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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2일 일요일

난 가슴이 아프다고 밖엔 다른 생각이 없다.

나는 강준만씨를 좋아한다. 때론 존경한다. 사랑스럽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김규항씨를 좋아하고 존경하며 사랑스럽게 느낀다. 내게 노선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난 쉽게 대답할 수 없다. 내 삶은 "열심히 살아서 참된 삶의 가치를 완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B급 좌파니, 중도 보수니 하는 선에 내 삶을 얹히기가 참 힘들기 때문이다.

김규항씨의 글 중에 (앞 뒤 문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잘 알아채지 못했다면 죄송스럽지만) "자, 이제 한번 살펴보자. 그래서 세상은 변했는가? 언론이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고 했고 정치가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고 했는데 세상은 정말 변했는가?"라는 말이 있었다.

난 역으로 되묻고 싶다. "정말 언론이 변했는가?" 물론 나 또한 언론 하나가 변한다고 해서 세상이 쉽게 변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개인적인 기억으론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발표가 된 다음 날 세상의 공기가 더 상쾌할 줄 알았고 하늘 빛이 달라질 거라 생각했던 (어떤 면으론) 무지몽매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난 지금의 언론이 달라졌다 생각하지 않는다. 강준만씨의 글을 읽으며 공감을 했던 내용, 지지를 했던 내용이 지금 현재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고 난 생각한다.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실천으로 보이려 해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 염증을 느껴, 혹은 본인의 내공에 힘이 달려 강준만씨는 절필을 했다고 믿는 우매한 백성이 느끼는 건... 강준만씨가 목에 핏대를 세워 말하던 때와 지금의 상황은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아니, 나는 무엇을 했는가.

강준만씨와 김규항씨를 이간질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난 앞서 말한대로 두 분을 좋아한다. 그리고 두 분의 설왕설래는 애정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느낀다. 다만, 난 작금의 상황이 과거와 달라진 게 없다고 느끼는 것 뿐이다. 매체가 달라졌고 방식이 달라졌고 행태가 기형으로 변한 것 뿐이다.

정태춘씨가 92년도부터(라고 생각한다) 불러왔던 사회 비판적 노래들의 가사는, 특히 "아! 대한민국" 노래의 가사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 그렇게 싸우고 투쟁하는데 혹은 조금씩 삶의 형태를 바꿔가는 데 변하는 건 없을까. 변하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 내가 어리석다. 분명 변해가고 달라져 가고 있다. 다만, 기득권들의 양태는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규항씨가 고백한 대로 "나는 매우 성실한 미디어 학자인 그가 이 쇼가 갖는 진정한 의미를 모를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다."는 것에 희망을 건다. 비슷한 곳, 같은 곳을 바라보는 이들끼리의 아픈 비판은 추분히 공감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조선일보'의 행태와 노선에는 그다지 이해를 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냥, 어리숙한 생각으로 김규항씨의 꾸준한 일상의 투쟁과 강준만씨의 격렬한 논쟁이 늘 공존하며 "괜찮은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민초들에게 크고 작은 경종이 되길 바라는 마음 뿐이다.

억지 연대가 아닌, 비판적 연대가 필요한 때에 기득권에 밥그릇을 걸고 싸우는 이가 부족하다는 것은 평범하게 삶을 '잘' 살아보려고 하는 내겐 더 견디기 힘든 상황일 뿐인 것이다.

그게 '쇼'가 되었든 '삶'이 되었든 난 두 양반의 노선엔 '대동소이'함이 보이는 것이지 '소동대이'를 느끼진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전히 두 양반과 같은 삶의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 그립고 삶의 실천을 하는 이들이 그리울 뿐이다.

2005년 1월 25일 화요일

인물과 사상의 종간...그리고 강준만.

난 첫 번째 대학시절 '녹색평론'이란 월간지를 정기구독해서 읽고 있었고 꽤 많은 것들을 배웠다. 지금은 하나도(는 아니겠지?) 실천하지 못하는 병든 이가 되었음을 스스로 비판해보지만 당시로서는 녹색평론을 읽으며 생활 속에서 실천하려고 노력도 했었고 실천의 움직임을 만들어 보기도 했었다. 당시에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에 대해서도 그리고 '스코트 니어링, 헬렌 니어링'이란 이들도 책 속에서 만나기 도 했었다. 물론 그 모든 걸 거의 혼자서 이끌어간 김종철이란 교수도 알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두 번째 대학시절 아는 교수님과 긴 대화를 하다가 '인물과 사상'이란 책을 알게 되었다. 사실, 난 신문을 봐도 정치면은 잘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책에 그리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사회문제나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정치면에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고 억지로 노력했던 나의 우매함은 무엇이었던가. 교수님이 그 책을 권하며 던진 한 마디는 '재미있다'였다. 사실 이 책을 접하기 전에 많은 사회과학 서적-공산당, 사회주의, 한국 근대사-들을 접한 적 있었으나 흥미를 좀체로 생겨나지 않았고 늘 머리 속이 복잡하기만 했던 기억이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다'라는 단순한 말 한 마디에 책을 빌려 읽기 시작했고 난 바로 정기구독을 해서 읽기 시작했다. 나중에 정기구독을 해서 읽을 마땅한 주소지가 없어지면서 간간히 사서 보기는 했지만 내겐 한 달 동안의 화두와 삶의 지침을 가르켜준 소중한 책이었다.(참 늦게도 발을 들여놓았다.)

이 책이 33권을 마지막으로 종간이 된다. 오늘 서점에 자료를 찾으러 갔다가 인물과 사상 33권을 보고 주문해서 읽어야지 생각하고 돌아와 블로그를 도는데 김규항씨 블로그에 인물과 사상과 강준만씨에 대한 언급이 있다. 그리고 많은 블로거들의 링크를 따라 읽어보니 인물과 사상의 종간 사실이 점점 내게 큰 아쉬움으로 밀려온다. 게다가 김규항씨의 글 말미에 "역사란 늘 ‘죽 쒀서 개주는’ 방식으로 전진하는 것이다."란 말이 허탈하면서도 마음으로 느껴진다.

강준만씨의 왕성한 집필과 시원한 필력, 활력있는 사회비판, 그리고 솔직담백한 생활, 자기고백들을 더이상 활자매체로 만나지 못한다는 것은 왠지 이 시대의 멋진 지식인 한 명을 잃는 느낌이다. 익산에 있을 때는 가까운 전주에 그 분이 있는 걸 모르고 살았고 서울에 와서는 전북대에서 도강이라도 하면서 그 분 수업을 듣고 싶은 욕심이 생겼었는데... 그런 상상조차도 이젠 사치가 되고 말았다.

인물과 사상의 종간이 금전적인 문제도 있는 것 같고 노무현 대선 이후에 강준만씨의 이런저런 심경변화 및 글쓰기와 사회현상의 판단에 대한 자기 반성과 더불어 절필 선언한 이후에 일어난 일이라 마음이 더더욱 씁쓸하기만 하다.

그 분에게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음을 오늘 다른 이들의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되었다. 내가 지금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 애증, 고민 모든 부분에 있어 강준만씨에게 빚이 있음을 시인한다. 그 빚을 강준만씨께 편지를 써서 표현할 용기는 없지만 다른 사회적 발걸음으로 조금씩 보답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강준만 선생님.
보림하시고 다시 나오실 땐
저도 더 큰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만나뵙도록 하겠습니다.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건강하시고 늘 행복하시길 염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