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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13일 토요일

명절

 

매번 명절이 되면 물건은 넘치고 넘치는 상품 속에 사람들이 넘실댄다.

평생을 써도 다 쓰지 못할 것 같이 쌓인 상품처럼 인간의 욕심은 끝닿는 곳 없고

욕심사이에서 방황하다 지쳐 눈을 감으면 욕심처럼 허망한 것도 없다.

저 수 많은 자본의 토악질 속에서 허우적대다 끝내 숨을 거두는 인간의 삶이

당장은 즐겁고 행복하지만 잠시 호흡을 멈춰 먼 발걸음을 두고 바라보면

내 몸에 휘감기고 내 마음에 들어앉은 현대의 삶이 꼭 어울리는 옷만이 아니었음을 알 때도 있다.

2009년 12월 21일 월요일

안분지족(安分知足)

安分知足


‘하나’에 만족하지 못하면
둘을 준다 한들 만족이 되겠습니까.

 

인간의 욕심에 악마적 속성은 없다 했는데
세상에 뒹굴며 하나에 만족하지 못하고

둘, 셋 원하는 욕심만 큰 삶이다 보니
너 죽이고 나 죽이는 판이 되었습니다.

 

자본주의의 윤택함과 無所有의 소박한 가치가

서로 충돌할 때는 자기성찰하는 이들조차
‘하나’도 버거운 짐이 되곤 하나 봅니다.

 

‘하나’도 너무 많아

반으로 쪼개 '너'에게 나누고 나면
반쪽은 다시 완전한 ‘하나’가 됩니다.

 

반쪽이 완전한 '하나'가 되는 이치,

'하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하나'를 놓아버리는 행위로 살아 낼 세상은

작은 가슴으로 품어 낸, 태산도 품을 큰 세계입니다.

 

 

 

 

** 안분지족[安分知足]: [명사] 편안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을 앎.

 

 

90년 중반을 넘어서며, 어느 날.

2006년 6월 7일 수요일

끙끙, 풀어도 풀어도...

스킨 바꾸고 플러그인 설치한다고 끙끙대길 몇 시간. 나름대로 총명한 척 추측해보고 분석해가며 만지작만지작 거렸지만 그 놈의 둔감함 어딜 가나. 하긴 얍삽했어도 해결하지 못할 문제였음에 분명했다. 동생의 도움을 받아 뭐가 문제인지 설명을 듣는데 내가 만지작 거렸던 부분은 애초 문제가 있던 부분과는 물리적, 심리적 거리상으로도 1년 이상, 아니 10년 이상을 두고 있었다. 완벽 해결은 포기하고 일단 제대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만족을 하며 매몰찬 한숨을 쉬며 logout.

블로그던 뭐던 본인의 실력이 미치지 못하면 욕심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할 것. 그렇지 않음 남들 따라 죽어라 배우고 공부해서 자기 걸 만들던가. 그것도 아닌 가슴엔 좁쌀만한 원망심도 날리지 않아야 한다. 늘 마음과 생각은...그리고 욕심은 몸보다 몇 광년은 앞서 가는데 방바닥에 붙은 엉덩이는 달팽이보다도 느리게 순간을 영원으로 생각하며 편안함에 안주하고 있다.

2005년 8월 4일 목요일

서로 다른 욕심.

때론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반응할 때가 있다.
분명 지금 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몸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가령 예를 들면 의자에 몸을 깊이 파묻고 잠깐 잠을 청하는 것 같은.
그 와중에도 사람들은 내 주변을 왔다갔다 하며 소리를 내지만
그러면 그 소리에 일어나 하던 일을 계속 할 것 같지만
몸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조금 더 자고 있다.
몸에 '갖혀진' 정신이랄까?

이렇게 늘 의지와 반대인 몸을 이끌고 산다는 거 쉽진 않다.

흠; 꼭 그런가?
몸과 반대로 움직이는 의지도 있는데.

아침에 번쩍 눈이 떠져도 조금만을 부르짖으며
처절하게 시간을 늦추려고 하는 '의지'도 있지 않은가.

서로 도와서 퍼펙트한 콤비네이션을 보여줘도 시원찮을 판에
둘이 엇갈려 가며 하고 싶은대로 빗나가니
역시 손해보는 건 늘 '나'.냐?

그 둘을 잘 중재하고 화해시키는 게 내 몫 아니냔 말이다.

2005년 4월 5일 화요일

그림자.

힘은 언제나 바람에 실려 다닌다는 건 깨닫지 못하셨구만...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그림자일 뿐이다.
-『아라한 장풍 대작전』중에서

내가 상대에게, 타인에게 힘을 과시하는 건 내 자신의 초라하고 부족한 부분을 감추기 위할 때가 많다. 그 힘이 물리적인 형태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폭력이 아닌 건 아니다. 내 자신을 숨기기 위해 폭력을 휘두른다? 글쎄...

'욕심'이라는 건 결국 부족한 자신의 무언가를 채우기 위한 마음의 형태 아닌가. 그리고 자신이 얻고자 했던 '힘'은 언제나 떠도는 것이다. 순환할 뿐 영원한 건 없다. 영원한 건 '순환한다는 사실'과 '변한다는 사실'이다. 그 속에서 일관성을 유지하는 건 외적인 형태도 중요하겠지만 내적인 유지가 더욱 중요하다.

빛이 있어 그림자가 생기는 건 존재하는 형상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의 그림자라는 말은 꽤 의미가 깊다. 내가 표현하고 드러내는 말, 행동은 내 마음의 그림자고 내 생각의 부산물일 뿐이다. 그림자를 보며 실체라고 믿는 건 심각한 오류다.

지금 나의 모습은 '본래 나'의 그림자다. 그림자와 실체가 하나가 되면 그건 빛도, 어둠도 없는 '완전한 비움'이 됨과 동시에 '완전한 채워짐'이 된다. 불쑥불쑥 나타나는 자유의 모습도 방종과 구분이 되어 하는 이유로 '참'이자 '거짓'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