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4월 6일 금요일

<빼꼼의 머그잔 여행>을 봐야 하는 이유..?

Mug Travel / 빼꼼의 머그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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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회장은 여느 애니메이션 시사회장보다는 조촐한 느낌이었다. 6년 전(?) 쯤 있었던 태권브이 제작발표회나 그 이후에 있었던 원더풀데이즈 시사회에 비한다면 <빼꼼의 머그잔 여행(이하 머그잔 여행)>은 작은 규모로 단단하게 열리는 시사회라는 느낌을 받았다. 김광회 PD에게 티켓과 빼꼼과 그의 친구들이 새겨져 있는 머그잔을 받아 들고 주위를 살펴보니 처음 느꼈던 것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예전 한 워크숍에서 인사를 나누게 된 임아론 감독님께 축하드린다는 말씀과 좋을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전한 후 시사회장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잠시 후 RG스튜디오가 오랜 시간 동안 땀 흘린 결과물이 스크린에 영사되기 시작했다.

<...머그잔 여행>이 호평과 악평 사이에서 선전하고 있는 가운데 이 작품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어른과 아이의 감수성 차이를 느끼려면 당장 표를 끊어 극장으로 향해라.

그 동안 3D 애니메이션은 PIXAR를 선두로 하여 미국의 메이저 애니메이션 회사가 독점하다시피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PIXAR와 드림웍스의 3D 애니메이션은 퀄리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내용면에서도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코드들이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아냈다.

그런 작품을 아직 만들어내지 못하는(혹은 만들어내지 않는) 한국 상황에서는 그들의 작품이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을 수요하는 사람들이나 제작하는 사람들은 그 작품들이 3D 애니메이션의 표준규격이라도 되는 것처럼 모든 3D 애니메이션을 비견하고 평가의 잣대를 가져다 대곤 한다. 이런 행위들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최고를 다투는 상품에 비교하며 부족한 부분들을 개선해 간다는 건 당연한 일이며 필요한 일이다. 그렇게만 말한다면 <...머그잔 여행>은 많이 부족해 보일 수 있고 엉성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머그잔 여행>이야말로 어떤 새로운 시도가 시작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사회장에서 애니메이션을 보고 난 후 스스로 평가를 내리며 혼란스러웠던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바로 누구의 시선으로, 누구의 잣대로 애니메이션을 바라봐야 하는가 하는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원론적인 질문 때문이었다.

애니메이션 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머그잔 여행>의 퀄리티나 스토리의 흐름 등에 대해 부족한 부분을 느낄 것이고 소소한 단점들을 뽑아내라면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쏟아낼 것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그잔 여행>을 쉽게 혹평하지 못하는 이유는 시사회장에서 함께 본 아이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목격했고 그들의 웃음소리가 계속 귀에 맴돌았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애니메이션을 보는 내내 조카들이 떠올랐고 조카들을 데리고 애니메이션을 본다면 조카들이 분명 즐거워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내가 애니메이션을 봐야 하는 이유와는 분명 다른 것이다. 그 전에 어른의 시각, 속칭 애니메이션 전문가라는 시선을 버리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그런데 왜 <...머그잔 여행>이 보다 특별한 것일까. 그건 다른 애니메이션들은 아이들의 시선에 눈높이를 맞췄다는 흉내를 냈던 부분이 많았다면 <...머그잔 여행>은 그야말로 아무런 가감없이 솔직히 자신을 드러내고 아이들과 함께 웃고 즐길 수 있는 진심이 전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만 신나고 나는 즐겁지 않다고 해서 재미없는 애니메이션인가? 내가 재미있다고 판단되는 애니메이션만 아이들에게 보여준다고 해서 잘 하는 것인가? <...머그잔 여행>은 이런 시각 차이를 느끼게 해주면서 미취학 아동들과 이미 성인이 된 자신들의 묘한 유대관계를 묶어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그 속에서 어떻게 그 어린 꼬마친구들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라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집에 조카들이 있는 삼촌, 이모, 고모들 혹은 이미 결혼해서 이미 아이가 있는 부모들, 솔직히 망설일 것 없다. 표 끊어서 아이들 손 잡고 영화관으로 향하면 된다. 함께 보고 즐길 수 있다면 금상첨화지만 그럴 수 없다면 웃고 즐기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스스로를 돌아보면 된다. 그 아이들과 자신이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지.


작품성? 상업성?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이잖아.

한국에서나 중국에서나 종종 어린 학생들에게 질문을 받았던 건데 그건 바로 상업 애니메이션과 예술 애니메이션의 차이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런데 완전한 상업성과 예술성으로 애니메이션을 구분 짓기도 어려울 뿐더러 구분 지어봐야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거나 관람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난 어차피 이쪽으로는 이론적으로 무장도 되어 있지 않으니 슬쩍 넘기고 다른 얘기를 해야겠다.

임아론 감독님을 한 워크숍에서 만났었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난 그 때 들었던 임아론 감독님의 한 마디가 잊혀지질 않는다.

"사람들이 즐겁고 웃고 즐길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

뭐, 특별한 문장도 아니다. 그런데 그 때 임아론 감독님은 무겁고 어려운 주제, 혹은 아트 성향이 강한 애니메이션 역시 나름의 충분한 의미와 가치가 있지만 자신은 모두가 즐겁고 신나게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 함께 즐길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고 지금도 그렇게 만들고 있다고 했다. 그 내용과 임아론 감독님의 표정이 잊혀지지 않았던 건 역시 그 말에 담긴, 표정에 담긴 진실성 때문이었다. 상업도 예술도 저 말 속에 어떠한 의미도 차지하지 못한다.

그런데 사실, 즐기며 신나게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백지에 점 하나 찍어 그럴듯한 제목 붙여 놓는 식의 엉터리 예술이 아닌 바에야 관객들이 좋아하는 작품이란 얼마나 만들기 어려운가. 임아론 감독은 그런 자세로 열정으로 애니메이션을 기획하고 만들고 있었고 만들어왔고 만들어냈다.

빼꼼의 인터넷 공개 버전은 성인들도 보며 웃을 수 있는 코드들이 있었고 EBS에서 방영되고 있는 빼꼼은 어린 친구들을 위한 버전이라고 본다면 <...머그잔 여행>은 임아론 감독도 밝혔듯이 분명 미취학 아동을 위한 애니메이션이다. 세계 어느 애니메이션 중에서도 미취학 아동만을 타켓으로 한 극장용 장편은 없었던 것 같다. 한국적 상황에서 이런 타켓 설정은 새로운 시도이면서도 가능성 있는 시도가 아닌가 싶다. 여가생활도 전무하다시피 한 삶 속에서, 삶의 공간 속에서 순수하게 웃고 즐기는 애니메이션을 보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손을 잡고 극장을 갈 수 있다는 것, 그 때만큼은 극장을 찾는 발걸음의 주인공이 어른이 아니라 어린이라는 것. 어린이 전용관이 없어 시민회관 등지를 전전하는 애니메이션도 있었긴 했지만 암튼 <...머그잔 여행>은 그렇게 애니메이션의 좋은 시도를 하고 있는 중이고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중이 아닌가 싶다.


소란스럽지 않았던 제작 진행 과정, 하지만 유쾌한 슬랩스틱 <...머그잔 여행>

보통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은 아주 짧다면 2년 정도, 보통 평균 3-4년 정도 제작을 하게 된다. 물론 기획 및 후반작업까지 포함해서다. <아치와 씨팍>이나 <원더풀데이즈>가 더 오랜 세월 제작을 했던 이유는 중간 과정에서 문제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랜 제작기간 때문에 홍보하는데도 애로사항이 있을 수 있다. 제작발표회를 한 시점부터 극장에서 애니메이션을 보게 되기까지 3-4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지만 제작발표회나 작업 개시부터 소란스럽게 작품을 했던 경우 보통 좋지 않은 결과를 맞았다.

그걸 우려해서는 아니었겠지만 <...머그잔 여행>은 내가 알고 있는 한 제작발표회도 없었고 중간 진행과정에서도 소란스러운 적이 없었다. 장편제작이 된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 시점이 아마도 전제 작업 공정의 70-80%정도 진행된 다음이었던 것 같다.

감독 및 이하 스탭들이 숨죽이며 몇 년의 세월을 투자하며 작품 제작에 매달리던 사이 <...머그잔 여행>을 수식할 수 있는 문구는 몇 개 되지 못했을 것이다. '초호화 스탭진'도 아니고 '사상최고의 제작비'도 아니며 '21세기 새로운 기술혁신을 일궈낸'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꾸준히 손에서 놓지 않고 한 프레임 한 프레임 <...머그잔 여행>을 만들어온 것이다.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으로 승부한다는 자세였다. 화려한 미사여구도 아닌 여러 매체에 화려하게 실리게 되는 것도 아닌 애니메이션 결과물 자체로 평가 받고 싶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솔직히 이런 태도를 견지하는 것 그리 쉽지만은 않다. 이제 그간의 침묵들, <...머그잔 여행> 속에서 확실한 슬랩스틱과 유쾌함으로 발산하고 있다.

이제 남은 건 <빼꼼의 머그잔 여행>의 선전을 지켜보는 것. :)





막 봄 기운이 움트고 있는 요즘 아이들에게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어주고 싶다면 바로 극장으로 향하시길.
그리고 해 맑게 웃고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며 봄 기운 담아내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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