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 9일 금요일

전문직이 차별화 되는 이유

의과대학 진학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 겨울 필자를 아끼시던 한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 주셨다. "의사를 포함해 모든 전문직이 차별화되는 이유는 다음 세 가지 때문임을 기억하라. 먼저 전문직 별도의 행동윤리가 있고 이는 일반인에게 요구되는 윤리보다 더 엄정하다. 둘째 졸업 후 직업 훈련 과정은 평생 수행되는 것이니 배움의 끈을 놓지 말라. 마지막으로 이것이 가장 중요한데 '전문직이 전문직일 수 있는 이유는 자정 기능을 갖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출처 보기


이런저런 논란의 틈새에서 상황의 이해를 돕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마주친 글귀 하나. 난 의대생도 아니고(아주 어릴 적 꿈이긴 했지만) 과학도도 아니지만 위에서 말하는 모든 ‘전문직’이 차별화되는 이유에 대해 공감을 한다. 위의 ‘선생님’이란 분이 어떤 분인지도 모르겠고 ‘말’뿐인지 ‘행동’도 함께 수반되는 분인지 확인할 길 없지만 하신 말씀은 내게도 울림을 준다.

애니메이션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도 아니고 국가발전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직업도 아니겠지만 나름의 ‘차별화’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물론 요즘에는 플래시나 간단한 툴을 이용해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반인(비전문)’들도 많고 그들의 실력도 상당하지만 여전히 전문직임엔 틀림없는 것 같다.

그럴 경우 위에서 말하는 차별화를 적용해서 생각해 보면 적당한 기준들이 생길까? 간혹 애니메이션 ‘판’에서도 ‘카르텔’이 형성이 되어 아주 기본적인 ‘권리’들 조차도 무시당하기 일쑤고 여느 보수 집단보다도 더 ‘상하관계’가 중요시되곤 한다. 그게 이쪽 나름의 행동윤리 강령이라면 끔찍하다. 하지만 또 반대급부는 분명 존재하고 행동하고 있다. 종종 나도 이런저런 이유들로 인해 혼동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나름의 ‘윤리’의식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실 윤리도 윤리지만 내 마음을 잠시 머물게 했던 건 ‘배움의 끈을 놓지 말라’는 말이었다. 어릴 적 교육에서도 전인교육이네 뭐네 하며 들어왔던 끊임없는 공부에 대한 이야기는 세월이 지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일상성에 빠지게 되고 지금 내가 아는 것이 마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지속적인 노력보다는 여태 알아왔던 사실만으로도 가능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비단 대학원, 박사과정을 밟으며 공부를 하고 학위를 따는 것만이 배움의 길은 아닐 터. 내가 몸 담고 있는 이 업종에서 내게 주어지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위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 건 ‘선택’이 아니고 ‘필수’다. 과거 혈기 왕성했던 시절에 몸 담고 있었던 ‘집단’을 줄기차게 비판했던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그런데 그 때가 지나 지금의 내 모습은 스스로가 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내가 평생 가지고 갈 직업이 아니라면 모르거니와 혹 그렇다 할지라도 그만두는 순간까지는 명심해야겠다.

전문직이 가지고 있는 자정 기능은 믿긴 믿되 믿음만으로는 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여전히 내 성격이 ‘강성’이고 ‘옹고집’이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측면이기도 하겠지만 집단 내 변화가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해 내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10년 후에 가져올 좋은 결과가 1년 후에 올 수 있다면 더 좋지 않겠나? 이런 믿음으로 살다가 결국 10년을 꼬박 채우는 경우도 비일비재 하겠지만 여전히 중요한 건 ‘언제 누릴 수 있느냐’하는 것이다. 자정 기능이 없다면 전문직이 아니다. 전문직이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보통 집단이다. 개개인의 자정 기능과 순기능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런 개개인이 모여 형성한 집단에서 자정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건 문제가 심각해진다. 애니메이션 계를 포함해 상당수의 예술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직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지 않은 이야기를 귀동냥으로만 들어도 심각한 일들이 많다. 하지만 자신이 속해있지 않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것이고 소위 그들이 전문 집단이기 때문에 자정 기능을 믿는 것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오랫동안 반복해서 일어나는 일이 체질화되고 관습이 되어버린 경우도 많다. 다시 고민해 볼 일이다.

내가 몸 담고 있는 이 곳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는 (내 마음과 생각, 몸이 죽지 않았다면, 여전히 움직일 만 하다면) 스스로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게 모르고 행하지 않은 것보다 더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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