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영덕 형의 급한 전화를 받았다. 아주 운 좋게도 표가 구해졌다고 한다. 软卧(롼워)란다. 롼워는 가장 비싼 표다. 중국 기차표는 입석, 잉쭈워(硬座), 롼쭈워(软座), 잉워(硬卧), 롼워(软卧) 순으로 모두 다섯 종류가 있는데 롼워는 일종의 특등석이 되는 셈이다. 잉워와 롼워가 침대칸인데 잉워는 상, 중, 하로 나뉘어져 있다면 롼워는 상, 하로만 침대가 나뉘어져 있다. 게다가 밀폐형이라 문을 닫고 자물쇠를 걸어둘 수도 있어 도둑도 방지하고 좀 더 조용하고 편안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당연히 가장 비싸다. 연길에서 북경까지 평균 약 520여원 정도 한다.(상, 하 가격은 약 20여원 차이) 잉워가 약 300여원 정도 하니 거의 두 배 가까운 가격 차이다. 돈을 좀 더 보태면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가격이건만 비행기표는 이미 좌석이 없게 된지 오래다. 가격이 비싸더라도 어차피 가야했기에 아침부터 서둘러 짐을 정리했다. 몸은 아주 가뿐하다. 다만, 급작스럽게 떠나게 되서 마음이 약간 황망하다. 밤새 눈은 소복히 더 쌓였다. 기차를 타고 가게 되어 다행이다.
연길 기차 역 앞은 인산인해다. 용이에게 연길에서 빌려쓰던 핸드폰을 돌려주는데 녀석의 한 보따리 점심거리를 건네준다. 아침에 급작스럽게 떠나게 되어 이것저것 준비하지 못했을 나를 위한 배려다. 더욱 자주 만나지 못했지만 후일을 약속했다. 영중 형도 갑작스러운 이별에 서운해 보인다. 원래는 기차역 안까지 들어갈 수 있는 문표를 사면 되는데 춘절 연휴가 끝나는 시점이라 사람이 많아 통제가 심하다. 표도 팔지 않는다고 한다. 부득이 기차역 입구에서 작별을 고했다. 여름에 다시 오게 되면 백두산에 가기로 약속을 했다.
영덕형과 나는 특등석 대기실에 잠시 앉아있다가 승차하러 나섰다. 한보따리씩 짐을 든 사람들이 우글우글하다. 외지로 일나가는 부모와 작별하는 꼬마 아이는 목소리에 눈물이 묻어있고 남편과 헤어지는 여인네는 못내 아쉬운 듯 하다. 가족, 친지들과 헤어지는 이들은 다음 명절, 다음 춘절을 기약하고 각자의 삶터에서 열심히 살 것을 눈빛으로, 포옹으로, 악수로 약속한다. 그러면서도 한쪽에서는 기차에 어서 오르려 사람들이 서로 밀치며 북적인다. 승무원이 소리친다. '있는 건 시간 밖에 없으니 밀지말고 천천히 다 타세요. 다 타야 출발하니까 천천히 타세요'
롼워 방 한 칸에 침대가 네 개인데 윗 쪽 침대가 두 개, 아랫 쪽 침대가 두 개다. 우리 맞은 편엔 상해, 허난으로 일하러 가는 젊은 아가씨 둘이 차지하고 앉았다. 상해, 허난까지는 바로 가는 열차가 없어 이 두 사람은 북경에서 다시 기차를 갈아타야 한다. 우리보다 먼 여정이다.
기차는 오전 11시 45분 발차, 북경 도착 시간은 다음 날 오전 11시 20분. 거의 24시간을 기차 안에서 보내야 한다. 추우니 창을 열어 바깥 풍경을 볼 수도 없고 잠을 자자니 24시간 동안은 질려서 잘 수도 없을 것 같다. 맞은 편 두 아가씨는 먹을 거리를 한 보따리씩 싸들고 와서 먹기 시작한다. 과일, 과자, 라면, 빵, 소세지 등등 없는 게 없다. 영덕 형과 나는 용이가 사 준 김밥과 음료로 점심과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다.
.............질리도록 달리고 또 달리다.
.............잠을 자다 깨다 자다 깨다.
.............라디오 신호는 잡혔다가 잡히지 않았다가 한다.
.............시골을 지나는 듯 하다가 도시를 지나는 듯 하다가 한다.
.............열차 창 틀은 얼음이 얼어 붙었다.
.............가져온 읽을 거리도 다 읽어버렸다.
.............다시 잠을 청하고 뒤척이고 선잠에 들어다 깨었다 한다.
드디어 북경에 도착했다. 열차는 예전보다 엄청난 수준으로 좋아졌다고 하니 과거에 먼 길을 떠나는 이들은 얼마나 더 고생이 심했을까 미뤄 짐작이 된다. 북경의 날씨는 너무도 화창하고 맑다. 북경에 몇 번 와봤지만 이런 날씨는 처음이다. 너무 깨끗하다. 바람은 좀 차지만 동북보다는 역시 따뜻한 느낌이다.
열차에 내려 출구로 향하는 길. 사람들 머리 밖에 보이지 않는다. 통로가 온통 사람들로 가득 찼다. 한국의 한 도시 정도의 인구가 나와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의 중국에서는 기차역에서 동행을 잃어버리면 영영 생이별이 되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 예를 다룬 드라마, 영화도 종종 있었으니 사실이겠지. 지금이야 핸드폰이 있으니 다행이지만. 하긴 여전히 핸드폰도 없이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에게는 과거와 현재가 똑같은 현실일 수 있겠다. 이 많은 사람들은 사회주의 체제 아래 자본의 계급으로 나뉘어 하루하루 힘겨운 삶을 싸워가고 있는 것이다. 용정, 연길에 있다가 하루 만에 북경을 접하니 완전히 다른 세상에 온 느낌이 든다. 북경은 역시 북경이다. 4년 전 북경 역에 왔을 때가 생각이 난다. 4년 전을 제외하곤 늘 공항이었다.
영덕 형이 기거하고 있는 곳(교당에서 임대하고 있는 집)에 와서 짐을 풀고 빨래를 했다. 낮 햇살은 정말 끝내주게 좋다. 밖의 차가운 바람도 잠시 시간을 잊고 멈춘 듯 집 안은 온통 따뜻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더워서 옷을 벗어야 할 지경이다. 하긴 북경에서도 돈 있는 이들이 산다는 왕징(望京)에 있는 아파트(중국은 아파트 외에 개인주택은 없다.)니 방한도 잘 되겠고 난방도 잘 되겠지. 이 곳에 드는 햇살은 한창 개발 중인 북경 곳곳의 건설현장의 민공들에게 드는 그 것과 같은 것일테지만 누리는 느낌은 다를 것이다. 왜 자꾸 이런 생각들이 드는 것일까. 엘리베이터 안에서 하루 종일 아파트에 살고 있는 이들을 위해 대신 층 버튼을 눌러주며 일을 하는 젊은 여자 아이를 볼 때도 그러더니. 아직 뾰족한 수도 없으면서 알량한 감상을 갖는 건 아닌지 경계하고 또 경계한다. 부귀와 빈천을 느끼는 감각기관이 3류 드라마로 흐르지 않기를 경계하고 또 경계할 뿐이다.
앗, 그런데 만나기로 했던 사람들 핸드폰이 다 꺼져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쩝~ 오늘은 좀 쉬고 내일 다시...
2006년 2월 8일 수요일
2006년 2월 1일 수요일
연길 도착, 그리고...
그러니까 1월 31일 저녁 9시 30분 기차를 타고 연길로 향했다. 연길은 조선족 연변 자치주에서 중심이 되는 도시다. 게다가 연길에는 같이 동문수학했던 조선족 형님 두 분(김영중, 김영덕)이 계시고 2-3년 전에 장춘에서 생활할 때 알았던 동생(이 용)이 한 명 있다. 형님들은 거의 10여 년, 혹은 몇 년씩 만나지 못했기에 이번 기회에 꼭 뵈려고 마음을 먹었다.
저녁 9시 30분에 정확히 장춘을 떠난 기차는 투먼(图们)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투먼에 도착하기 한 시간 전 즈음 연길에 도착할 것이다. 듣기로는 새벽 6시 즈음에 도착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기차 안에서 중국 애에게 물어봤을 때는 새벽 4시, 5시 즈음에 도착한다고 해서 약간 긴장을 했었다. 그 시간에 도착하면 여러 사람 불편할 게 틀림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중에 기차 승무원에게 재차 확인한 후 새벽 6시에 도착함을 확인한 후에야 근심을 덜긴 했다. 그러니까 장춘에서 연길까지는 총 8시간 반이 소요되는 셈이다.
장춘을 떠나기 전 저녁을 먹고 가자는 청을 다 뿌리친 이유는 기차 안에서 화장실을 가기 싫어서였다. 또 오랜만에 기차로 이동을 하는 지라 짐을 두고 화장실을 가는 것도 걱정이 되긴 했다. 아무것도 먹지 않았어도 배는 고프지 않았고 오히려 속 편하게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근 한 달간 장춘에 있었던 탓인지 장춘에 있던 동생들은 내가 연길로 가는 게 서운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다만 중국 친구들은 모두 설을 쇠러 고향에 가서 돌아오지 않은 터라 별 다른 이야기는 없었다. 어차피 중국에 와서 몇 군데를 돌아보기로 결심한 이상 더 이상 장춘에 지체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침대칸(중간 자리)에 누워 라디오를 듣는데 왠지 아쉬운 마음, 서운한 마음이 그들이 아닌 내 마음에 밀려드는 건 장춘이 내게 꽤 친숙한 도시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잠을 청하고 새벽 세시 즈음에 깨서 잠시 앉아있다가 새벽 6시까지 뒤척이며 잠에 들었다 깨었다 시간을 보냈다. 기차는 아주 정확히 새벽 6시에 연길에 도착했다. 잠에서 깨어있는 동안 많은 승무원들이 분주하게 일을 하는 걸 봤었다. 기차가 오랜 시간 달리면서 차창이며 바퀴가 꽁꽁 얼어붙어 그걸 깨내는 작업을 했던 것이다. 동북의 겨울은 난방이 되는 곳을 제외하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춥긴 한가보다. 특히나 새벽과 같은 시간엔 달리는 기차에도 성에가 끼고 얼음이 얼고 고드름이 열리니 말이다.
새콤한 새벽 냄새를 맡으며 출구를 나서니 수많은 택시 기사들이 손님을 기다렸다는 듯 호객행위를 한다. 이미 택시 가격은 물어봤기 때문에 별 의심없이 한 택시를 잡아탔다. 원래는 5원이면 되지만 설 연휴라 무조건 10원을 받는다고 했다. 연길은 연변 자치주에서는 큰 도시에 속하지만 그래도 장춘이나 북경, 상해에 비할 수 없이 작은 도시라 10원 택시 요금이라면 연길 시내 어디든 갈 수 있다고 한다. 택시 기사가 내가 말해준 곳을 가보지 못한 터라 단번에 찾진 못했지만 그 새벽 시간에 잠에서 깨어 나를 기다려준 영중 형님과의 통화 덕택에 금새 찾을 수 있었다.
영중 형님과 함께 아주 큰 찜질방에 가서 목욕도 하고 때도 밀고 발 맛사지도 받으며 피로를 깔끔히 풀었다. 그리고 이 용과 영덕형님과 재회를 하고 정말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연길의 저녁을 함께 보냈다. 여전히 난 이곳에 오면 형님들이나 동생에게 손님이고 이방인이다. 택시비 한 번 내지 못하고 신세만 졌다. 나중에 꼭 복수(?)를 하리 다짐하며 고마운 마음으로 접대를 받았다.
.......많은 시간이 지나고.......
.......늦은 시간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무수히 많은 별들이 쏟아지는 걸 보며 추위도 잠시 잊고 하늘만 한참 보고 있었다. 아- 좋다. 연길의 하늘은 맑고 맑아서 별들이 쪄들어(--;) 좋다. 정말 상쾌한 밤이다.
연길은 이번으로 세번째, 혹은 네번째(?) 오는 터지만 올 때마다 새롭다. 가난한 도시라서, 내가 가진 게 조금 더 있어서가 아니라 어쩌면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냄새 때문에, 착하게 가난한 사람들 때문에, 그보다 더 늘 나를 반겨주는 사람들 때문에 새롭고 또 새롭다. 그 만큼 하늘도 공기도 추위도 맑고 착하고 따뜻하다.
하지만 이곳 연길도 예전과 다르게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많은 사람들이 외지에서 들어온다. 언제나 사람들은 머물지 않고 이동한다. 특히나 (한국처럼) 자본주의가 팽배하면서도 늘 불안정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저녁 9시 30분에 정확히 장춘을 떠난 기차는 투먼(图们)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투먼에 도착하기 한 시간 전 즈음 연길에 도착할 것이다. 듣기로는 새벽 6시 즈음에 도착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기차 안에서 중국 애에게 물어봤을 때는 새벽 4시, 5시 즈음에 도착한다고 해서 약간 긴장을 했었다. 그 시간에 도착하면 여러 사람 불편할 게 틀림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중에 기차 승무원에게 재차 확인한 후 새벽 6시에 도착함을 확인한 후에야 근심을 덜긴 했다. 그러니까 장춘에서 연길까지는 총 8시간 반이 소요되는 셈이다.
장춘을 떠나기 전 저녁을 먹고 가자는 청을 다 뿌리친 이유는 기차 안에서 화장실을 가기 싫어서였다. 또 오랜만에 기차로 이동을 하는 지라 짐을 두고 화장실을 가는 것도 걱정이 되긴 했다. 아무것도 먹지 않았어도 배는 고프지 않았고 오히려 속 편하게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근 한 달간 장춘에 있었던 탓인지 장춘에 있던 동생들은 내가 연길로 가는 게 서운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다만 중국 친구들은 모두 설을 쇠러 고향에 가서 돌아오지 않은 터라 별 다른 이야기는 없었다. 어차피 중국에 와서 몇 군데를 돌아보기로 결심한 이상 더 이상 장춘에 지체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침대칸(중간 자리)에 누워 라디오를 듣는데 왠지 아쉬운 마음, 서운한 마음이 그들이 아닌 내 마음에 밀려드는 건 장춘이 내게 꽤 친숙한 도시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잠을 청하고 새벽 세시 즈음에 깨서 잠시 앉아있다가 새벽 6시까지 뒤척이며 잠에 들었다 깨었다 시간을 보냈다. 기차는 아주 정확히 새벽 6시에 연길에 도착했다. 잠에서 깨어있는 동안 많은 승무원들이 분주하게 일을 하는 걸 봤었다. 기차가 오랜 시간 달리면서 차창이며 바퀴가 꽁꽁 얼어붙어 그걸 깨내는 작업을 했던 것이다. 동북의 겨울은 난방이 되는 곳을 제외하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춥긴 한가보다. 특히나 새벽과 같은 시간엔 달리는 기차에도 성에가 끼고 얼음이 얼고 고드름이 열리니 말이다.
새콤한 새벽 냄새를 맡으며 출구를 나서니 수많은 택시 기사들이 손님을 기다렸다는 듯 호객행위를 한다. 이미 택시 가격은 물어봤기 때문에 별 의심없이 한 택시를 잡아탔다. 원래는 5원이면 되지만 설 연휴라 무조건 10원을 받는다고 했다. 연길은 연변 자치주에서는 큰 도시에 속하지만 그래도 장춘이나 북경, 상해에 비할 수 없이 작은 도시라 10원 택시 요금이라면 연길 시내 어디든 갈 수 있다고 한다. 택시 기사가 내가 말해준 곳을 가보지 못한 터라 단번에 찾진 못했지만 그 새벽 시간에 잠에서 깨어 나를 기다려준 영중 형님과의 통화 덕택에 금새 찾을 수 있었다.
영중 형님과 함께 아주 큰 찜질방에 가서 목욕도 하고 때도 밀고 발 맛사지도 받으며 피로를 깔끔히 풀었다. 그리고 이 용과 영덕형님과 재회를 하고 정말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연길의 저녁을 함께 보냈다. 여전히 난 이곳에 오면 형님들이나 동생에게 손님이고 이방인이다. 택시비 한 번 내지 못하고 신세만 졌다. 나중에 꼭 복수(?)를 하리 다짐하며 고마운 마음으로 접대를 받았다.
.......많은 시간이 지나고.......
.......늦은 시간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무수히 많은 별들이 쏟아지는 걸 보며 추위도 잠시 잊고 하늘만 한참 보고 있었다. 아- 좋다. 연길의 하늘은 맑고 맑아서 별들이 쪄들어(--;) 좋다. 정말 상쾌한 밤이다.
연길은 이번으로 세번째, 혹은 네번째(?) 오는 터지만 올 때마다 새롭다. 가난한 도시라서, 내가 가진 게 조금 더 있어서가 아니라 어쩌면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냄새 때문에, 착하게 가난한 사람들 때문에, 그보다 더 늘 나를 반겨주는 사람들 때문에 새롭고 또 새롭다. 그 만큼 하늘도 공기도 추위도 맑고 착하고 따뜻하다.
하지만 이곳 연길도 예전과 다르게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많은 사람들이 외지에서 들어온다. 언제나 사람들은 머물지 않고 이동한다. 특히나 (한국처럼) 자본주의가 팽배하면서도 늘 불안정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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