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월 8일 수요일

북경에 다시 오다.

이른 아침 영덕 형의 급한 전화를 받았다. 아주 운 좋게도 표가 구해졌다고 한다. 软卧(롼워)란다. 롼워는 가장 비싼 표다. 중국 기차표는 입석, 잉쭈워(硬座), 롼쭈워(软座), 잉워(硬卧), 롼워(软卧) 순으로 모두 다섯 종류가 있는데 롼워는 일종의 특등석이 되는 셈이다. 잉워와 롼워가 침대칸인데 잉워는 상, 중, 하로 나뉘어져 있다면 롼워는 상, 하로만 침대가 나뉘어져 있다. 게다가 밀폐형이라 문을 닫고 자물쇠를 걸어둘 수도 있어 도둑도 방지하고 좀 더 조용하고 편안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당연히 가장 비싸다. 연길에서 북경까지 평균 약 520여원 정도 한다.(상, 하 가격은 약 20여원 차이) 잉워가 약 300여원 정도 하니 거의 두 배 가까운 가격 차이다. 돈을 좀 더 보태면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가격이건만 비행기표는 이미 좌석이 없게 된지 오래다. 가격이 비싸더라도 어차피 가야했기에 아침부터 서둘러 짐을 정리했다. 몸은 아주 가뿐하다. 다만, 급작스럽게 떠나게 되서 마음이 약간 황망하다. 밤새 눈은 소복히 더 쌓였다. 기차를 타고 가게 되어 다행이다.


연길 기차 역 앞은 인산인해다. 용이에게 연길에서 빌려쓰던 핸드폰을 돌려주는데 녀석의 한 보따리 점심거리를 건네준다. 아침에 급작스럽게 떠나게 되어 이것저것 준비하지 못했을 나를 위한 배려다. 더욱 자주 만나지 못했지만 후일을 약속했다. 영중 형도 갑작스러운 이별에 서운해 보인다. 원래는 기차역 안까지 들어갈 수 있는 문표를 사면 되는데 춘절 연휴가 끝나는 시점이라 사람이 많아 통제가 심하다. 표도 팔지 않는다고 한다. 부득이 기차역 입구에서 작별을 고했다. 여름에 다시 오게 되면 백두산에 가기로 약속을 했다.


영덕형과 나는 특등석 대기실에 잠시 앉아있다가 승차하러 나섰다. 한보따리씩 짐을 든 사람들이 우글우글하다. 외지로 일나가는 부모와 작별하는 꼬마 아이는 목소리에 눈물이 묻어있고 남편과 헤어지는 여인네는 못내 아쉬운 듯 하다. 가족, 친지들과 헤어지는 이들은 다음 명절, 다음 춘절을 기약하고 각자의 삶터에서 열심히 살 것을 눈빛으로, 포옹으로, 악수로 약속한다. 그러면서도 한쪽에서는 기차에 어서 오르려 사람들이 서로 밀치며 북적인다. 승무원이 소리친다. '있는 건 시간 밖에 없으니 밀지말고 천천히 다 타세요. 다 타야 출발하니까 천천히 타세요'


롼워 방 한 칸에 침대가 네 개인데 윗 쪽 침대가 두 개, 아랫 쪽 침대가 두 개다. 우리 맞은 편엔 상해, 허난으로 일하러 가는 젊은 아가씨 둘이 차지하고 앉았다. 상해, 허난까지는 바로 가는 열차가 없어 이 두 사람은 북경에서 다시 기차를 갈아타야 한다. 우리보다 먼 여정이다.


기차는 오전 11시 45분 발차, 북경 도착 시간은 다음 날 오전 11시 20분. 거의 24시간을 기차 안에서 보내야 한다. 추우니 창을 열어 바깥 풍경을 볼 수도 없고 잠을 자자니 24시간 동안은 질려서 잘 수도 없을 것 같다. 맞은 편 두 아가씨는 먹을 거리를 한 보따리씩 싸들고 와서 먹기 시작한다. 과일, 과자, 라면, 빵, 소세지 등등 없는 게 없다. 영덕 형과 나는 용이가 사 준 김밥과 음료로 점심과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다.


.............질리도록 달리고 또 달리다.
.............잠을 자다 깨다 자다 깨다.
.............라디오 신호는 잡혔다가 잡히지 않았다가 한다.
.............시골을 지나는 듯 하다가 도시를 지나는 듯 하다가 한다.
.............열차 창 틀은 얼음이 얼어 붙었다.
.............가져온 읽을 거리도 다 읽어버렸다.
.............다시 잠을 청하고 뒤척이고 선잠에 들어다 깨었다 한다.


드디어 북경에 도착했다. 열차는 예전보다 엄청난 수준으로 좋아졌다고 하니 과거에 먼 길을 떠나는 이들은 얼마나 더 고생이 심했을까 미뤄 짐작이 된다. 북경의 날씨는 너무도 화창하고 맑다. 북경에 몇 번 와봤지만 이런 날씨는 처음이다. 너무 깨끗하다. 바람은 좀 차지만 동북보다는 역시 따뜻한 느낌이다.


열차에 내려 출구로 향하는 길. 사람들 머리 밖에 보이지 않는다. 통로가 온통 사람들로 가득 찼다. 한국의 한 도시 정도의 인구가 나와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의 중국에서는 기차역에서 동행을 잃어버리면 영영 생이별이 되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 예를 다룬 드라마, 영화도 종종 있었으니 사실이겠지. 지금이야 핸드폰이 있으니 다행이지만. 하긴 여전히 핸드폰도 없이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에게는 과거와 현재가 똑같은 현실일 수 있겠다. 이 많은 사람들은 사회주의 체제 아래 자본의 계급으로 나뉘어 하루하루 힘겨운 삶을 싸워가고 있는 것이다. 용정, 연길에 있다가 하루 만에 북경을 접하니 완전히 다른 세상에 온 느낌이 든다. 북경은 역시 북경이다. 4년 전 북경 역에 왔을 때가 생각이 난다. 4년 전을 제외하곤 늘 공항이었다.


영덕 형이 기거하고 있는 곳(교당에서 임대하고 있는 집)에 와서 짐을 풀고 빨래를 했다. 낮 햇살은 정말 끝내주게 좋다. 밖의 차가운 바람도 잠시 시간을 잊고 멈춘 듯 집 안은 온통 따뜻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더워서 옷을 벗어야 할 지경이다. 하긴 북경에서도 돈 있는 이들이 산다는 왕징(望京)에 있는 아파트(중국은 아파트 외에 개인주택은 없다.)니 방한도 잘 되겠고 난방도 잘 되겠지. 이 곳에 드는 햇살은 한창 개발 중인 북경 곳곳의 건설현장의 민공들에게 드는 그 것과 같은 것일테지만 누리는 느낌은 다를 것이다. 왜 자꾸 이런 생각들이 드는 것일까. 엘리베이터 안에서 하루 종일 아파트에 살고 있는 이들을 위해 대신 층 버튼을 눌러주며 일을 하는 젊은 여자 아이를 볼 때도 그러더니. 아직 뾰족한 수도 없으면서 알량한 감상을 갖는 건 아닌지 경계하고 또 경계한다. 부귀와 빈천을 느끼는 감각기관이 3류 드라마로 흐르지 않기를 경계하고 또 경계할 뿐이다.


앗, 그런데 만나기로 했던 사람들 핸드폰이 다 꺼져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쩝~ 오늘은 좀 쉬고 내일 다시...

댓글 4개:

  1. 그래, 좀 쉬어라. 사람들 만나는 것도 일인데. 몸도 안좋은 녀석이 긴 시간 장거리 기차타고 북경에 가는 것도 힘들었읉텐데... 수고했다. 잘 챙겨 먹고. 햇살 좋은 아파트 거실에서 낮잠 자는 것도 좋을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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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wolhoo - 2006/02/10 13:53
    맞아, 햇살은 너무 좋다. 몸이야 충분히 좋아진 다음이었으니 힘들진 않았지만. 먹는 건 너무 잘 먹어서 살이 찔 정도다. 왠지 북경이 낯설다는 느낌이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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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ㅎㅎ 고생하셨습니다. 24시간동안 기차타고 가는 기분이란 어떤 것일까.. 저도 한 번 그래봤으면..

    역에서 친지, 가족들과 다음에 만날 것을 기약하며 아쉬움을 뒤로하고 헤어지는 사람들.. 저는 저런 경험이 없어서 한편으론 부러워요.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그 느낌들, 감정들.. 어떤 것일까 한 번 겪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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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왕도비정도 - 2006/02/13 14:48
    고생(?) 좀 했습니다.^^ 어떤 기분인지 알고 싶으시다면 중국으로 여행을 떠나시지요. :)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지고 그리워하고 사무치는 감정은 아마 살면서 종종 겪지 않겠습니까? 삶은 늘 그러하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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