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단이 마테라치를 머리로 들이 받은 후 기자회견을 통해 사건의 전말을 (전부는 아니지만) 공개했다. 지단의 한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나는 자극을 받은 뒤 대응한 사람이다. 대응을 한 사람이 늘 벌을 받고 분노를 유발한 사람은 절대 벌을 받지 않는데 이는 공평하지 못하다" 물론 그는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고 사과를 했지만 자신의 결백과 정당함을 위해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또 하나의 기사를 읽게 되었다. 이런 주제의 기사는 한국 사회에서 정말 많이 보도되는 것일텐데 내용은 이렇다. "상습적으로 폭력을 휘두른 남편에게 살충제를 먹여 살해한 최모씨(39.여)에 대해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는 것이다.
이 두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고 결과의 경중이 무척 다름을 안다. 다만, 두 가지 내용을 접하며 '폭력'이란 것에 생각을 하게 된 것이고 지단이 한 말에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된 것 뿐이다. 지단이나 최모씨 두 사람 모두 '폭력'을 행사한 것은 맞지만 지단이 행사한 폭력의 결과와 최모씨가 행사한 폭력의 결과는 다르다. 최모씨의 경우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사건은 결과만을 두고 따진다는 것이다. 그에 대해 지단은 "분노를 유발한 사람은 절대 벌을 받지 않는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한국 사회에서 매 맞는 남편도 많다고 하지만 폭력 아래 노출된 주부와 아이들은 더 많다. 그런데 법적인 판단은 늘 결과를 가지고 따진다. 게다가 한국 사회에서 가정 내 폭력은 '집안 일'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모든 책임을 떠안는 사람은 늘 여성과 아이들이다.
지단의 말을 최모씨에게 대입해 보자면 "분노(살의)를 유발한 폭력 남편은 절대 벌을 받지 않는데 이는 공평하지 못하다." 물론! 난 살인을 어떠한 이유에서도 찬성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절대로 반대하는 입장이다.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행위는 어떤 이유에서도 쉽게 용서받을 수 없다. 그런데 생각을 달리 해보면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주부)은 이미 그 목숨을 잃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명이 끊어져 숨을 쉴 수 없는 것만 죽음이 아니라 살아갈 희망을 잃었거나 마음이 죽어도 죽은 거나 다름없는 삶이다.
폭력 남편은 습관으로 혹은 재미로, 또는 정신이상으로 폭력을 휘두르며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하거나 상대를 무력화 시키며 쾌감을 느낄지 모르겠지만 그 폭력을 온 몸으로 받아낸 여성들의 경우엔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롭고 힘들(것이)다. 견디지 못할 정도의 폭력 속에서 삶을 살아온 사람에게 최선, 아니 차악의 방법은 무엇일까. 폭력으로부터 도망을 치거나 그도 힘들 경우엔 폭력의 근원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첫 번째의 경우엔 물리적 폭력만으로 끝나지 않는 폭력의 순환으로 인해 여전히 폭력의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고 두번 째의 경우엔 자신이 모든 책임을 감수하고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두번 째의 경우엔 종종 자식을 위한 경우가 많다.) 두 가지 방법 모두 사실 좋은 결과를 담보할 수는 없다. 이러한 경우에도 늘 "분노를 유발한 자"들에 대한 법적인 처벌이나 사회적 안전장치는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폭력을 휘두르는 이가 늙어 힘에 부쳐 더 이상 폭력을 행사할 수 없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아니면 본인이 깨닫고 반성을 한 후 폭력을 거두어 들이기만 기다려야 하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이혼을 하거나 이혼을 해주기를 기다려야 하는가. 어떠한 경우라도 폭력을 당한 이들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받은 후고 심한 경우엔 살아갈 희망을 잃었거나 정신적, 심적으로 '사망'을 한 뒤일 것이다.
지단의 경우엔 물리적 폭력을 당하지 않았다지만 정신적 폭력을 당한 후였고 그에 따른 대응을 한 것이다. 물리적 폭력과 정신적 폭력은 절대적으로 다른 이야기인가? 차이는 있을 지언정 '폭력'이란 범주엔 별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다. 정신적 폭력을 당해 본 이들은 물리적 폭력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심적 고통을 겪게 되고 그건 시간이 오래 흘러도 쉽게 치유가 되지 않는다. 육체적으로 가해진 폭력은 상처가 아물면 어느 정도 잊게 되지만 정신적 폭력은 그렇지가 않다. 최모씨(그외 많은 가정폭력)의 경우는 물리적 폭력과 정신적 폭력이 동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한 번으로 끝나지 않으며 오랫동안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그저 남자들끼리 주먹다짐 한 번으로 끝나는 싸움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개인의 폭력, 사회의 폭력, 국가의 폭력, 집단(단체)의 폭력은 피해자보다 "분노를 유발한 자"들에게 더 관대하다. 그리고 피해자에게 끊임없이 속삭인다. "거 봐, 너만 손해잖아. 참고 또 참으면 얼마나 좋아." 그리고 다시 폭력을 행사한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가 아니라 "참는 자에게 상처만 있다"
난 '폭력'에 대해서는 '행사하는 폭력'이나 '되돌려주는 폭력' 모두 반대한다. 바램이 있다면 사회, 국가의 법제도나 일반인의 인식 속에서 '되돌려주는 폭력'보다 '행사하는 폭력', '분노를 유발하는 자'들에 대한 제재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모든 결과는 모든 원인에서 비롯되는 법이다. 결과만 바라보기 보다 원인을 분석하고 과정을 이해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남을 격려하는 좋은(?) 일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런 사고는 견지되어야 한다. 원인 분석하고 과정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들다고 말하면 안된다. 재생산되는 잘못된 결과를 막으려면 늘 처음에 단도리를 잘해야 하는 법이다.
* 일본의 경우 1, 2
* 호주의 경우 1
* 미국의 경우 1, 2
* 독일과 그 외 나라의 경우 1
* 지단의 헤딩이 한 번이 아니라 앞서 이미 두 차례나 더 상대 선수에게 폭행을 했다고 하는데 마테라치는 어떨까.
마테라치의 멋진 수비 보기 - 클릭
"분노를 유발한 사람은 절대 벌을 받지 않는다." 는 제목만으로도, 그리고 그 글안에 담긴 몇 가지 문장만으로도 글이 펄떡펄떡 살아숨쉬는 거 같습니다.
답글삭제이번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침공같은 경우에도(만약 제가 들은 이야기가 맞다면)딱 그런 경우에 해당하겠네요. 샬리타상병의 납치사건을 빌미로, 하마스가 전쟁을 원하는 것마냥 호도하다니..
분노를 유발한 사람이 벌을(아니 벌보단 그들이 자신의 죄를 깨달을 수 있도록)받을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한국에선 9월24일날 반전집회가 있다고 하네요.영국등 다른 몇몇국도 함께한다네요. 저희의 행동으로 팔레스타인에 있는 민중들은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느낄 것입니다.
@왕도비정도 - 2006/07/19 21:32
답글삭제팔레스타인 민중들이 이 소식을 들으면 조금이라도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겠군요. 당장 실질적 도움은 될 수 없더라도 심심상련하는 연대는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이지 많은 경우 '분노를 유발한 사람'이 더 큰 소리를 내는 세상이지 싶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단순히 직접적인 상해의 차원을 떠나 인간 사회 어느곳에나 존재하는 폭력이라는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면서 살아야 하는가하는 점을 곰곰히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답글삭제여담으로.. 마테라치.. 악마적 재능을 지닌 선수죠..^^
안정환 선수가 페루자에서 뛸 시적 마테라치에 대해서 "무엇보다 같은 편이라 정말 든든하다."라고 했던 적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 말은 꽤나 묘한 뉘앙스를 풍긴다는..ㅎ
@축구인 - 2006/11/28 19:40
답글삭제감사합니다. :)
완벽한 사회제도를 원하는 건 요원한 일일 수 있겠지만 최소한 개개인들의 인식이 보다 나은 방향으로 개선된다면 이에 맞게 제도도 거듭 개선될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축구 선수에 대해 이해가 많이 부족한 편이지만 마테라치 동영상을 보고 무척 놀랐었습니다. 안정환의 말은 분명 '언중유골'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