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9월 27일 수요일

후다닥 지나가버린 날들...

장춘국제애니메이션포럼 기간동안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한국에서 오신 교수, 감독, 전문가들을 모시고 일정 조정이며 통역을 하느라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원래 포럼조직위 위원으로 시작한 게 아니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포럼이 시작한 후에는 더더욱 다른 일들까지 맡아 관리하고 처리하느라 진땀을 뺐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좋은 경험이 되고 많은 중국 선생들과 알게 된 걸 생각하면 그나마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처음부터 일에 투입되지 않아서 발생했던 문제들과 행사 진행의 미비함으로 인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꽤 힘든 시간이었다. 준비기간과 행사 기간을 합해 그렇게 몇 주가 훌쩍 지나가 버렸다.

다섯 분의 강연에 줄곧 통역을 맡고(강연 통역은 정말 어렵다.-_-;) 저녁 만찬 장소나 기타 장소에서도 한국 귀빈들과 대화를 나누려는 학교 이사장 및 길림성, 학교 간부들의 요청에 통역은 쉴 새가 없었으니 말을 두배, 세배 더 하게 될 수 밖에 없었고 하루 일정이 끝난 후 새벽까지도 다음날 일정을 위해 소회의를 하거나 상의를 하거나 한국분들을 모시는 일까지 하다보니 행사 막바지에 이르러 그만 감기가 들고 말았다. 한국에서라면 혹 덜 피로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중국(외국)사람들과 함께 일을 한다는 것은 내게 언어 방면과 사고 방식의 차이로 인해 몇 배나 더 신경을 써야하는 것이었고 그만큼 쉽게 피로를 느끼는 일이었던 것이다. 물론 언어는 여전히 부족함 투성이지만 나름 대견하긴 하다.-_-v

행사 기간동안 사진도 좀 찍고 한국에서 오신 분들 중에 오랫동안 뵙지 못한 분들이 계셔서 저녁에 편하게 술이라도 한 잔 하며 얘기를 나누려던 생각은 그저 생각만으로 그쳐야 했고 오신 분들과 제대로 얘기도 나누지 못한 채 작별을 해야했다. 특히 아쉬웠던 것은 기타 국가-캐나다, 미국, 유럽, 체코 등등에서 온 교수, 감독, 전문가들의 강연을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포럼이 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영어를 좀 해보려고 노력 중이었는데 그들의 강연을 듣거나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는 전혀 만들 수 없었다.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행사는 끝나버리고 몸 추스리고 감기도 다 나았는데 막바로 단편 작업에 돌입을 하게 되었다. 작업은 언제 시작하더라도 늘 즐거운 마음이 먼저 앞선다. 다만 오랫동안(?) 작업을 하지 못했던 이유로 조금 부담스럽긴 하지만 이 정도의 부담은 오히려 약간의 긴장감을 동반하기에 느낌이 좋다.

저녁 늦게까지 작업할 공간이 생겨서 더 좋다. 틈틈이 공부도 해야겠다고 불끈!

2006년 9월 24일 일요일

요 며칠 블로그 접속 불가...

애니메이션교육포럼을 마친 후 몇 가지 마무리 작업까지 끝낸 후 맘 편히 블로그를 접속하려는데 계속 '페이지를 찾을 수 없다'는 문구만 뜬다. 중문블로그는 잘 접속이 되는데 왜 안되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리)가 없다. 결국 동생에게 부탁해 원인을 조사해달라고 의뢰를 했는데 서버를 담당하고 있는 측에서 연락이 왔다. 역시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용어들로 가득한 내용으로.

무슨 index.php가 없다고 설명을 해대는데 난 아무리 읽어봐도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역시 동생에게 패스~. 동생의 엄청난 삽질 끝에 정상복구가 될 수 있었다. 서버 담당하는 측에서 몇 차례 연락이 오긴 했는데 여전히 내겐 난해한 용어와 이해 불가능한 용어들로 가득한 내용들 뿐이었다. 블로그 접속이 되지 않아 부득이하게 포스팅을 하지 못하게 된 건 고사하고 블로그를 찾아와 주신 분들이 '페이지 열 수 없음' 메시지를 보고 발길을 돌렸을 걸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미안합니다."

문득 tistory로 옮길까...라는 생각이 강렬하게 드는 날이었다.

행사 관련 후기는 좀 더 마음이 한가할 때 정리해서 올려야지.

2006년 9월 15일 금요일

근황, 포럼준비 및 작업 시작을 생각하며...

제2회길림국제애니메이션교육포럼이 16일 정식 개막한다. 최근 좀 바빴던 이유가 이 행사를 돕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원래는 다른 일로 정신없어야 했을 텐데 행사가 겹치는 바람에 일단 포럼에 투입되게 되었다. 간단한 번역만 도와주는 일이었는데 점점 책임져야 할 일들이 불어나더니 급기야는 어느 정도 선까지는 함께 일하는 친구들을 지휘하게 되었다. (중국어 번역도 버거운 녀석이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지휘를 하게 되다니...) 물론 젊은 친구들이었으니 오빠, 형처럼 따르는 부분도 많이 작용했을 듯 하다. 물론 한국인끼리 느끼는 감정과는 사뭇 다른 것이겠지만.

저녁 늦게 퇴근하는 일이 잦아지다가 새벽까지 일을 하는 시간이 생겨나고 어제는 날을 꼬박 새며 문서를 정리하며 행사 준비를 했다. 처음부터 행사 준비에 참석한 게 아니라서 큰 도움은 되지 못했겠지만 가장 바쁜 시기에 나름 할 만큼 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학교(길림예술학원동화학원)의 수 많은 인원들은 나보다 더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을 테고 함께 조직위원회를 이끌어가던 Fu선생도, 그 아래 Tong, Zhang, Bao,Yu, He, Bai..등도 할만큼 열심히 했다. 내겐 여러 크고 작은 문제들이 불거지는 일이 없었기에(외국인이니까) 나름 심적으론 부담이 적었다. 암튼, 조직위원회, 그리고 준비하며 열심히 한 이들에게 격려의 박수. 짝.짝.짝.

여전히 중국어 성조는 들쑥날쑥 흔들리고 단어들은 생각이 잘 나지 않지만 들어주려고 애를 쓰고 이해해주는 친구들 덕에 즐거운 '노동'을 하지 않았나 싶다.

몇 가지 일들에 대한 감각감상은 포럼이 끝난 후에나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일이 끝나면 장비 세팅 문제도 해결해야 하고, 본격적으로 단편 애니메이션 작업에 돌입하게 된다. 그 기다리고 기다리던 작업실이 학교 안에 마련이 되었고 그럭저럭(보다는 더 나은) 괜찮은 컴퓨터 설비로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시작이 15일 오늘인데. 난 오늘부터 귀빈 마중부터 행사 시작, 마무리까지 일을 해야하니 다음 주 부터나 Zeng선생과 함께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애니메이션 작업을 꽤 오랫동안 하지 않은 듯한 느낌때문에 살짝 걱정스럽긴 하지만 이런 긴장감이 때론 좋다. 작업 시작하면서 또 공부하듯 열심히 배워봐야겠다. 작업이 진행되면 작업일지를 틈틈히 써볼 생각인데 나태함에 굴복하지만 않으면...가능할테지.-_-a

바빠지니 한가할 때보다는 유유자적한 시간이 적어지긴 했지만 기분은 꽤 상큼하다. 忙中閒.

그리고... 靜中動,  動中靜.

2006년 9월 7일 목요일

조삼모사 중국판 - 중국에 대한 오해와 몇 가지 생각

중국어를 조금 안다는 이유로 어제 한 포털사이트를 통해 '조삼모사 중국판'이라는 기사가 시선을 끌었다. 중국인들은 어떻게 그걸 표현했을까 하는 호기심 때문이다. 기사의 요지는 한국에서 한참 유행했던 '조삼모사' 만화를 중국에서 실사판으로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물론 기사 후반부에 가서는 중국에 살고 있는 한 교민의 말을 빌어 '조선족이나 한국유학생이 중국의 베끼기 문화, 짝퉁문화를 조롱하기 위해 만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그런데 이 기사의 리플들을 보니 가관이다. 사실 보통 리플들을 잘 읽지 않는 편인데 '조삼모사 중국판'에 써있는 중국어가 좀 이상하다고 느껴져서 혹시 누군가는 그 부분을 지적하지 않았을까 하는 호기심 때문에 보게 되었다. 예상대로 몇 명 정도가 '중국어 어법이 틀리고 문장이 어색한 걸 보면 분명 한국 유학생의 소행'이라는 정도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말은 그저 한 줄의 의견에 지나지 않을 뿐이었다. 대부분은 중국의 짝퉁 문화, 베끼기 문화에 대해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떼로 욕을 해대고 있는 행태를 보이고 있었다.

그러다 얼마 전부터 중국인들과 대화하면서, 혼자 생각하면서 생긴 궁금증이 다시 일었다.

한국인의 중국에 대한 인식은 일본이나 미국, 다른 나라에 비해 공정한 사고방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정말 대다수 누리꾼들이 중국에 와서 사기를 당하고 그들의 행태에 치를 떨었던 경험들을 가지고 있어서일까? 한국이 일본과 미국문화를 비판없이 수용하고 베끼기에 열중일 때는 그저 선진 문화를 배우기 위한 습작일 뿐이었던 것이어서 괜찮았던 것일까? 가만 보면 미국과 일본, 중국에 대한 누리꾼들의 반응은 좀 차이가 있다. 미국과 일본에 대해서도 무작정 깍아내리고 비판하는 행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인정할 건 인정하자는 이야기도 꽤 많았던 것 같다. 간혹 어떤 방면이든 그들을 추월했을 때의 보이는 우월감은 실로 대단한 정도고. 즉, 한국인은 그들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한 편으로 많은 열등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런데 중국에 대한 태도는 이와 정 반대다. 중국은 앞으로 영원히 한국을 추월하지 못할거라고 생각하고(믿고) 있고 그들의 베끼기 문화 등은 '짱깨'들이니까 한다는 식이다. 오히려 그들이 한국보다 나은 점을 보이면 거짓말이라고 우기거나 더 많은 나쁜 점을 들추면서 무조건 깔보고 무시하고 욕하기 바쁘다.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들의 우월함을 증명하고 싶겠지만 보기에 참 추하다.  

한국인들 사이에 중국인들은 더럽고 시끄럽다고 하는 인식은 이미 널리 퍼진지 오래다. 공교롭게도 최근 중국에 한국인 수가 많아지면서 오히려 중국인들은 한국인들이 시끄럽다고 생각하고 있다. 술자리에서나 기타 공공장소에서도 적지 않은 '개념을 잃은' 한국인들이 시끄럽게 굴고 소란을 피우는 경우가 많아서 일게다. 아니, 그보다 먼저 그들의 귀엔 한국어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외계어처럼 들리기 때문일게다. 그런데 사실 한국인들도 술마실 때나 여럿이 모여 이야기를 나눌 때는 목소리가 상당히 큰 편고 시끄럽다. 더럽다는 문제는 중국의 역사적인 상황이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데 이유가 있다고 난 생각한다.(설명 생략) 시끄럽다는 인식은 상대적인 개념의 문제고 더럽다는 문제는 분명 나름대로 타당한 이유가 존재하는 부분임에도 그저 한 나라의 인민들을 규정하는데 확고부동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중국인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가 얼굴이 화끈거렸던 적이 있었는데 한국에서 한국인들이 중국 유학생들에게 모멸감을 주고 인신공격을 한다는 이야기들 때문이었다. 국가 간 경제지표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고 외국에 가서 유학을 하는 건 집안 경제사정이 좋건 좋지 않건 간에 각 개인의 염원으로 이루어진 일인데 중국에서 온 유학생들은 일본, 미국, 유럽 유학생들에 비해 인격적으로 인간적으로 차별대우를 받는다고 했다. 모든 한국인들이 그렇지 않다고 설명하는 내게 그는 모든 한국인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그런다고 회답했다. 솔직히 부정할 수가 없었다. 내 친구들 중에도 내가 중국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농반 진반 나를 '짱깨'라고 약올리는 경우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나를 가련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었으니까. 개인이 가진 꿈과 생각은 이런 편견 앞에 아무것도 아닌게 되고 만다. 그저 어떤 나라에 사는지에 따라 바로 신분이 나뉘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혹은 살아갈 동남아시아 인민들이나 중국인, 제3세계에서 온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처하게 될 상황은 불을 보듯 뻔하지 않은가. 아무리 겉으로 예의를 갖춰 대한다고 한들 저 뿌리깊게 박힌 국가별, 자본(경제)별 계급주의가 솎아지지 않는 한 쉽게 해결될 문제로 생각되지 않는다.

남을 무작정 깎아내리면 나의 위상이 올라간다고 믿기 때문인걸까? 남에게 함부로 할 수 있는 건 내가 그만큼 자격을 갖추고 있기 때문인걸까? 많은 경우 국가를 대표해 개인끼리 만나는 경우는 드물다. 개인의 국적은 쉽게(함부로) 바꿀 수 없긴 하지만(한국에서는 돈만 있으면 뭐든 하긴 하더라만) 개인과 개인이 만날 때는 인간대 인간으로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가가 부자면 나도 부자인건가? 한국의 기업이 부자면 나도 덩달아 부자가 되는 것일까? 한 인간의 인격은 국가 때문에, 경제상황 때문에 무시하거나 조롱받을 수 없는 존엄한 것이다. 역지사지가 되지 않으면 그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될 일이다.

정당한 이유가 있는 비판은 비판의 과정과 결과 모두 대부분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지만 감정적인 비판, 편견에 의한 비판은 그저 욕설에 지나지 않을 뿐이고 타인은 물론 자신의 인격마저도 상처를 받게 되는 법이다. 당연히 그 속에 진실은 가려지게 될 뿐이고. 뭐, 이래도 저래도 상관없다면 어쩔 도리가 없다. 그저, 그렇게 사느라고 애를 쓰는 게 보기 딱할 뿐이다. 국가를 등에 지고 애국을 목에 걸고 눈에 쌍심지 켜고 발악하는 게 멋져 보인다면 어쩔 수 없지.

겸사겸사 문제가 된 기사에 대해 얘기하자면 일단 기자라는 사람이 그 안에 써있는 중국어를 해석해 올릴 정도면 충분히 그 문장들이 중국 사람이 쓰지 않은 거라고 의심해 볼만 한 일임에도 그냥 넘어갔고 낚시를 위한 떡밥으로 썼다. 아님, 애초 그 이미지를 올린 누리꾼이 낚시질을 했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아래는 기사에 소개되었던 몇 개의 이미지 중 하나다.

내용은 "오늘부터 중국어를 배우도록 하자" "중국어, 머리아파, 어려워!" "그러면 광동어를 배우던가" "CCTV를 통해서 공부하겠습니다." 뭐, 이런 내용이다. 그런데 조삼모사의 문맥을 대충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무슨 내용인지 이해를 하는 거지, 중국인들이 본다면 틀린 문맥들 때문에 일단 버벅댈 것 같다. 내 생각에 중국인들이 만들었다면 중국어 자체를 귀찮고 배우기 싫은 것으로 묘사했을 것 같지 않은데... 오히려 내용이 "자! 광동어를 배우도록 하겠다." "싫어! 어려워, 힘들어" "그럼, 한국어를 배우던지" "광동(홍콩)영화 열심히 보겠습니다."라고 했다면 어떨까? 중국인이 썼다고 믿을 법 하지 않나? 게다가 틀린 문장, 어법들이라니... 나처럼 중국어 초짜들도 보면 이상한 걸 느끼는데 중국어 전공자들이 보면 어땠을까. 기자는 중국어 못해도 되지만 최소한 주변의 인맥을 활용해서 정확한지 아닌지 확인 정도는 가능하지 않았을까? 흠;;; 암튼... 그리고 만의 하나라도 그들이 조삼모사를 흉내내서 만들었다고 한들, 이게 중국 짝퉁, 베끼기 문화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인터넷에서 모방과 창조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는 걸 한국 누리꾼들은 자신들만의 문화라고 착각하고 있단 건가? 만약 한국인이 조작해서 중국인이 만든 것처럼 하고 누리꾼들을 낚은 것이라면 그 한국인, 스스로 반성하고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뭐, 내겐 중국인이 만들었든 한국인이 조작했든 별 관심이 없다. 그저 중국어 문장이나 읽으며 공부하는 셈 치는 거지. 그런데 많은 누리꾼들은 '조삼모사'라는 성어가 정말 한국말인 줄 알고 있는 걸까? 설마...?

조삼모사(朝三暮四) : 춘추전국시대에 송나라의 저공(狙公)이란 사람이 원숭이를 많이 기르고 있었는데 먹이가 부족하게 되자 저공은 원숭이들에게 말하기를 "앞으로 너희들에게 주는 도토리를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로 제한하겠다"고 말하자 원숭이들은 화를 내며 아침에 3개를 먹고는 배가 고파 못견딘다고 하였다. 그러자 저공은 "그렇다면 아침에 4개를 주고 저녁에 3개를 주겠다"고 하자 그들은 좋아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열자(列子)》 〈황제편〉에 나오는 이야기로 결국 조3모4나 조4모3(朝四暮三)이나 똑같은 숫자인 점에서 똑똑한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을 속임수로 넘기는 데 비유하게 되었다.

2006년 9월 4일 월요일

성룡은 친구들 생일 선물로 무엇을 줄까?

우연히 성룡의 블로그를 둘러보다 "가장 좋은 생일 선물"이란 글을 읽게 되었다.

며칠 전 몇 친구가 생일을 맞이해 생일모임에 초청을 했다. 한 친구는 비교적 젊은 친구였고, 집안 경제사정이 꽤 좋은 편이었다. 그는 줄곧 내게 무슨 선물을 줄 것이냐고 물었다. 내가 말하길 "5천원(한화로 약62만원) 줄게." 그는 무척 기뻐했다. 나는 그가 웃음이 그치길 기다린 후 바로 이어 말했다. "그런데 내가 이미 네 대신 5천원을 성룡자선기금회로 기부했어. 게다가 이미 너를 대신해 수 많은 가난한 학생들이 공부를 할 수 있게 도와줬어. 하하! 농담이라고 생각하지마, 정말이야. 며칠 후에 너한테 영수증(증명서)을 보내줄게. 내가 정말 네 명의로 5천원을 기부했음을 증명해 줄거야"
그리고 두 명의 친구 생일모임. 한 명은 60세, 한 명은 70세였다. 전에 매니저Willie가 무슨 선물을 사야할지 물었을 때  난 아무것도 사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내가 인색해서가 아니다. 내 생각엔 그들은 부족한 게 없는 사람들이었다. 난 정말 그들에게 어떤 선물을 해줘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유일하게 생각된 것은 바로 선물 살 돈을 자선활동에 기부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생일모임에서 돌아온 후, 난 바로 Willie에게 말했다. "내 결정이 정확해" 내가 본 탁자 위에 모든 선물은 금장식품, 넥타이, 양말 등과 같은 거였다. 난 그것들이 그 노인들에게 필요하지 않은 걸 알고 있다. 그 선물들은 모두 그저 방안 한 구석에 쳐박힐 것이라고 믿는다. 얼마나 낭비인가! 생일을 맞이한 사람들이 선물을 받는 것은 한 순간 기쁠 뿐이다. 하지만 집에 돌아가면 모든 선물은 그저 창고에서 먼지만 가득 뒤집어 쓸 뿐이다. 이런 게 정말 필요한 것인가? 만약 선물을 구입할 돈을 모두 자선활동에 사용한다면 정말 많은 어린이들, 노인들은 모두 혜택을 받을 것이다. 이건 혹 나 한 사람만의 바램일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은 늘 생일 선물을 받길 원한다. 하지만 난 이번에 또 다음에 내 팬들에게 친구들에게 지지를 구할 것이다. 이후에 당신들은 어떤 선물도 내게 보낼 필요가 없다. 만약 보내고 싶다면 돈을 보내라. 하하... 내가 그 돈을 모두 자선사업을 하는데 쓸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야 말로 가장 좋은 생일 선물이 아닌가. 여러분의 지지에 감사한다. 그리고 혜택받을 사람들을 대신에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린다. - 성룡

번역: 자유인
출처: 성룡의 블로그

물론 이 글이 좀 더 술술 읽힌 건 내가 본인의 생일이나 주변 인연들의 생일을 맞이했을 때 어떤 선물을 주고 받아야 할지 몰라 '안 주고 안 받기'라고 종종 말했던 경험이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인의 어떤 생각을 떠나 성룡이 생각하고 있는, 직접 실천하고 있는 행동들은 시사하는 바가 참 많다고 생각한다. 종종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정부나 돈 있는 이들이 어떤 일을 할 때 한국에 있는 어려운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보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그렇게 말만 하고 생각할 뿐 어떤 행동을 몸소 실천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나 싶다.

물론 성룡처럼 자선활동을 하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다. 혹은 한국의 자선활동, 단체들의 투명성을 의심하고 있는 사람들도 꽤 많을 것 같긴 하다. 이유야 어쨌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가지고 주변을 살피는 적극적인 태도를 견지한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보람된 일이 아닐까 싶다.

나도 몇 달 전 블로그 답글 수나 트랙백 수를 매달 혹은 매년 정리해 한 건당 백원이든 몇 백원이든 적립해 자선활동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여전히 하지 않고 있다. 중국에 있으면서도 나름대로 이런저런 괜찮은 생각들을 하고 있지만 역시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않고) 있다. 성룡 글을 읽으며 무척 부끄러워지는 건 말과 행동이 따로 움직이고 있는 내가 너무 적나나하게 드러나기 때문일게다.

생일이 왜 중요한지는 다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중요한 자신과 타인의 생일에 주고 받는 선물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경우는 많이 적지 않나 싶다. 바람직한 개인주의, 서로 기분 좋은 생일을 맞이하고 보내는 일은 어느 누구도 뭐라 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다만 한 생명이 태어난 소중한 날에 다른 생명들은(이미 고정된 사회시스템 하에 태어난) 힘겹게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임을 생각해 보는 건 또다른 측면에서 생일을 더 기쁘고 행복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자선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쓸데없이 낭비하고 과시하는 소비풍조는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덧: 위 내용과 (약간) 관련됐다고 생각하는 내가 알고 있는 몇 가지.

성룡은
일년에 약 750억 정도의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다.
꽤 많은 자신만의 브랜드를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자신의 동료직원들에게 설립한 업체를 골고루 나눠 준 후 그들의 삶에 보탬이 되게 하고 있다.
홍콩 연예계 대부라 불리고 있고 많은 연예들이 성룡을 "따거"라고 부르며 존경을 하고 있다.
유명한 연예인들과 종종 카레이싱 대회를 개최해 수익금 모두를 자선활동에 기부하고 있다.
동료 연예인의 치욕적인 파파라치 사건으로 인해 부도덕한 일을 근절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성룡자선기금회는 중국 대륙에서도 모범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현재 세계 각국의 어린이 및 많은 팬들이 1달러~몇 달러씩을 보내 학교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역시 중국에서는 1원(한화 125원)씩 기부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학교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돈들은 학교 건립 외 학교 보수공사, 학용품 구입 등 그들에게 필요한 일에 쓰인다.
....그는 특별한 스캔들이 없는 배우 중 한 명이다.

그리고...
현재, 장이모와 함께 영화를 준비 중이고 본인이 감독할 작품도 준비 중에 있다.

2006년 9월 2일 토요일

[ani] 아빠가 필요해(Wolf Daddy) - 기묘한 가족 이야기


일단, 장형윤 감독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함께 기뻐하고 있음을 전하고 싶다. 장형윤 감독의 "아빠가 필요해"가 2006년 히로시마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대상 다음의 2등상이라 할 수 있는 히로시마상을 거머쥐었다. 이는 과거 이성강 감독의 단편들이 그리고 7인조의 "아빠하고 나하고"가 세계 4대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 모두 본선에 올라갔다고 한 성과보다 대단한 것이고 이명하 감독의 "존재"가 2000년도에 히로시마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신인상을 수상한 것보다도 큰 성과다. 정말 축하하고 또 축하할 일이다.

물론 위에 언급한 작품들이 "아빠가 필요해"보다 못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한국의 단편 작품들이 국내의 페스티벌에서는 대상과 최우수상 등을 받곤 했지만 세계 4대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는 본선에 진출하는 것에만 그쳤고 혹은 그 외 비교적 작은 페스티벌에서 상을 받곤 했기 때문에 이번 히로시마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2등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대단한 쾌거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의 단편 애니메이션 감독들의 작품들도 이젠 머지 않아 페스티벌 대상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도 하게 한다.




수상 소식을 며칠 전 아는 PD에게 전해듣고 정말 기쁜 마음에 바로 글을 작성하려 했지만 일이 너무 많아져서 부득이 며칠이 지난 후에야 글을 쓰게 되어 장형윤 감독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긴다. 한 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수상을 한 후에 한국의 어떤 매체에서도 그의 쾌거를 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름 검색을 해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글을 작성하던 시점이 좀 늦었다. 현재 장형윤 감독의 "아빠가 필요해"를 검색하면 많은 매체에서 그의 수상소식을 전하고 있다. 일단 필름2.0씨네21의 소식) 몇 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근래 한국 단편 애니메이션(애니메이션계 전체)이 점점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건 아닌가 하는 서글픔마저 느끼게 되었다. 영화 쿼터제는 지지하건 반대하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으니 그렇다손 치고 애니메이션 쿼터제를 실시해서 좀 더 대중들에게 다가서고 그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일단, 이 글을 읽는 누리꾼들은 함께 장형윤 감독의 수상을 축하하고 기뻐해줬으면 좋겠다. 한국에서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것, 독립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것은 상상 그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고 고난한 여정의 연속이다. 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한국 독립 애니메이션은 수 많은 능력있는 감독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은 적이 없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래도 계속 만들고 또 만들고 있다. 애니메이션이 삶이고 기쁨이고 벗이기 때문에. 그러니 이번 장형윤 감독의 수상 소식은 축하하고 또 축하해도 부족할 뿐이다. 그의 수상이 한국에서 열심히 작품을 만들고 있는 많은 감독들에게, 스탭들에게도 든든한 힘과 기쁨이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아래에 적어가는 글은 내용이 다소 빈약하더라도 함께 작품에 대해 생각하고 공감해주길 바라는 마음에 작성한 글이니 틀린 내용이 있거나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언제라도 대환영이다.)

장형윤 감독을 처음 만난 것은 KIAFA-(사)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가 2005년에 주최한 "제1회인디애니페스트" 술자리에서였다. 이미 꽤 시간이 흐른지라 정확한 기억을 해낸다는 건 나로써는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당시를 더듬더듬 기억해 본다면 아마 개막식 이후 KIAFA회원(감독)들과 기타 많은 사람이 모여 서로 인사를 나누던 자리였던 것 같다. 어렵게 만들어진 (사)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였기 때문에 많은 감독들이 흥을 돋구기 위해 모이기도 했고 현재 어떤 감독들이 어떤 작품을 준비하고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모인 자리였다. 물론 상당수는 서로 알고 지내던 사이고 한 사람 건너면 알게되는 화기애애한 자리였다.

한참 동안의 첫번째 술자리가 파하고 2차, 3차로 이어지는 자리에서 장형윤 감독과도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그에 대한 인상은 나름 선명한 편이다. 물론 장형윤 감독이 나를 기억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는 상당히 활발한 성격에 유쾌한 사람이었고 자리를 이끌어가는 능력이 꽤 탁월했던 것 같다. 농담도 잘하고 스스로를 낮추면서도 격을 잃지 않는 사람.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시나리오 능력이 참 뛰어난 감독 중 한 사람이라고 했다. 준비하는 프로젝트가 많긴 하지만 서둘지 않고 차근차근 하나씩 만들어가는 성실한 감독이란 이야기도 들었다. 그가 궁금했지만 술자리에서는 나도 오랜만에 만난 다른 감독들과 이야기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렇게 자리는 끝이 났다. 그 이후로도 장형윤 감독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가끔 전해듣긴 했다. 난 한국을 떠났고 그리 오래지 않아 (이미 작년부터 유명했지만) 장형윤 감독의 "아빠기 필요해"가 크고 작은 많은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소식을 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었다. 그 매체가 메이저급은 아니었을지라도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널리 퍼져갔다. 좋은 작품은 역시 따로 홍보를 하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찾게 마련이고 시간이 흘러도 재발견이 되는 것이라는 아주 간단명료한 법칙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거짓말로 누군가를 칭찬하는 것 만큼 상대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부끄러운 일은 없기에 솔직한 고백으로 시작하자면 내게 "아빠기 필요해"의 첫인상은 그다지 강한 울림이 없었다. 부끄럽지만 김규항씨의 글 한토막을 읽고 문득 내가 너무 외국작품들에 대해서만 관대한 편인가라는 회의를 품게 되었고 또 단편작품에 대한 감(感)이 많이 무뎌진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고 꼭 김규항씨의 글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내겐 다시 음미해봐야 할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그 후 인디영화제 다락페스티벌을 통해 다시 보게 되었다. 그 이후에 인터넷 상에서 우연히 작품을 다시 접하게 되어 한 두 번 더 보게 되었다. 그리고 몇 가지를 다시 느끼게 되었다.


"아빠가 필요해"는 단편이 가질 수 있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일단, 캐릭터나 배경, 칼라, 애니메이팅(움직임)등은 상업 애니메이션이 가진 장점을 가지고 있으되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듯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작품이 떠오른다고 하지만(일본이나 한국의 전원풍경이 많이 비슷하지 않은가?) 약간 비슷한 분위기는 있되 한국적 배경을 나름 잘 옮겨놨다고 생각한다. 캐릭터들의 움직임은 경제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되 세밀한 묘사가 살아야 할 부분에서는 작은 동작 하나하나를 잘 표현했다. 가령 액션무비를 떠올리게 하는 듯한 여자 어른들의 액션동작이라던가(장윤형 감독의 차기 작품이 "무림일검의 사생활"이라니 기대가 된다.) 영희와 늑대가 한 방에서 잠을 잘 때 늑대의 뒤척이는 모습이라던가 영희가 데굴데굴 굴러 늑대 옆으로 가는 장면, 늑대가 이불을 끌어당겨 영희를 덮어주는 장면 등 작품 곳곳에 세밀한 표현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음을 알수 있다.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본 사람들은 공감하겠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캐릭터들이 표정이 풍부할 수 없는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자잘한 동작, 고개의 움직임, 눈의 위치 및 표정 등으로 캐릭터의 성격을 풍성하게 만들어 낸 건 참 새겨볼 만 하다. 장현윤 감독의 섬세한 감성, 관찰이 힘을 발하는 순간들이다. 물론 이는 편집의 흐름 즉 이야기의 전개, 시나리오의 단단함이 있었기에가능한 일이라 생각되기도 한다.

"아빠가 필요해"의 큰 장점은 기존의 한국 단편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밝고 재치가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의 단편들은 모두 우울하고 비관적이었다. 그런 어두움으로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이 많았기에 보는 이들 마음도 함께 무거워지곤 했다. 그런 분위기를 벗어나려 해도 쉽게 벗지 못했다. 그럴 수 밖에. 한국 사회가 그랬기 때문이다. 뭐, 현재 사회 분위기가 달라진 건 아니지만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 감독들에 의해 이야기되어지는 한국의 모습은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지금 비교적 젊은(?) 감독들은 따뜻한 시선과 함께 재치있게 비틀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젊음을 발산하고 있다. 그걸 가장 크게 느낀 작품은 한예종 출신 감독(그다지 젊진 않다)이 만든 "형이상학적 나비효과의 예술적 표현"이란 작품인데 이는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다시 얘기를 해야겠다. 암튼 "아빠가 필요해"가 가진 밝은 정서와 재치는 보는 이로 하여금 함께 동참하게 만들며 두고 두고 보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한다. 큰 힘이다.

음악과 사운드 디자인, 대사 녹음들에서는 아주 세련된 맛보다는 조금 투박하지만 애니메이션 정서를 충분히 표현해 준다는 측면에서 꽤 성공적이다. 오리지널을 들어보지 못해서 정확한 이야기를 하기가 애매하다. 웹상에서나 사운드 시스템이 좋지 않은 곳에서는 공간 엠비언스가 충분히 들리지 않고 세밀한 사운드를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다. 믹싱이 좀 거칠게 된 느낌도 받을 수 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다시 잘 들어보고 싶다. 늑대 역을 맡은 이의 목소리는 건조하면서도 애니메이션을 보는 이의 귀를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담담하지만 그 담담한 속에 스스로를 성찰하는 느림과 담백함을 가지고 있다고 할까.

"아빠가 필요해"가 가진 내용은 직접 애니메이션을 보며 각자가 느끼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된다. 여러 장치가 있어 보는 이에 따라 느끼는 부분들이 조금씩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본 "아빠가 필요해"는 이상한 동거 속에서 발견되는 가족애라는 것이다. 전혀 다른 개체들이 모여 살면서 가족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건 정말 특별한 일이다. 가족들도 서로를 증오하고 팽개치는 삭막한 사회에서 내게 가족은 무엇이고 가족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되묻는다. 피가 섞이면 무조건 가족이 되는 것일까. 그저 한 나라, 한 땅에서 태어났다고 같은 국민이 되는 것일까. 내게 던져진 불합리하고 억울한 상황때문에 아이를, 생명을 모른체 하고 방치할 수 있을까.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내가 원하는 대로만 이끌어져 가는 게 아니라면 세상에 굴복하는 내 모습이 혐오스러울까.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게 되는 일은 늘 요원한 일일까.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도 모든 걸 결코 쉽게 답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같음과 다름", "가족과 타인", "나와 너"의 관계를 현재 이 사회에서 벌어지는 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분명 변화가 필요하다. 늑대가 소설 쓰기를 포기하고 새로운 직장을 구했지만 그의 생활이 더 편안해 보이고 따뜻해 보이는 것은 자신의 삶을 "포기"해서가 아니라 진정 가치있는 삶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처음 관람할 때 "아빠가 필요해"를 주의깊게 보지 못했던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장형윤 감독의 수상소식이 많이 상쇄되는 느낌이다. 좋은 작품을 보게 해준 그에게 고마움을, 히로시마에서의 좋은 결과로 열심히 작품을 만들고 있는 단편 애니메이션 감독들에게 힘을 실어준 그에게 축복을 보낸다. 꾸준히 작품활동을 할 거라는 믿음을 주는 그가 스탭들과 함께 있는 스튜디오 이름은 "지금이 아니면 안돼"이다. 스튜디오 이름을 보고도 난 다시 가슴이 뜨끔했고 자극받았다. 입으로 작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발로 작품을 만들고 손과 온 몸으로, 온 가슴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도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단편이든 장편이든 좋은 애니메이션을 만난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애니메이션이 영화와 같은 뿌리를 두고 있긴 하지만 애니메이션만이 갖고 있는 정서가 있다. 특히 잘 만들어진 단편 애니메이션이 가지고 있는 정서와 이야기 힘은 장편 못지 않다. 프레드릭 벡의 "나무를 심는 노인", 알렉산더 페트로프의 "노인과 바다", 마이클 두덕 드 위트의 "아빠와 딸"과 같은 작품을 보면  그 울림이 수 많은 장편 영화, 애니메이션을 본 것보다 크고 여운이 깊다. "아빠가 필요해"도 많은 이들이 더 찾고, 본 후에 따뜻한 감성을 서로 나눠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척박한 땅에서 새로운 도전과 성취를 위해, 타인과 소통하고 싶어 노력하고 있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면 좋겠다. 삶의 변화는 10분 내외의 짧은 시간 속에서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단편 애니메이션이 가진 힘이다. 일본에서 만났던 단편 애니메이션 "두산"의 감독 야마무라 코지가 한 말이 생각난다. "Short is Best!"