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극이 별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으니...
오늘은 상해를 갈 비행기 표를 예매하러 가면서 바보스럽게도 여권을 챙겨가지 못했다. 분명 집을 나서기 전에 챙겨간다고 몇 번이나 생각했으면서도 말이다. 가서 복무원이 여권을 달라는 말에 혼자 주절주절 이상한 변명이나 해대고(상대방은 모를 내용을 중얼거리며) 내일 다시 오겠다고 하고 나왔다.
상해를 가는 비행기 표는 한국에 가는 표 값보다 비싸다. 한 4-5만원 정도 비싼 것 같다. 하긴 장춘에서 상해를 가는 시간만도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시간보다 약 1시간 이상이 더 소요되니 당연한 일인 듯 싶다. 할인기간도 끝나서 제 값 다주고 간다는 것도 아쉬움을 배가시킨다. 혹자는 중국 국내선은 타지 말라고 불안해서 못타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그렇지만 기차로는 30시간 이상이 걸린다니 감당못할 일이기도 하고 게다가 중국 국내선을 한 번도 타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 상해는 필히 비행기를 타고 가야지.
돌아오는 길에 먼지 섞인 바람, 그리고 곳곳에서 도로 공사며 건축공사를 하는 먼지가 동네를 온통 흙바람으로 가득차게 한다. 짜증이 날법도 하지만 "중국이니까..."라는 위안은 사실 어떤 어려움도 견디게 해주는 묘약인 것 같다.
조금씩 판이 튀는 DVD를 바꾸고 다른 DVD 몇 장을 사고 집에 오면서 쌀을 샀다. 30원. 어째 가면 갈수록 쌀값도 오르는 거 같다. 아니면 여전히 내가 한국인 임을 알아채고 비싼 쌀을 파는 주인의 계략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의 쌀보다는 무척이나 싼(20kg에 30원(4,500원)) 쌀은 중국 농민들의 찢어지도록 가난한 삶, 노동력에 비하면 먹기에도 죄송스럽긴 하다. 옆에 있던 내가 자주 가던 작은 상점도 내가 자리를 비운 20여일 만에 주인이 바뀌었다. 상점을 새단장 하고 물건들을 부지런히 진열하는 이들을 보니 낯선 사람들이다.
한국에서 돌아온 후에 보는 장춘은 봄이어서 그런지 더더욱 활기를 띄긴 하지만 조금은 전보다 달라진게 보여서 슬쩍 낯설음에 다시 처음 장춘에 온 듯한 느낌도 있긴 하다.
저녁에 한국 후배들이 장춘에 돌아온 기념으로 가볍게 맥주를 먹자고 한다. 함께 하는 자리. 왠지 또 낯설다. 20여일 동안에 이 녀석들은 많은 일들이 있었고 지들끼리 잘 놀고 잘 살아서인지 자꾸 이방인 같은 생각이 든다. 하긴 전에도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내가 그들과 어울리는 걸 좀 자중했었고(그들의 공부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게다가 그들은 전북대학교 중문과라는 튼튼한 울타리 안에 있던 사람들 아닌가. 얘기를 하기보다 듣는 시간이 더 많아질 즈음 같이 자리했던 두 여자 후배들은 졸리기 시작한다. 자리를 파하고 일어난 시간이 11시가 넘은 시간. 복무원들도 사장도 피곤해하는 모습이다. 장춘의 밤거리가 좀 싸늘하다. 역시 북쪽은 북쪽이군.
일상은 일상대로 새로운 일들은 새로운 일들대로 벌어지고 있는, 장춘에서 돌아온지 4일 째 되는 오늘. 몸은 피곤함을 떨쳐내려 발악을 하면서도 마음은 피곤과 상관없이 부유하고 있다.
문득, 그대가 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