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3월 17일 금요일

대추리 황새울, 그리고 국가

WBC에서 미국을 가볍게 이겨준 일은 비단 야구팬들만의 기쁨은 아닌 듯 하다. 스포츠 경기를 즐겨 찾아 보지 않는 나로서도 국가 대항전 만큼은 (축구든 야구든) 어느 정도 챙겨 보는 편이다. 민족주의자도 아니고 애국자도 아닌 나도 어쩌면 작은 나라 한국이 어떤 분야에서건 좋은 실력을 보여 주는 것이 뿌듯하게 느껴져서 일 것이다. 사실 이러한 단순한 마음(생각) 때문에 다른 일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비평들을 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테지만 아직까지는 그렇다.

스포츠를 단지 스포츠로 즐길 수 있고 문화를 단지 문화로서 즐길 수 있다면 그건 국가를 초월해 분명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긴 하지만 꼭 한국이 다른 나라를 이겨야 기분이 좋고 내 편이 남의 편을 짓밟아야 기분이 좋은 게 아님을 알면서도 국가 대항 경기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는 한국의 선전으로 인해 외국에 나갔을 때 외국인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짐을 피부로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전히 '비자'를 받아야 들어갈 수 있는 땅이 있고 '국가의 허락'을 받아야만 둘러볼 수 있는 땅들이 많은 현실에 나름대로 적응하기 위해 한국의 위상이 세계속에 드높게 떨쳐지는 것을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한 유혹처럼 느끼게 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국력이 좌지우지 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기 세상에서 한국은 곧 나의 힘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난 이런 현실을 거부하거나 시선을 피하고 싶다. 피부색과 국가의 이름과 연령과 성별을 벗어나 삶을 공유하고 향유할 수 있는 세상이 오는 건 진정 요원한 일일까. 지향하는 세상이 꼭 그러하도록 스스로 주문하고 행동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일까. 정당한 비평에 귀기울이고 사람이 사람다운 삶을 살게 되는 건 불가능한 일일까.

한국에서조차 국민이 국가의 부속품 쯤으로 취급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걸 피부로 느끼거나 접하게 되면 그런 꿈과 희망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으로 전락하곤 한다.

'대추리 황새울 미군 기지 확장'에 대한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물론 그 전에 '영화 스크린 쿼터'에 대해서, 그보다 전에 '쌀개방 반대'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정책의 세세한 부분까지 알지 못하는 내 무지는 반성하고 있지만 찬성과 반대가 대립하는 수 많은 이슈 속에서도 나름 '바른' 자세를 견지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많은 영화배우가 광화문에 서서 시위를 하는 스크린 쿼터보다는 쌀개방 반대 시위가 쉽게 묻히기 마련이었고 그보다 황새울 사태는 더 쉽게 잊혀질 수 있다. 어느 것 하나도 중요하지 않고 소홀할 수 없는 일들이지만 일단 매체를 통해 확장되고 관심을 받게 되는 건 역시 '돈'과 '권력'의 '힘'의 우선 순위에 맞춰 드러나고 있었다.

그럼에도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단지 돈의 가치 우선을 위해서 '미래'를 포기하고 희생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었고 내게 행동하지 못하는 삶의 자세가 부끄러울 뿐이었다. 지금 당장 배 곯지 않으면 다행이고 지금 당장 거리에 쫓겨 앉지 않으면 다행인 것이다. 삶이 그렇게 단순하게 비겁해지더라도 국가의 위상이 드높아지면 내 배가 부르지 않아도 안도의 한숨을 쉬고 삶이 뜨거워질 수 있는 것일까.

최소한 내 나라 내 땅에서 쫓겨다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싸해질 수 밖에 없다. 함께 연대하지 못해도 생각조차 못하게 되는 처지를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 달아오를 수 밖에 없다. 할 수 있는 만큼 해보자... 할 수 있는 만큼 해보자...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행동으로 나투어질 수 있도록.

이 땅에서 태어나 이 땅에서 길러낸 쌀을 먹고 자라고 이 땅의 흙과 함께 늙어갈 사람들. 국가의 힘 겨루기에 영문도 모르고 스러져 간다는 건 정말 비극이다.




관련기사 읽기

김규항 | http://gyuhang.net/archives/2006/03/15@11:44PM.html
민중의 소리 | http://www.voiceofpeople.org/new/news_view.html?serial=37732
한상욱 | http://blog.naver.com/hsworkr?Redirect=Log&logNo=10002297705
컬쳐뉴스 | http://www.culturenews.net/read.asp?title_up_code=101&title_down_code=005&article_num=5390
참세상 |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id=35587
썩은 돼지 | http://blog.jinbo.net/batblue/
한겨례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9012.html

그리고 이런 시각을 보여주는 집단도...-_-;
조선일보 | http://www.chosun.com/editorials/news/200603/200603120474.html
동아일보 | http://www.donga.com/fbin/output?sfrm=1&n=200603170069

댓글 6개:

  1. 비밀 댓글 입니다.

    답글삭제
  2. @Anonymous - 2006/03/19 11:05
    알겠습니다. 노력해야지요.

    답글삭제
  3. 비밀 댓글 입니다.

    답글삭제
  4. @Anonymous - 2006/03/23 22:18
    이 글은 나중에 봐서 바로 연락을 못드렸군요.

    먼저 전화를 주셔서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건강하게 살려고 신경쓰고 있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염원합니다.

    답글삭제
  5. 답답할 뿐이지요.. 저도 요새 대구백화점앞에서 농촌살리기 촛불집회시작한지가 123일째인데, FTA에 반대하고 이런 저런 구호를 내걸지만 정작 해결책은 없는데 그냥 지푸라기붙드는 심정으로 할 뿐이고..



    참, 홈페이지 개편하셨네요? 축하드려요. 앞으로 번창하시길 바래요.

    답글삭제
  6. @왕도비정도 - 2006/03/28 01:29
    그러게요. 뾰족한 대책을 정치하는 사람들이 내놔야 하는데 나몰라라 하고 있으니... 영화쪽은 유명세라도 있으니 그렇다 치지만 농촌, 농민은 무슨 죄가 있을까요. 땅 일궈서 먹고 살아온 죄 밖에 없는데...



    번창은요;;; 테터가 버전 업 되면서 겸사겸사 개편한 것인걸요.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