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9월 30일 화요일

충고

후배 원희에게 오늘 꾸중을 좀 들었다.
내가 중국어를 공부하는 방식이 좀 잘못되지 않았냐는 것이다.
뭐랄까...난 중국어 사전을 그리 자주 들춰보지 않는다.
지금 수업 중에 배우는 단어들은 내가 이미 한국에서 알던 한자도 많고 그래서
병음만 알면 읽고 이해하는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또 사전찾는 시간을 아낀답시고(사전 찾는 게 익숙치 않아서인지 시간이 좀 걸린다.)
후배들에게 물어보거나 중국 친구들에게 물어본다.
 
원희는 그게 잘못된 공부방식이라고 일침을 놓는다.
사전을 자주 들춰봐야 단어도 더 잘 외워질 것이며
스스로 사전을 찾는 습관을 들여야 잘 잊어먹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나보고 공부하는 방식이 게으른 거 아니냐고 한다.
듣다보니 속으로 부끄럽고 한편으론 나이를 빌어 약간 기분이 상하는 마음도 조금있지만
참으로 타당한 말인데다가 사실 위에 열거한 나의 이유라는 것이 참으로 초라한 것이었다.
 
마음 상하는 기분이 들었다면 내가 정곡을 찔렸음에 다름 아니고
혹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마음을 열지 못해서 구차한 변명을 만들어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마음을 슬쩍 돌리고 바라보니
그런 내 모습이, 마음이 보인다.
부끄럽고 민망하고 원희에게 미안하고 그렇다.
그래서 "원희야, 니가 말한 게 맞다. 옳다. 니 충고를 잘 받아들이마"고 답했다.
 
그러고보니 중국어 관심있다고 와서 아직 불이 덜 붙었나보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조금 쉽게, 혹은 조금 편하게 공부하려고 하는 나태심이
나를 붙잡고 있었나보다.
조금 더 쥐어잡고 나를 몰아보자.
남에게 관대하고 나에겐 인색해보자. 조금 더, 조금 더...
 
오늘 내 정신을 깨우쳐 준 원희에게 고맙다.
그리고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돌려진 내 마음도 고맙다.
제안한 방식이 나에게 맞던 맞지 않던 지금은 모를 일이다.
구차한 변명보다는 행동하는 삶이 더 값있다.
멈추어 있지 말고 계속 깨어나자.
 
원희야~! 고마다~~!!^^

2003년 9월 29일 월요일

인연, 인과

:: 일일풍경
 
인터넷 신청을 하러 해당기관에 갔다.
내가 살게 될 집은 '師大1敎'라고 하는데 교직원들을 위해 지은 아파트다.
여기는 인터넷 회선 비용이 할인되는 장점이 있다.
하루종일 쓰는 가격이 여러종류인데 월 150원, 월 200원짜리가 속도가 괜찮다.
그런데 내가 겪어본 바 150원짜리가 그리 나쁘지 않아서 신청했다.
그럼 비용할인이 되어서 80원... 괜찮네...^^;
바로 옆에 있던 오야(전자상가)에 가서 USB타블렛(한국이랑 가격이 같다.-_-;)과
DVD플레이어를 장만했다.
DVD플레이어는 제일 싼 가격의 제품을 샀는데 특히 오늘 국경절 맞이 특가할인이란다.
공부 열심히 해야지~^^;;
 
오야를 가기 전에 한국식당엘 갔는데
조선족 사람들로 보이는 직원들이 모두 색색의 한복을 입고 있다.
촌스럽기도 하고 웃음도 나고 한편으론 정겨워보이기도 한다.
랭면과 돌솥비빔밥을 시켜 먹었는데 맛이 괜찮다.
나오다 보니 복도에 유덕화가 방문했던 사진도 걸려있다. 오~
저녁에도 '아지트'라는 한국음식점에서 요리를 시켜먹었는데
김말이 튀김, 불낙볶음, 짬뽕, 청국장, 떡볶이...등...맛이 꽤 괜찮다.
오랜만에 청국장을 먹으니 기분이 좋다.^^a
 
배가 터질 것 같다. 살은 언제 빼나...-_-;
 
 
:: 인연, 인과
 
오늘 아침에는 후배가 아는 중국 남자애(21살 정도?)와의 인연 때문에 고민한다.
우연히 알게 된 친구인데 자신은 선의에서 친절을 베풀고 돈도 빌려주곤 했는데
돈 안갚는거야 그렇다고 치고 차츰 알게 되다보니 그 친구의 안좋은 모습을 많이 봐서
피하고 싶은 모양이다. 그런데 모진소리도 못하겠고...자신이 안도와주면 누가 도와주나..등등
많은 고민들을 하는 모양이다.
 
사람이 사람을 돕는다는 것,
처음엔 선의로 시작하더라도 상대방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나 이해가 수반되지 않으면
그게 결과적으로 나쁜 영향을 주는 경우도 있지 않나?
돕는 방법이 물질이던 정신이던 간에 사람과 사람 사이라는 것은
아주 미묘한 작용, 반작용이 늘 존재하는 것 같다.
그리고 처음엔 어떤 방법으로 시작했던지 간에 나중에 적확한 현실을 인식하게 되면
그 때는 명쾌한 취사를 해야하지 않나 싶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건 본인의 의지 밖에는 없지 않은가.
 
인연 속에 살고 때론 그 인연에 끌려다니고 묶여 살면서도
그 관계의 인과관계를 알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무섭고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이 생각하는 선의가 잘못된 결과를 낳을 수도 있고
상대방의 악의가 자신의 취사에 따라 복으로 화할 수도 있는 미묘한 관계.
사람을 더 많이 알아갈 수록 어려운 일임을 절감하게 된다.
하지만 더 알아가면서 자신도 함께 더 살펴간다면
취사의 선택도 점차 좁혀져서 보다 나은 취사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내 인연관계는 어떻게 돌아가고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나는 제대로 취사하며 살고는 있는지...
정신과 마음 똑바로 깨어있어는 있는지...

2003년 9월 28일 일요일

이사

아침에 후배 수양어머니께서 약간 서두르시는 듯이
장판깔고 가재도구 옮기자고 그러신다.
왜 그러실까...싶었는데 오늘이 雙日子(쑤왕르즈)란다.
자세히 듣지는 못했는데 짝수가 연거푸 있는 그런 날은 좋은 날이라 한다.
아마도 한국에서 말하는 '손없는 날'과 같은 개념정도가 아닐까?
 
이사할 집으로 옮겨서 장판을 깔고(하도 어설프게 깔아서 -_-;; 풉!)
큰 방엔 침대를 들여놓고 책상을 들여놓고 주방에도 책상을 하나 놨다.
주방용은 가스렌지 놓고 음식장만할 용이다.(결국 싱크대란 소리지.)
그리고 큰 TV를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작은 방에는 후배가 준 탁자를 하나 놓았다.
흠...이렇게 하고나니 좀 사람사는 집 같다.
(헉~! 벽 페인트 칠이 벌써 떨어지려고 한다.-_-; 여긴 중국이야.)
 
후배가 나머지 살 것들 사러가자고 한다.
명은, 원희, 강산와 함께 북방시장엘 갔다.
북방시장은 이것저것 거의 모든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파는 시장인데 상당히 크다.
물건을 좀 많이 살 것 처럼 보인다 싶으면 어김없이 빨간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따라붙는데
이 사람들은 물건을 집에까지 배달해주고 돈을 받는 사람들이다.
물건 보러 다닐 때다마 졸졸졸 한 서너 명, 많게는 대여섯 명이 따라다니니 부담스럽다.
어쨌든 메모해 놓은 물건을 샀다.
 
침대포, 이불포(즉석해서 만들더라.), 베개, 밥솥, 냄비 두개, 칼(영화에서 보던 사각 칼)
도마, 빗자루, 쓰레받이, 걸레, 밥그릇, 젓가락, 큰 물통(단수 대비용), 재털이, 양념통, 반찬통
수세미, 손님용 의자, 내 개인 의자(좀 비싸다. 110원), 바닥에 까는 무엇(이름을 모르겠다.)
발털이개(현관용, 화장실용), 슬리퍼, 옷걸이, 옷 바구니, 커튼 봉, 쓰레기통, 칫솔 통
주방 책상에 깔 커버, 책상 커버, 책상 유리, 현관 자물쇠 등 참 많네...^^;;
이 중에 개인의자 110원, 손님용 의자 54원, 침대 및 이불포, 베개가 약 170원 정도?
옷 바구니가 55여 원 정도, 그리고 바닥에 까는 게 48원, 발털이개 및 전기장판이 약 50여 원,
슬리퍼 4개가 25원, 커튼 봉이 50원, 나머지 잡다한 것들이 290여 원이 들었다.
(그런데 밥통은 25원인가 그런데 중국산은 보온이 안된다고 한다.-_-;)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물건을 옮겨주는 사람들 작은 봉고차 비용이 30원 들었다.
여하튼...이것저것 다 준비하는데 약 900여 원이 들었다.
한국 돈으로 치면 135,000원 정도인데 집값이 싼 걸 생각하면 사실 많이 든 편은 아닌데도
왠지 중국에서 이렇게 돈을 들여 물건을 산다니까 아깝다는 생각도 문득 든다.
그래도 사는데 필요한 것들이니 아까운 것 보다는 잘 활용해야지 싶다.
 
짐을 풀고 이래저래 하니 어둑어둑 해진다.
사람 사는 모양이 나온다. 이제 정 붙일 일만 남았군.^^
 
현관 문 열쇠가 잘 맞질 않아서 고생 좀 했다.
 
내일은 타블렛하고 DVD플레이어가 얼마나 하는지 옌뿨가 운영하는 상점엘 가봐야겠다.
 
그런데 화장실에 온수기를 달았는데 자동이 아니고 수동이다.
코일로 물을 데워야 하는데 물이 어느정도 차면 물을 잠궈야 하고...뭐...그런...
불편하긴 하지만 그런 것 감수하지 못하면 어떻게 살텐가.
 
인터넷도 되지 않고 냉장고랑 세탁기는 후배들이 이사할 때 준다고 해서
뭐...당분간은 후배들 집에 왔다갔다 해야할 것 같다.
 
딱히 힘든 일도 없었건만 이래저래 돌아다니고 하느라 피곤하긴 하다.
나보다는 후배들이랑 강산이가 더 피곤하겠지...
 
고맙다....애들아.
 
 
...집값은 6개월치 선불로 3,300원을 드려야 한다.

2003년 9월 27일 토요일

인연

친구와의 불화가 있었던 그 家敎를 명은(여자후배)이가 잘 알던 사이라
家敎 위로해준다고 원희(남자후배)랑 家敎남자친구랑 그리고 강산(중국친구)이와 함께
이른 점심겸 술 한 잔 했다.
 
어제 家敎를 배신(?)했다던 친구가 날 처음에 가르치려했던 家敎였다는 얘기를 듣고
말을 했더니 만약 나중에라도 그 친구가 날 가르치겠다고 하면
자기가 무슨 일이 있어도 말리고 싶다고 그런다.
정말이지 참 묘한 인연이다.
사람의 죄복이 자신의 육근동작에서 비롯되는 건 확실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인연관계에서도 비롯되기 때문에
사람 만나고 헤어지는 일은 정말 잘 해야지 싶다.
 
그런데 인연을 잘 맺고 잘 끊는 건 정말 어려운 일 중에 하나다.
맺는 건 쉽다고 생각하지만 좋은 인연으로 잘 다독여 가는 것도 어렵고
좋은 인연이건 나쁜 인연이건 그 연을 끊는 건 더더욱 어려운 것 같다.
과거 수만겁 동안 인연을 맺어야 이번 생에 옷깃 한 번 스친다고 그러던데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인연들은 그렇게 따지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가.
문득문득 잊고 지내는 경우도 많지만 이렇게라도 가끔씩 그들을 위해 생각해야지.
 
...................
 
12시가 되기도 전에 백주(고량주)를 좀 마셨더니 술이 올라와버렸다.-_-;;
자리를 옮겨서 '라구'(라씨아오롱)라는 요리를 먹으러 갔다.
'라'는 맵다라는 뜻이고 '구'는 '씨아오롱'의 장춘 사투리인데 가재를 말한다.
여기엔 '마'라는 재료가 있어서 입을 얼얼하게 마비시키기도 한다.
맛있게 먹고 노래방도 갔다가 집에 오니 3시 반 정도? 허허..참..
원희는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았던지 강산이와 함께 농구를 하러 간다고 그런다.
나도 농구하고 싶은데...에구...취한다.-_-;;
그래서 잤다.
 
 
 
이사할 집 문 페인트 칠이 오늘까지 지속되어서 장판은 내일 깔기로 했다.
그리고 침대랑 뭐...준비된 거 있음 들여놓기로 했다.

2003년 9월 26일 금요일

폭력...

:: 폭력
 
오늘 家敎가 있는 날이다.
유학생 公寓에서 家敎를 기다리는데 5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
후배 家敎에게 물어보니 오늘 수업이 없는 날이지만 곧 올거라 한다.
조금 후에 家敎가 들어오는데 오자마자 막 울기 시작한다.
헛...난감함...
중국말이 서툰 나로써는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하다.
"괜찮냐"고 물어보고 오늘은 수업을 하지 말자고 했다.
그랬더니 자신의 상황을 글로 적어주는데 계속 운다.
글을 읽어보니 자기와 2년동안 무척 친했던 친구가 있는데
2년동안 자기를 팔아먹고 다녔다 한다. 배신을 한 것이다.
그 사실때문에 남자친구와 다퉜는데 남자친구가 때렸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이야기를 듣다보니 우는 게 이해도 되긴 하지만
남자친구가 때렸다는 건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쨌든 오늘은 수업을 하지 말자고 하니 괜찮다고 하는데
도저히 나도 수업을 받는게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마음이 가라앉고 진정되면 수업을 하자고 했다.
거듭 미안하다고 한다.
같이 나가면서 남자가 여자를 때리는 것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더니
전에는 그러지 않았다고 오늘 처음이라고 한다.
하긴 뭐...둘이 좋아하고 사랑하니까 감싸려는 마음은 알지만
그래도 남자가 여자를 때리는 것 만큼은 (혹은 반대일 경우도)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놓고 돌아오는 길에 곰곰히 생각을 해봤다.
내가 언어적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때리는 것과 같지 않나? 하고...
남자가 여자를 윽박지르면 여자는 겁을 먹게 될테고
그렇다면 물리적 폭력을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론 남자의 언어 폭력에 여자가 굴복하게 되는 것 아닌가.
그러고보니 나도 화가 많이 났을 때 언어폭력을 사용했던 것 같다.
아니, 분명 사용했다.
그 家敎에게는 절대로!라는 단서를 붙여가며 말했는데 돌아보니 나도 부끄럽다.
 
폭력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야만적인 행위이므로
언어 폭력이던 물리적 폭력이던 하지 않아야 한다.
(부득불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 이는 폭력의 정당성에 대한 여지를 두는 건 절대 아니다.)
 
오늘 수업도 못했는데...내일은 공부나 열심히 해야겠다.-_-;;
 
 
:: 화장실
 
화장실 공사가 끝났다. 타일을 해놓으니 보기도 좋고 깔끔해 보인다.
타일 공사를 하기 전에는 기분도 꿀꿀했는데 하고 나니 기분도 상쾌하다.^^
오늘 저녁에는 후배 수양어머니가 낡은 문을 페인트로 칠해주겠단다.
그럼 내일은 가서 장판을 깔아야지....
기술자 아저씨에게 돈을 그냥 주기 뭐해서 봉투에 넣어서 드렸는데
돈을 꺼내서 자꾸 형광등에 비춰보고 이리저리 살펴본다.
중국에 위조폐가 많아서 그런가보다.
그래서 다른 100원짜리를 꺼내서 둘 중에 맘에 드는 걸로 선택해서 가져가라 했다.^^
아저씨가 웃으면서 뭐라뭐라 하는데 못알아들었다.-_-;
한 2-3일 후면 타일도 단단하게 잘 붙을 거란다.
 
 
이제 저녁 해먹어야지~

2003년 9월 25일 목요일

돈의 가치?

아무래도 집 수리가 좀 늦어질 것 같다.
게다가 1평도 안되는 화장실 타일을 붙이려는데 시간도 없고
아무래도 내가 좀 거들어야 할 것 같아서
중국친구(강산)와 함께 오늘 수업 후에 家敎를 하루 쉬고
물건들을 사러 다녔다.
 
여기도 가구, 화장실용품 등을 파는 단지가 있어서
타일을 제일 싼걸로 샀다. 한 박스에 10원인데 타일 한 개는 2마오 5펀이란다.
(돈의 단위가 원 > 마오 > 펀 이다.)
8박스와 조그만 화장실 바닥에 깔 타일 25장을 사서 왔다.
(강산이가 내가 외국인인 걸 강조하더니 좀 깍아서 전부 100원에 샀다.^^;)
인부는 우리나라 인력시장 처럼 어디 한 군데 모여있는데
瓦工!! 이라고 부르니 어떤 아저씨가 온다.
화장실 크기를 보고 타일을 보고 자신의 임금을 말해준다.
하루 반나절 일하는데 100원이란다.
강산이가 그것도 깍으려고 하는데 그 아저씨도 물러서지 않아서 그냥 오케이 했다.
 
그런 후에 바닥에 깔 내장재(地板;diban)를 사러 다녔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다. 이래저래 인부 임금까지 계산해보니
방 두개에 작은 복도 하나 하는데 1000원이 넘는다.
결국 비용 부담에 장판을 깔기로 했다. 장판은 350원에 해결봤다.
장판을 물론 우리가 깔아야 하는데 이런저런 상황이 다 정리되면
가구 들어가기 전에 깔기로 했다.
 
사실 한국에서라면 타일을 15,000원에 살 수 있을까?
장판도 52,500원에 살 수 있을까?
특히 타일 붙이는 인부의 임금을 하루 반 나절 동안에 15,000원에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작은 돈이겠지만
어느 덧 나도 한국돈으로 계산하는 방식보다
중국돈으로 싸고 비싸고를 따지게 되어버렸다... 물론 좋은 일이다.
 
중국보다 조금 더 잘 산다고 거드름 피우기도 싫고
어디 가서 돈 질(?) 한다는 소리 듣기도 싫다...
나한테 맞게 그리고 필요, 불필요를 잘 알아서 취사해야지...
하지만 뭐...그리 쉽지는 않다.-_-;
 
사실 가끔 한국 유학생들을 보면 좀 낯뜨거울 때가 있다.
하지만 자신의 돈을 자신이 맘껏 쓰는 것은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각자의 몫이고 능력이다.
다만, 어떤 행위를 할 때 時中에 맞는지, 혹은 過한지, 足한지
한 번쯤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다.
 
내가 착한 척 하는건가?-_-;;; 그런건 아닌데...(아~! 찔려~^^;;;;;)

2003년 9월 24일 수요일

집도 고치고, 마음도 고치고...

한 며칠 후면 이사갈 것 같은데 집 보수가 좀 힘겨운가보다.
창문은 보수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지만
후배의 수양어머니가 기왕에 할거 깨끗하게 하고 싶었던지
그리고 나를 배려해주는 마음이 있었던지...완전히 새창을 달았다.
올겨울은 바람 한 점 불어들지 않을 기세다.^^
 
그런데 화장실에 타일을 붙여달라는 게 유일한 내 요구였는데
인부가 물이 자주 닿으면 타일이 떨어지니 페인트를 칠하라고 했단다.
화장실에 온수기를 달아서 화장실 겸 샤워실로 쓰려고 했었기 때문이다.
이해가 잘 안된다. 왜 물이 닿으면 타일이 떨어질까...
나름대로 생각해보니 타일값도 싸고 인건비는 얼마 못받고 고생은 고생대로 해야하고...등등
그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중국친구를 불러서 물어보니 그럴 일 없다고
내일 수업 끝나면 자기와 함께 인부 구해서 타일 사서 일 시키자고 한다.
화장실(겸 샤워실)이 뭐 대수겠냐마는 그래도 편하게 일보고 씻어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좋다고 했다. 내일 家敎는 미루기로 했다. 어서 마무리해서 이사를 해야 하니까.
 
또 하나 문제가 바닥 문제인데
나는 원래 방수페인트 같은 도료를 써서 바르는 게 어떨까 싶었는데
페인트 값은 비싸다고 하니 내일 장판도 겸해서 알아봐야겠다.
 
그래도 도와달라는 중국친구도 있고 말이 잘 안될때 통역해주는 한국후배들도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지 싶다.
물론 없어도 알아서 살았겠지만 가격이 싼 집에 들어가 살려니
내가 준비하고 신경써야 할 게 생겨서 그런거다.
내 돈을 좀 더 들이더라도 그래도 싼 편이니까...좋다.
 
요 며칠간 내가 중국어가 잘 안들리고 말하는게 서투른 걸 답답해 하는 모습을
후배가 봤나보다.
오늘 저녁 먹으면서 나보고 그러다가 빨리 지치니까 조급해 하지 말라고 충고해준다.
조급한 마음은 없었는데 자꾸 그렇게 보이나보다.
하긴 중국친구랑 말할 때도 버벅대면서 조금은 좌불안석이 되다보니
그렇게도 보일 성 싶다.
조급증! 이젠 그만!이다. 속도 겉도....
 
어휴...조금만 먹어도 왜 이렇게 배가 부른지..큰 일이다.
중국에서 먹는 음식량이 한국이랑 비교하면 많긴 많다...
뒹굴기 전에 조절해야지... 운동도 하고... 또 다른 것도 해야하고...등등..
여하튼... 집 옮기기 전에 마음 좀 추스려서 이사하면 마음 정리 좀 해야겠다.
 
일찍 자야지~

2003년 9월 23일 화요일

...가을 비...

아침부터 가 온다.
이른 아침에는 마구 쏟아지는 것 같더니 지금은 오다 말다 한다.
 
오늘은 유난히 더 답답하고 화가 났다.
살짝 들리기는 하는데 입으로 말은 안나오고
스스로 쪽팔리고 화나고 그런다.
그래서 家敎를 한 명 더 구해달라고 후배한테 말했더니
그럼 과목 예습을 자기가 도와주겠단다.
 
좀 간단한 말이라도 좀 쉬이쉬이 터져나오면 좋으련만
애니메이션 처음 배울 때의 기백과 자세는 어디로 온데간데 없고
약간 의기소침도 하고 부끄럼증도 생긴다. 에휴. 이러면 안되는데...
그런데 또 중국친구들 만나면 얘기도 잘 나오는데
수업시간엔 잘 안된다.
정말 '언어', '말'이라는 거 중요한 것 같다.
 
외워야지. 외워야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중국에 온지 벌써 20여일이 지났다고 생각하니
와서 조금이라도 달라진 게 있나 싶기도 하다.
물론 조금은 달라졌겠지만 오늘따라 답답함이 앞선다.
 
열심히 하는 수 밖에.
 
家敎 하루 더 늘려야겠다.

2003년 9월 22일 월요일

가을이 가면...

어제 농구를 오랜만에 격렬하게(?) 해서인지 몸이 좀 찌뿌둥하긴 하지만 기분은 참 좋다.
 
후배들과 저녁을 먹으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중에
살아왔던 얘기, 이성관, 삶의 태도 등등 얘기를 하는데
참 배울 점도 많고 스스로 반성할 점도 많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좁던 시야가 넓어지는 건 환영할만 하지만
그렇다고 소심해지거나 소극적이 되는 건 원치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배우고 경청하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것은
어떠한 경우라도 필요한 일임엔 틀림없고 갖춰야 할 미덕인 것 같다.
 
사람들마다 비슷한 것도 있고 다른 점도 있지만
그런 점들을 적확하게 알고 인식하는 건 참 중요한 것 같다.
나의 행동 하나하나에 원인과 결과가 있음을 아는 것.
관계가 그러한 원인, 결과에 의해 형성되고 소멸되는 것.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는 평범한 진리를 자주 잊는 내가 보인다.
(사계절이 없는 사람들은? 음...나름대로의 계절변화가 있겠지?...^^;)
삶의 자세로 끌어오지 못하는 나태함도 보인다.
그래도 하나하나 알아가고 변해가는 것에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참 즐겁고 행복한 일일 게다.
 
'기다릴 줄 아는 지혜''백척간두 진일보'의 자세.
좀 들여다 봐야겠다.

2003년 9월 21일 일요일

닭도리탕

:: 음식문화
 
낮에 신장사람들이 운영하는 음식점을 갔다.
후배가 우리나라 닭도리탕같은 음식이 있다고 그걸 먹으러 가잔다.
요리하는데 최소한 20~30분은 걸린다고 한다.
그 전에 차오판(볶음밥)을 시켜서 먹고 양고기 꼬치를 시켜 먹었다.
작년에 중국여행할 때 알게 된 사실인데
양고기 꼬치(양로우촬)가 원래 신장사람들로부터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신장사람들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파는 양고기 꼬치는 유난히 맛있다.
고기를 굽는 정도나 요리 솜씨가 좋은 듯 하다.
오늘도 역시 맛있다.
 
기다리면서 테이블에 있는 요리 사진들을 보니
한국 음식이랑 무척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만두 모양도 그렇고 죽같이 생긴 음식도 그렇고...
그리고 볶음밥 먹을 때 반찬처럼 나온 게 있는데 배추를 매운 소스에 볶은 게 있었다.
마치 김치볶음 같은 맛도 나고 그런다.
문득 서로 문화의 경계와 구분이 모호해질려구 한다.
(그러고보니 작년에 중국에 왔을 때 신장쪽이던가? 그 쪽 사람들 음악 소개하는 걸 봤는데
자신들의 고유음계가 '도레미솔라'라고 하는 걸 듣고 좀 놀랬었다.
국민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아서인지 '궁상각치우(도레미솔라)'가
우리나라의 고유음계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다가 놀랜 것이었다.)
 
닭도리탕같은 음식(이름을 까먹었다.-_-;)이 나왔는데
거의 닭도리탕이다. 거기에 굵은 면도 추가해서 먹기도 하고 감자도 있고 야채도 있고.
신장 음식은 정말 한국음식이랑 비슷한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사람들이나 한국사람들이 특히 더 좋아하는 듯 하다.
 
 
 
:: 농구
 
규이와 치우메이에게 전화가 와서 원희랑 농구를 하러 갔다.
여기는 큰 체육관 옆 농구코트가 있는 곳에서는 
한사람 당 1원(150원)씩 내고 무제한으로 논다고 한다. 음..돈을 받는군.
그런데 사정상 그곳에서 못하고 규이 집 근처 이공대 내 농구장에서 하기로 했다.(당연 공짜!)
규이 집도 들려보고...(집이 상당히 좋다...음..)
농구장에서 중국 친구들 3명과 함께 3 : 3을 하고 치우메이는 구경을 하고...
농구공 하나로 땀빼고 사람들과 부딪혀가며 어울릴 수 있다는 게 참 즐겁다.
(중국사람들은 유난히 농구를 좋아한다. 야구는 돈이 많이 들어서, 그리고 축구는 공간이 넓어야하고 사람이 많아야 하기 때문인지...농구를 많이 즐긴다.)
오랜만에 해서 그런지 나이가 들어서인지(-_-;) 힘들긴 하다. 에궁~
 
둥근 공 하나에 여러사람의 마음이 좋아지고 즐거워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물론 우리가 마지막으론 이겼다.^^a, 신발 밑창은 다 떨어져버렸지만...수선해야지.)
 
 
아~! 그리고 오늘 낮에 이발을 했지. 5원(750원)
비싼 곳도 있지만 평균 5원이라 해서 깎았다. 아~ 시원해.
그런데 가을햇살은 정말 좋은 거 같다. 행복해~

2003년 9월 20일 토요일

작은 것에서 부터...

오늘은 중국 친구들(치우메이, 옌궈)과 함께 규이와 스동의 농구시합을 보러갔다.
한 회사의 다른 부서들끼리 농구시합을 하는 모양이다.(내가 들은 바로는)
규이와 스동의 팀은 2등을 했다. 음..잘하더군.
그런데 3, 4위전을 하는 중에 거의 경기가 끝나갈 무렵
여자 심판과 어떤 사람이 시비가 붙어 싸움을 하는데 음...정말 과격하게 싸우더라.
모든 사람들이 다 말리고 난리가 났다.
그래서 경기는 대충 마무리 해버리고 폐막식을 하고 끝났다.
작은 시비로 시작했는데(판정시비(?)) 큰 싸움으로 번지고 끝도 대충 마무리 되는 것을 보면서
우습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모든 일은 모두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을 하는 것 같다.
내 육근동작 하나하나 움직이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결과가 엄청나게 달라지는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모든 종교의 계문들은 자신을 단도리하는 작은 것을 제시하는 모양이다.
거짓말을 하지 말고, 남을 시기하지 말고, 한 입으로 두 말하지 말고 등등...
 
작은 것이 크게 되는 것은 비단 나쁜 것만 그렇게 되는 건 아니다.
작은 볍씨 하나가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쌀이 되고
작은 정자, 난자가 만나 생명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처음부터 큰 것을 바래는 것도 화를 부를 수 있겠다.
육근동작은 내 수하처럼 부릴 수 있을 때가 가장 큰 것을 얻을 때이니만큼
지금의 내 육근동작 하나하나에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고
돌아보는 시간들을 가져야 할까 보다.

2003년 9월 19일 금요일

살아가는 방편.

사람이 살아가는 방편 여러가지가 있을테지만
그 방법 중에 어떤 걸 선택하느냐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일테고
그 개인적인 부분을 강요하거나 억지를 부려서는 안되는 것일테다. 확실하다.
 
세상은 흘러가는 대로 사는 사는 거라고 소위 도통했단 분들의 말을 보면
사실 자기 의지대로 사는 게 확실하다.
마음을 보고 마음을 다스릴 줄 알면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마음이 가는 게 아니라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세상이 흘러갈테니 말이다. 이것도 확실하다.
 
결국 자유롭다.와 자연스럽다.는 뜻은
어느 곳에도 어떤 시간에도 어떤 상황에도 매이지 않고 억압받지 않음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황을 바꾸거나 자신이 바뀌거나 해야한다.
자신이 변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사람들은 상황을 바꾸려 할테고
상황이 바뀌는 게 불편한 사람들은 자신이 변해갈 것이다. 사는 방법이다.
전에는 자신이 변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만 생각했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어떤 게 더 좋은 방법인지..그리고 얼마나 더 많은 방법이 있을지...
 
의지대로 살려고 힘껏 노력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세상에 몸을 맡겨볼란다.
그러다 또 의지가 세상을 움직이면 그렇게 살아지겠지...
 
어떻게 살아내건 간에 참 버둥대는 것 같다.
 
....버둥버둥....

2003년 9월 18일 목요일

소브라~~~노~~~~

아침에 6시 즈음만 되면 눈이 떠진다.
당연하지. 저녁에 12시 즈음이면 자니까.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은 상쾌한 일이긴 하지만
사실 피곤하기도 하다.
생체리듬 그렇게 길들여져서 그런가 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들려오는 소리는
"소브라~~~~노~~~"라는 소리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했다. "소브라노???"
소프라노도 아니고... 그런데 여기저기 곳곳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음색으로 들려온다.
 
중국친구에게 물어봤더니
폐품을 수집하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란다.
아마 한국말로 번역하면 "폐품 받아~~~~요~~~" 뭐...이정도 뜻이 아니겠나 싶다.
"소느라노"라는 말도 장춘 사투리일테니 알아듣는 건 거의 불가능할테고.
 
예전에는 아침을 여는 소리가 무엇이었을까?
아침을 잊고 생활한지도 꽤 되는 것 같네.
 
그래도 아직 자명종 없이 일어나는 건 신기하다. 긴장 탓일테다.
집을 옮기고 혼자 살게 되면 소리가 큰 자명종을 하나 구입해야지.
 
낮에 家敎를 두시간 동안 받고 나니 참 피곤하긴 하다.
하긴 두시간 동안 머리 굴려가며 중국어로 대화하고 책 읽고 그러니 힘들지.
오늘 家敎에게 그랬다. 일단 한달 동안은 천천히 차근차근 하자고.
급해서 될 일은 없을테니까.
 
자~ 그럼. 복습해보고 예습해보고 잘까나?

2003년 9월 17일 수요일

지아지아오(家敎 :: jiajiao)

오늘 家敎(과외교사, 가정교사)를 구했다.
처음 소개받은 친구는 너무 내성적이고 목소리도 작은 것 같아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성급한 판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두시간 여를 받아 보고 후배에게 바꾸면 어떨까 상의했다.
 
그래서 결국 좀 활달하고 목소리도 큰 친구를 소개받았다.
내일부터 시작이다. 화, 목, 금. 두시간씩이다.
 
학교 수업으로는 따라가기 힘든 부분을 家敎를 통해 메꾸려 한다.
하긴 거의 모든 유학생이 그렇게 家敎를 두고 배운다.
수업료도 싸고 개인교습을 받으면 확실히 달라지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겠지.
 
가끔 내 삶의 家敎가 있었으면 할 때가 있다.
내가 무언가 불확실할 때 내 결정이 스스로 못미더울 때
그리고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을 때 말이다.
그 家敎가 어쩌면 주변에 늘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오만과 아집에 빠져 자만자족을 만끽하고 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지도 모른다.
마음을 낮추고 교만함을 버리면 수 많은 家敎가 나를 가르쳐주고 있는 게 보일테다.
그래, 중국어도 배우고 삶도 배우자.
 
그래서 내 삶이 풍성해지고 깊어지고 보다 나아지면
그래서 익은 벼 이삭마냥 고개가 숙여지면 나 또한 누군가에게 家敎가 될 수 있겠지.
 
바람이 차다.
찬 바람에 모든 이 가슴 속 상처가 덧나지 않았으면
찬 이슬에 모든 이 마음 속 얼어붙지 않았으면 좋겠다.
 
따뜻한 녹차 한 잔 생각나는 밤이다.

2003년 9월 16일 화요일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통한다는 것은 사실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오래될 수록 잘 아는 것도 아니고 만난 기간이 짧다고 해서 잘 모르는 것도 아니다.
물론 시간이 오랠 수록 짧은 만남보다는 많이 알긴 하겠지.
다만 그것도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누었느냐,
얼마나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느냐에 따라 천양지차로 달라진다.
 
한국에 있을 때 만난 사람들 중엔 가족을 제외하고
10년 넘게 만난 이들도 있고
4-5년 정도 알고 지낸 이들도 있고
혹은 1년, 몇 달, 며칠을 알고 지낸 이들도 있다.
중국에 있는 친구들은 지난 해에 와서 몇 번 얼굴을 본 것이 전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일수록 더 많은 교감이 생기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짧은 만남일수록 공감대가 작은 것도 아닌 것 같다.
문제는 내가 상대를 대할 때에 얼마나 많이 마음을 열어두고 있었느냐 하는 문제이며
얼마나 상대에게 열심이었느냐 하는 문제였다.
 
관계에 있어서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관계의 거리이다.
 
중국 사람들이야 한국 사람들에게 호감이 있기 때문일수도 있지만
그래도 몇 몇 친구들은 내가 말을 잘 하지 못해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것은 내가 중국어를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내가 중국어를 무척 잘하더라도 어차피 나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중국 친구들과의 간극은 분명 존재할 것이다.
(아니 한국에 있는 인연들과도 분명 존재할 것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때론 그게 더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도 같다.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공간에서 생활을 하고 같은 국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사실 서로에게 무심한 경우도 많고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착각을 하는 경우도 있다.
 
조금만 뒤로 한 발짝 물러서면
나와 상대의 관계가 어느정도는 객관적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그것은 결국 내 마음을 내가 들여다 본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내가 상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오랜 친구처럼 편해지려면
일단 내 자신이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하고 노력을 해야한다.
그리고 친해질수록 지킬 건 지켜야만 좋은 관계가 오래갈 수 있다.
 
물론 더 많고 세세한 이유와 룰이 있겠지만
이같은 사실만으로도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곤 한다.
십년을 만나왔던 친구도 방금 전에 만났던 어떤 사람도
늘 같은 마음으로, 경외심으로 대하고 최선을 다한다면
서로의 마음이 통하는 건 자명한 사실이 아닐까 싶다.
 
한국에 있는 소중한 인연들과
중국에서 만들어갈 소중한 인연들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고마움과 사랑을, 그리고 앞으로 준비할 고마움과 사랑을 전해본다.
 
열리고 닫히는 건 작은 차이지만
그 작은 차이가 큰 간격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껴본다.
 
 
::
중국어를 하루하루 배워갈수록 아주 조금씩 들리는 단어들은 활력이 된다.
그게 끊임없는 노력의 연속에서 나옴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그걸 늘 알게 해주는 인연들에게 감사하다.

2003년 9월 15일 월요일

들리지 않는 소리.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소리가 있다.
수업 시간에 아무리 집중을 해도 잘 들리지 않는다.
어학을 시작하면서 아마 대부분 경험하는 고민이자 고통일게다.
 
예전에 신기하게 생각했던 것이 있었다.
처음에 서로 다른 문자를 가진 사람들끼리 어떻게 서로의 글과 말을 이해하게 되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 시작한 이들은 대단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지금이야 한글로 된 번역서나 중한사전도 있고 그러니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내가 이곳까지 와서 이렇게 중국어를 배운다고 할 수 있었을까?
 
내게 30평생 익숙하지 않았던 음의 높낮이와 발음들이
이제 매일매일 듣고 알아야 하는 목표가 되어있다.
생활부터가 달라지고 노력하는 자세도 좀 달라져야 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내가 어릴 적에 부모님으로부터 맘마, 엄마, 아빠라는 단어를 배울 때처럼
습관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소리와 발음과 뜻이 튀어나오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 쉬운 일이 아닐 터지만
그 쉬운 일이 아닌 일들을 또 많은 이들이 해내고 있고
해내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다.
 
늘 익숙치 않은 것들에 대한 두려움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익숙치 않은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경외심이 나거나 부럽거나
때론 질투심도 날 때가 있다.
하지만 그 사람들도 처음엔 힘들었을 것 아닌가.
그 익숙치 않은 것을 현재 익숙하게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연습하고 노력했을 것인가.
 
습관의 습(習)이란 단어는 날개 익(翼)자와 일백 백(百)자가 합쳐진 글자라 한다.
날개짓을 백번 정도는 계속 해야만 습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밥 한술을 뜨기 위해 숟가락질과 젓가락질을 얼마나 많이 했겠나.
이제 중국어 걸음마를 시작했으니 습을 얻기 위해 노력할 일만 남았다.
 
그래도 들리지 않는 소리는 여전히 있지만
두려워하진 말자. 걱정도 하지 말자.
 
다만 마음에 열정이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하자.
청년이지 못함을 두려워하자.

2003년 9월 14일 일요일

환절기 비염

역시 늦은 잠.
오늘따라 몸이 영 좋지 않다. 핑계다.
아니다.
환절기가 되거나 기온차가 좀 나는 날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코 막힘.
 
코가 막히면 머리가 멍하고 눈이 무겁고
입으로만 숨을 쉬어야 한다.
 
어느 한 곳이 막히면서 생기는 여러가지 힘겨움, 버거움이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
 
마음이 막혀도, 사람간의 대화에 이해가 막혀도,
내가 취사하는 일의 순서가 막혀도, 본말이 막혀도,
일은 커지고 힘겨움은 늘어간다.
 
코가 막히면 난 늘 코가 진정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 이유는 코가 막힌 걸 그냥 두면 다른 곳에 신경이 분산되어 아무것도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못하는 것인가. 아니면 안하는 것인가.)
코가 해결되고 나면 다시 멀쩡한 상태로 복귀한다.
 
원인과 결과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라지지만
그것에 휘둘리며 사는 건 참 힘겹다.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결과를 보기 전에 혹은 결과를 봤을 때
어서어서 원인을 찾아내 알아야 하고
어떠한 결과를 잘 만들어내기 위해선
원인을 잘 다스려 시작해야 한다.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가.
지금 내 마음은 어떠한가.
 
막힌 코를 뚫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중이다.

2003년 9월 13일 토요일

한가로워.

아침에 무수히 많은 전화가 온다.
잠을 더 자고 싶다. 술을 먹어서 좀 힘들기도 하지만 잠을 자고 싶다.
 
아! 어제 규이가 오늘 아침에 농구하자고 그랬는데
시간을 보니 얼추 8시 반쯤이 된 것 같은데
....농구하러 가기 싫다. 오늘은 잠을 좀 자고 싶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원희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느즈막히 일어나 빨래하고 밥 챙겨서 먹고 컴퓨터로 영화를 보고
그리고는 주욱~ 쉬고 있다.
 
후배 집에 주인이 내일 온다해서 내 짐도 좀 정리해서 치워놓고
방도 좀 정리하고 이렇게 저렇게 하루가 간다.
 
오늘은 오전에 집을 알아보려 했는데 시간도 이미 늦었고
오후에 옌궈에게 전화를 하는데 자꾸 out of service란다. 통화이탈지역인가?
핸드폰에 문제가 생긴건가?
 
어쨌든 전화가 되지 않으니 오늘 오후에 집을 알아보는 것도 글렀다.
내일은 일요일인데 가능할까 싶다.
 
뭐...이쪽저쪽에서 집을 알아보고는 있으니 아무리 늦어도 다음 주 안에는 찾아지겠지.
집이 좀 깨끗하고 쾌적해야 자리를 빨리 잡고 안정한다고들 한다.
당연 맞는 말이다.
하지만 가격도 좀 싸면 좋겠다.
이젠 절약모드로 전환이다.
 
바람이 차다. 해는 빨리 진다.
한가로운 오후를 보냈다. 기분은 좋다.
담주 수업을 위해 예습도 좀 하고 복습도 좀 하고...
 
.........................마음이 넉넉해지니 마음이 그립다.

2003년 9월 12일 금요일

두번 째 수업, 그리고 사는 것...

#01 조바심
 
이틀 째, 수업받는 날.
오늘은 아침 일찍 일어났다. 6시 즈음. 우와.
샤워를 하고 학교가서 교재사고 초급 4반 수업을 들으러 갔다.
에휴. 역시 잘 안들리긴 하지만 가만가만 집중하고 있으니
아주 조금씩은 들린다. 수업 따라가기가 좀 벅차다.
진도가 좀 빨라서일테다.
 
낮엔 집을 보러 다녔다.
집을 내놓은 곳에 사람이 없다해서 한군데 밖에 못가봤는데
방 두개짜리에 1,000원이다. 에어컨, 냉장고, 세탁기, 온수기가 갖춰져 있는 집이었다.
그런데 혼사 쓰기엔 좀 버겁고 그래서 다른 집을 알아봐야겠다.
 
저녁엔 윤규이, 치우메이, 안옌궈, 옌뽀, 왕스동, 팅팅, 그리고 남자후배(원희)와 함께
식사를 같이 했다. (규이와 치우메이는 연인, 옌궈와 옌뽀는 연인, 스동과 팅팅은 부부)
훠구워(샤브샤브)를 먹고 고량주를 먹고 촬(꼬치)을 먹고
노래방도 가고 그랬다.
오늘은 내가 베이징에 못가고 다시 장춘으로 돌아온 것 때문에 만났는데
괜찮다며 이것저것 도와줄 것에 대해 말을 해준다. 고맙다.
덕분에 오늘 좀 과지출을 했는데 앞으론 이런 날들도 없을테고
오늘 기분좋게 먹고 마셨으니 좋다.
 
이젠 공부할 일만 있네.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조바심도 나지만
열심히 하면 열심히 한 만큼의 성과를 보겠지..하는 기대도 생긴다.
 
한국은 태풍 매미가 온다는 데 맘이 좀 그렇다.
큰 피해가 없어야 할텐데.
 
 
 
#02 一生
 
원희 얘기를 듣는데 나와는 참 다르게 살아왔다는 생각을 했다.
그 친구는 어릴적부터 힘들게, 고생도 많이 하고 마음도 많이 아파가며 자라왔고
그러면서 스스로가 삶의 지혜도 터득하고 삶에 대한 의지도 참 강하고 남다르다.
난 그저 안전하게만 살아온 것 같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좀 더 분발심을 내야하지 않겠는가 하는 의지가 생긴다.
 
물론 온실속의 화초, 들판의 잡초가 어느 게 옳고 그르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삶을 의지대로 살아갈 때 아무것도 모르고
남에게 의지하거나 스스로가 경계를 피해다니려고만 하면
얻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다.
 
이래 살아도 한 생이고 저래 살아도 한 생이라
사는 데 좀 더 신중하고 조심스러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 생이라면 최선을 다해 도전하고 부딪치고 깨지고 일어서며 사는 것도
또다른 삶의 기쁨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주위 인연들에게 감사하며 스스로 열심히 삶을 일구어내는 것이야 말로
함께 사는 세상에서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적당한 지점일테다.

2003년 9월 11일 목요일

첫 수업

첫 수업 받는 날.
 
어제 중국친구들과 조금 늦은 시간까지 얘기하느라.
물론 술을 마셨지만.(-북경간다고 환송해준 친구들이라 장춘 온 기념으로.^^;)
그래서 어제 조금 늦게 잤다.
아침에 7시에 일어나는 게 한국에서조차 그리 쉽게 습관들지 않은 터라
조금 힘겹게 일어났다.
  첫
중국의 아침은 꽤 빨리 시작되는 편이다.
누구 말로는 후진국(?)일수록 농사짓는 게 주업인 나라일 수록 아침이 이르다고 하지만
장춘은 그래도 꽤 큰 도시인데도 아침이 빠르다. 아니 중국 전역이 빠르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학생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틈 속에서
아침 수업(오전 8시)을 받으러 바삐 발걸음을 재촉하는 내 모습이 조금은 새롭다.
 
어학 수업은 초급 4반, 중급 4반, 본과생 4반(?), 고급 1반이 있는데
난 초급반을 선택했다. 어느정도 수준인지를 알기 위해서
초급 2반과 4반을 번갈아 수업을 들었다.
8시부터 9시 반까지 수업, 그리고 10시부터 11시 반까지 수업. 그리곤 점심시간.
초급 2반은 좀 쉬운 듯 해서 4반을 들었는데 당췌 뭔소린지 들리지 않는다.
초급 3반과 4반이 같은 같은 교재라 해서 내일부터 4반을 들을 작정이다.
열심히 외우고 읽고 하다보면 언젠가는 들리고 말할 수 있겠지...
 
중국친구가 집을 네군데 정도 알아봐뒀다고 한다.
오후에 시간이 되면 집을 알아보러 가야겠다.
오늘 안되면 내일 알아봐야지.
 
공부하자. 공부!
 
씨엔자이 워스 쉐성~~(이제 난 학생이다.^^a)

2003년 9월 10일 수요일

어학원 등록하다.

어학원 등록하는 날.
 
오늘 아침은 조금 늦게까지 잤다.
그래봐야 한국에서와는 다른게 일찍 일어나긴 했지만.
 
동북사대에서 어학연수 받기로 했기 때문에
11시 반까지 동북사대 중문과 앞에서 만나 등록을 하러 갔다.
동록비는 학비/등록비 합쳐서 7885원을 냈다. 등록비는 50$.
그런후에 거주증과 학생비자(X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신체검사를 받아야 해서 중국친구(강산)와 함께 병원에 다녀왔다.
병원 신체검사비는 288원. 왕복 택시비 24원. 뭐...이래저래 돈이긴 하지만.
꼭 필요한 것이니 어쩔 수 없겠지?....
 
오늘 저녁엔 중국친구와 함께 다른 친구를 만나
장춘에서 중국화 배울 수 있는지에 대해 물어볼 겸 저녁을 함께 하기로 했다.
뭐 상황이 안되면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지.
 
.................
 
동북사대는 생각보다 상당히 큰 편이다.
중국어 쪽으로는 중국각지에서 배우러 온다고들 하니 실력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HSK(한어수평고시)시험도 국가 지정학교라 한다.
정말이지 일단 어학을 열심히 해야할 듯 싶다.
 
장춘의 날씨는 그늘은 서늘하고 바람이 센데
햇볕은 참 따갑다. 더울정도로.
 
내일부터 본격적인 수업이다.
 
잊지말고 9월 16일날은 병원에 가서 확인증을 받아 비자를 갱신해야겠다.

2003년 9월 9일 화요일

실패...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장춘으로 오는 내내 후배와 어떻게 할지 상의를 했다.
 
일단 내가 원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장춘에서 어학을 준비한다. 6개월 열심히 공부한다.
 
2. 대학 교수나 다른 분을 통해 서법과 중국화 기본을 배운다.
 
3. 집을 구해서 혼자 산다.
 
4. 내년 초부터는 북경에서 할 일을 차근차근 알아보고 준비한다.
 
물론 이대로 정확하게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장춘에서 어학을 배우는 것은 괜찮을 듯 싶다.
비용도 괜찮고 또 어학도 괜찮다고 하니 말이다.
 
후배는 당장 내일 오전에 가서 등록을 하자고 그랬다가
혹 그렇다면 심양은 어떤지 알아보자 한다.
심양에 루쉰대학이 있는데 미술로 꽤 알아주는 학교로 알고 있다면서...
그건 생각 좀 해봐야겠다.
지금 마음이 영 아니기 때문에 좀 더 생각을 해봐야겠다.
 
답답하지만 새로운 시작을 위해 마음을 추스릴 때인 것 같다.
 
장춘 후배집에 돌아오니 남자 후배가 막 웃는다.
돌아올 줄 알았다며 농담도 하고 오늘 술이나 먹자 한다.
 
마음이 스산하다.

2003년 9월 8일 월요일

북경 도착...그리고...

북경에 드디어 도착했다. 아침 9시.  

그래서 일단 북경중앙미술학원 근처로 가서 아침을 하기로 했다.
택시를 타고 한국에서 프린트를 해온 주소를 보여주며 학교로 향했다.
왕푸징이라는 중국의 번화가에 자리하고 있는 중앙미술학원.
이제 시작이란 생각을 한다.
북경행은 후배와 후배의 수양어머니와 동행을 했는데
내 학교 일만 봐주고 그들은 후배의 한국 아버지 병원을 알아보기 위해 병원을 찾을 예정이란다.  

헉~ 학교에 도착하니 학교가 철거하고 없다.
후배는 중국에서 알아볼 때 왕푸징 주소가 아니었는데 역시 뭔가 이상하다고 했다.
난 사실 후배가 중국에서 전화를 해봤었기 때문에
별 생각없이 따라온 건데...내 실수가 크다.-_-;
후배도 어쩔 줄 몰라한다. 자기가 중국에서 더 잘 알아봤어야 하는데..라며 난색을 표한다.
담담하다. 내 실수가 더 큰 걸...  

사람들에게 알아본 결과 학교가 새로 건물을 지어서 조금 외진 곳으로 이사를 갔단다.
아침을 대충 먹고 이사간 학교로 찾아갔다.  

학교는 상당히 좋아 보인다. 새 건물이다.
음...슬쩍 기분이 좋아지는걸?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 유학생 담당 사무실을 찾았는데 아뿔사 딱 점심시간.
유학생 기숙사 로비에 앉아 쉬고 있는데
한국 유학생 무리들을 만났다.
모두 여자들이었는데 한 명을 빼고는 나이가 다 어리다.
이것 저것 묻고 듣고 그랬다.
기숙사 숙소는 화장실이 없는 것도 상당히 비싸다. 음... 북경은 북경이군.
수업료는 본과생(우리나라 대학생), 진수생(대학원 진학준비생)이 약 20,000원 정도다.
수업료도 비싸군.-_-;  

후배가 한국후배들에게 도움을 청해서 수속을 마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한다.
자신도 병원일을 알아본 후에 장춘으로 돌아가야 다음날 수업에 참석할 수 있다고 한다.
ok! 이제 한국사람들도 만났고 알아보기로 하고 후배와 수양어머님을 보냈다.  

나와 동갑인 여자(소아마비-처음엔 몰라서 도와달라 했는데 도움을 청하고 보니 미안하다.)와
중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여자아이와 함께 유학생 담당 선생을 만나러 갔다.
내 사정을 얘기하고 진수생으로 들어갈 수 있겠느냐고 하니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단다.
그래서 애니메이션 쪽 포트폴리오와 캐릭터 디자인 비슷한 것만 있다하니
그걸론 부족하고 수채화, 소묘, 인체뎃생 같은 게 필요하댄다.
헉! 난감. 물론 대충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것들을 원래는 어학원 다니면서 준비하려 했었다.
그런데 이쪽 사정을 보니 어학원이 학교 내에 있긴 한데 전문적이 아니어서
상당히 수준이 낮고 배우는 것도 별로라고 한다.
모두들 중앙미술학원에 어학을 배우는 건 포기하라 해서 진수생을 생각했던 것이었다.
포트폴리오가 문제가 되었다.
도움을 준 분의 말로는 학교 근처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미술학원이 있는데
거기에서 도움을 받아 준비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전화를 했더니 원장은 한국에 가 있고 한국 선생 한 분은 산동에 가 있어서
두 분다 언제 올 줄 모르고 학원도 언제 열지 모른다고 한다.
엎친데 덮친 격이다.
한국에 아는 분들에게 포트폴리오를 받아서 대신 제출해도 된다고 하는데
시간적으로도 시간이 좀 걸릴 것 같고 도저히 그렇게는 내 실력이 아닌데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그리고 상황을 더 물어보니 대학원 과정은 총 6개가 있는데
수묵 인물, 수묵 화조, 수묵 산수, 공필 인물, 공필 화조, 공필 산수가 있다 한다.
수묵 인물이 가장 좋고 그걸 배우는 게 다른 걸 배우는 것보다 낫다 해서
수묵 인물을 신청하니 그건 더 이상 학생을 모집하지 않는단다.
그럼 다른 분야라도 해볼까 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진수생을 반년 해서 바로 연구생(대학원생)이 되기는 어렵다 한다.
보통 한국에서 동양화 전공해서 온 사람들이나 대학원생으로 가는데
그건 일단 실기가 다 되기 때문이고
본과생을 거치지 않으면 동양화를 접해보지 못한 나로써는
진수생을 몇 년이나 해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이고
게다가 어학도 함께 병행해야 하는 나로써는 상당히 난감한 문제에 봉착한 셈이다.  

계속 고민, 고민, 고민, 고민이다.

만약 어학이 제대로만 된다 한들 거짓말을 좀 보태서라도 학교 수업을 받겠는데
어학도 안되고 진수생으로 연구생을 준비하기엔 실력도 부족하고
동양화쪽으로는 기본도 되어있지 않으니... 이 일을 어쩐담?
한국 분들은 본과생이 어쩌냐고 한다.
그런데 본과생은 4년 과정인데다가 학비도 만만치 않고
게다가 내 목적은 이왕지사 대학원 간판이라도 따 볼 요량이었는데...
본과생은 영 내키지가 않는다.  

아~ 정말 고민이다.
한국 분들이랑 몇 시간을 앉아서 고민했다. 어쩌면 좋을지...
결국 결정을 내렸다.
다시 장춘으로 돌아가자. 돌아가서 중국어를 어느 정도 마스터하자.
중국어를 배우면서 장춘에 있는 교수들이나 중국화를 할 줄 아는 사람을 찾아
사사를 받으며 기본을 좀 닦아놓자...
이렇게 결정을 해도 마음은 영 찝찝하다.
북경에서 터를 잡고 몇 년을 버텨볼까 했던 상황이 다 틀어지는 순간이다.
마음은 완전히 너덜너덜해졌다. 머리도 복잡하다. 힘들다.  

하지만 상황이 그러한데 우겨서 될 일이라면 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장춘 물가가 북경의 약 반 정도 되고 어학은 북경 못지 않다 하니
장춘에서 일단 어학을 마쳐야겠다.
그리고 내년에 연구생으로 가기 위한 준비를 다시 북경에서 하더라도
아니, 만약 대학원을 포기하더라도 애니메이션 일을 북경에서 할 수 있도록 알아봐야겠다.  

마음을 정하고 나니 후배와 수양어머님이 장춘으로 돌아가기 전 연락을 취해야 했다.
한국 분 핸드폰을 빌려서 담배 두갑을 사드리고-_-; 사용했다.
우여곡절 끝에 왕푸징 여자상점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 택시를 타고 향했다.
택시 안에서의 마음은 중국으로 올 때의 마음과 다르게
녹초가 되어 있었고 여러가지 상념으로 복잡하기만 하다.
다시 장춘으로 간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휴~~~

2003년 9월 7일 일요일

북경 행...

북경으로 가기로 한 날이다.
 
오전에 푹 쉬고 낮 시간을 활용해서 내가 북경으로 가게 되면
후배 컴터 봐주기가 어려워 한글 윈도우 CD와 한글 워드를 CD로 구워주기로 했다.
그래서 남자 후배와 함께 홍커로우에 가서 공CD를 샀다.
CD는 꽝반이라 한다. CD값은 한국이랑 거의 비슷하다.
그런데 후배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해줄 게 없어 웹캠을 달아주기로 했는데
홍커로우에 있는 웹캠은 좀 비싸다.
그래서 오야라는 한국으로 말하자면 용산, 테크노마트같은 전자상가를 찾아갔다.
택시비로 한 6-7원 정도다. 한 두 어시간을 돌아다닌 끝에
120원짜리 웹캠을 사고 나도 노트북용으로 170원짜리 웹캠과 15원짜리 헤드셋을 구입했다.
(참고로 중국돈 1원은 한국돈 약 150원 정도의 화폐가치가 있다.)
 
돌아와서 여자 후배의 중국인 수양부모님 댁에 저녁초대를 받아 가서
저녁을 맛있게 먹고 맥주도 한 두 어잔 먹고 담배도 같이 피우다 돌아와 좀 쉬고 출발했다.
 
강산(중국친구)에게 전화를 했더니 북경에 가면 꼭 전화를 달라 한다.
아는 친구들 부탁해서 만나게 해줄테니 전화해달라고...음..고맙지..
 
9시 고속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로 갔다.
많은 사람들이 있다.
버스는 개조를 해서 이층침대가 세줄로 놓여져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사람을 더 태우기 위해 일단 침대칸에 사람을 다 채운 후
통로에도 사람을 태우기 시작했다.덥고 냄새는 나고...
앉아있지 못하고 12시간을 누워서만 가야 한다. 물론 중간에 쉬긴 하겠지만...
 
남자 후배는 연신 인사를 하며 북경에 가서 잘 적응하라고 창밖에서 응원을 해준다.
수양 아버님도 마치 못볼 사람처럼 아쉬움의 표현을 한다.
 
그래 이제 북경에 간다.

2003년 9월 6일 토요일

긴장하다.

창밖에 햇살이 참 좋다. 조금 쌀쌀하기는 하지만.
내일 낮 12시 고속버스로 북경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후배가 표를 사러 나갔다. 후배한테 참 미안하고 고맙다.
 
북경으로 가는 것으로 결정이 나서 마음은 홀가분하긴 하지만
북경엔 아는 사람들이 없으니 정말 혼자 해결해가야 한다.
중국 친구들이 북경에 아는 사람들을 소개시켜 줄테니 걱정말라고들 한다.
참 고맙다.
 
여기에서처럼은 아니겠지만
하나하나 준비하고 챙겨가며 홀로서기를 해야한다.
기다렸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약간 긴장되고 조금 두렵다.
 
....
 
며칠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푸욱~ 잠만 잤으면 좋겠다생각했다.
 
여태 잘 살아왔다. 그러니 걱정하지 말자. 장소가 중요한 건 아니니까.
결국 마음이 중요하니까. 그것만큼은 확실히 알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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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출발이 확실하게 정해졌다.
내일 저녁 9시 버스다. 12시간 걸린다니 다음날 아침 9시에 도착하겠군.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잘 도착했으면 좋겠다.:)

2003년 9월 5일 금요일

사스 소식.

북경에 내일 갈까 하는데 자꾸 사스 소식이 들려 망설여지고 있다.
후배는 하얼빈, 심양, 장춘 이 셋 중 하나에서 어학을 마치고 hsk시험을 치룬 후에
북경으로 가서 대학원을 진학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한다.
고민이다.
 
살다보면
사람 마음만으로 다 되는 줄 알고 살다가도
가끔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현실이 닥치면 난감할 때가 있다.
 
하지만 잘 결정해야지. 북경에 인연이 있는 사람들에게 묻고 또 물어서
상황에 대해 정확한 판단이 서게 되면 결정해야지.
우긴다고 이뤄질 일도 아니고 거부한다고 이루어지지 않을 일도 아니다.
 
영덕형님한테 전화해봐야겠다.
 
좋은 결과 있으면 좋겠다.
 
.....슬슬 저녁 먹으러 갈 준비해야겠다.

2003년 9월 4일 목요일

두번 째 날...

#01 장춘에서의 두 번 째 날...
 
여전히 전화는 불통이다. 국제전화 회선이 계속 먹통이라구?!!!
 
동북사대(동북사범대학)를 갔다. 학교가 참 좋네.
군복을 입고 다니는 애들이 있길래 후배에게 물었더니
군대가 의무가 아니고 지원제도이기 때문에
모든 학생들(남녀 불문)은 입학해서 한 달 동안 군사훈련을 받는다고 한다. 음..그렇군.
그리고 대부분 지방, 시골에 있는 애들이 군대를 자원입대한다고 그런다.
시골에선 먹고 살기 힘들기도 하지만 군대에 있거나 제대를 하고 나면
지역을 쉽게 옮길 수 있는 혜택이 주어진다고 한다.
중국은 원래 이사도 못다니도록 통제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점심은 유학생 기숙사 내에 있는 식당에서 먹었는데
밖에서 먹는 것보다 양은 반절이고 가격은 두 배 비싸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외국인 기숙사여서 그렇댄다. 제길! 한국인이 봉이냐?
한국인 70%, 그리고 백인, 흑인, 일본인...등이 있다는데...쩝~!
 
 
 
#02 朋友 (펑요우;fengyou)
 
어제 만난 친구들 말고 오늘은 다른 친구를 만났다.
작년에 같이 야구도 하고 목욕탕도 가고 놀던 친구였는데...

전화했더니 무척 반갑게 맞아준다.
그 친구와 또 한명의 친구를 알게 되었다. 그 친구는 한국인 여자친구가 있었다.
그렇게 네명이 만나 식사하고 술마시고 노래방가고...-_-; 음..계속이군.

흑어 요리(사천요리)와 함께 푸짐한 저녁상을 받으며 다시 한 번 중국인들의 풍습을 느껴본다.
손님에게는 최선을 다해 대접을 하는...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일단 사람이 사람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고마움을 일게 한다.
그게 어떤 사심이 깃들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좋은 관계를 위해 人和를 위해 좋은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난 내 주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최선을 다했는지 생각하게 된다.
만약 미진한 부분이 있었다면 다시 노력하자.
최선을 다해...

2003년 9월 3일 수요일

정말 가네...

#01 정말 가네...
 
이 말을 제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음...그래. 정말 가긴 가는구나.
사람들에게 떠들고 다닌 게 벌써 1년이 되었으니 참 오래도 버티고 있었네.
 
작년에 중국을 가기로 결정했을 때는 왠지 힘도 더 나고 기대도 되고 그랬었는데...
지금은 힘이 좀 덜 나고 긴장도 되고 조금은 두렵기까지 하네.
 
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기운을 받았으니 잘 살아야지. 꼭! 자유로워져야지.
업(業)의 굴레가 무섭다고 하지만 함 뛰어넘어볼거야. 아자~!
 
지금 시간은 새벽 5시 29분... 조금 있다가 공항으로 출발해야겠지?
 
짐은 다 쌌나? 빠진 건 없나?
자꾸 돌이켜보긴 하지만 그래도 왠지 마음 한 켠이 허전하다.
 
후~
 
잠을 좀 자둬야 할텐데...
 
 
 
# 02 동생
 
판단을 잘못해서 출국장에 서둘러 들어갔다.
동생이랑 얘기도 많이 못했네.
뭐 특별히 말하지 않더라도 서로는 알고 있을테지만
마음 차분하게 편하게 얘기 주고받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리네.
 
악수 한 번 진하게 하고 돌아서는데 참 아리고, 미안하더군.
사진 같이 찍자는 소리도 못했네. 쩝~
 
상인아! 잘 살아줘.
 
 
 
#03 울컥
 
꾸역꾸역 기내식을 먹고 있는 내가 보이는 순간,
가슴 한켠이 울컥했다.
아. 나도 마음이 많이 지쳐있었구나.
남들에게 보여지는 부분만 잘 키워왔구나.
이젠 나를 좀 어루만져 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