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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17일 화요일

루저(Loser)의 원래 뜻이 변한 건가?

los·er  [lúːzər] 
1. 실패자; 손실자, 분실자 a loser at marriage 결혼에 실패한 사람 You shall not be the loser by it. 그것 때문에 너에게 손해를 끼치지는 않겠다.
2. 진 편 (경기에서), 진 말 (경마에서); 패자 Losers are always in the wrong. 속담 이기면 충신, 지면 역적.
3. 영 [당구] HAZARD 3
4. (구어) 전과자(前科者) a two-time loser 전과 2범자
5. 전혀 쓸모가 없는 것[사람]

실패[失敗]
 [명사] 일을 잘못하여 뜻한 대로 되지 아니하거나 그르침.
실패하다 [동사] 1 찾아보기: 실패.  2 어떤 일에 원하던 결과를 얻지 못하거나 완성하지 못하다.

패배[敗北] [명사] 1 겨루어서 짐.
패배감[敗北感] [명사] 싸움이나 경쟁 따위에서 자신이 없어 무력해지는 느낌. 또는 싸움이나 경쟁 따위에서 진 뒤에 느끼는 절망감이나 치욕스러운 감정.
패배자[敗北者] [명사] 싸움에 진 사람.

출처: Daum 사전

'루저' 열풍은 나중에 알았는데 내막을 알고 난 후에도 별 관심은 없다. 그보단 왜 '루저;패배자 혹은 실패자'라는 말을 쓴 것일까. 실패는 하던 일이 잘못되어 그르치거나 완성되지 못할 때 쓰는 말이고 패배는 경쟁 따위에서 진 것을 말하는 것 아닌가. 아마 루저라는 말을 한 사람의 뜻은 키가 작은 사람은 (모종의) 경쟁에 조차 나갈 수 없는 상태가 안 된다...라는 생각에 루저라는 말을 쓴 것 같다. 하지만 '키 큰 사람 선발대회'도 아니고 '우수 신랑감 선발대회'도 아닌데 키를 가지고 루저라는 표현을 썼다. 시합 출전을 하기도 전에 패배자가 되었다고 하니 루저의 범주에 들어 간 사람들이 흥분할 만도 하겠다. 혹은 맨 아래처럼 전혀 쓸모가 없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말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이해는 되지 않는다. 노자의 '무용지용'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키가 작다는 이유가 전혀 쓸모가 없는 사람이 되는 조건이라니.

하지만 만약 그의 발언이 통용되는 사회라면 '실패'와 '패배'라는 게 경쟁과 겨룸을 통해, 혹은 자신의 노력을 통해 어떤 일을 진행한 것과는 별개로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버린 '운명적 사회'라는 뜻이 아닌가. 태어나면서부터 신체적, 교육적, 경제적 풍요를 누리는 사람은 바로 위너(Winner)가 되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바로 루저(Loser)가 되는 사회. 키가 작다는 이유만으로 취업의 기회를 놓치는 것이고 이성의 선택권 밖에 있다는 것이며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사람이 되는 사회. 이는 못생기면 서비스나 잘해야 하고(모 국가 대표가 한 말) 못생기면 반드시 성형해서 이뻐져야 하는 사회. 자신들이 만든 규칙 속에서 조건 충족이 되지 않으면 경기조차도 할 수 없도록 추방시키는 사회. 공정한 기회는 고물상에서 엿 바꿔 먹고 평등한 출발은 쓰레기통에 버려버린 사회. 이런 사회가 과연 살 만한가. 희망을 품고 뭔가 해볼 만한 사회인가. 보아하니 택도 없는 것 같고 그렇게 변하려면 수 많은 '인고'의 세월을 견뎌야만 할 듯 하다.

루저 발언을 한 사람이 사고하는 방법, 사유하는 방법 조차 많이 부족한 상태가 아닌가 싶은데 언제부턴가 사회 분위기가 한국어를 한국어대로 쓰지 못해도 별로 개의치 않게 된 건 말할 것도 없고 사고(思考)를 제대로 하지 못하더라도 외형과 조건만 좋으면 대체적으로 인정하고 떠받드는 분위기가 팽배해진 것 같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외형과 조건이 좋지 않으면 개무시하고 깔보는 분위기가 팽배해진 것이며 한국어를 제대로 쓰지 못해도 외국어 하나 잘 하면 최고로 대접받는 사회가 된 것이랄까. 그렇다보니 루저 발언에 거품을 물고 흥분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발언자를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 날 밖에.

발언자 역시 교육과 사회의 피해자일 터인데 루저 발언을 듣고 흥분하는 사람들은 발언자만을 붙잡고 '사냥'을 할 게 아니라 그런 발언을 만들어 낸 교육 시스템, 사회 시스템 그리고 언론과 대한민국 정부를 향해 비판을 하고 스스로의 모습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가 '마녀'가 되거나 '사냥꾼'이 되거나 밖에 할 수 없다. '마녀' 자체가 없는, '사냥'할 필요가 없는 사회가 더 낫지 않은가. 

사람은 '감정'만으로 이루어진 동물이 아니고 '이성'이란 것도 존재한다. 두 가지를 함께 써 먹어야 할 때다.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 루저(Loser)의 사전적 의미를 생각해보다 생각의 가지가 또 뻗어나갔다......-_-;

** 091118|01:00 일부 수정

2009년 2월 27일 금요일

MBC 100분 토론을 보며 이정희 의원을 주목하다.

매주 목요일이 되면 손석희의 'MBC 100분 토론'을 봐야 할지, 보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손석희의 오프닝 멘트가 끝나고 광고를 할 때에도 채널을 고정해둬야 할지, TV를 꺼야할지 고민스럽다. 특히 '나경원'이나 '홍준표'같은 패널이 나온다고 하면 고민이 심해지지만 이럴 경우 끝까지 보기보단 아예 보지 않게 되거나 중간에 채널을 돌리게 되고야 만다. 이유는 단 하나. 속에서 '열불'이 나기 때문이다.

사실 '100분 토론'은 내가 즐겨보던 프로그램이다. 손석희 이전에 정운영, 유시민이 사회를 볼 때부터 별 일 없으면 즐겨 챙겨봤던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MB정부 들어와서는 프로그램을 보기가 버겁다. 내가 싫어하는 정당이 나오건, 인물이 나오건 그건 '토론'이란 장에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뜻 맞는 사람들끼리 토론을 한다면 그게 토론이겠는가. 위에 거론한 사람들이 등장할 때 괴롭거나 요즘 '100분 토론' 시청하기가 괴로운 이유는 '비상식'적인 내용으로 '비논리'로서 '억지'를 부리며 '토론'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토론장에 나온 수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논리'를 '억지'로 상대방에게 '주입'시키려고 하는 작태들을 보여줬다. 또는 '자신의 앎'만이 사실이고 '자신의 분석'만이 정확하다고 우겨댔다. 토론은 이뤄지지 않고 '비난'과 '음해', '자기愛'만 넘쳐나는 토론장이 된 것이다.


오늘 나경원을 비롯, 박형준까지 나오는 토론을 굳이 보지 않더라도 어떤 식의 발언을 할지 대부분 짐작이 되기 때문에-그 짐작이 현실이 되었고- 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다른 일을 하다가 생각없이 보게 되었다. 그러다 '이정희'라는 보석을 발견한 느낌이랄까. 개인적으로는 촛불시위 때 연행되어간 민주노동당 의원이라는 정도만 알 뿐이고 언젠가 TV로 볼 때는 참 젊은 국회의원이구나 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오늘 토론하는 걸 지켜보니 '진정한 토론'에 어울리는 '진정한 패널'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한 번 정도 지켜본 걸로 확언하긴 어렵겠지만 오늘 '이정희'의원의 '논리'나 '말품새'는 정말 토론다움을 환기시켜주기에 충분했다. 사실, 국회의원이라는 게, 정치인이라는 게 대중의 인기와 당(黨)의 지지만으로도 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학벌은 좋지만 머리가 멍청하거나 감정은 풍부하지만 이성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이들도 충분히 국회의원 뱃지를 달 수 있고 정치라는 걸 할 수 있지 않나. 그러니 우리가 보고 듣는 수 많은 '대한민국 정치인'들 중에 과연 얼마나 제대로 된 인간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중학생, 고등학생 조차도 논리적으로 풀어낼 이야기를 '우기기'와 국민들 감정에 호소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는 인간들이 너무나 많다.

박영선은 오늘 후반부로 갈수록 말리는 듯 보였고(감정에 말리는 순간 어떻게 붕괴되는지...) 김창수의 경우엔 얼굴과 이름 석자 정도 알리는 데 최선의 목표를 세운 듯 보였고(상대 패널이 상대해주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이 될 정도), 박형준은 점잖은 척, 신사인 척하지만 결국 뭔가 막히거나 자신이 수세에 몰리는 듯 하면 벌컥 화를 낼 기운들이 도사렸고(그래도 잘 참데???) 나경원은 여전히 또박또박한 음성으로 나이든 사람들이 혹할만한 감정에 호소하는 방법을 써가며 자신이 도덕적으로 품격으로 상위에 있는 듯 우기기에 몰입했는데(그렇게 눈 똑바로 뜨고 진실을 얘기해도 공허하고 진실이 아니라고 부정해도 진실을 드러나게 돼있단다...) 이정희만 따복따복 논리를 따라가며 이야기를 하는데 말의 짜임새가 탄탄하다고 생각되었다. 정확히 할 말만 골라내어 시청자의 귀에 잘 들리고 이해가 되도록 말하는 사람들이 적은 현실에서 오늘 이정희 의원의 활약은 돋보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분리되면서 난 진보신당을 더 주의깊게 보는 편이지만 이정희 의원은 잘 지켜봐야겠다. 개판 5분 전인, 아니 이미 개판이 되어버린 진흙탕에서 정직하고 바르게 정치를 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겠지만 이정희 의원의 외로운 선전(善戰)을 기대해 본다. '우기기=억지'는 일시적으로 효과가 크게 나타나는 힘일 수 있지만 '논리=이성'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지속적인 힘으로 존재할 수 있다.

2008년 3월 13일 목요일

길들여진 감성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단지 몇 걸음, 숨 한 번 쉬지 않고 지나칠 거리를 두고
선뜻 손을 내밀어 문을 열지 못하는 이유가
어둠 속에 숨겨진 탐욕스러운 육신에 대한
애정과 집착을 버리지 못한 이유와
조금이라도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에는
어둠에 대한 역겨움이 기능적으로 반응하는가 했지만
길들여진 감성은 새롭게 생겨난 이성보다 강한 지속성을 갖고 있기에
눈 앞에 보이는 햇살 가득한 곳으로
쉽게 문열고 걸어나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적어도 그런 이유를 대며 쉽게 포기했을 때까지는.

2007년 12월 21일 금요일

소위 이명박 특검, 무산 계획?

뉴스와 신문을 보고 듣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속출하는 가운데서도 습관처럼 TV를 켜고 자판을 두드려 인터넷을 뒤적이게 된다. 그러다 목격하게 된 여러 매체에서 보이는 징후들, 100분 토론에까지 등장한 주장들. 드디어 본격적인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소위 이명박 특검 무산 계획. 정치적 목적이었기 때문이라는 논리도 들고 나오고,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망령) 국익에 도움이 되냐는 논리 역시 나오고, 선거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겠다는 후보자들의 이야기가 있었으니 특검법도 이제 그만~ 이라는 소리다. 뭐, 예상하지 못한 움직임은 아니다만 무척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걸 보니 그들의 낯은 얼마나 두꺼울까 생각해 본다. 이명박 특검은 큰 이변이 없는 한 무산되거나 특검을 강행하더라도 다시 한 번 완벽한 무혐의 처분을 내릴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아무리 12월 5일 발표된 BBK관련 수사에 대한 검찰의 발표를 국민의 50% 이상이 불신한다고 하더라도 이번 대선에서 50%에 가까운 국민들이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는데 특검하자고 악다구니를 쓰겠나. 이명박은 이번 대선 기간 내내 하늘이 도왔다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왔다고 하는 걸 보면 정말 천우신조로 대통령에 당선된 걸까? 아니면 천우신조로 보이도록 이떤 기제가 작동했을까?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 이성적인 판단이 작동하지 않는 사회에서 뜨거운 가슴 부여잡고 열정적인 삶을 살 수 있다면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