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 20일 금요일

나의 행위, 작업 그 모든 것의 이유.

아는 형님 홈페이지 자기 소개란에서 이런 글을 봤다.

글을 쓰는 순간 나에겐 세 가지 소망이 있다. 누군가가 내 글을 읽으면서 울거나, 웃거나, 감동을 받거나... 그렇게만 된다면... 그럴수만 있다면...

형님은 글을 참 맛깔나게 쓴다. 그의 소망이 담긴 글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난 형님의 글을 읽으면서 여러번 감동을 받거나 눈물을 찔끔거린 적이 있었다. 문득, 내가 만드는 작품, 내가 쓰는 글, 내가 하는 모든 행위들에 대해 생각을 해본다. 너무 '투쟁'적이진 않았는지, 너무 '비겁'하게 숨기고 있지 않았는지, 너무 '엄숙'하진 않았는지, 너무 '메마른' 감정이진 않았는지...타인을 들여다 볼 때, 그리고 자주 나를 들여다 볼 때 너무 닫힌 사고와 시선으로 대하지 않았는지 생각해본다.

따뜻한 시선은 따뜻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법이고 따뜻한 마음은 따뜻한 시선을 통해 사물을, 사람을, 세상을 바라볼 때만이 형성된다. 아픈 곳을 도려내고 들춰내도 상처를 치유할 수 있지만 아픈 곳을 어루만지면서도 충분히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어릴 적 배가 아프면 굳이 억지로 약을 먹이기 전에 어머니가 배를 쓰다듬으며 어린 아이를 어르고 달래 아픔을 멈추게 했던 것 처럼.

한 때 세상이 빨리 변화해서 보다 나은 삶을 살아내길 갈구한 적이 있었다. 물론 현재도 참세상이 오기 위해 시간 싸움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 전에 나를 살피고 주변을 살피며 하나하나 감동을 담아낼 수 있는 몸짓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더 크게 자리잡고 있다. 울면서도, 웃으면서도, 감동을 받으면서도 충분히 세상과 소통하고 사람과 소통하는 행위, 작업이 된다면 나 역시 더 바랄나위가 없겠다. 내 행위, 작업이 그런 일련의 소통을 위한 창구가 되면 참 좋겠다.

감았던 눈을 다시 뜨고, 닫았던 감정의 문을 다시 열게 되길. 스스로의 노력과 변화가 쉼 없이 계속되길. 그렇게 바라고 또 바랠 뿐이다.



 

댓글 2개:

  1. 글에 사람이 묻어나는 건 좋은 일인 거 같아요. 형의 글에선 형이 묻어나요. 따뜻한, 한없이. 저도 세상의 변화에 강박이 있었던 거 같아요. 세상의 변화를 이야기할만큼 세상에 대해 아는 것도 아니지만. 그런데 역사에 대해서, 시사에 대해서 잘 몰라도 충분히 따뜻한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걸 느끼고 있어요. 물론 그러한 소통에 대한 아쉬움은 더러 있지만.



    <오래된 미래>를 봤어요. 라다크인들은 기껏해야 수백명 정도가 함께하는 소규모공동체라서 그런지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공동체에 대한 소속,책임의식도 분명하고 공동체 전체를 조망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봤어요. 훨씬 적은 숫자이니까 한 사람 한 사람의 살아가는 모습들이 서로에게 더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니까요..

    우선 수능이 끝나면 저라도 그렇게 살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누구든 형이 만든 애니를 보고 울거나, 웃거나, 감동받거나.. 그럴 수 있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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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왕도비정도 - 2006/10/24 01:31
    (앗, 잘못해서 쓴 글이 날라갔네.-_-;;; 내 홈페이지에서 이런 실수를... 웹 브라우저를 새로운 걸로 교환했더니...쩝... 다시 기억을 더듬어 적어보면...)



    너무 좋은 말만 해줘서 몸둘 바를 모르겠다. 함께 노력해서 소통 잘하고 참 자유인이 되도록 하자. 네 글도 호소력있고 따뜻함이 가득해. 진리를 추구해가는 성실함도 듬뿍 묻어나고 말이지. :)



    사람이 많던 적던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며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늘 이기심이 발동하고 남을 배려하는 것에 대한 소중함이 적은 걸 보면 삶이란, 인간이란 참 묘한 것 같다.



    내 작품이 네 말처럼 사람들의 감정을 이끌어내고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면 정말 정말 좋겠다. 노력해야지. :) 작품이던 삶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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