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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13일 월요일

컴퓨터.

후배가 집에 컴퓨터가 맛이 갔다고 간을 좀 봐달라 한다.
집에 가서 이리저리 훑어보는 데 도저히 작동안하는 이유를 찾아내질 못하겠다.
window idle process가 계속 작동을 하는데 요 idle이란 단어를 찾아보았더니
'할 일 없는' '한가한'이란 뜻이란다.
 
한가한 프로세스가 계속 움직이고 있다니...도저히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다.
결국 윈도우를 다시 깔아주기로 했다.
윈도우를 깔고 프로그램을 깔고 그리고 업데이트(중국 인터넷은 느려서...-_-;;;;)를 시키고
컴퓨터를 할 수 있는 만큼 깔끔하게 해줬다.
그리고 났더니 시간이 4-5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사실 컴퓨터를 잘 다루는 건 아니지만 컴퓨터 밀고 깔고 하는 건 할 수 있는지라
예전에 회사 다닐 때도 컴퓨터 문제 잡는 건 내 몫이었다.
그러면서 더 배워가기도 했지만 컴퓨터 OS를 새로 설치하는 건 정말 귀찮은 일이다.
OS 새로 설치하고 프로그램 설치하고 하다보면 반나절, 하루가 그냥 가버리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이 편하게 살고 싶어서 만들어낸 물건에 꼬박 에너지, 시간을 다시 낭비하게 되는 꼴이다.
뭐...이런 일들이 컴퓨터 말고도 한 두가지겠냐만 컴퓨터 새로 밀고 까는 일은 싫다.
이런 문제들을 다 잡아낼 수 있는 컴퓨터가 더 개발되고 그러긴 하겠지만
그건 또 힘 있고 돈 있는 자들의 놀음에 우리의 삶이 조금 더 저당잡혀야 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세계화가 되면 될수록 과학문명화가 되면 될 수록 없는 자와 있는 자의 차이는 커지고
그 차이로 인해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은 더더욱 그 위치를 확고히 하게 될 것이다.
 
컴퓨터 하나 손 보면서 또 별 생각을 다 하게 되었네.-_-;
 
어쨌든, 이 신통한 기계들을, 물건들을 다루면서
보다 인간 친화적인 삶을 만들어가는 데 노력하고 싶다는 생각을 살짝 해본다.

2004년 9월 12일 일요일

주말.

하루종일 그리 검지 않은 천 한 폭을 걸쳐놓은 듯 어둡기만 하다.
비는 내릴 듯 내리지 않고 바람도 없고 습하지도 않은 날씨.
마치 그대로 멈춘 공간 속의 공간에 앉아있는 듯 싶다.
 
잠시 밖에 나갈 볼까 우산을 챙기고 작은 노트를 가방에 넣었다.
 
길을 걸으며 전화를 걸어 계속 낫지 않는 감기에 고생하는 친구의 안부를 묻고
사람들 틈을 돌고 돌며 동네 근처를 그냥 걸었다.
 
돌아오는 길에 몇 장의 디비디와 며칠 간 먹을 부식을 사는데
뭔가 이상하게 허전한 느낌이다. 혼자 산 것도 이제 버릇이 되었는데도 이런 허전함은 뭘까.
 
아마 스스로 해야할 일이 있으면서도 안절부절 해내지 못하고 있음에 대한 반영인가?
아니면, 너무나 익숙해진 계림로를 걸으며 아무런 흥취를 느끼지 못해서일까.
 
결국 집에 도착하기 100여미터 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반갑다.
비가 올 듯한 날씨에 비가 오지 않으면 왠지 속은 것 같단 말이지.
 
TV에서는 주말이라고 가족들끼리 등장하는 쇼프로그램과 영화들이 한창이다.
내 마음과 생활과는 별개로 세상은 그렇게 익숙하게 주말을 보내고 있다.

2004년 9월 11일 토요일

잠귀신.

멍하게 하루...
잠만 자고 또 자고...
 
TV 여기저기 돌려보다 자다 깨다...
 
....밖에 날씨는 너무 좋았는데...
 
 
 
 
잠만 잤네...

2004년 9월 10일 금요일

마무리...

드뎌 번역하던 걸 다 마치고 메일로 보냈다.
진땀난다기 보다 정말 번역은 어렵다는 걸 실감하는 경험이었다.
그나마 중국 친구들이 도와준 부분이 있어서 쉽게 넘어갔다.
 
번역을 하며 느낀 사실.
우리가 쓰는 말의 느낌을 그대로 중국어로 직역하면 이상한 느낌의 문장이 된다는 것.
"중국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고 쓰지 않아."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또 글을 맛깔스럽게 잘 쓰려면 역시 한국어 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것.
하나 더 새삼스럽게 느낀 것이지만 대화체와 서면어가 따로 있어서 표현하기 쉽지 않다는 것.
 
다만 이런 부분들이 경험이 쌓이다 보면 완벽하게는 아니어도 좀 쉽게 풀어갈 수 있겠지.
 
번역이 잘 되었든 못되었든 끙끙대며 애썼던 내 자신에게 박수...:)
 
낮에 잠시 길림대학 애니메이션 대학에 다녀왔는데
이번에 열리게 될 길림 국제 애니메이션 교육 포럼에 대한 준비로 부산한 느낌이다.
창광시 감독님도 후다닥 뵙고 오느라 좀 아쉽긴 했지만
돌아오는 길에 온 몸으로 받아내는 날씨는 그야말로 너무 행복했다.
찌르찌르 온 몸에 쏟아져 들어오는 가을 햇살이 그렇게 좋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젠 좀 밀렸던 일들이 끝났으니 다른 일에 착수해야겠군.
 
아~ 주말이구나...주말 기분내며 좀 쉴까?

2004년 9월 9일 목요일

친구 떠나다.

1.
알게 된지 이제 2년 즈음 되었나?
조각을 하는 친구 녀석이 유리공예를 배우러 체코로 떠났다.
그 전부터 노래를 부르고 그렇게 가고 싶어하더니 드디어 오늘 떠났다.
 
가서 공부 열심히 하고 건강 조심하고...
외로움을 덜...마음은 늘 즐겁게 살도록 하렴.
 
너의 뜻하는 바가 잘 이루어지길 진심으로 바래.
 
그리고 동생 은수도 체코로 다시 공부하러 떠났다.
친구랑 같이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묘한 인연들의 만남이다.
은수는 1년정도 체코에 있다가 다시 한국에 들어왔는데
잠시 에너지를 충전하고 다시 가는 모양이다.
 
은수야! 에너지가 늘 넘치기를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꼭 이루기를 진심으로 바래.
 
둘 다 건강하게 잘 지냈으면 싶다.
 
2.
늦게 무언가를 시작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며
나에게 부러움과 격려의 마음을 보내준 사람들에게 별 감정없이 "뭘요..."라고 넘기곤 했는데
역시 늦게 새로 시작하는 것들은 더 많은 긴장과 두려움...그리고 설레임을 주는 듯 싶다.
아니, 긴장, 두려움은 어릴 때보다 많아지고 설레임은 없어지는 것 같다.
설레임보다는 앞으로에 대한 걱정, 정말 잘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들...
하지만 사람사는 곳은 어디나 같은 법.
살다 보면 살아지고 늦었다, 이르다고 말하는 기준도 다 다르니...개의치 않는다.
 
도대체 뭐가 늦고 뭐가 빠른 걸까...
하긴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남들보다 먼저 이루어내야 하고 성공(?)해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나이 먹었다고 기회조차도 돌아오지 않으니..
그렇게들 허겁지겁, 동동거리며 사는 건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음이다.
 
다만 이제 시작하는 벗에게도...
또 다시 시작하려는 모든 이들에게도...
모두 그런 걱정이랑 하지 말고 열심히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해주고 싶다.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고 인생의 목적도 다르겠지만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던 하지 않던 간에...
즐겁게 행복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나....
 
모두~~ 아자아자아자!!!다.
 
3.
번역한답시고 하는데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네....-_-

2004년 9월 8일 수요일

뻔뻔스러움.

마치 나만 고귀한 듯 마치 나만 노력하며 사는 세상인 듯...
무심코 남의 얘기를 할 때 험담을 하고 있다.
물론 듣는 이에겐 내 뜻은 그게 아니라며 온갖 미사여구를 붙이긴 하지만
상대방이 그런 내 말을 믿던 믿지 않던 간에
내 마음은 무의식 중에 그래놓고 말이 밖으로 튀어나와 객관적인 느낌이 형성되면
그제서야 뜨끔하며 후회를 하곤 한다.
 
당사자를 앞에 마주하고는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서
지금 내 옆에 있지도 않은 그리고 앞에 있는 사람과 별 관계도 없는 사람 얘기를
어쩌면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뻔뻔하게 할 수 있을까.
참 오랜동안 몸에 밴 좋지 않은 습관임엔 분명하다.
 
말을 아낀다는 것은 내가 할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꾸미는 말이나 남을 험담하는 얘기들을 하지 않는다는 것일터.
예전에 한창 수련을 하고 있을 때는 이것처럼 쉽게 지켜지는 약속이 없더니...
나와서 에너지도 점차 사라지고 다시 내 업과 습에 이끌려 살다보니
다시 똑같은 실수를 번복하고 있다.
 
말하지 말 걸...이란 생각보단 무엇이 정당한 것인지에 대해 미리 고민하는 연습을 해야겠다.
분명 사람끼리는 다름을 알면서도 왠지 그 다름이 나와 너무나 다를 때에는
나의 알량한 척도로 옳고 그름으로 재단하려고 하는 것.
 
수없는 반성이 부끄럽지 않도록....
'반성'아...미안해...

2004년 9월 7일 화요일

번역하다.

후배 일을 도와 애니메이션 기획서를 번역 중...
정말 어휘의 빈곤을 느낀다. 허기가 진다.
아무리 열심히 해놔도 중국인이 보면 금새 후다닥 고칠 번역이겠지만
나에겐 나름대로 공부다...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그 생각은 오래지 않아 머리에 쥐를 내리게 하지만 그래도 한다.
 
새삼스레 느끼는 건 한국어 중에 외래어가 무척 많다는 것이다.
70-80%가 한자라는 건 말할 것도 없겠지만 영어 및 외래어도 무척 많다.
하긴 표음문자는 국력의 세기에 따라 과학 및 문화의 선진에 따라 흘러가게 되어있으니
당연한 일이다...(라고 받아들이기엔 좀 억울?하다.)
일본어에도 외래어(일본식 영어발음 등)가 많다고 하는데 역시 그런가보다.
 
어쩌면 중국과 비슷하게 표음문자이면서도 스스로들에게 맞는 언어로 바꾸는 건
북.한.이 아닌가 싶다. 얼음보숭이...또 뭐가 있더라...-0-
 
기획서에 무수히 많은 영어들을 중국어로 바꾸어내는 게 참 힘들다.
사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적.확.한 뜻도 모르면서 대체의 뜻만 알고 쓰는 영어도 꽤 되는구나.
영어를 중국어로 바꾸는 것만 어려운 건 아니다.
멋진 표현력을 지니고 있는 한국어의 화려한 미사여구도 난감하긴 매 한가지다.
 
그래도 계속 한다.-_-
 
내일은 중국인 동생 불러서 감수 좀 해달라고 해야겠다.
 
내 왼쪽으론 티비를 켜놓고 있으니 중국어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가끔 들리면 드라마나 뉴스를 멍하니 듣고 있긴 하지만
내 손끝 자판에서는 아직 내 귀만큼 술술술 중국어가 풀리지 않는다.
손끝이 아니지...내 뇌구조의 문제겠군.

2004년 9월 6일 월요일

...

규이, 치우메이, 옌궈, 옌뽀....오랫동안? 보지 못해서
오늘 식사대접을 해주기로 했지. 메뉴는 일식.
명은이가 일하는 일식집에 가서 매상 좀 올려주기로 했다. 그래봐야 싸게 먹을테지만...
 
몇 개월 전에 딱 한 번 먹으러 왔었는데 그 때보다는 훨씬 맛이 좋아진 것 같다.
개업한지 1년도 안된다고 하더니 역시 주방장도 손님들의 입맛에 맞춰가는데는 시간이 필요한가보다.
 
그런데 중국애들은 일식이 그다지 맘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가격이 중식, 한식보다도 비쌀 뿐더러 먹어도 그다지 배가 부르지 않는다고 하니...
게다가 동북지역은 반일 감정이 다른 지역보다 드센 경향이 있어서 그렇기도 한 것 같다.
 
....
 
돌아오는 길에 살짝 비가 내리네.
초가을 비인가?
서늘한 게 기분은 좋다.
 
살짝 얼굴에 찬 바람이 닿는 느낌이 좋다.

2004년 9월 5일 일요일

잠.

잠을 자다 깨다 문득 문득 꿈인지 실제인지 들려오는 빗소리.
 
하늘이 어두워서 계속 하루가 시작되지 않았나 보다 싶지만
티비를 켜면 나오는 익숙한 프로그램들을 보며 일요일임을 실감한다.
 
몇 가지 일들이 있어서 '해야지...해야지...'하다가 다시 잠이 들고...
 
잠은 내가 원해서 자는 잠이라기 보다 잠이 나를 납치해서 가둬놓는 느낌이다.
 
간혹 울리는 전화벨 소리도 꿈처럼 느껴지니
오늘 내가 보내 온 하루는 내가 꾸는 꿈의 하루였다고 해도 무방하다.
 
 
무언가가 가슴에 꽉 들어차 나가지 않고 있는 느낌.
 
싫다...

2004년 9월 3일 금요일

벌써 1년.

브라운 아이즈의 '벌써 1년'이란 노래가 듣고 싶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과의 1년을 말하는 가사이겠지만 제목은 정확히 내게 어울린다.
 
중국에 온 게 그러니까... 작년 9월 3일.
나름대로 포부를 가지고 온 것처럼 사람들을 현혹시키기도 했으나
속 마음의 한구석엔 한국을 잠시 떠나고 싶은 욕구도 있었으니
어떤 게 먼저고 어떤 게 나중인지를 가려내긴 무모한 짓일 수도 있겠다.
 
1년이 지난 지금 한국을 떠나올 때의 날씨처럼 약간 서늘하고 따가운 햇살을
중국 장춘의 한 동네 아파트 내 방에서 만끽하고 누리며 일기를 쓰고 있다니
감회가 새롭다는 말은 또 이럴 때 사용해야 하나보다.
 
그 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지만
내 중국어 실력은 내 욕심만큼 늘지 않았다는 사실만이 가장 큰 결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워낙에 책을 보며 공부하는 습관이 들지 않았음인지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이 되면서도
삼십 년 인생에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해왔던 자기 암시...
 
"또 시작하는 거야". "노력하자"
 
언제 또 시작하는 삶이 멈출지에 대한 두려움같은 건 없다.
다만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나아지길 바래는 마음.
부모님께 투정부리는 아이처럼 그런 투정들은 내 안에, 밖에 가득하다.
 
벌써 1년.
또 다시 1년, 또 다시 1년을 중국이건 한국이건 잘 살아야지.
 
바라보는 건 내 임종의 순간이지만 불안해서라도 지금 살아야지.
 
그 동안 심적으로 물적으로 도움을 준 모든 인연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당신 혼자도 힘드셨겠지만 끊임없는 믿음을 주신 부모님께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린다.
 
새로운 시작을 기약하며!

2004년 9월 2일 목요일

설왕설래.

낮에 나가서 핸드폰 요금을 내는데 복무원 아가씨가 상당히 짜증나는 얼굴로 맞이한다.
사실 이런 경우야 중국에서 너무나 자주 접하는 일이라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려 했는데
오늘따라 왠지 약이 오르고 화가 슬쩍 치민다.
영수증을 건네줄 때 이 사람들은 모두 서서 두 손으로 주면서 '다음에 또 오세요'라고 하는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영수증을 확 채가버렸다. 아주 소심한 복수....-_-;
 
공무원급, 혹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일정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서비스가 좋지 않다.
워낙에 많은 사람들을 접하다 보니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기분이 좋지 않은 건 사실.
은행, 기차역, 핸드폰 영업소, 우체국, 전화국 등 대체로 그런다.
상해에서 우연히 아는 분과 함께 외국인 비자 발급 센터를 갔는데
거기에서도 너무 불친절하게(막말로 사가지 없게..-_-;) 대해서 기분이 썩 좋지 않았었다.
 
인민을 위한 서비스라면 당연히 인민이 위주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건 싫다.
 
디비디 몇 장을 사고 김치 등 밑반찬 몇 가지 사와서 늦은 점심을 먹고 디비디를 보다가
슬쩍 잠이 들었다. 상해에서의 피로가 좀 있긴 한가보다.
 
일식집에서 지배인으로 일하는 후배의 전화를 받고 늦게 나가 간단히 식사와 술 한 잔.
큰 주방장을 나중에 불러 같이 청주 한 잔. 27살인데 메인 주방장이라니 노력한 게 분명하다.
장창(예전 명은이 중국친구)과 주방장, 그리고 지배인 명은과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정치, 경제, 문화 등등의 얘기들로 설왕설래.
역시 서민들이 건드릴 문제는 아닌 듯 하다며 정치 얘기 등은 슬쩍 얼버무려지고...
 
아~ 중국인들은 (물론 유물론 때문이긴 하겠지만) 모두들 진화론을 믿고 의심하는 자가 없단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느님 창조설에 대해선 어이없어 하는 반응이다.
중국, 대만, 인도가 외래 종교가 정착하기 힘든 나라라고 하던데 역시 그런가 보다 싶다.
 
돌아오는 밤 길...날씨 탓인가? 싸~하다.

2004년 9월 1일 수요일

벌써 구월.

늘 한달한달이 흐를 때마다 그리고 그 달의 첫째 날을 맞이할 때마다
마음이 소스라치게 놀랜다.
 
오늘 오후 1시 50분 비행기로 장춘에 돌아왔다.
상해에서 부탁받은 것도 있고 좀 쉬었다가 바로 일을 해야지.
상해에 가서 애니메이션 페스티발 한 것도 정리해야 한다.
 
오니 상해랑은 너무 다르게 조금은 쌀쌀하고 공기도 뻑뻑하다.
상해는 떠나올 때까지 계속 비가 내렸었는데...
 
잠시 머무는 집이라 해도 내 물건들이 있는 집이 편하긴 한가보다.
 
그런데!!!!
집에 왔더니 전에 중국 친구가 준 막걸리(?)가 집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사이에
차가웠다가 갑자기 더워져서 그랬는지 다 샜다.
냄새가...-_-;;; 지독하기 그지 없다. 냉장고 문을 열기 전에는 괜찮았건만...
 
닦고 또 닦고 짐을 풀고 몇몇 친구, 동생에게 돌아왔노라고 전화를 했다.
 
갑자기 조용해진 느낌이다.
상해에서는 뭔가가 정신없이 돌아가는(밤에 혼자 있었어도...) 느낌이었는데...
 
적지않은 소득을 이제 풀어내야겠다.

2004년 8월 22일 일요일

우왕좌왕

.
아침에 상해 측과 상의를 해서 부스 설치에 필요한 장비들을 대여하기로 했다.
컴퓨터, 프로젝터, 스크린 등...
그런데 통화하면서 상해 측 담당자들의 실망(?)스런 모습을 느끼게 되었다.
사실 상해 측은 조직위원회가 10명도 채 안되는 인원으로 구성되어 행사를 하는데
상당히 어려움이 많다. 그건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런데 바쁜 게 핑계는 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한국과 M.O.U까지 체결한 상태고
소위 한국 측도 상해 측의 초청을 받아서 오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본인들이 직접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더라도
충분히 해결할 방법들을 소개해 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자꾸 서로에게 일을 떠넘기려는 모습도 보았고 그다지 협조적이지 않았다고 본다.
내가 중국어를 할 줄 알았다는 게
어쩌면 그들에게는 좀 더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요소였는지도 모르겠다.
중국어를 하니 내가 상해에서 렌탈 업체를 찾아내고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나보다.
 
중국어를 하는 게 장점이 되는 건 확실한데 이럴 경우엔 좀 단점이 되는군...
 
나도 상해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고 있다가
겨우 인터넷을 통해서 렌탈업체를 찾아내고 전화를 해서 장비를 구하게 되었다.
렌탈업체를 찾아내기 전까지 거의 몇 시간 동안을 컴퓨터 상가(서울 용산과 같은...)에 가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보고 헤매고 다녔다.
물론 더 빨리 인터넷을 통해 검색을 해봐야지 하는 생각을 못한 건 바보스러웠지만
상해 조직위원회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속 시원한 방법을 일러주지도 않았고
그저 일의 전부를 나에게 떠넘기는 듯한 인상이었다.
하긴 한국에 있었더라면 가장 먼저 인터넷을 통해 회사를 알아보고 접촉을 했을텐데...
 
나도 참 바보같군.
 
상해 사람들 말만 믿고 렌탈업체 찾기가 힘들거라고 생각하고
그 사람들에게만 의존(?)했던 내 잘못도 상당하다. 인정!
 
2.
렌탈업체를 찾아내고서야 전시장으로 가서 부스를 꾸미기 시작했다.
역시 가져온 물건들은 많아 보였지만 설치를 끝내고 나니 소박한 모습.
렌탈업체에서 노트북이 준비가 늦게 된다고 해서 저녁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행사장은 그야말로 전쟁이다.
시카프 행사도 그랬겠지만 이곳 상해는 조직위 담당자들도 적을 뿐더러
거의 단발성으로 선발된 요원들이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듯 하다.
어느 누구도 나서서 책임을 지는 담당자는 극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부스 설치하는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은데 말이지...
저렇게 행사를 끝내고 나면 모두들 지칠테고
행사 메뉴얼을 만들 생각은 하지도 못할테고 일단 끝났다는 결과에만 만족하게 되겠지...
좀 더 조직적으로 되지 못하는 건 시카프를 비롯해
특히 상해의 경우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기도 하겠지만
일을 하는 사람들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행사장은 시카프보다 큰 느낌(이었지만 전시팀장 말로는 시카프보다 작다고 함)이었지만
기획부스가 적은 관계로 행사장에 부스들이 밀집되어있고
시카프처럼 어떤 통로의 흐름이나 여유들은 찾기 힘들다.
그런데 코스프레 무대나 일반인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의 무대들은 괜찮아 보인다.
오늘은 부스를 설치하는 사람들, 관계자들 밤을 하얗게 새우고
다시 까맣게 태워도 부족할 듯 보인다.
게다가 내일 오전 8시 30분에 개막식을 한다는 데...
게다가 어제부터 소나기에 하루종일 끊이지 않는 가랑비 등에 힘입어
행사 개막을 어떻게 할지 걱정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닌가?-_-;
 
3.
저녁에 식사를 하러 갔는데 식당을 찾기가 힘들다.
장춘이라면 괜찮을 일들이 상해에 오니 참 번거롭다. 상해 사람이 아니니 당연한 것이겠지만.
사람들에게 식당이 어딨냐고 물으면 다들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내가 외국인으로 보이지 않아서 그렇게 물어보는 게 이상하게 보는 것인지
식당을 찾는 게 이상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겨우 찾아간 식당...
몇 가지 요리를 시키고 모두들 맛은 괜찮다고 하니 슬쩍 부담도 덜어진다.
그런데 밥 값이 꽤 나온다.
물수건 값도 받고 접시 갈아주는 값도 받으니 미리 말해주지 않은 게 약오르긴 하지만
음식 하나를 시킬 때 계산을 잘못했다.
그램 수로 계산을 하는 것을 그냥 액면가로 보고 시켰으니 많이 나올 수 밖에...
어쩐지 요리가 좀 비싸게 보이더라.
 
식사가 좀 늦어 저녁에 만날 렌탈업체 직원의 약속도 늦어졌지만
불평하지 않고 늦게 호텔로 찾아와줬다.
그들 앞에서는 노트북으로 DVD를 구동하는 게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그들이 돌아간 후에 동영상을 컴퓨터로 복사를 한 후 돌려보니 계속 에러가 생긴다.
한참을 헤매다가 다다른 결과는 램의 부족, VGA카드의 성능 부족 등이었다.
렌탈을 할 때 그 정도도 다 알아보고 했어야 했는데 한국과 비슷한 느낌으로만 있었으니...
 
여긴 중!국!인데 말이지...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은 맞나 보다.
한국에서 살던 습관이 1년만에 변할 리가 있나.
모든 게 한국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
그것으로 중국을 지레짐작하거나 판단하는 오류들이 발생하고 있다.
 
내일 다시 렌탈 장비를 교체해야 한다.
 
행사 개막식이 오전 8시 30분(정말 빠른 거 아닌가?
허나, 중국 사람들은 아침에 정말 일찍 일어나기도 한다.)이다.
우리들은 한국인. 내일 오전에 일찍 일어나 준비해야 할 일들이 서로들 걱정이다.

2004년 8월 21일 토요일

상해 도착...

상해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즈음...한국에서 오는 두 분을 기다려야 했다.
그 분들이 도착하는 시간은 2시 40분...거의 세 시간...
서점에 들렸다가 공항을 한 바퀴 돌아도 시간은 몇 분을 지나지 않는다.
자리를 잡고 가지고 간 중국어 테잎을 들으며 졸다 말다 자다 말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비행기가 도착할 시간이 되고 상해 조직위에서 자원봉사자 한 명을 보내준다고 한 사람과 연락을 취하니 공교롭게도 바로 내 옆에 있다.
그런데 가지고 온 종이엔 내 이름만 달랑 써있다.
이런...만약 내가 기다리지 않았으면 아무도 못 만날 뻔 했군.
대학생이라는 자원봉사자는 조직위에서 나 말고는 아무도 얘기를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리 바쁘다 바쁘다 해도 최소한 해줄 건 좀 해주지 하는 마음이 고개를 든다.
 
한참을 기다려서야 두 분(전시팀장, 디자인팀장)이 나왔고 차를 타고 호텔로 왔다.
별 다섯 개짜리 호텔...태어나서 지금껏 이렇게 좋은 호텔에는 묵어본 적이 없다.
시설도 좋고 전시장과도 가깝고 교통도 편리해서 좋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전시장 둘러보고 와이탄에 가서 야경도 보고 인민광장도 가서 구경하고...
 
두 분이 '신천지' 노래를 부르길래 저녁에 호텔로 들어와 잠시 쉬었다가 다시 '신천지'로 향했다.
주점들이 가득한 곳...외국인들이 더 많은 곳...마치 유럽의 한 동네같기만 하다.
사실 한국 주점이나 식당을 찾아서 새벽에 하는 축구 8강전을 볼 요량이었는데
여기저기 물어봐도 한국 식당, 주점은 없다고 한다.
결국 포기한 마음으로 아무 주점이나 들어가 맥주 한 잔 먹고 오자고 합의를 봤다.
 
우연찮게 들어간 곳...밴드가 연주와 노래를 하는 아주 흥겨운 곳이었다.
첫 팀은 노래 실력이 정말 가수 못지 않다.
목소리도 좋고 분위기도 잘 타는데다가 세션들도 훌륭하다...
그 다음 팀도 훌륭했는데
뭐랄까 이들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음악을 즐기고 노는 것 같은 분위기다.
그런 분위기가 너무 부럽고 좋아 보인다.
문득 나도 다시 장춘으로 돌아가면 시간을 내서 드럼이나 배워볼까 하는 마음이 생길 정도로...
 
친구들끼리 무대에 오르고 연주도 돌아가며 하고 노래도 함께 부르는데
모두들 실력들이 상당하다.
즐거워 행복해 보이는 표정들을 보며 저들이 나이를 먹으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까지 미친다.
한편으론 불나방같은 느낌도 들었지만
'브에나 비스타 소셜클럽'같은 사람들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지금 저렇게 행복한데 뭐가 더이상 부러울까 싶기도 하다.
정말이지 어떤 일을 하건 간에 즐기고 행복한 것 이상가는 것은 없는 듯 하다.
 
사람들의 즐거운 열기에 나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몸이 들썩 거리며
무대에 오르고 싶은 마음까지 생긴다.
 
즐거운 젊음, 행복한 일, 열정에 넘치는 삶을 보면서 오늘 많은 걸 얻어간다.
 
그네들과 함께 삶을 어울리고 싶다. 그네들처럼 자신감있게 즐거운 삶을 살고 싶다.

2004년 8월 20일 금요일

떠날 채비.

상해에 가서 '상해 애니메이션 만화 전람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내일 오전 8시 15분 비행기.
이제 이 일을 끝내고 나면 애니메이션 페스티발 일은 잠시 안해도 된다.
 
와서 중국어가 또 잘 나오지 않는 때도 있긴 했지만
역시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아서 일테다.
가서 많은 중국인들과 부대끼다 보면 말도 더 잘 나오겠지...
 
이번에 가서 애니메이션 관련한 많은 일들을 배우고 습득하고 오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루종일 시카프와 상해 측을 연결해 주는 일을 듬성듬성 하다가
나가서 핸드폰 요금도 더 채워넣고 몇 몇 친구들을 만나 전해줄 거 전해주고 머리도 깍고...
이젠 내일 갈 짐을 좀 정리해야겠다.
 
잠을 깊이 자면 또 못일어날까 걱정.
나이를 먹어가며 잠이 줄어들었는데 늘 이런 게 걱정이니 우습고 재밌다.
 
상해 가서 인터넷을 할 수 있을까?
 
그러고보니 요즘 일기는 좀 쓰는데 그림일기는 거의 못쓰고 있네...
그림에 대한 능력이 역시 부족한가 싶기도 하다...
에잇~ 그래도 하고 싶다.

2004년 8월 18일 수요일

또 하루.

상해 갈 비행기표를 예매하는 데 20% 할인이 된다고 하네...
만약 오후 5시 즈음 가면 40%가 할인이라고 하는데 한국에서 올 분들 때문에
결국 오전에 출발하는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말았다.
할인이 된다고 하면 왠지 기분이 좋은 건 사실 :)
 
그런데 비행기표를 예매하러 가기 전에 어제 DVD로 변환시켜 온 것을 확인 차 보는데
사운드도 엉망으로 되어있고 게다가 어떤 장면들에서는 버벅대는 현상들...
게다가 단편 애니메이션들만 모아놓은 것에는 2개의 애니메이션이 보이질 않는다.
순간 치밀어 오르는 짜증.
 
전화를 해서 이런저런 사정을 얘기했더니 혹 내가 사용한 DVD기기를 언제 샀냐고 묻는다.
갑자기 더 화가 치민다. 분명 내가 볼 때는 변환할 때의 문제인 것 같은데 기계 탓을 하다니.
짜증이 나다가 또 순간 차분히 가라앉는 내가 보인다.
알았다고 말하고 며칠 안으로 다시 가서 같이 확인해보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중국 친구에게 혹 환불을 되는지 물었는데 아마 어려울 것 같고
다시 작업을 하면 되지 않겠냐고 말한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다시 작업하는 건 별 소용이 없을 것 같다.
그네들의 기술력에 대한 회의가 생겼기 때문이다.
 
하긴 내가 가지고 간 테잎들이 모두 NTSC방식이었으니 이들에게는 좀 생소한 작업이었으리라.
나름대로 한다고 했는데 안되는 걸 보면 당연히 방법이 없을 것 같다.
보다 나은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는 한은 어렵지 싶다. 포기하기로 했다.
80원을 그냥 날리게 생겼지만 방법이 없다. 그렇게 받아들이는 수 밖엔...
내가 기계에 붙어서 하기엔 그들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고 나도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할 것 같다.
 
저녁엔 명은이가 알고 지내는 후배들과 저녁을 같이 했는데
머스마 세 녀석들 모두 사람들이 괜찮아 보인다. 여자 후배는 전에도 알던 사이고...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또 많이 배우고 또 많이 돌아보게 된다.
산 속에만 있으면 나무들은 보이는데 산이 보이지 않고
산을 벗어나면 산은 보이는데 나무들은 보이지 않는 이치...
가끔은 좀 멀리 떨어져서 나도 보고 내 주변도 돌아보는 건 소중한 경험인 것 같다
 
가볍게 먹은 맥주가 바람에 실려오는 가을 냄새에 살짝 취하는 듯 하다.
 
장춘은 가을보다 겨울 냄새가 먼저 맡아지는 지도 모르겠다.

2004년 8월 17일 화요일

애니메이션...애니메이션...

어제 맡겨놓은 VHS와 DVD를 찾아오려고 오야 전자상가에 갔다.
오야에 옌궈가 옌뽀를 만나러 갔다고 오면 연락을 주라고 한다.
한국에 들어갈 때도 연락을 왜 안했냐고 살짝 뭐라고 하더니 좀 미안하군.
 
옌궈를 만났는데 요즘은 좀 바쁜가보다. 다행이다.
이번에 장춘 꾸이린루에 한국인의 거리가 생겨
중국정부에서 약 5,000여 한국 상점을 끌어들이려 한다고 한다.
옌궈는 그 시장을 보고 원룸 형태의 건물을 지어 숙소를 제공하는 일을 할 예정인가보다.
물론 돈은 다른 사람이 투자해서 준비하는 건물이겠지만 잘 되어서 돈 많이 벌길.
 
DVD는 아직 작업이 완료가 되지 않아 옌궈랑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옌궈는 이제 한국어를 배워서 앞으로 꾸이린루의 발전에 준비하고 싶은가보다.
내가 시간이 그다지 자유롭거나 일정치 않아 가르쳐주지 못해 미안하다.
나보고 후배들이나 친구들 중에 있으면 좀 소개시켜달라고 한다. 있을까...
봐서 상해 다녀온 후에 가르칠 시간이 있으면 좀 도와줘야겠다.
 
옌궈가 애니메이션 하는 사람을 소개시켜줬는데 물론 사장이나 감독급은 아니고 직원이다.
O.E.M을 주로 하는 회사다. 주로 상해, 북경, 장춘영화제작소...등에서 일을 받아오고
외국은 일본에서 일을 받아와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물어보는 얘기가 혹 단편 작업하는 사람들 있으면 연결시켜달라고 한다.
사실 오늘 그 회사에 가서 한 번 둘러보고 싶었지만 어째 기회가 되지 않았다.
그 친구 말로는 동화는 5마오~1-2원/1장..이라 하고 원화는 3원~5원/1장...이라 하니
정말 싸긴 싸다. 그 친구의 푸념...'애니메이션으로 돈 벌긴 힘들다'는 것...
한국도 경제사정이 나빠지기 전부터 나온 말이 이 말이었는데 중국도 똑같긴 매한가지군.
하긴 동화맨, 원화맨들이 돈 번다기 보다 감독급이나 사장들이 돈 다 챙겨가는 것이겠지만...
특히 O.E.M의 경우엔 말이다.
그래도 만약 실력이 있고 임금이 싸다면 한국 단편 작가들과 연결을 해줘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화하는 시간이 많이 걸려서 힘들어하는 단편 감독들에겐 좋은 소식이 될까?
나중에 차근차근 둘러볼 시간이 되면 좋겠다.
 
DVD가 다 만들어져서 확인해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택시를 타고 갈까 했는데 옌궈가 버스를 타고 간다고 하니 말을 꺼내기 미안하다.
나도 버스를 기다려 타고 돌아왔다...
그러는 중에 다시 DVD사러 들리고 또 괜찮은 애니메이션을 찾았다. 오호~
 
오늘은 이상하게 저녁을 먹고 나니 졸리네...

2004년 8월 16일 월요일

오야 전자 상가를 다녀오다...

여기 올 때 가져온 애니메이션 작품들을 DVD로 변환시키기로 했다.
상해 애니메이션 페스티발에 갈 때 가지고 가서 보여줄 사람들이 있다.
띵따뽀 선생도 한 번 보여달라고 그랬고 상해에 있는 중국 동생도 보여달라고 했기 때문에...
 
오야(중국어 발음으로 유럽, 아시아를 뜻한다;欧亚) 전자 상가를 가서 변환시켜줄 상점을 찾았다.
처음 찾아간 곳은 한참을 물어보고 테스트 해본다. 그리고 다른 손님 일도 본다.
그러기를 한참 결국 한다는 말이 '못하겠다'는 것이다. 젠장...미리 말해주면 입이 아픈가?
내가 가지고 있는 테잎은 VHS에 NTSC방식이서 그렇단다.
디지털 6m도 NTSC라 좀 어려운 모양이다.
상가 6-7층을 빙빙 돌면서 또 그런 작업을 하는 상점이 있나 기웃거리다가 겨우 찾았다.
여기에서는 DVD압축 방식을 쓰지 않고 60-70분 짜리를 사용한다고 한다.
그래서 용량을 많이 담을 수 없다고 한다. 한 장에 35원. 90분짜리 DVD는 60원이랬으니 비슷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ANYWAY', '초대', '소화불량' 등 6개는
전체 시간이 딱 90여 분 나올 것 같았는데
결국 이 곳에서는 2장의 DVD로 만들 수 밖에 없게 되었다.
NTSC를 PAL이나 혹은 NTSC를 떠낼 수 있는 장비가 있는 곳에 맡기는 값 10원을 더 달라고 한다.
별로 깍기도 싫고 그 정도면 되겠다 싶어 총 80원을 지불하기로 했다.
이래 저래 확인하는 게 레코딩 방식이 다르다 보니 체크하는 데만도 시간이 많이 지났다.
 
앉아서 졸다가 말다가 사람들 일하는 것 봤다가...
기계는 적당히 돌아가는 걸 놓고 쓰는 데 나름대로 전문적인 느낌은 있다.
프로그램은 프리미어도 아니고 에펙도 아닌 베가스 비슷한 걸 쓰는 데 처음 보는 거다.
인터페이스는 깔끔하고 프리미어 비슷한 게 괜찮더군.
 
오늘은 작업 마무리를 못하니 내일 오라 한다. 내일 오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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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은이가 디카가 생겼는데 충전기가 없다면서 사야한다고 한다. 오야 가는 김에 같이 가서 찾았는데 어째 Sanyo 전문점이 없다. 다른 기종들은 다 있는데... 한참을 돌다가 우연히 똑같은 기종을 찾아냈는데 충전기만은 따로 팔 수가 없다고 한다. 이상하다. 이것도 부탁하면 다 팔고 들여놓을 수 있는데... 도대체 얘네들 기준은 무엇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게다가 산요 대리점은 장춘 시내에도 없다고 한다. 뭐지??? 결국 못사고 헛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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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에 DVD를 몇 개 샀는데 오오~ 프레드릭 벡과 알렉산더 페트로프의 단편이 들어있는 걸 발견. 다시 '노인과 바다'를 보다. 예전에 전주 국제 영화제에서 스크린으로 '노인과 바다'를 처음 접하고는 그 감동과 설레임이 아직도 남아있는데 T.V로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너무 감격적이다. 이미지, 그림만으로 감동을 주는 작품은 흔하지 않은데 아마 이 두 감독이 그 흔하지 않는 감독들이지 싶다. 감동을 받으면 가슴이 울렁이고 시큰거리고 눈물이 나올 것 같은데 오늘도 그런 조짐이 보여 감정을 아껴둘 요량으로 후다닥 꺼버렸다.
 
난 저렇게 아트웍이 완벽한(?) 작품을 만들 거라곤 꿈도 꾸지 않지만 다시 애니메이션 작품을 만들고 싶다. 생각해 놓은 몇 개 이야기는 괜찮다고들 하는데 언제쯤 완성을 하게 될까...
 
'노인과 바다'를 다시 접한 것 만으로도 뿌듯한 하루다...

2004년 8월 14일 토요일

장춘 도착, 다시 시작...

14일 이후론 19일까지 비행기 표가 없다는 바람에 결국 14일날 오고야 말았다.
그 덕분에 익산에도 내려가지 못하고 어머니도 뵙지 못하고 왔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공항에 갔더니 비행기 표가 왜 없는지 알겠더라. 정말 사람들로 넘쳐나는 인천 국제 공항.
경기가 안좋다고 하는 것도 결국 서민들에게만 통하는 얘기인 가 싶다.
유학가는 학생들도 보이긴 하지만 아줌마, 아저씨들의 여행부대들과 더불어
젊은이들의 배낭여행 차림도 보이고 그냥 심심해서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도 보이는 듯 하다.
 
장춘행 비행기 표가 없는 이유를 종합해 보니
일단은 9월부터 시작되는 유학생들의 학기 때문에 그렇고
또 하나는 백두산 관광을 하는 이유 때문에 그렇더라.
내가 타고 오는 비행기도 단체 여행객이 3분의 1,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었으니까...
7월에 백두산에 갔을 때 택시 기사가 한 말
'백두산 관광은 8월이 가장 성수기'라는 얘기가 생각났다.
 
하긴 요즘 고구려사 얘기도 끊임없이 들리고 고구려에 관련된 책자가 불티나게 팔리는 마당에
백두산 관광이 더더욱 조명을 받을 만 하겠다 싶다.
 
장춘에 오고 나니 날씨는 거의 가을 날씨인 듯 싶다.
낮에 햇살이 강하게 내려 쬐어도 땀은 그다지 나지 않고 저녁이면 서늘해진다.
입추가 지났으니 그럴만도 하겠지만 역시 북쪽 지방은 다르다 싶다.
또 며칠 있다가 상해를 가야 하는데 상해도 날씨가 장춘만큼만 되면 좋겠다는
말도 안되는 바램을 하게 된다.
 
::
규이와 치우메이 결혼사진 확인하러 가는 데 따라 갔다가 재밌는 모험(?)을 했다.
 
요즘은 중국도 결혼사진을 디카로 촬영해서 액자도 만들어주고 앨범도 만들어주는 모양인데 사진 한장에 할인 해서 약 40원(한화 6천원)정도 받고 판다고 한다. 그런데 사진을 거의 90여장을 찍었는데 그 중에 최소 30여 장만 고르고 나머지는 사야 한다. 사진을 찍긴 찍었는데 누가 어떤 건 버리고 어떤 건 가지고 싶어한단 말인가. 다 가지고 싶어도 가격이 만만치 않으니 고민이 되는 건 사실... 게다가 디카로 촬영했으니 파일로 있을 게 아닌가...
 
카피를 해달라고 했더니 여전히 돈을 내야 한단다. 고민 끝에 친구들이 담당인 종업원에게 사정 사정을 해서 카피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가지고 간 USB이동 저장장치(U반-중국어) 용량은 128메가, 사진은 모두 540메가... 규이랑 나랑 밖으로 나가 U반을 사오기로 했다.  U반 가격은 그리 비싸지는 않지만 사둬봐야 쓸모가 없어서 대여를 하기로 했다. 두 개 빌리는 데 60원. 돈 벌었다.
 
급하게 가서 다른 종업원이나 지배인들이 보지 않을 때에만 몰래몰래 카피를 했다. 담당 종업원은 들키면 쫓겨날 판이니 간이 콩알만해지나 보다. 하긴 우리도 카피하다 걸리면 쪽팔림과 동시에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모르는 판이니 모두들 긴장, 긴장에 도둑 카피를 했다. 카피를 다 하고 나니 담당 종업원이 돈을 요구한다. 줘도 그만 안줘도 그만이라고 말하면서도 자기도 위험을 감수했으니 댓가가 있어야 한다고 당당히 요구한다. 결국 300원정도를 줬다.
 
그래도 돈을 많이 아끼고 사진을 거의 다 소유하게 되었으니 규이와 치우메이는 무척 기분 좋은 표정이다. 정말 돈 많이 벌었다...
 
아~ 종업원이 나랑 치우메이랑 얼굴이 닮은 것 같다고 하니 치우메이가 내가 자기 사촌오빠라고 하고 북경에 산다고 그러는데 그 종업원이 믿는다. 허~ 내가 규이에게 내가 말하는 걸 들으면 중국 사람이라고 생각이 되겠느냐며 종업원 바보 아니야?라고 물으니 그런 것 같다고 응수...-_-;
정말 중국 사람을 닮긴 닮았나 보다 싶다. 한 편으론 말이 좀 늘어서 그런가 싶어서 기분도 살짝 좋아지고...
 
즐거운 하루...
 
 
::
장춘에 '용수산'이라는 한국 식당이 있다. 한국인 사장이 운영하는 곳인데 우연히 얘기를 할 기회가 생겨 여러 얘기를 들었다 일단 사장 나이는 35세.-0- 문득 나이에 비해 별다른 성과가 없는 내 자신을 돌아보고...
 
얘기인 즉은 지금 장춘에서 '청연'이란 영화를 촬영하고 있다고 한다. 장진영(개인적으로 좋아하는...)과 황정민(역시 좋아함...), 그리고 유민(역시...) 등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이다. 용수산이 함바집을 하기로 한 모양인데 지금은 폐쇄된 북쪽 공항을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언제 시간나면 촬영 현장을 구경가야겠다.
 
여러 얘기들이 나오는 중에 지금 중국이 많이 변하고 있다는 얘기들... 만약 비자 문제가 발생하면 전에는 돈 좀 찔러주고 아는 사람 통해서 하면 해결이 되곤 했지만 지금은 모든 게 전산처리 되고 컴퓨터로 입력을 하는 시스템으로 바뀌면서 많이 어려워졌다고 한다. 당연한 것이긴 하지만. 중국의 발전이 한국과의 어떤 관계를 줄지는 잘 모르겠지만 중국에서 한국인으로 산다는 약간의 장점마저도 점점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월함과 열등함의 관계로 인해 발생하는 장점들은 전혀 생각하고 싶지 않고 생각지도 않았지만 중국인들의 성격으로 보면 중국의 경제사정이 한국과 동등해지거나 앞서가게 되면 분명 많은 한국인들은 더 이상 매력있는 외국인이 되지 못할 공산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한국인들은 그런 부분에 신경을 쓰지 않고 중국인들을 업수이 여기고 있는 현실이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애니메이션 판에서도 중국을 우습게 보는 풍조는 만연하다. 도대체 왜들 그러는 것일까? 경제문제가 아니더라도 같은 사람으로써 인격체로써 다가서고 존중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유전인자가 꼭 그렇게 설정된 것은 아닐터인데... 어쩌면 중국인들의 안좋은 이미지들은 자국민의 문제도 분명 존재하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외국인들에 의해 형성될 가능성이 크다.
 
정신 차릴 일!!!

2004년 8월 13일 금요일

시카프 마지막 일...

시카프에 들려 영수증 처리를 했다. 행사 기간 동안 쓴 택시비, 그리고 비행기 표 값.
원래 비행기 표는 정산을 해주기가 어려울 지 모른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큰 기대를 하고 가지 않았다.
그런데 다행이 해준다고 한다.(원래 당연히 해줘야 하는 거 아냐?!)
택시비는 심야요금은 가능한데 아침에 탄 택시요금은 정산이 안된다면서 담당자가 울상이다.
도대체 왜 아침 택시 요금은 정산이 안된다는 거지?
아침에 급한 일이 있어도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다니라는 것인가?
그럼 버스, 지하철은 정산이 되는 것인가? 어떻게 영수증을 만들어내야 하는 거지?
문득 짜증도 나고 답답함도 든다.
미리 말을 해주던가, 아니면 호텔 근처에 숙소를 잡아주던가...
고생했다고 말들은 하면서 아무런 상황을 봐주지 않겠다는 것인가?
밥도 중국 사람들이 사주는 거 먹었다고 식대는 어떻게 할거냐고 했더니 말들이 없다.
결국 그것도 아침에 쓴 택시비도 정산을 해주기로 했다. 뭐냐고~
 
내일 들어가는데 정산은 다음 주에나 가능할 거 같다고 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
 
상해 페스티발 건에 대해서 잠시 얘기를 하는데 역시 진행이 복잡한 상황이다.
상해 행사에 참여하는 나에 대한 비용문제도 확실히 해결이 안되고...
일은 쉽게 부탁하면서 비용은 쉽게 내놓으려하지 않는 것 같다.
이건 비단 시카프 뿐만이 아니라 어떤 일이라도 그렇다. 내가 겪어온 일들을 뒤돌아 보면...
경험이라 생각하고 살지.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