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변화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변화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09년 12월 7일 월요일

몸과 마음의 습관

'3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습관이란 건 참 무섭다. 내 육근동작 움직임 대부분이 습관 속에서 나오는 것임엔 틀림없다. 

가령, 책상다리를 하고 앉을 때 왼발이 오른쪽 무릎 위에 올라오는 것,
걸음을 걸을 때 어깨를 약간 뒤로 제치듯 펴고 걷는 것,
얼굴 땀을 닦을 때 왼손이 먼저 올라오는 것,
소위 말하는 짝다리를 짚고 서 있을 때 오른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것,
윙크를 할 때 오른눈을 감는 것,
양치질을 할 때 오른손으로 하는 것,
핸드폰은 왼쪽 바지 주머니에 넣는 것,
열쇠는 오른쪽 주머니에 넣는 것,
썩소를 지을 때 오른쪽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 등등

사실 위에 열거한 몇 가지 습관들은 반대로 해도 아무 상관없다. 다만 조금 불편할 뿐이다. 불편하다는 건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지 괴로운 정도는 아니다. 어느 순간 내 행동양식은 습관이 들었고 그 습관에 맞춰 생활하다 보니 다른 식으로 행동하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게 된 것이다. 

내 마음과 사고(방식)은 어떤가. 습관이 들어 쉽게 고쳐지지 않는 부분은 없는가. 어떤 상황에 대한 편견은 없는가. ... 없을 수가 있나. 분명이 있다. 다만, 그 편견과 편향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반대편에 서서 생각했을 때 불편함은 있겠지만 그럴려고 노력은 해보았는가. 반대편에 서서 사고하고 생각하며 불편함을 감수하려고 했었는가를 반문한다. 

자신의 신체에 국한되는 몸의 습관과는 달리 마음과 사고의 습관은 반대로 했을 때 주변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거나 욕을 얻어먹을 수도 있다. 특히 자신의 전체 삶과 가치관에 큰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 하지만 분명 역지사지를 충분히 하고 반대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고민한 후에 자신의 '편견'과 '편향'을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마음과 사고의 습관은 반대에 서는 가상(假想)의 행위를 통해 발전하고 진화하며 폭을 넓혀간다.

쓰지 않았던 다른 쪽 몸, 신체를 어색하게 움직여보면서 내 마음과 사고 역시 나와 상대를 투영해 범위를 확장해 본다. 습관인 줄 모르면 고치려는 노력 역시 사막 위의 신기루마냥 공허하다. 뜬구름 잡는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습관을 습관이라고 명확히 알고 나면 그걸 고치려는 노력, 혹은 범위를 확장시키려는 노력 등은 그 자체로 재미도 있고 신이 난다.

습관은 앎에서 시작하되 망각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그 망각의 강에서 벗어나면 지금의 내 현재가 명확해진다. 변화는 두려움 없는 자의 몫이고 변화는 새로운 삶의 시작을 여는 문열이다. 몸에 배인 (좋지 않은) 것들을 털어내는 것만으로도 변화는 시작된다.

2009년 11월 17일 화요일

몸 보수-입 진보, 광장 진보-밀실 보수... 고리를 끊는 방법은...

...‘지못미’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곳을 쳐다보면서 경제적으로 짭짤한 곳에 뿌리내린 자들, 인터넷에선 진보, 술자리에선 중도, 직장 가면 보수가 되는 자들의 탄식이다.

...그래야 ‘몸은 보수-입은 진보’, ‘생산은 보수-소비는 진보’, ‘광장에서는 진보-밀실에서는 보수’로 분열된 정치적 분열증이 개선되지 않을까. 내가 보기에 지금 한국 사회에서 진정으로 심각한 정치적 문제는 지식인 몇몇이 보수로 전향한 것이 아니라 대다수 시민이 몸까지는 진보로 전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도 역사적 상처에서 비롯된 의심이 깊어서 정치적 주체로 나서는 데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리라.

남재일 교수의 말과 행동의 정치적 분열증을 넘어 중의 일부다.

글 내용의 어떤 부분에 대해선 생각이 조금 다르지만 전반적인 내용에 동의를 한다. 몇 번의 곡절과 앓이를 겪으며 민주사회로 진입했다는 대한민국은 그다지 균형이 잡히지 않은 상태라 할 수 있다. 언젠가는 대다수의 젊은이들이 진보적 성향을 가지고 있으리라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근 1-2년 새에 젊은이들 대다수가 보수적 성향이란 쪽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대다수가 보수란 생각까지 하는 참이다.

사회의 많은 부조리와 병폐들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하다보면 결국 '교육'에 초첨이 맞춰지곤 하는데 이렇게 되면 '원론적'인 이야기만 오갈 뿐이어서 참 대책이 없기도 하다. 이보다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결국 제대로 된 소리를 들어먹을 줄 아는 젊은이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수 밖에 없는데 사회적으로 유아기적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대한민국에서는 그들에게 먹힐 법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부모를 제외하곤 거의 없는 듯 하다. 그들의 '선생님들' 역시 그들을 사회에서 돈 잘 벌고 성공하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 고용된 존재일 뿐 그들에게 사고, 사유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엔 벅차고 나름의 교육철학을 가지고 있더라도 펼치기엔 너무 많은 '적'들이 존재한다.

그래도 역시 가장 빠른 방법은 젊은이들이 깨어나는 것이다. 그들이 의무교육기간을 마치는 순간부터 대학, 군대, 직장, 사회, 새로운 가정을 거치는 동안 세뇌당하지 않고 한 방향으로 매몰당하지 않으며 스스로의 관점과 소신을 가지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해야 한다. 그들에게 다가서는 방법과 그들과 소통하는 방법, 그들에게 새로운 시각과 열린 사고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어렵지만 한 명씩 한 명씩 변화의 모터를 달아주어야 한다. 

몸 보수-입 진보, 광장 진보-밀실 보수... 지금 수 많은 공간, 상황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닌가. 상처를 상처로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 상처는 빠른 속도로 부패하고 결국엔 생명을 잠식한다. 사회의 많은 문제도 마찬가지다.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수 많은 문제들이 있다. 그 문제들은 결국 나의 미래와 내 자식의 미래까지 집어삼킬 것이다. 지금 그 고리를 잘라내지 않는다면 희망과 미래를 말할 기회조차 오지 않을 것이다. 

문제인지 문제가 아닌지 지금보다 더 신중한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문제를 마주하면 '문제다!'라고 소리쳐야 한다. 
옆 사람이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하면 '문제야'라고 알려줘야 한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자기 내부의 시선을 의식해야 한다.
그것이 집단 최면에서 깨어나는 방법이다.

2009년 6월 21일 일요일

두려움, 삶에 대한 몇 가지 생각.

두려움, 그 모든 게 두려움 때문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지금도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은 건 매 한가지다. 듀스포인트의 지리멸렬 끝에 찾아오는 건 두려움.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백척간두 진일보"하라고 했건만 그 "일보(一步)"를 내딛기가 무척이나 어렵다는 걸 알았을 때 내 삶은 지리멸렬해지고 마는 건 아닐까 싶었다.

늘 생각했던 게 인생이란 저울에서 내 마음과 판단이 어느 한쪽으로 단 1g만 기울어도 기울어진 쪽으로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세월의 무게를 받아들일 수록 한 쪽을 선택하는 방법보단 "병행"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쪽으로 변해가는 내 자신을 보면 인생이 예전만큼 박진감있진 않다.

+

이 나라 국민이 된 것이 내 의지 때문이 아니라 태어남과 동시에 이루어진 (내 자신의 선택이 없다는 점에서) 강제적인 것이라면 이 나라는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삶의 가치를 보장해줘야 마땅하다고 투덜댄다. 수 많은 사람들의 에너지가 현실의 (말도 안되는, 상식적이지 못해) 불합리한 상황을 개선하는 데 낭비되어야 하는 것도 슬픈 일이다. 그 모든 걸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역시 두려움 때문이라고 말해도 될 것 같다.

+

사실, 현실적인 타협이라고는 하지만 자격시험을 통과해 자격을 가지고 있는 것과 그것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격에 대한 문제를 개선해보려하는 건 물리적으로 먼 거리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타협을 하라는 뜻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면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게 맞을 듯.

난 그런 기회가 몇 번 있었음에도 끝끝내 거부하고 버티다 나이를 먹어가는 즈음에 살짝 후회도 한다. 사회의 달콤한 유혹을 거부했던, 하지만 내 의지를 따르려 했던 당시의 내 유일한 방법이었지만 그 방법이 거칠었음에 아쉽고 다른 많은 방법들을 찾아보지 못했던 게으름이 후회스럽다는 거다. 기회라는 건 한 번 지나고 나면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기 때문에 그 기회가 자신의 것인지 아닌지를 좀 더 적극적으로 열정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

진흙에 굴러보지 않고도 진흙 속에 있으면 옷이 더럽혀질 수 있다는 건 충분히 알 수 있지만 어떤 경우엔 그 진흙 속에서 굴러봐야만 또 다른 대안들을 찾아낼 수도 있다는 것이니까. 보수화가 되지 않고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서도 삶 속에서 당당하게 늙어가는 사람들이 가장 부럽지만, 그건 단지 그들의 결과만 보고 있는 것 뿐이지. 그들이 살아왔을 지난 날을 조금이나마 역지사지 해보면 지금 나는 무척이나 게으른 삶을 살고 있다고 밖엔 말할 수가 없다.

+

스스로가 우수하다 우수하지 않다는 것은 단지 경쟁률, 비교법, 수치법 등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우수하다는 것은 삶 속에서, 진행형 속에서 빛을 발할 뿐이다. 우수하다는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도 무척 중요한 것이고. 삶이 그런 것 아니겠는가, 기준에 따라서 비참해지기도 하고 행복해지기도 하는...



- 지난 날 벗과 나눴던 대화를 옮겨 와 기록해 둔다.(약간의 수정이 있음)

2009년 3월 3일 화요일

잊혀진 김용철 변호사, 잊혀지지 않는 삼성



많은 이들은 유명하거나(그것도 세계적으로 알려졌다면 더더욱), 힘 있거나, 다수에 속하는 사람(집단)이 하는 얘기는 별 의심없이 받아들인다. 그들이 주장하는 게 다소 억지라 할지라도 또는 그들의 행실에 구린내가 풍기더라도 그들의 영향력을 생각하면서 그들이 가진 유명세에 기대어 대부분 받아들이거나 어떻게든 받아들여주려고 알아서들 노력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유명해지거나 힘을 갖게 되거나 공적인 자리에 얼굴을 자주 들이밀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알아서 떠받들어 준다. 크고 작은 비리, 불법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회에 미칠 파장까지 계산기를 두드려가며 계산해 주고 변호해 주고 보호해 준다.

반면에 소수자, 힘없는 자, 알려지지 않은 자가 하는 이야기는 왠지 꺼림직하고 믿음이 안 가고 논리만 풍성해서 머리만 아플 뿐이다. 확실한 증거를 보여줘도, 직접 겪은 일이라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사람들은 별로 믿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들을 동조하는 순간 자신도 유명하지 않고 힘없는 자들과 도매급으로 함께 취급될까 두려워서인지 애써 외면하고 싶어한다. 제아무리 완벽한 논리와 명백한 증거를 들이댄들 유명하지도 않은데다 소수자고 힘도 없는 자라면 오리려 그에게 상황논리로 역공을 취하고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으며 다시는 힘있고 유명한 자에게 대들지 말라고 훈계한다.

물론 예를 들기 위해 '유명 vs. 무명', '힘있음 vs. 힘없음' 등으로 이야기한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너그러이 바라보면 그다지 과장된 내용도 아니다.


김용철 변호사가 양심선언을 한지도 1년이 훌쩍 넘었다. 삼성은 무혐의 처리를 받았지만 목숨을 걸고 양심을 좇아 삼성의 비리를 고발한 김용철 변호사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거나, 키워준 은혜를 배신한 사람쯤으로 기억되거나 또는 받아먹을 거 다 받아먹고 또 무언가를 원하는 파렴치한 정도로 기억되는 게 전부인 것 같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삼성은 대한민국의 동량이고 대한민국의 원동력이며 대한민국의 미래다.

김용철 변호사는 언론의 주목을 받은지 몇 개월 후에 그가 예측한대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으며 그런 후에 (용감하게도!)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그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희망없는 대한민국에서 분투하는 외로운 사람의 쳐진 어깨를 보는듯해서 마음이 편치가 않다. 물론 '삼성재판' 이외에도 이땅에서는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이 끊임없이 일어났기 때문에 '삼성'에만 집중할 수 없었던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잊혀질 줄이야. 법원에서 '무혐의 판결'을 내리는 순간 삼성은 아무런 죄가 없는, 아무런 혐의가 없는 깨끗한 기업으로 거듭나고 김용철 변호사는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렸다. 검찰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건 '음모론'을 이야기하는 것 정도로 치부되고 삼성에 대해 비판의 화살을 거두지 않는 건 '대한민국이 망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치환되고 있으니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은 너무 순진한 발상이었거나 너무 이른 발언이지 않았나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다.

언제쯤 변화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며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될까. 한 사람의 양심선언(또는 폭로)만으로도 대기업의 비리, 정치인과 정당의 부정부패가 철저히 조사받고 처벌받을 수 있게 될까. 이젠 후안무치한 일도 양지에서 드러내놓고 하는 세상이 되어버렸으니 그런 희망을 품는 것 자체가 무의해져버린 것일까. 박노자씨의 말마따나 지금 현 상황에서의 변화라는 건 기껏해야 '보수'에서 '또다른 보수'로의 자리바꿈 정도니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진보가 힘을 더 갖지 않는 한, 의식이 좀 더 깨어나지 않는 한은 말이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마련되는 건 대부분 '한 개인'으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지만 변화의 완성을 위해서는 그 '개인'을 지지하고 힘을 함께 해주는 '수 많은 개인'들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20090612 추가 :
[한겨레21 인터뷰 링크] “있는 놈, 잘난 놈에게는 법도 굴복한다는 것”
[VS] 빵장수로 변신한 김용철 전 삼성 법무팀장 “대법원의 에버랜드 무죄판결은 주류사회 견고함 보여준 선고”

2006년 12월 16일 토요일

급히 ... 돌아갑니다.

잠시 왔다가 급히 갑니다. 와서 포스팅 한 번 못하고 일 보고, 사람 만나고, 돌아다니다가 일주일이 훌떡 지나갔습니다. 비자만 연장해서 바로 들어가는 꼴이 되었습니다. 원래는 한 보름정도 있을까 했는데 학교 일이 좀 급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에 있는 동안 많은 격려와 관심, 응원을 보내주신 여러 인연들에게 머리 깊게 숙여 감사드립니다. 점점 사는 게 쉬운 일이 아님을 느끼고는 있지만 그건 세상에 타협하는 방법을 배워간다는 뜻이 아니고 다시 마음 새롭게 추스려 일어서겠다는 확고한 신념을 일깨워주는 작은 변화입니다. 보다 더 크고 보다 더 속 깊게 처신하고 움직이며 걸어가야겠습니다. 앞으로 또 어떻게 변하게 될 삶일지 모르겠지만 꽤 살만한 세상이지 않나 싶습니다. 해야 할 일이 무척 많다는 느낌입니다. ...그래도 차근차근.

중국 들어가서 다시 포스팅 시작하겠습니다. 좀 더 즐거운 느낌으로 마주하길 바라겠습니다. :)

2006년 10월 20일 금요일

나의 행위, 작업 그 모든 것의 이유.

아는 형님 홈페이지 자기 소개란에서 이런 글을 봤다.

글을 쓰는 순간 나에겐 세 가지 소망이 있다. 누군가가 내 글을 읽으면서 울거나, 웃거나, 감동을 받거나... 그렇게만 된다면... 그럴수만 있다면...

형님은 글을 참 맛깔나게 쓴다. 그의 소망이 담긴 글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난 형님의 글을 읽으면서 여러번 감동을 받거나 눈물을 찔끔거린 적이 있었다. 문득, 내가 만드는 작품, 내가 쓰는 글, 내가 하는 모든 행위들에 대해 생각을 해본다. 너무 '투쟁'적이진 않았는지, 너무 '비겁'하게 숨기고 있지 않았는지, 너무 '엄숙'하진 않았는지, 너무 '메마른' 감정이진 않았는지...타인을 들여다 볼 때, 그리고 자주 나를 들여다 볼 때 너무 닫힌 사고와 시선으로 대하지 않았는지 생각해본다.

따뜻한 시선은 따뜻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법이고 따뜻한 마음은 따뜻한 시선을 통해 사물을, 사람을, 세상을 바라볼 때만이 형성된다. 아픈 곳을 도려내고 들춰내도 상처를 치유할 수 있지만 아픈 곳을 어루만지면서도 충분히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어릴 적 배가 아프면 굳이 억지로 약을 먹이기 전에 어머니가 배를 쓰다듬으며 어린 아이를 어르고 달래 아픔을 멈추게 했던 것 처럼.

한 때 세상이 빨리 변화해서 보다 나은 삶을 살아내길 갈구한 적이 있었다. 물론 현재도 참세상이 오기 위해 시간 싸움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 전에 나를 살피고 주변을 살피며 하나하나 감동을 담아낼 수 있는 몸짓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더 크게 자리잡고 있다. 울면서도, 웃으면서도, 감동을 받으면서도 충분히 세상과 소통하고 사람과 소통하는 행위, 작업이 된다면 나 역시 더 바랄나위가 없겠다. 내 행위, 작업이 그런 일련의 소통을 위한 창구가 되면 참 좋겠다.

감았던 눈을 다시 뜨고, 닫았던 감정의 문을 다시 열게 되길. 스스로의 노력과 변화가 쉼 없이 계속되길. 그렇게 바라고 또 바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