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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7일 토요일

차별, 저널리즘

이 글은 자유인님의 2009년 3월 7일의 미투데이 내용입니다.

2006년 8월 24일 목요일

"조선족"이 "조선족"인가? 호칭에 대한 주절거림...

아래 글도 그렇고 내 블로그를 뒤지다 보면 가끔 "조선족"이란 단어를 접할 수 있다. 난 "조선족"이란 말이 싫다. "조선족"이 싫은 게 아니라 부득이하게 사용하고 있는 "조선족"이란 "단어"가 싫다. 물론 "고려족"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하면, 한국인들이 사용하는 "조선족"이란 말에 숨겨진 "차별"을 싫어한다. 미국, 일본, 유럽에 살고 있는 한국인, 한국인 2-3세는 그들의 국적에 상관없이 무조건 교포, 동포라고 부르는 반면 한국보다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나라에 살고 있는 이들은 '족'이란 조사를 붙여 부르거나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 살다보면 조선족을 만나는 건 비일비재한 일이고 한국의 많은 매체에서도 조선족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인들의 눈엔 조선족은 이방일 뿐이고 자신들보다 계급이 낮은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아닌 사람도 많다는 거 안다.) 이런 개념들이 사람들의 의식 속에 자리하게 된 건 언제부턴가.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문제라고만 치부하기엔 복잡하다. 왜 이런 차별을 시작하게 된 것일까.

현재 한국의 기원은 많은 사람들이 말하길 '고조선'이라고 한다. '옛날 조선'이란 뜻이겠지. 그렇다면 그 조선이란 이름을 버리고 한국-코리아가 된 이유는 뭘까. 일본인들이 조센진(조선인)이라고 부르는 건 한국인을 얕잡아 보는 것이라 발끈하면서도 우리는 너무 쉽게 조선족을 "조선족"이라 부르고 있다. 만약 각 나라별로 호칭하는 방법에 따라 정한 호칭법이라면 고려인은 "까레이스키"가 되어야 할테고 조선족은 "차오시엔주"가 되어야 할 것이다. 베트남의 "라이따이한"처럼.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외국인들은 보통 국적에 따라 자신을 나타낸다.(내 이해가 부족할 수도 있지만) 국가위주의 편재 속에서 당연한 일이다. 가령 "나는 미국인이지만 아버지는 멕시코인이고 어머니는 프랑스인이다."라고 말한다. 그럼 그 사람은 어떤 민족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혈통순결주의, 민족주의 때문에 해외에 살고 있는 수 많은 동포들을 '한국인'으로 부르길 원하지만 그로 인해 많은 문제들을 양산해 내고 있고 그들에 대한 인식의 차로 인해 반목과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과연 옳은 일인가? 단지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나라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한국인들에게 차별대우를 받아도 된다는 뜻인가? 이미 한국에서도 혈통순결주의는 빛을 바랜지 오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900번 이상 외래의 침략을 받은 한국에서 100% 한민족이라고 부르는 건 어불성설이다.(여성을 비하하거나 다른 뜻은 없으니 오해 마시길.) 게다가 현재 많은 외국인들도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한국인인가, 아닌가. 한민족의 범주 내에 포함시키지 못하는 민족, 혈통은 한국인이 될 수 없는 것인가. 국가와 민족, 인종으로 사람을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으로 사람이 재편되고 있는 현실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호칭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 중요하지 않을 수 있는 호칭인데 왜 신경쓰냐고 묻는다면? 위에서도 말했지만 호칭은 별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그 호칭에 담겨진 차별이 문제다. 호칭을 바꾸건 바꾸지 않건 상관없지만 그 호칭에 담긴 차별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 호칭이 분명 문제가 있다. 단어는 생각과 사상을 담는 그릇. 하지만 때론 그 그릇으로 인해 생각과 사상이 바뀔 수도 있다. 간혹 "형식이 본질을 규제"하기도 하니까.

중국 조선족이 처음부터 "조선족"은 아니었다고 한다. 간도 땅에 살고 있던 조선족은 알게 모르게, 영문도 모른 채 중국 공산당에 의해 중국인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당시 중국인들이 조선족을 호칭했던 말은 "조선인"이었다. 이유는 북한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불려지고 있었고 간도 땅 조선족들은 북한을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었던 탓이다. 게다가 그들은 중국에도 북한에도 편입되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중국과 북한의 이해관계에 의해 이리저리 이용(?)당하다가 어느 순간 중국인이 되었고 중국은 조선인을 자신들의 소수민족의 일부분으로 편입시키고자 "조선족"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인들 역시 그들을 조선족이라 부르고 있다. 한국인이 조선족이라 부르는 저의에는 중국에 대한 반감, 멸시와 함께 그들 자체를 무시하고 멸시하는 의미가 함께 내포되어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대다수가 그렇지는 않을 거라 믿는다. 하지만 인터넷상에서나 한국의 매체에서 그들을 다루는 태도를 보면 역시 비관적이다.

이런 저런 이유때문에 내가 바라는 바는 호칭에 상관없이 그들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똑같은 대우를 해주는 것이다. 그게 여의치 않다면 캠페인 차원으라도 혹은 공식적으로라도 해외에 있는 같은 민족들에 대한 호칭을 통일시켜주길 바란다.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기 전 혹은 후에 타의에 의해 외국인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이들에 대해 깊은 이해와 배려, 애정으로 다가섰으면 하는 바램이다. "조선족"을 "중국동포 혹은 재중동포"(현재 이렇게 부르고 있는 경우가 많아졌다)로 러시아, 우즈베키스탄과 같은 지역은 "러시아 동포, 우즈벡 동포"등으로 불러주거나 혹은 각 나라에서 한인을 부르는 고유명사로 직접 불러주던가 하면 좋겠다. 아니면 외국에 사는 중국인들을 화교라고 부르듯이(화교는 华侨-화치아오라는 뜻으로 중화의 화, 우거(거주)할 교를 써서 외국에 사는 중국인이란 뜻이다. 华人이라고 해서 중화인의 줄임말인데 이는 한인(韓人)과 같은 말.) 다른 단어를 만들어도 좋을 듯 싶다. 적절한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있다면 알려주시거나 제안해 주시길.)

그렇지 않아도 호칭에 무척 민감한 대한민국에서 위와 같은 현상은 자연스러울지 모르겠지만 그 호칭이 많은 차별을 만들어 냄을 안다면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모두 맘 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생각하고 쓴 글은 뭐 정리가 될까마는) 막 써내려간 글이라 정리가 잘 안되고 있다. 윽.

2005년 12월 9일 금요일

전문직이 차별화 되는 이유

의과대학 진학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 겨울 필자를 아끼시던 한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 주셨다. "의사를 포함해 모든 전문직이 차별화되는 이유는 다음 세 가지 때문임을 기억하라. 먼저 전문직 별도의 행동윤리가 있고 이는 일반인에게 요구되는 윤리보다 더 엄정하다. 둘째 졸업 후 직업 훈련 과정은 평생 수행되는 것이니 배움의 끈을 놓지 말라. 마지막으로 이것이 가장 중요한데 '전문직이 전문직일 수 있는 이유는 자정 기능을 갖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출처 보기


이런저런 논란의 틈새에서 상황의 이해를 돕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마주친 글귀 하나. 난 의대생도 아니고(아주 어릴 적 꿈이긴 했지만) 과학도도 아니지만 위에서 말하는 모든 ‘전문직’이 차별화되는 이유에 대해 공감을 한다. 위의 ‘선생님’이란 분이 어떤 분인지도 모르겠고 ‘말’뿐인지 ‘행동’도 함께 수반되는 분인지 확인할 길 없지만 하신 말씀은 내게도 울림을 준다.

애니메이션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도 아니고 국가발전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직업도 아니겠지만 나름의 ‘차별화’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물론 요즘에는 플래시나 간단한 툴을 이용해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반인(비전문)’들도 많고 그들의 실력도 상당하지만 여전히 전문직임엔 틀림없는 것 같다.

그럴 경우 위에서 말하는 차별화를 적용해서 생각해 보면 적당한 기준들이 생길까? 간혹 애니메이션 ‘판’에서도 ‘카르텔’이 형성이 되어 아주 기본적인 ‘권리’들 조차도 무시당하기 일쑤고 여느 보수 집단보다도 더 ‘상하관계’가 중요시되곤 한다. 그게 이쪽 나름의 행동윤리 강령이라면 끔찍하다. 하지만 또 반대급부는 분명 존재하고 행동하고 있다. 종종 나도 이런저런 이유들로 인해 혼동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나름의 ‘윤리’의식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실 윤리도 윤리지만 내 마음을 잠시 머물게 했던 건 ‘배움의 끈을 놓지 말라’는 말이었다. 어릴 적 교육에서도 전인교육이네 뭐네 하며 들어왔던 끊임없는 공부에 대한 이야기는 세월이 지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일상성에 빠지게 되고 지금 내가 아는 것이 마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지속적인 노력보다는 여태 알아왔던 사실만으로도 가능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비단 대학원, 박사과정을 밟으며 공부를 하고 학위를 따는 것만이 배움의 길은 아닐 터. 내가 몸 담고 있는 이 업종에서 내게 주어지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위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 건 ‘선택’이 아니고 ‘필수’다. 과거 혈기 왕성했던 시절에 몸 담고 있었던 ‘집단’을 줄기차게 비판했던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그런데 그 때가 지나 지금의 내 모습은 스스로가 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내가 평생 가지고 갈 직업이 아니라면 모르거니와 혹 그렇다 할지라도 그만두는 순간까지는 명심해야겠다.

전문직이 가지고 있는 자정 기능은 믿긴 믿되 믿음만으로는 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여전히 내 성격이 ‘강성’이고 ‘옹고집’이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측면이기도 하겠지만 집단 내 변화가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해 내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10년 후에 가져올 좋은 결과가 1년 후에 올 수 있다면 더 좋지 않겠나? 이런 믿음으로 살다가 결국 10년을 꼬박 채우는 경우도 비일비재 하겠지만 여전히 중요한 건 ‘언제 누릴 수 있느냐’하는 것이다. 자정 기능이 없다면 전문직이 아니다. 전문직이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보통 집단이다. 개개인의 자정 기능과 순기능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런 개개인이 모여 형성한 집단에서 자정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건 문제가 심각해진다. 애니메이션 계를 포함해 상당수의 예술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직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지 않은 이야기를 귀동냥으로만 들어도 심각한 일들이 많다. 하지만 자신이 속해있지 않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것이고 소위 그들이 전문 집단이기 때문에 자정 기능을 믿는 것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오랫동안 반복해서 일어나는 일이 체질화되고 관습이 되어버린 경우도 많다. 다시 고민해 볼 일이다.

내가 몸 담고 있는 이 곳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는 (내 마음과 생각, 몸이 죽지 않았다면, 여전히 움직일 만 하다면) 스스로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게 모르고 행하지 않은 것보다 더 나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