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9월 2일 토요일

[ani] 아빠가 필요해(Wolf Daddy) - 기묘한 가족 이야기


일단, 장형윤 감독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함께 기뻐하고 있음을 전하고 싶다. 장형윤 감독의 "아빠가 필요해"가 2006년 히로시마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대상 다음의 2등상이라 할 수 있는 히로시마상을 거머쥐었다. 이는 과거 이성강 감독의 단편들이 그리고 7인조의 "아빠하고 나하고"가 세계 4대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 모두 본선에 올라갔다고 한 성과보다 대단한 것이고 이명하 감독의 "존재"가 2000년도에 히로시마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신인상을 수상한 것보다도 큰 성과다. 정말 축하하고 또 축하할 일이다.

물론 위에 언급한 작품들이 "아빠가 필요해"보다 못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한국의 단편 작품들이 국내의 페스티벌에서는 대상과 최우수상 등을 받곤 했지만 세계 4대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는 본선에 진출하는 것에만 그쳤고 혹은 그 외 비교적 작은 페스티벌에서 상을 받곤 했기 때문에 이번 히로시마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2등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대단한 쾌거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의 단편 애니메이션 감독들의 작품들도 이젠 머지 않아 페스티벌 대상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도 하게 한다.




수상 소식을 며칠 전 아는 PD에게 전해듣고 정말 기쁜 마음에 바로 글을 작성하려 했지만 일이 너무 많아져서 부득이 며칠이 지난 후에야 글을 쓰게 되어 장형윤 감독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긴다. 한 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수상을 한 후에 한국의 어떤 매체에서도 그의 쾌거를 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름 검색을 해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글을 작성하던 시점이 좀 늦었다. 현재 장형윤 감독의 "아빠가 필요해"를 검색하면 많은 매체에서 그의 수상소식을 전하고 있다. 일단 필름2.0씨네21의 소식) 몇 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근래 한국 단편 애니메이션(애니메이션계 전체)이 점점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건 아닌가 하는 서글픔마저 느끼게 되었다. 영화 쿼터제는 지지하건 반대하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으니 그렇다손 치고 애니메이션 쿼터제를 실시해서 좀 더 대중들에게 다가서고 그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일단, 이 글을 읽는 누리꾼들은 함께 장형윤 감독의 수상을 축하하고 기뻐해줬으면 좋겠다. 한국에서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것, 독립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것은 상상 그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고 고난한 여정의 연속이다. 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한국 독립 애니메이션은 수 많은 능력있는 감독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은 적이 없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래도 계속 만들고 또 만들고 있다. 애니메이션이 삶이고 기쁨이고 벗이기 때문에. 그러니 이번 장형윤 감독의 수상 소식은 축하하고 또 축하해도 부족할 뿐이다. 그의 수상이 한국에서 열심히 작품을 만들고 있는 많은 감독들에게, 스탭들에게도 든든한 힘과 기쁨이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아래에 적어가는 글은 내용이 다소 빈약하더라도 함께 작품에 대해 생각하고 공감해주길 바라는 마음에 작성한 글이니 틀린 내용이 있거나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언제라도 대환영이다.)

장형윤 감독을 처음 만난 것은 KIAFA-(사)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가 2005년에 주최한 "제1회인디애니페스트" 술자리에서였다. 이미 꽤 시간이 흐른지라 정확한 기억을 해낸다는 건 나로써는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당시를 더듬더듬 기억해 본다면 아마 개막식 이후 KIAFA회원(감독)들과 기타 많은 사람이 모여 서로 인사를 나누던 자리였던 것 같다. 어렵게 만들어진 (사)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였기 때문에 많은 감독들이 흥을 돋구기 위해 모이기도 했고 현재 어떤 감독들이 어떤 작품을 준비하고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모인 자리였다. 물론 상당수는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고 한 사람 건너면 알게되는 화기애애한 자리였다.

한참 동안의 첫번째 술자리가 파하고 2차, 3차로 이어지는 자리에서 장형윤 감독과도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그에 대한 인상은 나름 선명한 편이다. 물론 장형윤 감독이 나를 기억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는 상당히 활발한 성격에 유쾌한 사람이었고 자리를 이끌어가는 능력이 꽤 탁월했던 것 같다. 농담도 잘하고 스스로를 낮추면서도 격을 잃지 않는 사람.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시나리오 능력이 참 뛰어난 감독 중 한 사람이라고 했다. 준비하는 프로젝트가 많긴 하지만 서둘지 않고 차근차근 하나씩 만들어가는 성실한 감독이란 이야기도 들었다. 그가 궁금했지만 술자리에서는 나도 오랜만에 만난 다른 감독들과 이야기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렇게 자리는 끝이 났다. 그 이후로도 장형윤 감독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가끔 전해듣긴 했다. 난 한국을 떠났고 그리 오래지 않아 (이미 작년부터 유명했지만) 장형윤 감독의 "아빠기 필요해"가 크고 작은 많은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소식을 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었다. 그 매체가 메이저급은 아니었을지라도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널리 퍼져갔다. 좋은 작품은 역시 따로 홍보를 하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찾게 마련이고 시간이 흘러도 재발견이 되는 것이라는 아주 간단명료한 법칙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거짓말로 누군가를 칭찬하는 것 만큼 상대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부끄러운 일은 없기에 솔직한 고백으로 시작하자면 내게 "아빠기 필요해"의 첫인상은 그다지 강한 울림이 없었다. 부끄럽지만 김규항씨의 글 한토막을 읽고 문득 내가 너무 외국작품들에 대해서만 관대한 편인가라는 회의를 품게 되었고 또 단편작품에 대한 감(感)이 많이 무뎌진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고 꼭 김규항씨의 글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내겐 다시 음미해봐야 할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그 후 인디영화제 다락페스티벌을 통해 다시 보게 되었다. 그 이후에 인터넷 상에서 우연히 작품을 다시 접하게 되어 한 두 번 더 보게 되었다. 그리고 몇 가지를 다시 느끼게 되었다.


"아빠가 필요해"는 단편이 가질 수 있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일단, 캐릭터나 배경, 칼라, 애니메이팅(움직임)등은 상업 애니메이션이 가진 장점을 가지고 있으되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듯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작품이 떠오른다고 하지만(일본이나 한국의 전원풍경이 많이 비슷하지 않은가?) 약간 비슷한 분위기는 있되 한국적 배경을 나름 잘 옮겨놨다고 생각한다. 캐릭터들의 움직임은 경제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되 세밀한 묘사가 살아야 할 부분에서는 작은 동작 하나하나를 잘 표현했다. 가령 액션무비를 떠올리게 하는 듯한 여자 어른들의 액션동작이라던가(장윤형 감독의 차기 작품이 "무림일검의 사생활"이라니 기대가 된다.) 영희와 늑대가 한 방에서 잠을 잘 때 늑대의 뒤척이는 모습이라던가 영희가 데굴데굴 굴러 늑대 옆으로 가는 장면, 늑대가 이불을 끌어당겨 영희를 덮어주는 장면 등 작품 곳곳에 세밀한 표현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음을 알수 있다.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본 사람들은 공감하겠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캐릭터들이 표정이 풍부할 수 없는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자잘한 동작, 고개의 움직임, 눈의 위치 및 표정 등으로 캐릭터의 성격을 풍성하게 만들어 낸 건 참 새겨볼 만 하다. 장현윤 감독의 섬세한 감성, 관찰이 힘을 발하는 순간들이다. 물론 이는 편집의 흐름 즉 이야기의 전개, 시나리오의 단단함이 있었기에가능한 일이라 생각되기도 한다.

"아빠가 필요해"의 큰 장점은 기존의 한국 단편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밝고 재치가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의 단편들은 모두 우울하고 비관적이었다. 그런 어두움으로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이 많았기에 보는 이들 마음도 함께 무거워지곤 했다. 그런 분위기를 벗어나려 해도 쉽게 벗지 못했다. 그럴 수 밖에. 한국 사회가 그랬기 때문이다. 뭐, 현재 사회 분위기가 달라진 건 아니지만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 감독들에 의해 이야기되어지는 한국의 모습은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지금 비교적 젊은(?) 감독들은 따뜻한 시선과 함께 재치있게 비틀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젊음을 발산하고 있다. 그걸 가장 크게 느낀 작품은 한예종 출신 감독(그다지 젊진 않다)이 만든 "형이상학적 나비효과의 예술적 표현"이란 작품인데 이는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다시 얘기를 해야겠다. 암튼 "아빠가 필요해"가 가진 밝은 정서와 재치는 보는 이로 하여금 함께 동참하게 만들며 두고 두고 보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한다. 큰 힘이다.

음악과 사운드 디자인, 대사 녹음들에서는 아주 세련된 맛보다는 조금 투박하지만 애니메이션 정서를 충분히 표현해 준다는 측면에서 꽤 성공적이다. 오리지널을 들어보지 못해서 정확한 이야기를 하기가 애매하다. 웹상에서나 사운드 시스템이 좋지 않은 곳에서는 공간 엠비언스가 충분히 들리지 않고 세밀한 사운드를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다. 믹싱이 좀 거칠게 된 느낌도 받을 수 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다시 잘 들어보고 싶다. 늑대 역을 맡은 이의 목소리는 건조하면서도 애니메이션을 보는 이의 귀를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담담하지만 그 담담한 속에 스스로를 성찰하는 느림과 담백함을 가지고 있다고 할까.

"아빠가 필요해"가 가진 내용은 직접 애니메이션을 보며 각자가 느끼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된다. 여러 장치가 있어 보는 이에 따라 느끼는 부분들이 조금씩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본 "아빠가 필요해"는 이상한 동거 속에서 발견되는 가족애라는 것이다. 전혀 다른 개체들이 모여 살면서 가족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건 정말 특별한 일이다. 가족들도 서로를 증오하고 팽개치는 삭막한 사회에서 내게 가족은 무엇이고 가족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되묻는다. 피가 섞이면 무조건 가족이 되는 것일까. 그저 한 나라, 한 땅에서 태어났다고 같은 국민이 되는 것일까. 내게 던져진 불합리하고 억울한 상황때문에 아이를, 생명을 모른체 하고 방치할 수 있을까.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내가 원하는 대로만 이끌어져 가는 게 아니라면 세상에 굴복하는 내 모습이 혐오스러울까.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게 되는 일은 늘 요원한 일일까.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도 모든 걸 결코 쉽게 답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같음과 다름", "가족과 타인", "나와 너"의 관계를 현재 이 사회에서 벌어지는 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분명 변화가 필요하다. 늑대가 소설 쓰기를 포기하고 새로운 직장을 구했지만 그의 생활이 더 편안해 보이고 따뜻해 보이는 것은 자신의 삶을 "포기"해서가 아니라 진정 가치있는 삶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처음 관람할 때 "아빠가 필요해"를 주의깊게 보지 못했던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장형윤 감독의 수상소식이 많이 상쇄되는 느낌이다. 좋은 작품을 보게 해준 그에게 고마움을, 히로시마에서의 좋은 결과로 열심히 작품을 만들고 있는 단편 애니메이션 감독들에게 힘을 실어준 그에게 축복을 보낸다. 꾸준히 작품활동을 할 거라는 믿음을 주는 그가 스탭들과 함께 있는 스튜디오 이름은 "지금이 아니면 안돼"이다. 스튜디오 이름을 보고도 난 다시 가슴이 뜨끔했고 자극받았다. 입으로 작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발로 작품을 만들고 손과 온 몸으로, 온 가슴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도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단편이든 장편이든 좋은 애니메이션을 만난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애니메이션이 영화와 같은 뿌리를 두고 있긴 하지만 애니메이션만이 갖고 있는 정서가 있다. 특히 잘 만들어진 단편 애니메이션이 가지고 있는 정서와 이야기 힘은 장편 못지 않다. 프레드릭 벡의 "나무를 심는 노인", 알렉산더 페트로프의 "노인과 바다", 마이클 두덕 드 위트의 "아빠와 딸"과 같은 작품을 보면  그 울림이 수 많은 장편 영화, 애니메이션을 본 것보다 크고 여운이 깊다. "아빠가 필요해"도 많은 이들이 더 찾고, 본 후에 따뜻한 감성을 서로 나눠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척박한 땅에서 새로운 도전과 성취를 위해, 타인과 소통하고 싶어 노력하고 있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면 좋겠다. 삶의 변화는 10분 내외의 짧은 시간 속에서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단편 애니메이션이 가진 힘이다. 일본에서 만났던 단편 애니메이션 "두산"의 감독 야마무라 코지가 한 말이 생각난다. "Short is Best!"



댓글 6개:

  1. 나도 처음 스틸컷을 봤을 때는 <토토로>가 생각이 났어. 거의 반사적으로. 그런데, 꽤 많은 설명글 (혹은 평)들도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한 언급을 하더라고.



    막상 보고 나니 사실 비슷한 부분은 거의 없었고 정서도 상당히 다르다고 느꼈어. 그럼에도, 그 스틸컷으로 쓰였던 몇몇 장면들에선 어쩔 수 없이 연상이 되더구만. 나도 미야자키 하야오 물이 든건가? -_-;



    화면이 주는 매끈함을 어설픈 (좋은 뜻으로) 느낌의 성우가 많이 순수하게 만들어줬다고나 할까?



    p.s. 근데, 미야자키 하야오가 아니라 다카하타 이사오의 정서라고들 해야하지 않나? 물론 <토토로>의 감독은 미야자키 하야오이긴 하지만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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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써머즈 - 2006/09/03 12:00
    <토토로>가 생각났던 건 아마도 늑대때문에 그랬을 거야. 커라란 늑대와 자그마한 여자 아이. 스틸컷만 보면 토토로가 생각날 법도 하지.



    성우에 대한 건 동감, 그런데 조금 아쉬운 느낌은 들어.



    미야자키나 다카하다 정서라고 말하기 보단 지브리 스타일이라고 해야하지 않을까?-_-a 지브리에서 나오는 작품들에서 자연풍경 묘사는 대동소이한 느낌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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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작년에 CGV에서 봣을 때는 이렇게 선전하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었는데 큰 상을 받았네요. 그 때는 재밌기는 한데 이야기의 허점이 자꾸 신경 쓰여서 아쉬웠거든요. 늦게나마 좋은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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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두리뭉 - 2006/09/04 21:13
    부족한 게 있더라도 작품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더 돋보였겠지요. 저도 이렇게 선전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수상을 하게 되니 기쁘고 좋습니다. 가끔 자국민들에게 무덤덤하게 비춰지는 영화(작품)들이 외국인들에겐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들이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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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저런 작품이 있었군요. 애니메이션을 본 다음에 좀 더 다양한 이야기들을 듣고 싶고, 나누고 싶은데..

    아쉬워요. 형이 이 정도로 극찬하신 작품이라니 더더욱 보고 싶은데 말예요.



    저도 <나무를 심는 노인>테잎을 가지고 있는데 짧은 시간에 그만한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게 놀라웠어요. 생뚱맞은진 모르겠지만 2시간 20분짜리 타이코프스키의 <희생>이랑 얼핏 비슷한 주제인 거 같은데.. 감동이란 그런 건가봐요.



    그나저나 시간이 지날수록 형이 애니메이션계에서 상당히 저명한 사람일 거 같다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더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마구마구 든다는;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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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왕도비정도 - 2006/09/06 20:17
    이건 극찬이 아니야. :) 오히려 내게 있어서는 작품 내 다른 요소들을 새롭게 발견했다는 데 의미가 있지. 물론 이 작품이 해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않았다면? 물론 그렇지 않았더라도 이미 작품을 여러 번 본 후라 지금의 생각과 크게 다르진 않겠지만 좋은 성적을 거뒀으니 '뒷북'으로라도 작품의 좋은 점을 말하고 싶었던 것 뿐이야.^^



    부족한 부분도 더러 보이는 작품이지만, 작품이 가진 함의, 내용들, 그리고 접근방식들은 참 좋다고 생각해.



    난 사실 프레드릭 벡의 <나무를 심는 노인>보다는 <위대한 강>이나 <크랙>같은 작품이 더 좋더라구.^^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나무를 심는 노인>을 좋아해. 일반인이든 애니메이션 감독이든... 뭐, 취향의 문제겠지?ㅎ 아님, 내가 여전히 보는 안목이 부족한가....싶고..-_-a



    감동이란 시간의 길이에 따라 얻어지는 게 아니라 내게 얼마만한 울림을 주느냐에 따라 크기의 차이가 있는 거겠지. <나무를 심는 노인>과 <희생>이라... 생뚱맞지 않은데? :)



    그리고 나 애니메이션계에서 저명한 사람 아니야...-_-;;; 남들이 이 글 읽으면 나 욕한다. 난 그저 이 바닥에서 유랑자, 혹은 잡부 정도지. 변변한 작품 하나 없다.-_-a 하지만 여전히 노력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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