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6월 29일 화요일

[mov] 올드보이


감독 : 박찬욱
배우 : 최민식(오대수), 유지태(이우진), 강혜정(미도), 지대한(주환), 오달수(철웅)

<올드보이>는 만화로 먼저 접했었다. 박찬욱 감독이 <복수는 나의 것>을 만들고 난 후 차기작으로 <올드보이>를 만든다는 기사를 접하고 만화를 구해 읽었다. 만화는 의외로 흥미진진했고 아무런 액션도 등장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팽팽한 긴장감이 끝까지 지속되는 느낌이 있었다. 물론 결말에서 뒤통수를 얻어맞고 멍 한 느낌을 받긴 하지만 나름대로 만화의 소재나 스토리 진행 등은 맘에 들었다. 당시 만화의 결말이 시리즈 완결을 독촉받는 바람에 억지로 짜맞췄다는 떠도는 얘기를 들었었다. 그 만화를 보고 나서 거의 1년(혹은 그 이상)을 기다려서 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것도 중국에 있는 바람에 극장에서 못보고 DVD로 봤다.

최민식은 좀 식상하다는 느낌도 받았고 약하다는 느낌도 받았다. 유지태는 기대 이상으로 잘 해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강혜정의 돋보이는 야릇한 느낌, 매력. B급의 냄새가 <복수는 나의 것>보다 훨씬 더 물씬 나고 박찬욱의 스타일이 아닐까 할 정도로 강한 이미지를 느꼈다. 결말과 과정이 원작 만화와 많이 다른 것은 참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나도 만화를 읽으면서 소재는 너무너무 좋은데 영화로 풀면 재미없겠다고 생각했었으니 더더욱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톡톡 튀어나오는 색다른 스타일이 영화를 방해하지 않아서 좋았지만 힘을 더 실어주지 못한 게 참 아쉽다고 느껴졌다.

영화를 보기 전에 스포일러(?)를 다 봤기 때문에 감안은 하고 봤지만 한국에서 논란이 되는 근친상간이란 문제는 나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어쩌면 애초에 인간의 시작은 근친상간으로부터 시작되지 않았나? 사회가 발달하고 정복의 역사를 거치면서 우수한 인종을 발굴하기 위해 적을 회유하기 위한 정책 때문에 근친상간이 금기시 되고 있긴 하지만 심리학에서도 분명 근친상간에 대한 본능은 존재한다고 들었던 것 같다.

난 이우진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되고 혀를 잘라낸 오대수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어쩌면 이우진은 오대수로 말 한마디로 인해 죽은 누이의 복수보다는 자신의 사회적 자존심 때문에 오대수를 감금한 게 아닌가 싶었다. 영화에서도 그렇게 느껴졌다. 뭐랄까. 자신의 속내를 들켰을 때 낯뜨거움, 부끄러움, 수치심 - 모두 사회가 만들어낸 감정들 - 등이 오대수를 15년씩 가두게 한 동기는 아니었을까? 오대수의 말 한마디로 이우진의 삶이 달라졌듯이 이우진의 한 웅큼의 마음이 오대수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었다. 그리고 둘은 서로 비겼다. 아니, 내가 볼 때는 이우진이 졌다. 스스로의 마음을 통제하지 못한 그 분열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했으니 말이다. 반면에 15년이나 갇혔던 오대수는 미칠 법도 한데 잘 견뎌냈고 살아남았고 사랑을 찾았다. 사회적으론 용납되지 않는 사랑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결말에 대해 말이 많다고 하지만 나 스스로 확신있게 말하자면 오대수도 최면이 풀렸고 미도도 최면이 풀렸다고 생각한다. 오대수도 앞으로 미도가 자기 딸임을 알면서도 사랑하며 살테고 미도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난 미도가 오대수에게 '아저씨~'라고 부르는 마지막 대사에서 아저씨와 아빠라는 호칭 두 개 중에 뭘 불러야할지 망설이는 표정을 보았다. 감독이 아니라고 우겨도...! 그리고 약간은 체념한 듯 하지만 정말 사랑하는 듯 오대수를 끌어안고 울먹이는 미도를 보았다.

난 그 둘의 사랑은 인정하련다. 이런저런 윤리도덕적 잣대를 들이댄다면 결국 내 생각도 용납되지 못할테지만 사랑만큼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리고 최면에 깨어났을 때도 모른 척 하고 살아갈 그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혼란스럽고 힘겨울지 미루어 짐작은 된다. 하지만 어쩌라고. 사랑하게 되었고 그 사랑은 자신들이 스스로를 서로를 인식하지 못했던 때부터 시작된 것인걸.

박찬욱의 복수 시리즈 3탄이 벌써부터 기다려지고 있다. 애정과 복수의 줄타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는 건 결코 즐거운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큰 범주 내에서의 애정과 복수의 줄타기가 아니더라도 애정과 애증의 줄타기는 늘 하고 살지 않는가. 애증이 눈처럼 굴려지면 복수를 달고 오는 법. 그 복수는 넓고 깊은 애정의 시선으로 봐줘야 그런 마음으로 대해줘야 풀려지는 법. 영화가 많은 화두를 던져주면 던져줄수록 나에겐 생각할 기회도 공부할 기회도 많아지니 좋다.

그런데 솔직히 난 <올드보이>보다 <복수는 나의 것>이 훨씬 좋다.

2004년 6월 23일 수요일

배꼽 빠진 날.

생일.
 
언젠가부터 별로 신경도 쓰지 않고 살아왔던 생일.
그래서 가끔 생일인지 잊을 때도 있다.(고 말하면 좀 과장이겠지만...)
별로 마음에 두고 살지 않은지 어언 20년 정도 되는 것 같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그런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으니깐.



그런데 중국에 와서 동생들 밥한끼라도 대접하고 싶어서
문득 외국에 나와서 생일 한 번 치뤄보자는 생각에 주변에 아는 동생들을 불렀다.
나 빼고 18명이 모여줬더군. 물론 부르지 못한 애들도 있긴 하다.
 
고맙고 고맙다. 선물도 많이 받고... 살면서 이렇게 선물을 많이 받아보다니... 
그런데 그것보단 동생들 마음이 고맙고 이쁘다.
오늘은 나이도 어려지는 것 같고 마치 황제가 된 것 같은 기분.
 
미역국은 못먹었지만 밝은 에너지를 충전했으니 좋다.
 
어머님,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2004년 6월 18일 금요일

조리.를 사다.

여름도 다가오고 날은 더워지고
주변의 녀석들도 샌들이네, 조리네, 슬리퍼네 신고 다닌다.
왠지 조리.를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시장에 들러 한 켤레 샀다.



조리.는 처음 신어보는 지라 끼워지는 발가락 사이가 조금 아프기도 하지만
금방 익숙해지겠지.
조리.를 신고 돌아다니는 길이 마치 해수욕장 주변의 상가를 돌아다니는 느낌도 살짝 든다.
 
더운 날, 사람들 그리 많이 모이지 않는 조용한 해변가에 가서
발 담그고 모래사장에 앉아 더위를 즐기고 싶다.

2004년 6월 16일 수요일

오랜만에는...

며칠 전에 헬스 클럽 등록을 했다.
한달 이용권이 아닌 30회 이용권을 구입했다.
가끔 빠지기도 하고 그러기 때문에 30회 이용권이 나에겐 이득임엔 틀림없다.



헬스 클럽 첫 날, 예전에 늘 하던대로 무게를 설정하고 운동을 시작했는데,
영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운동을 많이 쉬었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 들기 시작한다.
꼭 그렇지도 않다. 예전엔 좀 쉬었다 해도 충분히 소화를 해냈었던 것 같은데
문득 나도 나이를 먹어가고 있음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해는 기다려주지 않고 흘러가고 나도 변해가는데
단지 내 스스로 변한 것을 인정하지 않거나 변해가는 걸 느끼지 못하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내 몸도, 마음도 변해가는 걸 가만히 들여다 보면 아는데
나 외의 다른 사람들은 변하지 않고 살겠는가.
예전에도 혹은 근래에도 사람을 대하며 간혹 달라져가는 모습들에 놀랄 때가 있기도 하고
변해가는 모습에 어색해하고 달갑지 않을 때도 있다.
 
아무래도 오랜만에 무언가를 할 때, 누군가를 만날 때는
변해있음을 먼저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대해야겠다.

2004년 6월 14일 월요일

색다른 식사.

후배가 학교 교수님 소개로 현장실습을 서양식 식당에서 한다고 한다.
식사 가격은 일반 중국 음식점보다 비싸긴 해도 후배가 한 번쯤 들려달라 부탁을 한다.
비싸봐야 한국에서 먹는 양식보다는 싸니 부담없이 갈 수는 있겠다.
식당 이름은 '파라다이스'.
간판은 무척 큰데 비해 식당 안은 그리 크지 않은 아담한 규모다.



후배가 추천해주는 식사 주문했다.
후배가 아는 사람이라고 사장님이 커피도 서비스로 내어 주고
커피 무료 쿠폰(한장에 18원;오~)도 3장이나 주는 특혜를 베풀어 주셨다.
 
마침 좀 떨어진 자리에는 후배가 다니고 있는 학교의 교수들-모두 서양인-
여러 명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있다.
그리고 내 바로 옆자리에는 중국인 여자 둘이 식사를 하고 있고
내 뒷 편에서는 서양인과 한국인(두 사람은 부부)이 식사를 하고 있다.
중국에서 조금은 독특한 식사를 하게 되었다.
여기저기에서 다른 언어들이, 때론 익숙한 언어들이 들리고
식사는 늘 먹던 것과 다르다. 디저트로 나온 커피를 천천히 마시면서 분위기를 즐겨본다.
 
창 밖으론 좋은 차가 지나가고 조금 헐어보이는 건물 앞에는 남루한 아이가 계단에 앉아있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고 세상 속에서 그렇게 사람들과 만나고 사나 싶다.
가끔 내가 여기 살면서 외국인임을 잊고도 살지만
외국인임을 자각하더라도 예전에 배낭여행 다닐 때처럼의 자유로움은 거의 사라진 듯 싶다.
 
조금 다른 공간에서 조금 다른 식사를 하고 조금 다른 분위기를 느끼며
또 다시 내가 지금 외국에 나와서 살고 있음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그렇게 기분이 좋은 것도 그렇다고 기분이 나쁜 것도 없는
그저 평범한 듯, 색다른 듯 익숙한 풍경 속에서의 두 어 시간.

2004년 6월 10일 목요일

공부하러 떠나는 동생에게...

동생이 호주 시드니로 'audio engineering'을 공부하러 떠난다.
오후 8시 비행기라고 한다.
내가 한국에서 중국으로 떠나올 때 두 번이나 공항까지 와서 배웅해줬건만
난 지금 중국에 있으니 공항까지 배웅도 못해주고 미안할 따름이다.
배웅을 해주고 못해주고가 문제가 아니라 이것저것 준비할 때
형으로써 해준 게 뭐가 있나 스스로 곰곰히 생각하고 있다.



어릴 때는 무조건 어리게만 봤는데
어느 날 부터인가 나보다 더 속이 깊어지고 사고의 폭이 깊은 걸 느끼면서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새삼스럽게 느끼곤 했다.
 
외국에 가서 건강하게 아프지 않게 공부하는 게 최고라는 걸
나도 중국에 와서 알게 되었지만 - 아니 그 전부터도 알았지만:)
어쨌든 잘 살다가 왔으면 좋겠다~
 
상인아~ 잘 살다가 와~
공부도 열심히 잘 하고 오고.... :)
 
나중에 작품이나 하나 하자. 하하~
 
멀리 가는 길 편안한 여행이 되길~ 행복한 삶이 되길~ 힘내자!!!

2004년 6월 4일 금요일

배우는 기회.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나보다 어릴 수도 나이가 많을 수도 있는데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는 배우는 기회를 쉽게 찾아낸다.
그런데 나이가 어린 사람과 함께 얘기를 하거나 자리를 함께 할 때는
배우는 기회를 마련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사실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살아오면서
얼마나 치열하게 살고 고민하며 살았느냐가 더 중요한 법인데...
 
게다가 어떤 친구들은 내 앞에서 말을 잘 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심량을 측량하는 건 나로써는 거의 불가능하다. 내가 맑아지지 않는 한...



주변에 참 나보다 대단한 동생들이 많다.
나에게 그건 참 행운이라고 본다.
그 동생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자극을 받으니 고맙다.
 
사실 나이를 떠나 누군가와 함께 할 때 그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스스로가 열려있을 때이거나 사심이 없을 때일 것이다.
나도 아직 사심을 다루지 못해, 열려있는 시간을 지속시키지 못해
배워야 할 좋은 기회들을 많이 놓친 것을 후회한다.
 
지금도 늘 내 친구, 선배, 후배들은 나에게 좋은 에너지를 보내주고 있는데
그 에너지를 다 받아내기에는 수양이 부족함을 느낀다.
 
안테나를 좀 수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