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9월 30일 금요일

왜,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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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 2

비오네. 비와.

아침부터 들리는 빗소리.
자꾸 잠에서 벗어나기 싫게 한다.
한참을 뒤척이다 겨우 일어나
기획안 수정한 것 웹하드에 올리고
잠시 멍하게 앉았다.

밤새 중국 드라마를 켜놓고 잔 탓에
살짝살짝 중국어로 꿈도 꾸고
드라마 안의 사람들의 삶도 왔다갔다 한다.

비와 내 감정은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을까.
비가 오면 감정이 달라지는 이유는 어떤 이유일까.
아주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의 유전자에는
그렇게 느끼도록 설계가 되어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어릴적부터 스스로 만들어온 습(習)일 뿐인가.

비오는 날엔 스을쩍 센치해진다.

2005년 9월 29일 목요일

친일파 명단을 접하고...

보다 보다 화딱지가 나서 마침 마시고 있던 물 컵을 모니터에 던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뭐, 이런 말 해봐야 "모르고 살았어?", "세상 다 그렇잖아"라고 나를 달래려, 어르려 하는 말들이 들려올 거라 생각은 하지만 정말 화가 나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서프라이즈'에서 퍼온 내용이긴 하지만 '키네'님 홈페이지에 가서 <한국의 친일인맥>에 대해 검색해서 읽어보길 권한다.

나! 대단한 진보주의자도 아니고, 엄청 일본을 싫어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냥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내가 화가 나고 분통이 터지는 건 어떠한 기회를 통해서든 남들의 고통과 괴로움, 삶의 진실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이 이 나라를 좌지우지 하려고 악착같이 달라드는 개떼와 같은 이기주의를 느꼈기 때문이다.

사람이라면 다 그런 마음이 있을 거라고 넉살좋게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내가 지금 사는 게 퍽퍽하고 이 나라가 도대체 믿을 구석이 안보인다면 결국 위에서 언급한 '놈'들이 깽판을 쳐서 일 게다.

혹자는 '박지성'이나 '박찬호'같은 인물이 우리 나라를 세계에 알리고 '최홍만'이 한국의 자존심을 드높이고 '박찬욱'과 같은 사람이 한국의 이미지를 쇄신하는 데 일등 공신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분'들이 1년 365일 떠들고 난리 법석을 해봐야 '키네'님 블로그에서 소개된 인물들에 의해 결국 '좃'도 아닌 게 되고 마는 것이다. 삶은 그렇게 동떨어진 매체나 장르에 있는 게 아니라 헐떡이며 숨을 쉬는 내 코 앞에 있는 것이니...

'정치인'은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말을 하는 이유를 알겠다. 다들 한통속인데 무얼 바랄까. 그렇게 서로들 사돈을 맺고 가족을 만들고 울타리를 쳐가고 있는데... 그걸 이제야 알았냐고? 예전부터 알다마다... 하지만 알면 뭐할까. 아무도 나서서 거부하고 제지하지 못하는데. 세상을 변화시키는 게 꼭 그런 방법은 아닐 수도 있겠지. 하지만 최소한 '뭣'같은 놈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인식하고 '거부'할 줄 알아야 하지 않나 싶다.

누군가 그러더라. '친일청산' 할 시간에 '애국지사' 챙겨줘야 하지 않겠냐고. 맞는 말이고 아무런 이의가 없다. 하지만, 친일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순간에 여전히 왕성한 번식력으로 이 사회를 이 나라를 잠식해 가고 있는 이들의 헐떡임이 느껴진다. 그리고 갈수록 이 사회를 잠식해가고 있는 쓰레기 종자들에게는 꽤 나름대로의 명분이 세워지고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게 무섭다. 기억은 갈수록 잊혀지고 현실은 갈수록 강해지니...

이렇게 살다 가게 될까 무섭다.

'영진위'에 오다.

부산영화제 리더필름 최종 아웃풋을 확인하기 위해 주한형과 '영(화)진(흥)위(원회)'를 찾았다. 디지털 파일을 필름레코딩 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데 영진위 현상소는 수 많은 영화로 인해 정신없이 바쁜 모습이다.

지겨운 기다림. 사실, 오지 않아도 되는 일이긴 했지만 필름으로 나오는 최종본을 (경험삼아) 볼 겸 왔는데 이렇게 기다리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어차피 저녁에 일이 있기 때문에 돌아가봐야 하지만 그 전까지 결과물이 나올지 모르겠다.

담당자가 조금 전 16mm 작업을 하고 있으니 끝나면 바로 35mm작업에 들어간다고 조금 더 기다리라 한다. 이런 결과들은 영화제측에서의 수 없이 많은 번복으로 인해 생긴 결과이기도 하다. 공문이나 기타 연락들이 민첩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쪽에서도 '리더필름'을 빨리 해 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스케줄도 밀려있다 하니...

영진위는 정말 몇 년 만에 와 본다. 많이 쾌적해지기도 했고 이번에 개봉했던, 개봉할 영화들 포스터가 걸려있다. 영진위에서 지원했던 영화들인가?

기다린 게 아까워서라도 결과물 나오는 걸 보고 가려는데... 좀 더 상황의 추이를 치켜봐야겠다. 쩝~!

2005년 9월 28일 수요일

내가 가진 매체, 한계.

(지속적으로 풀어야 할 내 숙제이긴 하겠지만) 작업을 한다는 건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하지 않겠다는 소리는 아니니 이상한 답글 남기지 말길...^^)

어제 블로깅하면서 봤던 시인에 관련된 포스팅도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반박(?)을 하고 싶은 생각도 있긴 하다. 어쨌든 창작은 무엇이고 자신이 가진 '매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어쩌면 여기저기에서 말하는 대로 1인 미디어 시대가 왔는데 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돈을 바르지 않으면 어떤 매체에도 통과할 수 없는 작품이 작품인가. 매체가 X같은 건가. 그 어떤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보고 감동받아 희.노.애.락을 다 쏟아 놓는다. 물론 거대 미디어, 매체가 장악하는 현실을 간과할 수는 없겠지만 그들과 싸워 이기겠다는 생각은 부질없어 보이기도 한다.

결국 열심히 만들어 영화제 등에 출품해 함께 보면서 위안을 삼거나 그냥 사장되거나 하는 과정들이 반복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니메이션은 왜 만드는 것인가? 내게 애니메이션 해서 성공하라고 말하는 벗들의 말 속에는 Pixar나 미야자키 하야오와 같은 레벨로 격상되라는 말과 동일한 함의를 지닌다고 스스로는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음에도 내 심금을 울린 감독들, 작품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가? 아니다. 의미있다. 너무 좋다. 그렇다면 내가 꿈꾸는 욕심은 머리와 가슴이 따로 널뛰기를 하는 것인가?

꼭 그런 건 아니라고 부정하고(싶고),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고 믿고 싶지만 문득 미천한 정보량 중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삶이 떠오르는 건 무엇인가.

지속적인 고민으로 점철되어야 할 (아직은) 젊은 삶이기에 계속 고민해 봐야겠다는 (늘상의) 다짐을 한다.


- 약간의 취기에 김모씨와 얘기하다가 문득~ -

2005년 9월 26일 월요일

고래가 그랬어

고래가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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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씨 블로그에서 처음 '고래가 그랬어' 를 접했다. 이 책이 어떻냐고? 직접 사서 읽어보시라. 어릴적 보물섬에 열광했던 나로써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이런 책이 나온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라 생각한다. 물론 어른이 봐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책이다. 1년 정기구독을 해놨는데 책이 오면 일단 맨 뒤에 있는 딱지부터 접어두고 책을 읽기 시작한다. (처음엔 딱지인지 몰랐다.-_-;) 전태일을 다룬 최호철씨의 만화 뿐만이 아니다. 박수동 화백의 만화는 여전히 건재하며 그 외 많은 작가들의 독특한 그림체와 발칙한 내용으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예전에 나이 지긋하신 모 교수에게 보여드렸다. 군대 내 폭행에 관련된 부분을 읽더니 발끈 하시더라. '고래가 그랬어'는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에겐 불편한 책이고 괘씸한 책일 수 있다. 이제는 이런 책이 아이들에게 읽히는 사회가 된 것이다. 게다가 그 옛날 '보물섬'과 같은 만화책이라 생각하면 참 가슴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요즘은 태어나면서부터 견성(見性)한다고 하는데 무슨 대단한 깨달음 달고 태어난다기 보다 이런 사회변화가 사실을, 진실을 드러내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접하고 자식이던 조카던 함께 읽으려면 어른이 먼저 공부를 해야 가능하지 싶다. 솔직히 스스로를 돌아봐도 '고래가 그랬어'를 통해 얻는 게 참 많다. 아이들과 어른들도 부끄럽지 않게 공부해야 한다. 조용히 있으면 절반이라도 가는 사회가 아니다. 묻고 대답하고 느끼고 행동하고 변해가는 사회다. 예전엔 양지에 있어야 할 게 음지에 가 있고 음지에 있어야 할 게 양지에 나와 있었다. 지금은 볕을 쬐어야 살 수 있는 것들은 양지 바른 곳으로 끌고 나왔으면 좋겠다. 뒤집어진 사회는 다시 뒤집으면 된다. 거창한 혁명, 변혁이 아니다. '고래가 그랬어'같은 책들이 조금씩 의식의 흐름을 돌려놓을 것이다. 어른의 생각으로 세뇌하는 게 아니라 앞세대와 뒷세대가 토론하고 소통하는 것으로도 세상은 바뀔 수 있다.

기회가 닿으면 이런 내용들이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지면 좋겠다. 그럴 수 있도록 나부터가 노력해야겠지만-_-;

9월호에 실린 '알콩이와 달콩이의 요리 연구실'(글-고래가 그랬어 그림-홍수진)를 보면서는 정보도 얻을 수 있었지만 혼자 보면서 키득거렸다. 재밌더라. 사실, 다 재밌다. :)

'고래가 그랬어' 일단 접해 보시라.

- 위에 있는 이미지는 네이버 이미지 검색으로 찾은 후 편집했음 -

세 자매의 오후

세 자매


이런 깜찍한 녀석들~ :)

뭘 그렇게 재밌게 보고 있나?

오랜만에(?) 재밌는 비디오 틀어주고
직접 만든 야쿠르트 하나씩 쥐어주니
행복한 오후가 따로 없어 보인다.

으으으으으으으~ 깜찍한 녀석들~ :)

2005년 9월 25일 일요일

오랜만에 중국 사진 두 장.

장춘, 오야 전자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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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사진을 뒤적이다 장춘 오야 전자상가에서 찍은 사진을 봤다. '오야'라는 말은 중국어로 '유럽과 아시아'라는 듯이다. 그곳에 갈 때마다 한국의 용산이랑 별반 다를 바 없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이곳에서 친구가 판매대 하나를 가지고 장사를 하고 있다.

널부러진 컴퓨터 부속품들, 진열되어 있는 DVD, VCD, 게임CD, 노트북, 컴퓨터 등등. 물론 아래층에는 가전제품이며 음향제품 등을 판다. 이 사진의 배경인 7-8층은 조금 작은 규모의 판매대가 오밀조밀 몰려있다.

한국의 용산보다는 덜 두려운(?) 곳이다. 어디에 간들 흥정은 있게 마련이지만 용산보다는 머리가 덜 지끈거리는 곳.

이곳에서 산 MP3는 3만원이 안되는 가격으로 구입해서 지금도 잘 듣고 있다. 와컴 타블렛도 이곳에서 샀었다. 디자인이 한국에 있던 것보다 더 나았던 듯. 8.9인치 노트북은 찜을 해놨는데 다음에 갈 때까지 팔리지 않고 있으면 인수를 해 와야겠다.


대련 씽하이(?)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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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이런저런 사정이 생겨 장춘 찍고 대련을 갔었는데 그 때 들렸던 씽하이 공원의 해수욕장. 씽하이가 맞나? 맞다면 별바다라는 뜻일게다. 대련도 도시개발을 여기저기서 해서 그런지 해변도시라 그런지 늘 저렇게 뿌옇다. 상해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완전 성수기가 아니어서 그런지 몰라도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그래도 많다.

제대로 둘러보지 못한 대련은 다음에 기회를 봐야지.

2005년 9월 24일 토요일

시장 골목에 서서.

이수역 근처 시장 골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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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소음은 살아가기 위한 움직임에서 나는 소리.
오토바이, 트럭, 자가용들이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오며
엔진을 벌벌대는 것도 다 먹고 살자고 내는 허기진 소리들.
내 눈으로 본 불빛은 저렇게 번지지 않았었는데
아무래도 열심인 사람들은 아직 내가 똑바로 보질 못하고 있나보다.
싸우고 할퀴고 끌어안고 웃고 울며 살고 있지만
난 문득 그 사람들 틈에 서서 부질없다는 생각을
수 백번씩 고개를 흔들면서도 하고 있다.

뭐하는 거지?

오늘 오후 내내,
새벽까지
무엇을 해야 좋을까
하고 골똘해지다.

준비해야 하는 기획안도 기획안이지만
앞으로
어떤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야 하나
하고 골똘해졌다.

머릿 속엔
수백만가지 상념들이
스쳐 지나가지만
어느 것 하나
잡아 붙들어 둘 수 없었다.

무엇을 해야 하는 거지?

지금 뭐하는 거지?

2005년 9월 20일 화요일

명절 마무리.

내일, 아니 오늘 오전에 서울로 복귀합니다.
며칠 더 머물다 가려고 했던 계획들이 와르르...OTL
결국 일찍 올라가야할 것 같습니다.

주말이 포함되서 비교적 짧게 느껴졌던
추석 명절을 잘 보내셨는지요.

외국에 나가있는 벗들은 별 감흥이 없어서
혹은 더욱 향수에 시달려 괴로와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달을 보며
가족들을, 벗들을 생각하며 마음 모아 기도라도 했겠지요.
한국에 있는 벗들이야 교통체증에 힘들어하면서도
반가운 이들 만나 회포도 풀고 간만에 부모님께 얼굴도 뵈어드리니
그나마 이래저래 반복되는 명절이지만
반복되는 풍성함과 즐거움으로 잘 보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 결혼한 친구들은 새로운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 때문에
나름대로 많은 생각과 시련(?)이 있었겠군요.
힘내세요.

짧지만, 그리고 해마다 겪는 명절이었지만
이번엔 참 많은 감각감상이 있었네요.
대화를 하면서 말을 하는 입장에서건 듣는 입장에서건
꽤 많은 소득이 있었지만 풀어내긴 쉽지 않습니다.
다시 또 화두 틀고 붙들고 앉아 자분자분 풀어내야겠습니다.

다시 삶 터로 복귀하시는 벗들,
즐겁고 생기있게 복귀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또 신나는 삶 살아봐야지요.
(사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잠시 최면이라도, 주문이라도 걸어봅니다.-_-;)

명절 끝무렵 무더웠던 이상한 날씨를 응징이라도 하듯이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데
삶 터로 복귀하시는 벗들, 무사히 건강히 복귀하시길~
오가며 또 만나게 되면 조금 더 깊어진 미소로 마주할 수 있길~




...그리고...

어머님, 며칠 동안 많이 고단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손주들, 자식들, 친척들 들이시고 대접하시느라 힘드셨겠지요.
음식 장만 안한다 안한다 하셔도
오랜 세월 해 오셨던 습관은 몸을 한시도 쉬이 놔두질 않으시는군요.
그저 죄송할 따름입니다.
다들 떠나고 나면 그 허전함에 가을 바람 더 차게 느껴지시겠지만
다시 한 며칠 넉넉한 여유로움 속에서
고단하셨던 몸, 마음 잠시 쉬이시고 기운 회복하시길 부탁드립니다.

늘 무뚝뚝한 녀석, 그러려니 이해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005년 9월 15일 목요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언제 들어도 마음 푸근해지는 말인 것 같습니다. 사실, 근래에 명절이란 개념 자체를 특별하게 생각하지는 않고 삽니다만 명절에 고향에 가서 가족들과 함께 모인다는 것 만으로도 기분 좋은 일이 아닌가 합니다. 반가운 친구들도 만나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말이죠. :P

작년 말에 한국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꽤 많은 일들이 있었고 정신없이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고향에도 내려가지 못해봤으니까요. 이번에 가면 아버님한테는 꼭 들렸다 와야지 하고 다짐합니다.

바쁜 일도 어느정도 마무리가 되긴 했지만 앞으로도 해야할 일들이 꽤 있네요. 게으름을 피우려고 피우는 것은 아닌데 늘 일이 막바지까지 몰려 처리하게 되는군요. 흠;;;

저는 16일 저녁 고속버스로 내려갑니다.

여기 오시는 벗들은 어떠신지요?
다들 귀향길, 귀경길 모두 조심히 다녀오시구요.
고향에서 푸근한 시간 보내시다 오세요.

늘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염원합니다. :)



마무리 보너스 추석 인사는 '근영양의 추석 인사'로 대신할까 합니다. :)


그림 배우기...

오돌또기 요술배 배경감독님께서 예전에 자신의 홈페이지에 그림 그리는 방법 몇 개를 올려두셨다. 그 때 바로 내 홈페이지에도 퍼서 날라야지 하다가 잊고 지냈다. 오늘 생각이 나 올려본다.

요술배 감독님 홈페이지는 블로그 하단 우측에도 있지만
바로 이 곳이다. "요술배 홈 바로 가기"

지난했던 날들은 가고...

겨우 끝냈다. 헉헉~

계속 추석은 다음 주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던 탓에
고향에 내려갈 표도 예매해놓지 않고서 작업만 했다.

추석이 이번 주라고... 몇 사람들에게 채근을 당하고서야 깨달았다.
작업을 끝내고 허겁지겁 열차를 알아보니 있을 턱이 있나.
고속도로 상황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방법이 없다.
고속버스 우등으로다가 예매해주고 잠시 숨 돌리고 있다.

홀가분하다.
부산 건도 오늘 필름으로 나왔다고 연락이 왔다.
시간만 허락되었더라면 필름으로 작업해 나온 결과물을 보고 싶었건만...
다음 기회를 봐야지.

오늘은 그동안 구해뒀던 영화를 좀 훑어볼까 싶다.

내일 아침엔 일찍 누나 집에 가서 짐도 정리해서 내려갈 차비를 해야한다.
되도록이면 중국 친구 녀석하고 식사라고 하고 가야겠다.
추석이라서 함께 집에 가자고 했더니 불편한지 어색한지 싫다한다.

작업은 끝났지만 또 처리해야 할 들이 꽤 있다.
하지만 물리적으로는 가벼운 일이라 다행이다.



기지개 한 번~ 끄응~!!

2005년 9월 12일 월요일

리...리...리테이크!

1
부산件 리테이크 작업하러 계원에 왔다. 오늘 낮에는 '일'이 있었기 때문에 바로 오지 못하고 저녁 7시가 갓 넘어서야 도착했다. 중화요리로 저녁을 해결하고 바로 작업 돌입. 2-3시간 걸쳐 리테이크 마무리. 지금 렌더링 중이다.

2
내게 남은 또 하나의 작업은 이틀 안에 마무리를 해야 한다. 이번 주는 초반에 일을 해결하고 쉽게 갈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중반을 넘겨야 겨우 마무리 될 것 같다.

3
장창(중국친구)은 방학해서 놀아 줄 사람이 없다고 칭얼대다가 계속 작업하는 내 얘기를 듣고 이젠 포기했나보다. 방학이 끝나기 전에 같이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한국어든, 중국어든...

4
계속 머리를 굴리는 중이다. 덩달아 마음도 함께 굴러가고 있다. 내 자신도 쉽사리 되지 않았던, 하지 않았던 일들을 남에겐 아주 쉽게 뱉어내고 있다. 요즘 들어 생각되는 건 나이가 서로 많건 적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 그런 생각이 든다는 건 아직 내 소양이 부족하다는 뜻도 역설적으로 포함하고 있겠지.

5
가을이라는데 선선한 바람은 맛도 보지 못하는 것 같다. 아직 더운 기운이 남았다. 원래 열이 많은 체질이라 그런지도...

6
아- PISAF 중국쪽 일도 해결해줘야 하는구나. 복잡한 일은 아니지만 신경이 쓰이게 된다.

2005년 9월 10일 토요일

주말의 언저리.

명색이 주말인데 먹거리 해결을 위해 작업실 앞 마트에 잠깐 다녀온 걸 빼고는 계속 작업실에서 작업이다. 그 중에 삼분의 일은 졸며, 블로깅하며 지낸 시간들이다. 주말은 주말다워야 하는데 끝내지 못한 일들이 있기에 주말답지 않아도 괜찮다...고 위로한다. 다 끝내고 나면 꼭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리라...는 뜬금없는 각오도 생긴다.

화창한 날씨, 선선한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 없겠지만 가끔은 이렇게 콕 박혀서 작업하고 있는 맛도 꽤 쌉쌀하다.

2005년 9월 9일 금요일

[ani] 한 송이 꽃이 진다고 설워마라



선배가 작업을 한다길래 "그럼, 편집이나 좀 도와줄게요" 말을 했다. 그리고 얼마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창부타령'을 BGM으로 한 애니메이션 한 편을 완성했다. 마지막 스퍼트는 (엄살이 섞이긴 했지만) 꽤 힘겹긴 했다.

정화 선배는 이미 여러 단편으로 실력을 인정받았던 모양이다. 이번에도 그 명망으로 국악축전 조직위원회에서 섭외가 들어와 작업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작업을 꾸준히 한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단편 애니메이션 작업이라는 것은...

부끄럽지만 사실, 난 그녀의 모든 작품을 다 챙겨보지 못했고 이곳 작업실에 와서 몇 개의 트로피를 보고서야 "꾸준히 작업을 하고 노력하는 애니메이션 감독이구나" 싶었다. 늘 서정적인, 따뜻한 이야기를 담아내려고 하는 그녀의 마인드는 함께 작업하는 순간에도 확연히 느껴지곤 했다. 다른 작품들도 "한 송이..."와 같이 따뜻하고 감성적인 애니메이션들이겠지... 이번 작품도 그와 다르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다. 스토리 진행에 대한 이야기, 혹은 편집의 흐름, 색감 등에 얘기하다 보면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가고 끊임없이 얘기를 풀어내려고 하는 모습들이 좋아 보인다.

이번 작업은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 언제나 부족한 시간과의 싸움 덕에 모두들 100% 만족할 만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했고 그럭저럭 꽤 나오지 않았나 싶다.(사실 자위하는 거다.) 하지만 국악축전 홈페이지에 동영상을 볼 수 있다고 해서 다시 감상한 결과 튀는 부분이 눈에 계속 밟혀서 편집과 이펙트 부분을 담당했던 나로서는 마지막까지 넉넉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 게 가슴에 얹혔을 뿐이다.

국악축전 개막식에는 "한 송이...."와 다른 애니메이션 단 두 편만 상영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나마 선방한 셈이겠지?

여러 부분이 눈에 걸리고 불편하지만 사실 가장 먼저 후다닥 고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마지막 엔딩 크레딧의 글자 크기다. 줄이고 싶었지만 마지막 순간에 어이없이 시간을 보내고 허겁지겁 렌더링을 거는 바람에 수정하지 못했었다. 아~ 언제나 작업 후에 너절한 변명들이 사라질 것인가. 그렇더라도 주어진 시간,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완성'의 맛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솔직히 손을 봐야 할 부분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뭐, 보면 다들 느끼겠지만...-_-a, Retake가 없는 애니메이션은 없다.)

그러고보니 난 요즘 PD 역할이 아니라 (감히) TD 역할을 해내고 있는 건가? 솔직히 즐거운 역할이다. Tool을 다루기도 하고 Tool을 이해하고 접목시키는 일을 하다보면 재밌고 중요한 역할이란 생각이 든다. 뭐, 어쨌거나 애니메이션 만드는 일은 어떤 역할이든 재미있으니까. 그리고 이런 역할은 실제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좋다. '感'을 유지할 수 있다는 면에서. 이 작업에서는 보이는 이펙트와 보이지 않는 이펙트가 있다. 보이지 않는 이펙트는 늘 보이는 부분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게 있다. 보이진 않아도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 다르니까. (그런데!!! 난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

http://www.gugakfestival.or.kr/gugak_4/gugak_4_3.html
이곳에 가면 나머지 9편의 애니메이션도 감상할 수 있다.

'iPod nano' Presentation



위 동영상은 스티브 잡스의 ipod nano 신제품에 관련된 PT영상이다.
지금 iPod nano 때문에 난리가 났다.
그 분(지름신)의 강림이 도처에 임박했다는 소식이다.

나도 기회를 봐서 iPod nano는 구입하고 싶다. 역시 '블랙'으로...

하지만 난 imac이나 ipod에 대해 그다지 관심을 가지고 살지 않아
'멋지다'라는 생각 외에 어떤 '충격'까지는 오지 않는다.

사실 내가 감동을 받은 것은 스티브 잡스의 PT다.

언제나 청바지에 블랙계열의 티셔츠를 즐겨입는 트레이드 마크인 의상으로 확신에 찬 목소리와 간결한 제스춰, 그리고 적절한 영상의 활용, 넘치지 않는 유머센스로 PT를 하는 모습은 정말 강렬하다. 저정도 PT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라는 바보같은 반문도 해보게 된다.

어떤 자신감, 어떤 실력, 어떤 경험을 갖추면 저 정도 PT를 할 수 있는 관록이 생길까. 아무튼, 멋.지.다.

아마 저런 상황, 저런 기회가 내게 평생 오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뭔가 가슴을 울리는 건 있다. 저런 동영상을 보며 가슴이 뛰는 이유는 도대체 뭔가. PT를 잘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저 동영상 안에는 최소한 내게 느껴지는 '무엇'이 있다.

늘 닥치는 말빨로 PT를 하던 누군가가 생각나 얼굴이 화끈거린다.
쪽.팔.려.


iPod nano 구경하기


- 그런데 영어를 잘하지 못해 100%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네..-_-a

2005년 9월 7일 수요일

10회 부산 국제 영화제 리더필름.

8회 부산 국제영화제 리더필름 때는 초반PD로 참여를 하다가 애초에 다 계획이 잡혀있던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느라 마지막까지 하지 못했었다.

이번엔 10회 부산 국제영화제 리더필름. PD는 아니지만 초반에 슬렁슬렁 같이 회의도 하고 아이디어도 내고 그랬다. 내가 맡은 건 효과와 편집.

어제, 그제 밤을 새며(물론 잠은 잔다.) 최종 마무리하고 정리하며 끝냈다. HDTV사이즈 1920X1080이긴 했지만 약 30여초 분량 밖에 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완전히 끝난 건 아니고 키네코를 하기 위해 Tiff 시퀀스로 뽑아야 하고 조직위원회 측에서 Preview Render를 보고 수정사항이 들어오면 다시 작업을 해야하지만 일단!! 끝냈다.

이젠 내꺼...남은 거 마무리해야지. 탄력!받으면 금방 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실, 못하면 난리나는 거지만...

어제 끝내놓고 찜질방에서 잠을 잤는데 너무 늦잠을 잤다. 이제 컴퓨터 정리해서 작업실로 돌아가야지.

처음부터 주욱 고생이 많으셨던 李감독님과 劉PD님 수고하셨습니다.

결과물이 그다지 썩 맘에 들게는 나오지 않았지만 마무리도 잘 되서 이번 부산 영화제 때 스크린으로 볼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욕이나 얻어먹지 말아야 할텐데... 흐;



근데 오늘 날씨 왜이렇게 좋은거야?!!! 췟~!!

2005년 9월 6일 화요일

원정

학교에 마땅한 공간이 없어 사람 수라도 줄일 겸 해서 작업실에서 인터넷으로 교신하며 작업을 하다가 서로 답답한 마음에 컴퓨터를 싸들고 학교로 왔다. 한 이틀 바짝 고삐를 조이면 끝날 것 같다.(그럴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그래야 내 작업도 마무리를 할텐데... 8월 초반에 마음이 잡히지 않고 생각도 굳어 있었던 게 화근이긴 하지만 후회하진 않을란다. 그 이후에 작업 한 두개 하면서 나름대로 정상치를 회복해 가는 듯 해보인다.

작업은 언제나 즐거워야 한다. 즐겁지 않은 작업은 놀이가 될 수 없고 지겨운 노동이 되곤 하니깐. 즐거우려면 마음이 가볍고 머리가 가벼워야 한다. 어디로 널을 뛰어 올라가던 가벼워야 더 높게 뛰고 더 멀리 본다.

자꾸 작업(들) 마무리가 코 앞에 보일 듯 보일 듯 해서인지 마음이 조금 급하다. 빨리 끝내고 잠깐 숨 돌리고 쉬고 싶다는 생각을 먼저 한다. 뭐, 그래도 손과 머리는 하고 있는 작업에 아귀가 맞아 돌아가고 있긴 하다.

조금 편하게, 자연스럽게~ 해야지.


.... 작업할 때 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는 건 최악이다. 한 번 할 거 두 번 하게 되고 오늘 끝낼 거 내일, 모레까지 늦춰진다. 사람마다 편차가 있고 일마다 상황이 다르긴 하지만 언제나 늘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과 소통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즐거운 작업이 아니라 지겹고 괴로운 노동이 되기 때문이다.

2005년 9월 2일 금요일

Tvix 구입 그리고 꽃

1

Tvix M-3000U

 

Tvix M-3000U를 구입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게 될 사람들에게 애니메이션을 보여주고 싶은데 그쪽 장비가 딱히 좋은 게 없기도 했거니와 나도 외장 HDD가 필요했기 때문에 겸사겸사 장만하게 되었다. 다른 디빅스들도 살펴봤는데 일단 디자인이 맘에 들지 않았고 이것보다 가격이 약간 높았다. 게다가 난 아주아주 오래 전에 Dvico 제품을 구매한 경력이 있어 그 회사의 회원으로 등록되어 있었으니 꽤 괜찮은 선택인 것 같다. 액정 패널은 없지만 디자인이 투박한 듯 모던한 듯 좋은 게 가장 큰 장점이랄까? 하긴 디빅스는 3-4개 중소업체들이 만들고 있으니 디자인을 선별해가며 고를 입장은 안되는 것 같다.

디빅스를 구매하고 싶은 사람들은 http://www.divxplay.net/ 에 한 번 가보시라. 한국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 날로 기술이 진보하고 있는 HDD형 디빅 플레이어는 꽤 편리한 물건임엔 틀림없다. 난 예전에 새로텍에서 나온 Avix를 써본 경험이 있어 편리함을 충분히 느끼고 있다. 다만 2.5인치형은 대용량 하드가 나오지 않아 데이터를 많이 저장하고 싶은 사람에겐 별로지만 휴대성과 기능성은 멋지다.

어쨌든!!! Tvix M-3000U는 차지하는 면적이 좀 되지만 좋은 도구가 될 것 같다.


2

 

난 정말 꽃이름을 모른다. 장미, 국화, 개나리 등과 같은 누구나 다 아는 꽃이름을 제외하고는 아는 게 없다. 하긴 알고 있어도 약간 모양이 달라보이면 그 꽃이름을 대기도 망설이니 할 말 다했다.

작업실에 함께 있는 누님이
투명한 유리컵에 사진에서 보이는 만큼의 꽃을 담아
내 책상에 두고 씩~ 웃고 간다.

가을이구나. 가을.

어수선한 책상이지만
누님의 고마운 마음은 물씬 책상 한 가득 넘친다.


가을인 거 아는데!!! 그런데도 밤마다 날 괴롭히는 모기떼들의 정체는 뭐냔 말이닷!

메인보드 사망과 짜증.

기가바이트 메인보드가 갑자가 멎었다. 이런 황당한 경우가 있나.

아마도 외장 Tvix를 붙이다 충돌이 생긴 모양이다. 죽어버린 메인보드는 다시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약간 탄 냄새가 나길래 파워가 고장인 줄 알고 근처 닥터119에 가서 새 파워를 사와 설치했는데 반응이 없다. 역시~-_-;;;

결국 여차저차해서 보드를 들고 용산 제이씨현 고객센터를 찾았다. 시간대가 여의치 않아 점심시간을 보내고 난 후에야 1:1 교환해 준 보드를 들고 올 수 있었다. 1년도 되지 않은 메인보드가 그렇게 허망하게 멎어버렸으니 1:1 교환이 아니라 그 이상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뭐... 이래저래 시간 허비한 걸 생각하면 정말 답답할 지경이었다.

돌아와 다시 설치하고 부팅을 했는데 왠걸 네트워크 어댑터가 잡히질 않는다. 전에 미리 다운 받아놓은 드라이버로 몇 번을 시도했는데 계속 노란색 느낌표만 뜬다. 아~ 싫다. 저 마크.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여기서부터 오늘의 짜증이 시작되었다.) 처음 받은 남자는 약간 실실거리는 웃음 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뭐, 그럴 수 있으니 이해한다.

증상을 자세히 설명해 주고 어떻게 하냐고 하니 역시 기가바이트 사이트를 알려주며 드라이버를 받으라 한다. 마치 그것도 모르냐는 식으로 말을 한다. 귀찮다는 식의 대답을 몇 번 하면서 내가 이래저래 다 해봤는데도 안되더라 이야기를 하니 불쑥 던지는 얘기가 "그럼 다시 보드를 교체하시면 되겠네요"다. 이런~ 젠장~

다른 태도는 다 이해할 만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치자. 보드 교체하는 걸로 시간 다 보냈는데 1:1 교환해줘놓고 무성의하게 다시 교체하러 오라고 하다니...

화가 나 따졌다. 처음부터 제대로 체크를 해서 교환해 주던가 아니면 미안하지만 이런저런 상황들 때문에 그런 것 같으니 번거롭지만 교환하러 다시 오셔야겠다는 이런 식의 얘기를 해야하는 것 아닌가? A/S의 기본도 모르나? 언성이 높아진 내 목소리를 듣고 갑자기 이 사람 깍듯해진다. 아주 조심스러운 목소리하며 실실대는 느낌도 사라졌다.

아~! 제길. 이렇게 목소리 크게 따져야만 고객이 고객으로 보인다더냐...

내가 다시 더 알아보고 시도해보고 전화한다며 끊었다. 그런데 아무리 해봐도 이유를 모르겠더라. CMOS에 들어가서 LAN에 관련된 항목도 체크해보고 그랬는데... 결국 다시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었다.

두번째 남자, 반말인 듯 존칭인 듯 헷갈리는 말투로 전화받는다. 화가 슬그머니 솟는다. 설명을 했더니 다시 기가바이트 사이트를 알려준다. 다 해봤는데 방법을 몰라서 그런다고 했다. 이 사람 무심코 던지는 한마디, "포맷하시고 다시 까세요"

으~ 이런 젠장. 이런저런 상황에 대한 메뉴얼도 없고 포맷을 하고 윈도우를 새로 설치하면 된다? 그리고 그게 가장 빠른 방법이다? 난 프로그램을 꽤 많이 쓰는 편이기 때문에 포맷하고 새로 설치하면 반나절을 그냥 지나가는데...

또 언성을 높이며 따졌다. 그랬더니 자기가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고 오히려 따진다. 보드 교체할 때 랜카드 부분이 다른 게 있을 수 있으니 뭘 살펴보란다. 그러더니 다시 아니라며 똑같다고 번복한다. 이래저래 말문도 막히고 화가 나서 반말로 "알았다. 그냥 전화 끊어라"며 전화를 끊었다.

닥터119에서 산 파워는 반품을 해준다길래 겸사겸사 전화를 했다. 상황을 설명했더니 A/S 나오는데 기본 20,000원이란다. 출장비 10,000원에 수리비 10,000원. 비싸다고 한참 말을 하지 않고 있었더니 그러면 10,000원에 해준다길래 승락했다.

한 시간 정도 기다린 후 기사가 도착해서 이것저것 살펴보더니 보드 일체형 랜카드는 에러율이 많으니 별도 랜카드를 다는 방법이나 보드를 교체하는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아~~~ 답답한 노릇이다. 한숨만 나온다.

그런데 이 기사가 CMOS를 열어보더니 On Board Lan카드가 Disable로 되어있는 걸 발견하고 Enable로 바꿔 리부팅을 한다. 아싸~ 랜카드가 잡힌다.

왜 난 처음에 이걸 발견하지 못했을까. 기사가 하는 말이 보드를 테스트하거나 새로 내보내면서 CMOS 설정을 안해놓는 경우가 있어서 그랬나보다고 한다.

생돈 10,000이 나간 것도 아쉽지만 제이씨현 고객센터에 있는 사람들은 CMOS를 살펴보란 이야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가. 답답한 마음에 그리고 성의없는 답변과 사*2가지 없는 말투에 짜증나고 답답해 따지고 언성을 높였었지만 이해가 안되긴 매한가지다.

결국 다시 인터넷 회복. 한 숨 돌린다.

오늘 하루 다 가버린 느낌이다. 제이씨현 A/S 평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는 얘길 동생에게 들었는데 그 말이 맞나보다며 그냥 보낸 하루 애써 위안한다.

그리고 닥터119 기사에게 하나 배웠다. 수업료가 좀 비싸긴 했지만...


- 써놓고 보니 무척 길군.-_-a

2005년 9월 1일 목요일

여름의 습격(?)

9월의 시작, 가을의 시작.

그러나 끝나지 않은 모기들의 습격.
아- 모기 때문에 잠을 깨다니.
여름에는 건들지도 않던 것들이
날씨 선선해지니 움직일만 한가 보지?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데
요 며칠은 무척이나 덥다.
8월이 다 지난 때에 에어콘을 틀고 있다니...

어쩌면 여름은 물러가지 않고 어딘가에 숨어서
모기들을 출동시키고 뜨거운 입김을 뿜어내고 있는지 모른다.
찾을 수 없다. 여름.

아우~ 걔라.(방언임-_-;)

[인물] 중국 두 배우, 세상을 떠나다.

'이은주'가 이 세상과 이별을 고한 것만큼은 아니지만 조금 갑작스럽다 싶게 중국 배우 두 명이 하루가 멀다 재촉하며 유명을 달리했다. 요즘 정신없어서 중국 신문을 챙겨보지도 못했는데 중국 친구가 알려준다. 그 배우 두 명은 내가 중국에 있을 때 줄곧 봐왔던 사람들이고 꽤 인상에 남았던 사람들이기에 기분이 묘하다. 아마 중국 영화나 드라마, 혹은 상성(相声)과 같은 소품을 즐겨봤던 사람이라면 열에 열 고개를 끄덕이며 기억할 것이다.

한 사람은 푸비아오(Fu Biao;傅彪), 또 한 사람은 까오시우민(Gao Xiu Min;高秀敏)이다.

Fu Biao;傅彪

Gao Xiu Min;高秀敏


예술계의 큰 별, 예술계 안팍으로 좋은 사람들이었다고 기억되는 배우 둘이 모두 50세가 되기도 한 참 전에 세상을 떠났다. 이 두 사람이 먼저 떠나간 후 중국 연예계에서는 중년배우들의 위기라는 얘기도 나오고 중년의 건강에 대해 염려하는 기사도 나온다. 푸비아오는 간암으로 까오시우민은 갑작스러운 심장병으로 별세했다.

물론 둘의 죽음에 관련해 애통해하고 비통해하는 기사들, 추모하는 기사들, 이들이 남긴 것에 대한 회고 등의 기사가 넘쳐나고 있다. 어쩌면 조연으로 큰 자리매김을 하며 없어서는 안될 역할로 왕성한 활동을 했던 이들이었기에 중국 연예계, 혹은 일반 사람들이 접하는 비통함은 남다를 것으로 생각된다.

왕성한 활동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나도 중국에 있을 때 이들의 얼굴을 자주 봐왔기에 소식을 접하는 느낌이 남다르긴 하다. 두 사람이 출연했던 영화와 TV드라마가 있으니 언제 시간나면 다시 봐야겠다.



두 분의 명복을 빕니다.
완전한 해탈천도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