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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하지만 게으른 족속들. 전에 내 주변에 이런 족속들이 꽤 있었다. 그들은 민감한 자기촉수와 날카로운 혜안과 빼어난 감각, 섬세한 시각의 소유자들로 마음만 먹으면 금방 일을 낼 것만 같은, 그들이 뜻만 모으면 한예술할 것 같은 그런 위인들이었다. 사실, 그동안 소설이나 영화, 미술이나 연극등 문화적인 다방면에서 화제에 올랐던 것들 중 그들이 하릴없이 농담처럼 또는 사뭇 진지하게 논의했던 것들과 비슷한 것들이 많았다. 우리나라에 포스트모더니즘이 유행하기 전에 포스트모더니스트적인 발상을 했고 지금 자행되는 엽기 문화에 몇년 앞서 엽기적인 일들을 몸소 실행(?)하거나 예견하기도 하였다.
PC가 대량보급되자 "이제 인간이 컴퓨터에게 일석점호받게 되네"라고 하더니 바이러스전염에 전 지구촌이 난리를 치고, 필립 그라스의 미니멀한 전자음악을 들으며 "앞으로 이런 음악에 애들이 로봇이 춤추는 것처럼 출거야 그지?"라더니 요즘의 테크노가 등장했다. 새삼, 감탄스러워진다.
그런 탄성이 터져나올 법한 일들은 한두번이 아니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내심 놀라서 정말 저들에게서 무언가가 나오겠구나 하고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들에게서 사건이 일어나지 않고 한예술이 나오지 않는 것은 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약점이 하나 있는데 그 약점이란 게 한결같이 모두 게으르다는 것이다.
나 또한 게으름 피우는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보다 더 심한 그들은 일종의 장애 수준이다. 한때 나도 그들과 어울리면서 10년 가까이 백수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우연한 사고로 백수생활을 청산하게 되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들에겐 '고만한' 사건도 없어서인지 아직까지 그 모습 그대로 있다.
이들에겐 일종의 자기들만의 문화가 있는데 뭐랄까? 게으름의 미학이랄까? 뭐 그런게 있는데, 게으름의 미학이란 게 딴 게 아니고 게으름과 더불어 묘한 순결주의 같은 게 냉소주의와 함께 복잡하게 얽혀 있다. 내가 정신과의사는 아니지만 이 정도 되면 타인으로 인해 상처받기 싫다는 자기 보호 본능까지 작용하게 된다는 것을 경험상 알 수있게 된다. 그래서 스스로 자기를 무력화하거나 시니컬한 무관심으로 일관한 뒤 끊임없이 문화적인 공간으로의 도피를 감행한다.
"보는 것만 고수"라는 말이 있다. 예민한데 게으른 족속들한테 일어나는 현상인데. 너무나 많고 다양한 문화적인 체험으로 보는 감각만 일류라는 얘긴데, 혹시 예민하고 게으른 족속들 중에 실재는 없고 보는 감각만 일류인 친구들이 있다면, 그래서 괴롭다면, 조금만, 조금만 더 움직여 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이 글은 예민하지만 게을러서 괴로운 족속들을 위한 글이다. 그냥, 게으른게 좋다라고 하는 친구들도 있을 터이니 더이상의 언급은 자제하겠지만 어쨌든 조금씩, 자기를 실험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기대 이상의 자기실현을 구현할지도 모르고 그로 인해 또 다른 세상이 기다릴지도 모르니까. 혹시 자기가 부지런한 편인데 일반적으로 둔감하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에게 사족 하나. "나이먹고 일정하게 하는 일없이 빈둥거리다보면 예민해질 수 있다."
_씨네21_200.8.15~8.22_265호_숏컷 김지운 칼럼
위 글을 읽고 난 후 얼마나 마음이 찔렸는지 모르겠다. 내가 꽤 실력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앞서가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게으름을 피우는데 일가견이 있는 것 같고 보는 것만 고수인 것 같아 속내를 들킨 듯 얼굴이 화끈거렸다.
물론 남들의 탄성을 자아낼 정도는 아니었지만 작은 일들에 대해 미리 예측 해 맞추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빼어난 나만의 촉수가 있거나 혜안이 있었다는 뜻은 아니다. 어쩌면 몸을 움직여 이뤄내는 경우보다 입으로, 말로만 살아온 것은 아닌가 돌이켜 보게 된다.
그건 어쩌면 내가 언제부턴가 남들과 함께 잘 어울리지 못하는 습성과도 관계가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고집이 세다고 비난을 받기도 하고 잘난척 한다고 뒷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여전히 내 스스로의 생각과 행동에 큰 부끄러움은 없다고 믿는다. 다만, 이러한 내 태도, 자세가 결코 작품을 만들거나 생활의 질을 높이는데 직접적 영향을 주진 않았다는 것이다. 생각이 가슴까지 닿질 않고 가슴이 몸을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몸으로 움직여 뭐든지 이뤄내고 만들어 내는 게 중요함을 다시 또 반성한다.
멀리서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고 있는 친구의 글을 읽고 솔직히 감동했다. 어쩌면 그렇게 사는 사람은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었을지 모를 일이지만 게으른 내겐 위 글과 더불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아니, 이젠 많은 생각도 필요없겠다. 움직여야지. 조금만, 조금만 더 움직여야겠다.
삶은 어쨌건 단 한 번이다.
엊그제 봤던 소로우의 <월든>이 생각나네요. 그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호수에서 멱을 감았다구 해요. 하나의 종교적행사처럼 새벽의 여신을 숭상했다고. 하루하루가 그가 더럽힌 시간보다 더 이르고, 더 성스러운 새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한다면,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사람일 거래요. 같은 하루라도 별 기대해 볼 일 없는 하루가 되지 않도록 정진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요샌 아침에 일어나면, 108배와 반야심경을 외우고 있다는.. 근데, 건너뛰는 날이 더 많다는^^; 30배로 줄일까 고심중이예요ㅠㅠ
답글삭제아무튼 좀 더 적게 생각하며 간소하게 살아야겠습니다.
@왕도비정도 - 2006/01/14 10:52
답글삭제오~ 108배와 반야심경을... 저도 과거엔...쿨럭.-_-;
하루하루를 새롭게 한다는 건 쉽지만 어려운 일 같아요. 최소한 뒷걸음 치지는 않도록 해야겠어요. 게으른 몸을 다스리는 건 역시 부지런한 습관을 들이는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왕도비정도님이 하고 있는 방법을 도입해 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