 선물은 그저 창고에서 먼지만 가득 뒤집어 쓸 뿐이다. 이런 게 정말 필요한 것인가? 만약 선물을 구입할 돈을 모두 자선활동에 사용한다면 정말 많은 어린이들, 노인들은 모두 혜택을 받을 것이다. 이건 혹 나 한 사람만의 바램일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은 늘 생일 선물을 받길 원한다. 하지만 난 이번에 또 다음에 내 팬들에게 친구들에게 지지를 구할 것이다. 이후에 당신들은 어떤 선물도 내게 보낼 필요가 없다. 만약 보내고 싶다면 돈을 보내라. 하하... 내가 그 돈을 모두 자선사업을 하는데 쓸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야 말로 가장 좋은 생일 선물이 아닌가. 여러분의 지지에 감사한다. 그리고 혜택받을 사람들을 대신에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린다. - 성룡

번역: 자유인
출처: 성룡의 블로그

물론 이 글이 좀 더 술술 읽힌 건 내가 본인의 생일이나 주변 인연들의 생일을 맞이했을 때 어떤 선물을 주고 받아야 할지 몰라 '안 주고 안 받기'라고 종종 말했던 경험이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인의 어떤 생각을 떠나 성룡이 생각하고 있는, 직접 실천하고 있는 행동들은 시사하는 바가 참 많다고 생각한다. 종종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정부나 돈 있는 이들이 어떤 일을 할 때 한국에 있는 어려운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보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그렇게 말만 하고 생각할 뿐 어떤 행동을 몸소 실천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나 싶다.

물론 성룡처럼 자선활동을 하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다. 혹은 한국의 자선활동, 단체들의 투명성을 의심하고 있는 사람들도 꽤 많을 것 같긴 하다. 이유야 어쨌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가지고 주변을 살피는 적극적인 태도를 견지한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보람된 일이 아닐까 싶다.

나도 몇 달 전 블로그 답글 수나 트랙백 수를 매달 혹은 매년 정리해 한 건당 백원이든 몇 백원이든 적립해 자선활동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여전히 하지 않고 있다. 중국에 있으면서도 나름대로 이런저런 괜찮은 생각들을 하고 있지만 역시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않고) 있다. 성룡 글을 읽으며 무척 부끄러워지는 건 말과 행동이 따로 움직이고 있는 내가 너무 적나나하게 드러나기 때문일게다.

생일이 왜 중요한지는 다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중요한 자신과 타인의 생일에 주고 받는 선물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경우는 많이 적지 않나 싶다. 바람직한 개인주의, 서로 기분 좋은 생일을 맞이하고 보내는 일은 어느 누구도 뭐라 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다만 한 생명이 태어난 소중한 날에 다른 생명들은(이미 고정된 사회시스템 하에 태어난) 힘겹게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임을 생각해 보는 건 또다른 측면에서 생일을 더 기쁘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자선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쓸데없이 낭비하고 과시하는 소비풍조는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덧: 위 내용과 (약간) 관련됐다고 생각하는 내가 알고 있는 몇 가지.

성룡은
일년에 약 750억 정도의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다.
꽤 많은 자신만의 브랜드를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자신의 동료직원들에게 설립한 업체를 골고루 나눠 준 후 그들의 삶에 보탬이 되게 하고 있다.
홍콩 연예계 대부라 불리고 있고 많은 연예들이 성룡을 "따거"라고 부르며 존경을 하고 있다.
유명한 연예인들과 종종 카레이싱 대회를 개최해 수익금 모두를 자선활동에 기부하고 있다.
동료 연예인의 치욕적인 파파라치 사건으로 인해 부도덕한 일을 근절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성룡자선기금회는 중국 대륙에서도 모범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현재 세계 각국의 어린이 및 많은 팬들이 1달러~몇 달러씩을 보내 학교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역시 중국에서는 1원(한화 125원)씩 기부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학교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돈들은 학교 건립 외 학교 보수공사, 학용품 구입 등 그들에게 필요한 일에 쓰인다.
....그는 특별한 스캔들이 없는 배우 중 한 명이다.

그리고...
현재, 장이모와 함께 영화를 준비 중이고 본인이 감독할 작품도 준비 중에 있다.

2006년 9월 2일 토요일

[ani] 아빠가 필요해(Wolf Daddy) - 기묘한 가족 이야기


일단, 장형윤 감독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함께 기뻐하고 있음을 전하고 싶다. 장형윤 감독의 "아빠가 필요해"가 2006년 히로시마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대상 다음의 2등상이라 할 수 있는 히로시마상을 거머쥐었다. 이는 과거 이성강 감독의 단편들이 그리고 7인조의 "아빠하고 나하고"가 세계 4대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 모두 본선에 올라갔다고 한 성과보다 대단한 것이고 이명하 감독의 "존재"가 2000년도에 히로시마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신인상을 수상한 것보다도 큰 성과다. 정말 축하하고 또 축하할 일이다.

물론 위에 언급한 작품들이 "아빠가 필요해"보다 못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한국의 단편 작품들이 국내의 페스티벌에서는 대상과 최우수상 등을 받곤 했지만 세계 4대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는 본선에 진출하는 것에만 그쳤고 혹은 그 외 비교적 작은 페스티벌에서 상을 받곤 했기 때문에 이번 히로시마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2등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대단한 쾌거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의 단편 애니메이션 감독들의 작품들도 이젠 머지 않아 페스티벌 대상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도 하게 한다.




수상 소식을 며칠 전 아는 PD에게 전해듣고 정말 기쁜 마음에 바로 글을 작성하려 했지만 일이 너무 많아져서 부득이 며칠이 지난 후에야 글을 쓰게 되어 장형윤 감독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긴다. 한 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수상을 한 후에 한국의 어떤 매체에서도 그의 쾌거를 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름 검색을 해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글을 작성하던 시점이 좀 늦었다. 현재 장형윤 감독의 "아빠가 필요해"를 검색하면 많은 매체에서 그의 수상소식을 전하고 있다. 일단 필름2.0씨네21의 소식) 몇 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근래 한국 단편 애니메이션(애니메이션계 전체)이 점점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건 아닌가 하는 서글픔마저 느끼게 되었다. 영화 쿼터제는 지지하건 반대하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으니 그렇다손 치고 애니메이션 쿼터제를 실시해서 좀 더 대중들에게 다가서고 그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일단, 이 글을 읽는 누리꾼들은 함께 장형윤 감독의 수상을 축하하고 기뻐해줬으면 좋겠다. 한국에서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것, 독립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것은 상상 그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고 고난한 여정의 연속이다. 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한국 독립 애니메이션은 수 많은 능력있는 감독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은 적이 없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래도 계속 만들고 또 만들고 있다. 애니메이션이 삶이고 기쁨이고 벗이기 때문에. 그러니 이번 장형윤 감독의 수상 소식은 축하하고 또 축하해도 부족할 뿐이다. 그의 수상이 한국에서 열심히 작품을 만들고 있는 많은 감독들에게, 스탭들에게도 든든한 힘과 기쁨이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아래에 적어가는 글은 내용이 다소 빈약하더라도 함께 작품에 대해 생각하고 공감해주길 바라는 마음에 작성한 글이니 틀린 내용이 있거나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언제라도 대환영이다.)

장형윤 감독을 처음 만난 것은 KIAFA-(사)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가 2005년에 주최한 "제1회인디애니페스트" 술자리에서였다. 이미 꽤 시간이 흐른지라 정확한 기억을 해낸다는 건 나로써는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당시를 더듬더듬 기억해 본다면 아마 개막식 이후 KIAFA회원(감독)들과 기타 많은 사람이 모여 서로 인사를 나누던 자리였던 것 같다. 어렵게 만들어진 (사)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였기 때문에 많은 감독들이 흥을 돋구기 위해 모이기도 했고 현재 어떤 감독들이 어떤 작품을 준비하고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모인 자리였다. 물론 상당수는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고 한 사람 건너면 알게되는 화기애애한 자리였다.

한참 동안의 첫번째 술자리가 파하고 2차, 3차로 이어지는 자리에서 장형윤 감독과도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그에 대한 인상은 나름 선명한 편이다. 물론 장형윤 감독이 나를 기억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는 상당히 활발한 성격에 유쾌한 사람이었고 자리를 이끌어가는 능력이 꽤 탁월했던 것 같다. 농담도 잘하고 스스로를 낮추면서도 격을 잃지 않는 사람.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시나리오 능력이 참 뛰어난 감독 중 한 사람이라고 했다. 준비하는 프로젝트가 많긴 하지만 서둘지 않고 차근차근 하나씩 만들어가는 성실한 감독이란 이야기도 들었다. 그가 궁금했지만 술자리에서는 나도 오랜만에 만난 다른 감독들과 이야기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렇게 자리는 끝이 났다. 그 이후로도 장형윤 감독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가끔 전해듣긴 했다. 난 한국을 떠났고 그리 오래지 않아 (이미 작년부터 유명했지만) 장형윤 감독의 "아빠기 필요해"가 크고 작은 많은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소식을 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었다. 그 매체가 메이저급은 아니었을지라도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널리 퍼져갔다. 좋은 작품은 역시 따로 홍보를 하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찾게 마련이고 시간이 흘러도 재발견이 되는 것이라는 아주 간단명료한 법칙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거짓말로 누군가를 칭찬하는 것 만큼 상대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부끄러운 일은 없기에 솔직한 고백으로 시작하자면 내게 "아빠기 필요해"의 첫인상은 그다지 강한 울림이 없었다. 부끄럽지만 김규항씨의 글 한토막을 읽고 문득 내가 너무 외국작품들에 대해서만 관대한 편인가라는 회의를 품게 되었고 또 단편작품에 대한 감(感)이 많이 무뎌진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고 꼭 김규항씨의 글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내겐 다시 음미해봐야 할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그 후 인디영화제 다락페스티벌을 통해 다시 보게 되었다. 그 이후에 인터넷 상에서 우연히 작품을 다시 접하게 되어 한 두 번 더 보게 되었다. 그리고 몇 가지를 다시 느끼게 되었다.


"아빠가 필요해"는 단편이 가질 수 있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일단, 캐릭터나 배경, 칼라, 애니메이팅(움직임)등은 상업 애니메이션이 가진 장점을 가지고 있으되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듯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작품이 떠오른다고 하지만(일본이나 한국의 전원풍경이 많이 비슷하지 않은가?) 약간 비슷한 분위기는 있되 한국적 배경을 나름 잘 옮겨놨다고 생각한다. 캐릭터들의 움직임은 경제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되 세밀한 묘사가 살아야 할 부분에서는 작은 동작 하나하나를 잘 표현했다. 가령 액션무비를 떠올리게 하는 듯한 여자 어른들의 액션동작이라던가(장윤형 감독의 차기 작품이 "무림일검의 사생활"이라니 기대가 된다.) 영희와 늑대가 한 방에서 잠을 잘 때 늑대의 뒤척이는 모습이라던가 영희가 데굴데굴 굴러 늑대 옆으로 가는 장면, 늑대가 이불을 끌어당겨 영희를 덮어주는 장면 등 작품 곳곳에 세밀한 표현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음을 알수 있다.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본 사람들은 공감하겠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캐릭터들이 표정이 풍부할 수 없는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자잘한 동작, 고개의 움직임, 눈의 위치 및 표정 등으로 캐릭터의 성격을 풍성하게 만들어 낸 건 참 새겨볼 만 하다. 장현윤 감독의 섬세한 감성, 관찰이 힘을 발하는 순간들이다. 물론 이는 편집의 흐름 즉 이야기의 전개, 시나리오의 단단함이 있었기에가능한 일이라 생각되기도 한다.

"아빠가 필요해"의 큰 장점은 기존의 한국 단편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밝고 재치가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의 단편들은 모두 우울하고 비관적이었다. 그런 어두움으로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이 많았기에 보는 이들 마음도 함께 무거워지곤 했다. 그런 분위기를 벗어나려 해도 쉽게 벗지 못했다. 그럴 수 밖에. 한국 사회가 그랬기 때문이다. 뭐, 현재 사회 분위기가 달라진 건 아니지만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 감독들에 의해 이야기되어지는 한국의 모습은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지금 비교적 젊은(?) 감독들은 따뜻한 시선과 함께 재치있게 비틀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젊음을 발산하고 있다. 그걸 가장 크게 느낀 작품은 한예종 출신 감독(그다지 젊진 않다)이 만든 "형이상학적 나비효과의 예술적 표현"이란 작품인데 이는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다시 얘기를 해야겠다. 암튼 "아빠가 필요해"가 가진 밝은 정서와 재치는 보는 이로 하여금 함께 동참하게 만들며 두고 두고 보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한다. 큰 힘이다.

음악과 사운드 디자인, 대사 녹음들에서는 아주 세련된 맛보다는 조금 투박하지만 애니메이션 정서를 충분히 표현해 준다는 측면에서 꽤 성공적이다. 오리지널을 들어보지 못해서 정확한 이야기를 하기가 애매하다. 웹상에서나 사운드 시스템이 좋지 않은 곳에서는 공간 엠비언스가 충분히 들리지 않고 세밀한 사운드를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다. 믹싱이 좀 거칠게 된 느낌도 받을 수 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다시 잘 들어보고 싶다. 늑대 역을 맡은 이의 목소리는 건조하면서도 애니메이션을 보는 이의 귀를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담담하지만 그 담담한 속에 스스로를 성찰하는 느림과 담백함을 가지고 있다고 할까.

"아빠가 필요해"가 가진 내용은 직접 애니메이션을 보며 각자가 느끼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된다. 여러 장치가 있어 보는 이에 따라 느끼는 부분들이 조금씩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본 "아빠가 필요해"는 이상한 동거 속에서 발견되는 가족애라는 것이다. 전혀 다른 개체들이 모여 살면서 가족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건 정말 특별한 일이다. 가족들도 서로를 증오하고 팽개치는 삭막한 사회에서 내게 가족은 무엇이고 가족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되묻는다. 피가 섞이면 무조건 가족이 되는 것일까. 그저 한 나라, 한 땅에서 태어났다고 같은 국민이 되는 것일까. 내게 던져진 불합리하고 억울한 상황때문에 아이를, 생명을 모른체 하고 방치할 수 있을까.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내가 원하는 대로만 이끌어져 가는 게 아니라면 세상에 굴복하는 내 모습이 혐오스러울까.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게 되는 일은 늘 요원한 일일까.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도 모든 걸 결코 쉽게 답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같음과 다름", "가족과 타인", "나와 너"의 관계를 현재 이 사회에서 벌어지는 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분명 변화가 필요하다. 늑대가 소설 쓰기를 포기하고 새로운 직장을 구했지만 그의 생활이 더 편안해 보이고 따뜻해 보이는 것은 자신의 삶을 "포기"해서가 아니라 진정 가치있는 삶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처음 관람할 때 "아빠가 필요해"를 주의깊게 보지 못했던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장형윤 감독의 수상소식이 많이 상쇄되는 느낌이다. 좋은 작품을 보게 해준 그에게 고마움을, 히로시마에서의 좋은 결과로 열심히 작품을 만들고 있는 단편 애니메이션 감독들에게 힘을 실어준 그에게 축복을 보낸다. 꾸준히 작품활동을 할 거라는 믿음을 주는 그가 스탭들과 함께 있는 스튜디오 이름은 "지금이 아니면 안돼"이다. 스튜디오 이름을 보고도 난 다시 가슴이 뜨끔했고 자극받았다. 입으로 작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발로 작품을 만들고 손과 온 몸으로, 온 가슴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도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단편이든 장편이든 좋은 애니메이션을 만난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애니메이션이 영화와 같은 뿌리를 두고 있긴 하지만 애니메이션만이 갖고 있는 정서가 있다. 특히 잘 만들어진 단편 애니메이션이 가지고 있는 정서와 이야기 힘은 장편 못지 않다. 프레드릭 벡의 "나무를 심는 노인", 알렉산더 페트로프의 "노인과 바다", 마이클 두덕 드 위트의 "아빠와 딸"과 같은 작품을 보면  그 울림이 수 많은 장편 영화, 애니메이션을 본 것보다 크고 여운이 깊다. "아빠가 필요해"도 많은 이들이 더 찾고, 본 후에 따뜻한 감성을 서로 나눠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척박한 땅에서 새로운 도전과 성취를 위해, 타인과 소통하고 싶어 노력하고 있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면 좋겠다. 삶의 변화는 10분 내외의 짧은 시간 속에서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단편 애니메이션이 가진 힘이다. 일본에서 만났던 단편 애니메이션 "두산"의 감독 야마무라 코지가 한 말이 생각난다. "Short is Best!"



2006년 8월 26일 토요일

자그락자그락...












소리도 없이 쏟아지던 비가 시간이 지날수록 귓가에서 자그락자그락 맴돌고 있다.
엊그제 봤던 영화 한 편이 계속 마음에 남아 흔들고 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외국 라디오 방송을 켜 놓고 음악이 나올 때만 마음을 동한다.
주말같지 않은 주말, 해야할 일은 많은데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맛있는 부침개를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온갖 이미지와 텍스트가 머리 근처에서 눈 앞에서 아른거림에도 정확히 보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 꼭 제대로 정리를 해보겠다고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쉽지만은 않다.

2006년 8월 24일 목요일

"조선족"이 "조선족"인가? 호칭에 대한 주절거림...

아래 글도 그렇고 내 블로그를 뒤지다 보면 가끔 "조선족"이란 단어를 접할 수 있다. 난 "조선족"이란 말이 싫다. "조선족"이 싫은 게 아니라 부득이하게 사용하고 있는 "조선족"이란 "단어"가 싫다. 물론 "고려족"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하면, 한국인들이 사용하는 "조선족"이란 말에 숨겨진 "차별"을 싫어한다. 미국, 일본, 유럽에 살고 있는 한국인, 한국인 2-3세는 그들의 국적에 상관없이 무조건 교포, 동포라고 부르는 반면 한국보다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나라에 살고 있는 이들은 '족'이란 조사를 붙여 부르거나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 살다보면 조선족을 만나는 건 비일비재한 일이고 한국의 많은 매체에서도 조선족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인들의 눈엔 조선족은 이방일 뿐이고 자신들보다 계급이 낮은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아닌 사람도 많다는 거 안다.) 이런 개념들이 사람들의 의식 속에 자리하게 된 건 언제부턴가.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문제라고만 치부하기엔 복잡하다. 왜 이런 차별을 시작하게 된 것일까.

현재 한국의 기원은 많은 사람들이 말하길 '고조선'이라고 한다. '옛날 조선'이란 뜻이겠지. 그렇다면 그 조선이란 이름을 버리고 한국-코리아가 된 이유는 뭘까. 일본인들이 조센진(조선인)이라고 부르는 건 한국인을 얕잡아 보는 것이라 발끈하면서도 우리는 너무 쉽게 조선족을 "조선족"이라 부르고 있다. 만약 각 나라별로 호칭하는 방법에 따라 정한 호칭법이라면 고려인은 "까레이스키"가 되어야 할테고 조선족은 "차오시엔주"가 되어야 할 것이다. 베트남의 "라이따이한"처럼.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외국인들은 보통 국적에 따라 자신을 나타낸다.(내 이해가 부족할 수도 있지만) 국가위주의 편재 속에서 당연한 일이다. 가령 "나는 미국인이지만 아버지는 멕시코인이고 어머니는 프랑스인이다."라고 말한다. 그럼 그 사람은 어떤 민족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혈통순결주의, 민족주의 때문에 해외에 살고 있는 수 많은 동포들을 '한국인'으로 부르길 원하지만 그로 인해 많은 문제들을 양산해 내고 있고 그들에 대한 인식의 차로 인해 반목과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과연 옳은 일인가? 단지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나라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인들에게 차별대우를 받아도 된다는 뜻인가? 이미 한국에서도 혈통순결주의는 빛을 바랜지 오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900번 이상 외래의 침략을 받은 한국에서 100% 한민족이라고 부르는 건 어불성설이다.(여성을 비하하거나 다른 뜻은 없으니 오해 마시길.) 게다가 현재 많은 외국인들도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한국인인가, 아닌가. 한민족의 범주 내에 포함시키지 못하는 민족, 혈통은 한국인이 될 수 없는 것인가. 국가와 민족, 인종으로 사람을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으로 사람이 재편되고 있는 현실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호칭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 중요하지 않을 수 있는 호칭인데 왜 신경쓰냐고 묻는다면? 위에서도 말했지만 호칭은 별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그 호칭에 담겨진 차별이 문제다. 호칭을 바꾸건 바꾸지 않건 상관없지만 그 호칭에 담긴 차별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 호칭이 분명 문제가 있다. 단어는 생각과 사상을 담는 그릇. 하지만 때론 그 그릇으로 인해 생각과 사상이 바뀔 수도 있다. 간혹 "형식이 본질을 규제"하기도 하니까.

중국 조선족이 처음부터 "조선족"은 아니었다고 한다. 간도 땅에 살고 있던 조선족은 알게 모르게, 영문도 모른 채 중국 공산당에 의해 중국인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당시 중국인들이 조선족을 호칭했던 말은 "조선인"이었다. 이유는 북한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불려지고 있었고 간도 땅 조선족들은 북한을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었던 탓이다. 게다가 그들은 중국에도 북한에도 편입되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중국과 북한의 이해관계에 의해 이리저리 이용(?)당하다가 어느 순간 중국인이 되었고 중국은 조선인을 자신들의 소수민족의 일부분으로 편입시키고자 "조선족"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인들 역시 그들을 조선족이라 부르고 있다. 한국인이 조선족이라 부르는 저의에는 중국에 대한 반감, 멸시와 함께 그들 자체를 무시하고 멸시하는 의미가 함께 내포되어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대다수가 그렇지는 않을 거라 믿는다. 하지만 인터넷상에서나 한국의 매체에서 그들을 다루는 태도를 보면 역시 비관적이다.

이런 저런 이유때문에 내가 바라는 바는 호칭에 상관없이 그들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똑같은 대우를 해주는 것이다. 그게 여의치 않다면 캠페인 차원으라도 혹은 공식적으로라도 해외에 있는 같은 민족들에 대한 호칭을 통일시켜주길 바란다.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기 전 혹은 후에 타의에 의해 외국인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이들에 대해 깊은 이해와 배려, 애정으로 다가섰으면 하는 바램이다. "조선족"을 "중국동포 혹은 재중동포"(현재 이렇게 부르고 있는 경우가 많아졌다)로 러시아, 우즈베키스탄과 같은 지역은 "러시아 동포, 우즈벡 동포"등으로 불러주거나 혹은 각 나라에서 한인을 부르는 고유명사로 직접 불러주던가 하면 좋겠다. 아니면 외국에 사는 중국인들을 화교라고 부르듯이(화교는 华侨-화치아오라는 뜻으로 중화의 화, 우거(거주)할 교를 써서 외국에 사는 중국인이란 뜻이다. 华人이라고 해서 중화인의 줄임말인데 이는 한인(韓人)과 같은 말.) 다른 단어를 만들어도 좋을 듯 싶다. 적절한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있다면 알려주시거나 제안해 주시길.)

그렇지 않아도 호칭에 무척 민감한 대한민국에서 위와 같은 현상은 자연스러울지 모르겠지만 그 호칭이 많은 차별을 만들어 냄을 안다면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모두 맘 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생각하고 쓴 글은 뭐 정리가 될까마는) 막 써내려간 글이라 정리가 잘 안되고 있다. 윽.

중국어 번역을 하면서...;; (어렵군)

9월 15일에 장춘에서 <장춘국제애니메이션교육포럼>이 열린다. 그 때문에 학교에서는 많은 일들을 처하느라 분주하다. 그 와중에 한국측 교수, 감독들과의 연락 및 그 분들의 발표원고 번역 등이 내 손에 쥐어졌다. 사실, 내가 꼭 해야 할 일은 아니다. 그래서 조직위에서도 내게 일을 부탁하면서 꽤 미안해 했는데 조직위나 나나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조직위는 이미 조선족을 찾아 번역을 부탁하려 했었다. 면접 때는 나도 함께 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런데 한 두명 와서 발표원고를 보고는 두 손 들고 못하겠다고 한다. 그럴 수 밖에. 애니메이션 관련 및 IT신기술 관련 전문 용어가 대부분인데다가 그 외 단어들 중에도 외래어가 참 많기 때문이다. 물론 인터넷을 뒤져가며 몇 개의 사전을 뒤적이며 번역을 할 수 있긴 하겠지만 급한 시간을 생각하면 조직위에서도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다. 별 수 없이 그 일들이 내게로 왔다.

아, 정말 힘들다. 내가 중국어를 얼마나 배웠더라?-_-; 그 정도 배우고 번역을 한다는 게 오히려 신통할 지경이다. 다행히 애니메이션 전공자라 번역할 중국어 단어를 쉽게 찾아내곤 하지만 번역은 역시 어렵다. 일반적인 문장이라면 문법이 다소 부드럽지 못하더라도 쉽게 번역을 하겠지만 포럼에서 발표할 원고들인지라 문법은 고사하고 단어 하나하나에 신경을 써서 번역을 해야하니 거 참 고역이다. 물론 이렇게 엄살은 떨지만 나름 (열심히) 해내고 있다. 게다가 이렇게 한 번 번역을 하고 나면 나 역시 전부는 아니더라도 많은 단어 및 문장구조에 대해 공부를 하게 되니 공부는 되는 셈이다.

현재 번역하고 있는 건 원문 전체를 하는 게 아니라 간단한 요약본을 만드는 건데 실제 문장을 만드는 시간은 덜 소요될 지 모르겠지만 원문을 정리하는 게 꽤 까다롭다. 큰 제목, 소 제목만으로도 문장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본문에서 핵심되는 문장을 발췌해야 하기 때문에 내 스스로가 정독은 아니더라도 원문을 필히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 손에서 만들어진 중문은 조직위로 넘겨지고 조직위에서는 좀 더 부드럽거나 자주 쓰는 어휘로 다듬는다. 발표원고기 때문에 단어 자체를 바꾼다기 보다 동사, 목적어 순서가 잘못된 부분이나 주어가 생략된 부분을 다시 정리하는 셈이다. 그 와중에 문장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 실무자와 직접 만나 말로 자세히 설명을 해주고 함께 수정을 한다. 아, 그런데 방학 중에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없어서였을까. 중국어 성조, 발음이 모두 엉키고 꼬여버렸다.-_-; 암튼, 꽤 고난한 날들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중국어 번역을 하던 중에 느낀 점 몇 가지.

1. 한국어를 쓸 경우엔 주어가 종종 생략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중국어에서는 주어가 생략된 문장은 거의 없다. 이유가 뭘까. 주어를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엔 모두가 함께 인식하고 있는 문제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중국인들은 문장의 주체를 중요시하는 걸까?

2. 한국어에 외래어가 무척 많다.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한국어 어휘 중 70%-80%(혹은 그 이상?)가 한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외 10%-20%는 외래어인 듯 하다. 동사, 조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단어가 그렇다. 한국어가 표음문자라서 그렇다고는 하지만 중국은 많은 경우 외래어가 들어오면 일단 자신들의 언어(한자)로 전환해 사용한다. 가령 블로그는 博客(BoKe;보커)라고 읽는다. 발음도 비슷하지만 "다양하고 많은 손님들이 모이는 오가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 유명한 口可口乐(코카콜라)도 있지 않은가. 북한의 경우에도 순우리말을 사용하려고 무척 애를 쓰는 걸 볼 때 한국은 쉽게 외래어를 받아들이고 영어로 표현하는데 익숙해져 버렸다. 사람들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에 영향이 있을까, 없을까.

3. 아직 중국어에 대한 이해, 앎이 얄팍하기 때문에 번역할 때 어려움을 느끼는데 한국에서 쓰는 한자 중에 상당부분 중국어와 상통되는 단어가 있긴 하지만 이미 쓰지 않는 한자들이 많다. 그리고 분명 내 이해하는 관점으로는 다른 뜻임에도 불구하고 내 설명을 들은 중국인들은 같은 뜻이라고 말한다. 종종 느끼는 거지만 처음 외국과의 교류를 시작했던 사람들이나 외국어 사전을 만든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언어는 글을 배우는 게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 생활을 배우는 것이라고 누군가가 말했었지.

4. ( - ), ( _ ), ( ; ), ( : ), ( () ), ( <> ), ( [] ) 등의 기호 활용에 둔감한 편이다. 분명 한국어에서도 저 부호를 쓰는 경우가 많을 텐데 각기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이해를 못하고 있다.

5. 문장으로 소통하는 게 직접 대화로 의사소통하는 것보다 어렵다. 얼굴을 마주보고 대화를 하는 건 표정과 손동작도 함께 동원되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사람이 가진 어떤 기(氣), 기분, 정서들이 함께 표출되어서 그렇겠지. 물론 문장으로 정리하는 건 말로 하는 것보다 더 이성적이고 감정을 배제하기 때문에 유용한 면이 없지 않아 있겠지만 직접 말로 대화를 하는 것 역시 그 이상의 효과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기 때문에 메신저를 활용해 대화를 나눌 때 이모티콘을 쓰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학교 과제 제출이나 면접 때 필요한 자기 소개서엔 이모티콘을 쓰면 '어이'가 가출하니 조심.

6. 외국어를 잘한다는 것, 쓰임새가 많다. 아! 어릴 적 그렇게 많았던 영어 수업 시간, 왜 열심히 하지 않았던가...!!! 후회는 소용없다. 할 때 하자.

2006년 8월 21일 월요일

거짓말


그래, 알아, 얼마 지나지 않아 흔적도 없이 사라진단 걸.
그래도 말하지 않으면 가슴이 먹먹한데 어떻게 하냐고.

욱하는 치기에, 겁없는 용기에, 지나가는 말처럼
슬쩍, 툭 던졌다. "사랑해"

거짓말, 사라지지 않았어. 흔적은 없지만.
세상이 모두 한통속이었어. 뱉어놓은 말도 모두.
속았어, 철저히, 바보처럼.

2006년 8월 17일 목요일

봉준호,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남. 이런~ 너무 부럽다;;;

한국에 있지 않기에 '괴물'을 볼 수 없는 이 아쉬움은 '불법 DVD 천국'에서 DVD가 하루빨리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살 달래고 있다. 극장에서 보지 못하게 된 절망적 상황은 이제 다시 어떻게 되돌려 보지도 못하게 되었고 그저 DVD가 어떻게든 빨리 출시되기 만을 기다리고 있다. 인터넷을 돌다 보면 여기저기 괴물 스포일러로 가득하지만 그것마저 눈 감고 넘기기엔 너무 유혹이 강해 별 수 없이 조금씩 보긴 했었다. 하지만, 직접 볼 때는 싸그리 다 잊고 봐주마.

어쨌든 봉준호, 괴물에 대한 평가가 어떻든 난 봉준호 감독을 좋아하고, 그의 영화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번 괴물에 대한 여러 정보들은 내게 진수성찬과 같았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음에도 마음은 이미 두근거리고 있을 정도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지만, 실망해도 좋다, 일단 좀 보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그러던 중 한 포털 사이트를 통해 접하게 된 글이 있었으니... 바로 "<괴물>의 봉준호, <20세기소년> <몬스터>의 우라사와 나오키를 만나다"라는 내용이다. 아니, 이런...!!! 봉준호, 너무 부럽다. 우라사와 나오키를 만나다니. <야와라>, <마스터 키튼>, <해피>를 비롯해 <몬스터>, <20세기소년>과 같은 엄청난 걸작을 그려낸 우라사와 나오키를 만나다니!!! 그저 부러움에 멍하니 글을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다른 만화들도 충분히 걸작이지만 특히 <몬스터>에 빠져 몇 번을 반복해서 읽고, 심지어 그 안에 소개된 몬스터와 관련된 짧은 동화는 애니메이션으로 그대로 재현해보려고 생각도 했었다. 엄청난 인물들의 얽힌 관계를 아주 부드럽고 때론 역동적으로 그려나가는 그의 재능에 감탄하고 또 감탄했었다. 몬스터 요한의 슬픈 미소와 닥터 덴마의 맑은 눈동자, 뿐만 아니라 수 많은 사람들의 사연, 슬픔과 아픔, 행복의 경로를 쫓아가며 숨이 멎기도 하고 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리기도 했던 기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게다가 <20세기소년>의 어마어마한 스케일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풍부한 상상력, 인물들의 섬세한 심리묘사, 게다가 내 어릴 적 단면도 슬쩍 엿볼 수 있게 하는 추억의 장면들 그리고 과거와 현재, 근미래를 자유롭게 왕래하며 풀어내면서도 어긋남이 없는 톱니바퀴처럼 부드럽게 들어맞는 이야기는 단숨에 그 속에 빠져들기 충분했고 켄지 일당을 행적을 쫓아가며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단숨에 읽어내려갔던 기억이 생생하다.(아직 완결이 되지 않았지만 곧 볼 수 있겠지) 한 동안 '20세기소년'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하기도 했을 정도였으니 내게 <20세기소년>은 어떤 만화하고도 비교할 수 없는 대단한 작품이 되고 말았다. 새로 시작한 연재 <플루토>는 1편만 봤는데 아~ 또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그런 만화들을 그려 낸 우라사와 나오키를 만나다니!!! (아니! 봉준호를 만나다니!!! 이렇게 말해야 하는 걸까?-_-;;;)

그래, 유명해지고 볼 일이다.-_-; 그 둘의 만남이 무척 부럽지만 지금의 내 처지를 돌아보며 깊은 상념에 잠기기도 하고 불끈불끈 샘솟는 뜨거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들의 대화를 읽으며, 보며 순간 몇 가지 아이디어가 스쳐지나가기도 하고 다시 마음을 다잡아 보기도 한다.

두 사람,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다른 점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게 참 보기 좋다. 언젠가 만약 우라사와 나오키가 만화를 그리고 봉준호가 영화로 촬영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현재 나와있는 만화 중 <몬스터>나 <20세기소년>을 봉준호가 영화로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 <몬스터>는 미국에서 이미 판권을 사서 영화로 제작한다고 하니 그렇담 <20세기소년>을 봉준호가 만들면 어떨까. 스케일이 크니 반지의 제왕처럼 시리즈로 쭈욱~... 잘 뽑아낼 것만 같다.

그들의 만남이 심히 부러운 새벽, 그저 가슴만 두근거릴 뿐.

쳇, 암튼 많이 부럽다.;;;


봉준호,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남 - 텍스트로 읽기
봉준호,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남 - 동영상으로 보기

2006년 8월 16일 수요일

친일파(반역자) 재산 환수 조사 작업 착수 소식을 듣고...

친일파 재산 환수를 위한 조사 작업이 착수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모 블로거가 말하길 '친일파'라는 말은 본질을 슬쩍 흐리며 좋게 말해주는 뉘앙스가 많이 풍기기 때문에 '반역자'로 부르기를 주장하고 있다. 동감한다. 암튼, 친일 반역자 재산 환수 조사 작업이 시작되었는데 이번엔 좀 제대로 진행하고 마무리를 봤으면 좋겠다.

전두환이처럼 얼렁뚱땅 29만원 밖에 없다고 발뺌하듯 도망가는 녀석들은 절대 없도록 철저히 조사하고 철저히 긁어와야 한다. 그 재산 싹 긁어온 후 제대로 된 곳에 팍팍 쓰길 기대한다.

이참에 독립운동 유공자 재산 환급 조사 작업 같은 건 안 하나? 역시 모 블로거가 한국에서 나라를 위해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가난하다고 말하던데 독립운동하시느라 집안 살림 거덜내고 가족들까지 힘들게 고생하며 푼돈부터 거금까지 몽땅 독립운동하는데 쓰셨던 어르신들, 그리고 그 가족, 후손들에게 훈장 하나 딸랑 지급하고 몇 푼 안되는 연금 주면서 생색내지 말고 좀 근사하고 폼나게 대접 좀 해주면 좋겠다.

모쪼록 당대가 인정을 하건 못하건 간에, 시대가 흘렀건 어쨌건 간에 정당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부당한 사람에게는 벌을 줘야만 비로소 살맛나는 세상이라 할 수 있지 않겠나.

암튼, 이번에 친일 반역자 껀은 지대로 좀 허자~~~!!!

복고(復古), 현상유지, 혁신 중에 뭘 주장할까.

옛날 위세가 당당했던 사람은 복고(復古)를 주장하고,
지금 위세가 당당했던 사람은 현상유지를 주장하고,
아직 행세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혁신을 주장한다.
- 루쉰

복고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도처에 널렸다. 물론, 대부분 한 자리씩 꿰차고 앉았던 사람들이겠지. 지금은 그 위세가 예전만 못해 자꾸 옛날 생각날 테니 과거가 좋다고들 궁시렁대고 있겠지. (현재가 좋지 않으니) 그런 사람들에 편승해 과거가 더 좋았을 거라고 추측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현재를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 생각조차도 하지 않는 패배자들이다. 과거는 돌아가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현재를 더 잘 살아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나 이제 돌아갈래"라고 외쳐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으면 박하사탕도 제대로 못 먹었던 영호씨는 이미 "과거로 돌아가" 다시 사람다운 삶을 살았을 것이다. 이 역시 현재를 잘 살아보려는 몸부림에서 그런 것이지 그런 반성조차 없는 과거로의 회귀는 볼쌍 사납다.

현상유지를 하고 싶어하는 이들도 서로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인다. "이제 그만~"이라고 이야기 해봐도 뽀동한 텔레토이 어린 것들이 뭘 아냐고 혼을 내기 바쁘다. 그만큼 해 쳐드셨으면 만족할 줄도 알아야 하건만, 벌써 강산이 몇 번은 변했을 시간동안 권력을 쥐고 흔들면서 좋은 상황은 한 번도 만들지 못하고서도 다시 또 번쩍거리는 권좌가 그립다고 아우성이다. 현상유지도 모자라 복고까지 주장하며 벼룩의 간을 빼먹을 태세로 눈들이 뻘겋다.

지금 어떻게 몸부림을 쳐봐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 때문에 부득이 시위를 하고 항거를 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그 중에는 제대로 행세하고 싶어 "갈아보자"고 선동하는 자들도 있다. 정말 제대로 된 삶을 위해 시스템을 흔들어 보려는 게 아니라 "너는 해 먹었는데 나라고 못 해먹으란 법 있느냐"며 뗑깡을 부리는 부류들. 정말 지리한 현실과 투쟁하는 이들을 자신의 안락한 삶을 위해 도구로써 이용하는 부류들. 그러고 나서 앉는 "높은 자리"는 과연 편안할까. 그들이 구구절절 입에 달고 있는 건 '혁신'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복고나 현상유지나 혁신 모두 "한 자리, 한 껀" 해먹고 싶은 이기심, 욕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은 듯 싶다. 물론 이리보면 이렇게 보이고 저리보면 저렇게 보이는 게 루쉰 글 행간 속에 숨겨진 재미고 의미다. 자신들이 주장하는 바가 그리 나쁜 의도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고 부득부득 우길 수도 있다. 그래 우겨라. 우겨도 진실은 변하지 않는 법이다. 우겨서 진실이 될 것 같았으면 여전히 천동설을 믿고 있어야 했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하고 있어야 하는 법. 많은 성자, 선지자들이 사람의 마음과 정신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했던 건 다 이유가 있다. 근본을 치유하지 못하면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뿌리가 아닌 가지에 나와있는 문제를 해결하면 옆에서 새로운 가지가 치고 올라오며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 낸다.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끊는 방법은 썩은 뿌리를 도려내는 것이다. 자신은 하나도 다치지 않고 아프지 않길 원하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건 극히 이기적인 생각이다. 뿌리를 도려낼 때는 늘 아픔을 동반하는 법이고 그 아픔을 견뎌내고 잘 치유해야만 비로소 문제 해결에 다다를 수 있다.

"아직 행세를 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말 중에 "행세"가 정확이 무엇을 지칭하는 지 알듯 모를 듯 하지만 내가 바라는 최소한은 사람사는 이치에 어긋나지 않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시스템과 삶의 방식이다. 그게 무엇이냐고 세세하게 물어봐야 나도 계속 풀어가고 알아가는 중이니 쉽게 몇 마디로 답을 낼 수는 없겠고 함께 찾아가고 공부해 가면 좋겠다.


이 때문에 글을 적은 건 아니지만 문득 생각이 나 첨언하자면, "친일파(어떤 블로그가 말한 반역자가 더 맞을 듯)" 재산 환수를 위한 조사를 착수했다고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제대로 청산을 했으면 하는 바램 뿐이다. 불합리한 일들이 도처에 벌어지고 있으면서도 눈가리고 아웅하는 일에 너무 익숙하다. 뒷 목이 저리도록 켕기는 게 없는 사람 중에도, 당당하고 떳떳한 사람 중에도 쉽게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닫는 게 익숙한 사람들이 많다. 나중에 어떤 댓가를 받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설마...) 그런데 결코 떨어지지 않을 떡고물에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사는 건 나중에 혈압 올라 병 얻기 딱 쉽상이다. 건강은 미리 챙기는 게 좋겠다. 오히려 댓가를 바라는 거라면 제대로 듣고, 바르게 보고, 소신껏 말하고 사는 게 훨씬 빠르고 게다가 건강에도 좋다.

코끼리와 개구리

Elephant on the door

최소한 내가 묻힐 곳 만이라도 안다면.
내가 숨을 놓는 건
다시 숨을 쉴 수 있는 믿음 때문이지만
종종 잊고, 또 잊고
결국에 돌아갈 때도 잊고.
돌아갈 곳 조차도 미궁처럼 헤메인다.
손을 내밀면 잡힐 것 같은 수수께끼
해답을 모르는 건 흥미진진함이 아니라
속 꽉 막힌, 답답함이다.


Frog on the tile

누추한 곳에 있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흐르는 물에 더러워진 몸을 씻어낼 수만 있다면
몸 뉘일 곳이 어디인들 대수일까.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웃음을 놓지 않는 건
지금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억지만은 아니다.

2006년 8월 7일 월요일

스타벅스 불패신화의 끝, 작은 상상.

"우리는 저항한다 - We Resist..."에 소개한  관련 링크를 보면 알겠지만 현재 이스라엘과 미국이 벌이고 있는 작태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의지의 표현으로 세계 누리꾼들이 보이콧 이스라엘 캠페인(Boycott Israel Campaign)을 벌이고 있다. 그러던 중 오늘 우연히 "月신장률 5년來 최소..."스타벅스 불패 신화 끝났다"는 기사를 접하고는 소박한 상상을 하게 되었다.

기사의 내용은 스타벅스의 매출이 최저인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고 있고 담당자의 말을 빌어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타벅스 불패 신화가 끝나게 되는 이유가 혹 세계 누리꾼들의 "보이콧 캠페인"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단순하고 소박한 상상을 하게 된 것이다. 위에 링크로 소개한 보이콧 목록 중에 스타벅스도 있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함께 보이콧을 하자는 것은 한 개인의 온전한 자유라 할 수 있는 구매 결정권에 반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전쟁 반대나 다국적 기업의 횡포, 권력과 자본의 횡포에 항거하는 방법이 이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현실을 볼 때 그다지 지나치지 않아 보인다.

상상은 상상으로 끝날 뿐이겠지만 만약 정말로 이러한 캠페인에 의해 불패 신화를 자랑하고 월가에서 효자종목으로 활약하고 있는 스타벅스가 성장을 멈추게 되고 그들이 다시 제대로 원인 분석을 한 후 무언가 '변화'가 일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꿈이 크면 비약이 되고 말지만...)

보이콧 항목을 보면 특히 컴퓨터 관련 품목에서는 쉽게 바꿀 수 없는 회사 제품들도 있긴 하지만 스스로가 거부할 수 있는 항목만이라도 실천에 옮겨 본다면 상상은 현실로 나타날 수도 있으리란 생각도 해본다. 한 회사를 완전히 망하게 하자는 집단 폭력행사가 아니고 개인의 자유의지를 거슬러서라도 꼭 해보자는 극도의 이기주의도 아니다. 잘못된 전쟁을 하루 속히 종료시켜 달라는 무언의 항의며 시위일 뿐인 것이다. 정당한 목적에 과하지 않는 방법으로 불합리한 일들을 합리적인 일, 상황이 되도록 변화시킬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좋은 일인가.

문득 생각이 다른 곳에 가 닿는다. 한국에서 근래에 제대로 보도가 되지 않았던 이상호 기자의 고백. 이를 통해 보다 자세히 알게 된 삼성의 막강한 권력, 언론 장악, 비리. 과연 한국에서 위와 같은 보이콧 캠페인을 통해 거대 권력 삼성을 향해 무언의 시위를 전개할 수 있을까? 삼성의 돈줄과 로비가 끊기면 정치도 좀 맑아질 수 있을까? 그저 작은 상상을 해 볼 뿐이다.

혼자 하는 상상은 때로 이상이고 망상일 수 있지만 여럿이 함께 하는 상상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2006년 8월 6일 일요일

우리는 저항한다 - We Resist...

끊이지 않은 폭죽 소리, 불꽃 놀이 하지만 그곳에 밝은 미소는 없다. 그래, 이스라엘 소녀들이 미사일에 써 준 사랑 가득한 편지는 있었지. "베이루트에서 적막이 폭탄보다도 무섭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Mazen Kerbaj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한다. "...오늘 밤에도 몇개의 그림으로 내 포스트를 채울 것이다. 내 포스트를 유심히 봐 달라. 그리고 이곳을 지켜 달라.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해 달라. 우리의 상황을 알려 달라..." 그는 자신의 그림을, 글을 되도록 자유롭게 각자의 블로그를 통해 출판하기를, 알려주길 원하고 있다.

"how can i show sound in a drawing?"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통해서라도 미국의,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막아내고 싶지만 쉽지 않다. 왜, 다른 모든 나라들은 전쟁 반대의 성명서만 내고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일까. 역시 미국과 이스라엘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세력,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것일까? 누군가 둘이서 싸우고 있을 때 그저 바라보며 "어~어~ 저러면 안되는데...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중간에 서서 뜯어말리지도 못한다. 때리는 쪽이 소위 이 바닥의 두목이기 때문인가. 그저 일반 인민들이 나서서 이스라엘 제품 불매운동을 벌이고 성금을 보내고 마음을 함께 해주는 것 외에는 저 놈의 전쟁을 막아내기 어려운 모양이다. 외교도 UN도 필요없는 세상, UN시찰단도 폭탄을 맞아 사라져버리는 세상. 언제 어느 순간 불똥이 튈지 모르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군인들만 죽어나가는 게 아니라 아무런 잘못도 없는 아이들, 인민들이 죽어나가고 있는 저 빌어먹을 전쟁의 복판에서 단 두 나라의 횡포를 수수방관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슬픈 세상에서 살고 있나. 우리는.

"We Resist"

저항하는 수 밖엔 방법이 없다. 왜 저항해야 하는가. 비겁한 방법으로, 정당한 이유도 없이 휘둘러 대는 폭력에 저항하는 수 밖엔 다른 방법이 없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앞으로 결코 생명의 존귀함을 입에 걸어서는 안된다. 생명이 존귀함, 인권을 말하기 전에 반드시 그들이 저지른 전쟁에 대해 참회하고 사과부터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세상에 정의가 발 붙일 곳이 어디 있을까. 백번, 천번 양보해 레바논, 헤즈볼라가 잘못을 했다고 하자. 하지만 이래서는 안된다. 아무런 죄도 없는 아이들이, 생명들이 한 순간에 생명의 불꽃을 잃어서는 안된다.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사이 빌어먹을 거대한 폭탄이 막 떨어졌다. 이 빌어먹을 느낌을 어떻게 글로 다 묘사할 수 있을까? - Mazen Kerbaj" 다른 뉴스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사진들이 블로거들을 통해, 누리꾼들을 통해 전파되고 있다. 글로, 사진으로, 그림으로 어떻게 그 빌어먹을 전쟁을 묘사할 수 있고 느낄 수 있을까. 나는 전혀 상상할 수가 없다. 끔찍한 아이들의 사진을 보며 온 몸에 전율이 흐르고 깊고 큰 슬픔이 지나가지만 그 역시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진실과 아픔을 담고 있을 것이다.

전쟁은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이다. 모든 사람들의 감성과 이성을 마비시키고 모든 삶을 뿌리채 뽑아버리고 말살시키는 잔인한 물건일 뿐이다. 그 잔인한 전쟁을 일삼는 인간들은 인간이 아니다. 그저 돈과 권력에 눈이 먼, 자신의 이익과 울타리만 바라보는 인간일 뿐이다. 모든 생명은 태어날 때부터 나름의 존재이유가 있는 법, 태어나는 건 스스로 결정할 수 없지만 죽음은 나 아닌 남이 결정할 하찮은 행위가 아니다. 제발 멈춰다오. 제발 멈춰라. 이 전쟁. 제발...


* Mazen Kerbaj(마젠 케르바즈)는 1975년 베이루트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그곳에서 살았고, 친구들과 함께 만화가, 음악가, 화가로 활동하고 있다.



Multi-input touch screen, 새로운 입력방식~!

techeblog에서 Multi-input touch screen에 대한 흥미로운 동영상을 봤습니다. 예전에 일본 어느 회사(생각이 나지 않습니다)에서 영화 마이너리포트에 나오는 영상 조작처럼 여러 방식을 통해 폭 넓은 방식, 직관적인 방식으로 영상과 데이터를 통제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었는데 이것은 그와는 좀 다른 방식이군요. 커다란 스크린을 앞에 두고 맘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게 너무 재밌습니다. 손목과 손가락만 까닥이는 현재 입력 방식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활력이 넘칩니다. 운동량이 많아짐과 동시에 많은 컴퓨터 관련 '병'들도 자연치료가 되지 않을까 하는 과한 상상도 해봅니다. 영어를 거의 알아듣지 못해 프리젠테이션 내용을 소개할 방법이 없습니다. 어느 분이라도 해석이 가능하다면 답글에 해석을 달아주시면 어떨까요?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직접 보시죠.


출처는 이곳입니다.

MY Show~ 동영상 서비스!

한국에는 '다음'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동영상 검색'이나 'TV팟' 서비스가 있고 '네이버'에도 역시 '동영상 검색'이나 '플레이' , '파란'의 '엠박스'와 같은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습니다. 또 '엠엔캐스트'도 있고 그 유명한 'YouTube'도 있죠. 서명덕 기자 사이트에서 소개한 'YouTube'를 따라한 듯한 'PornoTube'도 있습니다만...;;; 뭐,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모두들 아실만한 서비스고 즐겨 이용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더 자세히 설명할 능력도 되지 않지만 제가 소개하려고 하는 건 이게 아닙니다. 바로 현재 중국에서 제공되고 있는 한 '동영상 서비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만약 한국에도 유사한 서비스가 있다면 죄송합니다. 제가 과문한 탓이라 생각하시고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한국에서도 UCC-사용자제작컨텐츠가 활발해지고 있다는 군요.)

특별한 조사를 할 시간도 없고 자세히 알아보고 싶은 마음도 없기 때문에 일단 겉으로만 둘러본 소감으로 방금 말씀드린 중국의 그 사이트(http://www.5show.com/)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항조우(杭州)에 있는 인터넷 회사에서 만든 이 사이트의 이름은 "我秀,视频"입니다. 무슨 뜻인고 하니 '내 공연(Show), 동영상' 아니면 '내 재능(혹은 나는 특별해~), 동영상' 뭐 이런 정도의 뜻이 될까요? 중국어를 잘 하시는 분이 다시 해석을 해주셔도 좋겠습니다. 우수하다는 '秀'은 중국에서 영문 음역으로 'Show'에 해당하니 'My Show'에 가까운 뜻이 되겠습니다만, 아무튼...

이 사이트가 여타 한국 혹은 외국 사이트들과 다른 점은 본인이 직접 녹화한 후 그 영상을 누리꾼들과 소통한다는 점입니다. 한국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많은 동영상 관련 사이트들은(YouTube도 마찬가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료를 업로드한 후 링크를 걸어두는 식이죠. 즉 자신이 구입한 영상 데이터를 컨버팅 한 후 업로드해서 공유 또는 직접 컨텐츠를 만들어 공유하거나 '퍼옴'이나 '(불법)내려받기'를 통해 다시 업로드 후 서로 공유하고 즐기고 있다는 거죠. 이 많은 컨텐츠 중에 자신이 직접 등장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봐야겠죠. 직접 자신을 촬영해서 올리는 경우라면 특히나 엄청난 용기가 필요할 겁니다. 특히 한국에서라면.

'我秀,视频'에서는 같은 방식도 존재하지만 개인이 직접 녹화를 한 영상물을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이 음악을 틀어놓고 노래를 부르거나 불특정 누리꾼 친구들에게 대화를 하는 식입니다. 그리고 누리꾼들은 그 아래 익숙한(?) 악플도 달고 칭찬도 하고 응원도 해줍니다. 혹은 자신의 QQ주소(중국판 msn, nate-on), 메일 주소를 남기기도 하지요.

암튼, 이 사이트를 보고 있자니 몇 가지 생각이 듭니다. 중국인들이 한국인들에 비해 부끄러움을 덜 탄다는 생각, 불법 DVD와 같은 불법 천국인 중국에서 오리지널 데이터 소스를 확보하고 있다는 생각, 중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몰고왔던 '아메리칸 아이돌'과 같은 프로그램인 '超级女声(男声)'(슈퍼여성-남성(가수))의 여파가 아닐까 하는 생각, 이 사이트에 젊은 층 뿐만이 아니라 남녀노소 모두 참여하고 있는 걸 볼 때 신선하고 재밌다는 생각 등등.

시대가 복잡해지면서 글을 읽는 속도는 늦어지고 영상을 보는 속도는 빨라지는 것 같습니다. 종종 인터넷 사이트 이곳저곳에서 '글이 길기 때문에 포기'라는 답글을 종종 봤었거든요. 영상은 쉽게 의사소통을 하고 감성을 전달하는 도구임에 분명합니다. 그 영상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게 되겠지요. 앞으로 시대에는 이런 단순한 동영상이 아니라 실제로 사이버 상에서 오감을 느낄 수 있는 사이버 캐릭터를 가지고 직접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 봅니다. 속칭 '찌질이 문화'만 없다면, 심각하지 않다면 즐거운 서핑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분명 자정능력이 있을 거라 믿습니다만...;

만약 '我秀,视频'과 같은 사이트가 한국에 생기면 성공할까요, 아님, 실패할까요. 수 많은 'XX녀'시리즈가 재생산 될까요, 아니면 서로 즐겁게 소통하며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저야 이쪽방면으로 전문가가 아니라 뭐라 말씀드리긴 힘듭니다. 다만 중국 사이트를 돌아다니다 우연히 알게 된 '我秀,视频'는 나름대로 재미를 주는 사이트란 생각이 듭니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말이 길었습니다. 직접 보시겠습니까? 중국어를 못하시는 분들은 그저 영상만 봐도 어떤 사이트인지 짐작이 가능할테구요. 중국어를 하실 수 있는 분이라면 여기저기 클릭해서 구경해 보시죠. 일단, 아래 두 개의 동영상만 소개합니다.


임현제의 노래 "爱的路上只有我和你"라고 하네요.
http://www.5show.com/show/show/85427.shtml


어르신의 감정몰입이 아주 좋습니다;;;
http://www.5show.com/show/show/85425.shtml

2006년 8월 2일 수요일

[ani] 한국의 PIXAR? <빼꼼> 방영 결정...!

RG스튜디오가 한국의 PIXAR라고 하면 좀 과장일까요? 하지만 제 생각엔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3D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회사는 전 세계에 무척 많이 있지만 기술력을 뽐내기 위한 회사도 많고 내용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재미없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회사도 참 많습니다.

RG스튜디오는 임아론 감독을 중심으로 많은 애니메이터들이 각자의 참신한 발상을 재미있게 풀어내 볼만하고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습니다. RG스튜디오 관계자냐구요? 천만에요. 애니메이션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한국에서 일을 할 때 관계 된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될 뿐이고 저도 그런 경우처럼 RG스튜디오도 가 봤고 감독과 PD도 만나봤을 뿐입니다. :)

<Angel>이란 작품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빼꼼>이란 말은 들어보셨는지요? <빼꼼>은 '백곰'을 코믹하게 발음하는 이름입니다. 어리숙하지만 친근한 하얀 곰이 나와서 좌충우돌하는 내용의 애니메이션이지요. 이미 단편 몇 편은 해외 애니메이션영화제에서도 수상한 경력이 있고 일반인과 관계자들의 주목을 집중시킨 바 있습니다. <Angel>은 그보다 훨씬 전에 이미 호평을 받았던 단편 작품이구요. RG스튜디오 홈페이지를 가시면 <빼꼼>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몇 편은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이 회사를 주목하게 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 3D로 화려한 기술을 선보이거나 20분물 TV시리즈, 혹은 극장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 5분물 분량의 짧은 애니메이션을 만들되 최대한 내용에 신경을 쓴다는 점에 있습니다. 회사의 자금력이나 설비가 받쳐주지 않아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자금력이 있다 한들, 어마어마한 설비가 있다 한들 반드시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낸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먼저 짧지만 재밌게, 소박하지만 강력하게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보이지 않게 엄청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에서 나름 좋은 성과들을 얻어냈고 피드백을 받았다는 것이지요.

, 감독(혹은 PD)의 일방적인 지시와 통제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게 아니라 직접 애니메이션을 담당하는 애니메이터들에게 상당부분 자율권을 준다는 것이지요. 이는 Bluesky나 PIXAR와 비슷한 작업구조입니다. 큰 이야기의 투르기는 가지고 있되 디테일한 부분이나 아이디어들은 애니메이터들의 몫인 거죠. 충분이 즐기면서 재밌게 작업할 수 있습니다. 그런 후 감독, PD와 상의해가며 다시 조율하고 다듬어서 완성품을 내놓은 것이죠.

, 미야자키 하야오는 애니메이션을 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인재양성'이라고 했습니다. 미야자키 감독 밑에서 작업했던 많은 감독들이 독립을 하고 분가를 해서 나름 일가를 이루고 있는 걸 보면 참 부럽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습니다. 게다가 많은 이들이 아주 오랫동안 미야자키 감독과 호흡을 맞추며 작업하고 쉽게 이직(移職)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작업면에서 파트너쉽이 아주 강력하게 발휘되고 있지요. 이직을 하지 않는 이유는 미야자키 감독이 가지고 있는 역량도 역량이지만 그만큼 권위의식을 버리고 아랫사람(?)들과 함께 작업하고 노하우를 전수해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전부 그런 건 아니지만) '후진양성', '인재양성'에 인색한 게 사실입니다. RG스튜디오는 감독이 직접 아카데미 과정을 개설해 회사 직원들과 일반인들에게 3D애니메이션 제작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과정을 수료하고 나면 일부는 회사에 남고 일부는 다른 곳에 가서 작업을 하게 되겠지요. 하지만 RG스튜디오가 아닌 다른 곳에 가더라도 그들은 애니메이션의 아주 기본적이면서 핵심적인 내용들을 배웠기 때문에 쉽게 적응을 하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일반 애니메이션 회사, 그것도 규모가 그리 크지 않는 회사에서 이런 아카데미 과정을 운영하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 쉽사리 언론 플레이를 하지 않더군요. 몇 몇 회사들은 자신들이 준비하는 프로젝트의 규모를 신문과 잡지를 통해 부풀리기에 여념이 없을 때 RG스튜디오는 차근차근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준비해왔고 언론을 통한 '알리기'를 최대한 자제해 왔던 것이지요. 그렇게 소리소문없이 성실하게 애니메이션을 준비한 결과는 TV방송을 통해, 혹은 극장에서 RG스튜디오의 작품이 소개될 것입니다. 미디어 활용이 아주 중요한 애니메이션인데 언론 플레이를 하지 않는 건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기대치만 최대로 끌어올려놓고 형편없는 작품을 내놓으며 '한국 애니메이션 봐주기 운동' 운운하는 건 더욱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척박한 애니메이션 제작 풍토에서 나름 실력을 키워내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다듬으며 준비하는 작품이 있다는 건 참 기쁜 일입니다. 물론 애니메이션을 접한 후 평가는 냉정하게 해야겠지요.

이런 RG스튜디오가 이번에 TV시리즈를 방영합니다. 8월 28일 월요일 저녁 7시 30분 EBS에서 첫 방영합니다. 그 이후로 월, 화, 수 세 차례 5분짜리 애니메이션 52편이 방영될 예정입니다. 기다렸다가 꼭 시청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만족스러운 부분이나 불만족스러운 부분들은 그들에게 제대로 피디백을 해주시면 좋겠군요.

RG스튜디오는 <빼꼼> TV시리즈 뿐만이 아니라 <머그잔 여행;Mug Travel>이라는 장편도 완성했습니다. <머그잔여행;Mug Travel>은 8월 15일 제1회 부산국제어린이영화제에 개막작으로 상영한다고 합니다. 부산에 계시는 분들, 부산에 휴가 가시는 분들은 겸사겸사 어린이영화제도 구경할 겸 <머그잔여행;Mug Travel>를 직접 확인하시면 좋겠군요. 자녀가 있으신 분들은 꼭 가서 보세요. 예고편을 봤는데 아이들이 참 좋아할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대사도 줄이고 슬랩스틱으로 많은 이야기를 전달한다고 하니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머그잔 여행;Mug Travel 캐릭터 소개

얼마 전 무척 보고 싶었던 애니메이션 '아치와 씨팍'이 개봉되었고(중국에 있어서 보지 못했습니다.) 상영일수가 짧았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많은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줬던 걸로 기억합니다. 19세 이상 관람가로 만들어진 작품이었기에 투자금을 제대로 회수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다만, 기존에 극장에 걸렸던 여타 작품들에 비해 퀄리티도 잘 나왔다고 하고 나름 재밌었다는 평가도 많았던 걸로 압니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건 '아치와 씨팍'의 뒷 이야기를 조금 알고 있었던 터라 그다지 편하게 생각되지는 않더라구요. 물론, 한국 애니메이션의 발전을 위해 큰 역할을 했다는 건 사실입니다. 좋은 결과 뒤에 좋은 과정도 함께 했더라면...하는 아쉬움만 (약간) 있다는 거지요.

수 많은 한국 애니메이션이 TV에서 방영되고 극장에서 상영됩니다. 그리고 소리없이 무대에서 사라지곤 합니다. 지금 FTA때문에  한국 애니메이션은 더더욱 위태로운 현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JTeam이나 RG스튜디오처럼 끈기와 집념으로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회사, 사람들이 대견하기만 합니다.

영화배우나 연예인들, 한국영화만 팬들의 사랑과 응원을 먹고 사는 건 아닙니다. 한국 애니메이션도 팬들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고 그들의 칭찬과 질책이 많이 필요합니다. 봐주는 사람이 있어야 만드는 사람들도 힘이 나겠죠. 작품을 잘 만들었는지 못 만들었는지를 제대로 평가를 해줘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애니메이션은 잘 모르기 때문에 평가를 못하겠다는 말도 합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은 '영화'입니다. '영화'라는 큰 틀 안에 '라이브 액션(흔히 말하는 영화)'이 있고 '애니메이션'이 있는 거지요. 영화를 보고 평가하고 비판하듯이 애니메이션도 그렇게 해주면 좋습니다. 적극적 피드백은 한국 애니메이션의 질을 높일 뿐만 아니라 제작하는 사람들에게 고마운 경종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간만에 한국 애니메이션(장편이든 단편이든)을 찾아서 감상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

[ani] 기억합니까? <아치와 씨팍> 플래시 버전~




극장용 장편 <아치와 씨팍>이 성황리에 상영된 후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오래 전 인터넷에서 아주 열풍을 몰고 왔던 <아치와 씨팍> 플래시 버전을 이야기 하더군요. 저도 기억합니다. 퀄리티야 극장용에 비할바는 아니겠지만 당시로써는 아주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었죠. 캐릭터, 칼라, 액션 구성, 음악, 그리고 임원희와 류승범의 생생한 날대사까지 플래시 애니메이션으로는 여전히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업을 모조리 해낸 친구가 아는 동생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정말 대단한 작품입니다. 그리고 이 동생의 능력을 아주 높게 평가합니다.

플래시 프로그램이 벌써 버전 9까지 나오면서(버전 9는 Adobe社에서 인수했더군요. 포토샵등 기타 Adobe프로그램과 연동될 부분들이 기대되긴 합니다만...) 많은 사람들이 손 쉽게 다룰 수 있는 툴이 되었고 이로 인해 지금까지 플래시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은 셀 수 없이 많았고(특히 중국은 그 양이 어마어마합니다.) 툴을 잘 다루는 사람들도 무척 많지만 플래시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중에 기억에 남는 건 몇 개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중에 플래시 버전 <아치와 씨팍>은 단연 돋보입니다.

다시 한 번 감상해보시죠. :) 신나게... 더위를 날려보시죠~
(극장용을 못봐서 아쉽기만 합니다.-_-;)

1편 나갑니다. :)


2편 나갑니다. :)


3편 나갑니다. :)


4편 나갑니다. :)


5편 나갑니다. :)


6편 나갑니다. :)


7편 나갑니다. :)

2006년 7월 27일 목요일

휴식


뜨거운 햇살을 피해 그늘로 숨어 들었건만
이 놈의 더위는 스믈스믈 목 뒤를 타고 온다.
뜨겁게 달궈진 엔진은 그르렁 거리며 호흡을 고르고
입 안에 가득한 수박 몇 조각으로 더위와 씨름한다.
다시 그늘 밖으로 나갈 일이 걱정스럽긴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그늘 안으로 바람을 불러
달콤한 낮잠 늘어지게 자고 싶다.
후, 여름 햇살은 따끔하면서 길다.

노동시간 최고...!

죽기 전까지 일만해도 늘 부족한 시간.
죽어라 일해도 벌이가 없어 고단한 주머니.
그래도 죽지 않으려면 이렇라도 살아야지.
'여유'라는 말은 민망해서 사라진지 오래.
그 많던 이익은 누가 다 가져간 걸까.
FTA가 시작되면 좀 '여유'로워질까.
일 하지 않고 집에서 쉴 수 있을지 모르니...
하긴 이래저래 '여유'가 생긴다 한들
고단한 주머니론 할 게 없겠네. 

민족과 국가

좀 지난 얘기. 이승엽 선수가 맹활약을 하고 있는 일본프로야구계, 올스타전이 열리며 덩달아 "일본 올스타전은 한국인 잔치?"란 기사가 떴다. 목적은 분명하다.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를 건드려 잇속을 챙기보자는 속셈이다. 쉽게 넘어갈 누리꾼들은 없겠지만 이런 기사를 쏟아내도 이미 무감각해져버린 사회는 어떤 상황이든 쉽게 흔들리는 법이다. 이스라엘과 미국이 헤즈볼라를 잡는답시고 레바논을 침공하면서도 민족과 국가는 그들의 정당성을 담보해주는 달콤한 변명이 되곤 한다. 아나키스트가 되자는 소리가 아니라 적어도 내 민족과 국가를 앞세우며 남의 민족을 깍아내리거나 피해를 줘선 안되는 것이다. 이미 계급으로 나뉘어진 세계사회에서 민족과 국가의 망령 앞에 쉽게 이성을 잃곤 한다. 눈 가리고 아웅해도 나 몰라라 한다.


* 기사 중 픽-하고 웃었던 대목. "...일본야구의 영웅 나가시마 시게오, 뉴욕 양키스의 마쓰이 히데키도 한국계라는 소문이 있었지만 확인되지는 않았다." 소문으로 기사쓰고 먹고 사는 사람들이 꽤 많다.

2006년 7월 20일 목요일

뜨거운 여름, 크리스마스.


산타도, 루돌프도 여름엔 휴가다.
하지만 겨우내 오지 않았던 산타를
여름까지 기다린 마음은 어쩌나.

수북히 먼지가 쌓인 트리,
수 개월 먼지 바람이 쓸고 간 창 너머로
뜨거운 태양만 작열한다.

아기예수도 여름이 싫어 겨울에 오셨을까.
여름엔 그 어떤 축복의 말도 들리지 않는다.

곧 빛 바랠 색색의 방울과
푸르름을 잃어버릴 트리만
여전히 산타를 기다리며
크리스마스를 축복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어 강의, 일단 오늘로 종강!

마침내 지날 달 말에 시작한 한국어 강의가 오늘로써 끝났다.  물론 내가 이곳에 온 건 한국어를 가르치가 위함이 아니었다. 다만 학교에서 한국어반을 개설한 후 한국어 선생을 급하게 찾고 있었고 마침 내가 학교에 있으니 부득이 나에게 잠시만이라도 한국어를 가르쳐 주지 않겠냐고 요청을 해와서 수락했던 것이다. 이제 학교 모든 일정이 끝났고 모두들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기에 오늘로 (일단) 종강을 했다.

중국 학생들이 아닌 학교 선생님들(교수 및 직원)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한류열풍과 한국 드라마, 영화로 인해 한국에 대한 관심은 이미 높았던 상태였고 적지 않은 선생님들은 이미 전부터 나와 교류가 있었기에 흥미 반, 열의 반으로 한국어 강의를 듣고자 했다. 선생님들을 가르치는 일은 그다지 쉽지 않았다. 학생들이라면 과제를 내주고 쪽지시험이라도 보면서 끌고 갈 수 있지만 선생님들은 학교 일이 바빠지면 결강하기 일쑤고 학교 업무를 보느라 복습을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와 선생님들은 꽤 재밌게, 즐겁게 한국어 수업을 했고, 마쳤다. 선생님들의 절반 정도는 정말 열심이고 흥미를 잃지 않고 있었기에 가르치는 나도 덩달아 신이 났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은 비단 언어 뿐만이 아니라 문화도 함께 가르치게 되기에 (조금은)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으나 그 역시 재미있는 방식으로 지루하지 않게 가르쳤고 결과적으로 절반(혹은 절반 이상)의 성공을 거두지 않았나 자평해 본다. 아직 문장이나 어법은 시작도 못했다. 어법과 조사, 동사변형 등을 시작하게 되면 아마도 상당부분 어려워하고 힘들어하지 않을까 싶다.

ㄱㄴㄷㄹ...부터 ㅏㅑㅓㅕ 그리고 발음, 받침, 곁받침 등을 가르치며 나도 한국어에 대해 다시 찾아보게 되고 공부하게 되었다. 스스로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그 날 저녁 인터넷으로 정보를 뒤져가며 제대로 된 정보를 주려고 애를 쓰다보니 그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지만 나 역시 한국어를, 한국 문화를 조금씩 더 알아가고 확인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서로 도움이 되었던 시간이지 않았나 싶다.

여전히 중국어가 부족하긴 하지만 선생님들의 격려와 긍정적인 피드백이 있었기에 나름대로 자신이 생겼다. 일주일에 두 번, 하루에 두 시간씩 강의하는 걸로는 그들이 배우는 한국어가 여전히 초보 단계에 머물 수 밖에 없었지만 가르치는 나의 입장으로서는 시간의 길고 짧음에 상관없이 기분좋은 시간들이었고 그들 역시 탄탄한 기초를 다지는 시간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몇 몇 선생님들은 9월 15일에 있을 <장춘국제애니메이션교육포럼> 행사에서 한국인들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기 위해 무던히 노력 중이다. 지금도 내게 한국어를 배운 많은 선생님들은 나를 만나면 수줍게 웃으며 정확하진 않지만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라고 말한다. 참 보람있는 일이다. 이 참에 전문적으로 한국어나 가르쳐 볼까? :P

새학기가 시작되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선생님들에게 방학 중에 한국 드라마, 영화를 자막과 함께 보라고 권유해뒀다. 방학이 지나고 다시 만나게 된다면 지금까지 배운 내용들 잘 복습한 착한 학생들^^;이길 기대한다.

2006년 7월 16일 일요일

왜 거짓말을 하겠느냐...

대만의 역사학사, 정치인, 출판인, 문학가 등등 많은 방면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李敖(Li ao)가 봉황방송국(凤凰电视台) "李敖有话说-리아오 할 말 있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이런저런 과거사를 소개하다가 한 말이 있다.

"진짜 패로도 이길 수 있는데 왜 가짜 패를 만들어서 놀겠느냐. 진짜 실력으로도 이길 수 있는데 왜 가짜를 만들어 비교하겠느냐. 진실된 말로도 이길 수 있는데 왜 거짓말을 하겠느냐." - 李敖

리아오가 과거 영화판 사람들과 한데 섞여 놀다가 간단한(?) 도박을 했는데 상대방이 돈을 잃자 리아오가 패를 가짜로 만들어서 사기도박을 했다는 이유로 고소한 것이다. 그 때 법정에서 리아오는 자기변론을 펼치면서 위와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 리아오는 도박을 절대로 하지 않았고 그 때 자신이 한 말을 늘 보감 삼으며 살아왔다고 한다.

세상엔 많은 가짜가 판을 친다. 가짜 전문가, 가짜 정치인, 가짜 선생, 가짜 선진국, 가짜 휘발유 등 여기도 가짜 저기도 가짜인 세상이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모두들 자신이 가진 실력(본질)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가짜로라도 실력(본질)을 과대포장해서 사람들을 현혹시키려고 하는 데서 오는 폐단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가짜 행세를 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어떤 부분이든) 부족한 가짜임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훌륭한 가짜(?)를 만들어 내기 위해 거짓말을 시작하고 나면 그 모든 전말이 온 천하에 공개되기 전에는 거짓말을 위한 거짓말을 끊임없이 양산해 내야 한다.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하지만 가짜들은, 거짓말쟁이들은 피곤할 줄을 모른다. 가짜가 진짜를 삼켜버린 덕분이다. 가짜로 한참을 생활하다보면 뭐가 진짜고 뭐가 가짜인지 그 진위를 아예 잊거나 스스로 만든 거대한 최면에 갇히고 만다.

남들은 분명 가짜로 보고 있지만 본인만 스스로 진짜라고 믿는 정신착란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아주 정교한 가짜라도 완전히 진짜가 될 확률은 없다. 가짜는 그대로 가짜이니까. 99.9% 비슷하다고 해도 가짜는 가짜일 뿐이다. 진짜 실력이 아닌, 진실된 말이 아닌 가짜 실력과 거짓말.

속이 덜 찬 사람들, 헛똑똑인 사람들, (남을 해하건 말건) 자신의 이득만 챙기는 사람들, 자신의 능력으로는 무엇하나 해낼 수 없는 사람들이 가짜가 될 확률이 높다. 진실된 말만 하고 살기엔 이미 뿌려놓은 거짓말이 많아 수습이 되지 않음으로 세상 자체가 온통 거짓이고 자신만 참이라고 아예 본말을 전도시키는 사람들도 많다.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는 진짜가 말을 하고 행동을 하는 일이 무척 어렵다. 그리고 가짜들이 진짜를 모두 가짜로 몰아세우기 때문에 대세만 따르거나 다수결만 따르다 보면 누가 진짜고 가짜인지 점점 구분하기 힘들어진다. 오히려 가짜에 동화되는 경우도 꽤 많아지게 된다.

하지만 가짜 패가 아니더라도 거짓말이 아니더라도, 진짜 패로 진실된 말로 살아가야 하고 꼭 그래야 한다. 그건 한 사람이 완전한 인격체, 생명체가 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일이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가 공생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진실된 말을 하는 사람을 골라내기 위해서는 내 스스로가 진실하게 되는 수 밖엔 없다. 자신의 실력과 능력이 가짜의 힘을 빌리지 않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글을 읽을 때만 행간의 의미를 되새길 게 아니라 사람들 관계 사이의 행간, 한 사람의 말과 행동의 행간도 잘 읽어야겠다.

가짜 패에 새가슴이 되고, 가짜 실력에 주눅들고, 거짓말에 현혹되는 그런 일은 절대 없길...

2006년 7월 15일 토요일

생각할 수 있는 만큼의 공간.


보여지는 만큼의 하늘, 생각할 수 있는 만큼의 공간.
나머지는 상상으로 눈을 감으면 더 선명한.
너무 멀어 시선도 생각도 닿지 않는 곳의 당신.
눈만 감고 마음만 열면 그나마 어렴풋이 떠오르는.
그래서 이 만큼의 하늘도 내겐 넓은 공간.

2006년 7월 14일 금요일

분노를 유발한 사람은 절대 벌을 받지 않는다.

지단이 마테라치를 머리로 들이 받은 후 기자회견을 통해 사건의 전말을 (전부는 아니지만) 공개했다. 지단의 한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나는 자극을 받은 뒤 대응한 사람이다. 대응을 한 사람이 늘 벌을 받고 분노를 유발한 사람은 절대 벌을 받지 않는데 이는 공평하지 못하다" 물론 그는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고 사과를 했지만 자신의 결백과 정당함을 위해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또 하나의 기사를 읽게 되었다. 이런 주제의 기사는 한국 사회에서 정말 많이 보도되는 것일텐데 내용은 이렇다. "상습적으로 폭력을 휘두른 남편에게 살충제를 먹여 살해한 최모씨(39.여)에 대해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는 것이다.

이 두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고 결과의 경중이 무척 다름을 안다. 다만, 두 가지 내용을 접하며 '폭력'이란 것에 생각을 하게 된 것이고 지단이 한 말에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된 것 뿐이다. 지단이나 최모씨 두 사람 모두 '폭력'을 행사한 것은 맞지만 지단이 행사한 폭력의 결과와 최모씨가 행사한 폭력의 결과는 다르다. 최모씨의 경우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사건은 결과만을 두고 따진다는 것이다. 그에 대해 지단은 "분노를 유발한 사람은 절대 벌을 받지 않는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한국 사회에서 매 맞는 남편도 많다고 하지만 폭력 아래 노출된 주부와 아이들은 더 많다. 그런데 법적인 판단은 늘 결과를 가지고 따진다. 게다가 한국 사회에서 가정 내 폭력은 '집안 일'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모든 책임을 떠안는 사람은 늘 여성과 아이들이다.

지단의 말을 최모씨에게 대입해 보자면 "분노(살의)를 유발한 폭력 남편은 절대 벌을 받지 않는데 이는 공평하지 못하다." 물론! 난 살인을 어떠한 이유에서도 찬성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절대로 반대하는 입장이다.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행위는 어떤 이유에서도 쉽게 용서받을 수 없다. 그런데 생각을 달리 해보면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주부)은 이미 그 목숨을 잃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명이 끊어져 숨을 쉴 수 없는 것만 죽음이 아니라 살아갈 희망을 잃었거나 마음이 죽어도 죽은 거나 다름없는 삶이다.

폭력 남편은 습관으로 혹은 재미로, 또는 정신이상으로 폭력을 휘두르며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하거나 상대를 무력화 시키며 쾌감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그 폭력을 온 몸으로 받아낸 여성들의 경우엔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롭고 힘들(것이)다. 견디지 못할 정도의 폭력 속에서 삶을 살아온 사람에게 최선, 아니 차악의 방법은 무엇일까. 폭력으로부터 도망을 치거나 그도 힘들 경우엔 폭력의 근원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첫 번째의 경우엔 물리적 폭력만으로 끝나지 않는 폭력의 순환으로 인해 여전히 폭력의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두번 째의 경우엔 자신이 모든 책임을 감수하고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두번 째의 경우엔 종종 자식을 위한 경우가 많다.) 두 가지 방법 모두 사실 좋은 결과를 담보할 수는 없다. 이러한 경우에도 늘 "분노를 유발한 자"들에 대한 법적인 처벌이나 사회적 안전장치는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폭력을 휘두르는 이가 늙어 힘에 부쳐 더 이상 폭력을 행사할 수 없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아니면 본인이 깨닫고 반성을 한 후 폭력을 거두어 들이기만 기다려야 하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이혼을 하거나 이혼을 해주기를 기다려야 하는가. 어떠한 경우라도 폭력을 당한 이들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받은 후고 심한 경우엔 살아갈 희망을 잃었거나 정신적, 심적으로 '사망'을 한 뒤일 것이다.

지단의 경우엔 물리적 폭력을 당하지 않았다지만 정신적 폭력을 당한 후였고 그에 따른 대응을 한 것이다. 물리적 폭력과 정신적 폭력은 절대적으로 다른 이야기인가? 차이는 있을 지언정 '폭력'이란 범주엔 별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다. 정신적 폭력을 당해 본 이들은 물리적 폭력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심적 고통을 겪게 되고 그건 시간이 오래 흘러도 쉽게 치유가 되지 않는다. 육체적으로 가해진 폭력은 상처가 아물면 어느 정도 잊게 되지만 정신적 폭력은 그렇지가 않다. 최모씨(그외 많은 가정폭력)의 경우는 물리적 폭력과 정신적 폭력이 동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한 번으로 끝나지 않으며 오랫동안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그저 남자들끼리 주먹다짐 한 번으로 끝나는 싸움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개인의 폭력, 사회의 폭력, 국가의 폭력, 집단(단체)의 폭력은 피해자보다 "분노를 유발한 자"들에게 더 관대하다. 그리고 피해자에게 끊임없이 속삭인다. "거 봐, 너만 손해잖아. 참고 또 참으면 얼마나 좋아." 그리고 다시 폭력을 행사한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가 아니라 "참는 자에게 상처만 있다"

난 '폭력'에 대해서는 '행사하는 폭력'이나 '되돌려주는 폭력' 모두 반대한다. 바램이 있다면 사회, 국가의 법제도나 일반인의 인식 속에서 '되돌려주는 폭력'보다 '행사하는 폭력', '분노를 유발하는 자'들에 대한 제재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모든 결과는 모든 원인에서 비롯되는 법이다. 결과만 바라보기 보다 원인을 분석하고 과정을 이해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남을 격려하는 좋은(?) 일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런 사고는 견지되어야 한다. 원인 분석하고 과정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들다고 말하면 안된다. 재생산되는 잘못된 결과를 막으려면 늘 처음에 단도리를 잘해야 하는 법이다.



* 일본의 경우 1, 2
* 호주의 경우 1
* 미국의 경우 1, 2
* 독일과 그 외 나라의 경우 1


*
지단의 헤딩이 한 번이 아니라 앞서 이미 두 차례나 더 상대 선수에게 폭행을 했다고 하는데 마테라치는 어떨까.

마테라치의 멋진 수비 보기 - 클릭

2006년 7월 13일 목요일

중국 장춘 - 어두운 밤, 폭우...


그냥 계속 빗소리만 들립니다.


낮에는 소리도 없더니 밤이 되자 하늘은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하며 엄청난 양의 비를 쏟아낸다. 전압이 그다지 안정적이지 못한 숙소는 형광등과 복도의 등은 깜박거리며 폭우에 못내 시달리고 있다. 후덥지근한 방안은 그나마 폭우로 인해 잠시 시원한 기운으로 가득찬다. 동북 장춘의 무더위는 시원한 비로 잠시 열기를 식혀내고 있는 중이다. 숙소 건너편 아파트에 전기가 나갔다. 숙소도 조만간 전기가 잠시 끊기겠지. 늘 적막한 밤이었는데 빗소리는 요란하게 말을 걸어오고 그 수다스러움에 왠지 편안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런 폭우와 사나운 태풍으로 고생하는(했던) 사람들이 떠올라 편안함도 이내 부끄러움으로, 미안함으로 얼굴이 뜨거워진다. 화끈거림은 빗소리가 식혀주겠지. 뜨거운 여름의 밤이 잠시 이렇게 지나간다. 빗 속에 서서 살갗으로 올라온 여릿한 삶의 흔적을 흘려보내고 싶다고, 잠깐 생각했다.

2006년 7월 12일 수요일

고려인, 조선족 그리고 한국인이 중국어로 대화하며...

한국인인 나, 중국인이면서 조선족인 리용, 우즈베키스탄인이면서 고려족인 씨얼와. 중국 장춘에서 만난 셋이 간단한 술자리를 갖게 되었다. 마음 속에 묘한 감정이 일렁인다. (내가 민족주의자는 아니지만) 같은 민족인 세 사람이 중국에서 만나 '중국어'로 소통하고 있다는 현실이 왠지 묘한 서글픔(?정확한 표현은 아니다)을 느끼게 한다. 중국에서 200만명 정도 되는 소수민족으로 살아 온 리용, 그리고 고려인 2세인 부모에 우즈베키스탄 국적을 가지고 91년 소련의 해체를 직접 몸으로 겪은 고려인 3세 씨얼와(현재 우즈베키스탄엔 약 20만 명의 고려인이 거주), 그리고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

 

리용은 조선어(한국어)를 할 줄 알지만 나를 만날 때는 늘 중국어로 대화를 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내 중국어 공부를 도와주기 위한 배려와 그가 중국 땅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며 필히 구사해야 할(했던) 언어(중국어)의 습관화, 그리고 연변에서 듣고 접한 한국인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 등의 이유 때문에 그는 내 앞에서 99% 중국어로 대화를 시도한다. 씨얼와는 조선어를 구사할 수 있는 부모와는 달리 여러 환경적 이유로 조선어를 배우지 못했고 러시아어가 자신의 모국어가 되었다. 물론 후에 한국어를 잠시 배웠는데 너무 어려워 제대로 습득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난 현재까지도 내가 구사하는 한국어에 대해 어려움을 느끼고 있으면서 새롭게 배운 중국어를 가지고 이 친구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사실, 세 사람이 앉아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겠나. 모두 부모님의 어쩔 수 없는 선택, 혹은 국가 간 분쟁의 원인, 자연적인 잔류 등의 이유로 인해 각각의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 아닌가.


그들의 대화를 듣던 중 문득 한국에서 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조선족들에 대한 인식이 지금은 많이 좋아진 편에 속하지만 예전에 정말 같은 민족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이들에 대한 대접이 박했다. 대접이 박했던 것 뿐만이 아니라 이들이 중국에 살면서 조선어를 구사할 줄 안다는 이유만으로 무식한 한국의 졸부들이 가서 돈질을 해대며 사람들을 농락했고 악덕 기업주들악덕 중개업자들이 한국에 가서 일을 하겠다는 이들을 속여 돈을 갈취해 냈다. 이로 인해 조선족이 한국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지게 되었고 (순박했던) 그들도 점점 약아지게 되었다. 분을 삭이지 못한 조선족, 혹은 한국인의 습성을 나름 파악한 조선족들이 한국인에게 해꼬지를 하거나 사기를 치고 금품을 갈취하게 된 것이다. 이런 일들은 한국인들이 저지른 일에 비해 더 빠르고 폭 넓게 확산되었고 한국인들 사이에서 조선족을 경멸하거나 무시하는 태도가 비일비재 해 온 것이다. 물론 내가 단순 묘사한 내용이 조선족에 대한 편애로 읽힐 수도 있겠지만 이곳 중국에서 돈 좀 있다는 한국인들이 하는 꼴을 보면 그다지 편애도 아니다.

 

지금은 나름대로 서로 조심하고 신뢰를 회복하는 중이기 때문에 큰 문제들은 발생하지 않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인의 눈에 조선족은 이방인이며 외국인이며 중국인일 뿐이다. 아시아에 살고 있는, 그것도 한국보다 못사는 나라에 살고 있는 (소위)'한민족'에게는 '~족'이란 이름을 붙이고 미국, 일본, 유럽 등지에 살고 있는, 역시 한국보다 잘 사는 나라에 살고 있는 '한민족'에게는 '교포'며 '동포'며 심지어는 국적이 한국인이 아닌 이들(하인즈 워드, 미셸위, 다니엘 헤니 등)에게까지 '한국'의 국적을 선사해 '한국인'임을 강조하고 있다. 사대주의에 자본에 눈이 먼 사람들의 작태다. (난 하인즈 워드나 미셸위에게 아무런 반감도 없고 관심도 없다.)

몇 개월 전 한 조선족이 내게 한 말이 생각난다. "그래도 한국이 잘 사니까 다행인 것 같아요. 우리같은 사람들이 그래도 한국에 가서 돈도 벌 수 있고 참 좋은 것 같아요. 한국이 참 고마워요." 난 이 이야기를 들을 때 왜 그리 부끄러웠던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었다.

 

우즈베키스탄인 씨얼와의 경우도 크게 다르진 않은 것 같다. 작년에 개봉했던 <나의 결혼 원정기>가 우즈베키스탄에서 촬영되었는데 그 내용은 KBS 다큐멘터리 '인간극장-노총각 우즈벡 가다'를 모티브로 했다. 한국 내에서도 한국인 대접을 받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결혼할 대상을 구하기 위해 혹은 농촌의 일손을 충당하기 위해 한국보다 가난한 나라로 가서(그럴 수 밖에 없다) 여자를 공수해 오는 것이다. 정말 웃기지도 않은, 슬픈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영화는 그나마 유종의 미를 거두었지만 씨얼와에게 이 영화 얘기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렸다. 씨얼와는 한민족이면서 한국어(조선어)를 구사하지 못한다는 것에 크게 개의치는 않는 것 같지만 그의 표정에는 말 못할 사정들이 꽤 있어 보였다. 씨얼와와 취업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를 이야기 하며 그에게 한국어를 배워보는 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러시아어와 중국어를 구사하는 그가 한국어를 배운다면 동북아시아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더욱 많아지게 될 것 같았음으로. 다만, 그렇게 말하는 내 자신이 왠지 부끄러웠다.

 

과연 우리 셋이 느끼는 민족은 무엇이고 국가는 무엇일까. 대체 핏줄은 무엇이고 역사는 무엇이고 현재는 무엇인가. 과거의 역사를 겪어 보지 않는 나로서 어떤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이긴 하지만 최소한 출생부터 같은 언어를 쓰는 부모, 자신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한 터전에서 살아왔던 가족이라는 점에서 이들과의 합석은 기쁘면서도 애잔한 감정을 갖게 하며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술자리는 기분 좋게 끝났고 서로의 우정을 다짐하며 각자 집으로 향했지만 여전히 내 속은 복잡하고 미묘하기만 하다. 어쨌든 좋은 사람들을 알게 된 것만은 확실하다. 리용, 씨얼와 그리고 그의 여동생 아료나.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나라의 언어로 표현하고 소통해야 하는 점만 아니었다면, 그리고 (지금은 많이 좋아졌긴 했지만) 과거 한국이 이들을 소홀하게 대했던 점만 아니라면 오늘 자리는 보다 기쁨이 넘치는 자리가 아니었을까 막연한 생각도 해본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동북아시아에 살고 있는 한민족들은 한국이 부모의 나라라고 생각하는 반면 아시아의 끝 편에서 살고 있는 일부분의 한국인들은 이들은 외국인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싶어한다.)



약간 옆길로 새는 이야기일 수는 있겠지만 문득 김규항씨가 질문했던 "이건희와 나는 같은 민족인가?"라는 말이 생각난다. 옆길로 새는 이야기 하나 더. 나는 요즘 중국에서 종종 "나는 세계인이다"라고 말한다. 세계인의 기준치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국가, 민족, 성별, 나이, 직위, 자본간의 차별을 반대하는 차원에서 농반진반 이렇게 말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