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시작되면 선수 중 한 명이 공격이나 수비 중에 룰을 벗어날 듯 말 듯한 반칙을 한다. 또는 룰을 조금 벗어나는 듯한 반칙, 즉 누가 봐도 반칙이랄 수 있을 정도에 가까운 반칙을 한다. 그 때 심판이 휘슬을 불면 그보다 낮은 수위의 반칙을 하면 되고 휘슬을 불지 않으면 그 때부터는 반칙에 가까운 반칙은 반칙이 아니게 된다.
재밌는 이야기였다. 반칙을 하는 방법, 반칙의 정도를 정하는 방법이 있다는 게 조금은 놀라운 이야기였다. 심판이 사람이니 그가 판단하는 정도에 따라서 휘슬이 불리고 안불리고가 결정되는 것 아니겠나. 그걸 이용한 반칙에 대한 이야기였다.
대한민국이란 사회(혹은 전 세계?)에서 사는 방법도 이와 다르지 않아보인다. 특히 기득권과 비기득권의 관계가 그러하고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의 관계가 그러한 듯 하다. 아마도 정치권과 서민들의 관계 정도를 떠올려보면 쉽게 그림이 그려질 것 같다. 서민들이 정치인들을 감시하는 심판이라고 한다면 정치인들은 서민들에게 어느 정도 수준의 불법적인 모습을 슬쩍 흘려보낸다. 서민들의 반응이 나쁘면 사과(하는 척) 한다. 만약 서민들의 반응이 없으면 그보다 더한 불법적 행위를 강행한다. 서민들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점점 무감각해지고 포용의 측면이 커지면서 휘슬을 불어 반칙카드를 주는 횟수보다 단지 주의를 주는 정도의 횟수가 많아지기 시작한다. 나중에는 주의를 주는 것조차도 하지 않고 그들의 불법적 행위가 마치 '그럴 수도 있는 일' 정도로 치부하거나 '사람이니 실수 정도는 하는 것'이라고 동정하게 되고 '한국에서 그 정도면 양호한 것 아니냐'고 오히려 두둔을 하기에 이른다. 자신이 그들을 감시하는 위치에 있었음을 까맣게 잊고 그들의 행위에 동화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불법이 합법이 되는 과정이다. 이젠 '위장전입' 따위는 별 흠이 되지 않고 '논문표절' 정도는 학계의 관행이며 '부동산 투기'는 정당한 돈벌이 수단이 되었다. 반칙을 잘하는 선수와 심판이 한통속이 되어 룰을 만들고 집행하는 꼴이다. 그렇게 불법은 정당성을 획득하며 합법적 관행과 관례로 굳히기에 들어간다. 그러다가 전통이 되고 세습이 된다.
모 항공사 광고 중에 이런 말이 나온다.
国无常强、无常弱。
국가는 늘 강하지도 약하지만도 않다.
국가는 늘 강하지도 약하지만도 않다.
그런데 이 글 뒤에 따라오는 글이 있다.
执法者强则国强、执法者弱则国弱。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강하면 국가가 강하고 법을 집행하는 자가 약하면 국가가 약하다.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강하면 국가가 강하고 법을 집행하는 자가 약하면 국가가 약하다.
대한민국의 국력의 강약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저 글에서 보이는 '강'하다는 뜻은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법을 집행하는 것'과 '국가의 강함과 약함'이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법을 집행하는 자'는 사법기관이 될 수도 있고 '국민'이 될 수도 있다. 정당한 게임을 하고(보고) 싶다면 심판이 잘해야 한다. 선수들이 심판을 수준과 정도를 떠보는 반칙행위에 쉽게 좌지우지되어서는 안된다.
지금 대한민국은 선수와 심판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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