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27일 금요일

MBC 100분 토론을 보며 이정희 의원을 주목하다.

매주 목요일이 되면 손석희의 'MBC 100분 토론'을 봐야 할지, 보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손석희의 오프닝 멘트가 끝나고 광고를 할 때에도 채널을 고정해둬야 할지, TV를 꺼야할지 고민스럽다. 특히 '나경원'이나 '홍준표'같은 패널이 나온다고 하면 고민이 심해지지만 이럴 경우 끝까지 보기보단 아예 보지 않게 되거나 중간에 채널을 돌리게 되고야 만다. 이유는 단 하나. 속에서 '열불'이 나기 때문이다.

사실 '100분 토론'은 내가 즐겨보던 프로그램이다. 손석희 이전에 정운영, 유시민이 사회를 볼 때부터 별 일 없으면 즐겨 챙겨봤던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MB정부 들어와서는 프로그램을 보기가 버겁다. 내가 싫어하는 정당이 나오건, 인물이 나오건 그건 '토론'이란 장에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뜻 맞는 사람들끼리 토론을 한다면 그게 토론이겠는가. 위에 거론한 사람들이 등장할 때 괴롭거나 요즘 '100분 토론' 시청하기가 괴로운 이유는 '비상식'적인 내용으로 '비논리'로서 '억지'를 부리며 '토론'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토론장에 나온 수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논리'를 '억지'로 상대방에게 '주입'시키려고 하는 작태들을 보여줬다. 또는 '자신의 앎'만이 사실이고 '자신의 분석'만이 정확하다고 우겨댔다. 토론은 이뤄지지 않고 '비난'과 '음해', '자기愛'만 넘쳐나는 토론장이 된 것이다.


오늘 나경원을 비롯, 박형준까지 나오는 토론을 굳이 보지 않더라도 어떤 식의 발언을 할지 대부분 짐작이 되기 때문에-그 짐작이 현실이 되었고- 보지 않으려고 했는데 다른 일을 하다가 생각없이 보게 되었다. 그러다 '이정희'라는 보석을 발견한 느낌이랄까. 개인적으로는 촛불시위 때 연행되어간 민주노동당 의원이라는 정도만 알 뿐이고 언젠가 TV로 볼 때는 참 젊은 국회의원이구나 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오늘 토론하는 걸 지켜보니 '진정한 토론'에 어울리는 '진정한 패널'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한 번 정도 지켜본 걸로 확언하긴 어렵겠지만 오늘 '이정희'의원의 '논리'나 '말품새'는 정말 토론다움을 환기시켜주기에 충분했다. 사실, 국회의원이라는 게, 정치인이라는 게 대중의 인기와 당(黨)의 지지만으로도 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학벌은 좋지만 머리가 멍청하거나 감정은 풍부하지만 이성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이들도 충분히 국회의원 뱃지를 달 수 있고 정치라는 걸 할 수 있지 않나. 그러니 우리가 보고 듣는 수 많은 '대한민국 정치인'들 중에 과연 얼마나 제대로 된 인간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중학생, 고등학생 조차도 논리적으로 풀어낼 이야기를 '우기기'와 국민들 감정에 호소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는 인간들이 너무나 많다.

박영선은 오늘 후반부로 갈수록 말리는 듯 보였고(감정에 말리는 순간 어떻게 붕괴되는지...) 김창수의 경우엔 얼굴과 이름 석자 정도 알리는 데 최선의 목표를 세운 듯 보였고(상대 패널이 상대해주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이 될 정도), 박형준은 점잖은 척, 신사인 척하지만 결국 뭔가 막히거나 자신이 수세에 몰리는 듯 하면 벌컥 화를 낼 기운들이 도사렸고(그래도 잘 참데???) 나경원은 여전히 또박또박한 음성으로 나이든 사람들이 혹할만한 감정에 호소하는 방법을 써가며 자신이 도덕적으로 품격으로 상위에 있는 듯 우기기에 몰입했는데(그렇게 눈 똑바로 뜨고 진실을 얘기해도 공허하고 진실이 아니라고 부정해도 진실을 드러나게 돼있단다...) 이정희만 따복따복 논리를 따라가며 이야기를 하는데 말의 짜임새가 탄탄하다고 생각되었다. 정확히 할 말만 골라내어 시청자의 귀에 잘 들리고 이해가 되도록 말하는 사람들이 적은 현실에서 오늘 이정희 의원의 활약은 돋보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분리되면서 난 진보신당을 더 주의깊게 보는 편이지만 이정희 의원은 잘 지켜봐야겠다. 개판 5분 전인, 아니 이미 개판이 되어버린 진흙탕에서 정직하고 바르게 정치를 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겠지만 이정희 의원의 외로운 선전(善戰)을 기대해 본다. '우기기=억지'는 일시적으로 효과가 크게 나타나는 힘일 수 있지만 '논리=이성'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지속적인 힘으로 존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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