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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4일 금요일

정태춘에 대한 기억, 고맙고 미안합니다.

출처: idomin.com


중학교 때 사촌 형님의 소개로 처음 듣게 된 정태춘의 노래. 그 뒤로 줄곧 그의 노래를 좋아했던 나는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모 대학에서 열린 행사에 정태춘이 온다고 해서 그를 보기 위해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도망쳐 나와 찾아갔다. 나를 제외하고 모두가 대학생이었던 그 공간에서 사람들은 정태춘을 환호했다. 나 역시 '떠나가는 배', '촛불', '시인의 마을', '애고, 도솔천아' 등등 서정적이며 감성 풍부한 그의 노래를 좋아했기에 자리를 잡고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난 TV에서 딱 한 번 밖에 보지 못했던, TV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도 없었던 특이한 가수 정태춘.(그의 아내 박은옥은 그보다도 더 유명했던 것 같았다.) 엄밀히 말하면 소위 대중적인 스타는 아니었지만 정말 많은 팬이 있었던 '노래하는 음유시인' 정태춘.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그 때의 정태춘을 잊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원형극장에 둘러 앉은 대학생들이 환호를 보내며 그의 노래 제목들을 외쳐댔다. (아마도) 고무신을 신고 통기타를 맨 수수한 옷차림의 정태춘은 '촛불'의 전주부분을 연주했다. 사람들은 더욱 환호했다. 정태춘은 갑자기 연주를 멈추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이런 노래도 있었지요"


사람들의 연호에 정태춘은 '떠나가는 배', '시인의 마을' 등의 전주부분을 연주했지만 모두 '이런 노래도 있었지요'라는 말과 함께 연주를 멈추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이제 이 노래들은 여러분의 테잎으로만 들으셔야겠습니다. 앞으로 이 노래들을 부르지 않을 겁니다. 이젠 전대협을 위해, 전교조를 위해 노래하겠습니다."


100% 정확하진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의 말은 그랬다. 그리고 그는 이어 '아! 대한민국'을 불렀다. 사람들은 그 노래에 맞춰 라이터를 꺼내 불을 켜 흔들며 열광했다. 난 '아! 대한민국'이란 노래에 완전히 정신을 잃을 정도가 되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사회에 대해서 별 관심도 없었지만 그 노래, 그 가사는 내 가슴을 크게 울렸고 심장이 터질 정도로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이어 부른 '그대, 행복한가' 등의 몇 곡의 노래 역시 내 정신과 마음을 심하게 흔들었다. 공연이 끝나고 사람들이 하나 둘씩 떠나갔음에도 난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다음 날부터 그의 노래가 담긴 테잎을 구하기 위해 수소문을 했지만 구할 수 없었다. '금지곡'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저 그날 밤 들었던 멜로디와 몇 마디의 가사만 입에서 중얼거리며 잊지 않으려 몸부림쳤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이 지나서야 테잎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는데 매일 수 십 번씩 반복해서 듣는 바람에 테잎이 늘어나기도 했다. 그러면 다시 테잎을 구해 다시 들었다. 정태춘이 부르던 노래의 가사는 그렇게 살아서 내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후에도 모든 앨범을 구입했고 모든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다.  


성격상 공연같은 걸 한 번도 다녀본 적이 없었던, 누군가를 보기 위해 시간 맞춰 찾아다닌 적이 없었던 나는 적어도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 정태춘이 온다고 하면 가슴 설레며 그를 기다렸고 그의 노래를 따라 불렀으며 그의 노래에 담긴 가사와 의미를 되새기려 애를 썼다. 그리고 새롭게 나온 앨범들을 꼬박꼬박 구입해서 애지중지하며 간직했고 반복해서 들었다. 누군가 내게 좋아하는 가수와 노래가 뭐냐 물으면 난 단 한 번도 망설이지 않고 '정태춘'이라 답했다. 중학교 때 처음 그의 노래를 들었던 순간부터 '서정적인 노래'를 부르지 않은 이후에도 난 가장 좋아하는 가수는 '정태춘'이라 말했다. 당시 내 또래 애들은 정태춘이 누구인지 전혀 몰랐기 때문에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내가 차츰 갖게 된 사회의식의 일부는 '정태춘(과 박은옥)'에게 빚진 부분이 있다.


언제부턴가 그에 대한 소식이 뜸해졌고 나 역시 개인적인 삶의 질곡 때문에 그에게 접근할 방법을 찾지 못하게 되면서 그의 공연이나 소식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챙기지 못했다. 그러다 김규항의 정태춘 인터뷰를 접하고 나서 마음이 심하게 아팠는데 청중, 대중으로서의 내가 그의 '힘들어함'에 부분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어제도 아는 교수님과 이야기하던 중에 정태춘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나왔는데 옆에서 우리 대화를 듣던 주점의 사장 아주머니가 몇 마디 거들게 되었다. 그런 상황을 지켜보자니 그를 기억하는 이들은 여전한데 그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로 인해 그가 다시 무대로 돌아오지 않는 걸, 다시 노래하지 않는 걸 슬퍼하는 사람이 갈수록 적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암튼, 정태춘과 박은옥이 다시 노래하지 않는다는 건 무조건 '우리'의 책임인 것 같다.


다시 그가 돌아와 노래를 불러주길 간절히 바라지만 여러 기사와 인터뷰 내용을 보니 쉽진 않을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래는 김규항의 정태춘 인터뷰 내용 중 일부다.


- 예술가는 상상력을 기반으로 행동하는 사람이라 정치인이나 사회운동가들보다 훨씬 더 급진적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진보적인 예술가들은 90년대 이후 사회운동가, 아니 정치인의 상상력을 뒤쫓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현실 정치에서 당선 가능성이라든가 현실적 실현 가능성도 중요합니다. 문제는 우리의 상상력의 최대치가 제도정당의 그것에 머문다는 건 우리가 현재 세상을 넘어서길 포기한다는 뜻이 되는 겁니다. 나는 그런 상상력의 빈곤이 답답했어요."


- 아내이자 오랜 동지인 박은옥 선생 보시기엔 어땠는지요?

(박)"너무 힘들어하니까 보는 나도 많이 힘들었어요. 이 사람이 반복해서 말했어요. 군부독재가 물러났지만 이젠 더 공고하고 사악한 자본의 독재가 들어서고 있다, 그런데 군부독재와 싸우던 사람들이 그런 변화에 대해선 외면하고 그 질서 속에 들어가 명랑한 얼굴로 개혁을 말하고 민주화를 말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고…."


(박)"남에게 공격적이진 않았지만 서운함이나 고립감 때문에 많이 힘들었죠. 이런 일이 있었어요. (경기 평택의 미군기지 확장 반대투쟁인) 대추리 싸움 하다가 논구덩이에서 플래카드에 목이 졸려 경찰에 연행돼 가지고 응급실로 실려 갔는데 거기 병원에 쫓아온 후배가 그랬대요. 형님은 아직도 이러고 사시냐고, 세상 좋아졌는데 이제 그만하시라고. 그랬는데 이 사람이 그러더래요.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왔다고? 그 세상이 왔는데 나만 모르고 있는 거라고?' 지금도 그 이야기만 생각하면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박은옥씨의 눈에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via http://gyuhang.net/1692

via http://media.daum.net/culture/view.html?cateid=1003&newsid=20091023145012007&p=hani




예나 지금이나 - 2009년 안에 1987년 있다. by 행복한 자유인


2008년 9월 6일 토요일

그(GOD)는 당신과 돈 중에 어느 쪽을 더 사랑하나.

장경도 목사 설교 동영상 보기...


종교관련 포스팅이 조금 많아지는 듯 한 건 별로 유쾌한 일은 아니다. 전에 한 목사의 막말에 대해 글을 썼는데 그 목사가 했다던 실제 설교 동영상을 보니 문제가 꽤 심각해 보인다. 상대방에 대한 조롱, 비하 등이 쉴새없이 쏟아져 나온다. 이 목사는 과거 MBC TV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했던 사람이고 유명세를 타는 사람이다. 조용기 같은 사람도 있다만, 또 다른 류의 혹세무민이다. 그의 설교에 감명을 받고 수 없이 아멘을 외친다면 이제 그만 정신을 차려야 할 게다.

우연히 웹서핑을 하다가 보게 된 동영상, 시대정신(다큐멘터리)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오긴 하지만 아래 동영상에 나오는 나이 지긋한 분의 이야기가 재밌으면서도 슬프다. 대한민국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보여지는 것 같기도 한데 사실 그건 외국에서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아니, 한국이 더 많이 심할 게다. 신도 돈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그야말로 폭소!!! 신은 그를 믿는 사람을 사랑할까 돈을 더 사랑할까. 돈을 사랑하는 건 신이 아니라 신을 사칭하는 사이비 전도자들 아닌가!!!

종교풍자 코미디 보기...


시대정신은 종교문제 이외에도 9.11사건 등 꽤 많은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게(초반 도입부분만 제외하고) 볼 수 있다. 인터넷에서 꽤 유명해진 동영상이기 때문에 시간 있을 때, 심심할 때 한 번 정도 보면 좋겠다.

다큐멘터리 시대정신 보기...


세상엔 수 많은 종교가 있고 각 종교의 교조들은 자신들과 다른 '사이비'를 조심하라고 일렀다. 사이비를 어떻게 가려내는가가 관건일텐데 쉽지 않은 부분이다. 하지만 자신이 믿는 종교를 사이비인지 구분하는 것보다 자신에게 그 종교를 믿으라고 설파하는 자가 사이비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건 비교적 쉽다. 그 사람의 삶의 자세와 태도를 보고 그가 말할 때 그 자신이 드러나는지 그가 섬기는 신(신앙의 대상)이 드러나는지를 보면 된다. 어떤 단어를 구사할 때 그 단어의 해석에 과도하리만큼 집착하는지를 봐야 한다. 단어의 해석에 따라 신이 달라지고 종교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라면 그걸 말하는 자는 사이비일 확률이 많다.

세상엔 장경동과 같은 목회자도 있지만 김규항같은 신앙인도 있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과 함께 노자 도덕경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낸 이현주 목사나 밥퍼 시인 최일도 목사같은 사람도 있고 그 외 알려지지 않은 수 많은 참신앙 목회자들이 많은 걸 알고 있지만 신앙인 김규항씨가 꾸준히 말하고 있는 예수와 신앙에 대한 글들은 또 다른-새로운 시각을 줄 뿐만 아니라 신앙적으로도 옳은 견해를 담고 있다. 그가 쓴 많은 글들 중 몇 개만 링크를 걸어 소개한다. 읽을 수록 어떻게 전도하고 신앙해야 하는지에 대한 묵직한 답을 준다.

'하나'님
바보 같아


[record my mind] - 한 목사의 막말 그리고 종교의 참과 거짓.
[record my mind] - 종교의 기본을 생각하다.

2005년 10월 2일 일요일

난 가슴이 아프다고 밖엔 다른 생각이 없다.

나는 강준만씨를 좋아한다. 때론 존경한다. 사랑스럽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김규항씨를 좋아하고 존경하며 사랑스럽게 느낀다. 내게 노선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난 쉽게 대답할 수 없다. 내 삶은 "열심히 살아서 참된 삶의 가치를 완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B급 좌파니, 중도 보수니 하는 선에 내 삶을 얹히기가 참 힘들기 때문이다.

김규항씨의 글 중에 (앞 뒤 문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잘 알아채지 못했다면 죄송스럽지만) "자, 이제 한번 살펴보자. 그래서 세상은 변했는가? 언론이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고 했고 정치가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고 했는데 세상은 정말 변했는가?"라는 말이 있었다.

난 역으로 되묻고 싶다. "정말 언론이 변했는가?" 물론 나 또한 언론 하나가 변한다고 해서 세상이 쉽게 변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개인적인 기억으론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발표가 된 다음 날 세상의 공기가 더 상쾌할 줄 알았고 하늘 빛이 달라질 거라 생각했던 (어떤 면으론) 무지몽매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난 지금의 언론이 달라졌다 생각하지 않는다. 강준만씨의 글을 읽으며 공감을 했던 내용, 지지를 했던 내용이 지금 현재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고 난 생각한다.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실천으로 보이려 해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 염증을 느껴, 혹은 본인의 내공에 힘이 달려 강준만씨는 절필을 했다고 믿는 우매한 백성이 느끼는 건... 강준만씨가 목에 핏대를 세워 말하던 때와 지금의 상황은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아니, 나는 무엇을 했는가.

강준만씨와 김규항씨를 이간질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난 앞서 말한대로 두 분을 좋아한다. 그리고 두 분의 설왕설래는 애정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느낀다. 다만, 난 작금의 상황이 과거와 달라진 게 없다고 느끼는 것 뿐이다. 매체가 달라졌고 방식이 달라졌고 행태가 기형으로 변한 것 뿐이다.

정태춘씨가 92년도부터(라고 생각한다) 불러왔던 사회 비판적 노래들의 가사는, 특히 "아! 대한민국" 노래의 가사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 그렇게 싸우고 투쟁하는데 혹은 조금씩 삶의 형태를 바꿔가는 데 변하는 건 없을까. 변하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 내가 어리석다. 분명 변해가고 달라져 가고 있다. 다만, 기득권들의 양태는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규항씨가 고백한 대로 "나는 매우 성실한 미디어 학자인 그가 이 쇼가 갖는 진정한 의미를 모를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다."는 것에 희망을 건다. 비슷한 곳, 같은 곳을 바라보는 이들끼리의 아픈 비판은 추분히 공감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조선일보'의 행태와 노선에는 그다지 이해를 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냥, 어리숙한 생각으로 김규항씨의 꾸준한 일상의 투쟁과 강준만씨의 격렬한 논쟁이 늘 공존하며 "괜찮은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민초들에게 크고 작은 경종이 되길 바라는 마음 뿐이다.

억지 연대가 아닌, 비판적 연대가 필요한 때에 기득권에 밥그릇을 걸고 싸우는 이가 부족하다는 것은 평범하게 삶을 '잘' 살아보려고 하는 내겐 더 견디기 힘든 상황일 뿐인 것이다.

그게 '쇼'가 되었든 '삶'이 되었든 난 두 양반의 노선엔 '대동소이'함이 보이는 것이지 '소동대이'를 느끼진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전히 두 양반과 같은 삶의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 그립고 삶의 실천을 하는 이들이 그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